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 온릉溫陵의 개원련사開元蓮寺에서 계환戒環이 경의 제목을 해석하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제1권
1. 서분序分1) 믿음과 들었음을 표함 2) 설법의 때와 법주와 설법처 3) 총괄하여 표함 4) 비슷하게 같은 점을 총괄하여 이름함 5) 덕의 체가 생사를 벗어나 신이함 6) 위로 부처님의 교화를 도움 7) 모두 삼계에 크게 모범이 됨 8) 시방세계를 다함 9) 미래세를 다함 10) 간략히 상수제자를 듦 11) 다시 뛰어난 이와 하열한 이들이 함께함 12) 모인 대중이 진심으로 비밀한 뜻을 구함 13) 여래께서 묘하게 응하심 14) 모인 대중이 이익을 얻음 15)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대중이 모임 16) 국왕이 공양을 올림 17) 신하와 백성들이 공양을 올림 18) 아난이 별도의 청을 받아 먼 곳에 감 19) 공양이 없어서 걸식을 함 20) 평등한 자비를 바르게 행함 21) 평등하게 자비를 표해야 하는 연유 22) 계율을 더욱 엄히 지킬 것을 다짐함 23) 법력이 사악함을 이기지 못함 24) 계체가 위기에 듦 25) 공양을 마치고 속히 돌아가심에 대중들이 따라가게 함 26) 주문을 설하여 아난을 구제하도록 보냄 27) 사악함을 부수고 구제하여 돌아옴2. 정종분正宗分1) 묘정을 간절히 구함 2) 대중이 기쁘게 들음3. 여래께서 자세히 보이심1) 다만 능히 발심함만을 취함 2) 널리 중생들이 잘못 아는 것을 판별함 3) 질문에 대해 살펴서 정함4. 고집하는 것을 따라 잘못된 견해를 논파함1) 모두 마음이 몸 안에 있다고 생각함 2) 경계가 안과 밖임을 정함 3) 보는 순서를 정함 4) 멀리 보는 이유 5) 정定의 총괄적 이름을 냄 6) 바로 결택하여 주심 7) 등이 실외에 있음을 비유함 8) 유리에 비유하여 이치를 부합시킴 9) 밝고 어둠을 보는 것으로 안과 밖을 나눔 10) 합하는 곳을 따라 있다고 함 11) 중간에 있다고 함 12) 마음이 일정한 자리가 없다 함을 논파하심5. 망식이 마음이 아니라고 드러내어 꾸짖으심1) 부처님께 가르침을 여쭙고자 위의를 갖춤 2) 아직 증득치 못함이 부처님의 사랑해 주심만을 믿은 때문임을 자책함 3) 음실에 떨어짐이 처지를 알지 못함을 말미암은 것이라고 자책함 4) 정히 설하여 보여 주시길 구함 5) 나쁜 견해를 겸하여 제거함 6) 모든 중생이 간절히 구함6. 여래께서 그릇된 마음을 드러내어 보이심1) 모든 지혜 광명이 나타날 것을 표함 2) 대중의 업식을 장차 논파하시고자 함을 표하심 3) 덮여 가린 것이 장차 열릴 것을 표함 4) 생사와 미망에 떠도는 일이 장차 그침을 표함 5) 참됨을 미혹함에 대하여 말씀하심7. 바로 망식이 마음이 아니라고 물리치심1) 응당 물음을 드리우시길 구하여야 함 2) 총괄하여 보느냐고 따져 물으심 3) 따로 본 바를 따져 물으심 4) 따로 보는 주인을 물으심 5) 아난의 대답에 나아가 마음에 대해 물으심 6) 마음을 들어 답함 7) 바로 마음이 아니라고 꾸짖으심 8) 아난이 놀라며 이름을 찾음 9) 여래께서 이름을 지적하여 허물을 벗어나게 하심8. 망식이 체가 없다고 추궁하여 논파하심1) 출가함에 이 마음을 썼다고 함 2) 선을 지음에 이 마음을 쓴다 함 3) 악을 지음도 이 마음이라 함 4)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있는 바가 없다고 함 5) 아난 자신과 저 대중들도 놀래어 의혹한다고 함 6) 여래께서 열어 보이시길 구함9. 여래께서 안위하시어 드러내심1) 교의 깊은 뜻을 드리우심을 표함 2) 이미 항상 오직 마음만을 말씀하셨음을 보임 3) 진심에 체가 있음을 비유를 드심10. 허위를 드러내심1) 도리어 모든 진塵을 여의고 지각하는 성품이 있느냐고 힐난하심 2) 외연은 여의지 못함 3) 안으로 고요함을 지켜도 여의지 못함 4) 분별성이 진을 여의고는 체가 실로 없음 5) 티끌을 여의고 체성이 없으면 이 티끌은 그림자임 6) 티끌이 그림자라면 곧 단멸과 같음 7) 단멸이라면 누가 지극한 도를 이룸11. 그릇된 줄을 알고 말없이 있음12. 귀결처를 결론지어 판단하는 말씀13. 잃어버린 참된 성품을 드러내 보이심1) 슬픈 감회에 젖어 진부한 말씀을 드림 2) 부처님의 위신만 믿고 여래의 크나큰 선정을 닦지 아니함을 후회함 3) 널리 듣고 많은 것을 아는 것만 믿어서는 마침내 실로 얻을 것이 없음을 후회함 4) 미혹함에서 도의 눈을 열어 보여 주시기를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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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래께서 참다운 체를 드러내어 보이심1) 참 지혜의 모양을 환하게 여심 2) 법상法相을 원융히 비추심 3) 위로 부처님세계의 형상에 가지런히 함 4) 아래로 중생계의 형상에 균등히 함 5) 널리 열어 보일 것을 허락하심 6) 여래께서 쌍으로 주먹을 보이시어 물으심 7) 아난이 각각 그 이유를 대답함 8) 쌍으로 법과 비유를 펴서 심찰케 하심 9) 아난이 아직 같지 아니함을 깨닫지 못함 10) 정히 잘못됨을 물리치심 11) 같지 아니함을 밝히심 12) 맹인에게 물어서 시험케 함 13) 결론지어 봄이 있음을 말씀하심15. 어두움을 봄에 견이 이루어짐을 밝히심1) 아난이 어두움을 보는 것에 견분見分이 아니라고 의심하심 2) 맹인과 눈이 있는 두 사람이 보는 어두움에 대해 물으심 3) 쌍으로 같다고 답함 4) 애초에 잘못됨을 나열하심 5) 더욱 두 가지 잘못을 이룸 6) 예를 들어 보는 성품은 등이 아니라 하심16. 보는 성품은 동하지 아니함을 보이심1) 아직 깨닫지 못해 널리 보여 주시길 바람 2) 여래께서 깨닫게 된 근원을 찾아 궁리케 하심 3) 교진나가 자신이 깨달음을 얻게 된 연유를 말함 4) 객이라는 글자를 비유로 밝히심 5) 진塵이라는 글자를 비유로 밝히심 6) 여래께서 교진나의 말을 인정하심17. 정히 보는 성품은 동치 아니함을 드러내심1) 본 것에 대해 가리어 정함 2)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함을 가림 3) 동정動靜의 차이를 밝힘 4) 아난의 말을 인정하심 5) 광명을 놓아 아난의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게 하심 6)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게 된 이유를 물으심 7) 움직임과 고요함의 차이를 밝히심 8) 아난의 말을 인정하심18. 널리 스스로 유전을 취한 것을 책망하심1) 깨달아야 할 바 객진을 취함 2) 현전의 동정動靜을 관찰케 함 3) 괴이하게 망령됨이 몸과 경계를 말미암음을 앎 4) 혹惑 5) 업業 6) 고苦 7) 총괄하여 길이 윤회에 빠짐을 결론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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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나라 온릉溫陵의 개원련사開元蓮寺에서 계환戒環이 경의 제목을 해석하다1)
(支那溫陵開元蓮寺 戒環 釋經題)
여래의 과체果體는 그 본바탕이 본래 그러한 것이니 어찌 밀인密因을 빌린 것이며, 보살의 도력道力의 작용은 그 작용이 조작이 없는 것이니 무엇으로 만행萬行을 삼으리오. 비밀한 인因도 만행行도 없으며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으며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도 없어서 크고 작은 이름이나 형상이 모두 성립되지 아니한다. 이것이 참다운 수능엄首楞嚴으로서 필경견고畢竟堅固(절대적이며 궁극적인 견고함)한 것이다. 특히 중생의 여래성이 장심藏心에 감추어져 있으니 밀인이 아니면 드러내지 못하며, 중생의 보살성이 칠취七趣에 빠져 있으니 만행이 아니면 닦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覺皇)께서 이에 큰 법을 보이시어 소승의 도에 미혹되지 않게 하여 묵묵히 밖이 없는 체體를 얻게 하셨다. 부처님의 정수리(佛頂)로 비유하시어 형상과 소견에 걸리지 않고 위없는 이치를 묘하게 다하도록 하셨다. 여래의 밀인(비밀한 因)을 가리켜서 본래의 묘한 마음을 밝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모두 이것을 의지하여 초인初因이 됨을 알게 하셨다. 닦고 증득하는 분명한 이치(修證了義)를 밝혀서 궁극적인 법을 깨달아 모든 성인들이 모두 이를 의지하여 과果를 증득함을 알게 하셨다. 내지 보살의 청정한 만행을 갖추어서 모든 사事와 법法이 구경 아님이 없어서 실상實相의 견고하고 무너지지 아니함에 이르게 하시므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이라고 이름한다. 이 경에는 모두 다섯 가지 이름이 있는데 지금 제목을 세 가지만 다룬 것은 간략하지만 넓은 뜻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른바 변지해徧知海와 묘련화왕시방불모妙蓮華王十方佛母는 곧 나머지 둘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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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실달다반달라무상보인悉怛多般怛囉無上寶印』과 청정해안淸淨海眼과 관정장구灌頂章句는 모두 앞의 셋과 통한다. 『실달다반달라』는 백산개白傘蓋(흰 일산)를 말하니 곧 여래장심如來藏心이 광대하고 더러움이 없어서 법계에 두루하는 체體임을 뜻한다. 이 경은 곧 마음의 인印이 되고 이 마음의 눈이 된다. 이 보배로운 인印으로써 도장 찍어 칠대만법七大萬法으로 하여금 다 본심本心에 계합契合하게 한다. 이 바다 같은 눈(海眼)으로 오음五陰·육입六入·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가 모두 여래장임을 드러낸다. 이로 말미암아 보리심을 증득해서 부처님의 지혜 바다에 들어가며, 묘련화왕妙蓮華王이 되어서 더럽거나 깨끗한 만 가지 경계에 자재하게 꽃 피우며, 시방 부처님의 어머니가 되어서 먼지와 터럭같이 많은 국토에 인연을 따라 태어난다. 또한 과덕果德을 성취하여 관정위灌頂位를 받기에 이르면 모든 궁극적인 견고한 사事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질 것이다. ‘수능엄’이란 이를 번역하면 일체사가 필경에 견고하다(一切事畢竟堅固)라고 하며 또한 건상분별健相分別2)
이라고도 한다. ‘일체필경一切畢竟’은 이미 앞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달리 말하면 금강金剛과 같은 관찰로 각명覺明을 분석하는데 마음의 소재를 따져 묻는 칠처징심七處徵心과 팔환변견八還辯見에서 시작하여, 음陰을 부수어 마장魔障을 벗어나는 데 마치기까지 건상분별사健相分別事가 아님이 없다. ‘경’은 곧 능전能詮(경전에 쓰여진 의의 내용을 나타내는 문구)의 문장이다. 전詮은 통발과 같다. 경이 통발인 줄 알면 이를 따라 해석한 것도 모두 통발이요, 물고기가 아니니 배우는 이는 삼가 통발을 집착하여 물고기로 여기지 아니해야 수능엄이라는 참다운 경을 얻을 수 있다.
