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한량없는 세계 바다와 육도六途, 사생四生, 삼세三世 일체一切가 곧 부처이다. 항상 머물러 있어 생겨나지도 않고 항상 머물러 있어 소멸하지 않으니, 바람 부는 나뭇가지와 달 비치는 물가에 참되고 한결같은 실상實相이 드러나고, 푸른 대나무와 누른 국화꽃이 미묘한 법을 설해 주고 있다.1)
이러한 것을 관해 보니 ‘일체 모든 법이 항상 두루하게 설법하고 있거늘 어찌 굳이 번역하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옳기는 하지만 말법시대末法時代에 해당하는 중생들의 업식業識은 아득하여(茫茫) 근본에 의지할 바가 없고, 또한 태산과 같은 서양의 지식과 문명이 동쪽으로 범람해 와서 사조思潮가 크게 변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한문이 타격을 받게 되니 한자 대장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더라도 오래되고 낡아서 쓸모없는 한낱 유물이 되어버렸다. 기왕에 조선 사람이라면 조선의 문자와 조선의 언어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내가 늙고 쓸모없는 육순六旬이 되어 재주 없음을 헤아리지 않고 굳이 번역하고 해석하여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귀감龜鑑이 되고자 한다. 바라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 광명과 선禪의 가풍이 허공과 같이 오래도록 보존되는 것뿐이다.
Ⅰ. 서분序分
1) 믿고 듣고 설한 때와 설주를 밝힘(信聞時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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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我聞하사오니 一時에 婆伽婆ㅣ
이 같은 법을 내가 들었으니 한때에 바가바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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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 (1) ‘이 같은 법’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을 가리키는 것이다. (2) ‘크다(大)’는 말씀은 우리의 자성自性 원각체성圓覺體性이 구경究竟에 원만하여 허공과 세계와 만물이 하나조차도 없으나2)
오직 가득히 차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다른 물건을 용납할 수 없으니, 이 자성 원각체를 이름하여 ‘크다’고 하신 것으로 이는 자성 대원각체성을 가리킨 것이다. (3) ‘모나다(方)’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대원각체성이 텅 비고 신령하여, 세계의 티끌 수효와 같아서 헤아릴 수 없는 청정 공덕상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그 모양이 ‘크다’고 가리킨 것이다. (4) ‘넓다(廣)’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자성 대원각체성의 큰 용(大用)을 나타낸다. 하늘도 되고, 땅도 되며, 사람과 일체유정, 동물도 되고, 범부도 되며, 성현도 되고, 깨끗하기도 하며, 더럽기도 하다. 그러므로 옛 조사祖師가 말하기를, “참된 성품이 심히 깊고 미묘하여 저의 체성을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라고 하시니 그 용用이 ‘크다’고 가리킨 것이다. (5) 원각의 체성體性이나 원각의 체상體相이나 원각의 체용體用이 허공계와 법계에 다 두루 원만하여서 한 작은 티끌 속에 시방세계를 머금고 있으며 낱낱의 티끌도 다 그러하므로 이 세상을 ‘크다’고 한다. (6) 또 ‘방方’이라 하는 말은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마음을 제어하여 그치는 것(制止)이요, 또 하나는 마음을 편안히 하여 그치는 것(安止)이요, 다른 하나는 두 가지를 모두 그치는 것(雙止)이다.3)
‘제어하여 그치는 것(制止)’은 모든 허물을 여의며 사구四句, 백비百非가 다 끊어져 격格 밖에 뛰어나 일체 허망 경계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편안히 그치는 것(安止)’은 관법觀法을 수습하되, 흩어진 마음을 거두어 정正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 가지를 그친다(雙止)’는 말은 시비가 다하고 능能·소所의 두 가지를 잊어버려 모두 공적하여서, 필경에는 능히 증득證得한 자도 없으며, 또한 증득할 것도 없는 것이니 나의 자성 원각체성을 수순하여 치우친 소견에 떨어지지 아니하므로 모양이 ‘크다’고 한다. (7) ‘넓다(廣)’는 말에 또한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두루 갖춘 만행을 닦아 모든 업장을 다 끊고 육근六根, 육진六塵이 다 청정하여 무상각도無上覺道를 성취한 자는 자리행自利行이 광대한 것이다. 또 하나는 나의 얻은 바를 미루어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도解脫道를 얻게 하는 것은 이타행利他行이 광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저 악惡을 끊고 끊어도 끊는 것이 없으며, 저 선善을 닦고 닦아도 닦는 것이 없으며, 저 중생을 교화하고 교화하여도 교화하는 것이 없어서, 나다 남이다 하는 것이 평등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원융무제圓融無際하여 ‘광대廣大’한 것이다. (8) ‘원각圓覺’이라 하는 말의 ‘원圓’은 ‘모나지 아니하다’라는 말인데, 이 ‘원圓’의 곧 ‘둥글다’는 말에도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내가 깨친 것이 둥근 것이요, 또 하나는 다른 이를 깨치게 하는 것이 둥근 것이요, 다른 하나는 구경각究竟覺이 둥근 것이다. (9) 무명혹업無明惑業을 끊고 덕을 성취하며 이치에 장애되는 것과 일에 장애되는 것과 모든 미세한 업장業障에 장애됨을 다 끊고 각성覺性이 원만하면 이는 내가 깨친 것이 뚜렷한 것이다. 상·중·하 세 근기를 섭수攝受하여 한가지 자성원각自性圓覺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다른 이를 깨치게 하는 것이 뚜렷한 것이다. (10) 원각자성은 증득하여도 증득한 바가 없고, 미진수微塵數의 중생을 교화하여도 교화한 바가 없다. 원각자성을 증득한 체성을 비유하면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려 만물을 윤택하게 한다는 상이 없는 것과 같다. 봄이 꽃과 나무에 와도 내가 꽃과 잎을 피우게 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과 같다. 이는 크게 중생을 교화하되 그 증득한 것과 그 중생을 교화하는 용(大化之用)이 원극圓極하여 끝까지 다하지 아니한 바가 없으니 이것이 구경究竟에 뚜렷한 것이다. (11) ‘깨친 것(覺)’에도 또한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본각本覺이고, 또 하나는 시각始覺이며, 다른 하나는 본각과 시각이 둘이 없는 구경각究竟覺이다. (12) ‘본각을 크다’고 하는 것은 나의 자성 각체覺體를 말하자면, 일체를 포함하여 용납함이 끝(邊際)이 없다. 그 형상(相)을 말하자면, 일체를 출생出生하는 것이 무궁무진하다. 뻗쳐 가득하고 청정하게 비고 사무쳐서 신령스럽게 통한다. 성현이라고 하여도 더하지 아니하고, 범부라고 하여도 덜하지 않는다. 하늘의 달은 염染·정淨·미美·오惡를 나누지 아니하고, 부귀빈천을 묻지 아니하며, 일체를 다 비추는 것과 같다. 우리의 자성도 그러하여 우주를 다하여도 너그러운 것이 아니며, 작은 털끝 속에 있어도 작은 것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를 관찰하여도 처음과 끝이 없으며,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다하는 까닭에 남고 모자람이 없다.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도 아니니 때로 그렇지 아니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깨친 본성이 그러하므로 ‘본각이 크다’고 하는 것이다. (13) 또 하나는 ‘내가 깨친 것을 방方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 가운데에 싸여 있는 중생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든지, 혹은 홀연히 내가 자성自性을 반조返照하여 믿음을 내어 사견邪見을 버리고 정견正見으로 돌아간다. 악을 배반하고 선을 쫓으며 번뇌를 돌이켜 보리로 삼고, 무명을 돌이켜 지혜로 삼으며 생사를 굴려 열반으로 삼는다. 이것이 내가 깨친 모양이므로 그것을 ‘방方’이라고 한다. (14) 다른 하나는 ‘광廣이라 하는 것’은 널리 모든 중생이 신령스럽고 밝은 성품을 본받은 것이 누구나 없이 다 같다. 그러나 미迷함을 보고 대자비의 구름을 펼치며 만행의 파도를 드날려 갖가지 몸도 나타내고, 갖가지 법도 설하여 일체유정을 유익하게 하니 이것을 ‘광廣’이라고 한다. (15) 그러나 자리自利 중에 이타利他가 있으며 이타利他 중에 자리自利가 있다. 스스로 악을 그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끊게 하며, 스스로 선을 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며, 스스로 일체 혹업장惑業障을 여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여의게 하니 이것이 자리自利 중에 이타利他를 행하는 것이다. (16) 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내가 그치는 것과 같이 하며, 내가 짓는 것과 같이 하나니 이것이 광중廣中에 방方을 행하는 것이다. (17) 또 나(我)나 다른 이(他)나 깨침이 원만하여 도리어 본연각성本然覺性과 같다. (18) 어찌하여 원각圓覺이라 하는가? 내가 능히 증득한 마음과 증득할 마음이 있으면 능소의 마음(能所心)이 있는 것이니 어찌 참으로 증득함이 되겠는가? 비록 중생을 교화한다 하여도 교화하려는 마음(能化心)을 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교화의 대상(所化境)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크게 교화(大化)하는 것이 되겠는가? 능소심能所心을 잊은 후에 바야흐로 원만하여 지극하게(圓極) 되는 것이다. 중생衆生이다, 불佛이다, 법法이다 하는 소견이 다한 후에 바야흐로 크게 교화하는 것(大化)이 된다. (19) 대체대용大體大用이 원만하여 지극(圓極)해지면 본각本覺에 계합(冥合)하여 연기緣起에 걸림 없다. (20) 사邪·정正·선善·악惡과 시是·비非·염染·정淨과 성聖·범凡·미迷·오悟가 혼연히 하나가 된다.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 번뇌煩惱와 보리菩提가 서로 걸림 없고, 또한 생사와 열반이 어기지 않는다. 지혜와 우치가 모두 반야이며, 지옥과 천당이 다 정토淨土이다. 죽이고 살리는 것과 사로잡고 놓아주는 것이 나의 손바닥 안에 있고, 거슬리고 수순하는 것이 때에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자각自覺과 타각他覺이 원만하여 도리어 본각本覺과 같으므로 ‘원각圓覺’이라고 이름한다. (21) 범어(梵天)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한자로는 ‘무상정변정각無上正徧正覺’이라는 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아뇩다라’는 ‘위없다’는 말이고, ‘삼먁’이라는 ‘삼’ 자는 ‘바른 지혜’를 말한 것이며, ‘먁’ 자는 ‘두루한 지혜’를 말한 것이며, ‘삼보리’는 바로 깨친 것이다. ‘위없다’는 것은 본연성本然性을 가리킨 말이다. 명상名相이 없는 것을 부질없이 이름하여 ‘법신法身’이라 하며, 혹 법성신法性身이라 하며, 혹 본각성本覺性이라 하며, 혹 대각大覺이라 하니, 모두 ‘위없는’ 법신法身을 가리킨 것이다. ‘정변正徧’이라 하는 것은 ‘정正’은 세로로 삼제(過去·現在·未來)를 다한 것이며, 근본지根本智라 이름한다. ‘변徧’은 가로로 시방十方을 두루한 것이며, 후득지後得智를 가리킨다. 근본지는 지극히 비어 다함이 없는데, 신령하게 밝은 지혜로 위없는 나의 본법신本法身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후득지라 하는 것은 대지혜 광명으로 일체 세간, 출세간 차별 만법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안으로 본법신을 깨달아 아는 근본지와 밖으로 차별 만법을 깨달아 아는 후득지를 뚜렷이 성취하면 정각正覺을 이룬다. (22) 그러면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곧 ‘대방광원각大方廣圓覺’을 말한다. ‘위없는 것(無上)’은 ‘크다(大)’는 말과 같고, ‘정변正徧’은 ‘방광方廣’이라는 말과 같으며, ‘정각正覺’은 ‘원각圓覺’이라는 말과 같다. ‘무상無上’은 ‘대大’를 말한 것이고, ‘정변正徧’은 ‘방광方廣’을 말한 것이며, ‘정각正覺’은 ‘원각圓覺’을 말한다. ‘정지正智’는 ‘자각自覺’을 말한 것이고, ‘변지徧智’는 ‘각타覺他’를 말하는 것이며, ‘자각각타自覺覺他’에 두루 삿된 것이 없으면 ‘정변정각正徧正覺’이라 한다. (23) ‘방方’은 자타自他를 다 잊고, ‘광廣’은 자타自他가 평등하며, ‘원圓’은 구경에 원만하여 지극한 것이고, ‘각覺’은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 둘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다 정각正覺을 말한 것이니 정각이 곧 ‘원각圓覺’이다. 이것을 분명히 말하자면 무궁무진한 뜻이 있으나 간략히 말한다. (24) ‘수다라요의修多羅了義’라는 말은 일체 경經 가운데에 이 경經은 대승요의경이고 소승불요의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25) ‘경經’이라 함은 무궁무진한 뜻이 이 경문에 담겨 있다는 말이니, 경經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경經이다. 이 경문의 십이十二 보살장 전편에는 부사의不思議 무궁무진한 뜻을 감추고 있다. 이와 같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내아난존자가 바가바께 들었다고 하니, 이것은 부처님께서 친히 설하셨고 아난존자가 자의自意로 설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26) 그러나 아난이 “내가 들었다.”라고 함은 나와 내가 없는 것과 또한 둘이 아닌 참 나가 들은 것이다. 근경根境이 하나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닌 묘한 귀로 진속眞俗에 걸림 없는 법문을 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27) ‘일시一時’라 하는 것에는 뜻이 많지만, 이 경經의 종지宗旨로 말하자면 곧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때에 마음과 경계가 없으며 이치와 지혜가 융통하고 범부와 성현이 여여如如하며 본각과 시각이 원만하여 둘이 아닌 때라고 하는 것이다. (28) ‘바가바’는 ‘바가범薄伽梵’이라고도 한다. 곧 불타佛陀의 별호이며, 여섯 가지 뜻이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바가바’는 ‘최청정각最淸淨覺’이라는 말이다. 법계를 다하고 허공을 다하며 미래제를 다한 것이다. 또 ‘바가바’는 곧 ‘각覺’을 말한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자각自覺’과 ‘각타覺他’와 ‘각만覺滿’이다.
2) 지혜 작용의 근원으로 들어감을 나타냄(標入智用之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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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於神通大光明藏하사 三昧正受하시니,
신통대광명장에 들어가서 삼매를 받으시니
3) 성인과 같음을 밝힘(明聖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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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如來와 光嚴住持시며,
일체 여래와 광명으로 장엄하여 머물러 가지신 것이며
4) 범부와 같음을 밝힘(明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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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諸衆生의 淸淨覺地라.
이 모든 중생의 청정한 깨달음의 지위이다.
5) 법체와 칭합하여 원만하고 두루함을 모두 드러냄(彰稱體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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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心이 寂滅하사 平等本際시며 圓滿十方하사 不二隨順하시며,
몸과 마음이 적멸하여 평등한 본제이며, 시방에 원만하여 둘이 아닌 것을 따라
6) 진리의 정토에 칭합함(稱眞理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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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不二境에 現諸淨土하사,
저 둘이 아닌 경계에 모든 정토를 나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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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 ‘신통대광명장神通大光明藏’이라 하심은 비유로 말하자면 ‘장藏’은 ‘곳집 장藏’ 자이다. 곳집은 요동하지 아니하여 가고 오는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 본연각성本然覺性의 당체를 가리키신 것이다. 그러면 곳집은 무슨 뜻이 있는가? 모든 물건을 쌓아 두는 뜻도 있고 풀어 내는 뜻도 있다. 우리 본연성도 그러하여 모래 수와 같은 덕용德用이 나의 자성 가운데 쌓여 있으며, 백천 가지 신통광명이 나의 자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까닭에 ‘고장庫藏’이라고 한다. ‘고장’은 우리 자성의 당체를 가리킨 것이다. 한량없는 덕용과 한량없는 신통광명은 우리의 본각성에 갖추어 있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생과 제불의 본원체를 ‘장藏’이라 한다. 그러나 제불이 항상 요연한 광명이 있으니 이것은 우리 본각성의 광명이다. 이름을 법성토法性土라고 하며, 이름을 상적광토常寂光土라 한다. 그러면 광명이 곧 장藏이고, 장藏이 곧 광명이라서 둘이 없는 것이다.심성이 본래 밝은 것을 말한 것이다. 만일 신통광명을 어느 때나 놓는 것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본연한 청정각성은 신통광명을 산출하는 도량이라 할 것이다. 이 본연 청정한 대지혜 광명장에 명합冥合한 까닭에 ‘들어갔다’고 하신 것이다. ‘삼매정수’라 하신 말씀은 범어梵語와 한자를 아울러 나타낸 것이다. 본각체성장本覺體性藏 가운데에 편안히 머물러서 육근문六根門으로 모든 것을 받지 아니하시고, 텅 비고 밝아서 스스로 비치는 체體에 부합하여 편안히 머물러 정정正定한 것이다. 혹자가 묻기를, “그러면 신통광명장과 이 삼매가 같은 말이 아닌가?” 하니,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라고 한다. 신통광명장은 당체當體를 말한 것이고, 삼매정수는 공용功用을 말한 것이다. 비유하면, 빈방에 들어가 단정히 앉은 것과 같이 체성體性에 들어가 육근문과 내외 제법이 하나가 되어 반연이 없고 허명자조虛明自照할 뿐이다. 여래는 입정, 출정이 없지만 이제 그 각체各體에 들어가 정정正定을 보이시니, 그 체는 중생과 제불이 같다. 일체의 갖가지 법이 다 진여眞如이다. 3) ‘일체 여래와 광명으로 장엄하여 머물러 가진다’는 말의 ‘일체’라고 하는 것은 한 물건도 내놓지 아니한 것이다. ‘여래’라고 하는 것은 본각本覺이 ‘여如’가 되는 것이다. 시각始覺이 ‘래來’가 되는 것이니 모두 둘이 아님을 ‘여래如來’라고 한다. ‘광명으로 장엄한다’는 말은 ‘일체 여래께서 광명을 서로 주고받아서 장엄하심이 찬란한’ 것이다. ‘머물러 가진다(住持)’라는 말은 ‘본각체성에 안주하여 영원히 모든 반연을 끊는 것’이고, ‘가진다’는 말은 ‘잘 보관하여 잃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4) ‘이 모든 중생의 청정한 깨달음의 지위’라는 말은 중생의 분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망체妄體는 본래 공空하므로 그대로 본각심지本覺心地이다. 망妄이 더럽힐 수 없으므로 ‘청정淸淨’이라고 한다. 5) ‘몸과 마음이 적멸하여 평등한 본제(平等本際)’라고 하신 말은 있는 바 몸과 마음이 본래 적멸한 것이니, 이 적멸체로 본다면 중생과 제불이 평등하다. 이 대원각 본제本際는 주변함용하며 원융하여 둘이 아니다.周徧含容圓融不二也 ‘시방에 원만하다’는 말은 각성체를 따라서 원만하게 법계에 두루한 것이다. ‘둘이 아닌 것을 따라’라는 말은 생사 열반이 둘이 아닌 성품을 따른다는 것이다. 6) ‘둘이 아닌 경계에 모든 정토를 나투신다’는 것은 거울은 무심하나 인연을 따라서 나타내는 것과 같이 적연히 움직이지 않고 인연을 따라 나타내는 것이다.
용성해 7) ‘대보살’은 ‘십지十地보살’을 말한 것이며, ‘마하살’은 ‘큰 보살’이라는 말이다. 8) ‘문수’라는 뜻은 ‘묘한 머리’라는 것이다. 모든 덕을 쌓되 드러나지 아니하여 신령스러우며 가히 측량할 수 없고, 만 가지 경계에 처하여도 굴하지 아니한다. 높아서 가히 우러러보지 못하는 것을 ‘문수’라 한다. 문수는 큰 지혜이므로 제일 앞자리에 둔다. 9) 불타께서는 주主가 되시고, 보살은 반伴이 되시니 함께 대광명장 체성삼매에 드셨다.
이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대중 가운데에서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시고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도시고 무릎을 꿇어 차수하여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2) 본래 일으킨 청정심을 물음(問本起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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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悲世尊이시여 願爲此會에 諸來法衆하사 說於如來의 本起淸淨한 因地法行하시며
“대비하신 세존이시여!원컨대 이 모임에 오신 모든 법회 대중(法衆)을 위하여 저 여래께서 본래 일으키신 청정한 인지因地5)
에서 행하시던 법을 설하시며
3) 청정심을 발하여 병을 여읨(發心離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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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說菩薩이 於大乘中에 發淸淨心하야 遠離諸病하사
보살이 저 대승 가운데에서 청정심을 발하여 멀리 모든 병을 여의도록 설하시어
4) 먼 미래의 가피를 밝힘(明遠被當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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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使未來 末世衆生의 求大乘者로 不墮邪見케 하소서.
능히 미래 말세 중생으로써 대승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사견에 떨어지지 아니하게 하옵소서.”
5) 경건하게 정성을 보임(虔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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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是語已하시고 五體投地하사 如是三請하사 終而復始어시늘
이 말씀을 마치고 오체를 땅에 던지어 이같이 세 번 청하여 마치고 다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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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 문수께서 대광명장 체성삼매로부터 일어나시어 예배를 마친 후에 말로써 성의誠意를 다하신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도는 것은 도道를 통달한 자에게 위없는 예의를 다 한 것이다. 이는 정正을 따라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대자대비로 말미암아 되는 까닭에 ‘대비하신 세존이시여’6)
라고 하였다. 필경에 본래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시고, 더러운 습기習氣에 대하여 청정한 것을 말씀하시고, 과위果位에 대하여 인지因地를 말씀하시고, 진로업용塵勞業用에 대하여 법을 행하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업業을 뒤집는 것은 청정한 법을 행하는 까닭이다. 3) 대승은 소승을 가린 말이고, 청정심을 발하는 것은 본래 구족한 본연각성을 깨쳐서 불佛과 다름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멀리 모든 병을 여의는 것은 법성신法性身을 해롭게 하는 병이 한 가지가 아니니 그러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다스릴 것을 말한 것이다. 4) 남을 제도하고자 하면 내가 먼저 바른 지견知見을 얻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5) 오체를 땅에 던지고 세 번 청하시는 것은 법을 위함이 간절하고 지극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때에 세존이 문수사리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능히 모든 보살을 위하여 여래께 인지因地에서 행하던 법을 물었으니 (모든 보살로 하여금 저 대승 가운데에 청정심을 발하게 하리라.) 또 말세에 일체중생이 대승 구하는 자를 위하여 바른 법에 머물러서 사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설하리라.”
일체 청정한 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바라밀을 유출하여 보살을 가르치니, 일체 여래께서 본래 일어난 인지에서 다 뚜렷이 비추는 청정각상淸淨覺相을 의지하여 길이 무명을 끊고 바야흐로 불도를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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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8) ‘선남자’는 도리를 따르고 능히 결단력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무상법왕’은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간략히 말하면, 하나는 석가세존을 가리킨 말이고, 하나는 제불 중생의 본연 청정한 대원각성을 가리킨 것이다. ‘크다’는 말은 우리의 본연각성이 모든 상대가 끊어져 대소명상大小名相이 없는 것을 표시한 절대의 대大를 말한 것이다. ‘다라니’는 ‘만법을 다 가진다’는 뜻이니, 우리 자성 가운데 미진수와 같은 청정 공덕이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 ‘문門’을 말한 것은 ‘문은 겉에 있고, 집은 속에 있는 것’을 말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문을 말한 것은 다만 출입하는 뜻만을 가지고 쓴 것이다. 팔만사천 무진법문이 이 문 안에 들어 있고, 백 천 신통광명이 이 문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문을 말하여 출입하는 뜻만 나타낸 것이다. 또 우리 자성원각 체용을 깨치면 백천만 법을 다 깨쳐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래 경문에 말씀하시기를, “각성이 뚜렷이 밝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대개 근본을 따라 지말枝末을 일으키는 것을 ‘나온다出’고 하고, 지말을 가지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들어간다’고 한다. 각성覺性 가운데 항하사 공덕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그 상相이 크다는 말이고, 갖가지 법을 출생하는 것은 용用이 크다는 말이다. 이름이 원각圓覺이라 하는 말은 바로 ‘원각체성’을 가리킨 말이니, 위의 체상용體相用 세 가지를 원만히 갖춘 것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9) ‘일체 청정 등을 나툰다’고 하는 말은 청정한 연기를 말하는 것이다. 거짓에 대하여 참(眞)을 말하며, 변하는 것에 대하여 변함이 없는 여如를 말하는 것이다. 진여는 거짓을 버리고 차별을 융통하는 지침이 된다. 번뇌에 대하여 보리라 하고, 생사에 대하여 열반이라 한다. 중생의 마음 가운데에 팔만사천 번뇌가 있는데 이것을 굴려서 깨달음의 언덕에 올라가게 한다. 이 법이 모두 여래의 대원각성으로부터 나와서 보살을 가르친다. 일체 여래께서 인지因地에서 닦을 때에 모두 뚜렷이 밝고 고요히 비치는 청정각상淸淨覺相을 의지하여각상覺相은 각체覺體의 본형이라. 길이 무명을 끊는 것은, 얼음이 다 녹아 물이 되는 것같이 중생의 마음 가운데에 무명번뇌 습기가 다하면 곧 성불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10) 물음(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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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何無明고 善男子야 一切衆生이
“어째서 무명인가? 선남자야, 일체중생이
11) 바로 해석함(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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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無始來로 種種顚倒홈이 猶如迷人이 四方을 易處인달하야
비롯함이 없이 가지가지 전도된 것이 마치 저 미혹한 사람이 사방을 바꿔 두는 것과 같아서
12)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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妄認四大하야 爲自身相하며 六塵緣影으로 爲自心相하나니
망령되이 사대를 그릇 알아 나의 몸 모양을 삼으며, 여섯 가지 티끌에 반연한 그림자로 나의 마음 모양을 삼느니라.
비유컨대, 저 병든 눈으로 허공중에 꽃과 그림자 달(第二月)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허공에는 실로 꽃이 없지만 병든 자가 망령되이 집착하여 망집으로 말미암아 오직 허공 자성만 미혹할 뿐이니라. 또다시 저 실다운 꽃이 나는 곳을 미혹함이니
14) 허물을 벗어남(出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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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此하야 妄有輪轉生死할새 故名無明이니라
이를 말미암아 망령되이 생사에 윤전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무명이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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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0) ‘무명無明’이라 하는 것의 ‘명明’은 우리의 묘명진성妙明眞性을 가리킨 것이고, ‘무명’이라 함은 밝은 성품을 등지고 어두운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11) 비롯함이 없이 깨치지 못하고 묘명진성을 등지고 어두운 데로 나아가는 까닭에 식심識心이 광란하여 전도하는 것이니, 사견邪見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가지가지 전도라 한다. 우리 자성은 본래 청정하여 묘하게 밝은 성품인데 어찌하여 무명이 되는가? 무릇 텅 비고 밝은 성품에서 홀연히 한 생각이 번쩍 일어나므로, 드디어 참다운 밝은 성품을 잃고 어두운 것을 좇아 사견을 내어 무명이 된다는 것이다. 물이 점점 차게 되어 점점 굳어서 어는 것과 같이 우리 자성이 미혹함에 습기가 점점 두터워져서 무명이 농후하게 된다. 12) 우리 묘명진성은 뚜렷이 밝고 고요히 비추어 일체 시분이 끊어지므로 이름을 법신法身이라 하고, 고요한 데서 항상 밝아 비추기 때문에 참 지혜라 한다. 이것이 참다운 나의 몸이며 참마음이거늘 이 법신을 미혹하고 13) 지地·수水·화火·풍風 사대로 몸을 삼으며, 참마음을 미혹하고 여섯 가지 티끌에 반연한 그림자(六塵緣影)에 분별망심으로 마음을 삼는 것이다. 비유하면, 미혹한 사람이 동쪽을 미혹하여 서쪽으로 삼으며, 남쪽을 미혹하여 북쪽으로 삼는 것과 같다. 14) 이와 같이 우리가 법신을 미혹하고 참 지혜를 미혹한 까닭에 보고 아는 바가 다 망령되니 눈병 난 자가 허공 가운데 꽃을 보고, 달의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다.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고, 달은 둘이 아닌데 눈병 있는 자가 망령되이 집착한 것이다. 이 사람은 허공만 미혹하여 모를 뿐 아니라, 또한 꽃이 자기의 눈병으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자성을 미혹함에 따라 생사에 윤전함으로 이것을 무명이라 한다. 모두 말하면 법신 자성은 허공에 비유하고, 색신은 허공 꽃에 비유하고, 지혜는 원래의 달에 비유하고, 분별심은 그림자 달에 비유한 것이다.
