삼가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며칠 간 노거사(老居士)의 생활과 건강은 병도 없고 걱정도 없이 청정하고 평안하셨는지요? 삼가 그리워하는 마음 구구절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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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伏未審、日來老居士之氣體候、小病小惱、淸淨安樂乎、伏慕區區切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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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납(小衲)은 예전 그대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어 다행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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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衲依舊伏幸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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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옵건대, 옛말에 “사람을 죽이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고, 사람을 위하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라고 한 것을 혹 기억하고 계십니까? 각황사[覺皇]의 승려가 ‘임제(臨濟)’라는 두 글자를 마치 원수[仇讐]를 보듯 하는 것은 어떤 마음입니까? 임제의 문손(門孫)은 피아(彼我)가 일반입니다. 어찌 구구하게 반대하는 마음이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이번 세상에 태어나 이제 그만이지만, “사람을 죽이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고, 사람을 위하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보고서 어찌 깊이 생각지 않겠습니까. 임제종을 세상에 드러나게 해주신다면, 천만다행일 뿐입니다. 오늘날 선종(禪宗) 임제파(臨濟派) 강구소(講究所)에 앞으로 임제종이 갖추어져서 힘을 다해 두루 펴질 터전이 세워지길 매우 간절히 우러러 바랄 뿐입니다.
밤사이에 도후(道候)1)
는 청정(淸淨)하셨습니까? 삼가 그러하시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어제 저녁에 나아가 이른 말은 함부로 되는 대로 뱉은 것으로, 도(道)를 어지럽히고 선생의 귀를 괴롭히기만 하여서, 실례됨이 매우 컸기에 황공하고 황공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말로서, 감히 한마디 말도 속임이 없으니, 관대하게 용서해 주시길 바라며,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우러러 기원할 뿐입니다.
저(小衲)2)
는 어제 밤에 친절한 가르침을 삼가 받고서, 온갖 잡생각이 일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다만 본분(本分)만을 지킬 뿐, 본종(本宗)의 흥망성쇠에 대한 생각은 멀리 다른 곳으로 흘려보고, 다시는 괘념치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종(吾宗)의 흥왕(興旺)은 모두 시겁(時劫)의 운수에 달려 있는 것이니, 어찌 애써 힘쓴다고 구해지는 것이겠습니까. 인연 따라 먹고 마시며, 선탁(禪榻)과 주장자[拄杖] 그리고 불경[黃卷]과 침상 하나면, 그저 스스로 만족할 뿐입니다. 어제 저녁에 실례를 범한 것에 대해서는 다시금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 베푸시길 바랄 뿐입니다.
추신[追告] : 어제 저녁 묘심사(妙心寺)에서 출장(出張)에 대해 말씀드린 내용들은, 마구니에 홀렸는지 매우 혼란스러운 가운데 실언한 것이니, 모두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또한 망상(妄想)으로, 다시는 이러한 부탁이나 게으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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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告昨夕妙心寺出張云云者、因魔多撓、欲爲除去矣。是亦妄想、更不一切依懶爲决心也。
세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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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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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称 阿部充家文書 標題白龍城 分類番号 348-4● 国立国会図書館 登錄番号 (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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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 아베미츠이에[阿部充家] 댁에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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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部充家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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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京城府) 인사동(仁寺洞) 조선선종중앙포교당(朝鮮禪宗中央布敎堂) 백용성(白龍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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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城府 仁寺洞 朝鮮禪宗中央布敎堂 白龍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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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아룁니다. 금일 본산(本山)3)
의 주지가 내무지방국(內務地方局)에 출두하여 이회광(李晦光)과 시비를 가리는데, 관리가 강제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화급하고 신속하니, 원컨대 대인께서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속히 구제해 주시기를 삼가 바라는 바입니다. 금일 소납 백용성 배상.
선찰(禪刹) 대본산(大本山) 범어사(梵魚寺) 【적요(摘要)4)
】 달마조사 이래로 임제 선사에 이르기까지 바로 전해져서 대대로 서로 이어져 응암 담화(應庵曇華)에 이르렀고, 다시 전해져 여조(麗朝)의 태고 보우(太古普愚) 선사에 이르렀으며, 또한 이조(李朝)의 청허 휴정(淸虛休靜) 선사[서산(西山)대사]에 이르러 대대로 서로 전해진 문손(門孫)이다.
수찰(首刹) 대본산(大本山) 봉은사(奉恩寺) 임제 선사 이래 청허 선사의 법맥을 이은 환성 선사의 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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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濟下淸虛禪師法脉喚惺門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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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산(大本山) 선암사(仙巖寺)[사법(寺法)이 아직 제정되지 않음] 임제 선사 이래 청허 선사의 법맥을 이은 상월(霜月)과 백파(白坡) 두 선사의 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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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濟下淸虛法脉霜月白坡兩禪師門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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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찰(僧刹) 대본산(大本山) 송광사(松廣寺) 임제 선사 이래 부휴 선사의 법맥을 이은 묵암(黙庵) 선사의 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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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濟下浮休禪師法脉黙庵門孫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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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와 같이, 삼십 본산(本山)의 본말사(本末寺)는 모두 임제 선사 이래 청허(淸虛)와 부휴(浮休) 두 선사의 법손(法孫)이다. 저 승려 등은 그 종교의 정신을 잃고서, 세속의 이익과 흐름만을 따라 무종(無宗)의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스물아홉 본산의 본말사 선원은 모두 종교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회광(李晦光)이 펼치는 운동을 따른다면, 이는 조선의 불교를 알지 못하는 것이니, 무엇으로 종주로 삼겠는가. 저들이 말하는 선교종(禪敎宗)에서 교(敎)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대장경 가운데 어떤 경을 종주로 삼는가? 달마가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본래 성품을 깨달아 부처를 이룬다는 뜻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로다.