우리 불교의 주장(我敎의 主張)
譯者曰吾佛의 敎意는 心을 敎하는 敎요 天이나 神이나 그러한 모든 것을 信奉함이 아니니 佛學者는 我의 心外에는 一物도 無함을 信할지어다. 誰知君家一輪月이 萬古光明長不滅고 着眼看하라.
번역자가 말한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치신 뜻은 마음을 가르치는 종교요, 하늘이나 신神이나 그러한 모든 것을 신봉함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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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배우는 이는 나의 마음 밖에는 한 물건도 없음을 믿을지어다. 어느 누가 그대의 집 둥근 달이 아주 오랜 옛적의 광명으로 길이 멸하지 아니함을 알리오. 눈을 돌려 볼지어다.
살펴보자면, 무릇 묘사마타妙奢摩他와 삼마三摩와 선나禪那라는 것은 곧 한 경의 큰 근본이며 삼분三分(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강종綱宗(불교의 근본정신)이다. 사마타奢摩他란 적정寂靜의 뜻이요, 삼마三摩란 밝게 비추어 본다(明照)는 뜻이며, 선나禪那는 명明과 정靜이 둘이 아닌, 같다는 뜻이다. 성체본각性體本覺을 명明이라고 하고 각체본적覺體本寂을 일러서 정靜이라 한 것이며 명정明靜이 둘이 아님을 체體라고 말한다. 이 명정明靜의 체體를 가지고 말한다면 곧 구경견고究竟堅固한 이치도 정定에 안주安住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진실로 명정明靜의 체體가 갑자기 우매하게 되어 움직이는 생각이 별안간 생겨서 곧 본래 밝은 것(本明)이지만 무명이 된 것이요, 온전히 본래의 고요함이 움직이는 생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에 동動함을 인하여 지止를 닦는 것은 그 동動을 그치는 것이요, 혼미함을 인하여 관觀을 닦는 것은 그 혼미함을 관하는 것이다. 지관止觀의 공력功力이 나타나면 혼미함과 동動함이 저절로 없어지고 명정明靜이 자연히 회복될 것이다. 이는 지관止觀의 용用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곧 구경견고究竟堅固한 행도 정定에서 이끌어 일으킨 것이다. 경에 이르되 “삼마제三摩提가 있으니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구족만행大佛頂首楞嚴王具足萬行’이라” 한다. 이는 사마타 등이 이행理行에 통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아난이 첫머리에 시방의 여래가 보리를 이루신 묘사마타와 삼마와 선나인 최초방편最初方便을 묻는 것은 뜻이 구경의 견고한 이치를 밝혀서 수행자의 근본을 삼는 데 있는 것이지 닦아 나아갈 행을 물은 것이 아니다. 대개 시방의 여래는 이 묘사마타·삼마·선나를 최초의 방편으로 삼아 보리의 과果를 이루게 됨을 밝힌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아난이 곧 과체果體를 가리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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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因을 물으니 어찌 뜻이 구경의 견고한 이치를 밝힘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곧 최초 방편은 다만 참되고 올바른 것만을 믿고 이해해야 함을 가리킨 것이요, 다시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설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또 3권의 경 절반은 모두 견도見道에 속하니 이것이 어찌 수도修道를 물은 것이겠는가. 이 첫 질문이 견도분見道分의 총괄적인 질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난이 사마타의 길을 보여 주기를 청한 것은 뜻이 자성수능엄自性首楞嚴 묘장엄妙莊嚴의 길을 보여 주시길 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지행止行을 보여 주시길 구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타 등이 이미 이행理行에 통한 것이라 그것으로 자성自性을 삼은 것이며, 오직 이理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또한 보여 주기를 청한 자의 본래의 뜻에도 어긋난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 광명을 놓으신 후에 먼저 진심眞心과 망심妄心 둘을 가리켜 생사와 열반의 근본을 밝히시고, 후에 그 질문한 뜻을 끌어다 이르시기를, “그대가 이제 사마타의 길을 알아서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무릇 망심妄心은 바로 비롯함이 없는 생사의 근본이며, 진심眞心은 생사를 벗어나 열반을 증득하는 근본이다.”라고 하셨다. 사마타의 길을 알아서 생사를 벗어나기를 원하고자 한다면 사마타의 길을 알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곧 자성을 알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곧 주먹을 들어 질문하신 뜻이 마음의 씀이 진眞인지 망妄인지를 시험하는 데 있다. 그로 인하여 다시 그릇되이 추측하므로 곧 꾸짖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앞 티끌(前塵)의 허망한 모양과 생각들이다.”라고 하시고 결론지어 보이시며 이르시기를 “모두 이 생사의 망상을 집착함을 말미암아 그릇되이 진실한 것으로 여겨서 성스러운 과果를 이루지 못함이다.”라고 하셨다. 위에서 열어 보인 바는 다만 망령된 것을 알고 참된 것을 알아서 생사를 벗어나고자 함이고 아직 닦음에 대해서는 논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므로 알라. 모든 사마타의 길을 보임은 자성自性을 보기를 구한 것이요, 지止를 보기를 구한 것이 아니다. 또 아난이 ‘견見을 견見하는 것이 견見이 아니라’고 함을 듣고진견眞見을 볼 때에 망견妄見이 아님을 듣고 거듭 미혹함을 더하여 다시 청하여 말씀드리기를, “오직 원컨대 크신 자비로 큰 지혜의 눈을 베푸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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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에게 각심覺心의 밝고 맑음을 열어 보이소서.” 하였으니 이는 미혹함을 풀어서 마음의 밝고 맑음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 장차 대다라니大陀羅尼·모든 삼마제三摩提·묘수행로妙修行路를 널리 펴고자 하시어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은 잘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만 더할 뿐이지, 사마타와 미세하고 비밀한 관조觀照에 대해서는 마음이 오히려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진견眞見의 체體와 용用의 위에 미혹함이 생긴 것이다. 대개 진견眞見은 체體요, 적조寂照는 용用이다. 그 이유는 진견의 체가 본래부터 적조의 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고요하되(寂) 항상 비추므로 보는 정기가 이 망妄임을 비추어 아는 것이요, 비추되 항상 고요하니 견見은 이 견見이 아니라 하셨다.진견眞見은 망견妄見이 아니라 하였다. 아난이 이미 진견眞見의 체와 용에 대하여 모두 깨닫지 못하고 미혹함을 더하므로 세존께서 다시 같고 다른 두 가지 견見을 가리켜서 거듭 사마타, 관조觀照를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본각本覺은 밝은 마음이라 연緣을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고, 깨달은 것을 깨닫는 것은 눈병이다. 깨달음은 눈병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실로 보는 것을 보는 것(見見)이다. 대개 본각의 밝은 마음은 곧 대다라니요, ‘연緣을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라’고 한 것은 곧 모든 삼마제의 묘한 수행의 길이다. “본각의 체는 고요하되 항상 비춤을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능히 모든 연緣과 망妄을 깨닫고 비추지만 항상 고요하므로 눈병 속에 떨어지지 아니한다. 실로 보는 것을 볼 때에 보는 것이 이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곧 거듭 사마타, 관조를 보여서 보는 것을 보는 것은 보는 미혹이 아니다(見見非見)의 미혹함을 풀어서진견眞見을 보는 때는 이것이 망견妄見의 미혹이 아니라. 각심覺心이 밝고 맑게 해 주는 것이다. 혹 이르기를, ‘이미 사마타, 관조’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모든 삼마제묘수행로’라고 하셨으니 어찌 지관止觀 닦음을 보여 주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고, 어찌 견도見道에만 국한하겠는가. 답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왜냐하면 이 문장 가운데 망령된 소견과 망령된 깨달음을 부수고 참된 소견과 참된 깨달음을 드러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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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으로 하여금 참된 깨달음과 참된 견見의 체가 법답게 적조寂照의 용用을 갖추어서 능히 망령됨을 파할 수 있음을 알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너는 응당 알아야 할지니 견見을 돌이켜 볼 적에 돌이켜 보는 것은 견이 아니니라.”라고 하셨다. 뜻을 알고 나서 행해야 하는 것이요, 행하되 망령됨을 파해야 한다. 만약에 아난이 진각眞覺의 체용體用을 알면 곧 대다라니, 모든 삼마제, 묘수행로妙修行路를 알거니와 이제 아난이 이미 진견眞見의 체용을 알지 못하고 미혹함이 생겼으니 곧 이행理行에 대하여 두 가지를 함께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르되 “사마타, 관조, 묘수행로”라고 하였으나 문장이 망령됨을 부수어 진실을 드러내는 데 속하니 뜻은 이치를 알고 행을 알게 함에 있다. 그러므로 견도見道에 속하지 수도修道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묘사마타, 삼마, 선나가 이미 이행理行에 통한다면 곧 견도의 소견所見이라는 것도 이런 이치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여래장묘각명심如來藏妙覺明心이 여래의 시방국토 등을 머금어 기른다 함을 알지니라.”라고 하셨다. 수도견지에서 닦는 것도 이 행을 닦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에 관한 경문에서 지관止觀의 두 가지 결정적인 뜻을 밝히셨다. 증과證果의 소증所證이라는 것도 이런 이치를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이 각覺이 비로소 금강심金剛心 가운데 처음의 간혜지乾慧地를 얻었으나 곧 돌이켜 부처님의 삼마지三摩地를 증득하느니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한 경의 큰 근본이며 삼분三分의 강종鋼宗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말하기를, “구경견고究竟堅固한 이치를 의지하여 구경견고한 행을 닦으며, 구경견고한 행을 닦아서 돌이켜 구경견고한 이치를 증득한다.”라고 하셨다. 『수능엄경』의 대지大旨가 이와 같다. 대개 능엄이라는 것도 대승에서 초학初學이 도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니 어찌 그것을 알리오. 대개 반야 이후에 혜학慧學이 바야흐로 왕성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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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定力이 아직 온전치 못하여 사람들이 혹 다문多聞에 빠지고 정수正受(三昧)를 잃어버리니 이에 능엄의 큰 정定을 보이시어 반야의 큰 지혜를 도와서 정혜定慧로 하여금 고르게 하며 배움과 행이 둘 다 온전해서 구경에 일승一乘의 실상實相에 나아가게 하시니 이것이 능엄을 지으신 이유이다. 대개 아난은 실제로는 큰 권교權敎의 보살이다. 어떻게 그러한 줄을 알겠는가? 계환戒環 스님의 주註에 말하기를, “과거의 공왕불空王佛의 처소에서 부처님과 함께 발심하였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음실淫室에 떨어짐을 시현示現함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그 증거이다.
용성연의 본연 청정한 자성이 모든 시간이 없는 저 한때에, 삼세 고금이 무장무애한 저 한때에, 천상천하와 시방진찰세계가 서로 걸림이 없는 저 한때에, 사바세계에 저 한때에, 교주 되신 대법왕 석가부처님께서 인도나라 실라벌성 기원정사에 계셨다.
3) 총괄하여 표함(摠標)
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과 함께 하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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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 수효數爻가 많고 명망이 두텁고 덕이 높은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계시었다.