꿈에 사람이 꿈을 꿀 때에는 있다가 깨어나서는 마침내 얻을 바 없는 것과 같으니라. 여러 허공 꽃이 허공에서 멸하여도 가히 일정하게 멸한 곳을 말할 수 없는 것 같으니 무슨 까닭인가? 생겨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니라. 일체중생이 저 생겨남이 없는 가운데 망령되이 생겨남을 보니 이러한 까닭에 ‘생사에 윤전한다’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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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5) 내가 미혹되어 보면 무명無明이 체體가 있는 듯하나, 나의 자성을 깨치고 보면 무명이 본래 체성體性이 없다. 16) 비유하면, 꿈꾸는 사람이 가지가지 물건을 보다가, 꿈을 깨면 물건도 없으며 꿈 자체도 없으니 꿈과 물건이 본래 없는 까닭이다. 또 눈병으로 허공에 꽃을 보다가 눈병이 나으면 꽃이 없으니,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는 것이다. 저 허공에서 꽃이 나고 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아서 자성自性을 깨치면 생사 윤전이 본래 생겨날 것이 없다.
이것을 인지因地에서 법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보살이 이로 인하여 저 대승 가운데 청정심을 발하니 말세 중생이 이것으로 인하여 수행하면 사견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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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8) 이것은 완전히 자취를 쓸어버리는 것이다. 19) 무명이 본래 없는 것임을 깨쳐서 아는 자도 허공과 같아서 모두 있는 것이 없다. 또한 몸과 마음이 본래 없는 것임을 깨쳐 아는 것도 모두 없을 뿐만 아니라, 허공과 같이 없는 것임을 깨쳐 아는 자도 허공의 꽃과 같이 허망한 것이다. 20) 그렇다 하여도 단멸심斷滅心을 내지 말라. 중생들의 있다 없다 하는 분별심만 공하며,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영각성靈覺性이 없는 것은 아니다. 21) 있다 없다 하는 유무有無가 공空하여 능소能所가 다 끊어져 모든 분별심을 여의면, 이것이 정각淨覺을 따르는 것이다. 참사람은 무심하여 도에 합하고, 도는 무심하여 사람에 합하는 것이다. 옛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현현 대도는 공력을 써서 들 수 없고, 성인의 지혜는 있는 마음으로 알 수 없고, 참법은 아상으로 알 수 없고, 지극한 공은 경영하는 일로 할 수 없다. 오직 공력을 잊은 자라야 가히 도에 합하며, 생각을 비운 자라야 가히 이치를 통하며, 마음에 명합冥合한 자라야 가히 참된 하나로다.”라고 했다. 사람이 도에 합하나 합함이 없고, 도가 사람으로 합하나 합함이 없다. 대지大地는 평침平沈하고 물아物我를 한꺼번에 잊으며 허공이 부수어져서 비로소 각성에 계합하여 따른다.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러 한번 몸을 굴리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무슨 언설이 따로 있겠는가? 어째서 그러한가? 서로 인하여 상대(對對)가 있는 것은 인연을 따라서 있는 것이라 어찌 실다움이 있겠는가? 마음이 동하면 곧 본성을 어기니 원각자성에는 본래 일체 유무 색성 등 상이 없다. 22) ‘허공성인 까닭이며’라고 하신 말씀은, 허공이 아니라 이 허공의 본성을 말씀하신 것이니 일체법이 공하여 조금의 차이도 없다. ‘항상 움직이지 않는 까닭’이라고 하신 말씀은 일체 법성一切法性이 본래부터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여래장如來藏’이라는 말은 모두 일심一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을 혹 ‘일심一心’이라고 하며, ‘불성佛性’이라고도 하며,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고도 한다. 혹 ‘공여래장空如來藏’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 모든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혹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이라고 하는 것은 항사묘덕恒沙妙德이 원만 구족하기 때문이다. 혹 ‘여래를 대신한다’고 하는 것은 여래의 체성이 법계에 가득하여 일체중생 가운데에 다 가득히 있으나, 무명에 숨어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중생이 여래를 간직하고 있다 하는 말이다. 혹은 여래가 일체 만법을 자체自體 안에 간직하므로 여래께서 대신하신다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여래장如來藏’이라 한다. 그러나 여래장체성은 생멸이 없으며 일체 아는 소견이 끊어진 것이다. ‘여래장이 법계성과 같다’고 하는 말은 여래장如來藏은 본원불성을 가리킨 것이고, 법계法界는 유정동물과 무정세계 만물을 모두 통틀어 말한 것이다. ‘구경究竟’이라고 하는 말은 세로로 과거·현재·미래 삼제三際를 다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뚜렷하다’고 하는 말은 가로로 누운 것이니 허공을 다 머금었다고 하는 것이다. ‘가득하다’라는 말은 모든 것이 구족하다는 말이니, 종횡으로 걸림 없이(橫豎無碍) 시방에 두루한 것이다. 23) 이것은 인지因地에 수행하던 법이니 보살은 이 법으로 인하여 대승법 가운데에 청정심을 발하는 것이며 말세 중생도 이 법으로 수행하라고 한 것이다.
24) 게송으로 읊음(諷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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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에 世尊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사대
그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하시어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시기를,
25) 본각을 요달하여 깨달음(了悟本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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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殊야 汝當知하라 一切諸如來ㅣ從於本因地하야 皆以智慧로 覺하나니
“문수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모든 여래께서 본래 인지因地를 좇아 모두 지혜로써 깨치나니
26) 미루어 무명을 깨뜨림(推破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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了達於無明하야 知彼如空華하면 卽能免流轉하리라 又如夢中人이 醒時에 不可得인달하야
무명을 깨달아 알아서 허공 꽃과 같은 줄을 알면 곧 능히 유전을 면하리라. 또 꿈에서 사람이 깨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만일 모든 중생이 본래 수행하지 아니하면, 저 생사 가운데서 항상 환화에 머물러 일찍이 환다운 경계를 알지 못할 것이니 망상심으로써 어찌 해탈할 수 있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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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3) 청정대원각자성을 깨친 중생이 환幻과 같음을 아는 자의 몸과 마음이 환이니, 이 환으로써 환을 닦는다는 말씀이 대단히 의혹스럽다. 어째서 그런가? 일만 가지의 행실이 다 몸과 마음을 의지하여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만행을 닦자면 지혜가 먼저 길을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세존께서 문수에게 하신 말씀이, “깨쳐 아는 자가 허공같이 모두 없다.” 하시고, 또 “허공같이 모두 공한 줄로 아는 자도 곧 허공 꽃과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능히 닦는 지혜도 환이 될 것이요, 곧 닦는 바 수행 경계도 다 환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환과 환이 다 같은 것이라서 다시 수행한다는 말이 쓸데없는 말이며, 그 닦는다는 뜻을 참으로 알 수 없다고 묻는 말이다. ‘환幻’이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말로 하면 산두광대와 같은 것이다. 한자어로 하면 풀과 나무로 우마를 만들어 온전히 움직여서 가고 오는 것과 같다. 인도 말로 하면 여러 가지 환술로 모든 것을 환변하는 것과 같다. 현시대로 말하면 활동사진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보기에는 다 있는 것 같으나 모두 허망한 것이다. 이 아래 대목대목은 환을 말씀하신 것이니 모두 이와 같은 것으로 알아라. 4) 이 위에서 몸과 마음과 아는 것과 소견과 일체가 다 환이라고 하니, 환이라는 것은 허망하여 실상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나무와 돌과 같지 않겠는가? 그러면 누가 수행하겠는가? 인지因地에서 청정 수행하여 필경 성불하는 것은 결정된 뜻인데 어찌 수행이 허망하다 하겠는가? 5) 만일 수행하는 것을 환이라고 하게 되면 본래 수행할 이치가 없을 것이다. 중생들이 일체 물질의 환화에 있으나 그 환의 경계를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망상심이 일어나고 멸함으로 수행하는 공력이 아니면 어찌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는가?
“원컨대 (이 법회의 모든 보살 대중을 위하시며) 말세 일체중생을 위하시어 (수행할 방편 차례를 열어 보여 주소서.) 무슨 방편을 지어서 점차로 수습해야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모든 환을 여읠 수 있으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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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6) 위에서 묻는 뜻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환과 환이 한가지로 같으니 수행할 것이 없을 것이다. 둘째는 일체를 환과 같이 수행한다면 공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는 비록 수행이 공한 것이라고 하여도 수행하지 아니하면 중생들이 허망한 견해에 떨어지니 수행을 하지 않고서 어찌 해탈하겠습니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수행은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수행을 하고자 하면 차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먼저 문수장에서 이미 원각의 청정 경계를 열어 보여서 깨쳐 들어가게 하였으니 다시 수행할 법을 말씀해 주소서라는 뜻이 있다.
그때에 세존께서 보현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능히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보살의 환과 같은 삼매를 닦아 익힐 방편 점차를 물었으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환을 여의게 하리니 너희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를 위하여 설하리라.”
9) 주의 깊게 들음(佇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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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에 普賢菩薩이 奉敎歡喜하사와 及諸大衆과 默然而聽하더시니
그때에 보현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환희하며 모든 대중과 묵묵히 들었다.
10) 다만 깨달은 마음을 따라 환을 표함(但標幻從覺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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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一切衆生의 種種幻化가 皆生如來의 圓覺妙心홈이
“선남자야, 일체중생의 가지가지 환화가 다 여래의 원각묘심에서 나는 것이니
11) 비유를 들어 말함(擧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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猶如空華가 從空而有인달하야
마치 허공 꽃이 허공을 따라 있는 것과 같아서
12) 환이 다하면 깨달음의 성품이 원만함을 비유함(喩幻盡覺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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幻華雖滅이나 空性은 不壞하나니라
환화가 비록 멸하나 공성空性은 무너지지 아니하나니라.
13) 비유로 합함(合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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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生의 幻心無明心이 還依幻滅幻智하나니
중생의 허환한 마음이 도리어 허환한 것을 의지하여 멸하나니
14) 환이 멸하면 깨달음의 성품이 원만함(幻覺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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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幻이 盡滅이나 覺心은 不動하니라
모든 환이 다 멸하여도 각심은 동하지 아니하니라.
15) 세 가지를 떨어 냄(三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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依幻說覺도 亦名爲幻이며 若說有覺이라도 猶未離幻이며 說無覺者라도 亦復如是하나니
환을 의지하여 각을 설한 것도 또한 환이 되는 것이니, 만일 각이 있음을 설하여도 오히려 환을 여의지 못한 것이며, 각이 없음을 설하여도 또한 다시 이와 같나니,
16) 환이 다하면 깨달음이 원만함(幻盡覺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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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로 幻滅이 名爲不動이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환이 멸한 것을 부동이라 하느니라.부동은 동하지 아니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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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0) 보현보살이 묻는 뜻은 다만 환幻을 닦는 데 있지 환이 나온 곳을 묻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환이 각심覺心에서 난다’고 하신 것은, 그 근본을 들어 표시하시고 그러한 연후에 환을 닦아 다하면 각覺이 원만함을 설하시려고 한 것이다. 환이 다한다고 단멸斷滅되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면, 바람이 그치면 파도가 잠잠해지지만 물의 젖는 성품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일체중생’이라는 말은 여래를 제외하고는 불교 내라도 깨친 성문, 연각과 보살의 오십오위가 다 중생이라고 하신 것이니 어째서 그러한가? 십지보살十地菩薩이라도 근본무명根本無明을 끊지 못한 까닭에 중생이라 한다. 이 중생들의 가지가지 환화가 어디서 생겨나느냐 하면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생겨난다 할 것이다. 대해 바다에 파도가 어디에서 생겨나느냐 하면 바닷물에서 생겨난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11) ‘마치 허공의 꽃이 허공을 좇아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원각자성을 좇아 환화가 있다는 것이다. 원각을 떠나서는 육도 중생이 없는 것이며, 원각을 버리고는 삼승성인三乘聖人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12) 환이 다함에 깨달음의 성품(覺性)이 원만한 것은 마치 허공 꽃이 다하여도 허공성의 이치는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다. 13) 중생의 모든 환심幻心은 도리어 환다운 지혜를 의지해야 멸한다. 14) 환幻이 다하면 원각대지가 밝아서 홀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이 다하면 각심覺心이 동하지 않는다. 15) 환幻을 의지하여 각覺을 설하는 것은 지견知見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환다운 지혜로써 멸할 것을 삼고, 각으로 나타난 것을 삼으면 마음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뜻을 두는 것이니 지견이 되는 것이며 또한 환이 될 것이다. 또 각이 있음을 설하는 것은 각이 나타난 곳에 마음을 내고, 생각을 동하는 것이니 각을 잊지 못하면 상견常見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도 환을 여의지 못한 것이며, 또 이 말을 듣고 다시 지견을 내어 각이 없다 고집하면 단견斷見에 떨어진 것이라서 또한 환을 여의지 못한 것이다. 모든 환이 다한 곳에 다시 지견을 일으키지 않으면 거울을 닦아 때가 다함에 밝은 것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16) 밝은 것은 밖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담연하여 밝게 비치는 까닭에 부동不動이라고 한다.
17) 적당한 근기를 가리켜 나타냄(標指當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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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一切菩薩과 及末世衆生이 應當이
“선남자야,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이 마땅히
18) 모든 환의 경계를 여읨(離諸幻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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遠離一切幻化虛妄境界이니
일체 환화 허망 경계를 멀리 여읠 것이니
19) 환의 마음을 여읜 것을 여읨(離離幻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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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堅執持遠離心故로 心如幻者를 亦復遠離하며
멀리 여의려는 마음가짐에 굳게 집착하는 까닭에 마음에 환다운 것을 또다시 멀리 여의려고 하며
20) 여읜 환을 여의고 보냄(遣離幻之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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遠離爲幻을 亦復遠離하며
멀리 여읜 환을 또다시 멀리 여의려고 하며
21) 여읜 것을 여의고 또 여의어 보냄(遣離離之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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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遠離幻을 亦復遠離이니 得無所離하면 卽除諸幻하리라
멀리 여읜 것을 여의어 환을 또다시 멀리 여의니 여읠 것이 없음을 깨달으면 곧 모든 환을 제하리라.
22) 비유를 들어 말함(擧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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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如鑽火에 兩木相因하야 火出木盡하면 灰飛烟滅인달하야
비유컨대, 불을 생기게 하려면9)
불을 뚫는다 하는 것은 두 나무를 서로 비벼대어 불이 남이라. 두 나무를 서로 비벼서(因) 불이 생기고 나무가 다 타면 연기가 소멸하고 재가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23) 법에 합함(法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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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幻修幻도 亦復如是하야 諸幻이 雖盡하야도 不入斷滅하나니라
환으로써 환을 닦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환이 비록 다하여도 단멸에 들어가지 아니하나니라.
24) 결론하여 답함(結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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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知幻卽離이라 不作方便이오 離幻卽覺이라 亦無漸次이니라
선남자야, 환인 줄 알면 곧 여읠 것이라. 방편을 지을 것 없고, 환을 여의면 곧 각이라. 또한 점차가 없느니라.여읜다 함은 떠나가게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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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7) ‘선남자’라는 것은 이 법문에 적당한 근기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18) ‘환화幻化 경계’를 말씀하신 것은 여읠 바 모든 경계를 여읜다는 말이다. 19) ‘여읜 마음을 굳게 가진다’는 말은 모든 환을 여읜 마음을 또 여읜다는 말이다. 20) 다만 환망 경계만 여읠 뿐 아니라 환을 여읜 곳까지도 여읠 것이다. 그러나 환망 경계를 여읜 것과 환을 여읜 지혜를 함께 여의지 못하면, 멀리 여읜 환을 다시 멀리 여의라 한 것이다. 멀리 여읜 것이 다시 환이 되는 것은 환망 경계를 여읜 것과 여읜 지혜가 환이 되는 것을 모두 여의라는 말이다. 21) 여읜 것을上第二句 여의며上第三句 또 여읜 것을上第三句 여의어 보낼 것이니當文第四句 첫째는 망妄을 여의는 것이요, 둘째는 각覺을 여의는 것이요, 셋째는 여읜 것을 보내는 것이요, 넷째는 보내는 것을 보내는 것이다. 비유하면, 거울을 처음 닦고, 다시 두 번째 닦고, 세 번째 닦아, 네 번째에 부드러운 수건으로 한층 세밀하게 닦은 후에야 광명이 밝은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비운 후에야 원각자성이 청정해진다. 그러므로 여읠 것이 없음을 얻으면 모든 환幻을 다 제한다고 한다. 22) 비유하면, 땅에 마른 나무가 있으면 다른 나무 한 개를 가져다 그 마른 나무에 대고 비비면, 불이 일어나서 도리어 두 나무가 타게 될 것이다. 나무도 타고 불길도 다하면 연기는 저절로 소멸하고 재는 다 사라지고 다 흩어질 것이다. 그러면 형태와 물질(形質)이 있는 나무 두 개는 어디에 있는가? 나무는 땅에서 자란 것이라서 불타서 다하면 오직 땅만 있는 것이다. 자성自性을 좇아 모든 환이 있다가, 환이 다해도 원각자성은 본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다. 23) 법에 합하여 말하면, 환으로 환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모든 환이 다하여도 단멸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24) 앞에서 보현보살의 ‘무슨 방편을 지어 차례로 수습하며 영원히 모든 환을 여의겠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하여 먼저 차례로 환 닦는 법을 보이신 것이다. 다음에 결론지어 대답하시되, 방편을 지을 것도 없으며, 또한 차례도 없으니 이와 같이 하면 영원히 모든 환을 여읠 것이라고 하신다. 비유로 말하면, 꿈에 병이 나서 의원을 찾아 약을 구하다가, 꿈을 깨고 보니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무슨 방편 차례를 짓겠는가?
25) 결론하여 환을 여의고 진심을 성취함(結成眞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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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菩薩과 及末世衆生이 依此修行하면 如是 乃能永離諸幻하리라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이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이와 같이 영원히 모든 환을 여읠 것이니라.”
“보현이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모든 중생의 비롯함이 없는 환과 같은 무명이 모두 여래의 원각심을 좇아 생겨난 것이니라. 마치 허공 꽃이 허공을 의지하여 모양이 있다가, 허공 꽃이 만일 멸하면 허공은 본래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니라. 환이 모든 각을 좆아 생기다가 환이 멸하면 각이 원만해지니 각심은 움직이지 않는 까닭이니라. 만일 저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항상 멀리 환을 여의어 모든 환을 다 여의면, 나무 가운데서 불길이 생겨 나무가 다 타면 불길이 도리어 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각은 곧 점차가 없으니 방편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0b01L
용성해 26) 진심眞心 가운데에 가지가지 환화幻化가 각심覺心에서 생겨난다고 하나 어떤 것이 환화인지 알지 못하는 까닭에 게송 중에 무명無明 두 글자를 보충하시니 환화가 곧 무명이라고 하신 말씀이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 모임의 모든 보살 대중들과 말세 일체중생을 위하여 보살의 수행 점차를 연설해 주소서.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머물러야 하리까? 중생이 깨닫지 못하거든 무슨 방편으로 널리 깨닫게 할 수 있으리까?마음이 열려 깨치오리이까?”
MBC0001_0026_0001V0001P0021a01L
용성해 1) 이 장은 보안보살10)
이 묻는 뜻이다. 세존께서 문수에게 말씀하시기를, ‘무명을 깨달아 알아서 허공 꽃인 줄 알면 곧 생사에 윤전함이 없고, 또한 몸과 마음이 생사를 받지 아니한다’고 하셨다. 또 보현장에서 말씀하시기를, ‘환幻인 줄 알면 곧 여읠 것이라, 방편을 지을 것이 아니요, 환幻을 여의면 곧 각覺이라 차례가 없다’고 하시니 이것은 상근기上根機 중생이 깨칠 수 있는 것이다. 2)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중하中下 근기는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이는 ‘천 리를 가더라도 첫걸음이 바르게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첫걸음이 잘못되면 천 리 길이 일시에 어긋나는 것이니11)
어떻게 하여야 깨닫게 할 수 있습니까?’라는 말이다. 이것은 모두 뚜렷한 청정 각성淸淨覺性을 비추는 뜻을 밝게 분석하여 널리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 중생이 바른 방편과 바른 생각이 없으면 부처님 여래께서 삼매 설하시는 것을 듣고 마음이 아득하여 답답한 마음만 내어 곧바로 저 원각에 깨우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니
4) 거듭된 청에 결론지음(結牒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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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興慈悲하시와 爲我等輩와 及末世衆生하야 假說方便하소서
원컨대 자비를 일으키시어 저희들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설법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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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3) 여기서도 또 필요한 방편을 청하는 것이다. 보현보살의 뜻에는 ‘반드시 바른 방편으로 설법하여 원각문에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바른 관觀을 얻을 것이다.바른 관(正觀)은 곧 바른 사유(正思惟)임. 그렇지 않으면 보살의 환다운 삼매를 수습修習함을 듣고 미혹한 마음만 낼 것이니, 자성대원각自性大圓覺에 도저히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4) 그러면서 ‘자성自性에 들어가자면 방편이 가장 시급하니 설법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한 것이다.
이때에 세존이 보안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께 수행의 점차와 사유하여 머무름과 설법의 갖가지 방편을 물으니 너희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를 위하여 설하리라.”
7) 적당한 근기들이 묵묵히 머무름(當機默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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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에 普眼菩薩이 奉敎歡喜하사와 及諸大衆과 默然而聽하더시니
그때에 보안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환희하고 모든 대중이 묵묵히 들었다.
8) 수행할 방편을 일으킴(起行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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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彼新學菩薩과 及末世衆生이 欲求如來의 淨圓覺心인댄 應當正念하야 遠離諸幻이니
“선남자야, 저 새로 배우는 보살과 말세 중생이 여래의 정원각심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바르게 생각(正念)하여 멀리 모든 환幻을 여읠 것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2a01L
용성해 8) 이것은 여래께서 보안보살이 묻는 뜻에 모두 대답하신 것이다. 비록 수행하는 차례와 정사유정사유는 관법와 머무름을 묻더라도 초발심한 사람이 수행할 방편에 대해 묻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수행하는 첩경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정념正念하라’고 하신 것이다. 비유하면 물에 파도가 생기지 않으면 고요한 것과 같이, 모든 분별 환심幻心을 일으키지 않으면 생멸심이 없어 환심을 여읠 것이다. 환심幻心을 여의면 곧 무념無念이요, 무념은 곧 정념正念이니 이것이 초심에서 열심히 수행하는 방편이다.
9) 수행 중에 계와 정을 관함(觀行中戒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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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依如來의 奢摩他行호대 堅持禁戒하며 安處徒衆하며 宴坐靜室하야
“먼저 여래의 사마타행을 의지하되 금하신 경계를 굳게 지키고 도중에 편안하게 거처하며 고요한 방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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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9) 이것은 초심에 환幻된 생각을 여의는 방편을 대답한 것이다. 정관正觀을 하자면 먼저 그 방편을 행해야 한다. 그러면 먼저 여래의 사마타행에 의지할 것이니 중생의 생멸심 파도가 한량없으니 어찌 한 번의 파도에 여읠 수 있겠는가? ‘사마타’는 우리말로 하면 ‘그친다’는 말이니, 그치는 수행을 하려면 먼저 계행을 지켜야 한다. 계행을 지킨 후에는 마음을 닦아야 한다. 마음을 닦자면 규칙이 엄정한 여러 대중 가운데 머무르든지, 또는 고요한 수행처에 홀로 앉아 육근문六根門을 굳게 닫고 자기의 보검寶劍을 빼내어 오온산중五蘊山中에 도적이 있거든 낱낱이 베어 버려야 한다. 마음을 한곳에 정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계戒가 아니면 안 된다. 또한 지혜의 달이 비치는 것은 정定이 아니고는 될 수 없다. 그리하여 망념妄念이 본래 공空하고 자성自性이 본래 청정함을 깨치면, 그쳐도 그치는 것이 없고 닦는 것이 없게 된다. 또 ‘사마타를 그친다’는 말은 ‘한곳에 정하여 움직이지 않는다(一定不動)’는 뜻이다. 지극히 고요하고 마음이 일정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먼저 사마타행을 말씀하신 것이다. ‘금계禁戒’라는 말은 ‘육근문六根門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신구의身口意를 거두어들여 나의 마음 가운데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초심의 방편이다. 마음을 거두어들여 일정하게 경계에 대한 반연을 여의는 것은 초심에 입정入定하는 방편이다. 마음과 경계가 공하여 지혜가 신령하게 밝은 것은 초심의 지혜智慧 방편이다. 또 마음의 바탕(心地)이 그릇됨이 없는 것은 자성自性의 계행戒行이다. 마음의 바탕(心地)이 산란함이 없는 것은 자성이 입정入定한 것이다. 마음의 바탕(心地)이 어리석지 않은 것은 자성의 지혜智慧라 한다. 또 보살의 삼취정계三聚淨戒가 있다. 하나는 섭률의계攝律儀戒로 율의律儀를 가지는 것이니,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는 섭선법계攝善法戒이니 무량선법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는 섭중생계攝衆生戒이니 모든 중생(有情)을 건지는 것이다. 이 계행의 내용을 빠짐없이 말하자면 무궁무진하다.
항상 이 생각을 하되, 나의 지금 이 몸은 사대사대는 땅기운, 물기운, 불기운, 바람 기운임.로 화합한지라. 이른바, 머리카락, 손톱, 치아, 피부, 근육, 힘줄, 뼈, 골수, 뇌, 때, 빛은 모두 땅의 기운(地大)으로 돌아가고, 가래침, 콧물, 고름, 피, 진액, 침, 땀, 눈물, 정기는 모두 물의 기운(水大)으로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의 기운(火大)으로 돌아가고, 움직이고 구르는 것은 바람의 기운(風大)으로 돌아간다. 사대가 각기 흩어지면 지금의 허망한 몸은 마땅히 어느 곳에 있는가?
11) 여실하게 살핌(如實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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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知此身이 畢竟無體어늘 和合爲相이 實同幻化로다
이 몸은 마침내 본체가 없으며 화합하여 형상이 된 것이니 진실로 환화와 같음을 알아라.
12) 마음을 관찰하여 수상행식(四蘊)으로 흩어지는 것을 자세히 살핌(尋伺觀心分四蘊)
MBC0001_0026_0001V0001P0023b01L
四緣이 假合하야 妄有六根하니
네 가지 인연(四蘊)이 거짓으로 화합하여 망령되이 육근六根이 있는 것이니
MBC0001_0026_0001V0001P0023b01L
용성해 10) 이것은 정관正觀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이는 것이다. 또 점차漸次로 사유점차漸次는 차례라는 말이고, 사유는 바르게 생각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먼저 육체의 허망함을 보이는 것이다. 보안보살이 묻는 뜻은 문수장에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망령되이 사대를 잘못 알아 자기의 몸의 모양을 삼으며,妄認四大爲自身相云云 여섯 가지 티끌 경계(六塵境界)에 반연한 그림자로 자기의 마음 모양을 삼는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공화空華인 줄 알면 곧 윤전輪轉함이 없다’윤전은 삼계에 윤회하는 것임.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환幻인 줄 알면 곧 여의어라. 방편으로 지을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에 대해 말하기를, ‘그러면 상근기上根機는 해탈을 증득하겠지만, 중·하근기(中下根機)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한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세존께서 먼저 사마타 닦는 것을 방편으로 보이시니 곧 일정한 것이다. 고요하게 일정함을 닦는 이것으로 선봉장을 삼았다. 그리고 정관正觀에 들어가는 것을 보이시니 이것은 정사유를 묻는 데 대하여 가관假觀12)
하는 방법을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몸이 거짓으로 된 것임을 관하되, 차례로 모든 분별이 공함을 관하니 이것이 점차로 보이는 방편이다. 관觀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공관空觀이요, 하나는 가관假觀假는 거짓 것임.이요, 하나는 중도관中道觀이다.