주신 편지를 서둘러 뜯어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소. 오랫동안 공무의 분주한 가운데서도 무가(無價)의 보장(寶藏)6)
을 발견하였으니 만약 여러 생에 반야(般若)의 지혜종자를 심지 않았으면 어찌 능히 이와 같겠습니까. 나 또한 미진(未盡)한 처지지만 그러나 이것이 지극히 중대한 일이라 실로 경솔한 말로서 증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의 깨달은 바도 모르면서 억누름도 죄인이며 깨달은 바가 깊고 옅은 것도 모르면서 망령되이 인가(認可)하는 것도 죄인이니 실로 예삿일이 아닙니다. 청나라 옹정황제7)
가 이르기를 ‘요즈음 참선하는 이들은 의해(義解)로 따르지 않으면 말길과 마음이 끊어지는 곳을 집착하고 이러한 도리가 아니면 아무런 재미 없는 것을 극칙(極則)으로 삼나니’ 스님의 깨달은 바는 과연 어떠한지요. 만약 허공에 불이 일어나 허공이 타버리고 바다 밑에 연기가 일어나 산하대지(山河大地)가 한꺼번에 타버리더라도 여기에서 다시 묻는 데 답을 못하면 조금 갈등이 남음이로다. 스님께서 실로 화두(話頭)에 의정(疑情)을 타파하였으면 참으로 불 가운데 연꽃이 솟음이라 나 역시 찬탄하여 마지 않음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리요 요즈음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대개가 모든 법이 공적(空寂)하다고 하지 않으면 가히 상대할 것이 없고 가히 이치를 펼 것이 없다 하거나 잠깐 묵묵히 있지 않으면 은밀히 작용하고 또는 종문(宗門)의 향상(向上)을 타파해서 최초구(最初句)에 집착하지 않으면 대용(大用)을 나타냄이라 하니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자기의 본성(本性)은 꿈에도 보지 못함이니 알겠습니까.〈p.264〉나의 본성은 체(體)도 아니며 용(用)도 아니며 종문향상(宗門向上)도 아니며 최초구도 대용도 아닙니다. 임제(臨濟)8)
덕산(德山)은 이 모두 마음을 훔치는 도깨비이며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는 마치 모기가 어지러이 우는 것과 같음이라 여기에는 무엇이든지 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참으로 본성을 깨달으면 촛불이 눈앞에 있는 것과 같아서 누구에게 물을 필요가 없으니 알겠습니다. 이 일은 물 가운데에 소금맛과 같아서 결정코 있는 것이나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과 같음이라 여러 가지 명상(名相)과 온갖 의리(意理)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일들이 전부 붙을 수가 없는 것이니 비록 그렇게 붙을 수가 없지만 이 일만은 분명한 것이라 진실로 이 이치를 아시겠습니까. 저 물에 비유하자면 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하며 넓게 파도 치고 출렁거리며 하류로 흘러가되 이것이 아울러 물의 본성은 아니니 물의 성질은 젖는 것이나 결코 현상을 볼 수 없으되 파도가 돌에 부딪친 뒤라야 젖는 것은 보지 못하나 원래로 젖지 않는 그 젖음이 가히 젖음으로 나타남이요 대각(大覺)의 성리(性理)가 그 당체(當體)에는 여러가지 명상(名相)이 없으되 빛을 보고 소리를 들음에 깨달아 아는 것이 나타나나니 원래로 깨달음 아닌 그 깨달음이 가히 깨달음으로 나타남이라, 시작과 근본이 한 몸이며 근본과 지엽이 둘이 아니며 둘이 없는 그 성리(性理)가 참된 성리로다. 이 참된 성리는 범부에게 있다 해서 못할 게 없고 성현에게 있다 해서 나을 게 없다. 스님이 만약 이 이치를 깨달으면 현세(現世)에 종횡으로 설파하여 삼현〈p.265〉(三玄)이니 종문향상(宗門向上)이니 최초구니 삼요(三要)니 아공(我空)이니 법공(法空)이니 양구묵언(良久默言)이니 절대로 짐작이 없는 것이 대용(大用)이니 하는 무리들과 같지 않을 것이니 아시겠습니까. 만약 이와 같으면 쓸어버림도 나에게 있고 세우는 것도 나에게 달려서 밝은 구슬을 가지고 놀며 종횡으로 유희함에 일없는 한가로운 도인입니다. 규산(潙山)9)
이 이르시기를 ‘닦는 것과 닦지 않는 것이 두 가지 말이니 다만 물질에 아무런 뜻이 없다면 저 법의 성품에 맡겨져 두루 유통하여 끊지도 말고 잇지도 말라’ 하신 여기에 결택할 것이며 목우자(牧牛子)가 이르시되 ‘마음이 마음에 머물고 경계가 이 경계를 취하지 않으며 경계가 마음에 임하지 않으면 자연히 망념이 일지 않고 저 도에 걸림이 없으리라’ 하니 스님의 습기를 스스로 헤아려서 「진심직실(眞心直說)」 가운데 열 가지 공부짓는 방법 중 어느 것이든지 선택해서 하십시오. 혹시 습관이 중하여 정력(定力)이 약하고 혼침과 산란에 빠지거든 열 가지 중에 첫번째인 깨달아 살피는 공부법을 의지할 것이며 혹은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방법과 혹은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 공부를 하십시오. 기사년 9월 15일 백용성 답장 올림
삼가 회신을 보냅니다. 도체후 청정하여 약을 안쓰는지요. 병도 차도가 있고 약도 필요 없으면 여전히 예전 사람이라 다시 누구에게 참회할 필요가 없습니다.〈p.268〉달마스님이 이르기를 ‘마음이 일어날 때 문득 죄가 생기고 죄가 사라지고 마음이 공하면 두 가지가 함께 없어진다. 이것을 이름하여 참된 참회라 한다’고 했으니 쯧! 이것은 부스럼 위에 쑥뜸질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요즈음 말 많은 법사들이 혹은 법법(法法)이 온전히 참됨이라고 하거나 혹은 뿌리째 뽑는다고 하는데 대개가 본을 의지해서 그림을 그리려 하니 점점 상응하지 못합니다. 저 태말충10)
이 물질 위에 붙어 있으면서 격외격내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이치를 말하며 사물을 말하며 중생을 말하며 부처를 말하며 평상과 본래 평상 등을 말하여 몇 사람이나 성취하게 하고 몇 사람이나 그르치게 했는가 설사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라도 또한 결점이 있도다. 푸른 소나무는 낙낙히 섰고 흰 구름은 편편히 흘러가는데 아득히 하늘가를 바라보니 저녁노을이 붉게 반사되네. 옛 부처도 원래 모르고 나도 얻은 게 없어 허공의 뼈를 쳐부수니 문득 벽력소리가 일어나도다. 본납(本衲)은 멀리 환성(喚惺)11)
에게 법을 이었으니 환성은 나의 스승이라 더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존 2942년 11월 23일 환성 법사 용성 답장 올림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요사이 삼복 더위에 대법기체후 편안하시다니 기쁩니다. 생은 여전하니 다행입니다. 부탁한 가사는 보내드릴 예정이나 새로 지은 것이 없어 금년 겨울 안으로 지어서 보낼 예정이니 양해를 하십시오. 생은 북간도 용정시에 대각교(大覺敎)를 신설하고 포교를 시작하여 혁명적인 민중교(民衆敎)로 힘을 쓰고 있으나 심력(心力)이 다하고 금전이 다 되어 신상에 도무지 한 푼도 없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7월 7일〈p.271〉 백상규 올림〈p.272〉
오랫동안 적조하던 차에 편지를 받아보니 감사합니다. 삼가 그동안 대법기체후 수시로 만강합니까. 간절히 송축(頌祝)합니다. 생은 여전하오니 다행인가 합니다. 선원(禪院)의 종주(宗主)문제는 본(本) 대각교(大覺敎)의 일이 번다하여 부탁하신 청을 들어드리지 못하오니 양해하시옵소서. 교생(敎生)은 승적을 제거하였는데 그 까닭은 조선 승려는 축처를 하고 고기를 먹으며 사찰 재산을 없앰에 대하여 승수(僧數)에 처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4월 15일 백상규 답장 올림〈p.273〉