4) 비슷하게 같은 점을 총괄하여 이름함(摠名似同)
皆是無漏大阿羅漢이러라.
용성연의 모두 이 욕심에 새는 마음과 무명에 새는 마음과 유有에 새는 마음이 다하여 명망과 덕이 큰 대아라한이었다.아라한은 이미 무명도적을 죽인 뜻
5) 덕의 체가 생사를 벗어나 신이함(德體超異)
佛子로 住持하사 諸有에 善超하며 能히 저 國土에 威儀를 成就하며
용성연의 불타의 법화法化를 받아 정도에 머물러 항상 도심을 가진 참 불자였다. 법왕의 집에 머물러 정법을 가진 까닭에 주지라 한다.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 등 삼계 이십오유二十五有를 잘 벗어나며 능히 범부와 성인이 함께 머무는 국토에 신상身相이 단엄하며 또 삼천의 위의와 팔만의 미세한 행실을 단정히 갖추신 그 당당한 위의를 다 성취하였다.
6) 위로 부처님의 교화를 도움(上助佛化)
佛로부터 輪을 轉하사 妙히 遺囑을 堪하며
용성연의 부처님을 따라 시위侍衛만 할 뿐 아니라 불타의 법의 수레바퀴를 천하 만대에 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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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생사의 험악한 길에서 벗어나게 하니 참으로 묘한 법에 부처님의 유촉을 능히 받을 수 있는 분들이었다.
7) 모두 삼계에 크게 모범이 됨(盡本界)
毘尼를 嚴淨히 하사 三界에 弘範이 되시며
용성연의 비니란 말은 계향戒香을 가진다는 말이니, 몸과 입과 마음을 엄정히 하여 삼계에 큰 모범이 되신다.
8) 시방세계를 다함(盡十方)
應身이 無量하여 衆生을 度脫하며
용성연의 관세음보살 삼십이응신과 같이 모든 세계에 몸을 나투지 아니함이 없어서 그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의 바다를 건너서 생사고를 벗어나게 하신다.
용성연의 그 이름을 말하면 대지사리불과 마하목건련과 마하구치라와 부루나미다니자와 수보리와 우파니사타 등이 상수가 되시었다.
11) 다시 뛰어난 이와 하열한 이들이 함께함(更盡勝劣)
다시 無量辟支와 無學과 竝其初心이 佛所에 同來하시니
용성연의 벽지불에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 출현하여 혹 춘하추동의 사시가 천변함을 보고 스스로 십이인연법을 깨달은 사람은 독각獨覺이라 한다. 또 하나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 출현하여 불타의 법화를 받아 십이인연이 허환함으로 있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연각緣覺이라 한다. 이 능엄회상에 모이신 무량한 벽지불은 다 독각이 아니다. 아라한과를 증득한 무학과 성문사과聲聞四果에 미치지 못한 초학初學이 모두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오셨다.
12) 모인 대중이 진심으로 비밀한 뜻을 구함(時會誠求)
마침 諸比丘에 夏를 休하여 自恣함과 十方菩薩이 心疑를 姿決하여 慈嚴을 欽奉하시와 장차 密意를 求하고자 하였는데
용성연의 그때는 마침 칠월 십오일이라 구십 일 동안에 서로 왕래를 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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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공부만 하다가 이 날에야 여름 공부를 쉬고 부처님께 마음대로 법을 물어 깨끗이 하며 시방보살이 마음에 의심된 것을 끊을 때이다. 자비와 위엄을 갖추신 부처님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장차 은밀한 뜻을 구하고자 하였다.
용성연의 가릉빈가새 이름라 하는 것은 소리가 좋은 새이니 그 새는 알에서 태어나자마자 새끼 때부터 소리를 내었다. 그 새는 선금仙禽(신선과 같은 날짐승)이다. 그 소리가 맑고 맑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상쾌하고 즐겁게 하니 부처님의 범음梵音이 청정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이 들음을 가릉새 음성에 비유한 것이다. 부처님의 범음성梵音聲이 시방세계에 두루하니 항하사와 같은 많은 보살이 부처님의 범음을 듣고 도량에 와서 모이시니 문수사리가 상수가 되셨다.
16) 국왕이 공양을 올림(國王齋供)
時에 波斯匿王이 其父王을 爲하여 諱日에 齋를 營하고 佛을 宮掖에 請하려 하여 如來를 自迎하시며 珍羞無上妙味를 廣設하사 兼하여 다시 親히 諸大菩薩을 延하시더니
용성연의 칠월 십오일 즈음에 그때에 인도 사위나라 왕사성 중에 바사익왕은 과거 용광불 처소에서 제사지보살第四地菩薩이 되었다. 부처님의 법화를 돕고자 하여 방편으로 국왕이 된 사람이다. 그 부왕의 제삿날에 재를 열고, 부처님을 왕궁에 청하여 왕이 여래를 친히 맞으시며 귀중한 식품을 많이 베풀어 놓고 아울러 다시 친히 여러 대보살들을 영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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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하와 백성들이 공양을 올림(臣民齋供)
城中에 다시 長者와 居士가 有하여 同時에 僧을 飯하려 하여 佛께서 來應하기를 佇하거늘 佛께서 文殊를 勅하사 菩薩 및 阿羅漢을 分領하여 모든 齋主를 應하라 하시니라.
용성연의 성중에 다시 장자와 거사가 있어 동시에 스님들을 공양하려 하여 부처님께서 오시어 공양에 응하기를 기다리니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단단히 일러서 모든 보살과 아라한을 각각 거느리고 모든 시주에 응하라고 하셨다.
18) 아난이 별도의 청을 받아 먼 곳에 감(別請遠遊)
오직 阿難이 있어 別請을 先受하여 멀리 놀다가 還하지 못하여 僧次에 遑치 못하더니
용성연의 오직 아난만이 자자칠월 십오일 이전일 이전에 먼저 별청을 받아 멀리 가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대중의 공양하는 자리에 여가하지 못했다.여가는 참여한다는 말이다.
19) 공양이 없어서 걸식을 함(無供循乞)
이미 上座와 및 阿闍梨가 無하고 途中에 獨歸하더니 其日에 供이 無하거늘 卽時에 阿難이 應器鉢也를 執持하고 於所遊城에 次第로 循乞하되
용성연의 이미 상좌와 아사리가 없고 도중에 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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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마침 공양이 없어서 즉시 아난이 발우를 가지고 놀던 성에 들어가서 차례로 밥을 빌었다.
용성연의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당초에 불법 중에 마음을 발하지 못한 자와 선심이 없어 보시 복덕도 지어 보지 못한 최후의 단월을 구하여 재주齋主로 삼으리라 하고 생각하였다. 청정, 불청정과 왕족과 높은 종성種姓과 백정소 잡는 사람을 따지지 아니하고 평등하게 자비를 행하고자 하여 미천을 가리지 아니하였다. 일체중생의 한량이 없는 공덕을 원만히 이루고자 뜻을 발하였다.
용성연의 수보리는 빈천한 집은 그만두고 부잣집만 공양을 받으니 그의 뜻은 부자로 하여금 선근을 계속 쌓게 하여 다시 타락하지 않도록 함이다. 대가섭은 부자는 그만두고 가난한 집만 공양을 받으니 그의 뜻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생각하여 내세의 선근 인연을 짓게 함이었다. 부처님께서 이 두 사람이 아라한과를 증득하고도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꾸짖음을 아난이 이미 알고 여래의 차별이 없음을 흠앙하였다. 또 부잣집만 가는 것은 의식衣食을 위함이라고 모든 사람이 비방하고, 가난한 집에만 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괴상한 일이라고 의심할 것이니 내가 평등하게 하여 모든 의심하고 비방하는 미혹을 풀어서 건지리라고 하였다.
용성연의 인도나라에 사비가라 고행 외도가 있으니 그 외도의 진언이 사비가라선범천주라 한다. 세대世代에 유전하여 오던 주술인데 그 실상은 큰 요술법이다. 그때에 아난이 걸식할 차례가 되어 음실을 지나다가 큰 환술법 하는 마등가녀가 아난의 상호가 미묘절승함을 보고 욕심이 일어나서 자기가 가진 수건에 진언을 염念하여 밥그릇을 덮어 주었다. 그 환술력으로 인하여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음탕한 자리로 들어가게 되었다.
용성연의 그때에 세존께서 이마로 백 가지 보배 빛이 찬란하여 두려움이 없는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 가운데로 천 개의 잎으로 된 보배 연꽃이 출생하였다. 부처님의 화신불이 있어서 가부좌를 맺으시며 신주를 베풀어 말씀하사 문수사리에게 단단히 이르시어 주를 가지고 가서 두호하여 주어라 하셨다.
용성연의 아난이 부처님을 뵈옵고 이마로 예하고 슬피 울어 비롯함이 없는 옛적부터 한결같이 많이 듣기만 하고 도력을 온전히 못함을 한탄하여 은근히 시방여래의 보리도를 이루는보리는 깨달은 도다. 묘한 사마타와 삼마와 선나 최초 방편을 물었다. 쉽게 말하자면 묘사마타는 정정正定이요 삼마는 지혜요 선나는 정定과 혜慧이다. 뚜렷한 뜻과 큰 뜻과 세 가지 뜻이 갖추어져 있음으로 묘하다 하시니 곧 수능엄대정首楞嚴大定이다.
2) 대중이 기쁘게 들음(大衆欣聞)
於時에 다시 恒沙菩薩과 및 十方阿羅漢과 辟支佛等이 있어 함께 樂聞하기를 願하시와 退坐默然하여 聖旨를 承受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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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 그때에 다시 항하사보살과 시방의 모든 큰 아라한과 벽지불 등이 함께 즐거이 듣기를 원하여 자리에서 물러나 묵묵히 있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이어받고자 하였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나는 동기라 정리情理로 보면 천륜이 같으니 당초에 발심할 적에 나의 법 가운데에 무슨 수승한 모양을 보고 세간에 심중한 은애를 저버렸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기를, “제가 여래의 삼십이상이 수승하시고 묘하심이 빼어나서 절승하사 형체가 환하게 비추어 사무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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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와 같음을 보고 항상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상은 애욕으로 나는 것이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음욕의 기운은 추탁하여 비린내가 서로 얽히며 고름과 피가 잡란하여 뛰어나고 깨끗하며 묘하게 밝은 자금색 빛 무더기를 발생하지 못하리라’고 하여 이런 까닭으로 갈앙흠모하는 마음하는 마음이 나서 부처님을 따라와서 머리를 깎았나이다.”‘정리로 보면 천륜이 같다’는 부처님과 아난과 사촌 형제간이라는 말이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착하도다. 아난아! 너희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일체중생이 아주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나고 죽는 것이 끊어질 사이가 없이 상속하는 것은 항상 머물러 있는 참마음이 본래 더러움이 없어 깨끗하고, 본래 어두움이 없어 신령하게 밝은 체를 알지 못하고 온갖 망상을 내나니 이 망상은 참된 것이 아니다. 그런 탓으로 삼계육취에 윤회하여 생사의 고가 있느니라.”
용성연의“네가 위없는 보리에 참되고 거짓됨이 없으며 분명하게 밝은 성품을 참으로 밝히고자 한다면 마땅히 곧은 마음으로 나의 물음에 답하여라. 시방여래께서 함께 한길로 생사를 벗어나셨으니 이는 다 곧은 마음을 쓰셨기 때문이니라. 마음과 말이 곧은 까닭에 이와 같이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마칠 때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직하지 못한 모양이 길이 없느니라.”