13) 가관假觀
MBC0001_0026_0001V0001P0024a01L
六根四大가 中外合成이어늘 妄有緣氣가 於中에 積聚하야 似有緣相인 듯하니 假名爲心이니라
육근과 사대가 가운데와 밖이 합하여 이루어졌으니, 망령되이 인연 기운이 그 가운데 쌓이고 모여서 연상緣相이 있는 듯하니, 거짓 이름이 마음이 되는 것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4a01L
용성해 13) 이것은 마음을 가리키는 방편을 보이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인연이 거짓으로 화합하여 하나의 육체를 이루어 육근六根이 있으니 이것이 육체를 떠나면 육근은 원래로 없는 것이다.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각기 흩어지면 육근의 구멍(六根竅穴)은 어디에 의지하여 있겠는가? 지수화풍의 사대는 안에 있고, 육근은 밖에 있어 내외內外가 화합하여 거짓으로 몸을 이룬 것이다. 이와 같이 알면 육체의 원인原因을 볼 것이라고 하시고 이곳에서는 분별하는 마음을 추구하여 보는 것이다. 지수화풍의 사대와 눈, 귀, 코, 혀, 몸, 뜻의 것들이 한가지로 화합하여 육체가 된 것이므로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의 육진六塵이 망령되게 나타난 것이다. 육근과 육진이 경계를 대하여 분별심이 생겨나며, 분별이 끊어질 사이가 없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잠깐 사이라도 그칠 여가가 없는 것이다. 육근과 육진의 인연이 화합하면 있고, 인연이 흩어지면 없는 것이다. 그 본체를 아무리 추구하여도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에 거짓으로 이름하여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분석하면, 육근의 여섯 가지 티끌(六根)을 대하여 여섯 가지 아는 놈(六識)이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이 다섯 가지 티끌의 생각을 연속하여 떨어지는 그림자를 반연하므로 그 반연하는 기운이 모이고 쌓이게 되면, 거짓된 무엇이 있는 것 같으나 이것은 망상의 그림자(影子)이다. 중생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거짓된 그림자를 자기의 참마음인 줄로 안다. 이것을 알면 망상이 스스로 사라지고 참마음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니 이것이, 가관의 방편(假觀方便)이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이 허망한 마음이 만일 육진이 없으면 있지 아니하니 사대가 나뉘어 흩어지면 티끌도 가히 얻을 것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 반연하는 것과 티끌이 각기 흩어져 멸한 데로 돌아가면 필경에 반연하는 마음도 볼 수 없을 것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5a01L
용성해 14) 이것은 가관假觀가관은 몸도 거짓되고 마음도 거짓됨을 관함에 공을 이루어 보인 것이다. 연진緣塵이라는 것은 연緣은 지·수·화·풍의 네 가지 연緣이요, 진塵은 색·성·향·미·촉·법의 육진六塵이다. 이 허망한 마음에 육진이 없으면 육근이 있지 못할 것이고, 마음은 육진을 의탁하여 있고 육진은 사대를 의탁하여 있는 것이니, 사대가 없으면 육진은 곧 공할 것이다. 연진緣塵이 이미 멸하면 망령된 마음의 체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마음 또한 거짓된 것이다.
“선남자야, 저 중생이 허망한 몸이 멸한 까닭에 허망한 마음이 또한 멸하며, 허망한 마음이 멸한 까닭에 허망한 티끌이 또한 멸하며, 허망한 티끌이 멸한 까닭에 환멸한 것도 또한 멸하며, 환멸이 멸한 까닭에 환 아닌 것은 멸하지 아니하느니라. 비유하면, 거울을 닦아 때가 다하면 밝은 것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5a01L
용성해 15) 이것은 몸과 마음이 다 거짓된 것으로 보는 것에 따라 공관空觀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는 바가 이미 비어 버리면 곧 보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환이 멸하여 없어지면 법도 또한 없는 것이다. 일체 대대가 끊어진 곳에 뚜렷이 밝게 있는 청정한 마음이 홀로 드러나면 환이 아닌 마음은 멸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청정하다’고 이름한 것은 참으로 텅 빈 마음을 별칭해서 하신 말씀이다. ‘거울을 닦아 밝은 것이 나타난다’고 하는 말은 거울의 본성은 본래 밝고 깨끗한 것이라서 다른 곳으로부터 밝고 깨끗한 기운이 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티끌만 닦으면 본래 밝은 성품이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원각자성圓覺自性도 모든 번뇌가 공해지면 자연히 밝고 깨끗해진다. 거울은 닦고 닦을수록 밝은 것이 더해지고 마음은 비우고 비울수록 더욱 신령神靈한 것이다.
“선남자야, 마땅히 알아라. 몸과 마음이 다 허망한 때(幻垢)가 되는 것이니 때의 모양이 영원히 멸하면 시방이 청정하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5b01L
용성해 16) 이것은 위에서 가관육체의 몸이 비어 없는 것으로 확실히 증득한 것임.과 공관심체가 공함을 증득함의 수행을 좇아 중도中道에 들어가는 것을 보인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몸과 마음이 다 진구塵垢임을 통달하면 몸과 마음의 본체가 모두 공하여, 다만 참마음뿐이므로 중도中道라 한다. 그러나 옛사람이 말하기를, “자신의 눈을 자신이 볼 수 없으며, 칼이 스스로 몸을 베지 못하며, 물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씻지 못하는 곳에 이르더라도 다시 한마디를 말해 보라.”라고 하셨다. 중도中道도 지키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다. 여래께서 차례로 대답하시니 자세히 가려 보이실 것이다.
17) 절대의 진심을 나타냄(顯絶待眞心)
(1) 가르침을 나타냄(標告)
MBC0001_0026_0001V0001P0026a01L
善男子야
“선남자야,
(2) 비유로써 가르침(喩告)
MBC0001_0026_0001V0001P0026a01L
譬如淸淨摩尼寶珠ㅣ映於五色하야 隨方各現커든 諸愚癡者는 見彼摩尼에 實有五色인달하야
비유컨대, 청정한 마니보배구슬이 오색을 비추어 방위를 따라 각기 색깔을 나타내면 모든 어리석은 사람들은 저 마니구슬에 진실로 오색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선남자야, 원각정성이 몸과 마음을 나타내어 종류를 따라 각기 응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정원각에 진실로 이와 같은 신심자성이 있다고 하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4) 자취를 떨고 현묘에 들어감(拂迹入玄)
MBC0001_0026_0001V0001P0026a01L
由此로 不能遠於幻化일새 是故로 我說身心이 幻垢라 하나니 對離幻垢하면 說名菩薩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능히 환화를 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내가 몸과 마음이 환의 때라고 하니, 환의 때를 여의면 이름하여 보살이라 말하느니라.
(5) 환의 때를 떨어 냄(拂幻垢)
MBC0001_0026_0001V0001P0026a01L
垢盡코
번뇌가 다하고
(6) 대상을 여의는 지혜를 떨어 냄(拂對離之智)
MBC0001_0026_0001V0001P0026a01L
對除하면
상대하는 것이 없으면
(7) 지혜를 일으키는 보살도 떨어 내고 또한 근기를 상대하는 부처도 떨어 냄(拂起智之菩薩又拂對機之佛)
MBC0001_0026_0001V0001P0026a01L
卽無對垢와 及說名者하니라
곧 번뇌를 상대하는 것과 이름을 말하는 자가 없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6b01L
용성해 17) 이 장의 대의大義는 대상이 끊어진 참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1) ‘선남자야’라고 하시는 말씀은 당시 대중을 가리킨 것이다. (2) ‘청정마니구슬’은 뚜렷이 밝은 대원각자성大圓覺自性에 비유하신 것이다. 그 마니구슬은 투명체透明體로 매우 영롱하여 푸른색이 비치면 구슬 전체가 청색이 되고, 황색, 적색, 백색, 흑색 등이 비치는 대로 모두 그 색깔을 나타낸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보고 구슬이 푸르다고 하니 참으로 어리석기가 막대하다. 어떻게 구슬이 노랗고 푸른 것인가? (3) 원각자성의 성품이 밝고 깨끗하여 그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말미암아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을 나타낸다. 그리고 종류를 따라 육도六道와 오온五蘊이 있는 것이니,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청정한 원각성품에 진실로 이와 같은 몸이나 마음이 모두 있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어리석지 않다 하겠는가? (4)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환幻의 바다에 놀면서 무궁한 생사를 받으니 몸과 마음을 다 환이라 가르친 것이다. 몸과 마음의 번뇌를 모두 소멸해 버리고 자성自性이 나타나는 곳에 들어가면 이름을 ‘보살菩薩’이라 한다. (5) 그러나 그 여읜 곳을 다하여 (6) 다한 지혜까지도 여의면 (7) 곧 번뇌를 모두 여의었다 하는 보살과 보살이라고 말하는 부처도 없다.
18) 원만하고 밝은 깨달음의 모습을 바로 나타냄(正顯圓明覺相)
(1) 가르침을 나타냄(標告)
MBC0001_0026_0001V0001P0026b01L
善男子야 此菩薩과 及末世衆生이
“선남자야, 이 보살과 말세 중생이
(2) 공관 수행으로 성취함(空觀行成就)
MBC0001_0026_0001V0001P0027a01L
證得諸幻하야
모든 환을 증득하여
(3) 자취를 없애 버려 의탁할 데가 없음(泯跡無寄)
MBC0001_0026_0001V0001P0027a01L
滅影像故로
영상이 멸한 까닭에
(4) 참다운 법계에 들어감(入眞法界)
MBC0001_0026_0001V0001P0027a01L
爾時에 便得無方淸淨하나니
그때에 문득 방소가 없는 청정함을 얻나니
(5) 허공이 소멸되어 각이 나타남(空消覺現)
MBC0001_0026_0001V0001P0027a01L
無邊虛空이 覺所顯發이니라
한량없는 허공이 각의 나타난 바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7a01L
용성해 18) 이 장은 뚜렷한 심체心體가 본래 스스로 신령하게 밝아 확연하게 사무쳐 넓고 크고 텅 비고 고요한 것을 이름하여 참으로 텅 비고 밝은 성품만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다. (1) ‘선남자야’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경계에 나아가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2) 일체 모든 법의 몸과 마음이 환화幻化이니 본래 공空함을 깨우쳐서 (3) 영상이 멸하여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의 자취도 없으니 어느 곳에도 의탁할 데가 없는 까닭에 (4) 동서남북 사유상하가 없는 청정한 법계가 온전히 드러나게 되니, (5) 그리하면 모든 방위는 없어지지만 오직 허공만 있을 것이다. 용성龍城이 말하기를, “처음부터 이 대문까지 이르도록 다만 몸도 공하고, 마음도 공하며, 또 몸과 마음이 함께 공하여 그 함께 공한 놈도 또한 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자취를 없애 버리고 없애 버려 철저하게 없애 버리면 바다 밑에서 연기가 일어나고 허공에서 불꽃이 생겨나서 세계천지와 허공이 불에 모두 타고 그 불마저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량없는 허공조차도 다 녹아 버린 후에 깨달음이 나타나게 된다. 비유하면, 천년 동안 어두웠던 방에 등불을 켜면 어두웠던 것이 등불이 나타남과 동시에 바로 사라지고, 환한 등불의 광명만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깨달음(覺)이 나타남과 동시에 허공은 사라지고 깨달음만 존재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이 ‘깨달음 가운데에서 허공이 나타난 것이다, 허공 가운데에서 깨달음이 나타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망령된 소견인 줄 알아라.”
19) 내부 몸의 육근과 육식(內身根識)
(1) 원래 청정한 까닭에(元淸淨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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覺圓明故로
“각이 뚜렷이 밝은 까닭에
(2) 팔식의 마음이 청정함(八識心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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顯心淸淨하며
마음의 청정함이 나타나며,
(3) 팔식의 견분이 원만하게 비추면 육근의 문도 청정함(八識之見分圓映 六根門者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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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淸淨故로 見塵이 淸淨하며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보는 티끌이 청정하며,
(4) 정묘색근의 안근(根淨妙色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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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淸淨故로 眼根이 淸淨하며
보는 것이 청정한 까닭에 안근眼根이 청정하며,
(5) 능히 식을 의지함(能依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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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淸淨故로 眼識이 淸淨하며
안근眼根이 청정한 까닭에 눈으로 아는 의식(眼識)이 청정하며,
(6) 칠식이 상하의 육식과 팔식으로 경계에 합하여 번뇌가 됨(七識이 上下 六八로 合境爲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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識淸淨故로 聞塵이 淸淨하며
아는 의식이 청정한 까닭에 듣는 티끌이 청정하며,밖으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전오식 티끌임.
(7) 식이 근을 의지하는 바가 됨(識之所依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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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淸淨故로 耳根이 淸淨하며
듣는 것이 청정한 까닭에 이근耳根이 청정하며,
(8) 능히 식을 의지함(能依識)
MBC0001_0026_0001V0001P0027b01L
根淸淨故로 耳識이 淸淨하며
이근耳根이 청정한 까닭에 귀로 아는 의식(耳識)이 청정하며,
(9) 코, 혀, 몸 모두 깨달음이라 이름함(鼻舌身通名爲覺)
MBC0001_0026_0001V0001P0027b01L
識淸淨故로 覺塵이 淸淨하나니 如是乃至鼻舌身意도 亦復如是하니라
아는 의식이 청정한 까닭에 깨달은 티끌이 청정하나니 비·설·신·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7b01L
용성해 19) (1) 이것은 이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저 무정하고 완악한 허공이 소멸되고 각성이 뚜렷이 밝은 것은 마치 큰 태양이 허공중에 떠오르면 주위의 어두운 것이 일시에 없어져서 어두운 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렇게 대원각의 자성도 뚜렷이 밝은 까닭에 (2) 제8아뢰야식심阿賴耶識心이 청정하다. 비유하면, 투명한 보배구슬이 영롱하여 본래 청·황·적·백이 없음을 알면 그에 따라 나타나는 색깔도 모두 청정함을 알 수 있다. 아뢰야식심이라는 것은 가장 최초의 근원인 어두운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그 본체는 섞여서 허공이지만 그렇다고 또한 허공도 아니다. 무슨 말인가? 그 본체는 깨끗하여 아주 어두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따라 아주 어두운 허공도 있게 되고, 또한 공기의 변화와 물질의 생멸변천이 있게 되는 것이다. 각성의 근원이 청정하면 그것을 따라 있는 것이 모두 청정하게 되니 이것이 ‘제8식이 청정하다’는 말이다. (3)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보는 티끌이 청정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대답하기를, 눈으로 모든 경계를 대하여 청靑·황黃·적赤·백白·흑黑의 오색과 방方·원圓·장長·단短의 모든 것들을 분별하는데, 어떤 사람이 홀연히 일체 모든 생각을 쉬어 일체 분별이 없으면, 앞에 물건을 보기는 하지만 아무런 분별심이 없이 환하게 보는 당체가 곧 팔식의 상분相分이다. 그러나 팔식의 견분見分은 미세하여 참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팔식의 견분見分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깨끗하다고 한다. (4) 이 팔식견분八識見分이 오근문두五根門頭에 뚜렷이 비치는 그것을 대하여 ‘보는 티끌이 청정하다(見塵淸淨)’고 하는 말씀이다. 육식이 경계를 상대하는 색의 티끌을 ‘보는 티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팔식이 오근문두에 뚜렷이 비치는 상분相分의 티끌이 청정하기 때문에 전오식前五識에 의지하여 있는 안근眼根이 청정하며, (5) 그 전오식에 의지하여 있는 안근眼根이 청정하기 때문에, 그것에 의지한 팔식의 상분相分인 전오식이 청정하며, (6) 팔식의 상분相分인 오식이 청정하기 때문에, 제칠식의 위로 상대한 팔식 티끌이 청정하고, 아래에 상대한 육식 티끌이 청정한 것이다. 또 팔식심八識心이 청정한 까닭에 팔식견분八識見分에 상분相分이 된 전오식에는 듣는 티끌이 청정하며, (7) 팔식에 상분이 된 듣는 전오식의 티끌이 청정하기 때문에, 전오식에 의지해 일으킨 이근耳根이 청정하며, (8) 그 정묘색근淨妙色根의 이근耳根이 청정하기 때문에, 이근耳根에 의지해 있는 전오식이 청정하며, (9) 팔식이 청정하기 때문에, 팔식의 상분相分이 되는 코, 혀, 몸이 하나임을 깨달아 전오식이 청정하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 나누어 보더라도 코, 혀, 몸, 뜻이 모두 이와 같다.
20) 외부의 육진 경계(外境六塵)
(1) 가르침을 나타냄(標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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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선남자야,
(2) 몸의 안근(肉眼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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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淸淨故로
근이 청정한 까닭에
(3) 외부 색의 경계(外境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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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塵이 淸淨하며 色淸淨故로
색의 티끌이 청정하며, 색이 청정한 까닭에
(4) 외부의 소리(外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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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塵이 淸淨하나니
소리 티끌이 청정하느니,
(5) 향, 맛, 촉감, 법(四塵)이 통함(通四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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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味觸法도 亦復如是하니라
향, 맛, 촉감, 법이라 하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28b01L
용성해 20) 이것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이 청정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1) ‘선남자야’라고 하는 것은 적당한 근기(當機)에게 하신 것이다. (2) ‘근이 청정하다’는 말씀은 앞에서 식識에 의지하여 일으킨 안근眼根이 청정함을 말미암아 (3) 밖으로 경계를 상대함에 일체 형색에 티끌이 청정하다는 말이다. (4) 육식견분六識見分에 경계되는 일체 형색 티끌이 청정한 까닭에 (5) 코에 상대한 향기의 티끌과, 혀에 상대한 맛의 티끌과, 몸에 상대한 촉감의 티끌과, 뜻에 상대한 법의 티끌이 모두 눈에 대한 색과 같이 청정한 것이다.
21) 내외의 사대(內外四大)
(1) 앞의 글을 이어받음(牒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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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六塵이 淸淨故로
“선남자야, 육진이 청정한 까닭에
(2) 존재하는 상의 근본이 되는 지수화풍 사대(有相의 元料된 地水火風 四大)
MBC0001_0026_0001V0001P0029a01L
地大ㅣ淸淨하며 地淸淨故로 水大ㅣ淸淨하며 火大風大도 亦復如是하니라
지대가 청정하며, 지대가 청정한 까닭에 수대가 청정하며, 화대·풍대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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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1) 이것은 안으로(內) 사대의 몸과, 밖으로(外) 사대의 천지 세계가 청정하다는 말이다.
22) 세간의 모든 법(世間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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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四大ㅣ淸淨故로 十二處와 十八界와 二十五有가 淸淨하나니
“선남자야, 사대가 청정한 까닭에 십이처와 십팔계와 이십오유가 청정하나니
MBC0001_0026_0001V0001P0029a01L
용성해 22) 이것은 육도 중생의 마음과 경계가 모두 청정한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지·수·화·풍 사대가 청정하기 때문에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가지 근원들(六根)과 색·성·향·미·촉·법의 여섯 가지 티끌들(六塵)이 모두 합하면 열두 가지 처소(十二處)가 된다고 하셨다. 이러한 육근과 육진 사이에서 인식하는 것(六識)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십이처十二處라 하기도 하고 또한 인식하는 것(六識)이 육근과 육진 사이에서 자유롭게 출입하기 때문에 십이입十二入이라고도 한다. ‘십팔계十八界’라고 하는 것은 육근, 육식, 육진을 합하면 3×6은 십팔十八이 된다. 각기 그 경계를 나누어 보면 안근眼根은 아는 것(六識)과 지경을 나누고, 아는 것(六識)은 색과 더불어 경계(六塵)를 나누니 육근이나 육식이나 육진이나 낱낱이 모두 그러하여 십팔경계十八境界라 한다. 또한 ‘모두 원인하여 생겨난다’고 하니 아는 것(六識)은 육근六根을 원인하여 생겨나는 것이며, 여섯 가지 경계(六塵)로 원인하여 생겨나는 까닭에 인의因義는 인하는 뜻임.라 한다. 또 ‘종족의宗族義’라고도 하니 산속에 사는 짐승들이 각각 그 종류가 다르고, 바다 가운데 사는 물고기 무리가 각기 다른 종류들인 것과 같이 열여덟 가지 법(十八界)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십팔종족의十八宗族義라고도 한다. ‘이십오유二十五有’라고 하는 말은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향수해香水海 바다에 아수라 종류가 있으니 진심嗔心이 많고 신통이 거룩한 것임.와 동승신주, 서구다니, 남섬부주, 북구로주와 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범천, 무상천, 아나함천,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공처천, 식처천, 무소유천, 비상천, 비비상처천과 합하면 모두 이십오유二十五有가 된다. 이러한 것들은 환幻으로 있는 것이니 모두 청정대원각자성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이제 허공조차도 소멸되어 청정대원각이 원만한 까닭에 사대오온과 육근, 육진, 육식과 삼계, 이십오유가 모두 청정한 것이다.
저것이 청정한 까닭에 십력과 네 가지 두려워함이 없는 것과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지혜와 부처의 열여덟 가지 같지 아니한 법과 서른일곱 가지로 도를 돕는 법(三十七助道品)이 청정하느니 이와 같이 팔만사천 다라니문이 일체 청정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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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3) 위에서 말하는 것들이 모두 청정하기 때문에 여래의 십력十力이 청정하다고 하셨다. 그 힘을 말하는 것은 원한의 적(怨敵)을 무찔러 버리는 까닭에 ‘힘(力)’이라고 말한 것이다. 첫째는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을 아시는 것이다. 일체 모든 법의 인연과 과보를 다 알아서 일체 외도의 사견을 항복 받는 것으로 정견正見과 정행正行은 온전히 옳은 것이고, 사견邪見과 사행邪行은 그른 것이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업보지력業報智力이니 과거, 현재, 미래의 선업과 악업으로 그 과보를 받는 것을 모두 아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금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금생에 업을 지어 내생에 받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금생에 업을 지어 내후생에 받기도 한다. 셋째는 모든 선법禪法과 해탈解脫과 삼매三昧를 닦아 과보를 얻는 것을 아시는 것이다. 넷째는 모든 근기가 수승하고 하열함을 다 아신다. 다섯째는 가지가지 중생의 욕락을 아시어 부정한 것을 버리고 깨끗함을 증장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일찍이 일승종자, 삼승종자, 오승의 종자를 훈습한 것과 또 탐진치 등에 가지가지 욕심종자가 자신의 마음 안에 훈습熏習함을 다 아시고 즉시 제도할 것이며, 다른 때에 제도할 것을 다 아시며, 또 누가 제도할 것도 알며, 제도하지 못할 것도 아신다. 일곱째는 일체도一切道에 이를 것을 다 아신다. 일체의 선도, 악도, 일체 성도一切聖道가 이르러 가야 할 바를 다 아신다. 여덟째는 숙명宿命에 걸림 없는 지혜이다. 과거에 본래 살던 것과 본래 하던 일을 다 아신다. 숙명지宿命智에 세 가지가 있으니 모든 천신들은 다만 과거에 지내던 일만 알고, 그 업연인연이 상속함은 알지 못하여, 다만 숙명통만 있고 인과업연에 밝은 것이 없다. 성문들은 숙명통도 있고, 삼생 업연인과를 밝게 아는 것도 있는 까닭에 삼명육통三明六通이 있다. 부처는 통通, 명明, 력力이 있는 까닭에 무량세계 중에 일체중생의 숙세인연宿世因緣을 다 아신다. 아홉째는 천안지력天眼智力이니, 일체중생의 선악업연으로 여기서 죽고 저기서 나는 것을 다 아신다. 열 번째는 자기의 해탈도 아시고 또 중생의 누진열반漏盡涅槃도 다 아시는 것이다.
‘네 가지 무서운 바가 없다(四無所畏)’는 말은 첫째, 일체 법을 통달하여 삼계의 법왕이 되신 까닭에 법에 대하여 두려움(怖畏)이 없다. 둘째는 번뇌의 마음과 습기가 모두 다 소멸되어 두려움이 없다. 셋째는 일체 장애가 되는 법을 통달하여 두려움이 없다. 넷째는 성스러운 도(聖道)를 설법하여 괴로움의 도(苦道)를 해탈케 하시니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네 가지 걸림이 없는 지혜(四無碍智)’의 첫째는 교법(義)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지혜이다. 둘째는 법에 걸림이 없는 지혜이다. 셋째는 언사言辭에 통달하여 걸림 없는 지혜이다. 넷째는 위의 세 가지 지혜 가운데에 걸림이 없이 설법을 잘하는 지혜이다.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이라는 것은 십력十力, 사무소외四無所畏, 사무애지四無礙智를 합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이승二乘성문승과 연각승임.들에게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지만, 근본적으로 십팔불공법은 이승과 함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첫째, 제불諸佛의 몸을 잃지 아니함이다. 둘째, 제불諸佛의 입을 잃지 아니함이니, 계정혜戒定慧를 성취하여 대비로 모든 죄의 인연과 습기를 소멸하는 까닭이다. 셋째, 제불의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으로 사념처四念處를 수습修習하여 마음에 얻고 잃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념처는 몸이 부정한 것, 느낌이 부정한 것, 마음이 무상한 것, 법이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넷째, 부처님(佛)께서 부귀빈천과 원친怨親을 모두 평등하게 여기는 것이니 중생의 자성이 본래 청정한 까닭이다. 다섯째, 마음에 동정動靜이 없어 항상 일정하다. 여섯째,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시기를 모두 다 알아 생각생각에 조금의 거칠고 미세하고, 깊고 얕은 것을 모두 헤아려 안다고 하는 상相이 공空하다. 일곱째, 모든 선법善法을 수습하여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여덟째, 정각正覺을 성취한 후에도 정진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아홉째, 제불과 더불어 일체 지혜가 상응相應하는 것이다. 열 번째, 삼세제불의 일체 지혜와 십력, 사무외, 사무애지를 성취하여 지혜가 줄어듦이 없는 것이다. 열한 번째, 무루해탈지로 상응相應하는 까닭이다. 열두 번째, 해탈 가운데에 지혜가 한량이 없어 지견知見이 구족한 것이다. 열세 번째, 불佛의 신업身業이다. 열네 번째, 불佛의 구업口業이다. 열다섯 번째, 불佛의 의업意業이니 모두 지혜를 따라 행하여 일체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것이다.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번째는 지혜로써 과거, 현재, 미래를 통달하여 장애가 없는 것이다.
‘삼십칠종으로 도를 돕는다(三十七助道品)’는 것은 사념처四念處를 수행하는 중에 몸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는 최초의 종자를 부정하니 어째서 그러한가? 당초에 업의 원인(業因)으로 생겨나는 것이며, 또 부모의 정혈로 몸이 된 것이다. 하나는 머물러 사는 곳이 더러운 것이니, 모태 중에 들어가 생장生藏과 숙장熟藏 사이에 있던 것이다. 또한 아홉 개의 구멍에서 더러운 물이 항상 흐르는 것이다. 또 몸에는 서른여섯 가지의 부정한 것이 항상 있는 것이다. 또 필경에는 목숨을 버리고 팽창하여 무너지는 것이니, 모두 이 몸이 부정한 것이다. 그러하므로 세 가지 고통스러운 것을 볼 것이니 이 몸이 모두 고통(苦)의 덩어리이다. 고통 중에 고통을 받으니 즐거움(樂)을 받는 것도 고통이 되는 것이다. 즐거움이 극진하면 슬퍼함이 생겨나기 때문에 버리는 것을 받는 것도 고통이 되는 것이다. 마음도 무상한 것이니 어째서 그러한가? 생멸번뇌가 생각생각에 무상한 것이다. 또 모든 법이 내가 아니니 자세히 관찰하여 보라. 어떤 법이 내가 되는가? 범부는 그 근본을 관찰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항상 전도顚倒된 것이다.