삼가 요즘에도 도체후 청정하시며 병이나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노한(老漢)은 다행히도 여전합니다. 보내온 편지의 말씀은 일일이 절실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감복하여 저절로 머리를 숙여지게 합니다만 나는 이미 제적(除籍)한 지 오래되었으므로〈p.274〉 다시 상속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노한은 대각성전(大覺聖前)에 대계(大戒)를 버린 것은 아니니 본래 받은 계를 몸과 마음에 굳게 짊어지고 있으므로 대각성존께서 나를 버릴 이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승적에만 제거한 것이며 다시 괘념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입니다. 노한은 요즈음 사찰의 제도와 또 2백만원의 (종단)채무를 볼 때에 도저히 승려들의 무리 속에 함께 할 생각이 없어져 스스로 제적한 것이요, 대각의 성훈(聖訓)을 버린 것은 아니며 이미 대각교를 세운 뒤에 새로 교를 믿는 사람 수만명을 얻어 부처님의 최상 진리를 선포하니 대각교나 불교나 둘이 아닌지라 둘이 서로 방해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에 이르기를 ‘불(佛)을 대각(大覺)이라 이름하는 것은 일체의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이라 하시니 스스로 외도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 알아 주십시오. 계유년 7월 16일 용성 백상규 답장 올림〈p.275〉
일전에 답서는 아마 보셨겠지요. 요사이 중춘지절에 법체후 만안하시고 주지화상과 대중스님네가 안녕하십니까. 아울러 간절히 사모합니다. 병납(病衲)은 진뇌(塵惱)에 골몰하다 보니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소위 삼장역회(三藏譯會)12)
에 대해서는 허가서류를 십여종이나 되게 얻었습니다만 자금의 어려움이 한이 되어서 끝맺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좌우간 서울에 머무를 형편이고 내년에는 다시 산에 머무를 계획이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내원선원(內院禪院)은 은밀히 돈을 주선하고 있습니다. 금명년간에 선림(禪林)을 완성하게 되면 노래(老來)에 안신(安身)할 계책이니 어찌 잘 되었〈p.276〉다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산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사방산야를 둘러봐도 더불어 계획을 의논할 사람이 없어 이렇게 말씀드리오니 심상하게 여기지 마시고 평범한 일이라도 힘을 다해 도모해서 좋은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은 말은 너무 번잡한 듯해서 편지에 다 쓰지 못합니다. 음 2월 5일 병납 용성 올림
용성스님이 경봉스님에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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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찌는 듯한데 법체후 청량만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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酷炎 極蒸하온대 法體候 淸凉萬福乎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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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은 이달 20일에 「화엄경」13)
인쇄를 착수하였는데 3년이나 걸려야 결말이 나겠다고 하니 잠시라도 몸이 빠져나갈 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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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은 本月二十日에 華嚴經印刷에 着手 而三年間에사 結末되것다고 한즉 暫時無出身之路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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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금년도에 내원(內院)에 대하여 작년도에 사중(寺中)의 빚으로 쓴 것 중에 700원이 선객(禪客)의 소용외에 명분 없이 소용되었기로 금년도의 재단조로 700원을 주었고, 또 선원(禪院)에서 부족하다 하여서 400원을 주었는데 주지가 사표를 내겠다고 하여서 여러 번 권유해 보았으나 도무지 듣〈p.279〉질 않으니 탄식할 노릇입니다.
생은 금년에 선원에 대한 책임을 다하였고 다시 가산(加算)하여 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북간도사업과 함북 나남(羅南)사업과 경성가옥 유지 등에도 맨손으로 심력(心力)을 다하는 가운데 「화엄경」 불사를 하니 어느 때에 의욕과 기량이 설 곳 없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더구나 선원 수좌(首座)는 한 사람도 합당한 이가 없으니 시절 탓인가 인연 탓인가 또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불법이 스스로 폐지될까 두렵습니다. 주지의 말은 본산 분배금과 각 소용금은 날마다 독촉이 오고 객(客)의 양식은 다른 절보다 몇 배나 더 들어서 하루 속히 사면하겠다며 절대로 듣질 않습니다. 그래서 금년은 약속대로 본인은 책임을 다하였으니 선원을 계속하도록 하라 하였는데 주지는 누구를 내든지 선원은 계속하려고 합니다.
선원시절을 시작한 뒤 만여원을 소비하였습니다만 주지는 절대로 않겠다고 하니 사중에서 알아 선택하여 내도록 하십시오. 내년에는 수좌의 양식만 공급하고 재단의 인조(印條) 일체는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세상에 하나도 믿을 것이 없습니다. 생은 정성을 다하여 한 일이온데 삼년간 동구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든지 오후에 먹지 않을 것 등 온갖 규칙을 모두 스스로 파괴하고 나의 지휘는 털끝만큼도 따르지 않으니 나의 신심(信心)도 또한 게으르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늙으막에 기력이 점점 없어져서 걷기도 어려워지고 심신도 모두 피곤하기만 하니 이는 나의 죄보로 불법 멸망시대에 태어난 것이외다. 이렇게 불법에 기진맥진하여 있는 데다 서울의 모든 객승들은 이런 사정은 돌보지 않고 모여들어 먹어대니 스스로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는 중〈p.280〉에 각처에서 오는 편지는 거의가 각종 청구서들 뿐인지라 참으로 불지일자(佛之一字)가 나에게는 커다란 고처(苦處)가 되었습니다. 조주(趙州)14)
가 이르기를 ‘불지일자를 내 즐겨 듣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이야말로 진실로 참말이 아닌가 합니다.