용성연의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저의 마음과 눈으로 한 것이니, 눈으로 여래의 몸에 삼십이상과 팔십종호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에서 사랑하고 즐거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가 발심하여 생사를 버리고자 원하였나이다.”
(4) 있는 곳을 물음(徵處)
佛이 阿難에게 告하사되 汝의 所說과 如하여 참 愛樂하는 바가 心目을 因함이라 하니 만일 心目이 있는 곳을 不知하면 곧 能히 塵勞를 降伏 받지 못하리라. 譬컨대 國王이 賊의 侵한 바가 되어 發兵討除하거든 是兵이 마땅히 賊의 所在를 要知코자 함과 如하니 汝로 하여금 流轉케 하는 것은 心目이 咎가 되느니라. 吾今에 汝에게 問하노니 唯心與目이 今何所在오. 按定徵已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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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음과 눈에서 일어난다고 하니 네가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아느냐? 알지 못한다면 번뇌망상을 항복 받지 못하리라. 비유하면 국가에 도적이 침입하면 그 도적이 어디서 오며 어디 숨어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네가 생사를 해탈하지 못하고 생사에 윤회하는 것은 마음 알음알이와 눈뿌리가 허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묻노니 마음과 눈이 어디에 있느냐.”질문에 대해 살펴서 정하는 것을 마침
용성연의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기를, “일체 세간에 태로 나고, 알로 까고, 습기로 나고, 저절로 화하여 나고, 빛으로 나는 것과 생각으로 나는 것과 빛이 아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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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나는 것과 빛이 없으나 빛이 없는 것이 아닌 것으로 나는 것과 생각이 없으나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 것으로 나는 것들이 다 눈뿌리는 밖에 있고 마음은 안에 있습니다. 중생만 그러할 뿐 아니라 여래의 눈을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고 저의 눈을 보아도 저의 얼굴에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저나 다 눈뿌리는 밖에 있고 아는 마음은 몸 안에 있습니다.”
용성연의 저 때에 세존이 대중에 계셨는데, 금색 팔을 펴시어 아난의 이마를 어루만지시고 아난과 모든 대중에게 고하여 보이셨다. “삼마제가 있으니삼마제는 두 가지 정과 혜를 똑같이 가진다는 말이니 정은 참된 성품이 일정하여 동하지 아니하여 흔들리지도 아니하는 것이요, 혜는 지혜가 뚜렷이 밝아 맑은 허공에 밝은 달 같음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이라대는 크고 작은 것이 끊어져 한량없이 크다는 말이요, 불정은 위없이 높다는 말이요, 수능엄은 모든 정에서 으뜸이니 바닷물이 백천 물을 다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대정大定이 그와 같은 까닭에 수능엄왕이라 하느니라. 만행이 구족하여 시방여래께서 일문一門으로 뛰쳐나가는 묘장엄로이니불타께서 최후에 성불하여 마치신 곳을 묘장엄해라 하나니 수능엄대정을 닦아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에 묘장엄로라 하느니라.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아난이 절을 하고 자비하신 뜻을 설하시길 엎드려 받들었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한 바와 같아서 몸이 강당에 있고, 문바라지가 활짝 열려서 수풀과 동산을 멀리 본다 하니
(2) 비유로써 도리어 힐난하심(卽喩反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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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衆生이 此堂中에 있어 如來를 不見하고 堂外를 見하는 자 있느냐.
용성연의 이것은 비유를 들어 도리어 힐난하심이니 또한 중생이 강당에 있어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밖을 보는 자가 있느냐?”
(3) 비유로 잘못됨을 앎(於喩知謬)
阿難이 答言하되 世尊이 堂에 在하심에 如來를 보지 않고 能히 林泉만 보는 것은 是處가 있음이 없나이다.
용성연의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존께서 강당 가운데에 계시는데 여래는 보지 않고 밖으로 수풀과 샘과 동산을 본다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4) 먼저 합당한지 결정하여 주심(先與合定)
阿難아 汝도 또한 是와 如하여
용성연의“네가 몸 가운데에 마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 또한 이 강당 가운데에서 여래를 보지 않고 도리어 바깥만 보는 것으로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니냐.”
(5) 바로 마땅히 몸 안을 본다 함을 힐난함(正難當見)
汝의 心靈이 一切를 明了하나니 만일 汝의 面前에 明了한바 마음이 身內에 實在할진대 爾時에 먼저 마땅히 身內를 了知하리니 자못 衆生이 身中을 先見하고 外物을 後觀함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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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너의 마음은 신령하여 일체를 밝게 아나니 너의 밝게 아는 마음이 진실로 몸 안에 있다면 먼저 몸 안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들도 먼저 몸 안을 보고서야 밖에 있는 물건을 보느냐.”
(6) 얕은 것으로 깊음을 비교함(以淺況深)
비록 能히 心肝脾胃를 見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爪生髮長하며 筋轉脈搖하는 것은 誠合明了거늘 如何不知오.
용성연의“비록 염통과 간과 비장과 위장을 잘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손톱이 나고 털이 자라며 힘줄이 구르고 맥이 흔들림은 밝게 볼 수 있을 것인데 어찌 알지 못하느냐.”
(7) 안에 있는 줄 모르고 밖에 있는 것으로 잘못 앎(昧內知外謬)
반드시 內를 見하지 못할진대 어찌 外를 見한다 하리오.
용성연의“네가 마음이 오장과 육부가 첩첩이 둘러싸인 속에 있으니 어찌 안을 보겠는가 한다면 네가 강당에 앉아서 부처님을 보고 밖으로 수풀과 동산을 본다는 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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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되지 아니하느냐. 또 눈은 창문과 같다면 마음이 머릿속에 있을 것이니 몸 가운데에 있다고 하겠느냐. 반드시 안을 모른다면 밖을 어찌 알겠느냐.”『열반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머리가 법당이 된지라 마음 왕이 그 가운데에 있음이라 하시니 그 말씀은 육단생멸심肉團生滅心을 밝히심이요, 이 경은 일진본원심一眞本元心을 밝히고자 하심이니라.
용성연의“왜냐하면 등불을 방 가운데에 두면 방 안이 먼저 밝고 그 등불 광명이 문으로 비춰 나가서 뜰이 환하게 밝은 것입니다. 마음이 몸 안에 있으면 등불과 같아서 몸 안을 먼저 보고 눈이나 귀나 이 여섯 가지 문으로부터 나아가서 밖을 봅니다. 일체중생이 몸 안은 보지 못하고 몸 밖에만 보는 것은 등불을 문 밖에 쓰는 것과 같아서 몸 안을 보지 못하고 몸 밖을 보는 것입니다.”
(3) 스스로 부처님과 같다고 결단함(自決同佛)
是義가 必明하여 장차 惑한 바 無할지니 佛의 了義와 同하여 시러금 妄됨이 無하오리니까.
용성연의 이 뜻이 분명해서 의혹할 것이 없습니다. 망령되이 몸 안에 있다고 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밝은 뜻과 같으므로 망령됨이 없겠습니까?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마음이 밖에 있다 하니 그러면 네 몸이 따로 있고 네 마음이 따로 있어 두 사람이 될 것이다. 또 피차가 나뉘어 있어 마땅히 서로 알지 못하리라. 만일 네 몸 밖에 있는 마음이 너의 육신상의 일을 안다면 여기서 사십 리 밖에 실라벌성에 저 밥을 먹은 모든 비구를 보라. 한 사람이 밥을 먹음에 여러 사람이 배가 부르겠느냐.”
阿難이 答言하되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是諸比丘가 비록 阿羅漢일지라도 軀命이 不同하거니 云何一人이 能히 衆으로 하여금 飽케 하리니까.
용성연의 아난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모든 비구가 비록 아라한도를 얻었을지라도 목숨이 같지 아니한데 어찌 한 사람이 먹은 것으로 여러 사람을 배부르게 하겠습니까?”
(6) 몸과 마음이 서로 간섭함이 없음을 비유하여 계합함(合喩無干)
佛께서 阿難에게 告하사되 만일 汝의 覺了知見之心이 身外에 實在할진대 身과 心이 相外하여 스스로 相干이 없어 곧 覺의 知한 바를 身이 能히 覺하지 못할 것이며 覺이 身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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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할진대 心이 能히 알지 못하리라.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말과 같이 비록 아라한일지라도 한 사람이 밥을 먹어서 여러 사람이 배부르지 아니한 것과 같이 네 마음이 실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등져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이 깨닫지 못할 것이요, 깨닫는 것이 몸의 표면에 있다면 몸 밖에 있는 마음이 어찌 몸 안을 알겠는가.”
용성연의“내가 너에게 손을 들어 보이노니 네 눈이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느냐?”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예,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손을 드는 것을 서로 안다면 마음이 어찌 몸 밖에 있다 하겠느냐.”도라면은 인도나라의 면화이다. 부처님의 손이 유연함이 면화와 흡사하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저 위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안에 있다면 어찌 오장육부를 보지 못하는가’라고 하시나 눈을 감으면 어두운 것을 보니 그것이 안을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안을 보지 못하면서 어찌 밖을 보느냐?’ 하시지만 눈을 뜨면 밝은 것을 보는 것이 밖을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다시 마음이 안에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용성연의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제가 일찍이 부처님께 가르치심을 들었사오니,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2) 체를 가리켜 처를 표함(指體標處)
我今思惟하오니 곧 思惟하는 體가 我의 心性이라 合하는바 處를 隨하여 心이 곧 隨하는 대로 有하나니
용성연의“제가 이제 생각하오니 곧 생각하는 사람이 저 심성입니다. 어디든지 마음이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있습니다.”
(3) 앞서의 허물을 모두 벗어남(總脫前過)
또한 內外中間三處가 아닙니다.
용성연의 또한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중간도 없는 것이 옳다 함이니 참으로 아난이 부처님의 뜻을 그릇되게 알았도다. 부처님의 뜻은 법이 스스로 혼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마음이 스스로 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마음과 경계를 대하지 아니하면 그 마음과 법이 다 비어 있는데 아난이 도리어 경계를 좇아
佛이 阿難에게 告하사되 汝今說言하되 法이 生함을 由하는 故로 種種心이 生하여 所合處를 隨하여 心隨有者인대 是心이 體가 無하여 곧 合할 바 無할 것이요 만일 體가 有함이 無하되 能히 合하는 者인대 곧 十九界가 七塵으로 因하여 合함이니 是義가 不然하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말대로 가지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가지가지 마음이 생겨서 어디든지 마음 생기는 대로 가는 곳마다 마음이 있다면 이 마음의 체가 없어 합할 바가 없을 것이다. 만일 처소가 없는데 능히 합한다면 십구계가 칠진으로 인하여 있는 것과 같으니 이 뜻이 옳지 않다.”십팔계는 있으나 십구계는 없는 것이요, 육진은 있어도 칠진은 없으니 없는 것으로써 어찌 합하리오.
(5) 바로 안과 밖 어느 곳을 출입하는지를 살펴 주심(正審從來)
만일 體가 有할진대 汝가 手로써 其體를 自挃할 것 같으면 汝의 所知心이 다시 內로 出함이 되는가 外로 從하여 入함이 되는가. 若復內出인대 身中을 還見할 것이요 만일 外로 從하여 來함인대 先合見面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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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만일 깨쳐서 아는 마음에 체가 있다면 네가 손으로 너의 몸을 꼭 찌르면 아픔을 느끼는 마음이 몸 안에서 나오는 것이냐?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냐? 몸 안에서 나오게 되면 도리어 몸 안을 볼 것이요, 밖으로부터 나온다면 먼저 너의 얼굴을 볼 것이다.”