네 가지 정근(四正勤)을 수행 하여야만 할 것이다. 첫 번째, 악惡이 생겨나기 전에 막아서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두 번째, 이미 생긴 악惡은 끊어서 계속하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선善이 생겨나지 아니하면 선善이 나게 할 것이다. 네 번째, 이미 선심善心을 발하였거든 부지런히 증장增長하게 할 것이다. 네 가지를 부지런히 수행하여 바르게 수행하니 ‘정근正勤’이라고 한다.
사신족四神足이라는 것은 욕欲, 근勤, 심心, 관觀이다. 첫 번째, 욕欲은 수행함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근勤은 쉬지 않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심心은 마음이 항상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네 번째, 관觀은 지혜이다. 이와 같은 것을 닦음으로써 곧 신통을 얻게 되어 이름을 ‘신족통神足通’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원하는 것을 장애 없이 하게 되어 일순간에 시방세계를 자유롭게 다니며 곧 신족神足에 자유로워 등공자유登空自由하게 된다.
오근五根이라는 것은 신信, 진進, 염念, 정定, 혜慧를 말하는 것이다. 첫 번째, 신信은 진리를 믿는 것이다. 두 번째, 진進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 번째, 염念은 밝은 진리를 기억하여 잊지 아니하는 것이다. 네 번째, 정定은 진리에 마음을 전념(專注)하여 일경이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 혜慧는 진리에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간택하는 것이다.
오력五力이라는 것은 앞의 오근五根이 증장하여 오력五力이 생겨나니, 일체 마왕이나 범천왕 등이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내가 그것을 굴복시키는 까닭에 ‘역力’이라고 한다.
칠각분七覺分이라는 것은, 첫째, 염念은 깨달음의 생각에 집중(專注)해서 모든 선법善法을 잃지 않는 것이다. 둘째, 법法을 가려서 깨닫게 되는 뜻이다. 셋째, 부지런히 정진해서 해탈을 얻는 것이다. 넷째, 마음이 용열勇悅해져서 몸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다섯째, 편안해져서 거친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다. 여섯째, 선정에 들어 산란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일곱째, 영원히 탐내고 근심하는 것을 버리게 된다. 이것은 견도분見道分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팔정도八正道라는 것은, 팔사견八邪見을 뒤집으면 팔정도가 된다. 바른 소견(正見), 바른 생각(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업(正業), 바른 명(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관념(正念), 바른 선정(正定)이다.
이상 위의 것들을 합하면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 된다. 대원각자성이 청정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청정하게 된다. 다라니는 만법을 총지總持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일체 실상인 성품이 청정한 까닭에 한 몸이 청정하며, 한 몸이 청정한 까닭에 많은 몸이 청정하며, 많은 몸이 청정한 까닭에 이와 같이 시방 중생의 원각이 청정하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2b01L
용성해 24) 이것은 몸과 세계가 원만하여 청정함을 나타내신 것이다. 성공진여性空眞如는 곧 상相이 아니며, 이름을 진실한 상(實相)이라 한다. 진실한 상(實相)은 본래로부터 오는 것으로 자성이 청정하여 일체 만법이 더럽힐 수 없게 된다. 한 사람이 본연 청정한 성품을 깨달으면 이 사람의 일신一身이 청정한 것이다. 이 사람이 자기의 본원성을 찾고 나면 자신과 같아서 일체중생도 동일同一하게 청정하게 된다. 지공 선사께서 말하길, “나의 몸이 공함으로써 제법도 공한 것이니, 천품만류千品萬類가 모두 같다.”라고 했다. ‘많은 몸이 청정하다(多身淸淨)’는 말은 한 사람이 도를 닦으면 많은 사람이 성불한다는 말이 아니다. 한 사람이 성품을 깨치면 일체중생의 본성이 청정함을 안다는 말이다.
“선남자야, 한 세계가 청정한 까닭에 많은 세계가 청정하며, 많은 세계가 청정한 까닭에 이와 같이 허공을 다하여 삼세를 뚜렷이 싸서 일체가 평등하여 청정부동하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3a01L
용성해 25) 세계는 우리가 사는 의보依報를 말한 것이다. 어째서 세계가 청정하게 되는가? 대답하기를, 세계가 깨끗하고 더러운 것은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자의 청정한 안목으로 보면 세계가 청정한 것이다. 한 사람이 최청정법계最淸淨法界를 증득하면 어찌 한 세계만 청정하겠는가? 무량세계가 청정할 것이며, 어찌 무량세계만 청정하겠는가? 허공까지라도 청정할 것이며, 어찌 허공만 청정하겠는가? 삼세까지라도 모두 청정하게 되니 일체가 평등하여 청정부동淸淨不動하게 된다.
26) 역으로 미루어 추측함(逆推)
(1) 허공을 각성에 비유함(空比覺性)
MBC0001_0026_0001V0001P0033a01L
善男子야 虛空이 如是平等不動할새 當知覺性이 平等不動하며
“선남자야, 허공이 이와 같이 평등부동하니 마땅히 각성이 평등부동함을 알 것이며,
(2) 사대로써 각성에 비유함(以四大比覺性)
MBC0001_0026_0001V0001P0033b01L
四大不動故로 當知覺性이 平等不動하며
사대가 부동한 까닭에 마땅히 각성이 평등부동함을 알 것이며,
(3) 일체로써 각성에 비유함(以一切比覺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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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乃至八萬四千陀羅尼門이 平等不動할새 當知覺性이 平等不動하니라
이와 같이 팔만사천 다라니문이 평등부동하니 마땅히 각성이 평등부동함을 알 것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3b01L
용성해 26) 이것은 세간의 허공, 사대, 일체 모든 법이나 또 출세간의 진여, 보리, 열반, 모든 바라밀법을 하나하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모두 각성覺性에서 비롯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모두 청정부동함을 알면 마땅히 각성이 평등하여 부동함을 알게 될 것이다. 비유하면, 하나의 등불로써 연달아 불을 붙여 백천 개의 등불을 만들면, 하나하나 등불의 광명이 청정하여 밝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러한 것으로 보더라도 본래의 등불은 청정부동한 것임을 알 것이다.
“선남자야, 각성이 두루 원만하고 청정부동하여 뚜렷하게 변제가 없는 까닭에 마땅히 육근이 법계에 두루함을 알 것이며, 근根이 두루한 까닭에 마땅히 육진이 법계에 두루함을 알 것이며, 진塵이 두루한 까닭에 마땅히 사대가 법계에 두루함을 알 것이며, 이와 같이 다라니문이 법계에 두루하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4a01L
용성해 27) 이것은 사상事相이 이성理性에 대해 융통함을 얻은 것으로, 이理와 사事가 서로 걸림이 없는 법계임을 나타낸 것이다. 비유하면, 물의 근원이 청정하게 되면 물의 흐름도 청정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각성이 청정하여 원만하면 그 각성을 따라 나타난 육근, 육진, 사대, 출세간의 무량한 다라니문도 청정하여 법계에 두루하게 된다.
“선남자야, 저 묘각의 성리가 두루 원만함을 말미암은 까닭에 근성根性과 진성塵性이 무너짐이 없고, 잡됨이 없으며, 근과 진이 무너짐이 없는 까닭에 이와 같이 다라니문이 무너짐이 없고 잡됨이 없으니, 백천 등불의 광명이 한 집에 비치면 그 광명이 두루 가득하여 무너짐이 없고 잡됨이 없는 것과 같은 듯하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4a01L
용성해 28) 이것은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를 머금고, 일체 티끌 가운데에 낱낱이 원래 그러함을 밝히신 것이다. ‘묘각의 성리가 두루 원만하다’는 말은 본연성本然性이 두루 가득함을 가리킨 것이다. ‘근성根性, 진성眞性이 무너짐이 없고 잡됨이 없다’는 말은 근根은 육근성리六根性理나 육진성리六塵性理가 낱낱이 법계에 가득하여, 서로 파괴하지 아니하며 혼잡하지 않으니, 단지 세간에 근진식계根塵識界만 사사무애事事無礙할 뿐 아니라, 출세간의 다함이 없는(無盡) 다라니문도 모두 그러하다고 한 것이다. 이것을 비유하면, 하나의 등불이 한 방 안에 켜지면, 그 광명으로 인하여 방 안에 불빛이 가득하다. 또한 백 개의 등잔이나, 천 개의 등잔도 한 방 안에 켜면, 그 광명으로 인하여 모두 방 안에 불빛이 가득해지니, 하나하나의 등불 광명이 다른 등불 광명을 파괴하고 가득히 찬 것도 아니며, 또 서로 등불이 섞여서 혼잡한 것도 아니다. 나아가 하나의 등불로부터 백천 개의 등불이 나뉘어 있으나 그 등불이 하나하나가 광명이고 체상體相이며 하나의 모양이다. 방 가운데 허공은 진법계眞法界에 비유하고, 등불광명은 육근육진에 비유한 것이다. 또 그 광명이 여러 광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대원각진성이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를 포용包容함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광명이 여러 광명을 포용하고, 여러 광명이 한 광명을 포용하고, 서로서로 포용하여, 그 성性, 상相, 체體, 용用, 대소大小, 본말本末이 걸림 없는 것은 우리 대원각자성이 이와 같이 사사법법事事法法에 걸림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선남자야, 각을 성취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보살이 법과 더불어 얽매이지 아니하며, 법을 해탈하고자 구하지 아니하며, 나고 죽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며, 열반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계 가지는 것을 공경하지 아니하며, 금함을 헐어 버리는 것을 미워하지 아니하며, 오래 익힌 것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처음 배우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일체가 각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안광眼光이 앞 경계에 밝으매 그 광명이 원만함으로써 미워하고 사랑함이 없는 것과 같은 듯하니 무슨 까닭인가? 광명의 체體가 둘이 아니어서 미워하고 사랑함이 없는 까닭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5a01L
용성해 29) (1) 각覺을 성취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위에서는 이미 각을 원만히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부처의 경계(佛境)와 하나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 부처님의 마음 씀(佛之用心)이 허공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법에 얽혀 속박된 것도 없으며, 법을 해탈하고자 구하는 것도 없으며, 죽고 사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없으며, 열반을 사랑하는 것도 없으며, 계행을 가진다고 하여 범부들과 같이 공경심이나 희망심도 일으키지 아니하며, 엄격하게 금지하신 계행을 파한다고 범부와 같이 미워하지도 아니하며, 오래 공부를 익혀 많이 하였다고 중히 생각하지도 아니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초학初學이라고 하여 가볍게 여기는 마음(輕慢心)도 내지 않는다. 어째서 그러한가? 일체 성인이나 범부나 모두 각성覺性은 동일한 하나이다. 평등하여 둘이 아니니 참으로 그 마음 씀(用心)이 허공과 같다. 비유하면, 눈의 광명과 같이 사람 눈의 광명이 염정染淨을 모두 거울같이 비추어 치우침이 없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이 보살과 중생이 마음을 수습하여 성취함을 얻은 자는 닦음이 없으며, 또한 성취함이 없어서 원각이 널리 비치며 적멸이 둘이 없는지라. 저 가운데에 백천만억 아승지 불가설 항하사 제불 세계가 마치 허공 꽃이 어지러이 일어나고 어지러이 멸하는 것과 같은 듯하여 즉한 것도 아니요, 여읜 것도 아니며, 얽어맨 것도 아니요, 벗어난 것도 아니니 비로소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이며, 생사 열반이 마치 어젯밤 꿈과 같음을 알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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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30) 원각의 성품에 두 가지 뜻이 있다. 대원각성품이 널리 비치는 것은 용用이 되는 것이며, 대원각성품이 고요히 멸한 상相은 체體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각이 널리 비치며 적멸이 둘이 없다’고 하시니, 오직 여여如如한 체體와 여여한 지혜가 뚜렷이 밝게 비치는 가운데에는 제불 세계가 마치 허공 꽃과 같아서 모두 진실한 모습(相)이 아니다. 이러한 경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이며, 생사 열반이 꿈과 같음을 알 것이다.
31) 진성과 동일하여 칭합함(稱實同)
(1) 앞의 법문을 이어받음(躡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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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如昨夢故로
“선남자야, 어제 꿈과 같은 까닭에
(2) 모든 진성에 칭합함을 밝힘(惣明稱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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當知生死와 及與涅槃이 無起無滅하며 無來無去하며
마땅히 알아라. 생사와 열반이 일어남이 없고, 멸함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며,
(3) 별도로 증득한 바를 가리킴(別指所證)
MBC0001_0026_0001V0001P0036a01L
其所證者ㅣ無得無失하며 無取無捨하며 其能證者ㅣ無作無止하며 無任無滅하며
그 증득한 바도 얻음이 없고, 잃음도 없으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그를 능히 증득하는 자도 지음도 없으며, 그침도 없으며, 임의로 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4) 능소를 모두 잊음(雙泯能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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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此證中에 無能無所하야 畢竟無證하며 亦無證者하야
이 증득 가운데 능도 없고, 소도 없어서 필경에 증득함도 없으며, 또한 증득한 자도 없어
(5) 모든 실상을 결론지음(惣結實相)
MBC0001_0026_0001V0001P0036a01L
一切法性이 平等不壞하니라
일체 법성이 평등하여 무너지지 않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6b01L
용성해 31) (1) 위에서 생사와 열반이 꿈과 같음으로 보고, 곧 원각의 실다운 성품에 칭합하는 까닭에 (2) 생사는 본래 공적空寂한 것으로, 미혹한 때에도 생사가 없는 것이며, 깨친 때에도 열반이 없는 것이다. 원각자성은 기멸거래起滅去來가 없는 것이니, (3) 진리를 증득하여도 득실취사得失取捨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증득한 사람도 모든 분별을 여의어서 조작하는 병(作病), 그치는 병(止病), 뜻대로 하는 병(任病), 멸하는 병(滅病)이 없는 것이다. (4) 이 가운데에 증득하는 사람과 또한 증득할 대상의 두 가지가 없기 때문에 (5) 일체 법성이 평등하여 무너지지 않는다.
“보안이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모든 중생의 몸과 마음이 다 환幻과 같아서 신상身相은 사대四大에 속하고, 심성心性은 육진六塵으로 돌아가니, 사대四大의 본체가 각각 흩어지면 무엇이 화합한 것이겠는가?이것은 공한 것으로 보는 것임. 이와 같이 점점 수행하면 일체가 다 청정하여 움직이지 않고 법계에 두루하리라.법계관 짓고, 그치고, 임의로 하고, 멸한 것(作止任滅)이 없으며, 또한 증득하는 자도 없으며, 일체 부처의 세계가 마치 허공 꽃과 같아서, 삼세가 모두 평등하여 필경에 거래去來가 없으니, 초발심 보살과 말세 중생이 불도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수습할지니라.”
4. 금강장金剛章
1) 위의를 갖추고 나아가 물음(進問威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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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에 金剛藏菩薩이 在大衆中하사 卽從座起하사 頂禮佛足하시고 右繞三匝하시고 跪叉手하사
이때에 금강장보살이 대중 가운데에서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시고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도시고 무릎을 꿇어 차수하여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중생이 본래 부처라면보현장의 본문에서 취함. 무슨 까닭으로 다시 일체 무명이 있나이까?문수장, 보현장 두 장의 본문에서 취함. 만일 모든 무명을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어떤 인연으로 여래께서 다시 본래 성불을 말씀하시나이까?반대로 힐문함. 시방의 이생異生중생이 본래 불도를 이루고 뒤에 무명을 일으킨다면 일체 여래는 어느 때에 다시 일체 번뇌를 일으키시나이까?
오직 원컨대 막힘이 없는 큰 자비(無遮大慈)를 버리지 마시고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비밀장을 열어 〔모든 보살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는 신심(決定信)을 얻게 하시며〕, 말세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수다라 가르침의 요의법문을 얻어 듣고 영원히 의심하고 뉘우침을 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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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 2) 1절과 2절은 쉽게 알 수 있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 3) 금강장보살이 묻는 뜻은 여래께서 문수에게 원각청정대다라니의 인지법행因地法行을 말씀하여 영원히 무명을 끊어야 성불한다 하시고, 또 방편 점차를 말씀하시어 법회 대중이 모두 청정한 눈을 얻었더니, 4) 뜻밖에 모든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이라고 하시니 세 가지 의심이 난다고 한다. 세존께서 보안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이며 생사열반이 어젯밤 꿈과 같다 하신 것과, 문수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명을 끊어야만 성불한다는 말씀과, 보현장에서 무시의 환무명이 원각심에서 건립하다는 말씀의 뜻과 비교하여 보면 대단히 어긋나게 된다. 첫째 의심은, 보안장에서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문수, 보현에게 일체 무명을 말씀하셨는가? 둘째 의심은, 중생들이 무명이 본래 있는 것이라면, 무슨 이유로 중생들이 본래 성불한 것이라 말씀하셨는가? 셋째 의심은, 중생들이 본래 불도를 이루었다가 다시 무명을 일으키어 중생이 된 것이라면, 여래께서는 어느 때에 다시 번뇌를 일으켜 중생이 되시는가? 5) 대자비로 의심하고 뉘우침을 끊게 해 달라는 뜻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금강장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능히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매우 깊고 비밀한 구경방편을 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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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6) 비밀에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일승의 묘법(一乘妙法)을 점교漸敎 가운데에서는 오래도록 말씀하지 않다가 이제 비로소 말씀하셨기 때문에 비밀구경秘密究竟최후라는 말과 같음. 방편이라 한다. 두 번째는 여래가 곧 비밀이니 비장秘藏을 증득하여 능소能所가 둘이 없는 까닭에 삼업三業이 비밀한 것이다. 신밀身密은 색이 아닌데 색을 나타내는 것이 마니보배구슬 같고, 어밀語蜜은 설법한 말 가운데 한량없는 법을 연설함이 산골짜기의 메아리산속에서 소리치면 마주쳐 소리 나는 것 소리와 같고, 의밀意密은 무심하되 인연을 따라 사법事法을 성취하는 것이 우렛소리(天鼓)가 자연히 우는 것과 같기 때문에 ‘비밀장’이라고 한 것이다.
“선남자야, 일체 세계의 시작과 종말, 생겨나는 것과 소멸하는 것, 앞과 뒤, 유와 무, 모이고 흩어진 것, 일어나고 그치는 것이 염념이 서로 이어져 있어 고리 돌듯 가던 데로 되돌아오니 가지가지 취사하는 것이 모두 윤회이니라.
11) 허망하게 윤회하면 진성도 따라 유전함(眞隨妄轉)
MBC0001_0026_0001V0001P0039a01L
未出輪廻코 而辨圓覺이면 彼圓覺性이 卽同流轉하리니 若免輪廻댄 無有是處니라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각을 가리려 하면 저 원각성리가 곧 함께 유전하게 되니 만일 윤회를 면하려고 할진대 옳은 곳이 있음이 없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39a01L
용성해 10) ‘일체 세계’라는 말씀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일체一切’라고 한다. ‘세世’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계속해서 옮겨가며 바뀌는 까닭에 ‘세世’라고 한다. ‘계界’라는 것은 국토가 낱낱이 이 국토의 경계와 저 국토의 경계의 구분이 있기 때문에 ‘계界’라고 한다. 이러한 두 가지 뜻을 합하여 ‘세계世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시始’는 처음에 일어난 것이요, ‘종終’은 결과 지어 마치는 것이다. ‘생生’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요, ‘멸滅’은 계속해서 허물어져 소멸되어 가는 것이다. ‘앞(前)’이라는 말은 지나가는 것이요, ‘뒤(後)’라는 말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유有’는 세계가 머물러 있는 겁이요, ‘무無’는 세계가 공한 겁이다. ‘취取’는 세계가 이루는 겁이요, ‘산散’은 세계가 흩어지는 겁이다. ‘기起’는 곧 앞에서 행하는 것이요, ‘지止’는 곧 조복調伏 받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개미가 쳇바퀴 돌듯이 끊임없이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모두 윤회가 된다. 11) 비유하면, 꿈 가운데서는 사람이 온갖 것을 다 분명하게 볼 수 있을지라도 그렇게 보고 듣는 것이 모두 꿈이어서 꿈에서 깨고 난 후 사람의 경계가 아니다. 이러한 것과 같아서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각자성을 가리려고 하면 원각마저도 유전하는 한 가지가 될 것이다. 꿈에 보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껴지나, 그 실재한다는 것 또한 꿈이다. 인간세상을 버리고 천당을 취하는 것이든지, 사바세계를 버리고 극락세계를 취하든지, 이 몸을 버리고 별도로 청정법신을 취하든지, 이러한 것이 모두 꿈꾸는 자의 경계요, 꿈에서 깨어난 사람의 경계가 아니다.
12) 비유하여 밝힘(喩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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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如動目이 能搖湛水하며 又如定眼이 猶廻轉火하니 雲駛月運하고 舟行岸移도 亦復如是하니라
“비유하면, 눈을 움직이면 맑은 물도 흔들리는 것과 같으며, 또 눈을 고정시킨 채 돌아가는 불을 바라보면 마치 불의 동그라미가 돌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구름이 하늘에서 떠가고 있는데 달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배를 타고 가는데 양쪽의 언덕이 이동하고 있는 것 같음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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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2) 이것은 자성自性을 원각하지 못하면 이러한 망견妄見도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비유하면, 맑은 물은 요동치지 않으나, 깜빡깜빡거리는 눈으로 보면 물이 요동치는 듯한 것을 말한다. 또한 지팡이 끝에다 불을 붙여 휘두르면 불이 둥글게 바퀴처럼 돌게 되니, 이것은 실제로 바퀴가 있는 것이 아닌데 안식眼識이 둔해졌기 때문에 불에 바퀴가 있는 듯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구름이 하늘에 떠다니는 것을 보고, 달이 움직여 빨리 달아난다 하고, 배가 가는 것을 언덕이 옮겨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모든 것이 빙빙 돌며 쉬지 아니하면 저 물건이 먼저 멈추어도 오히려 얻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수레바퀴처럼 생사에 돌고 도는 때(垢) 묻은 마음이 일찍이 청정하지 못하고서, 부처의 원각을 보아 되돌아가고자 하는가?
14) 앞의 의혹을 가리켜 결론지음(結指前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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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로 汝等이 便生三惑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너희들이 문득 세 가지 의혹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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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3) 이것은 움직이는 눈과 떠다니는 구름과 흘러가는 배가 멈추지 아니하면, 맑은 물이나 불이나 달이나 언덕이 아무리 먼저 멈추려 해도 가능하지 못하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자신의 망견妄見을 쉬지 않고 부처의 원각경계가 본래 윤회가 아님을 보려 하며 그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보는 것이 망령되면 보이는 것 또한 모두 망견妄見이다. 14) 이러한 이유로 너희들이 세 가지 의혹을 내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컨대 환예幻翳는 눈의 가린 병임.로 망령되이 허공에 꽃을 보다가, 환예가 만일 없어지면 가히 이 가린 것이 이미 멸하니 어느 때에 다시 일체 모든 가린 것을 일으키리오? 무슨 까닭인가? 눈의 가림(翳)과 허공 꽃(空華)의 두 가지 법눈의 환으로 가린 병과 허공의 꽃과 이 두 가지 법이 상대가 아닌 까닭이니라.본래 없는 것이라 상대할 것이 아니로다.
또한 공화空華가 저 허공에 멸할 때에 가히 허공이 어느 때에 다시 공화를 일으키리오? 무슨 까닭인가? 허공에 본래 꽃이 없는 것이니 기멸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니라.
(3) 법에 합함(法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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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死涅槃은 同於起滅이나 妙覺圓照는 離於華翳이니라
생사열반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起滅)과 같으나 묘각원조묘각은 본연성이요, 원조는 뚜렷이 밝은 것는 화예허공 꽃과 눈병 나서 가린 것를 떠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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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5) 이 장은 비유로써 세 가지 묻는 의혹을 끊어 주신 것이다. 만일 무명에 의해서 중생이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무명 때문에 중생이 있는 것이니 어찌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이라 하셨는가? 불타께서 비유로써 대답하시길, 허공의 꽃이 눈을 가린 눈병으로 인해 있는 것을 깨달으면 허공에 본래 꽃이 없는 것이니, 어찌 중생이 본래 성불한 것을 의심하겠는가? 또 허공에 본래 꽃이 없으니 눈병으로 인하여 꽃이 있는 것이라면 눈병만 나으면 허공 꽃은 다시 없는 것이다. 어찌 성불한 뒤에 다시 번뇌를 일으켜 중생이 될 것을 의심하는가? 불타께서 이와 같이 대답하시니 세 가지 의혹이 일시에 다 없어질 것이다. 중생이 본래 성불하였으면 어찌 다시 무명이 있으며, 무명이 있다면 어찌 중생이 본래 성불하였다 하시는가? 지금 모든 중생이 다 성불하고 다시 중생이 된 것이라면, 여래께서는 어느 때에 다시 중생이 되시는가? 이와 같은 의문이 일시에 다 해결되었다. 이것을 비유로 말하면, 환幻은 무명망견無明妄見에 비유한 것이고, 공화空華는 생사와 열반에 비유한 것이며, 허공은 묘각진심妙覺眞心에 비유한 것이다.이것은 첫 번째 의혹에 대해 대답하신 것
“선남자야, 마땅히 알아라. 허공은 잠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잠깐 없는 것도 아니니라. 하물며 여래 원각묘심에 수순함이 허공의 평등 본성이겠는가?”
MBC0001_0026_0001V0001P0041b01L
용성해 16) 이것은 ‘어느 때에 여래께서 다시 번뇌를 일으켜 중생이 되시는가?’라는 의문에 대하여 거듭 의심을 풀어 주려고 하는 말이다. 세간의 허공도 오히려 환화幻化의 기멸起滅을 따르지 않는데, 하물며 대원각의 참 밝은 마음이 완악한 공(頑空)이 아니라 허공의 본성체이다. 『능엄경』에 말씀하시길, “공空이 대각大覺 가운데에서 생겨난 것이라.” 하니 제불은 이것을 증득하였으니 어찌 미혹함을 일으켜 다시 중생이 되겠는가? 망상을 내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이것은 두 번째 의혹에 대해 대답하신 것
“선남자야 금에 불순물을 녹이면 금이 녹이는 것으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미 금을 이루면 거듭 불순물이 되지 아니하여 무궁한 때를 지어내도 금의 성질은 무너지지 아니한 것과 같다. 마땅히 본래 성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여래 원각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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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7) 이것은 공행문功行門을 들어 대답하신 것이다. 금은 불순물을 녹였기 때문에 오직 순금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본래 있는 금이 불순물을 녹임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력功力을 들여서 불순물을 다 녹이면 오직 순금만은 무궁한 시간을 지나도 다시 불순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불순물을 녹여 성취한 순금일지라도 본래 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래 원각도 이와 같아서 중생이 본래 성불한 존재이나, 무명 혹업惑業에 어두워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공력功力을 들여서 힘써 닦아 정각을 성취하면, 무궁한 세월을 지내도 다시 범부가 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그 각성이 본래 성불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금은 근본 법신불法身佛에 비유하고, 녹여서 단련하는 것은 보신불報身佛에 비유하고, 가지가지 금의 성질을 이루는 것은 화신불化身佛에 비유한 것이다.이것이 세 번째 의혹에 대해 대답한 것임.
“선남자야, 일체 여래의 묘원각심은 본래 보리와 열반이 없으며, 또한 성불한 것과 성불하지 못한 것이 없으며, 망령되이 윤회하는 것과 윤회하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42a01L
용성해 18) 이것은 묘원각성의 당체가 두루하고 원만해서(偏圓) 끊어짐을 가리켜 바로 열반 생사와 성불과 성불하지 못함이 없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19) 얕은 지혜로 깊은 깨달음을 증득하기 어려움(淺智難造深)
(1) 소승 성인의 이치와 지혜를 대응함(小聖理智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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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但諸聲聞의 所圓境界는 身心語言이 皆悉斷滅하야도 終不能至彼之親證한 所現涅槃이어든
“선남자야, 다만 모든 성문의 뚜렷하게 증득한 경계는 몸과 마음과 언어가 모두 단멸하였다 하더라도 마침내 친히 증득하여 나타난 열반에는 도달하지 못하거늘
(2) 범부의 마음으로 진각을 대응함(凡心眞覺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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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況能以有思惟心으로 測度如來의 圓覺境界따녀
어찌 하물며 사유함이 있는 마음으로써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린단 말인가?