(한 장 빠짐) 일구(一句)하야사 옳도다. 근래에 납승(衲僧)이 도를 깨달았다는 이들 거의가 깨달은 바가 저 공(空)에서 벗어나지 않나니 만약 공과 불공(不空)이 함께 공이 또한 공하고 공이 또한 공하더라도 자기의 참된 성품은 꿈에도 보지 못하나니 공이 공하고 공이 공이라 하야 이와 같이 전전하여 다함 없이 공하다 하더라도 공을 떠나기 어렵고 심지어 양구(良久) 묵언(默言)〈p.282〉으로 스스로 증득(證得)함을 표현하더라도 옳지 못하니 종사가(宗師家)에서는 이 공하여 말이 없는 것을 도(道)라고 하지 않나니 공은 도가 아니며 공은 성리(性理)도 아니니 비유하건대 허공이 자체가 군상(群相)이 아닌 것과 같아서 각(覺)의 성리 또한 그렇다. 그러나 몸을 굴릴 일구(一句)를 무어라 해야 하겠는가. 다시 일구를 기다려서 깨달은 뒤에 수련하는 방법을 간략히 적어 보내 드릴까 하나이다. 고양이를 베인 일은 불조(佛祖)와 산하(山河)가 저 남전(南泉)15)
에게 목숨을 빌 일이나 조주(趙州)가 신발을 이고 나간 구절은 이 일이 아니니 깊이 생각하시오. 이만 줄입니다. 2955년 정월 15일 용성 올림
물어 옴에 답이 없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에 이렇게 갈등을 적어 보냅니다. 하나. 칠통에서 빛이 나도다. 쯧. 둘. 친절한 말이 친절한 이의 입에서 나오도다. 또 꼭 들어 맞도다. 셋. 나는 신불(神佛)을 모르노라. 넷. 종전에 그의 힘을 얻었느니라. 다섯. 한 터럭 끝에 하늘과 땅을 정하였느니라. 여섯. 소용없는 물건이니라.〈p.285〉 일곱. 나무 방망이를 아는가 모르는가. 여덟. 야로(野老)는 황제의 은혜를 모르고 북을 두드리며 강신(江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알겠는가. 어디에서나 그 근원을 만나느니라. 아홉. 야명부(夜明符)를 손에 잡고 있으니 몇 사람이나 날이 샌줄 아는가. 열. 지팡이에 해와 달을 걸고 손으로 하늘과 땅을 잡노라. 열하나. 머리는 셋, 팔은 여섯으로 번개 같은 눈을 부릅뜨도다. 알겠는가. 방망이로 쳐도 열지 못하고 칼로도 자르지 못하도다. 열둘. 코 위에 있느니라. 열셋. 숨을 들여 마실 때는 나는 새도 꾸짖어 떨어뜨리고 내쉴 때는 해와 달을 뱉어내어 밝게 한다. 열넷. 바로 이 악마귀신이로다. 열다섯. 바로 이 안신입명처로다. 열여섯. 삼계가 온통 한 점의 마음이니 감히 만법을 유식(唯識)이라 하겠는가. 쯧. 열일곱. 처서에 버드나무는 말 매기 좋고 집집마다 대문은 장안으로 통해졌네. 열여덟. 콧구멍을 막아버려라. 열아홉. 야차가 허공으로 달리니 방촌(方寸)속을 알겠는가. 스물. 함박꽃이 피니 보살 얼굴이요. 종려나무 잎새가 흩어지니 야차의 머리로다. 스물하나. 이렇게 묻는 것이 심히 분명하다. 스물둘. 떡을 가지고 주촌(酒村)에 가더니 돌아올 땐 적삼을 입고 주인〈p.286〉이 되어라. 스물셋. 꿈속에도 또렷또렷하다. 스물넷. 물위에 뜬 거품이니 뉘라서 물이 그렇게 된줄 알리요. 쇠몽둥이를 알겠는가. 스물다섯. 도리어 포단을 아는가. 물어오신 각 조항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으나 그러나 몸은 단독으로 사무에 매여 있으니 일이 많고 복잡하여 광장설로 설하여 보내지 못하였으니 이 점을 양해하시오. 만약에 의리(意理)로 설명하면 옳지 못합니다. 이만 줄이오니 잘 알아서 하십시오. 12월 12일 생 백용성 답장 올림〈p.287〉
어느날 달밝은 밤, 사방은 적적한데 창가에 비스듬히 누워 월보(月報)16)
를 읽다가 영호생(暎湖生)의 논유심유식지설(論唯心唯識之說)에 이르러 갑자기 기절할듯이 놀랐다.(月報十二號) 그가 이르기를 ‘마음은 뜻의 마음이요 식(識)은 뜻의 식이라’ 하니 다만 선(禪)만 분명하게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교리(敎理)에도 또한 분명치 못한 것이다. 왜 그런가, 뜻은 마음의 주인이요 뜻은 식의 주인이라 일의지하(一意之下)에 심식양단(心識兩端)이라 했으니 말해 봐라. 부처님의 뜻이 과연 이러한가. 이른바 삼계(三界)17)
가 오직 마음이라 한 것은 일진심(一眞心)이요 의지심(意之心)이 아니니 삼계가 온전히 유심대광명체(唯心大光明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통현(通玄)18)
의 절정이여, 인간의 일이 아니네. 마음밖〈p.290〉에 또 다른 법이 없음이여, 푸른 산이 눈에 차누나’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달빛 어린 물가여, 이것이 진심(眞心)이며 푸른 대와 누른 꽃이여, 미묘법의 표상(表象)이어라’ 하시니 말해 봐라. 삼계가 오직 마음이라 한 것이 어찌 뜻의 마음이겠는가. 또 만법(萬法)이 유식(唯識)이라 함은 제8식(第八識)19)
이니 뜻은 8식의 변한 바요, 뜻의 식이 아니니 만법이 오직 망식(妄識)이기 때문이다. 또 단하(丹霞)20)
의 송(頌)을 그릇 알아서 빛과 소리를 따랐다고 말했는데 송의(頌意)가 과연 그러한가. 제조사(諸祖師)의 송이 여러 가지가 있으니, 혹은 유심유식(唯心唯識)을 송하였으며, 혹은 유심(唯心)만을 송하였으며, 혹은 유식만을 송하였으니 단하는 다만 유심만을 송하였다. 이른바 ‘신령하여 가고오는데 관계 없으니 삼계(三界)가 다만 한 점의 마음이더라(이것으로 단하가 유심만을 송한 줄 알겠다). 난간 밖의 복사꽃이 봄나비 춤을 추고 문앞 버들가지에 새벽 꾀꼬리 운다’ 하였으니 이것은 빛과 소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빛이 아니요 귀에 가득한 것이 소리가 아니다. 또 ‘마음 밖에 빛이 없으니 빛은 온전히 빛이라 난간 밖의 복사꽃에 봄나비 춤을 추고 마음 밖에 소리가 없으니 소리는 온전히 소리라 문앞 버들가지에 새벽 꾀꼬리가 운다’ 하였으니 이것은 천지가 혼연히 가무(歌舞)요 온 세계가 풍류어늘 영호생이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해석하니 더욱 심히 가소롭도다. 또 마조(馬祖)가 대매(大梅)21)
에게 보인 인연을 잘못 알고(월보십육호) 불(佛)은 각의(覺義)라 하니 이것은 교의(敎義)요 종사(宗師)의 법을 보이는 모습이 아니니라. 물에다 비유하여 보자. 움직이고 고요하고 맑고 탁하고〈p.291〉를 논하지 않고 다만 물이라 하나니 무슨 쓸데없는 말을 그 사이에 하리요. 대개 종사(宗師)가 법을 보임은 저 하늘에 빗긴 긴칼 같아서 돌이 부딪쳐 불이 번쩍하고 번개불이 번쩍하는 것과 같은 것이어늘 알아차리는 이도 번갯불에 바늘귀를 꿰는 것과 같아야 하나니 어느 틈에 눈을 뜨고 볼 여유가 있겠는가.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을 논하지 않으며, 진각(眞覺)과 망각(妄覺)을 논하지 않으며, 또 성상(性相)과 체용(體用)과 본말(本末)을 논하지 않고, 저 백만근이나 되는 금강철퇴를 면전에 가져다 놓으면 어깨에 매고 백천만억 항하사세계 밖으로 달아나도 조금도 피곤함이 없나니 들여우 정령(精靈)의 무리들이 어찌 능히 거북등을 뚫고 기왓장을 치리요. 근래에 간혹 소소영령하여 눈앞에 환하게 느끼는 것으로 도를 삼는 이들이 많으니 이들은 심히 가련한 자들이로다. 또 남전화상(南泉和尙)의 ‘이 한 그루 꽃을 보기를 꿈과 같다’고 한 말을 잘못 알아서 스스로 오해하기를 그때 사람이 꽃을 꽃으로 보고 대를 대로 본다 하여 저 꿈 가운데 사람이 눈을 뜨고 황홀해 함에 물건으로 인하여 견성(見性)을 능히 하지 못하고 어찌 이 묘리(妙理)를 능히 깨달으리요 하니 또한 남전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하였도다. 도리어 남전의 의지(意旨)를 알겠는가. 눈썹을 아끼지 않고 너를 위해 주석(註釋)을 달겠노라. 꿈과 같다는 것은 무심으로 도(道)를 앎과 꿈과 같을새 이 맹렬한 수단과 독한 방망이로 눈동자를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닌가. 쯧. 주각(註脚)을 달 필요가 없노라. 나의 이와 같은 주석은 부득이 해서 하는 일이니라. 예전에 법진수일선사(法眞守一禪師)22)
가 「벽암록(碧岩錄)」23)
30권을 보〈p.292〉고 난 뒤 뒷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까봐서 판본(板本)을 두드려 부쉈으나 이미 천하에 배포(配布)된 뒤이니 어쩌겠는가. 뒷날 만송(萬松),24)
각운(覺雲)25)
등 스님들이 「벽암록」을 의지하여 저술을 하였으나 글 뜻이 깊고 넓어서 해득하기가 어려울새 삿된 무리들이 각각 한 솜씨를 내서 총명의식으로 뱀을 그린 뒤 두 발을 달듯이 어느 구(句)는 삼현(三玄)이요 어느 구는 삼요(三要)라 하여 그릇된 주석과 삿된 견해가 넘실거리니 이러한 삿된 견해로 어떻게 능히 생사를 면할 수 있겠는가. 한 생각도 참구(參究)하려는 마음은 없으니 어느 때에나 조사관(祖師關)을 뚫겠는가. 스스로 선문어구(禪門語句)를 아는 듯하나 「각운설화(覺雲說話)」와 「백파사기(白坡私記)」26)