(6) 보는 것을 눈이라 함을 구제함(救見爲眼)
阿難이 言하되 見은 是其眼이거니와 心知는 眼이 아니니 見한다 하는 것은 義가 아닙니다.
용성연의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보는 것은 눈뿌리가 보는 것이고, 마음 알음알이는 눈뿌리가 아닌데 마음이 본다고 하시는 말씀은 당초에 옳은 뜻이 아닌 줄로 생각합니다.”
(7) 여래께서 눈은 봄이 없음을 분별하심(如來辨眼無見)
佛께서 말씀하사되 만일 眼이 能見할진대 汝가 室中에 在함에 門이 能見否아. 則諸已死도 오히려 眼이 存함이 有하니다. 응당 物을 見할지라도 만일 物을 見하는 者인대 어찌 死라고 名하리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눈뿌리가 본다고 한다면, 네가 집에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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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문이 볼 수 있느냐. 죽은 사람의 눈이 썩지 아니하고 있을 때에 어찌 보지 못하느냐. 만일 물건을 본다고 한다면 어찌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겠는가.”
(8) 먼저 네 가지 형상을 분류하심(先開四相)
阿難아 또 汝의 覺了能知之心이 만일 반드시 體가 有할진대 다시 一體가 되느냐 多體가 有함이 되느냐. 今에 汝身에 在하여 다시 徧體가 되느냐 徧體가 되지 아니하느냐.
용성연의“아난아, 네가 깨쳐서 능히 아는 마음이 반드시 체가 있다고 한다면 체의 형상이 하나이냐? 체의 형상이 여럿이냐? 마음의 체가 온몸에 가득히 둘러 있느냐? 둘러 있지 아니하느냐?”
(9) 하나의 체라 함을 논파하심(破一體)
만일 一體라 한다면 곧 汝가 手로써 一支를 挃할 時에 四支가 應覺하리니 若咸覺者인대 挃이 응당 在한 것이 無할 것이요 만일 挃한 곳이 有할진대 곧 汝의 一體가 스스로 能히 成하지 못하리라.
용성연의“만일 너의 마음이 너의 몸과 하나가 된 것이라면 너의 손으로 팔이나 다리나 한군데만 꼭 찌르면 사지가 모두 ‘아야’라고 할 것인데 그렇지 아니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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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사지가 모두 ‘아야’ 하고 느낀다면 어디에다 꼭 찔렀는가? 만일 찌른 곳이 따로 있고 ‘아야’라고 느낀 곳이 따로 있다면 너의 마음의 체가 하나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10) 여러 체라고 함을 논파하심(破多體)
만일 多體일진대 곧 多人을 成하리니 何體가 汝가 되느뇨.
용성연의“만일 마음의 체가 여러 사람이 된다면 어떤 마음이 네가 되느냐?”
(11) 몸이 두루하다고 함을 논파하심(破徧體)
만일 徧體일진대 前에 挃한 바와 同하리라.
용성연의“만일 온몸에 가득히 하나로 둘러 있는 것이라면 저 앞에 몸을 꼭 찌르면 사지가 동시에 느끼리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12) 체에 두루하지 아니한다고 함을 논파하심(破不徧體)
만일 徧體가 아닐진대 마땅히 汝가 頭를 觸하고 또한 其足을 觸하면 頭는 覺한 바 有하고 足은 응당히 知가 無하리니 汝今不然하다.
용성연의“마음이 너의 몸에 두루하지 않고 어디든지 한군데 있다고 하자. 네가 혹 문을 나가다가 머리가 문틀에 크게 다치고 발은 문지방에 크게 다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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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아픈 것을 알고 발은 아픈 것을 알지 못할 것이며 또 발은 알고 머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13) 결론지어 논파하심(結破)
是故로 應知하라. 所合處를 隨하여 心則隨有라 함이 是處가 無有하니라.
용성연의“이런 까닭으로 마땅히 알라. 어디든지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곧 따르는 곳마다 있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느니라.”
11) 중간에 있다고 함(在中間)
(1) 그릇되이 옛 가르침을 인용함(謬引昔敎)
阿難이 佛께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我가 또한 聞하오니 佛께서 文殊等諸法王子로 더불어 實相을 談할 時에 世尊이 亦言하사되 心은 內에도 在하지 아니하며 또한 外에도 在하지 아니한다 하시더니
용성연의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일찍이 세존께 듣사오니,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아니하며 밖에도 있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2) 앞에서 세운 중간에 있다 함을 점검함(檢前立中)
我의 思하는 것과 같아서는 內로 見하는 바가 無하고 外로 相知함이 없으니 內를 知하지 못한 故로 內에 在함을 成치 못하고 身과 心이 相知할새 外에 在한다고 함이 義가 아니니 今相知故요 다시 內를 見하지 못하나니 마땅히 中間에 在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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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제가 부처님께서, ‘마음이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또한 밖에도 있지 아니한 것이다’라고 하는 말씀을 생각하여 보니, 참으로 그러하나이다. 마음이 안에 있다고 하려 한 즉 안을 보지 못하고, 밖에 있다고 하려 한 즉 마음이 따로 있고 몸이 따로 있어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면, 마음이 중간에 있는 것으로 아나이다.”
(3) 쌍으로 중간이 몸 밖인가 몸 안인가 물음(雙徵兩在)
佛言하사되 汝가 中間을 言하나니 中을 반드시 迷하지 아니하여 在한 바가 없지 아니하리니 今에 汝가 中을 推하건대 中이 何에 在하나뇨. 다시 處에 在하는가 마땅히 身에 在하는가.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마음이 중간에 있다고 하니, 중간이 어디 있느냐? 중간이라 하는 것이 몸 밖에 처소가 달리 있느냐? 그러하지 아니하면 몸에 있느냐?”
(4) 몸에 있다 함이 성립되지 아니함(在身不成)
만일 身에 在할진대 邊에 在하면 中이 아니요 中에 在하면 內와 同하리라.
용성연의“네가 ‘마음이 가운데에 있습니다’라고 하니, 몸에 있을진대 몸에 있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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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라고 할 수 없고, 몸 가운데에 있을진대 그 전에 네가 몸 안에 있다고 하는 말과 같을 것이 아니냐?”
용성연의“만일 마음이 몸 밖에 따로 있는 처소가 있다면, 마음 있는 곳을 표하여 둔 바가 있느냐 없느냐? 표하여 둔 바가 없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요, 표하여 두었다 하면 정처가 없으리니, 어찌 그러한고? 비유하면 사람이 막대기로써 땅 한복판에 꽂아 놓고 가운데라고 하지만 실상은 가운데가 될 수 없다. 그 표한 막대기가 동쪽에 가서 보면 서쪽이 되고, 남쪽에 가서 보면 북쪽이 될 것이니, 중앙을 정하려고 하면 마음이 응당 어지러우리라.”
(6) 부처님의 현재의 말씀과 다르다고 말함(異佛現說)
阿難이 言하되 我가 中을 說하는 바는 此二種이 아닙니다.
용성연의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제가 마음이 가운데에 있다는 말은 이 두 가지가 아니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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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부처님이 전에 하신 말씀과 같다고 함(同佛昔說)
저 世尊이 言하사되 眼色이 緣이 되어 眼識을 生한다 하시더니 眼은 分別이 有하고 色塵은 無知거든 識이 其中에서 生하나니 곧 心이 在함이 된다 합니다.
용성연의“세존께서 그 전에 말씀하시되, ‘눈뿌리와 밖의 경계가 서로 대하여 알음알이가 그 가운데에서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면 눈은 분별이 있고 바깥 경계는 알음알이가 없다면 아는 놈이 눈뿌리와 바깥 경계와 두 가지에 대한 그 사이에서 생겨나오니, 마음이 그 가운데에 있다는 말씀이 옳겠나이다.”
(8) 두 길을 쌍으로 엶(雙開兩途)
佛言하사되 汝心이 만일 根塵의 中에 在할진대 此心의 體가 다시 二를 兼함인가 二를 兼하지 아니함인가.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이 눈뿌리와 바깥 경계와 두 가지에 대한 사이에서 생겨난다고 한다면 너의 눈뿌리와 바깥 경계와 두 가지 것을 겸하여 있는 것이냐? 두 가지 것을 겸하여 있지 아니한 것이냐?”
용성연의“만일 네가 아는 마음이 눈뿌리와 경계의 둘을 겸하여 있다면 물건과 마음의 체성과 서로 어지러워 분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찌 그러한고? 물건은 무정하고 마음은 신령하니, 아는 것을 발하는 눈뿌리와 무정한 바깥 경계의 둘이 제각기 따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마음이 그 가운데에 있다고 하느냐?”
(10) 둘을 겸하지 않는다 해도 다시 잘못임(不兼更非)
二를 兼함이 成치 못할진대 知와 不知가 아니라 곧 體性이 無한 것이니 中이 何相이 되는고.
용성연의“눈뿌리와 경계의 둘을 겸하지 아니한즉 무정한 목석이 알 수가 없고, 밖으로 온갖 경계를 겸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려 해도 모르는 것도 아니니, 눈뿌리와 밖으로 모든 경계를 함께 겸한 것이 아니면 이 아는 마음의 체를 어디에다가 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마음의 체가 눈뿌리에 아는 것도 아니요, 또 밖으로 무정한 목석 같은 경계도 아니니, 그 마음의 체성이 없다면 어느 곳을 가운데라고 정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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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결론지어 논파하심(結破)
是故로 應知하라. 마땅히 中間에 在라 함이 是處가 無有하니라.破中間竟
용성연의“이러한 까닭에 알라. 마음이 중간에 있다고 하는 말이 옳지 못하니라.”중간에 있다 함을 논파함을 마침
12) 마음이 일정한 자리가 없다 함을 논파하심(破無着分)
(1) 부처님의 예전의 가르침을 인용함(引佛昔敎)
阿難이 佛께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我가 昔見하오니 佛께서 大目連과 須菩提와 富樓那와 舍利佛과 四大弟子와 더불어 法輪을 共轉하사 常言하사되 覺知分別心性이 이미 內에 不在하며 또한 外에 不在하며 中間에 不在한지라 俱히 在한 바 無하여
용성연의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기를, “옛적에 부처님께서 목련과 수보리와 부루나와 사리불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안에도 있는 것이 아니며 밖에도 있는 것이 아니며 중간에도 있는 것이 아니다. 안이나 밖이나 중간이나 모두 한가지로 없어서
(2) 결단하여 주시길 청함에 해설하심(釋成請決)
一切에 着함이 無함을 名하여 心이라 하시니 곧 제가 着할 데 없는 것으로 心이라 名하오리까 마오리까.
MBC0001_0020_0001V0001P0029b
용성연의 일체에 붙일 것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 한다’고 하니, 제가 그 말씀으로 비교하여 본다면 아무 곳에도 붙일 것 없는 것으로 마음이라고 이름하겠나이다.”
(3) 쌍으로 있고 없음을 따져 물으심(雙徵有無)
佛께서 阿難에게 告하사되 汝가 言하되 汝覺知分別心性이 함께 在함이 無할진대 世間과 虛空과 水陸飛行과 諸所物象을 名하여 一切라 하나니 汝가 不着이라 하는 者는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말대로 ‘안이나 밖이나 중간이나 세간이나 허공이나 물이나 육지나 날아다니는 것이나 땅에 걸어 다니는 것이나 모든 물건이나 일체에 붙일 것 없는 것이 마음이라 합니다’라고 하니, 네가 말해 보라. 무엇이 있어서 붙지 아니하는 것이냐 아무것도 없어서 붙지 아니하는 것이냐?