(3) 비유를 들어 말함(擧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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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取螢火하야 燒須彌山하야도 終不能著인달하야
마치 반딧불을 취하여 수미산을 불사르려 하여도 마침내 능히 붙이지 못하는 것과 같은 듯하여
(4) 유정을 나타냄(顯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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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輪廻心으로 生輪廻見하야 入於如來의 大寂滅海하야도 終不能至하리니
윤회심으로써 윤회소견을 일으켜 여래의 대적멸해大寂滅海에 들어가려 하여도 마침내 능히 이르지 못하리니
(5) 참으로 망심을 쉼(誠息妄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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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로 我說 一切菩薩과 及末世衆生이 先斷無始의 輪廻根本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내가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이 먼저 무시윤회의 근본을 끊으라고 설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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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9) (1) 이 장은 원각묘심圓覺妙心은 마음과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임을 보인 것이다. 이승二乘들은 공空에 잠기고 고요한 데 걸리어 몸을 재와 같이 하고 제7식심第七識心을 제거하여도, 제8담식해第八湛識海에 걸리어 오히려 능히 남음이 없는 열반(無餘涅槃)의 이치에 이르지 못한다.근기가 하열한 소승은 남음이 있는 열반에 처하여 아직 남음이 없는 열반을 증득하지 못함. (2) 어찌 범부의 사유 분별심으로써 여래의 원각경계를 헤아리겠는가? 소승 성인(小聖)의 참 지혜라도 능히 소승 성인의 자증열반自證涅槃 이치에 이르지 못하니, 이승을 초월한 여래의 원각경계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3) 반딧불로 수미산을 불붙여 태우려 한들 될 수 있는가? (4) 윤회심으로 여래의 대적멸해大寂滅海에 들어갈 수 없다. (5) 먼저 그 윤회하는 근본을 끊어야 한다.
“선남자야, 사유思惟는 이리저리 생각하는 마음를 하는 것은 분별하는 마음을 따라 일어난 것이니, 모두 이 육진의 망상 인연 기운이요, 실다운 마음체가 없느니라. 이미 공화와 같은 것이니 이 사유하는 것으로써 부처의 경계를 가리려 한다면 마치 공화空華가 공과空果를 맺는 것과 같아서 전전히 망상이라 옳은 곳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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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0) 이것은 사유란 망령된 알음알이이니, 식심識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식심識心은 심왕心王이 되고, 따라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경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 육진 경계에 걸리는 망상 분별을 반연하는 기운이니 실다운 것이 없는 것으로, 허공 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부처의 경계를 가리려 한다면 허공 꽃에서 과실이 맺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망상 가운데 참으로 망상이다.
21) 망상의 근본을 가리킴(指妄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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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虛妄浮心이 多諸巧見이라 不能成就圓覺方便하나니結問不當理 如是分別이 非爲正問이니라
“선남자야, 허망하고 들뜬 마음은 모든 공교한 소견이 많은 것이라. 능히 원각방편을 성취하지 못하느니질문의 부당한 이치를 결론지음 이와 같이 분별로는 바르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니라.”
“금강장이여, 마땅히 알아라. 여래적멸성은 일찍이 시작과 끝이 없으니 만일 윤회심으로써 사유하면 곧 선복旋復은 회회 도는 것함이라. 다만 윤회 지음에 이르고 능히 불해佛海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이상은 의심을 일으키는 근본을 반복한 것임. 비유하면, 금의 불순물을 녹이는 것 같아서 금은 녹이는 것으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비록 다시 본래 금이나 마침내 녹이는 것으로 성취된 것이니, 한번 진금의 체를 이루면 다시 거듭 불순물이 되지 아니하느니라.이상은 현재 일으킨 의심을 비유해서 해석한 것임. 생사와 열반과 범부와 제불이 한가지 공화상이니 사유도 오히려 환화이온데 어찌 하물며 허망된 것을 힐난하리오?이상은 얕은 지혜로는 깊은 깨달음을 증득하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임. 만일 능히 이 마음을 요달한 연후에 원각을 구할지니라.이상은 부당한 이치의 질문을 결론짓는 것임.”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널리 보살을 위하시어 비밀장을 열어 모든 대중으로 하여금 깊이 윤회를 깨치게 하소서.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게 하사 능히 말세 일체중생에게 무외도안無畏道眼을 베푸시며, 저 대열반에 결정신決定信을 내어 다시 거듭 윤전경계를 좇아 순환견循環見을 일으키지 아니하게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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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 ‘비밀장’이라는 말은 일찍이 말씀하지 않은 것을 이제야 말씀한다는 말이다. ‘깊이 윤회를 깨친다’는 말은 여래께서 금강장보살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배가 지나가면 언덕이 옮겨 간다’는 말을 듣고 망견妄見으로부터 윤회함을 깨쳤다는 말이다. ‘무외도안無畏道眼’이라는 말은 혜안慧眼과 법안法眼을 말씀하신 것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여래의 대적멸해에 노닐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여야 마땅히 윤회의 근본을 끊을 수 있으리까? 모든 윤회에는 몇 가지 종성種性이 있으며, 부처의 보리를 닦는 데는 몇 가지 차별이 있으며, 도리어 진로塵勞에 들어오는 데 마땅히 몇 가지 교화방편을 베풀어야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리까?
오직 원컨대 구세 대비를 버리지 마시고 모든 수행하는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의 안목이 맑고 깨끗해져서 마음의 거울을 밝게 비추어 뚜렷이 여래의 위없는 지견知見을 깨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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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3) 질문하는 뜻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먼저 윤회의 근본을 끊으라’고 가르친 데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어떠한 것이 윤회하는 근본이기에 끊으라고 합니까?’라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은애탐욕恩愛貪欲이 윤회의 근본이다’라고 대답하셨다. 두 번째는 ‘윤회하는 데 몇 가지 종성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 이치(理)에 장애하는 것과 사事에 장애함을 말미암아 오성 차별五性差別이 있다’고 대답하셨다. 세 번째는 ‘수행하는 데 종성種性이 몇 가지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오성으로 차별된다’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더불어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면 몇 가지 방편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여 내가 수행하는 것은 본래 중생들을 위함이니 오직 자리이타행을 닦는 것이 곧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4) ‘지혜의 안목’이라는 말은 ‘정법을 가려내는 안목’을 가리킨 말이다. ‘맑고 깨끗해져서(肅淸)’라는 말은 ‘인연 번뇌(緣塵)에 섞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은 ‘마음은 본래 한 물건이 없으나, 깨끗하고 밝은 것이 거울 같다’는 것이다. ‘위없는 지견知見’은 ‘대원각성을 뚜렷하게 깨닫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능히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매우 깊고 깊은 비밀하고 미묘한 뜻을 청해 물었으니, 모든 보살로 하여금 지혜의 안목을 맑게 하며 말세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길이 윤회를 끊고, 마음의 실상을 깨우쳐 무생인無生忍을 갖추게 하리니, 너희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를 위하여 설하리라.”
“선남자야, 일체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데로부터 가지가지의 은애와 탐욕으로 말미암아 윤회가 있게 되었느니라. 만약 모든 세계에 일체 종성種性은 일체 차별 종족인 난생卵生과 태생胎生과 습생濕生과 화생化生들이 모두 음욕으로 인하여 성명性命을 정하느니 마땅히 알아라. 윤회는 애욕이 근본이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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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8) 이 세상에 일체 동물動物이 무엇으로 인하여 태어났는가? 모두 음욕으로 인하여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음욕은 어디서 나는가? 생각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생각이요, 말을 하게 하는 것도 생각이다. 본래의 생각이 원인이 되어 껍질이 있는 알(卵生)과 태로 생겨나는 것(胎生)과 축축한 습기로 생겨나는 것(濕生)과 별도로 의탁한 바 없이 다만 염심으로 수생하는 화생化生들이다. 이러한 생명들을 모두 말하자면 다 음욕이 근본이 되어 태어난다.
“모든 음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애욕의 성품(愛性)을 도와 일어나게 하니라. 이런 까닭에 생사로 하여금 상속하게 하느니라. 음욕은 애욕으로 인하여 생기고, 생명은 음욕으로 인하여 있는데 중생이 목숨을 사랑하여 도리어 애욕의 근본에 의탁하나니 애욕이 원인이 되고 목숨을 사랑하는 것은 결과가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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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9) 음욕을 행하는 것은 모든 음욕할 대상을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이 그 가운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사가 상속하여 끊이지 않는 것이다. 욕심은 사랑으로 생겨나는 것이요, 몸과 목숨(身命)은 욕심을 인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음욕이 없는 것이요, 음욕이 없으면 몸이 없는 것이다. 이미 몸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도리어 음욕에 원인이 되니 미래에 생사과보를 감득함이 무궁하게 된다. ‘도리어 애욕의 근본에 의탁한다’는 말은 중생의 음욕에 근본이 되는 몸과 목숨(身命)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또 음욕의 근본이 되어 다시 원인이 된다. 또 그 목숨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은 결과가 되는 것이다. 또다시 강령을 말하면, 애욕이라는 것은 탐하는 것이요, 사랑이라 하는 것은 음심에 뿌리가 되는 것이다. 중생들이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남녀이니 그 모습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유익하고, 적당한 음식으로 기르며, 금은과 비단으로 장엄하며, 보고 듣는 것을 즐거워하니, 일체 욕심이 모두 음욕을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모든 욕심이 애욕을 따라 생겨난다 하는 것이다. 일체 동물의 몸과 목숨(身命)이 음욕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 중생이 일생에 애욕에 물든 자는 남녀의 색을 따른 것이니, 죽은 뒤에 업보에 몸을 아직 수생함을 얻지 못하게 되고, 그 가운데 식정識情으로 맺혀 있는 중음신中陰身이 있는 것이다. 이 중음신이 다만 음욕할 대상을 구하는 까닭에 천만리 밖에라도 남녀가 합궁하는 곳을 보게 된다. 만일 숙세로 물든 인연이 있으면 빨리 그곳에 가서 남녀의 생각을 자기의 생각으로 알며, 애정을 극진히 다하여 애욕으로부터 나오는 진액을 타서 어머니 배 가운데에 들어가, 이 정혈을 지켜 생각을 들이어 버리지 아니하니 드디어 맺혀서 태가 된다. 이것이 목숨을 받는 근본이 되는 까닭에 목숨이 애욕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생겨나는 것을 돕는 것은 애욕이 근본이 되고, 사후에 몸을 받는 것은 목숨을 사랑(愛命)한 결과가 된다.
10) 모두 결론지음(摠結)
(1) 악업의 고통스러운 과보(惡業苦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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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於欲境하야 起諸違順이어든 境背愛心하면 而生憎嫉하야 造種種業할새 是故로 復生地獄餓鬼하며
“저 모든 애욕의 경계(欲境)로 말미암아 모든 어기고 수순함을 일으키니 경계가 사랑하는 마음을 어기면, 미워함을 내어 갖가지 업을 짓느니라. 이런 까닭에 다시 지옥 아귀로 태어나며,
(2) 선업의 즐거운 과보(善業樂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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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欲可厭한들로 愛厭業道하야 捨惡樂善하면 復現天人하며
애욕을 싫어해야 할 것인 줄로 알고, 악업을 싫어하고 도를 좋아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즐겨하면 다시 천상과 인간으로 태어나며,
또 모든 애욕이 가히 싫어할 것을 아는 까닭에 애욕을 버리어 놓기를 즐겨하면, 도리어 애욕의 근본을 불러서 문득 유위증상선과有爲增上善果가 나타나느니 모두 윤회인 까닭에 성도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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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0) (1) ‘애욕의 경계로 말미암는다’는 말은 모두 음욕심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마음이 불꽃 같으니, 뜻을 따르면 사랑하고, 뜻을 어기면 미워하여 질투심을 내게 된다. 성내고 꾸짖고 더 심하면 살해까지라도 하여 악을 짓는 데 이르지 아니함이 없으니 삼악도에서 매우 고통 받게 되는 것이다. (2) ‘애욕을 알아 가히 버린다’는 말은 애욕으로 말미암아 인도와 천도에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악을 버리고 선을 즐겨하는 것도 또한 사랑하는 마음을 여의지 못한 것이다. 십계를 닦는 선을 사랑하는 것도 애착愛着하는 것으로 이로부터 인도人道와 천도天道가 있게 된다. 인도가 비록 좋다 하나 팔고八苦가 항상 있고, 천상이 좋다 하나 다섯 가지 쇠퇴하는 모습(五衰相)이 있으니 어찌 고통을 면할 수 있겠는가? 오직 사물이 증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짓는 것으로 인하여 증애와 질투가 있는 것이다. 만일 물건에 끌리면 물질에 좌우함을 입어 나의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과 지옥이 나의 마음을 짓는 데 있는 것이다. (3) 또 ‘모든 애욕을 싫어한다’는 말은 여기서는 육욕천 위에 있는 색계천을 가리킨 말이다. 육욕천은 십악업十惡業을 끊고, 십선업十善業을 닦는 결과로 육욕천에 나게 된다. 이 색계천은 십선업을 사랑함을 버리고, 그 버림을 즐겨하는 까닭에 초선천부터 점점 올라가는 증상유위선과增上有爲善果가 되는 것이다. 설사 그대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담담한 것을 사랑하여 비비상천에 이르더라도, 또한 불교의 한 이승二乘도 되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큰 성인(大聖)을 이루겠는가?
11) 정성스럽게 권유함(精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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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로 衆生이 欲脫生死하야 免諸輪廻컨대 先斷貪欲하며 及除愛渴이니라
“이러한 까닭에 중생이 생사를 해탈하여 모든 윤회를 면하고자 한다면, 먼저 탐욕을 끊으며 애갈을 제할지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변화하여 세간에 나타남을 보이는 것은 애욕으로 근본이 된 것이 아니니라. 다만 자비로써 저로 하여금 애욕을 버리게 하고자 할새 모든 탐욕으로 거짓 하여 생사에 들어가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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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2) 이것은 미리 힐난할 것에 대답한 것이다. 보살이 처자妻子를 두는 것이든, 모든 탐욕을 빌려서 세간에 나타나는 것은 탐욕에 애착하는 것이 아니다.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니, 그런 까닭에 유마거사가 말씀하시길, “일체중생이 병들었기 때문에 내가 병드는 것이니, 중생의 병이 없으면 나의 병도 없다.”라고 하시니라.
선남자야, 일체중생이 본래 탐욕으로 말미암아 무명을 발휘하여 오성 차별이 같지 아니함을 현출하되, 두 가지 장애를 의지하여 심천을 나타내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 장애인가? 하나는 이치에 장애한 것이니 바른 지견을 장애하는 것이고, 하나는 일에 장애한 것이니, 모든 생사를 이어가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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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4) ‘이치에 장애된다’는 말은 이 마음이 본래 자성이 청정하지만, 일진법계一眞法界를 통달하지 못하여 무명이 되어 업상業相·전상轉相·현상現相이 있는 까닭에 바른 지견(正知見)에 장애한다는 말이다. ‘일에 장애한다’는 말은 지상智相과 상속상相續相과 집취상執取相과 계명자상計名字相과 수업상修業相과 조보造報 등 육종염심六種染心이 있는 까닭에 모든 생사를 상속한다는 말이다.
15) 다섯 가지 종성에 의지함(能依五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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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何五性고
“어찌하여 오성이 되는가?
(1) 범부 종성凡夫種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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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若此二障을 未得斷滅하면 名未成佛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이 두 가지 장애를 끊어 멸함을 얻지 못하면, 성불이라 이름하지 못함이니라.
(2) 성문 종성(聲聞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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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衆生이 永捨貪欲하야 先除事障코 未斷理障하면 但能悟入聲聞緣覺이오 未能顯住菩薩境界이니라
만일 모든 중생이 영원히 탐욕을 버리어 먼저 일에 장애함을 제하고, 이치에 장애함을 끊지 못하면, 다만 능히 성문·연각의 경계에만 들어가고, 능히 보살 경계에는 머물러 나타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모든 말세 일체중생이 여래 대원각해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먼저 마땅히 발원하여 부지런히 두 가지 장애를 끊을지어다. 두 가지 장애가 이미 조복되면 곧 능히 보살 경계에 깨쳐 들어가리라. 만일 사事와 이理에 장애함을 이미 영원히 끊어 멸하면, 곧 여래의 미묘 원각에 들어가 보리와 대열반에 만족하리라.
만일 모든 중생이 비록 착한 벗을 구하나 사견을 만난 자는 바로 깨침을 만나지 못하리라. 이것이 곧 이름이 외도 종성이 되는 것이니, 삿된 스승의 허물로 그릇될지언정 중생의 허물이 아니니라. 이 이름이 중생의 오성 차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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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5) 이것은 ‘수행하는 데 몇 가지 종성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다섯 가지 종성이 있는 것으로 대답하신 것이다. (1) 첫째는 범부 종성凡夫種性이니, 범부는 제8아뢰야식에 업상과 전상과 현상 이 세 가지로 이성理性에 장애障礙하고 지상智相·상속相續·집취執取·계명計名·수업修業·조보造報 등의 육종염심이 장애하기 때문에 ‘사事의 장애함’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끊지 못하면 범부 종성이 된다. (2) 둘째는 성문 종성聲聞種性이니, 다만 육식六識과 삼독三毒만 끊어 분단생사分段生死만 끊는 것은 성문의 종성이 된다. (3) 셋째는 보살 종성菩薩種性에 두 가지가 있다. 이성理性에 장애하고, 사事에 장애하는 것을 굴복만 받는 것은 지전地前에 삼현보살이다. 또 초지부터 아집 분별, 법집 분별 두 가지 장애가 없고, 육지와 칠지에서 구생혹俱生惑을 분분分分이 끊어 가고, 팔지, 구지, 십지보살에 이르러 이숙식異熟識이 공空하고, 두 가지 장애가 길이 끊어지고 여래 대원각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다 지상地上 보살이다. (4) 넷째는 부정 종성不定種性이니 ‘일체중생이 다 원각을 증득한다’는 말은 ‘일체중생이 본래 원각’이라는 말이다. 비유하면, 중생이 잠깐 미혹한 것과 같이, 태양을 구름이 비록 가리었을지라도 청풍을 만나면 구름이 자취가 없고, 태양의 광명만 나타나는 것과 같다. 선지식을 만나 수행하는 법문을 들어서 항상 익히면 그 익히는 데 돈오와 점수가 있게 되니, 참으로 여래의 무상보리의 바른 수행로를 만나면 상중하 근기가 다 원각을 증득하게 된다. 비유하면, 중생의 마음은 물과 같다. 물은 물을 대는 사람을 따라 흐르는 것과 같아서 선지식을 만나는 대로 각성이 현발現發하는 까닭에 부정 종성이라 한다. (5) 다섯째는 외도 종성外道種性이니 외도는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고 외도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으면 외도가 된다. 그러므로 외도 종성이라 한다. 이들은 삿된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릇된 것이지 중생의 허물이 아니다. 이렇게 오성 차별이 있는 것이다.
“선남자야, 보살이 오직 대비방편으로써 모든 세간에 들어가 깨치지 못한 이를 개발하되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어 보여 역순 경계에 그와 더불어 동사하고 변화하여 성불하게 하느니 다 비롯함이 없는 청정원력을 의지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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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6) 이것은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세간 진로塵路에 들어가는 데에는 몇 가지 방편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보살은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되, 거스르고 수순하는 경계를 따라 중생과 같이 동사同事하여, 그 마음을 따라 모든 방편을 쓰는 것이 하나가 아니다. 이것은 다 비롯함이 없는 옛적부터 청정 원력에 의지한 것이다. 그 강령은 대개 재물을 베푸는 것, 사랑스러운 말로 그 인정을 수순하는 것, 그를 유익하게 하는 것, 그와 동사하는 것, 이사섭법이니 모두 과거의 청정원력이다.
“만일 말세 일체중생이 저 대원각에 증상할 마음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보살의 청정 대원을 발하여 응당 이 말을 하기를, ‘원컨대 내가 이제 부처의 원각에 머물러 선지식을 구하오니, 외도와 이승을 만나지 않게 하여지이다’라 하고 원력을 의지하여 수행하고 점점 모든 장애를 끊으면, 장애가 다하고 원력이 가득하여 문득 해탈 청정법전에 올라 대원각 묘장엄 경지를 증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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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7) 이것은 오직 보살만 대원을 세워 중생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말세 수행인도 그러해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아무쪼록 향상일로向上一路에 나아가 깨우칠 마음을 내어 퇴전하지 않는 수행자는 원력대로 닦아 점점 모든 장애를 끊어야 한다. 장애가 다하고 원력이 만족하면 문득 대원각 묘장엄 경지를 증득할 것이라 하니, 묘장엄 경지는 부처의 과해果海를 말한 것이다.
“미륵이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모든 중생이 대해탈을 얻지 못한 것은 모두 탐욕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생사에 떨어지느니라. 만일 능히 증애와 탐진치를 끊으면 차별성을 원인하지 아니하고 다 불도를 이루리라. 이장二障을 영원히 소멸하고 스승을 구하여 바른 깨달음을 얻어 보살의 원력을 수순하면 대열반에 의지하리라. 시방 모든 보살이 모두 대비 원력으로써 생사에 들어감을 시현하나니, 현세 수행자와 말세 중생이 부지런히 모든 애견을 끊으면 문득 대원각으로 돌아가리라.”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널리 이와 같은 부사의한 일을 설하시니 본래부터 본 바가 없으며, 본래부터 듣지 못한 것이나이다. 저희들이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 깨우쳐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큰 요익을 얻었사오니, 원컨대 일체 모든 곳에서 온 법회 대중을 위하여 거듭 법왕의 원만각성을 베푸시옵소서. 일체중생과 모든 보살과 여래 세존의 증득한 바와 얻은 바의 차별이 어떠하오니까? 말세 중생으로 하여금 이 성교를 들어 수순하고 개오하여 점차로 능히 들어가게 하소서.”
3) 경건하게 정성을 보임(展虔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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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是語已하시고 五體投地하사 如是三請하사 終而復始어시늘
이 말을 마치고 오체를 땅에 던져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마치고 다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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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 이것은 ‘원각자성이 범부와 성인이 차별이 없으니 어찌 수증 차별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앞에 세존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공화空華와 같음을 알면, 생사에 윤전함이 없을 것이며, 점차로 닦아 가는 차별이 없을 것이다. 또 일체중생이 다 원각을 증득한 것 같으면 오성 차별五性差別이 없을 것이니 무슨 수증할 것을 말씀하시는가? 참으로 범부와 성인이 평등한 것 같으면 두 가지 장애되는 차별도 없을 것이라고 하는 말이다.
“선남자야, 원각자성이 성품이 아닌 것으로 있는 성품이니, 모든 성품을 좇아 일어날지언정 취할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는 것이라. 저 실상 가운데에 실제로 보살과 중생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과 중생이 모두 다 환화라. 환화가 소멸하는 까닭에 취하고, 증득할 것도 없느니라. 비유컨대, 안근이 스스로의 눈을 보지 못함과 같은 듯하여, 성품이 스스로 평등하지만 평등한 것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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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6) 이것은 ‘원각이 평등하여 하나인 것이거늘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라는 것에 대한 대답이다. ‘원각자성이 성품이 아닌 것으로 있는 성품이다’라는 말은 ‘본원의 성품은 일체 오성 차별성품이 없는 것이지만, 그 오성 차별에는 낱낱이 원각성품이 있다’는 말이다. ‘모든 성품을 좇아 일어난다’는 말은 ‘차별이 없는 성품이, 모든 차별성을 좇아 일어날 때에 전연全然이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라는 말이다. 비유하면, 큰 바다가 본래 모든 파도에 차별이 없지만 온전히 바다에서 일어난 파도이기 때문에, 물결마다 젖는 파도의 성품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원각의 성품의 이치도 차별적인 성품의 이치를 갖춘 것도 그와 같다는 말이다. ‘취할 것도, 증득할 것도 없다’는 말은 비유하면, 바닷물에 젖는 성품의 이치나, 파도에 젖는 성품의 이치가 둘이 없어서, 취할 것도, 증득할 것도 원래 없다는 말이다. 또 ‘보살과 중생이 없다’는 말은 생멸이 없는 실상實相의 성품은, 일체 상이 공하여(一切相空) 보살과 중생이라 하는 것이 본래 없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모두 환화幻化인 까닭에 환화가 멸하면 환화 그 자체도 없어지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다. 그러면 현상계에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인가? 있어도 능히 보는 것과, 보이는 바가 둘이 없는 것이니, 사람의 눈이 자기의 눈을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7) 허망한 노력에 차별이 있음(功用有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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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生이 迷倒하야 未能除滅一切幻化할새 於滅과 未滅과 妄功用中에 便顯差別하나니
“중생이 미혹한 데 전도되어 일체의 환화를 소멸하지 못하는 것이니, 소멸하고 소멸시키지 못하는 것에 허망한 노력(功)을 하는 중에 문득 차별을 나타내나니,
8) 허망한 노력의 결과는 다르지 않음(功果不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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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得如來의 寂滅隨順하면 實無寂滅과 及寂滅者하니라
만일 여래의 적멸에 수순하게 되면, 실제로는 적멸도 없고, 적멸한 자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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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7) 이것은 중생이 미혹한 까닭으로 차별이 있을지라도 그 실상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 ‘소멸하고, 소멸시키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십신보살十信菩薩은 자신의 업을 깨우쳐 번뇌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소멸한다고 하고, 또는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소멸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삼현보살三賢菩薩은 이상異相을 깨쳤으니 소멸이라 하고, 주상住相을 깨치지 못하니 아직 소멸시키지 못했다(未滅)고 한다. 십지성위十地聖位는 주상住相을 깨쳤으니 소멸이라 하고, 생상生相을 깨치지 못하였으니 아직 소멸시키지 못했다(未滅)고 한다. 이러한 것은 모두 허망한 노력을 하는 중(妄功用中)이라 한다. 8) 그러나 만일 여래와 같은 적멸의 성품을 얻으면, 능소能所가 없어져서 양변兩邊에 서지 않으며 중도中道에도 몸을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일체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예로부터 ‘나’라고 하는 망상妄想으로, ‘나’를 사랑해 왔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생각이 생멸함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미워하고 사랑함(憎愛)을 일으켜 오욕에 탐착하느니라.
10) 법을 듣고 깨달음을 밝힘(明聞法覺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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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遇善友에 敎令開悟하야 淨圓覺性으로 發明起滅하면 卽知此生이 性自勞慮하리라
만일 착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만나서, 청정한 원각의 성품이 일어나고 소멸하는(起滅) 것임을 밝게 알면, 이러한 일생一生이란 본래 수고롭게 번뇌하는(勞慮) 것임을 알 것이니라.
11) 망심을 쉬고 진심을 따름(息妄隨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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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復有人이 勞慮永斷하고 得法界淨이라도 卽彼淨解가 爲自障礙할새 故로 於圓覺에 而不自在하나니
만일 어떠한 사람이 수고로운 번뇌(勞慮)를 영원히 끊어서 법계의 청정을 얻게 되면, 곧 청정하다는 알음알이에 스스로 장애가 되어서 원각에 자재하지 못하느니라.
12) 범부의 지위를 결론지음(結成凡夫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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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名이 凡夫에 隨順覺性이니라
이것을 범부가 원각의 성품에 수순隨順하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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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9) 앞에서는 지위地位에 차별이 있는 까닭을 밝히셨고, 여기서는 곧바로 그 차별을 밝혔다. 범부는 깨달음의 성품에 미혹하여 망상이 이루어지면 법신을 배반하는 까닭으로 색·수·상·행·식 오온으로 ‘나’를 삼고, ‘나’라고 하는 소견이 더욱 견고하여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게 된다. 이로부터 생멸심이 분분히 일어나서, 밖으로 증애憎愛와 취사取捨를 일으켜 오욕락에 탐착하여 모든 업을 짓는 것이다. 10)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선지식을 만나서 정법正法을 귀로 듣고 불종자佛種子를 일으키면, 그 사람은 안으로 원각성圓覺性을 닦아서 무량한 겁의 생사의 근본이 된 무명생멸심이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불성佛性은 지극히 청정하나, 생멸심으로 번뇌하게 됨을 깨우치게 된다. 11) 마음에 번뇌 망상이 끊어지면, 그 마음의 법계(心法界)가 자연히 청정하며, 도리어 그 청정함에 애착하여 그 애착하는 것이 장애가 되는 것이다. 12) 이것은 범부가 원각성圓覺性에 수순하는 것이다.