를 제거하면 막연하여 모를 것이며, 또한 체용(體用)과 기용(機用) 등의 어구(語句)를 제거하면 또한 아지 못할 것이니 스스로 긍정한다 하지 말지니라. 또한 제방의 참학도인(參學道人)을 말할 때는 반드시 무식하다 하니 위로 불조성인(佛祖聖人)도 역시 그렇단 말인가. 또한 제방의 참학도인이 정말로 다 그렇게 무식하단 말인가. 영호생이 저 월보(月報) 가운데 가장 독한 마음으로 어지럽게 편성하여 여섯 가지의 어구로 맹렬히 선종(禪宗)의 참학도인을 배척하였으니 공중에 침을 뱉음에 도리어 자기의 몸에 떨어지는 것은 반드시 면하기 어려운 일이로다. 문수(文殊)가 이르시되 ‘만약 누구 잠깐이라도 고요히 좌선(坐禪)하면 항하사만큼의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나으리라. 보탑은 필경 부숴져 티끌이 되지만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정각(正覺)을 이룬다’ 하시니 이것이 영호생의 착안(着眼)해야 할 곳이라 하노라.〈p.293〉 8월 12일 조선중앙포교당 백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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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용성스님이 경봉스님에게 (11)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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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성(京城) 백용성스님 자기 사진에 스스로 찬영(讚影)하기를
水水山山爾形 花花草草爾意 等閑來等閑去 明月照淸風拂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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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산은 너의 모습이며 꽃과 풀은 너의 뜻이로다 한가로이 오가니 밝은 달 비치고 맑은 바람 불어 오네〈p.296〉
내가 평하기를 종이와 먹으로 합하여 놓았으니 산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영정이 독로(獨露)하니 꽃도 아니고 풀도 아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며 꽃은 제 스스로 꽃이며 풀은 제 스스로 풀인데 이것이 산과 물이냐. 이것이 스님의 모습이냐. 이것이 꽃과 풀이냐. 이것이 스님의 뜻이냐. 억! 산은 높고 물은 흐르며 꽃은 붉고 풀은 푸른데 어떤 것이 모습이며 어떤 것이 뜻인가. 다시 스님의 형의(形意)를 일러 보시오. 또 일찬(一讚)하기를
우주가 한쪽 눈이니 무슨 모습과 뜻을 말할 게 있나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p.297〉
이와 같이 적어 보내니 답이 왔다(새로 짓는 포교당의 길이와 폭 그리고 내가 안거(安居)할 곳이 있는가를 함께 물었다.) 보내온 글을 책상 위에 두고 며칠을 보며 즐거워하였소. 그러나 이 늙은이는 오랫동안 번거로운 곳에 휩쓸려서 탐진번뇌 속에 지내고 있으니 어찌 불조의 도리를 알겠소. 짓고 있는 포교당은 확주사계(廓周沙界)의 성스러운 가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루살이의 눈썹만큼이나 좁은 곳도 아니라 그저 기왓장과 돌, 토목 따위로 합해서 짓고 있소. 보내온 진찬(眞讚)은 감사하고 감사하오. 교당의 너비는 반듯하게 각각 9966이니 안거하는 것은 스님이 알아서 하시오.〈p.298〉
경봉스님이 용성스님에게 (14)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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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承 尊翰하오니 感謝하오나 塵堆와 貪嗔煩惱를 善爲生解分別하시고 敎堂의 長廣을 如此히 測量하신다고 大端受苦를 하였아오니 日後에 一斝淸茶로서 慰勞가 없을 수 없나이다.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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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한(尊翰)을 절하고 받아오니 감사하오나 진퇴(塵堆)와 탐진번뇌를 잘 분별하시고 교당의 너비를 이렇게 측량하신다고 대단히 수고를 하였사오니 뒷날 한 잔의 좋은 차로서 위로가 없을 수 없나이다.〈p.299〉
경운스님이 용성스님에게 보낸 편지(3건)
첫 번째 간찰(19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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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 죽림정사(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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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서울에 계실 적에 제가 머물고 있는 사찰[禪扉]에 방문하여 잠시나마 대사의 광명당(光明幢) 모습을 뵐 수 있었으며, 또한 선사의 법미(法味)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헤어진 후 다시 만나 뵙지 못한 채 남쪽으로 돌아가 머무는 바람에 지금까지 대사를 향한 그리움 멈출 길이 없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뜻밖에 감사하게도 『금강경(金剛經)』 두 권을 보내주어 이를 받들어 읽어보았더니, 마치 기환정사(祗桓精舍)27)
에서 선사의 법의(法儀)를 직접 뵙고 친히 가르침을 받는 듯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분석하고 분류하여 설명한 것이 어찌 이리도 상세하고 분명하단 말입니까. 비록 어리석은 보통 사람이 보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숙세(宿世)를 통해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은 자가 아니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영산(靈山) 말회(末會)에서 우리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서 500년 후에 응현(應現)28)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그라진 지혜의 횃불[慧炬]29)
이 다시 밝아지고, 멈추었던 진리의 바람[眞風]이 다시금 일어난 것과 같으니, 진실로 제일의 희유(稀有)한 공덕(功德)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책상에 이들 세 가지의 경(經)을 놓고 보니, 반야(般若)의 소리가 마치 좌우에서 울리는 듯합니다. 비록 옛날에 야부(冶父)30)
와 종경(宗鏡)31)
선사의 설명이라 할지라도 이보다 더 나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때에 이 편집하고 있는 일을 다 처리하고 대사께서 계신 선방에 나아가 의문이 드는 것을 더욱 상세히 질문하고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또한 대중에게 강의를 한답시고 이리저리 허우적대며 애만 쓰고 있는 것이 오래인데, 아직까지도 이러한 경지에 깊게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보내준 책을 보고서) 비로소 옛날 방편에 빠져 정작 목표를 잃는[執筌爲魚]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을 알았으니, 오히려 모래를 끓여 밥을 짓고 창호지를 뚫으려는[蒸沙鑽紙]32)
무리보다 더 어리석을 뿐입니다.