(4) 아무것도 없다 함도 오히려 성립되지 못함(無尙不成)
無則龜毛兎角과 同하거니 무엇을 着하지 아니한다고 하느냐.
용성연의 마음이 없어서 붙지 아니하면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과 같거니, 당초에 없다면 무엇을 아니 붙는다고 하느냐?
(5) 표하여 정함(標定)
MBC0001_0020_0001V0001P0030a
不着者가 有할진대 無라고 可名하지 못하리라.
용성연의 붙지 아니한다고 하는 놈이 있다면 없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
(6) 해설하심(釋成)
相이 無한즉 없는 것이요 無가 아니면 곧 相이라. 相이 有하면 곧 있는 것이니 무엇을 無着이라 하느뇨.
용성연의 상이 없은즉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면 곧 상일 것이다. 상이 있으면 곧 있는 것인데, 무엇을 집착이 없다고 하느냐?
(7) 결론지어 논파하심(結破)
是故로 應知하라. 一切無着을 覺知心이라 名함이 是處가 無하니라.
용성연의 이런 까닭에 알라. 일체에 붙일 것 없는 것을 아는 마음이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용성연의 둘은 처음이 없는 참된 보리자성과 참된 성품이 본디 둥글고 망령됨이 본래 고요한 열반이 원래 청정한 체를 미한 것이다. 이것은 너의 알음알이 정신이 본디 밝은 체가 능히 모든 반연하는 분별인연을 내거든 그 망령된 분별이 반연하는 데에 참된 심성을 잃어버린 것이니, 어찌하여 참된 것과 망령된 것이 다 한가지 처음이 없다 하는고? 비유하면 옥의 거푸적 돌과 같이 한 덩이로 있는 것을 옥이 먼저 생기었느냐? 돌이 먼저 생기었느냐? 하고 물으면, 누가 먼저 생기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참된 것과 망령된 것이 다 비어 없어야 일도一道가 허령虛靈하여 항상 고요하고 항상 밝아 요요분명了了分明하니라. 그러면 어찌 알음알이라 하는고? 답왈, 우리의 근본성품根本性品에서 아뢰야의 식정識情으로 변체되어 육식六識을 생하는 까닭이니라.
(9) 돌아갈 곳을 결론지음(結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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諸衆生이 此本明을 遺함을 由할새 비록 終日토록 行하나 自覺하지 못하고 諸趣에 枉入하나니라.
용성연의 이 참된 성품을 미혹하는 것은 망령된 집착이 근본이 된 것이니라. 모든 중생이 자기의 본래 밝은 성품을 유실함으로 종일토록 자기 마음을 자기가 가지고 쓰되, 스스로 그 본연한 참된 성품의 큰 체와 그 신령하고 밝은 참된 성품의 큰 용용은 일체 동용動用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릇 지옥과 천당과 여러 가지 악취에 들어가도다. 그 참된 성품의 체는 동서남북 사유四維 상하 허공을 다 온통 삼키어 있고, 그 참된 성품의 용用은 법계와 세계에 가득히 차서 있거니, 어찌 천당 지옥이 나를 이끌리오? 참 중생이 날로 쓰되 알지 못하도다.”
7. 바로 망식이 마음이 아니라고 물리치심(正斥妄識非心)
1) 응당 물음을 드리우시길 구하여야 함(應求垂問)
阿難아 汝今에 奢摩陀路를 知하여 生死에 願出하고자 할진대 今에 汝에게 復問하노라.
용성연의“아난아, 네가 지극히 일정하고 지극히 밝은 진실한 성품으로 들어가 생사바다를 영원히 벗어나고자 한다면 이제 다시 너에게 묻겠다.”라고 하시고,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본다 하니, 네가 무엇을 가지고 보느냐.”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저든지 대중이든지 한가지로 눈을 가져 보나이다.” 이 세 구절의 과목 문답에 깊고 깊은 뜻이 있으니, 영산회상에서 꽃가지를 드는 것과 다름이 없도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팔을 들고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보느냐?” 또 하나는 “아난 네가 무엇을 보는고?” 또 하나는 “아난 네가 무엇을 가지고 보는가?” 그러나 아난이 알아듣지 못하니, 참 애석하도다. 깊이깊이 궁구하여 볼지어다. 세존께서 아난이 깨닫지 못함을 애석히 여기시고 말씀하시기를, “네 눈은 가히 보거니와 무엇으로 마음을 삼는가?”
용성연의 아난이 ‘이것은 너의 마음이 아니다’라고 돌파함을 듣고 여쭈기를, “이것이 마음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티끌같이 허망한 생각이다. 너로 하여금 참된 성품을 의혹하게 하는 것이다. 네가 처음이 없는 것으로 금생에 이르기까지 도적을 그릇 알아 자식을 삼는 것이니, 네가 원래로 떳떳한 성품을 잃고 천상이나 지옥이나 모든 생사바다에 윤회하나니라.”라고 하셨다. 이것은 우리 부처님의 도는 마음에 도와 마음에 극락과 마음에 선악인과를 밝힌 것이요, 마음 밖에 한 물건도 따로 도를 세우지 아니하셨느니라.
용성연의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사랑하는 동기간이 되어 마음에 부처님을 흠모하는 까닭에 저로 하여금 출가하게 하시니,
2) 선을 지음에 이 마음을 쓴다 함(作善用此心)
我心이 何獨히 如來만 供養하오리까 乃至恒沙國土를 遍歷하여 諸佛과 및 善知識을 承事하여 大勇猛을 發하여 모든 一切難行法事를 行함도 다 此心을 用함이며
용성연의 저의 마음이 어찌 홀로 여래만 공양하오리까. 내지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국토를 두루 지내어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선지식을 받들어 섬기는 것도 이 마음을 쓴 것이며,
3) 악을 지음도 이 마음이라 함(作惡用此心)
비록 하여금 法을 謗하고 善根을 永退하는 것도 또한 此心을 因함이니
용성연의 비록 하여금 법을 비방하고 길이 선근善根에서 물러가는 것도 또한 이 마음을 인한 것이니,
4)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있는 바가 없다고 함(述捨此更無)
MBC0001_0020_0001V0001P0036b
만일 此를 心이 아니라고 發明할진대 我가 이에 無心함이 모든 木石과 同한지라 此知覺을 離하고는 다시 所有가 無하리니
용성연의 만일 이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제가 아무 마음도 없는 것이 무정한 토목과 같으므로 이 지각知覺을 떠나서는 다시 있는 바가 없을 것인데,
5) 아난 자신과 저 대중들도 놀래어 의혹한다고 함(述自他驚疑)
云何如來가 此를 心이 아니라고 說하시는고. 我가 實로 驚怖하여 兼하야 이 大衆이 疑惑하지 아니함이 없나이다.
용성연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이것이 마음이 아니다’라고 하시나이까? 저도 실로 놀랍고 두려워하며 대중들도 다 의혹이 나나이다.
6) 여래께서 열어 보이시길 구함(求如來開示)
오직 大悲를 垂하사 未悟를 開示하옵소서.
용성연의 오직 대비를 드리우사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참된 마음을 열어 보이시옵소서.”
9. 여래께서 안위하시어 드러내심(如來安慰顯發)
1) 교의 깊은 뜻을 드리우심을 표함(先標垂敎深意)
爾時에 世尊이 阿難과 및 모든 大衆을 開示하사 心으로 하여금 無生法忍에 入코저 하사
MBC0001_0020_0001V0001P0037a
용성연의 무생법인이라 하는 것은 조그마한 법도 나는 것을 보지 아니하며, 조그마한 법도 멸함을 보지 아니하여, 낱낱 당처가 다 실상이지만 망상생멸심이 있는 탓으로 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저 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및 모든 대중에게 보이시어 무생법인으로 들어가게 하고자 하시어,
2) 이미 항상 오직 마음만을 말씀하셨음을 보임(示已常說唯心)
저 獅子座에서 阿難의 頂을 摩하사 告하여 말하시되 如來께서 항상 말씀하시되 諸法이 生한 바가 唯心에 現한 바이며 一切因果와 世界微塵이 心을 因하여 體를 成함이라 하노니
용성연의 저 사자좌 위에서 아난의 아마를 어루만지시며 고하여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되, ‘모든 법이 나는 것이 오직 마음에서 나는 바이며, 일체 인과와 세계미진까지도 마음을 인하여 체형을 이루었느니라.’
3) 진심에 체가 있음을 비유를 드심(擧況眞心有體)
阿難아 만일 모든 世界에 一切所有가 其中에 乃至草葉, 縷結이라도 其根元을 詰하면 다 體性이 有하며 바로 하여금 虛空이라도 또한 名貌가 有하니 어찌 하물며 淸淨妙明心이
MBC0001_0020_0001V0001P0037b
一切心에 性하거니 스스로 體가 없으리오.
용성연의 아난아 이러한 모든 일체 세계에 있는바 그 가운데에 내지 풀잎사귀든지 실의 매듭까지라도 그 근원을 힐난하여 보면 다 체성이 있으며, 비록 허공이라도 텅 빈 모양과 이름이 있는데, 어찌 하물며 청정한 묘명심이 일체 마음에 성품하거니 스스로 체가 없겠는가.자체에 때가 없는 것을 가로대 청정이라 하고 더러운 곳에 처하여 물들지 아니하는 것을 가로되 묘정妙淨이라 하고 고요하고 비고 신령한 것을 가로되 명심明心이라고 하느니라.
10. 허위를 드러내심(顯發虛僞)
1) 도리어 모든 진塵을 여의고 지각하는 성품이 있느냐고 힐난하심(反難離塵當有)
만일 汝가 分別覺觀所了知性을 執着하여 반드시 心을 삼을진대 此心이 곧 응당 모든 一切色香味觸諸塵事業을 離하고 別로히 全性을 有하느냐.
용성연의 네가 모두 마음을 헤아려 분별하여 쓰는 것과 이치를 궁구하여 헤아려 쓰는 것과 깨쳐 보는 것과 이 세 가지를 분별하여 아는 것을 잔뜩 집착하여 반드시 네 참마음을 삼는다면, 분별하며 미루어 헤아리며 눈앞에 어둡고 밝은 것과 모든 형상이 있는 것과 모든 형상이 없는 것과 귀에 모든 소리와 코에 모든 향내와 입에 모든 맛과 몸에 모든 다닥치는 것과 뜻에는 과거·현재·미래와
MBC0001_0020_0001V0001P0038a
모든 세간법과 출세간법과 가지가지 모든 경계와 아울러 일체 사업을 벗어나서 별도로 네가 아는 지각성知覺性이 있겠느냐? 용성이 이 말씀에 대하여 비유로써 깨치게 하오리다. 맑고 밝은 거울이 모든 형상과 청·황·적·백·흑 오색을 대하지 아니하면 거울이 다못 명정明淨할 뿐이라 사람이 자기의 눈을 자기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의 참마음은 모든 상과 모든 이름이 텅 비어 한 물건도 없되 신령하고 밝은 거울의 성품이 항상 깨끗하고 밝은 것과 같고 청·황·적·백·흑 오색이 거울에 비치는 것은 사람이 모든 경계를 대하여 분별이 있는 것과 같으니 그러한 까닭에 부처님께서 모든 것을 여의고 너의 분별하는 성품이 있느냐 하시니라.