13) 현인의 지위(賢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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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一切菩薩이 見解爲礙어든 雖斷解礙나 猶住見覺할새 覺礙爲礙하야 而不自在하나니
“선남자야, 일체 보살은 견해가 걸림이 되고, 비록 견해의 장애알음알이에 걸리는 것를 끊었으나, 오히려 깨달음을 보려 하는 데(見覺) 머물게 되니라. 깨달으려는 장애(覺)에 걸림이 되어 자재하지 못하나니,
14) 현인의 지위를 결론지음(結成賢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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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名菩薩未入地者에 隨順覺性이니라
이것을 보살로서 십지十地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원각의 성품에 수순隨順하는 것이라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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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3) 이것은 관觀하는 지혜가 점점 밝아지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미 앞의 십신十信에서 청정하다는 생각에 애착함을 깨쳐서 이미 끊었으나 오히려 깨달음을 보려는 지혜에 머무르니, ‘견각見覺에 머무른다’고 한 것이다. 또한 청정함에 장애하는 것을 깨치는 것에 또다시 장애되어, 자재함을 얻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14) 이것은 보살로서 십지十地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삼현보살三賢菩薩이 원각성圓覺性에 수순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15) 십지 성인의 지위(十地聖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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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有照有覺이 俱名障礙일새
“선남자야, 비춤도 있고(有照), 깨달음도 있는 것(有覺)이 모두 한가지 이름이 장애이니라.
이런 까닭에 보살은 항상 깨닫되 깨달음에 머물지 아니하여, 비치고 비추는 자가 동시同時에 적멸해야 하니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 머리를 끊어 버리면, 머리가 이미 끊어진 까닭에, 머리를 끊는 자마저 없는 것과 같으니라. 곧 장애가 되는 마음으로 스스로 모든 장애를 소멸하면, 장애가 이미 소멸되어 끊어져 버리면 장애를 소멸시킨 자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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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5) ‘비치는 것이 있다’는 말은 ‘비치는 바의 경계가 있다’는 말로, 청정한 소견에 걸렸다는 말이다. ‘깨친다’는 말은 ‘관찰하는 지혜’를 말한 것이니, 십신위十信位와 삼현三賢이 능소能所를 잊어버리지 못한 까닭에 모두 장애라고 한다. 16) ‘보살은 항상 깨닫되 깨달음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은 십지보살十地菩薩은 평등진여平等眞如를 증득하여 능소能所가 동시에 끊어졌기 때문에 적멸寂滅이라 한다. 이것은 관하는 사람과 관할 바의 대상이 이지理智가 없어져서 능소能所가 끊어짐을 말씀한 것이다. 사람은 비추는 데 비유하고, 머리는 비춰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니, 비춰지는 대상이 없으면 비출 사람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끊는 자도 없다고 한 것이다. 원각의 밝은 본체(圓明體) 가운데는 본래 능소能所가 없으나, 다만 비추는 마음이 일어나면 비추는 바의 대상(所相)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엄경楞嚴經』에서 말하기를, “원만하고 밝은 성품(圓明)이 비쳐서 경계(所)가 났다.”라고 했다. 또 ‘장애되는 마음으로 모든 장애되는 것을 스스로 소멸한다’는 말은 거친 번뇌를 끊고 청정한 법계를 비추는 것에 곧 장애하는 것이다. 십신위十信位에서는 법계가 청정한 데 장애하는 것과 삼현위三賢位에서는 모든 장애되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그 깨달음(覺)에 장애하는 것을 다 소멸하면, 모든 장애되는 것이 없는 것이니, 장애되는 것을 소멸한 자도 또한 없게 되는 것이다.
17) 비유하여 해석함(喩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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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多敎가 如標月指하니 若復見月하면 了知所標가 畢竟非月인달하야
“수다라일체 경전의 가르침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으니, 만일 다시 달을 보았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마침내 달이 아님을 아는 것과 같으니라.
18) 법에 합함(法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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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如來의 種種言說로 開示菩薩도 亦復如是하나니 此名菩薩의 已入地者에 隨順覺性이니라
일체 여래가 가지가지 언설로서 보살에게 깨달음을 열게 하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이것을 보살로서 이미 십지十地에 들어간 자가 원각성圓覺性에 수순하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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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7) 일체의 경전은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다. 달을 보아야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보지 말아야 한다. 18) 일체 여래의 말씀도 모두 자성自性을 가리킨 말씀이다. 다만, 자성自性만 보고 말씀은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십지十地에 들어가는 자가 원각성圓覺性에 수순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일체의 장애가 곧 구경각이니, 얻었다는 생각이나 잃었다는 생각이나 해탈 아님이 없으며, 법을 이룸과 법을 파괴함을 다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지혜와 어리석음이 모두 반야이며, 보살과 외도가 성취한 바의 법이 한가지 보리이며, 무명과 진여는 다른 경계 없느니라. 모든 계, 정, 혜와 음욕, 성냄, 어리석음(淫怒癡)이 한가지 범행이며, 중생과 국토가 한가지 법성法性이며, 지옥과 천궁이 모두 정토가 되느니라. 성품 있는 것이나, 성품 없는 것이나 한가지 불도를 이룬 것이며, 일체 번뇌가 필경에 해탈한 것이니, 법계의 깊고 큰 지혜로 모든 대상을 비추어 아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이것을 여래가 원각성圓覺性에 수순하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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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9) 이것은 평등한 대도大道를 보이는 것이다. 미혹한 탓으로 심천深淺도 있고, 고하高下도 있으나 대원각의 부처님 지혜(大圓覺佛慧)를 성취하면 일체가 모두 평등하게 된다. 일체를 떡가루 반죽하듯 한데 뭉쳐서 한가지로 평등한 것이 아니라, 까마귀는 검고, 따오기는 희며, 산은 높고, 물은 흐르는 것과 같이 낱낱이 천진면목天眞面目이다. 만물이 각각 그 본래의 위치(本位)에 있어서 평등한 것이다.
“선남자야, 다만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들은 일체시에 머물러도 망념을 일으키지 말며, 모든 망심妄心을 쉬어 없애려고도 하지 말지니라. 망상 경계에 머물러 아는 것을 더하지 말며, 알지 못하는 것을 진실이라 분별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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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0) 이것은 평등한 한 마음(一心)에 안주安住하는 법을 보이는 것이다. 중생의 일상생활은 모두 대원각 평등진심이지만, 이것을 미혹한 까닭으로 업식業識에서 망심과 분별을 일으켜 자기의 신령하고 밝은 성품의 본체(靈明性體)에 미혹한 것이다. 만일 한 마음(一心)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때(一切時)나 머물러서 망념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또 중생의 망상심은 본래 자체自體가 없는 것으로, 원래부터 참된 마음이다. 만일 망상을 쉬어 버리고 참마음을 구하려 하면, 머리를 베어 버리고 살기를 찾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망심을 쉬어 소멸하려고 하지 말며, 또 망상경계가 본래 하나의 참된 마음(一眞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생각하여 입으로 의논할 것이 아니다. 만일 다시 알려는 마음을 일으키면, 큰 소리로 고함지르면서 메아리 소리를 그치게 하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망상 경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알려고 하지 말라. 알려고 하는 마음을 더하지 않는 곳에 참다운 마음을 아는 것이다. 또한 만일 마음을 일으켜서 별도로 진심을 구하면, 머리 위에다가 쓸모없는 머리 하나를 더 붙여 두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알 것이 없는데 별도로 진실한 것을 가리려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도인의 일용에 안심하는 것이니, 마음마음이 도에 합하는 것이며, 생각생각이 참마음을 증득한 것이다. 항상 적멸정寂滅定에 있어서 모든 위의威儀를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니, 예로부터(上古) 모든 조사가 이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분이 없다. 내가 오직 교문敎門으로써만 분석하고 선문禪門으로써는 분석하지 않는다.
21) 돈오하여 안심하는 수행의 요문(頓悟安心修行之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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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諸衆生이 聞是法門하고 信解受持하야 不生驚畏하면 是則名爲隨順覺性이니라
“저 모든 중생들이 이 법문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녀서(信解受持)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곧 원각성圓覺性에 수순하는 것이라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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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1) ‘이 법문’이라고 하신 것은 위에서 일체시一切時에 머물러 망념妄念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신 사구게 등이다.
“청정혜여, 마땅히 알아라. 원만한 보리의 성품(圓滿菩提性)은 취할 것도 없고, 또한 증득할 것도 없으며, 보살과 중생도 없건마는 깨치고, 깨치지 못할 때에 점차로 차별이 있게 되느니라. 중생은 아는 데 걸림이 되고,십신위 중생 보살은 깨달은 것을 여의지 못하고,삼현위 보살 입지入地는 十地에 들어간 보살임.는 영원히 적멸하여 일체 상에 머물지 아니하고,십지 성인의 지위 대각大覺이라야 모두 원만한 것이라 이름이 두루 수순하는 것이 되니라. 말세 모든 중생이 마음에 허망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부처님이 설하시기를, 이와 같은 사람은 현세에 곧 보살이라, 항하사의 부처님께 공양하여 공덕이 이미 원만하니 비록 많은 방편이 있으나 모두 수순하는 지혜(隨順智)라 이름하나니라.”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일체의 방편과 점차를 설해 주소서. 아울러 수행하는 사람은 모두 몇 가지의 근기와 종류가 있나이까? 이 법회의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의 대승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속히 깨달음(開悟)을 얻어 여래의 대적멸해大寂滅海는 生佛이 一源이니 相無不寂하고 惑無不滅일새 名曰寂滅海라.에 유희하게 하소서.”
“선남자야, 최상(無上)의 묘각성품이 모든 시방에 두루하여 여래를 출생시키니, 일체법과 더불어 동체同體로 평등하여 모든 수행에는 실제로 둘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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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8) 이것은 법성法性이 원만하여 본래 미혹하고 깨침이 없으며, 평등하여 둘이 아님(無二)을 말씀한 것이다. 다만 자성自性에 계합할 뿐, 나머지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을 구할 것이 아니다.
9) 바로 증득하여 들어가는 문을 보임(正示入證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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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便隨順은 其數無量이나 圓攝所歸컨대 循性差別이 當有三種하나니
방편으로 수순하는 것은 그 수효가 무량하나, 돌아갈 바를 원만히 거두려면 성품의 차별에 따라 마땅히 세 가지가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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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9) 이것은 원각자성의 증득證得할 문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이는 것이다. 일체 법은 평등하여 별도로 증득할 방법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근기에 따라 원만히 거두어들이는(攝受) 것에는 그 요령이 없지 않으니, 간략히 말하면 근기를 따라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사마타奢摩他’15)
이니, 우리말로 하면 ‘그친다(止)’16)
는 말이다. 이것은 고요한 모양과 텅 빈 것으로 보는 관觀이다. 두 번째는 ‘삼마발제三摩鉢提’17)
이니, 우리말로 하면 ‘평등하게 유지한다(等持)’18)
는 뜻이다. 환幻과 같은 모양이라 거짓된 것으로 보는 관觀이다. 세 번째는 ‘선나禪那’19)
이니, 우리말로 하면 ‘고요한 생각(靜慮)’20)
이다. 고요함(靜)과 허깨비(幻)를 모두 여읜 적멸한 모양으로, 중도中道를 보는 것이다. 결론하여 말하자면, 사마타는 체體를 관하는 것이요, 삼마발제는 용用을 관하는 것이요, 선나는 중도中道를 관하는 것이다.
10) 수행의 근본을 나타냄(標行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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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선남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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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0) 이것은 먼저 견성見性부터 하고,
11) 공관을 보임(示空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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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淨覺心으로 取靜爲行호대 由澄諸念하야 覺識煩動하야 靜慧發生하나니 身心客塵이 從此永하니라
그 청정한 원각을 깨친 마음으로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되, 모든 생각이 맑아진 까닭에 식심識心이 번거롭게 요동했음을 깨달으면, 고요한 지혜가 발생하여 몸과 마음의 객진客塵 번뇌가 이로부터 영원히 소멸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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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1) 이것은 공관空觀을 보이는 것이다. 처음 견성한 사람은 깨달은 마음으로써 관조觀照하여 부동한 심체(不動心體)를 돌이켜 보고,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한다고 한다. 모든 생각이 맑아져서 아뢰야식阿賴耶識 가운데에 생멸하는 모양을 깨달아, 지극히 고요한 지혜로 오래 관찰하니 객진번뇌客塵煩惱의 티끌이 영원히 소멸하고 대광명체가 나타난다. 이것이 최초의 정관(最初靜觀)이 되는 것이다.
12) 정관 수행의 효능(觀效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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便能內發寂靜輕安이니 由寂靜故로 十方世界에 諸如來心이 於中에 顯現함이 如鏡中像하니
“문득 안으로 고요하고 고요하여 가볍고 편안함(寂靜輕安)이 생겨나게 되니, 고요하고 평온한(寂靜) 까닭에 시방세계 모든 여래의 마음이 그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이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같으니라.
13) 이름하여 결론함(結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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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方便者는 名이 奢摩他이니라
이런 방편을 ‘사마타奢摩他’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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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2) 이것은 공부한 효능效能을 보이는 것이다. 이제 무명의 번뇌가 녹아져서 안으로 적정경안寂靜輕安이 생겨나게 된다. 이때 시방이 확연廓然하고 법신法身이 드러나면, 모든 여래의 마음이 그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같다. 제불의 법신이 나의 성품 가운데 들어 있고, 또한 나의 마음이 모든 여래의 성품과 합해지는 것이다. 13) ‘사마타奢摩他’는 우리말로 하면 ‘적정寂靜하다’는 뜻이다. 인지因地에 있어서는 ‘번뇌를 그친다’는 뜻이다. 과각果覺에 있어서는 ‘바르게 사유한다(正靜)’는 뜻이니, 그 뜻은 공관空觀에 해당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청정한 원각을 깨우치려면,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심성心性과 근根과 진塵이 모두 환화幻化로 인해 일어난 것임을 깨달아 알아서, 모든 환幻이 일어나면, 곧 환幻된 것을 제거하고, 모든 환幻을 변화하여 환幻의 무리임을 깨닫게(開示) 되느니,
15) 환관 수행의 효능(修幻效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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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起幻故로 便能內發大悲輕安이니라
환幻으로 일어나는 것을 아는 까닭에, 곧 안으로 크게 자비스럽고 몸이 가볍고 편안한 경지(大悲輕安)가 드러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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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4) 이것은 환관幻觀을 보이는 것이다. 먼저 견성한 후에 닦는 것이다. ‘청정한 원각의 마음’이라고 하는 말은 ‘본원각성本圓覺性’을 가리킨 것이다. ‘심성心性’이라는 말은 ‘식심識心’을 가리킨 말이다. 육식六識과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모두 무명無明으로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실다운 체體가 없으며 환화幻化로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모두 환幻인 줄로 알면, 곧 모든 환幻다운 지혜환幻다운 지혜는 시각始覺임.를 일으켜 환幻다운 무명無明을 제거할 것이다. 15) 환幻다운 차별 지혜가 생겨나는 까닭으로 능히 대비심을 발하게 된다.
“일체 보살이 이로부터 수행을 일으켜 점차로 더해 나아가나니, 환幻과 같음을 관찰하는 것始覺之智은 무명환無明幻과 같지 아니하며, 무명無明에 환과 같지 아니함을 관하는 지혜도 모두 환幻인 까닭에 환상幻相을 영원히 여읠 것이니라.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수행을 원만히 하는 것은 흙이 싹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방편을 ‘삼마발제三摩鉢提’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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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6) 이것은 공부가 점점 진취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환幻을 관하는 자는 환幻과 같지 아니하다’라는 말은 ‘환幻인 줄로 알고 맹렬히 관하는 지혜는, 저 무명의 허환 망상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무명無明에 환幻과 같지 아니함을 관하는 것도 다 이 환幻이라 하는 말이니, 관하는 놈과 관할 바가 있으면 능소能所가 끊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환幻이라 한다. 능소能所가 끊어져야 참으로 진심眞心이 독로獨露하여 환상幻相을 여의었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흙이 곡식의 싹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흙은 능소能所가 없는 ‘법신진지法身眞地’에 비유하는 말이다. 본각本覺의 진여종자가 관하는 지혜(觀智)를 만나게 되면, 지혜가 점점 자라는 것과 같이, 곡식의 움싹이 점점 자라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삼마발제三摩鉢提’는 우리말로 하면 ‘등지等持’라는 말이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보살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았으면 청정한 원각심으로써 환화幻化와 모든 고요한 모양을 취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는 것과 몸과 마음이 다 장애가 되면, 지각知覺이 없는 밝음이 모든 장애를 의지하지 아니하여 영원히 장애에 장애됨이 없는 경계를 초과하여 수용하는 것과 세계와 더불어 몸과 마음이 서로 티끌 지경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릇 속의 종쇠북이 그 소리가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아서, 번뇌와 열반이 서로 장애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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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7) 이것은 중도관中道觀을 보이는 것이다. 먼저 청정한 원각을 증득한 연후에 관행을 건립하는(觀行建立) 것이다. 밖으로 그 경계를 잊은 까닭에 환화幻化를 취하지 아니하고, 안으로 그 지혜를 잊은 까닭에 고요한 모양을 취하지 아니하게 된다. 이것은 경계와 지혜, 두 가지를 잊고 몸과 마음이 적멸하여 장애가 없는 것이다. 깨달아 아는 놈과 깨달을 대상이 모두 장애가 되니 마음의 알음알이가 몸에 닿아 깨닫는 것과 둘이 없는 밝은 영각靈覺이 모든 신심의 능소能所에 장애됨이 없어 영원히 장애와 장애됨이 없는 경계에서 뛰어나 자기의 수용하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衆人) 사는 세계와 더불어 몸과 마음이 서로 티끌 지경에 있는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그 장애됨이 없는 것이 그릇 속의 종고소리에 맑은 메아리가 크게 멀리 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18) 관행의 이익이 이루어짐을 보임(示觀行成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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便能內發寂滅輕安하야 妙覺隨順한 寂滅境界는 自他身心의 所不能及이며 衆生壽命이 皆爲浮想이니
“문득 안으로 적적히 멸하여 가볍고 편안함(寂滅輕安)을 드러내어 묘각妙覺에 수순하게 되니라. 적멸 경계는 나와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중생의 목숨이 다 들뜬 생각이 되는 것이니라.
19) 이름하여 결론함(結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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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方便者는 名爲禪那이니라
이런 방편을 ‘선나禪那’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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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8) 이것은 관행觀行하던 결과를 보이는 것이다. 이제 정靜과 환幻을 취하지 않으니, 적멸寂滅이 현전하여 열반상락涅槃常樂을 얻은 까닭에 이 경계는 자타신심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19) ‘선나禪那’라는 말은 우리말로 하면 정定과 혜慧를 모두 일컬어서 하는 말이다.
“선남자야, 이 세 가지 법문이 모두 원각을 친근하여 수순한 것이니, 시방의 여래께서 이것으로 인하여 성불하셨으며, 시방 보살의 갖가지 방편인 일체 같고 다른 것들이 모두 이와 같은 세 가지 사업事業을 의지한 것이니, 만일 뚜렷하게 증득함을 얻으면 곧 원각을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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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0) 이것은 정관靜觀, 적관寂觀, 환관幻觀의 이 세 가지 방편문이 모두 점차로 원각을 친근히 하는 방법이다. ‘제불여래諸佛如來도 이것으로 인하여 성불한 것이며, 보살도 이것으로 인하여 수행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위덕자재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최상無上의 대각심은 본제부터 두 가지 모습이 없건마는 모든 방편을 따라 그 수가 곧 한량이 없으니 여래께서 총괄하여 개시開示하시는 것으로 곧 세 가지 종류의 방편이 있느니라. 적정사마타寂靜奢摩他는 거울에 모든 상을 비추는 것과 같고, 여환삼마제如幻三摩提는 싹이 점점 증장하는 것 같고, 선나禪那의 오직 적멸寂滅은 그릇 속에서 소리가 나는 것과 같으니라. 세 가지 종류의 묘한 법문이 모두 원각을 수순한 것이다. 시방 모든 여래와 모든 대보살이 이로 인하여 도를 이루셨나니, 이 세 가지 수행법(三事)을 뚜렷하게 증득한 까닭에 이름을 구경열반究竟涅槃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 모든 방편으로 일체 보살은 원각문에 몇 가지 수습함이 있나이까? 원컨대 대중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방편으로 열어 보여서 실상을 깨닫게 하옵소서.”
4) 경건하게 정성을 보임(展虔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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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是語已하시고 五體投地하사 如是三請하사 終而復始어시늘
이 말을 마치고 오체를 땅에 던져 이와 같이 세 번 청하여 마치고 다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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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4) 변음보살이 질문하는 것은 ‘한 사람이 삼관三觀을 갖춰서 닦아야 하는 것입니까?’ 또는 ‘사람마다 뜻에 맞는 대로 하나씩 닦아야 하는 것입니까?’ 또는 ‘원각의 문에 닦아 들어가자면 동시同時에 닦아야 하는 것입니까?’ 또는 ‘차례로 닦아야 하는 것입니까?’이다.
“선남자야, 일체 여래의 원각이 청정하여 본래 수습할 것도 없고 수습할 자도 없건마는,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이 깨닫지 못한 까닭에 환력幻力으로 수습하니, 이때 문득 이십오종二十五種의 청정한 정륜(淸淨定輪)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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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7) 원각圓覺은 청정하여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지만, 지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수행법은 환幻다운 지혜로써 환幻다운 망상을 닦는 것으로 이십오종二十五種이 있다. 수행하는 사람의 뜻을 따라 이십오관二十五觀의 수행법은 각각 다르지만, 정해 놓고 이십오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이십오종의 수행법이 있을지라도 삼관三觀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오직 지극히 고요함(極靜)만을 취하면, 고요한 힘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번뇌를 끊고, 구경을 성취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곧바로 열반에 들어가게 되니라. 이 보살은 홑(單)으로 사마타奢摩他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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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8) 이것은 공관空觀을 닦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삼관三觀은 일심一心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를 들면 곧 셋이 갖추어져 있고, 셋을 말하면 체體가 곧 하나이니 그 뜻이 원융한 데 있다. ‘지극히 고요함만을 취한다’는 말은 ‘공관空觀으로써 주장’을 삼는 말이다. ‘고요한 힘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번뇌를 끊는다’는 말은 그 뜻이 가관假觀을 융섭한 것이다. 또 ‘번뇌 환화幻化가 고요한 힘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모두 끊어지고, 구경究竟에 뚜렷하게 증득한다’고 한 것은, 곧 중도관中道觀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고요히 비추고 뚜렷하게 밝은 열반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뚜렷하게 닦는 공관空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오직 환幻다운 것을 관하여 부처님의 힘(佛力)을 써서 세계를 변화하여 갖가지 작용으로 보살의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갖춰 행하면, 다라니에서 고요한 생각(寂念)과 모든 고요한 지혜(靜慧)를 잃지 않게 되니라. 이 보살은 홑(單)으로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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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9) 이것은 단지 가관假觀만을 닦는 것이다. ‘부처님의 힘(佛力)’이라고 하는 것은 ‘불佛’은 우리말로 하면 ‘깨친다’는 말이다. 자성自性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여眞如 불성佛性 안에서 훈습熏習한 힘으로 갖가지 변화 작용을 일으켜 미묘한 행을 갖춰 닦는다. 이 환幻다운 행을 의지하여 다라니陀羅尼는 萬法을 總持한 것에서 고요한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온전한 체體가 용用을 일으켜 일심一心, 중도中道, 적멸체寂滅體를 융섭한 것이다. 공空함을 깨달은 지혜로 무명無明 환화幻化를 비추어 깨뜨리는 것이니 가관假觀으로써 공관空觀과 중도관中道觀을 융섭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오직 모든 환幻을 소멸하여 작용을 취하지 아니하고, 오직 번뇌만을 끊어 번뇌가 끊어져 다하면 문득 실상을 증득하게 되니라. 이 보살은 홑(單)으로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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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0) 이것은 단지 중도관中道觀만을 닦는 것을 밝힌 것이다. ‘오직 모든 환幻을 소멸하고 오직 번뇌를 끊는다’는 것은 가관假觀을 융섭하여 중도관中道觀에 들어가는 것이다. ‘번뇌만을 끊어 번뇌가 끊어져 다하면 문득 실상을 증득하게 된다’는 것은 공관空觀을 융섭하여 중도관中道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직 모든 번뇌를 소멸하여 끊으면, 곧 쌍차雙遮는 공관空觀과 가관假觀을 동시에 앗아버리는 것가 되는 것이다. ‘오직 번뇌만을 끊고 문득 증득한다’는 말은 뚜렷하게 원명적조圓明寂照를 증득하는 까닭에 쌍조雙照는 둘이 같이 비친다는 말임.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아래에서는 별도로 나열하여 이십오륜二十五輪을 나타낸 것이다. 이십오륜二十五輪은 삼관三觀이 각각 일곱 개의 수행법을 거느리고 있고(二十一輪), 또 근본인 정환적靜幻寂 삼관三觀과 마지막에 원수삼관圓修三觀을 통합하여 이십오륜二十五輪이 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11) 먼저 공관을 닦고 뒤에 가관 닦음을 별도로 나열함(別列先空後假)
(1) 먼저 깨달음(先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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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정관靜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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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取至靜호대
먼저 지극히 고요함을 취하여
(3) 환관幻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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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靜慧心으로 照諸幻者하야 便於是中에 起菩薩行하면
고요한 지혜의 마음으로써 모든 환幻을 비추어, 문득 그 가운데에서 보살행을 일으키면,
(4) 결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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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菩薩者는 名이 先修奢摩他하고 後修三摩鉢提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2) 먼저 공관을 닦고 뒤에 중도관을 닦음(先空後中觀)
(1) 먼저 깨달음(先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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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중도관(中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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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靜慧(力)故로 證至靜性하야 便斷煩惱코 永出生死하면
고요한 지혜(힘)를 써서 지극히 고요한 성품을 증득하여 문득 번뇌를 끊어서 영원히 생사에 벗어나면,
(3) 결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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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菩薩者는 名이 先修奢摩他하고 後修禪那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뒤에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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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2) 공관空觀의 힘으로 중도적관中道寂觀에 들어가는 것이다.
13) 삼관을 겸해서 닦음(複三觀)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5a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5a01L
以寂靜慧로
적정혜로써
(3) 환관幻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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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現幻力의 種種變化하야 度諸衆生하고
다시 환력幻力을 나타내고 가지가지 변화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4) 적관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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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斷煩惱하야 而入寂滅하면
뒤에 번뇌를 끊어서 적멸에 들어가면,
(5)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5a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奢摩他하고 中修三摩鉢提하고 後修禪那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중간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뒤에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4) 먼저 공관을 닦고 다음에 중도관을 닦고 뒤에 가관을 닦음(先空次中後假)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5a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以至靜力으로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써
(3) 적관寂觀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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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煩惱已에
번뇌를 끊어 마치고
(4)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後起菩薩의 淸淨妙行하야 度諸衆生하면
뒤에 보살 청정묘행을 일으켜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면,
(5)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奢摩他하고 中修禪那하고 後修三摩鉢提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중간에 선나禪那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5) 삼관을 가지런히 닦음(齊修三觀)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以至靜力으로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써
(3) 적관 환관(寂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心斷煩惱하고 復度衆生하야 建立境界하면
마음의 번뇌를 끊고 다시 중생을 제도하여 경계를 건립하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奢摩他하고 齊修三摩鉢提와 及修禪那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가지런히 삼마발제三摩鉢提와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6) 먼저 정관과 환관을 가지런히 닦고 뒤에 적관을 닦음(先齊靜幻後寂)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5b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정원각을 깨치고)
(2) 정관 환관(靜幻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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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至靜力으로 資發變化하며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 도와서 변화를 발하며
(3) 적관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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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斷煩惱하면
뒤에 번뇌를 끊으면,
(4) 결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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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菩薩者는 名이 齊修奢摩他와 三摩鉢提하고 後修禪那이니라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사마타奢摩他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뒤에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7) 정관과 적관을 가지런히 닦고 뒤에 환관을 닦음(齊靜寂後幻)
(1) 먼저 깨달음(先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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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정관 적관(靜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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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至靜力으로 用資寂하여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써 적멸을 돕고
(3) 환관幻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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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起作用하야 變化世界하면
뒤에 작용을 일으켜서 세계를 변화하면,
(4) 결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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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菩薩者는 名이 齊修奢摩他와 禪那하고 後修三摩鉢提이니라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사마타奢摩他와 선나禪那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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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7) 정관靜觀의 칠륜七輪을 마치고, 이 아래는 환관幻觀의 칠륜七輪을 나타낸 것이다.