나머지 세세한 내용은 3월에 서로 만날 때 나누기로 하고, 이만 줄입니다. 삼가 잘 살펴봐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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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在三月相照 不及縷縷 伏惟下照 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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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甲子, 1924)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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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甲子四月初七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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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납(小納) 김경운(金擎雲) 배상(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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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納金擎雲拜上
두 번째 간찰(192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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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 죽림정사(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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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찌나 뜨거운지 마치 화롯불과 같아서 돌아가거나 피할 곳이 없는 이때에 우리 대사께서는 확탕(鑊湯)지옥33)
과 노탄(鑪炭)지옥34)
속에 청량(淸凉)한 깃발을 우뚝 세워 법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몸과 마음을 의지하게 하나니, 일찍이 영산(靈山)의 법석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으신 분이 아니라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이 미혹한 곳에 빠진 중생들의 훌륭한 뗏목이 될 수 있겠습니까[迷津寶筏].35)
감사하게도 지난번에 『원각경(圓覺經)』을 보내주어, 이를 받들어 몇 행을 찬찬히 읽어보았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지혜의 눈[覺眼]이 모두 열려서 마치 광명장(光明藏)36)
에 들어간 듯하였습니다. 12보살[大士]이 서로 열띤 논쟁을 벌인 내용들을 들었는데, 그 내용이 조리 있고 분명하였으며 매우 정밀하면서도 세밀하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과목을 세우고 요점을 파악한 것은 오히려 규봉(圭峰)선사의 장구(章句)보다 나은 듯 보였습니다. 어리석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안목으로는 소성(小聖 : 小乘)의 무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알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는 영역은 감당치 못합니다.37)
대지의 함령(含靈)들로 하여금 각기 안신입명(安身立命)38)
의 방편을 얻게 하였으니, 그 불법(佛法)을 가르친 공덕은 비록 옛날 다년 간 강론을 펼친 능숙한 강백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입해산사(入海算沙)39)
하는 노고의 첫째 자리를 양보할 것입니다.
대사께서 어느 때 올라오셔서 이곳을 찾아와 다시금 광명의 깃발[光明幢]을 뵐 수 있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언제쯤 필발라굴(畢鉢羅窟)40)
에서 찾아뵙고 소리 없는 계곡[無響之谷]에서 대법라(大法螺)의 소리를 듬뿍 듣고서, 여러 겁 동안의 무명(無明)을 씻어내어 비로소 일보(一步)를 내딛어 보현(普賢) 모공찰(毛孔刹)에 바로 들어가 능히 선재(善財)동자의 일생 원광겁(圓曠劫)의 과(果)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나이 이제 73세라 죽을 때가 멀지 않았는데, 스스로 돌아보건대 생사(生死)의 굴레에 맞서 벗어날 만한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눈은 어두워져 침침하고 손은 덜덜덜 떨려서, 마치 등불에 금방 타 죽을 불나방 같습니다. 그저 포단에 오래도록 누워서, 다만 다과(茶果)만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부디 우리 대화상(大和尙)께서 오른손을 멀리 뻗으셔서 위험에 빠져 꿈틀대는 저희들을 건져내어, 함께 고해(苦海)를 건너 주길 바랍니다.
나머지 세세한 내용은 3월에 만나 뵐 때 하기로 하고 다 갖추지 못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삼가 잘 살펴봐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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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在三月相照 不備 伏惟下照 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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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陰) 갑자(甲子, 192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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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甲子六月念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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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납(小納) 김경운(金擎雲)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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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納金擎雲 拜上
세 번째 간찰(1925.9.그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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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 죽림정사(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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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소식이 오래도록 끊겨서 몹시도 그립고 우울하였던 차에, 도봉(道峰)에서 고회(高會)41)
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팔도[八表]의 승려들이 그곳에 구름과 같이 몰려 들어서, 마치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았으며[如星拱北],42)
왕후와 후비가 황제에게 조회하듯 하였다고 하니, 이른바 용이 날아오르자 구름이 따르고 호랑이가 울부짖자 바람이 인다고 할 만합니다. 이 어찌 불법(佛法)의 대운(大運)이 이르렀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과 하늘이 함께 감응하고 이승과 저승이 같이 귀의하니, 대화상(大和尙)께서 일찍이 영산(靈山)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극심한 고통의 바다에 이와 같이 청량한 깃발[淸凉幢]을 세워서 번뇌에 허덕이는 무리들로 하여금 모두 귀의할 바를 얻게 한단 말입니까.
전삼후삼(前三後三)43)
중에 반드시 한마디 말에 바로 활안(活眼)44)
을 번쩍 뜰 자가 있어서, 보리명경(菩提明鏡)을 영원토록 이을 것이니, 어찌 황매산[黃梅]의 7백 고승 가운데서 오로지 뛰어나기만을 힘쓸 뿐이겠습니까. 저 멀리 백운(白雲)에게 예를 드리고, 간절히 감축 드립니다.
