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역대장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

(新譯大藏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신역대장新譯大藏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표지]


신역대장新譯大藏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삼장역회三藏譯會 용성당龍城堂 백상규白相奎가 번역하고 아울러 의심을 해결해 주다
김호귀*

* 동국대학교 철학박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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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삼장역회 용성당 백상규가 금강경의 대의大義를 총체적으로 판별하다
해동사문海東沙門 함허당涵虛堂이 서문을 붙이다

신역대장新譯大藏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제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1) 증신서證信序
(2) 먼저 계상을 보여서 중생을 위하여 모범적인 규칙을 정하다
(3) 금강대정에 들어감을 표시하다제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1) 마음을 안주하고 다스리는 방법을 묻다
(2) 여래께서 수보리를 칭찬하다
(3) 수보리가 기꺼이 듣겠다고 말씀드리다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1) 총체적으로 답변하고 개별적으로 답변을 드러냄으로써 위의 질문을 이어받다
(2) 광대심廣大心
(3) 제일심第一心
(4) 상심常心
(5) 부전도심不顚倒心제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1) 총체적으로 드러내다
(2) 개별적으로 해석하다
(3) 총체적으로 결론 맺다
(4) 이익을 드러내다
(5) 결론적으로 집착하지 말 것을 권장하다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1) 의심의 원인을 들어서 질문하다
(2) 의심을 차단하여 답변하다
(3) 여래의 본체가 유위와 다름을 해석하다
(4) 부처님 몸은 무상임을 이해시키다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1) 무無에 의거하여 의심을 드러내다
(2) 의심을 꾸짖고 믿음을 드러내다
(3) 전생겁에 선으로써 쌓은 믿음의 인을 설명하다
(4) 복덕의 섭수를 설명하다
(5) 이미 단제한 사상四相(麤執)을 그대로 설명하다
(6) 아직 사견四見(細執)을 단제하지 못하다
(7) 중도의 진리문을 보여 주다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1) 의심의 원인을 들어서 질문하다
(2) 실제의 도리를 따라서 답변하다
(3) 정해진 법이 없음(無有定法)을 해석해 주다
(4) 취함이 없는 까닭을 해석해 주다제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1) 하열한 복덕을 들어서 질문하다
(2) 복덕이 많음을 해석하여 답변하다
(3) 경전의 복덕이 뛰어남을 판별하다
(4) 복덕이 인간과 천상을 초월한 이유를 해석해 주다제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1) 입류과入流果(성인의 부류에 들어가는 과위)
(2) 일래과一來果(욕계에 한번 왕래하는 과위)
(3) 불래과不來果(욕계에는 다시 오지 않는 과위)
(4) 무학과無學果(모든 수행을 완성한 과위)
(5) 부처님의 뜻을 되새겨 해석(却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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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1) 석가모니께서 연등불로부터 깨침을 얻고 설했다는 의심을 단제해 주다
(2) 상에 집착하여 장엄함을 들어서 묻다
(3) 청정한 마음에 의한 장엄을 권장하다
(4) 문답을 통해서 의심을 단절하다제11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1) 수많은 항하를 가지고 모래 수효를 변별하다
(2) 무량한 모래 수효에 의거하여 복덕을 드러내다
(3) 많은 복덕에 의거하여 뛰어남을 드러내다제12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1) 공경하는 장소를 설명하다
(2) 사람이 얻는 이익을 드러내다제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1) 뜻에 의거하여 제명이 뛰어남을 변별하다
(2) 부처님께서 달리 설법하지 않음이 뛰어나다
(3) 보시한 복덕은 하열하고 미진은 뛰어나다
(4) 깨침을 얻고 상을 여의면 뛰어나다
(5) 비교를 통해서 뛰어남을 보여 주다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1) 아직껏 들어 보지 못했던 심오한 대승법문의 뛰어남을 찬탄하다
(2) 온갖 덕을 갖춘 뛰어남을 바로 설명하다
(3) 부처님의 자취를 말하다
(4) 총체적으로 믿음과 이해(信解)를 드러내다
(5) 개별적으로 삼공(아공·법공·구공)을 드러내다
(6) 여래께서 긍정하다
(7) 경을 듣고도 부동하는 자는 대단히 희유하다
(8) 인욕바라밀의 완성이 제일 뛰어나다
(9) 인욕바라밀의 본체를 설명하다
(10) 고통과 인욕을 바로 설명하다
(11) 무주로써 대치해 주다
(12) 의심을 단제하다
(13) 집착을 벗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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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하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1) 목숨을 바친 보시의 복덕을 말하다
(2) 경전을 믿는 보시의 복덕을 말하다
(3) 대승 이외의 다른 가르침으로는 헤아리지 못한다
(4) 대승심을 일으킨 사람에 의거하여 설하다
(5) 공덕을 갖춘 사람이 전승한다
(6) 소승법을 누리는 자는 감당하지 못한다
(7) 경전이 있는 곳이 그대로 불탑이다제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1) 죄를 돌려서 부처가 되다
(2) 제불께 공양하면서 모든 복덕을 쌓다
(3) 경전을 받고 지녀야 복덕이 많다
(4) 소승인이 대승법을 들으면 의심한다
(5) 총결이 참으로 심오하다제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1) 질문하다
(2) 진정한 보살은 무아가 되어야 한다
(3) 아상이 있으면 진정한 보살이 아니다
(4) 주체와 객체가 없다
(5) 의심나는 것을 언급하다
(6) 의심을 없애 주다
(7) 거듭 해석하다
(8) 부처님은 깨침을 얻은 까닭에 터득한 것이 없음을 설명하다
(9) 집착을 버리고 의심을 없애다
(10) 뜻을 해석하여 의심을 없애다
(11) 진불과 진법의 본체를 드러내다
(12) 잘못된 생각을 설명하다
(13) 위의 설명을 인용하다
(14) 그 까닭을 해석해 주다
(15) 보살의 성취를 해석해 주다제18 일체통관분一體通觀分(1) 육안肉眼을 말하다
(2) 천안天眼을 말하다
(3) 혜안慧眼을 말하다
(4) 법안法眼을 말하다
(5) 불안佛眼을 말하다
(6) 하나의 항하에 의거하여 모래 수효를 세다
(7) 하나의 항하에 있는 모래 수효에 의거하여 항하를 세다
(8) 그 모래 수효만큼의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에 의거하다
(9) 망심을 모아 진심으로 돌려서 실지悉知를 해석해 주다
(10) 망妄·염染을 미루어 타파하여 비심非心을 해석해 주다제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1) 복덕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다
(2) 순서에 따라 해석해 주다제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1) 색신이 없는 까닭에 법신을 드러내다
(2) 제상이 없는 까닭에 진상을 드러내다제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1) 잘못된 이해를 막아 주다
(2) 그 까닭을 해석해 주다
(3) 올바른 견해를 보여 주다제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1) 무법으로써 정각을 삼다제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1) 평등으로써 정각을 삼다
(2) 정수행과 방편수행으로써 정각을 삼다제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제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1) 잘못된 이해를 막아 주다
(2) 본래 제도할 중생이 없다
(3) 그 까닭을 뒤집어 해석해 주다
(4) 계속하여 집착을 없애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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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1) 상으로써 진불을 드러낼 수 있는지 묻다
(2) 싹을 보고 뿌리를 알 수가 있다고 대답하다
(3) 범부와 성인을 분간하기가 어렵다
(4) 여래는 상을 통해서 볼 수가 없음을 알다
(5) 보고 듣는 것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음을 확인하다제27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1) 상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막아 주다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1) 인욕을 성취한 까닭에 복덕을 잃지 않다
(2) 복덕을 잃지 않음을 그대로 설명하다
(3) 복덕이 되는 까닭을 따져서 해석해 주다제29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1)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다
(2) 정견을 보여 주다제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1) 미세한 방편으로 거친 색을 타파하다
(2) 생각을 내지 않는 방편으로 미진을 타파하다
(3) 생각을 내지 않는 방편으로 세계를 타파하다
(4) 미진과 세계에 함께 의거하여 화합을 타파하다
(5) 무無인데도 망집으로 인하여 유有라고 주장하는 것을 여래가 인정하다제31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1) 잘못 이해한 것을 바로잡다
(2) 언설에 대한 집착을 없애 주다
(3) 법집의 분별을 없애 주다
(4) 본래적멸本來寂滅을 드러내다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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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역회 용성당 백상규가 금강경의 대의大義를 총체적으로 판별하다
1. 함허당1) 이 해석한 뜻을 간략하게 인용하다