18) 먼저 환관을 닦고 뒤에 정관을 닦음(先幻後靜)
(1) 먼저 깨달음(先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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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6a01L
以變化力으로 種種隨順하야
변화력으로써 가지가지 수순하여
(3) 정관靜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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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取至靜하면
지극히 고요함을 취하면
(4) 결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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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菩薩者는 名이 先修三摩鉢提하고 後修奢摩他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뒤에 사마타奢摩他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9) 먼저 환관을 닦고 뒤에 적관을 닦음(先幻後寂)
(1) 먼저 깨달음(先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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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환관幻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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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變化力으로 種種境界에
변화력으로써 가지가지 경계에
(3) 적관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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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取寂滅하면
적멸을 취하면
(4) 결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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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菩薩者는 名이 先修三摩鉢提하고 後修禪那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뒤에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0) 먼저 환관을 닦고 다음에 정관을 닦고 뒤에 적관을 닦음(先幻次靜後寂)
(1) 먼저 깨달음(先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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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환관幻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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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變化力으로 而作佛事하며
변화력으로써 불사佛事를 지으며
(3) 정관靜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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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在寂靜하야
적정에 안주하여
(4) 적관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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而斷煩惱하면
번뇌를 끊으면
(5) 결론(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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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菩薩者는 名이 先修三摩鉢提하고 中修奢摩他하고 後修禪那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중간에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뒤에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1) 먼저 환관을 닦고 다음에 적관을 닦고 뒤에 정관을 닦음(先幻次寂後靜)
(1) 먼저 깨달음(先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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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6b01L
以變化力으로 無作用하고
변화력으로써 장애 없이 작용하고
(3) 적관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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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煩惱故로
번뇌를 끊어 버리고
(4)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6b01L
安住至靜하면
지극히 고요한 데 안주하면
(5)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6b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三摩鉢提하고 中修禪那하고 後修奢摩他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중간에 선나禪那를 닦고, 뒤에 사마타奢摩他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2) 먼저 환관을 닦고 가지런히 적관과 정관을 닦음(先幻齊寂靜)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以變化力으로 方便作用하며
변화력으로써 방편 작용하며
(3) 가지런히 적관과 정관을 닦음(齊寂靜)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至靜과 寂을 二俱隨順하면
지극히 고요한 것과 적적히 멸함의 이 두 가지를 한가지로 수순하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三摩鉢提하고 齊修奢摩他와 禪那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가지런히 사마타奢摩他와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3) 가지런히 환관과 정관을 닦고 뒤에 적관을 닦음(齊幻靜後寂)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환관 정관(幻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以變化力으로 種種起用하야 資於至靜하고
변화력으로써 가지가지 작용을 일으켜서 지극히 고요함을 돕고
(3) 적관寂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後斷煩惱하면
뒤에 번뇌를 끊으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此菩薩者는 名이 齊修三摩鉢提와 奢摩他하고 後修禪那이니라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삼마발제三摩鉢提와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뒤에 선나禪那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4) 가지런히 환관과 적관을 닦고 뒤에 정관을 닦음(齊幻寂後靜)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7a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환관 적관(幻寂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以變化力으로 資於寂滅하며
변화력으로써 적멸을 도와
(3)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後住淸淨한 無作靜慮하면
뒤에 청정한 지음이 없는 정려靜慮에 머물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此菩薩者는 名이 齊修三摩鉢提와 禪那하고 後修奢摩他이니라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삼마발제三摩鉢提와 선나禪那를 닦고, 뒤에 사마타奢摩他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용성해 24) 환관幻觀의 칠륜七輪을 마치고, 이 아래는 적관寂觀의 칠륜七輪을 나타낸 것이다.
25) 먼저 적관을 닦고 뒤에 정관을 닦음(先寂後靜)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적관寂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以寂滅力으로
적멸력으로써
(3)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而起至靜하야 住於淸淨하면
지극히 고요함을 일으켜 청정한 데 머물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禪那하고 後修奢摩他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선나禪那를 닦고, 뒤에 사마타奢摩他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6) 먼저 적관을 닦고 뒤에 환관을 닦음(先寂後幻)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적관寂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以寂力滅으로
적멸력으로써
(3)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而起作用하야 於一切境에 寂用隨順하면
작용을 일으켜서 저 일체 경계에 적멸의 작용을 수순하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禪那하고 後修三摩鉢提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선나禪那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7) 먼저 적관을 닦고 다음에 정관을 닦고 뒤에 환관을 닦음(先寂次靜後幻)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7b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적관寂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以寂滅力種種自性으로
적멸력인 갖가지 자성으로써
(3)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安於靜慮하며
정려에 안주하며
(4)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而起變化하면
변화를 일으키면
(5)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禪那하고 中修奢摩他하고 後修三摩鉢提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선나禪那를 닦고, 중간에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8) 먼저 적관을 닦고 다음에 환관을 닦고 뒤에 정관을 닦음(先寂次幻後靜)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적관寂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以寂滅力無作自性으로
적멸력인 지음이 없는 자성으로써
(3)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起於作用 淸淨境界하야
저 작용에 청정한 경계를 일으켜서
(4)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歸於靜慮하면
정려靜慮에 돌아가면
(5)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禪那하고 中修三摩鉢提하고 後修奢摩他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선나禪那를 닦고, 중간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뒤에 사마타奢摩他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29) 먼저 적관을 닦고 가지런히 정관과 환관을 닦음(先寂齊靜幻)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8a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적관寂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以寂滅力種種淸淨으로
적멸력인 가지가지 청정함으로써
(3) 정관 환관(靜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而住靜慮하야 起於變化하면
고요한 생각에 머물러서 변화를 일으키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此菩薩者는 名이 先修禪那하고 齊修奢摩他와 三摩鉢提이니라
이 보살은 먼저 선나禪那를 닦고, 가지런히 사마타奢摩他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30) 가지런히 적관과 정관을 닦고 뒤에 환관을 닦음(齊寂靜後幻)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적관 정관(寂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以寂滅力으로 資於至靜하고
적멸력으로써 지극히 고요함을 돕고
(3) 환관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而起變化하면
변화를 일으키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此菩薩者는 名이 齊修禪那와 奢摩他하고 後修三摩鉢提이니라
이 보살은 가지런히 선나禪那와 사마타奢摩他를 닦고, 뒤에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31) 가지런히 적관과 환관을 닦고 뒤에 정관을 닦음(齊寂幻幻後靜)
(1) 먼저 깨달음(先悟)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若諸菩薩이 (悟淨圓覺하고)
만일 모든 보살이 (정원각을 깨치고)
(2) 적관 환관(寂幻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以寂滅力으로 資於變化하고
적멸력으로써 변화를 돕고
(3) 정관靜觀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而起至靜 淸明境慧하면
지극히 고요하고 청명한 지혜경계를 일으키면
(4)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此菩薩者는 名이 齊修禪那와 三摩鉢提하고 後修奢摩他이니라
이 보살은 가지런히 선나禪那와 삼마발제三摩鉢提를 닦고, 뒤에 사마타奢摩他를 닦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32) 원융하게 삼관을 닦음(圓修三觀)
(1) 원융하게 깨달음(圓覺)
MBC0001_0026_0001V0001P0068b01L
若諸菩薩이 以圓覺慧로 圓合一切하야 於諸性相에 無離覺性하면
만일 모든 보살이 원각의 지혜로써 뚜렷하게 일체에 합하여 모든 성품(性)과 형상(相)에서 깨달음의 성품(覺性)을 여읨이 없으면,
(2) 결론(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9a01L
此菩薩者는 名爲圓修三種自性淸淨隨順이니라
이 보살은 뚜렷하게 세 가지 종류를 닦아 자성청정에 수순하는 것이라고 이름하느니라.
33) 총괄하여 결론지음(總結)
MBC0001_0026_0001V0001P0069a01L
善男子야 是名菩薩의 二十五輪이니 一切菩薩의 修行이 如是하니라
선남자야, 이것을 보살의 이십오륜二十五輪이라 이름하니, 일체 보살의 수행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라.
만일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이십오륜二十五輪을 의지하는 자는 마땅히 계행을 가지고,지계를 말함. 고요히고요함을 말함. 생각하여,지혜를 말함. 간절하고 슬프게 참회를 구하기를, 삼칠일을 지나도록 해서 저 이십오륜二十五輪을 낱낱이 각기 표기하여 두고,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하고 슬프게 구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결과를 취할지니 결과가 보여 주는 것을 의지하면 문득 돈오頓悟와 점수漸修를 알게 되리라. 한 생각이라도 의심하거나 회의를 품으면 끝내 성취하지 못하리라.”
“변음이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모든 보살의 무애청정혜가 모두 선정禪定을 의지하여 생겨나느니라. 이른바 사마타奢摩他와 삼마제三摩提와 선나禪那인 세 가지 법을 돈오와 점수로 닦아 이십오종二十五種이 있는 것이니라. 시방의 모든 여래와 삼세의 수행자가 이 법을 인하여 깨달음을 얻어 이루었나니, 오직 돈각인頓覺人과 함께 법을 수순하지 않는(不隨順) 사람은 제외하는 것이니라. 일체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항상 마땅히 이 이십오륜二十五輪을 가져서 수순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혀야 할 것이니, 부처님의 대비력大悲力에 의지하면 오래지 않아 열반을 증득하리라.”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할(不思議) 일인, 일체 여래의 인지因地에서의 행상行相을 널리 말씀하시어 모든 대중으로 하여금 미증유未曾有를 얻게 하셨나이다. 조어調御는 佛의 이름께서 항사겁을 지나도록 애쓰신 경계인 일체 공용을 보게 하여, 마치 일념과 같이 하시니 저희들 보살에게 깊이 스스로 위안이 되어 기뻐하나이다.”
MBC0001_0026_0001V0001P0070a01L
용성해 1) 이 정업장淨業章의 대의는 예전에 들어 보지 못한 법문을 가르쳐 주시니 기쁘고 감사함을 이기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일심一心으로부터 이십오종二十五種을 닦는 법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 법은 모든 여래께서 인지因地에서 닦는 법이다. 부지런히 힘쓰시던(勤苦) 경계를 한 생각(一念)에 갖추어 보게 하시니 매우 기쁜 일이다.
3) 바로 물음(正問)
MBC0001_0026_0001V0001P0070a01L
世尊이시여 若此覺心이 本性淸淨컨댄 因何染汚하야 使諸衆生으로 迷悶不入이니잇고
“세존이시여, 만일 이러한 깨달은 마음(覺心)의 본성이 청정하다면, 무엇 때문에 더럽혀져서(染汚)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미혹하고 번민하게(迷悶) 하여 깨달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나이까?
4) 법문을 청하는 뜻(請意)
MBC0001_0026_0001V0001P0070b01L
唯願如來는 廣爲我等하사 開悟法性케 하시와 令此大衆과 及末世衆生으로 作將來眼케 하소서
오직 원컨대 여래께서는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법성法性을 일깨워(開悟) 주시어 이 대중과 말세 중생으로 하여금 장래의 안목을 갖게 해 주소서.”
“선남자야, 일체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망상으로 ‘나(我)’와 ‘사람(人)’과 ‘중생衆生’과 ‘수명壽命’이 있음에 집착하여 네 가지 전도를 잘못 알아 참으로 나의 본체로 삼았느니라. 이것을 말미암아 문득 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경계가 나느니라. 저 허망한 본체에다 거듭하여 허망한 집착을 하여 두 가지 망령된 것이 서로 의지하여 망령된 업도業道를 만들어 내느니라. 망령된 업이 있으므로 망령되이 생사에 유전함을 보게 되고, 유전함을 싫어하는 자는 망령되이 열반을 보게 되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71a01L
용성해 8) 모든 중생이 최초의 무명을 말미암아 청정자성법신淸淨自性法身을 미혹하고 오온五蘊의 환망 신심幻妄身心을 잘못 알아 참다운 나의 몸인 것으로 집착하여 ‘아상我相’이 되는 것이다. 만물 가운데에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거늘 나의 목숨이 단멸하여 다시 육도에 태어나는 것을 보는 것이 ‘인상人相’이다. 성쇠고락盛衰苦樂과 가지가지 별리상속別離相續을 헤아려 ‘중생상衆生相’이 되는 것이다. 나의 수명이 항상 존재하여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수명상壽命相’이 되는 것이다. 이 네 가지에 전도되어 참다운 나의 몸으로 잘못 알아 부질없이 미워하고 사랑함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대오온四大五蘊의 성품을 미혹한 까닭으로 망령됨이 일어나며, 이것은 이미 허망한 것이니 이미 허망한 것을 나(我)의 것이니, 타인他人의 것이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망령된 것으로 가지가지 업력을 지어 업의 결과를 일으키니, 육도 사생으로 윤회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만일 이것을 깨달아 생사에 윤전함을 싫어하는 자는 반연을 쉬고, 미혹을 끊어 공적에 탐착하여, 몸은 타 버린 재와 같이 생각하고, 마음은 돌덩어리와 같이 생각하여 망령되이 열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를 말미암아 청정한 깨달음(淸淨覺)에 들어가지 못하나니 깨달음(覺)이 모든 들어가는 자를 거부하여 어기는 것도 아니며, 깨달음에 들어가는 자도 깨달음(覺)이 들어가게 하는 것도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생각을 움직이거나 혹은 생각을 쉬는 것이 모두 미혹하여 답답한 데로 돌아가나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71b01L
용성해 9) 이것은 ‘아상我相’에 집착하여 본성이 더럽혀져 청정한 본연성에 스스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본원자성本源自性이 들어가게 하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각성覺性으로써 각성에 들어갈진댄 허공으로써 허공에 합한 것과 같으니, 무엇을 들어가게 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막음이 있겠는가? 아상我相에 집착하는 까닭에 범부는 생각을 일으켜 이리저리 움직이고, 이승二乘은 생각을 쉬어 버리지만, 모두 미혹하여 답답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비롯함이 없는 옛날부터 본래 일어난 무명으로써 자기의 주재主宰를 삼았기 때문이니라. 일체중생이 태어날 때부터 지혜의 눈이 없어서 몸과 마음 등의 성품이 모두 무명이 된 것이니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지 못하는 것과 같은 듯하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72a01L
용성해 10) 이것은 무명이 참으로 끊기 어려운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지극히 밝은 마음이 어두운 마음으로 변하여 오온의 신심身心을 이룬 것이다. 전체가 무명이 된 것이어서 사람이 자신의 목숨 끊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나와 더불어 수순하고, 수순하지 않는 자는 문득 미워하고 원망이 생기니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무명無明을 자라게 하는 까닭에 서로 이어져서 도를 구하여도 모두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72b01L
용성해 11) 이것은 무명無明이 끊어질 사이가 없이 이어져 온 것을 밝힌 것이다. 아상我相에 집착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사랑하는(憎愛) 두 가지 마음이 있어 무명을 증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사랑을 말미암아 미워하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의 뜻과 어긋나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 무명종자를 훈습하여 오랜 세월(長劫) 동안 생사가 이어져 그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憎愛心)으로 도를 구하기 때문에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백해百骸는 몸임.가 고르고 편안해서 홀연히 나의 몸을 잊었다가, 사지가 잔뜩 팽팽하게 당기며 느슨해져서 섭양攝養하는 방법이 어긋나서 조금만 침을 주고 뜸을 더하면, 곧 ‘나(我)’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런 까닭에 증득하고 취하여서 비로소 나의 몸이 나타나느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72b01L
용성해 12) 이것은 비유로써 아상我相을 밝힌 것이다. 중생들이 이미 무명에 주재主宰 되어 용사用事한들 아상我相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고 다만 이렇듯이 지내면서 13) 나의 몸까지 잊었다가 이제 관조함으로써 단련하고 궁구함으로 비로소 무명의 자체가 나타나는 것이다. 비유하면, 병든 사람의 몸에다가 침으로 꼭 찌르면 ‘아야’ 하는 놈이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 이제 관조觀照함을 인하여 무시로 무명이 이미 주재 됨을 깨친 것이다. 이것은 근본 무명을 가리킨 것으로, 추혹麁惑을 말씀한 것은 아니다.
14) 결론하여 아상의 근본을 가리킴(結指我相根本)
MBC0001_0026_0001V0001P0073a01L
善男子야 其心이 乃至證於如來의 畢竟了知하난 淸淨涅槃하야도 皆是我相이니라
“선남자야, 그 마음이 여래께서 필경에 깨달아 증득하신 청정 열반이어도 모두 아상我相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73a01L
용성해 14) 이것은 아상我相의 근본을 결론지어 말씀하신 것이다. 그 내용은 삼현三賢과 십지보살十地菩薩의 증득한 것만 아상我相이 될 뿐 아니라, 여래의 구경열반을 증득하였을지라도 만일 일념一念이라도 증득함을 잊지 못하면 무명을 파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어찌 아상我相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운문 선사가 말씀하시길, “법신法身에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다. 설혹 법신法身에 이르더라도 법신이 온 대지가 청정한 경지法身一色邊事에 앉았으니, 그것도 병이 되는 것이다. 만일 법신을 투과透過하더라도 그 소견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 역시 병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경은 여타의 다른 경전과 다르니 나를 집착하고, 법에 집착하는 것이 그 근본은 모두 아상我相에 속한 것이다. 나의 나(我之我)와 아我의 법法이 모두 나의 집착한 대상의 법法인 까닭에 법집法執도 또한 아我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이숙식異熟識이 공空하지 못하기 때문에 증득한 것이 모두 아상我相에 속한 것이다. 이 경의 뜻은 다른 모든 경전과 달라서 모두 논하면 사상四相이 모두 아상我相에 속한다.
“선남자야, 무엇을 인상人相이라 하는가? 모든 중생들이 마음에 깨달아 증득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 선남자야, 아상我相이 있다고 깨달은 자는 다시 아상我相에 잘못 알아 집착하지 않느니라. 그 깨달은 바가 앞의 아상我相과는 같지 아니하나, 능히 깨친 것이 또한 이와 같이 인상人相이 되는 것이니라. 깨달음이 이미 일체 증득함에 초과한 것이 모두 인상人相이 되는 것이니라.”
MBC0001_0026_0001V0001P0073b01L
용성해 15) 이것은 인상人相을 보이는 것이다. 앞에서 아상我相이 공空함을 깨달아 다시는 아상我相에 잘못 집착하지 않지만, 만일 내가 능히 깨달았다는 마음을 두면 곧 인상人相이 되는 것이다. ‘나(我)’로써 공空함을 대對하는 사람이 타인他人이 아니라 곧 ‘나(我)’라는 사람이다.
16) 인상을 해석함(釋人相)
MBC0001_0026_0001V0001P0073b01L
善男子야 其心이 乃至圓悟涅槃하야도 俱是我者ㅣ心存少悟니 備殫證理이라도 皆名人相이니라
“선남자야, 그 마음이 뚜렷이 깨달아 열반에 이르렀더라도 이것은 ‘나(我)’라는 것이니, 마음에 조금이라도 깨달았다는 생각이 남아 있으면 이치를 다 갖추어 증득하여도 이름을 인상人相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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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6) 이것은 인상人相을 분명히 해석하신 말씀이다. 비록 뚜렷하게 밝은 열반이 ‘나(我)’가 됨을 깨달았더라도, 능히 깨달은 마음이 인상人相이 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극진한 이치를 다 깨달았더라도 털끝만큼이나 깨달았다는 마음을 잊지 못하면, 곧 인상人相이 되는 것이다.
17) 중생상을 보임(示衆生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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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云何衆生相고 謂諸衆生의 心自證悟의 所不及者ㅣ니
“선남자야, 무엇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하는가? 모든 중생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증득하고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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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7) 이것은 중생상衆生相을 보이는 것이다. 앞에서 아상我相이 공空함을 증득하고, 또 인상人相이 공空함을 깨달아 이 두 가지 상相이 이르지 못한 곳이 중생상衆生相이 되는 것이다. 인아상人我相을 여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중생상衆生相이 되는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말을 하기를, ‘내가 중생이다’라고 하면, 저 사람이 ‘중생’이라고 말한 것이 ‘아상我相’도 아니요, 인상人相도 아님을 곧 알지어다. 어찌하여 ‘나(我)’가 아닌가? 내가 중생이라 하면 곧 내가 아니요, 어찌하여 저가 아닌가? 내가 중생이라 하면 저가 내가 아닌 까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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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8)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경위에 그 이치를 빌려서 두 중간에 미치지 못할 곳을 취하여 중생상衆生相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 중생상衆生相이다. 범부들의 중생상은 나를 헤아리고 변하여 달라지는 것과 계속 상속하는 것으로 중생상을 삼는다. 그러나 성인은 다만 깨달아 증득함을 취하여 능소能所를 잊었다 할지라도 다만 깨달음을 두는 마음이 중생상衆生相이 되는 것이다. 능소能所가 붙지 아니한 곳을 말씀하고자 하여 세상 사람들 사이의 말을 취하여 밝히신 것이다. 내가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나도 아니요, 저도 아니라 하신 것이다.
“선남자야, 무엇을 수명상壽命相이라 하는가?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비추어 청정하여 요달한 바를 깨친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일체 업력의 지혜(業智)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 마치 목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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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0) 이것은 수명상壽命相을 보인 것이다. 이제 관조의 지혜(觀智)가 더욱 밝아져서 이 깨달은 마음도 또한 가히 얻을 것 없음을 요달하여 오직 청정한 깨달음의 본체뿐이다. 이와 같은 경계와 지혜가 함께 공空하여 일체를 함께 여의게 된다. 곧 마음의 지혜로 적멸寂滅의 체體를 비추어, 경계와 지혜가 일여一如하여 눈이 스스로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한 것과 같은 까닭에 일체 업력의 지혜가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신이 지극한 곳에 이르러 다만 적멸을 지키고, 능히 위位를 굴리고, 기틀을 돌이키지 못하면, 사수死水에 빠진 것이니, 어찌 대도大道가 되겠는가? 종문宗門 가운데 말씀은 ‘존귀尊貴에 떨어진 것이다’라고 하니 이곳에서 뛰어넘지 못하는 것을 수명상壽命相이라 한다. 마치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기 어려운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만일 마음으로 일체 깨달음을 비추어 보는 것은 다 먼지와 티끌이 되는 것이니라. 깨친 것과 깨칠 바 되는 자가 먼지와 티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니라. 마치 끓는 물에 얼음을 녹이면 별도로 얼음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얼음이 녹는 것임을 아는 것처럼, 내가 존재하여 나를 깨닫는다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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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1) 이것은 바로 망상의 근원(妄源)을 가리킨 것이다. 마음을 밝혀서 모두 청정하여 아상我相과 인상人相과 중생상衆生相이 모두 먼지와 티끌(塵垢)임을 깨쳤으나, 이렇게 깨친 것은 또한 먼지와 티끌(塵垢)을 여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 수자상壽者相이 되는 것이다. 비유로 말하면, 끓는 물로 얼음을 녹이면 얼음이 곧 물이기 때문에, 별도로 얼음이 있어서 얼음이 녹은 것이 아니다. 만일 얼음이 스스로 말한다면, ‘내가 다하였다’고 하면 ‘내가 다하였다’고 하는 얼음이 다한 것이 아니다. 아상我相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고 내가 다함을 깨닫는 것도 이와 같아서, 스스로 자신을 자기가 보내지 못하는 것이 목숨을 스스로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나(我)’를 사랑하는 자는 또한 열반도 사랑하는 것이니, ‘나(我)’를 사랑하는 뿌리가 잠복潛伏되어 그것을 열반의 모습으로 삼는 것이며, ‘나(我)’를 미워하는 자가 있으면, 역시 생사를 미워하게 되느니라. 사랑이라는 것이 진실로 생사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별도로 생사를 미워하니 해탈하지 못한다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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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4) ‘나(我)’가 미워하고 사랑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무릇 ‘나’에 집착하는 자는 반드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니, 이제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열반을 구하면, 다만 애욕의 근본을 의지하는 것이어서 참다운 열반이 아니다. 무릇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증애憎愛가 있을 것이요, 나를 미워하는 자도 또한 생사를 미워할 것이니, 그 근본은 모두 ‘나(我)’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온 것이다.
25) 질문함(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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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何當知 法不解脫고
“어찌하여 마땅히 법에서 해탈하지 못함을 알 수 있는가?
26) 뜻을 해석함(釋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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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彼末世衆生이 習菩提者ㅣ以已微證으로 爲自淸淨하나니 由未能盡我相根本이니라
선남자야, 저 말세 중생이 보리를 익히는 자는 조금 증득함으로써 스스로 청정하다고 하나니, 이것은 ‘아상我相’의 근본을 다하지 못함을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저 법을 찬탄하면 곧 환희심을 내어 문득 제도하고자 하며, 만일 다시 저 얻은 바의 것을 비방하면 문득 화(嗔心)를 내고 한을 품을 것이니, 이것은 곧 아상에 견고하게 집착해 있고, 장식藏識에 잠복되어 모든 감관(諸根)에 유희하며 일찍이 잠깐 사이라도 끊지 못한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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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7) 이것은 아상我相에 굳게 집착하여 제8함장식第八含藏識 가운데에 가만히 잠복하여 육근에 유희遊戱하여 일찍이 끊어짐이 없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28) 총괄하여 아상에 집착하는 허물을 결론지음(總結執我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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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彼修道者ㅣ不除我相일새 是故로 不能入淸淨覺하나니라
“선남자야, 저 수행하는 자는 아상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청정각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29) 병을 증험함(以驗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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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若知我空하면 無毁我者ㅣ니 有我說法은 我未斷故라 衆生과 壽命도 亦復如是하니라
선남자야, 만일 ‘나(我)가 공함(我空)’을 안다면 나를 헐뜯을 자가 없으며, 설법하는 내가 있다는 것은 아상을 끊지 못한 이유니라. 중생상, 수명상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이것은 뜻을 해석하지 아니하여도 가히 알 것임.
다만, 항상 수행하며 번뇌를 항복 받고 대용맹심을 일으켜서 얻지 못한 것을 얻게 하며, 끊지 못한 것을 끊게 하여, 탐심과 진심과 사랑하는 것과 거만한 것과 첨곡심과 질투심이 경계를 대하여도 일어나지 않게 하고, 너와 나의 은애恩愛가 모두 다 적멸해지면 부처님께서 ‘이 사람은 점차로 성취하리라’고 하실 것이다. 선지식을 구하여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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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34) 참으로 도道를 닦는 사람은 마음을 가져서 깨치기를 구하지 말며, 또한 광학다문廣學多聞만 하지 말고, 마땅히 번뇌를 항복 받으며 조그만큼 얻은 것을 만족하게 알지 말아야 한다. 또한 위없는 도道를 얻게 하며, 번뇌를 결단코 끊되 항상 경계를 대하여 마음으로 증험하여 일체 탐진貪嗔 번뇌가 경계를 대하여도 일으키지 아니하며, 일체 은애恩愛가 적멸하면 도력이 점점 실지로 나아가리니 이런 사람이라야 성취할 것이다. 또 진정한 도인을 구하면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5) 거듭 참다운 수행에 힘쓰기를 권함(重勉眞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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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於所求에 別生憎愛하면 則不能入淸淨覺海하리라
“만일 저 구하는 바에 별도로 미워하고 사랑을 내면, 능히 청정각해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정제업장이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모든 중생이 모두 ‘나(我)’에 집착하여 사랑하는 것을 말미암아 비롯함이 없는 예로부터 망령되이 유전윤회하나니 네 가지 종류의 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제거하지 못하면 보리를 이루지 못하리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아첨하고 굽은 마음이 모든 생각에 있는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많이 미혹되고 답답하여 각성에 들어가지 못하니라. 만일 깨달은 세계로 돌아가고자 할진대, 먼저 탐, 진, 치를 버려라. 법을 사랑하는 것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면 점차로 가히 성취하리라. 나의 몸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거니와,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말미암아 생겨나리오. 이 사람이 착한 벗을 구하면 마침내 사견에 떨어지지 않거니와 구하는 바에 별도로 마음을 내면 구경에 성취하지 못하리라.”