2) 외연은 여의지 못함(外緣不離)
네가 今者에 我法을 承聽하는 것도 이것이 곧 聲을 因하여 分別이 有한 것이니
용성연의 네가 이제 곧 나의 법을 받아 듣는 것도 나의 법을 말하는 소리를 듣는 까닭에 분별이 있는 것이니,
3) 안으로 고요함을 지켜도 여의지 못함(內守不離)
비록 一切見聞覺知를 滅하고 內로 幽閑을 守하여도 오히려 法塵分別影事가 되느니라.
MBC0001_0020_0001V0001P0038b
용성연의 혹 소승이나 권교權敎의 보살이나 비록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마음을 멸하고 안으로 깊숙하고 고요한 걸 지키더라도 오히려 법 티끌에 분별한 일인바 그림자와 같으니라.
4) 분별성이 진을 여의고는 체가 실로 없음(離塵無實)
(1) 잠시 비록 티끌을 여의고 분별성이 있다면 마음이라 여김을 허락할 수도 있다(暫縱離有卽許爲心)
我가 汝를 勅하여 非心을 執하라 하지 아니한 것이니 다만 汝心에 微細히 揣摩하라.揣摩는 自度 만일 前塵을 離하고 分別性이 있다면 곧 참 汝의 心이라고 하려니와
용성연의 내가 너에게 허망된 마음을 집착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가만히 스스로 헤아려 보아라. 만일 앞의 모든 티끌을 여의고 분별하는 성품이 따로 있다면 곧 너의 참된 마음이라고 하련마는,
5) 티끌을 여의고 체성이 없으면 이 티끌은 그림자임(離無卽是塵影)
만일 分別性이 塵을 離하고는 體가 無할진대 斯則前塵에 分別影事이니라.
용성연의 만일 분별하는 성품이 모든 티끌을 여의고 체성이 없다면, 그 분별하는 것이 곧 앞의 모든 티끌에 그림자로 나타나는 그림자가 아니냐?
6) 티끌이 그림자라면 곧 단멸과 같음(塵影卽同斷滅)
塵은 常住가 아니라 만일 變滅할 時에는 此心 곧 龜毛兎角과 같으니라.
MBC0001_0020_0001V0001P0039a
용성연의 모든 티끌은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티끌이 변하여 멸할 때에는 이 마음이 곧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과 같으니라.
7) 단멸이라면 누가 지극한 도를 이룸(斷滅誰成至道)
則汝法身이 한가지로 斷滅할진대 其 누가 無生法忍을 修證하리오.
용성연의 티끌로 반연하는 분별심으로써 법신을 삼는다면 티끌이 변멸하면 법신이 한가지로 다 멸하리니, 그 누가 무생법인을 닦아 증득하리오?”
11. 그릇된 줄을 알고 말없이 있음(會衆知非無辯)
卽時에 阿難이 모든 大衆으로 더불어 默然히 自失하더라.
용성연의 곧 때에 아난과 더불어 모든 대중이 잠잠하여 대답할 바를 알지 못하더라.
12. 귀결처를 결론지어 판단하는 말씀(結歸判辭)
MBC0001_0020_0001V0001P0039b
佛이 阿難에게 告하사되 世間一切 모든 修學人이 現前에 비록 九次第定을 成하나 漏盡을 得하지 못하여번뇌가 다함은 욕欲에 대해 번뇌하고 무명에 대해 번뇌하고 모든 유有의 경계에 번뇌함이 다한 것이다. 阿羅漢을 成하는 것이 다 이 生死妄想을 執하여 그릇 眞實을 삼는 것이니 是故로 汝今에 비록 多聞을 得하였으나 聖果를 成치 못하니라.구차제九次第는 사선四禪과 사공천四空天과 멸수상滅受想이니라.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기를, “세간에 일체 수학하는 사람이수학은 닦고 배우는 것 비록 구차제정을 이루었으나,사선천 하늘 가는 선정과 사공천 하늘 가는 선정과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 아홉 가지 범부 하늘에 가는 법만 성취한 것 새는 마음을 다하지 못하여 아라한도를 이루는 것은 다 나고 죽는 망상을 집착하여 그릇 진실한 도를 삼는 것이다. 네가 이제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으나 성인을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3. 잃어버린 참된 성품을 드러내 보이심(顯示所遺眞性)
1) 슬픈 감회에 젖어 진부한 말씀을 드림(悲感陳言)
阿難이 聞已에 重復悲淚하사 五體를 地에 投하시고 長跪合掌하여 佛께 白言하사되
용성연의 아난이 부처님께 법 듣기를 마치고, 다시 슬피 눈물을 흘리며 오체를오체는 머리와 두 팔과 두 무릎이라. 땅에 던져 예배하고, 다시 일어나 길이 꿇어앉아 합장하여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기를,
2) 부처님의 위신만 믿고 여래의 크나큰 선정을 닦지 아니함을 후회함(悔恃如來不修大定)
我가 佛을 從하와 發心出家함으로부터 佛의 威神만 恃함으로 常自思惟하되 我의 修함을 勞치 아니하여도 장차 如來께서 我에게 三昧를 惠하리라 謂하옵고 身心이 本디 相代치 못함은 알지 못하여 我의 本心을 失하니 身은 비록 出家하였으나 心은 道에 入하지 못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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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컨대 窮子가 父를 捨하고 逃逝한 것과 같습니다.
용성연의“제가 부처님을 좇아 발심하고 출가함으로부터 부처님의 위신만 믿고 항상 스스로 생각하되, ‘제가 수고롭게 닦지 아니하여도 장차 여래께서 저에게 삼매를삼매는 반듯하고 일정한 것 혜시惠施하리라’고만 하옵고,혜시는 은혜스럽게 베풀어 주는 것 몸과 마음이 본디 서로 대신하지 못함은 알지 못하여 저의 본심을 잃어버렸으니, 몸은 출가하였으나 마음은 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궁자가궁자는 곤궁한 자식이니 여기 말은 부자의 자식이 아비를 내어버리고 달아나는 곤궁한 자식이 된 것 아비를 버리고 달아난 것과 같으니,
3) 널리 듣고 많은 것을 아는 것만 믿어서는 마침내 실로 얻을 것이 없음을 후회함(悔恃多聞終無實得)
今日에사 이에 비록 多聞이 有하여도 만일 修行하지 아니하면 不聞과 等함이 人이 食을 說함에 마침내 能히 飽하지 아니함과 같음을 知하였습니다.
용성연의 이제야 비록 많이 듣는다고 하여도, 만일 수행을 하지 않으면 듣지 않음과 같음이 사람이 음식을 얘기해도 쉽게 배부르지 아니함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4) 미혹함에서 도의 눈을 열어 보여 주시기를 구함(表迷求示)
世尊하 我等이 今者에 二障에 纏한 바는 진실로 寂常心性을 不知함을 由함이니 惟願如來는 哀愍히 여기사 窮露하시와 妙明心을 發하여 我에게 道眼을 開케 하시옵소서.이장二障이란 一은 번뇌장煩惱障이니 견見과 사思의 이혹二惑이라. 견見은 이에 뜻을 지어서 분별하는 혹惑이니 곧 십결사十結使요, 사思는 탐욕과 애욕에 방종하는 것이니 곧 탐진치만貪嗔痴慢의 사결사四結使라. 모두 나를 고집하는 데 속하는 것이라. 소지장所知障에 둘이 있으니 一은 바깥 경계를 취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법애法愛를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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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제 뜻을 지어 분별하는 견혹見惑과 탐심과 애착심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거만한 마음이 별로 장애되는 것이니, 아집我執에서 나는 것이요, 또 밖으로 모든 경계를 취하는 것과 법을 사랑하여 모든 법을 분별하는 데 결박이 되는 법집法執이니, 이 두 가지 장애에 꼭 얽힌 바가 되는 것은 텅 비고 고요하고 떳떳하여 묘하게 밝은 심성을 알지 못한 탓입니다. 오직 원컨대 불쌍히 여기시어 화반탁출和盤托出로 다 드러내시어, 있고 없는 데에 걸리지 아니하고, 체體와 용用이 밝게 비치는 묘명심妙明心을 개발하시어 결택決擇이 분명한 도안道眼을 열게 하옵소서.”
14. 여래께서 참다운 체를 드러내어 보이심(如來極顯眞體)
1) 참 지혜의 모양을 환하게 여심(眞智洞開相)
卽時에 如來께서 胸卍字로 從하여 寶光을 湧出하시니 其光이 晃昱하사 百千色이 有하시더니
용성연의 곧 때에 여래께서 가슴에 만덕길상문채萬德吉相文彩가 있는 만자卍字로부터 보배광명을 솟아 내시니, 이 광명 놓는 것은 나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는 근본 지혜에 묘각명성을 표시하는 것이요, 그 광명이 빛나는 것은 지혜가 일월보다 밝은 것을 표하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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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 가지 빛이 있는 광명을 놓는 것은 이 지혜의 씀이 한량이 없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니,
2) 법상法相을 원융히 비추심(圓照法相)
十方微塵普佛世界에 一時周徧하사.
용성연의 시방에 미진 같은 넓은 세계가 일시에 부처님의 광명이 두루 둘러 가득히 차되, 저 사람의 마음이 한 생각이 편국偏局하면 시방세계가 함께 어두워지고, 지혜가 열리면 마음의 체가 허공을 다하고 세계를 다하여 법계에 지혜광명이 사무친 것을 표시하심이다.
3) 위로 부처님세계의 형상에 가지런히 함(上齊佛界相)
두루 十方所有寶刹에 모든 如來의 頂에 灌하시고
용성연의 부처님의 광명이 시방보찰세계에 있는바 모든 여래의 이마에 대고(灌頂),
4) 아래로 중생계의 형상에 균등히 함(下等生界相)
돌이켜 阿難과 및 모든 大衆에게 至하더라.
용성연의 돌이켜서 아난과 및 모든 대중에게 이르러 왔다. 이것은 중생과 제불이 본디 한 몸이라 중생과 제불이 두 상相이 없음을 표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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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널리 열어 보일 것을 허락하심(普許開示)
阿難에게 告하시되 吾今에 汝를 위하여 大法幢을 建하며 또한 十方一切衆生으로 하여금 妙微密性淨明心을 獲하여 淸淨眼을 得케 하리라.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대법짐대를 세우며,짐대는 사견을 꺾어 버리고 바른 지견을 세우는 것이라. 또한 시방중생으로 하여금 계교사량 분별로 알 수 없는 미묘하고 은밀하여 때가 능히 더럽게 못하고 어두운 것이 능히 어둡게 못하는 깨끗하고 밝은 성품이 조금도 가리운 것이 없는 청정 도안道眼을 얻게 하리라.
용성연의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부처님의 온몸이 염부단금이므로염부단금은 황금 가운데에 붉은 기운이 합하여 있는 금 붉은 금빛이 빛난 것이 보배 산과 같아서 한량이 없는 겁에 청정도덕을 닦아 부처님의 몸을 세상에 나투신 까닭에 몸에 광명이 찬란하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진실로 눈으로 보니, 손가락 끝마다 천 폭의 둥글둥글한 금이 있는 손가락을 구부리어 주먹을 쥐시고 사람에게 보이시는 까닭에 주먹의 모양이 있나이다.”염부라 하는 말은 좋은 금이라 하는 말씀이시니 수미산 남쪽에 염부수나무가 있으니 이 나무의 과실즙이 모래와 자갈에 부딪치면 모래와 돌이 금이 되나니 금 가운데에 제일 좋은 금이 되느니라.