저는 입으로만 중노릇 하며 갖은 실수를 범하는[杜撰]45)
무리로, 저승의 명부에 누락되어서 아직까지 총림(叢林)에 머물러 있습니다. 매일매일 아침 다과 후에 초학(初學)의 무리들과 어울려 어노(魚魯)46)
의 사이에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뒤엉켜 지내고 있습니다. 스스로 그 행태를 살펴보니, 마치 초승달을 낚아채어 움켜쥐려는 늙은 원숭이와 같이 헛된 일에 힘을 쓰는 자일 뿐입니다. 원컨대 이 몸이 죽기 전에 현풍(玄風)이 크게 일어나고 혜거(慧炬)가 다시 밝아지는 날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조물주의 시기함으로 인해 제가 죽기 전에 그렇게 되지는 못하겠지요.
여러 차례 자네의 편지를 보았으나 손수 붓을 들지 못한 지 오래된 것은 번뇌에 매달린 소치일세. 자네의 공부는 한결같이 나아지고 있는가? 근면하게 공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그칠 길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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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次汝書得見, 而自手不得執筆已久者, 罣惱所致也. 汝做工一如進就耶. 勤勉做工切望不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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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울에 함양(咸陽)의 만수원(萬樹院)에서 동안거(冬安居)를 할 예정이네. 이제 알려주는 다음 행선지를 잘 알아두어서 더 이상 이곳으로 편지를 보내지 말고, 앞으로는 함양군(咸陽郡) 백전면(栢田面) 화과원(花果園)이라는 곳으로 통지하는 것이 좋겠네. 돌아오는 길에 돈을 부치려고 하니, 그리 알게나.
근래에 자네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미 사정을 말했는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듯하다. 사실은 군의 요청에 응하여, 형편이 되면 얼마간이라도 돕고자 생각하였다. 그러나 최근 만주에 있는 교당(敎堂)을 새로 짓는 일에 지장이 생겨서 많은 돈이 허비되었고, 그러던 중에 또 화과원(華果園)52)
에도 올해는 흉년이라, 추수한 수입이 반으로 줄어 참선 모임도 운영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경제사정의 곤란함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 도움을 줄 수 없어 대단히 미안하다. 이 후에는 이러한 일로 요청할 생각은 접어두고, 힘든 공부라 하여도 정진하여 성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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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에 君傳書中에 已陳實情이러니 不得通知인듯하니 事實은 君의 所請에 應하야 形便이 小分만 有하면 多小間同情코자 有意하여듯니 近日 滿洲에 敎堂 新建事에 支障이 生하야 多數한 金錢이 虛費케되 中에 華果園에도 今年 凶年이라 秋收入이 半减이나되야 禪會도 할 수 없고 떠라서 經濟困難 이日日益甚하와 如意케 못하와 大端 未安하오 日後는 此에 要求할 生覺은 斷念하고 될 수 잇는 대로 苦學이라도 잘 工夫成就하기를 切祝切祝
삼가 엎드려 인사 올립니다. 그동안 연락을 자주 못해 어떻게 지내시는지 잘 모르고 지냈습니다. 새해에 선생님께서 대법(大法)을 맡으셨는데 몸은 편안하신지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모하는 마음 그지없고, 베풀어 주신 정성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자의 먹고 자는 생활은 예전과 다름이 없고, 무엇인가 이룬다면 다행일 뿐입니다. 엎드려 아뢰옵기는 왼편에 서적의 이름을 적어놓았으니 이 책들을 주문합니다. 대금 1원(圓)과 우표[切手]를 우편에 동봉하오니,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예를 다 갖추지 못하고 편지를 올립니다.
〈추신〉 다시 엎드려 아뢰옵니다. 불교계의 모든 일들[諸節]이 선생님을 모시는데 편안한지요. 아울러 삼가 바라는 마음이 그치지 않기를 엎드려 빕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어떤 신사[某信士]가 선생님의 가르침 받기[膝下者]를 원한 것이 여러 해였으나, 거리가 멀어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선생님의 필적(筆迹)을 보고 싶다고 여러 차례 이 책을 부탁하였으므로 이와 같이 책을 주문한 것입니다. 이 일로 선생님께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은택이 비추기를 바랍니다.
008임제臨濟(?~867) : 중국 당나라 스님. 속성 형邢.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 황벽 희운黃蘗希運의 법사法嗣.
009규산潙山(771~853) : 중국 당나라 스님. 위앙종潙仰宗 초조初祖. 속성 조趙.백장 회해百丈懷海의 법사法嗣.
010태말충太末蟲 : 파리를 말함이니 「지도론智度論」에 이르기를 ‘비유하자면 파리가 온갖 것에 붙을 수 있지만 불에는 붙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011환성喚惺(1664~1729) : 조선 스님인 지안志安의 법호法號. 월담 설제月潭雪霽의 법을 이었다. 저서로는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와 「환성시집喚惺詩集」이 있다.
012삼장역회三藏譯會 : 용성 스님이 1922년 3월에 설립한 역경기관. 이 삼장역회에서 간행된 경율론이 약 3만 4천권에 달하고 기관지 「무아無我」라는 잡지가 나왔다.
013「화엄경華嚴經」 :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준말. 크고 바르고 넓은 이치를 깨달은 부처님의 꽃같이 장엄한 경전이라는 뜻.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것은 60권,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 것은 80권, 당나라 반야가 번역한 것은 입법계품에 해당하는 40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용성 스님이 최초로 한글 번역출판을 한 바 있다.
014조주趙州(778~897) :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남전南泉 보원普願의 법사法嗣. 법명은 종심從諗. 나이 120세를 살았으며 교화가 크게 떨쳐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 일컬었다.
023「벽암록碧岩錄」 : 10권. 원오극근圜悟克勤 지음. 「벽암집」이라고도 한다. 처음 지은 이는 설두 중련雪竇重顯이니 일찍 「경덕전등록」의 천칠백고칙千七百古則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 백칙百則을 가려내고 이에 송고頌古를 붙여 「설두송고백칙雪竇頌古百則」을 만들었으나 매우 알기 어려우므로 원오 극근이 송나라 정화년간(1111~1117)에 예주 협산의 영천원靈泉院에 있으면서 이 백칙百則과 송고頌古에 각각 수시垂示·착어着語·평창評唱을 덧붙여서 깊은 뜻을 발명하여 선종禪宗 후학들의 지침을 삼았다. 뒤에 문인들이 이를 모아서 「벽암록」이라 하였는데 이는 영천원靈泉院의 방장실方丈室 현액懸額인 벽암碧巖에서 따온 것이다. 원오가 입적한 뒤에 그의 문인들이 이것을 악용하여 부질없이 궤변詭辯을 붙이므로 원오의 법제자 대혜 종고大慧宗杲가 슬피 여겨 근본종지에 위반이라 하여 불태웠다. 그뒤 200년을 지나 원나라 대덕년간(1297~1307)에 장명원張明遠 거사居士가 여러 절에 비장秘藏된 판본板本을 모아 다시 간행하다. 가위可謂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불리울 만한 중요한 책이다.