세존이시여, 말세의 중생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가 점점 멀어짐이라. 현인과 성인은 은거하여 숨고, 삿된 법은 더욱 치성하리니, 모든 중생들은 어떠한 사람을 구해야 하며, 어떠한 법에 의지해야 하며, 어떠한 수행을 해야 하며, 어떻게 병을 제거해야 하며, 어떻게 발심해야 하며, 저 눈먼 무리들로 하여금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오리까?”
그때에 세존께서 보각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능히 여래에게 이와 같은 수행을 물어, 능히 말세 일체중생에게 두려움이 없는 도의 안목(無畏道眼)을 베풀어, 저 중생으로 하여금 성도聖道를 이루게 하나니, 너희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를 위하여 설하리라.”
“선남자야, 말세 중생이 장차 크게 발심하여 선지식을 구하고 수행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일체 바른 지견知見의 사람을 구해야 하느니라. 마음은 상에 머무르지 않고, 성문과 연각의 경계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비록 번뇌(塵勞)를 나타낼지라도 마음은 항상 청정하며, 온갖 허물을 보더라도 청정한 행(梵行)을 찬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계율과 위의(律儀)가 아닌 곳에계행이 아닌 것 들어가게 하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을 구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말세 중생이 이와 같은 사람을 보거든 응당히 공양하되, 몸과 목숨(身命)을 아끼지 말아야 하느니라. 저 선지식이 네 가지 위의(四威儀) 가운데에 항상 청정함을 나타내며, 갖가지 허물을 보이더라도 마음에 교만이 없으니, 하물며 재산을 모으는 것이나(財) 처자와 권속이 있은들 어떠하리오? 만일 선남자가 저 선지식에게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곧 구경에 정각을 성취하되, 마음의 꽃(心華)이 밝음을 드러내어 시방세계에 비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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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8) 이것은 모범이 될 만한 선지식을 섬기라는 말이다.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법을 구하는 것을 설산동자와 같이 해야 한다. 보살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순화보살順化菩薩이니,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위의威儀가 청정하며 계행이 맑고 깨끗하여 아무 티가 없어 빙옥氷玉과 같으며, 그 마음 씀(用心)이 광대하여 큰 허공과 같다. 또 하나는 역화보살逆化菩薩이니 탐진치 등을 시현함이 바수밀녀21)
와 무염족왕22)
과 같더라도 교만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염소 바탕에 호랑이 가죽을 덮어쓰고 거짓 호랑이 행세를 하는 자가 많다. 간절하게 말하노니 배우는 사람들은 속지 말아야 한다. 참다운 선지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되, 그 허물은 보지 말고 법을 결택하여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하게 할 것이다. 하물며 세간에 조그마한 재물을 아끼고 집착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저 선지식에게 나쁜 생각을 품지 말고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배우면 마음의 광명이 밝아져서 시방세계를 비추게 된다.
9) 스승을 가림(擇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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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彼善知識의 所證妙法은 應離四病이니
“선남자야, 저 선지식이 증득한 묘한 법이라는 것은 마땅히 네 가지 병(四病)을 여의어야 하리니
첫째는 짓는 병(作病)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마음에서 갖가지 행을 지어서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면, 저 원각의 성품은 지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병病이라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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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 어떤 사람이 성불을 목적으로 하고 부지런히 절도 짓고, 탑도 쌓고, 불공도 하고, 보시도 하여 여러 가지 유루복有漏福을 많이 지어서 성불하고자 하니 이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다. 이러한 것은 복은 될지라도 성불은 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비유하면, 허공의 경계를 그어 놓고 ‘내 것’이라고 하면 얻을 수 있겠는가? 원각圓覺도 그러하여 갖가지 수행을 했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임의로 하는 병(任病)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와 같이 말하기를, ‘우리들은 지금 생사를 끊지도 않고, 열반을 구하지도 않으며, 열반과 생사에 일어나거나 소멸한다는 생각도 없고, 저 일체를 임의로 하여 모든 법성을 따라가면서 원각을 구하려고 한다’고 말한다면, 저 원각의 성품은 임의로 하여 있는 것이 아니므로, 병病이라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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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2) 비유하면, 허공을 임의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원각도 이와 같다. 위에서는 무엇을 조작하여 원각을 얻으려(作病) 하고, 여기서는 제멋대로(放浪) 하면서 원각을 얻으려 하니 참으로 우습다. 이것을 이름하여 병病이라 한다.
“셋째는 그치는 병(止病)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지금 스스로의 마음에서 모든 생각을 쉬어 일체 법성이 적연하고 평등함을 얻음으로써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면, 저 원각의 성품은 그침으로써 합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병病이라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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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3) 이것은 그쳐서 병(止病)이 되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원각이 널리 비추어 대용大用은 방소方所가 없으니, 어찌 생각을 쉬고 고적枯寂한 것에 탐착하여 구할 수 있겠는가? 저 원각묘성圓覺妙性은 원래 그쳐서 부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치는 것이 병病이라 하신 것이다.
“넷째는 멸하는 병(滅病)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지금 일체의 번뇌를 영원히 끊어, 몸과 마음도 필경에 텅 비어서 있는 바가 없거늘, 어찌 하물며 근根과 진塵의 허망한 경계가 있겠는가? 일체가 영원히 고요하므로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면, 저 원각의 성품은 고요한 상(寂相)이 아니므로, 병病이라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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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4) 이것은 고요한 것이 병(滅病)이 되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각성覺性이 원만하고 인연을 따라 사와 법(事法)을 성취하여, 공적영지空寂靈知가 허령불매虛靈不昧한 것이다. 이제 다만 궁극에 텅 빈 것만으로 도道를 삼으니, 어찌 외도外道가 아니겠는가? 저 원각성은 고요한 것이 아니므로 고요함만을 취하는 것은 병病이 되는 것이다.
11) 결론하여 바른 관행을 보임(結示正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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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四病者ㅣ라사 則知淸淨이니 作是觀者는 名爲正觀이오 若他觀者는 名爲邪觀이니라
“네 가지 병(四病)을 여읜 자는 곧 청정함을 알 것이니라. 이렇게 관觀하는 것을 ‘바르게 관한다(正觀)’라고 이름하는 것이요, 만일 다르게 관한다면 ‘삿되게 관한다(邪觀)’라고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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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1) 이것은 ‘바르게 관함(正觀)’을 보이는 것이다. 원각묘성圓覺妙性은 본래 짓고(作), 그치고(止), 임의로(任), 멸(滅)하는 데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네 가지 병(四病)을 여의면, 바로 자신의 성품(自性)이 원명圓明하여 청정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네 가지 병(四病)은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잠시 약이 되지만, 깨달은 분상에 나아가면 원각자성圓覺自性이 본래 스스로 구족되어 공용功用을 빌리지 않아도 되기에 네 가지 모두 병病이 된다고 하신 것이다.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수행은 없지 않으나, 다만 오염汚染이 있으면 곧 얻지 못한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오직 문제가 있는 것은 곧 염오染汚에 속한 것을 말한 것이다.
“선남자야, 말세 중생이 수행하고자 하는 자는, 응당히 목숨이 다하도록 선우에게 공양하며, 선지식을 섬겨야 하느니라. 저 선지식이 와서 친근히 하고자 하거든 응당히 교만을 끊을 것이니라. 만일 다시 멀리 떠나더라도 응당히 화를 내거나 원망을 끊을지니라. 역경계와 순경계를 나타내어도 마치 허공과 같이 해야 하며, 몸과 마음이 필경에 평등하여, 모든 중생과 더불어 한 몸이나 다름이 없음을 깨달아 알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행하여야 비로소 원각에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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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2) 만행萬行을 닦아야 하는 것을 설하지 않고, 다만 선지식을 섬기며 교만심을 끊는 것으로 수행의 근본을 삼으신 것이다. 선재동자가 일생에 선지식을 의지한 결과로 능히 광겁에 불과佛果를 성취하셨으니, 다른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남자야, 말세 중생이 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비롯함이 없는 옛날부터 나와 남을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일체 종자로 말미암아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서 저 원수를 보고 자기 부모와 같이 하여, 마음에 둘이 없으면 곧 모든 병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니라. 모든 법 가운데에 나와 남을 미워하고 사랑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해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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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3) 이것은 종자種子와 현행現行을 끊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선지식을 섬기어 교만한 마음과 화내는 마음을 끊는 것은 현행現行을 조복調伏 받는 것이다. 원수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하는 것은 종자種子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선남자야, 말세 중생이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면 응당히 발심하여 이와 같이 말해야 하느니라. ‘허공이 다할 때까지 일체중생을 내가 지금 모두 구경 원각에 들어가게 하되, 저 원각 가운데서 깨달아 취할 것이 없게 하여, 저 아상과 인상, 일체의 모든 상相을 제거하게 하리라.’ 이와 같이 발심하면 삿된 견해(邪見)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보각이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말세 모든 중생이 선지식을 구하고자 한다면 응당히 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으로 마음에 이승二乘을 멀리 하는 자를 구할지어다. 법 가운데에 네 가지 병(四病)을 제거해야 하니 작作·지止·임任·멸滅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을 친근하여도 교만이 없어야 하며, 멀리 떠날지라도 화를 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게 할지어다. 갖가지 경계를 보아도 마음에 마땅히 희유함을 내어, 도리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것과 같이 할지니라. 계행이 아닌 것에 범하지 아니하면 계율의 근본이 영원히 청정하리라.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구경의 원각에 들어가게 하되, 저 아상과 인상을 없애고 항상 지혜에 의지하면, 문득 삿된 견해(邪見)를 초월하게 되어 대열반을 증득하리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이미 깨달음을 얻었으나, 만일 부처님께서 멸하신 후에 말세 중생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는 어떻게 안거安居하여야 이런 원각의 청정한 경계를 닦으리까? 이 원각 가운데에 세 가지 종류의 청정한 관법(淨觀)이 있는데 어떤 것으로써 가장 으뜸을 삼아야 하리까? 오직 원컨대 대비大悲로 모든 대중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크고 넉넉한 이익을 베푸소서.”
“선남자야, 일체중생이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무시거나, 만일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이후거나, 만일 말법의 시대에, 모든 중생이 대승의 성품을 갖추어 부처님의 비밀한 대원각의 마음을 믿어 수행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만일 가람에 있을 때면 대중 가운데 편안히 거처하며, 인연되는 일이 있으면 분수에 따라 생각하여 살펴야 하는 것은 내가 이미 설한 것과 같이 하고,
청정한 거처에 안거하되 만일 부처님께서 현세에 계시다면 마땅히 바르게 사유해야 하고,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는 형상을 시설하고, 마음에 두고 눈으로 상상하여 바르게 생각하기를 도리어 여래께서 항상 머무시던 날과 같이 해야 하느니라. 온갖 깃발과 꽃을 달아 삼칠일을 지내도록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명호에 따라 머리를 조아리고 간절히 참회하면 좋은 경계를 만나 마음이 경안輕安함을 얻으리라. 삼칠일이 지나서도 한결같이 이 생각으로 거두어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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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8) 이 뜻은 공부하려고 발심했을 때에 오랜 세월의 죄과罪過를 참회해야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9) 처소를 정결하게 하고 위의威儀를 청정히 하여, 방탕한 허물을 여의고 지성으로 다생多生의 죄과를 참회하되, 여래께서 세상에 계신 날과 같이 해야 한다. 존중하는 마음을 내면 신심이 청정하여 자연히 죄과가 소멸하고, 좋은 경계를 얻게 된다. 그 뒤에는 한결같이 이 마음만 잘 유지하여 궁구해 나가야 한다.
10) 기일을 정하고 안거에 들어감(入期之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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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經夏首하야 三月安居호대 當爲淸淨菩薩止住ㅣ니 心離聲聞하며 不假徒衆이어든
“만일 초여름음사월 초순을 지나 석 달을 안거하려거든 마땅히 청정한 보살의 머무름에 머물며, 마음에서 성문을 여의고 대중과 휩쓸리지 말아야 하니라.”
“안거일에 이르러서는 곧 저 부처님 전에 이와 같은 말을 하여라. “저 비구든지 비구니든지, 우바새이든지 우바이든지 아무개는 보살승에 의지하여 적멸행을 닦아서, 청정한 실상에 함께 들어가 머무르며, 대원각으로써 나의 가람을 삼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평등성지平等性智에 안거하여 열반자성涅槃自性이 얽매임이 없으므로 이제 제가 공경히 청하나이다. 성문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마땅히 시방의 여래와 대보살과 더불어 삼 개월을 안거하여 보살의 무상묘각의 큰 인연을 닦고자 하므로, 대중의 무리에 얽매이지 않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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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1) 이것은 소승小乘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바로 대보살의 경계에 안주하는 것이다. ‘대원각으로 가람을 삼는다’는 말은 형상 있는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心)과 경계(境)를 쌍으로 잊고 평등한 적멸의 경지에 머무르는 것이다. 자성自性은 본래 몸과 마음과 세계에 붙은 것이 아니기에 오직 여래의 법신法身에 머무르게 된다.
12) 여름 안거 마침을 보임(結示休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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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男子야 此名菩薩의 示現安居ㅣ니 過三期日百二十日百日八十日是也하야는 隨往無礙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보살의 안거를 나타내 보인 것이라 이름하니, 세 종류의 기한을 지내면백이십 일, 백일, 팔십 일이 이것임. 가는 데마다 걸림이 없으리라.
선남자야, 만일 저 말세에 수행하는 중생이 보살도를 구하여 세 가지 기한에 들어가는 자는 들은 바가 아니면 일체 경계를 마침내 취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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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2) 이 뜻은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13) ‘들은 바가 아니거든 마침내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곧 위에서 말씀하신 세 가지 관법(三觀), 홑으로 닦는 것, 겹쳐서 닦는 것, 뚜렷이 닦는 것, 이십오륜二十五輪의 청정관淸淨觀, 『능엄경楞嚴經』의 오십종五十種 변마사辨魔事와 모든 경전에서 밝혀 놓은 마군의 일(魔事)을 말씀한 것이다. 자세히 가려서 들은 바 경계가 아니거든 취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중생이 사마타를 닦으려 한다면, 먼저 지극히 고요함을 취하여 생각(思念)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고요함이 지극하여 문득 깨달을 것이니라. 이와 같이 처음의 고요함이 저 일신으로부터 한 세계에 이를지니, 깨달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만일 깨달음이 하나의 세계에 두루하면, 하나의 세계 가운데에 있는 한 중생이 일으키는 한 생각까지도 모두 다 알게 되느니라. 백이나 천의 세계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저 들은 바의 일체 경계가 아니거든 마침내 취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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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4) 이것은 먼저 공관空觀을 닦는 방편을 보이는 것이다. 그 진공眞空에 계합하므로 ‘지극히 고요하다’고 하고,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지극히 고요한 광명이 발생하기 때문에 문득 깨닫는다 하신 것이다. 안으로는 몸과 마음이 텅 비고, 밖으로는 세계가 텅 비어 내외가 적연부동하여 몸과 마음의 세계가 한가지로 공함에 일체가 무르녹아 일심一心이 되는 것이다. 중생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곧 스스로의 마음(自心)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중생의 마음이 생각하는 것을 다 알 수 있나니, 이것은 공관空觀의 지극한 공능功能이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중생이 삼마발제를 닦으려 한다면, 먼저 마땅히 시방여래와 시방세계 일체 보살을 생각할지니 갖가지의 법문에 의지하여야 하니라. 점차로 수행하고 삼매를 부지런히 닦아야 하고, 큰 서원을 널리 일으켜 스스로 훈습하여 종자種子를 이룰지니라. 저 들은 바 일체 경계가 아니거든 마침내 취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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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5) 이것은 가관假觀을 닦는 방편을 보이는 것이다. 다만 공空한 데만 빠져 있는 것만이 아니라, 저 묘용妙用 가운데 환幻과 같은 지혜로써 관찰하며 또 시방여래와 일체 보살이 과거 인지因地에서 난행과 고행(難行苦行)을 닦는 것을 생각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저 삼매 가운데서 환幻과 같은 관觀을 일으켜서 안으로 그 마음을 증험하며 크게 중생을 제도할 원력을 발하여 오래도록 대보살의 종자를 훈습해야 할 것이다. 저 『능엄경』에 오십종五十種 변마사辨魔事와 모든 경전에서 말씀한 마군의 일(魔事)을 자세히 간택하여 들은 바 경계가 아니거든 마침내 취하지 말아야 한다.
“선남자야, 만일 모든 중생이 선나를 닦으려 한다면, 먼저 수식문數息門을 취하고, 마음 가운데 생生·주住·이異·멸滅과 생각의 한계(分齊)와 수효(頭數)를 명료하게 알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두루 가득하면 네 가지 위의(四威儀) 가운데에 호흡을 분별하는 생각의 수효를 알지 못함이 없으리라. 점차로 더 나아가면 백천 세계의 빗방울 하나까지도 알아서, 마치 눈앞에 있는 물건을 보듯 하리니, 저 들은 바 일체 경계가 아니거든 마침내 취하지 말지니라. 이것을 삼관三觀의 첫째 방편이라 이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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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 16) 이것은 적관寂觀을 보이는 것으로, 선나禪那는 중도관中道觀이 되는 것이다. 먼저 호흡식呼吸息을 의지하여 숨이 들락날락함을 의지하여 헤아리기를, 하나, 둘, 셋 이와 같이 열까지 헤아리고, 또다시 하나로부터 열까지 출입식出入息을 헤아리기를, 끊어짐이 없이 한마음으로 하면 미세한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을 낱낱이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점점 깊이 들어가면, 만법이 공한 곳에 신령스러운 광명(靈光)이 허령虛靈하여 백천 세계의 빗방울 수효까지 모두 알 수 있게 된다.
17) 삼관의 이익을 보임(示三觀之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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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諸衆生이 遍修三種하야 勤行精進하면 卽名如來가 出現于世니라
“만일 모든 중생이 세 가지 관법(三觀)을 두루 닦아서 부지런히 정진하면 곧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이름하느니라.
만일 다시 말세에 근기가 둔한 중생이 마음에 도를 구하고자 하나 성취하지 못한다면, 옛날의 업장을 말미암은 것이니라. 마땅히 부지런히 참회하여 항상 희망심을 일으켜서 먼저 증오와 사랑, 질투와 아첨하고 왜곡된 마음을 끊어 버리고 깨닫고자 하는 수승한 마음을 구할지어다. 세 가지 청정한 관법(淨觀)에 따라 하나를 배우고, 이 관법에서 얻지 못하면 다시 저 관법을 익혀야 하나니, 마음에서 놓아 버리지 말고, 점차로 증득을 구할지니라.”
일체 모든 중생이 무상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마땅히 세 가지 기간(三期)을 정해야 하느니라. 비롯함이 없는 예부터 업력을 참회해야 하느니, 삼칠일 지난 뒤에 바르게 생각할지니라. 저가 들은 바 경계가 아니거든 필경에 취하지 말지니라. 지극히 고요한 사마타와 바르게 기억을 유지하는 삼마발제와 호흡의 수를 밝게 아는 선나를 세 가지 청정한 관법(淨觀)이라 이름하니라. 만일 능히 부지런히 닦고 익히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왔다고 이름하니라. 근기가 둔하여 성취하지 못하는 자는 항상 마땅히 부지런히 마음으로 시작이 없는 옛날의 일체 죄를 참회해야 하느니라. 모든 장애가 만일 소멸하면 부처의 경계가 문득 앞에 나타나리라.”
선남자야, 이 경의 이름이 돈교대승頓敎大乘이 되는 것이니, 돈오 근기의 중생은 이로부터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점수하는 일체의 무리들도 섭수하나니라. 비유컨대, 큰 바다가 작은 물줄기도 사양하지 않듯이 심지어 모기, 등에, 아수라까지도 그 물을 마시는 자는 모두 충만함을 얻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의 이름을 듣고 신심이 의혹하지 않으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께 복덕과 지혜를 심은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항하의 모래가 다할 때까지 일체 부처님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의 씨앗을 심었기 때문에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들은 것이니라.
14) 바르게 유통할 것을 부촉함(正囑流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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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善男子야 當護末世에 是修行者하야 無令惡魔와 及諸外道로 惱其身心하야 令生退屈케 하라
너희 선남자들은 마땅히 말세에 이런 수행을 하는 자를 보호해야 하며, 악마와 모든 외도로 하여금 그의 몸과 마음에 번뇌가 생겨 퇴굴심退屈心이 생기지 않게 할지니라.”
“현선수여, 너는 마땅히 알아라. 이 경은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며, 여래께서 잘 보호하신 것이니라. 십이부十二部의 안목이니 이름이 대방광원각다라니이며, 여래의 경계를 나타낸 것이니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는 자는 증진되어 부처님의 경지에 나아가리라. 바다가 백 개의 냇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아서 마시는 자는 모두 충만하니라. 가령 칠보를 삼천 세계에 가득히 쌓아 베풀었더라도 이 경을 듣는 것만 못하느니라. 만일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대중을 교화하여 모두 아라한을 얻게 하더라도 반 구절을 베푸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너희들은 미래의 세상에 이 경전을 설법하고 수지하는 자들로 하여금 퇴굴심이 생기지 않게 할지니라.”
그때에 법회 가운데에 화수금강과 최쇄금강과 니람파금강 등 팔만 금강과 아울러 그 권속이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시고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도시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말세의 일체중생이 능히 이렇게 결정하여 대승을 수지하는 자가 있으면, 저는 마땅히 수호하여 안목을 지키는 것과 같이 하겠으며, 수행하는 장소인 도량까지 저희 금강金剛들은 스스로 무리를 거느리고, 새벽에서 저녁까지 수호하여 물러나지 않게 하겠나이다. 그 집에 내지 영원히 재앙과 장애가 없게 하며, 역병을 소멸시키고, 재산과 보물이 풍족하여 항상 궁핍하지 않게 하겠나이다.”
그때에 대력귀왕이 있으니 이름이 길반다이니, 십만 귀왕으로 더불어 곧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시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도시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또한 이 경을 수지하는 사람을 수호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모시고 호위하여 물러나지 않게 하오리다. 그 사람이 거하는 1유순由旬조선 이수로 40리 내에, 만일 어떤 귀신이 그 경지를 침범하거든 제가 마땅히 그를 부수어 가는 티끌같이 하리이다.”
006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 용성 선사의 원문에는 ‘크게 불쌍히 여기시는 세존이시여’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관용적 의미로 ‘대비하신 세존이시여’로 보완하였다. 각 장에 등장하는 문장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한다.
007 여래장如來藏 : 본래부터 중생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처가 될 가능성을 말한다. 중생의 마음속에 저절로 존재해 있는 부처님의 청정한 씨앗으로, 중생이 모두 갖추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져 아직 발현되지 않는 부처님의 성품을 말한다.
008 박시제중博施濟衆 : 『논어論語』 「옹야雍也편」.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인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何如可謂仁乎。)” 자공子貢의 이와 같은 질문에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 어질 뿐이겠느냐?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순堯舜도 그와 같이 못함을 걱정하였다. 무릇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는 곳에 남을 세우고, 자기가 도달하려고 하는 데에 남을 도달하게 한다. 가까운 나를 살펴 남을 비추어 보는 것이야말로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다.(何事於仁。必也聖乎。堯舜其猶病諸。夫仁者。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能近取譬。可謂仁之方也已。)”
009 생기게 하려면 : 용성 선사의 원문에는 ‘뚫거든’으로 되어 있지만, ‘비벼서 불이 생기게 하려는(鑽火)’의 의미를 따라 번역하였다.
012 가관假觀 : 삼관三觀의 하나. 우주의 모든 존재는 공空한 것으로서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모양을 분명히 갖춘 것도 실체가 없는 임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013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 : 『마하지관摩訶止觀』이 설명하고자 하는 삼관三觀의 지관법 가운데 하나이다. 종가입공관은 현실 세계에서 공을 깨닫는 것이다. 집착의 대상에 대해 범부는 욕심을 내고, 그 욕심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범부는 절망하고, 또한 그 욕심이 이루어졌다 해도, 다른 욕심을 위해서 불에 달려드는 나방과 같이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비로소 무집착의 세계인 공空을 깨닫고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다시 말하면, 종가입공관은 현실 세계의 집착이 공空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종가입공관에서 공空에 들어가기 위해 가假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즉, 가假를 잘 살펴서 가假에 집착하지 않아야 공空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종가입공관을 이제관二諦觀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가假는 현상세계의 영역인 속제俗諦에 속하고, 공空은 진실한 세계의 영역인 진제眞諦에 속하기 때문이다.(이병욱, 『천태사상연구』, 경서원, 2000)
014 종공가관입중도從空假觀入中道 : 중도제일의관中道第一義觀이라고도 한다. 공과 가의 중도를 깨닫는 것이다. 공空에 집착하면, 현실에 뛰어들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에 소홀히 하기 쉽고, 가假에 집착하면, 중생구제만을 강조하여 진리의 세계를 소홀히 하기 쉽다. 이 둘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중도제일의관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은 생사를 넘어서서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고,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은 열반도 뛰어넘는 것이다. 즉, 열반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중도제일의관은 앞의 두 관을 방편의 길로 삼아 중도를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이병욱, 『천태사상연구』, 경서원, 2000)
015 사마타奢摩他 : 비파사나 수행법 이전부터 있었던 인도의 정신집중 수행법. 사마타는 의역하여 지止·지식止息·적정寂靜·능멸能滅이라 번역한다. 산란한 마음을 멈추고 한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다. 그래서 비파사나가 관觀 수행법이라면, 사마타는 지止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합쳐 지관止觀이라 하며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교리이기도 하다. 사마타와 비파사나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마타에 의해 자아몰입에 들어간 후 지혜를 끌어내어 대상을 보는 비파사나 수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과 관찰은 불도수행에 있어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여기서 사마타는 정定에 해당되고, 비파사나는 혜慧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지관불이止觀不二라고 해야 할 것이다.
016 지止 :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움직이지 않고 한 대상에 머물러(止) 있어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017 삼마발제三摩鉢提 : 삼마발저三摩鉢底라고도 하며, 등지等至라 번역한다. 등等은 정력定力에 의하여 혼침惛沈·도거掉擧의 번뇌를 여의고, 마음이 평등 평정平靜함을 말하고, 정력이 이런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 지至라 한다.
018 등지等持 : 등等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아 평등하고 안정된 상태를 가리키며, 지持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한곳에 머물게 한다는 의미로서 단속하고 제어한다는의미가 있다. 이러한 등지의 상태라야 중생심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사물의 실상을 관할 수 있다.
019 선나禪那 : 선禪은 범어 dhyana의 음을 따서 선나禪那라고 하며 줄여서 선禪이라 한다. 뜻으로는 정려靜慮·사유수思惟修·기악棄惡·공덕림功德林·정定이라 번역한다.
020 정려靜慮 : 정려는 고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산란한 생각을 고요하게 가라앉힌 상태를 말한다.
021 교근翹勤 : 계발하다(啟發), 분발하여 열심히 하게 하다(奮發勤勉). arouse와 유사함.
021 바수밀녀婆修蜜女 :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한다. ‘바수밀다’라고도 하는데 창녀로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했다. 오십삼선지식을 찾아 선재동자가 보살의 지혜와 행을 묻기 위하여 방문한 26번째 선지식. 그녀는 선재동자에게 ‘보살리탐제해탈문’을 설했다.
022 무염족왕無厭足王 :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며, 오십삼선지식을 찾아 선재동자가 보살의 지혜와 행을 묻기 위해 방문한 18번째 선지식. 그는 선재동자에게 ‘여환해탈문’을 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