8) 쌍으로 법과 비유를 펴서 심찰케 하심(雙陳法喩令審)
佛께서 阿難에게 告하시되 如來今日에 實言으로 汝에게 告하노니 모든 智가 有한 者는 종요로히 譬喩로써 開悟함을 得하리라. 阿難아 譬컨대 我拳이 만일 我手가 無하면 我拳을 不成할 것이며 만일 汝眼이 無하면 汝見을 不成하리니 汝의 眼根으로써 我拳의 理에 例컨대 其義가 均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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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여래가 금일에 진실한 말로 너에게 고하노라. 그리하여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비유로써 깨침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비유컨대 나의 주먹이 만일 나의 손이 없으면 나의 주먹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만일 너의 눈이 없으면 네가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눈뿌리로써 나의 주먹을 비교한다면 그 뜻이 같으냐, 같지 아니하느냐?”
용성연의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오직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눈이 없으면 저의 보는 것을 이루지 못하오리니, 저의 눈뿌리로 여래의 주먹과 비교한다면 뜻이 서로 같나이다.”
10) 정히 잘못됨을 물리치심(正斥其非)
佛께서 阿難에게 告하여 말씀하시되 汝가 相類라고 言함이 是義가 不然하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주먹과 눈이 서로 같다고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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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같지 아니함을 밝히심(明其不齊)
何以故오. 저 手가 無한 者는 拳이 畢竟에 滅하거니와 저 眼이 無한 者는 見이 全無함이 아니니
용성연의 어찌하여 그러한고? 손이 없는 사람은 주먹이 다시는 없거니와 눈뿌리가 없는 사람은 보는 것이 온전히 없는 것이 아니다.
12) 맹인에게 물어서 시험케 함(令其詢驗)
所以者何오. 汝가 아무것이나 저 途에서 盲人에게 詢問하되 汝가 何를 見하는고 하면 彼諸盲人이 必來하여 汝에게 答하되 我가 今에 眼前에서 오직 黑暗만 見하고 다시 他矚이 無하다 하리니
용성연의 어찌 그러한고? 네가 저 길에 나아가 아무것이나 모든 맹인눈이 없는 장님이라.더러 묻되, ‘그대가 무엇을 보느냐’고 하면 모든 맹인이 반드시 와서 네게 답하되, ‘우리의 무리가 눈앞에 오직 캄캄한 흑암만 보고 다시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할 것이니,
13) 결론지어 봄이 있음을 말씀하심(結申有見)
是義로써 볼진대 前塵이 自暗이언정 見은 何를 虧損하리오.
용성연의 이 이치로 본다면 앞의 대상이 어두울지언정 보는 성품이야 어찌 결함이 있겠느냐?”
15. 어두움을 봄에 견이 이루어짐을 밝히심(辨矚暗成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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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난이 어두움을 보는 것에 견분見分이 아니라고 의심하심(阿難疑於覩暗非見分)
阿難이 言하되 諸盲眼前에는 오직 黑暗만 覩하거니 어찌 見을 成하리오.
용성연의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모든 맹인이 눈앞에는 오직 캄캄한 흑암만 보거니 어찌 그것을 본다고 하오리까?”
2) 맹인과 눈이 있는 두 사람이 보는 어두움에 대해 물으심(雙詰二暗)
佛께서 阿難에게 告하시되 諸盲이 眼이 無하여 오직 黑暗만 觀한지라 有眼人으로 더불어 暗室에 處하면 二黑이 別함이 有하느냐 別함이 無하느냐.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기를, “모든 장님이장님은 소경임. 오직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캄캄한 어두운 것만 보는지라, 눈이 밝은 사람과 캄캄한 어두운 집에 함께 있으면 눈 밝은 사람이 어두운 것을 보는 것과 장님이 어두운 것 보는 것과 다르냐, 다르지 아니하느냐?”
3) 쌍으로 같다고 답함(雙答是同)
如是하나이다. 世尊이시여 此暗中人이 彼群盲과 더불어 二黑을 校量하건대 일찍이 有異함이 無하나이다.
용성연의 아난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어두운 가운데 눈 밝은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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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맹인과 눈앞에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은 다름이 없나이다.”
4) 애초에 잘못됨을 나열하심(初列成謬)
阿難아 만일 眼이 無한 사람이 온전히 前黑을 見하다가 홀연히 眼光을 得하면 도리어 前塵에 種種色을 見하리니 眼이 見한다고 名할진대 彼暗中人이 온전히 前黑을 見하다가 홀연히 燈光을 獲하면 또한 저 前塵에 種種色을 見하나 응당 燈이 見한다고 名하리로다.
용성연의“아난아. 만일 눈이 어두운 사람이 온전히 캄캄 어두운 것만 보다가 홀연히 눈병이 나으면 도리어 앞 경계에 온갖 물건을 볼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눈뿌리가 본다고 한다면 눈 밝은 사람이 어두운 집에 있어 캄캄 어두운 것을 보다가 홀연히 등불을 만나면 온갖 물건을 보리니 그러면 응당 등이 본다고 하겠구나.
5) 더욱 두 가지 잘못을 이룸(轉成二謬)
만일 燈이 見하건대 燈이 能히 見이 有할 것이라 스스로 燈이라 名하지 못할 것이요 또 곧 燈이 觀할 것이니 汝의 事에 何가 關되리오.
용성연의 만일 등불이 본다고 한다면 등불이 보는 것이니 등불이라고 이름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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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등불이 보는 것이므로 네 눈하고는 상관이 없으리로다.
6) 예를 들어 보는 성품은 등이 아니라 하심(取例非燈)
是故로 當知하라. 燈은 能히 色만 顯하는 것이니 如是見性은 是眼이요 燈이 아니니라.
용성연의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라. 등불은 능히 색만 나툴 뿐이다. 이와 같이 보는 것은 이 눈이 보는 것이요 등불이 보는 것이 아니니라.”
16. 보는 성품은 동하지 아니함을 보이심(示見不動)
1) 아직 깨닫지 못해 널리 보여 주시길 바람(未悟更希廣示)
阿難이 비록 是言을 得聞하오나 諸大衆과 默然할 뿐이며 心이 開悟하지 못하여 오히려 如來의 慈音宣示를 冀하여 合掌淸心하여 佛께 悲誨를 佇하더니
용성연의 아난과 대중이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아무 말도 못하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여 오히려 자음慈音자음은 자비하신 소리으로 다시 법을 말씀해 주시기 바라서 두 손으로 합장하고 일심으로 마음을 맑히어 부처님께서 자비로 가르쳐 주심을 기다렸다.
2) 여래께서 깨닫게 된 근원을 찾아 궁리케 하심(如來尋究原悟)
爾時에 世尊께서 兜羅綿網相光手를 舒하사 五輪指를 開하사 阿難과 및 諸大衆을 誨敕하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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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가 初에 道를 成하여 저 鹿園中에 阿若多五比丘等과 及汝四衆을 爲하여 言하되 一切衆生이 菩提와 및 阿羅漢을 成하지 못하는 것은 다 客塵煩惱에게 誤한 바 됨이니 汝等이 當時에 何를 因하여 開悟하였으며 今에 聖果를 成하였느뇨.
용성연의 저 때에 세존께서 도라면망상광수부처님의 손이라.를 펴고 오륜지를 벌려부처님의 손가락 아난과 모든 대중을 깨우쳐 신칙(단단히 일러서 경계)하시기를, “내가 처음에 도를 이루고 녹야원 동산 가운데에서옛적에 국왕이 사슴을 기르던 곳 아야다 등 다섯 비구의 무리와부처님께서 태자로 출가할 적에 왕명으로 수종한 오인이라. 너의 사중을 위하여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라 함. 말하였다. ‘일체중생이 보리를 이루지 못하여대도를 이루지 못하여 및 아라한을 (소승도) 얻지 못하는 것은 다 객진번뇌의 그릇된 허물이니, 너희들이 당초에 무엇을 인하여 깨달았으며, 이제 성과를 이루었느뇨?’”성과는 성현이 되었느뇨.
용성연의 또 새롭게 비가 개이고 맑은 날이 하늘에 오름에 광명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면 그 빈 가운데 모든 티끌이 있어 잠깐도 머무르지 아니하고 분분하게 요동하거든 허공은 고요히 동치 아니합니다. 이같이 생각하여 본다면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이요 분분히 요동하는 것은 티끌이 되나이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의 손이 대중 가운데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함을 본다고 말하니, 나의 주먹이 열었다가 합하였다가 하는가? 너의 보는 그 자리가 열었다가 합하였다가 하느냐?” 아난이 말씀드리기를, “세존의 귀중한 손이 대중 가운데에서 열었다가 합하였다가 할지언정 저의 보는 성품이 열었다가 합하였다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성연의“아난아, 네가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좌우로 머리가 요동한다 하니, 그러면 너의 머리가 동하는 것인가, 너의 보는 것이 동하는 것인가?” 아난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저의 머리가 스스로 동할지언정 저의 보는 성품은 오히려 그치는 것도 없거든 뉘가 요동하리오.”
8) 아난의 말을 인정하심(印許其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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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하시되 如是하다.
용성연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옳다.”
18. 널리 스스로 유전을 취한 것을 책망하심(普責自取流轉)
1) 깨달아야 할 바 객진을 취함(取所悟客塵)
於時에 如來께서 大衆에게 普告하시되 만일 다시 衆生이 搖動하는 者로써 名하여 塵을 삼고 不住하는 者로써 名하여 客을 삼을진대
용성연의 이때에 여래께서 대중에게 널리 고하시기를, “만일 다시 중생들이 요동하는 것으로써 티끌을 삼고 머물지 아니하는 것으로 객을 삼는다면,
2) 현전의 동정動靜을 관찰케 함(令觀現前動靜)
네가 阿難의 頭가 自動搖함을 觀하고 見은 所動이 無라 하며 또 네가 我의 手가 自開合함을 見하고 見은 卷舒가 無라 하나니
용성연의 너 아난의 머리가 스스로 요동하는 것을 보는 것이지 보는 성품은 동한 바 없다 하며, 또 네가 나의 손이 스스로 열리었다 합하였다 하고 보는 성품은 펴고 거두는 것이 없다 하니,
3) 괴이하게 망령됨이 몸과 경계를 말미암음을 앎(怪其明知妄由身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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云何汝今에 動으로써 身을 삼고 動으로 境을 삼는고.
용성연의 어찌 네가 이제 움직이는 것으로 몸을 삼고 움직이는 것으로 경계를 삼느뇨?”
4) 혹惑
始로 從하여 終에 洎히 念念生滅하야
용성연의 처음으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염념에 나고 멸하고 나를 집착하고 법을 집착함이 견고하였다. 만일 몸과 경계를 집착하여 나를 삼으면 나와 너라고 할 바를 집착하는 것이요, 만일 몸과 마음 밖에 별도로 법을 집착함은 법집이 되는 것이니, 염념히 버리지 못하면 미혹됨이 깊어진다.
5) 업業
眞性을 遺失하고 行事에 顚倒하며
용성연의 참된 성품을 잃어버리고 가지가지 행사에 전도하나니, 오직 세간 사업에만 전도할 뿐 아니라 가지가지 수행하는 데도 전도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고? 그 동함에는 몸과 경계를 집착하고, 그 고요함에는 법 티끌에 집착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