026백파白坡(1767~1852) : 조선 스님. 법명 긍선亘璇. 속성 이李. 무장 사람. 12세에 선운사禪雲寺 시헌詩憲에게 득도得度하다. 초산 용문암에서 안거하다가 심지心地가 열리다. 지리산 영원암의 설파雪坡에게 서래종지西來宗旨를 전해 받고 구암사 설봉雪峰의 법통을 잇다. 백양산 운문암에서 개당開堂, 학인이 백여 명. 구암사에서 선강법회禪講法會를 개최 8도의 납자가 모여 와서 선문중흥禪門中興의 종주宗主가 되다. 조선 철종 3년 입적. 나이 86세, 법랍 75. 저서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선문수경禪門手鏡」, 「법보단경요해法寶壇經要解」, 「오종강요기五宗綱要記」, 「선문염송기禪門拈頌記」, 「금강팔해경金剛八解鏡」, 「선요기禪要記」 등이 있다.
027기환정사祗桓精舍 : 기원정사祇園精舍, 기원정사祇洹精舍라고도 한다. 중인도 사위성舍衛城에서 남쪽에 있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지은 절이다. 이 절은 석존과 같은 때 사위성에 살던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지어 부처님께 드린 절이다. 기환祇桓의 기祇는 기타祇陁이고, 환桓은 숲이니, 기타림祇陁林과 같은 뜻이다.
028응현應現 :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중생의 근기根器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029혜거慧炬 : 지혜의 횃불이라는 뜻으로, 무지의 어둠을 버리고 열반으로 가는 길을 환히 비추어 주는 부처의 지혜를 비유한 말이다.
030야부冶父 : 송나라 때 임제종臨濟宗 승려이다. 강소성江蘇省 옥봉玉峰 사람으로, 속성俗姓은 적狄씨다. 처음에 동재겸東齋謙을 찾아 활연대오豁然大悟했다. 건염建炎 초에 천봉天峰에 이르러 정인사淨因寺 만암 계성蹣庵繼成의 문하에 들어가 인가認可를 받고 그 법을 이었다. 나중에 동재좌하東齋座下로 돌아와 도속道俗의 숭앙을 받았다. 『금강경金剛經』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송頌으로 대답을 하니, 이것이 그 유명한 『천로금강경주川老金剛經註』다. 회서淮西에서 전찬殿撰 정교년鄭喬年을 만나 그의 요청으로 무위군無爲軍 야부산冶父山 실제선원實際禪院 주지를 맡았다.
031종경宗鏡 : 오대五代·송宋의 승려(904~975). 절강성浙江省 여항餘杭 출신. 30세에 출가하고, 천태 덕소天台德韶(891~972)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절강성 항주杭州 남병산南屛山 영명사永明寺에 주석하였다. 그는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체계를 세웠고, 선禪과 염불을 함께 닦을 것을 권장하여 염불선念佛禪의 터전을 확립하였다. 시호諡號는 지각선사智覺禪師이다. 저서로는 『종경록宗鏡錄』,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영명지각선사유심결永明智覺禪師唯心訣』 등이 있다.
032찬지鑽紙 : 『전등록傳燈錄』에 “신찬선사神瓚禪師가 하루는 벌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말하기를 ‘세상이 저렇게 광활한데 선뜻 나가지 못하고 종이장만 뚫는구나’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근시안적이고 말단적인 것에 천착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035미진보벌迷津寶筏 : ‘미혹한 나루의 보배로운 배’라는 뜻으로, 삼계三界와 육도六道라는 허무한 경계에 빠져 허덕이는 중생들을 위한 부처의 훌륭한 가르침을 비유한 말이다.
036광명장光明藏 : 광명의 보고寶庫라는 뜻으로, 무지無智를 타파하고 진여眞如의 빛을 밝히는 광명으로 가득한 본심本心을 비유한 말이다.
037용성 스님의 원각경 해석이 뛰어나서 범인의 그것과는 달리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밝히는 영역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038안신입명安身立命 : 생사의 근본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천명天命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을 말한다.
039입해산사入海算沙 : ‘바다에 들어가 모래알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헛된 일에 힘을 허비한다는 뜻과 한 가지 일을 끊임없이 정진한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쓰였다.
040필발라굴畢鉢羅窟 : 또는 비발라굴卑鉢羅窟, 빈파라굴賓波羅窟, 빈발라굴賓鉢羅窟이라고도 한다. 중인도 마갈타국 왕사성 가까운 곳에 있는 굴로, 부처님이 입멸하신 그 해에 대가섭大迦葉을 상좌上座로 하여, 부처님의 유법遺法을 결집한 곳. 굴 위에 필발라나무가 무성하였으므로 필발라굴이라고도 하며, 또는 대가섭의 본래 이름을 따라서 이름한 것이라고도 한다.
045두찬杜撰 : 저술에 전거典據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음을 뜻한다. 중국 송나라 때 두묵杜默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좋은 시상이 떠오르기에 시를 한 수 지었는데, 운율이 맞지 않는 데가 여러 군데 있었다. 이 일로 인하여 일을 함에 있어 격格에 잘 맞지 않는 것을 杜撰(두찬)이라 일컫게 되었다.
046어노魚魯 : 자획이 잘못 옮겨져 ‘어(魚)’ 자와 ‘노魯’ 자를 잘못 혼동한 것을 말한다. 어魚를 성부聲符로 잘못 알고 노魯 자도 어魚와 같은 음인 줄 알 정도로 어리석다는 뜻이다.
047삼일암三日菴 :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에 위치한 송광사의 삼일암이다. 효봉 스님은 1937년부터 10년 동안 삼일암에서 조실로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048효봉曉峰 : 근대 한국불교 고승 효봉(1888~1966)이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과 가야총림 초대 방장을 지냈다.
052화과원華果園 : 용성 스님이 경남 함양에 수만 평의 과수원을 만들어 운영한 농장이다. 선농일체禪農一體를 실행했던 용성 스님은 ‘일을 아니하면 밥을 먹지 않는다’는 지침을 실천하면서 선농 불교를 일으켜 자력생활을 하게 하였다. 이곳에서 생산된 잉여 재원의 일부는 독립자금으로 보내졌다는 구전이 있다.
053친전親展 : 편지에서 받는 사람이 직접 펴 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겉봉의 받는 사람의 이름 옆이나 아래에 쓰는 말이다.
054각해일륜覺海日輪 : 근대의 승려 백용성白龍城이 1930년에 대각교大覺敎를 창립하고 교전敎典으로 지은 책이다. 3권 1책으로 돼 있다.
055피봉의 우편 직인에 “13.4.4”라고 있는 것은 소화昭和 13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보아 이 편지는 1938년 3월 31일 쓰여서, 4월 4일에 붙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