무릇 금강이란 무엇인가. 한줄기로 뻗친 광명이 온갖 변화 속에 노출되어도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고 영겁에 빠져들어도 완연하게 상존常存하는 것은 금강의 견고함을 비유한 것이고, 대나무에 붙어 있는 도깨비를 베어 내고 세상에 들끓는 갈등을 단절하는 것은 금강의 예리한 지혜를 비유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금강이라고 말한다.
마하라는 것은 대大2) 를 말한다. 이 한줄기로 뻗친 광명은 그 밝기로 말하면 해와 달보다 뛰어나고, 그 덕성으로 말하면 하늘과 땅을 능가한다. 그래서 광대함은 허공을 포함하기 때문에 시방에 걸쳐 비거나 모자라는 곳이 없고 삼세에 걸쳐 그친 적이 없다. 이런 까닭에 마하라고 말한다.
반야는 번역하면 지혜智慧이다. 허공은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법을 듣지도 못하며 사대四大도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법을 듣지도 못한다. 그러나 지금 목전에서 역력하고 밝게 빛나면서도 형단形段조차 없는 그것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다.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 이 한줄기의 광명은 하늘을 비추고 땅을 살피며 옛날을 빛내고 현재를 상승시켜 준다. 일체의 행行·주住·좌坐·와臥와 어語·묵默·동動·정靜에서 대단히 밝고 대단히 신령스러우며 분명하고 어둡지 않은 까닭에 반야3) 라고 말한다.
바라밀이란 번역하면 피안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피안에 도달한 사람은 부처님이다. 곧 구름을 거두어들이고 비를 그치며 바다처럼 맑고 허공처럼 투명하며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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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울리고 산색과 물빛이 서로 비추어 주는데 이것은 깨달은 사람의 경지이다. 그러나 안개에 파묻히고 구름에 가려서 하늘은 밝지만 땅은 어둡고 해와 달이 그 빛을 잃고 산과 강물이 그 그림자를 잃어버리는데 이것은 미혹한 사람의 경지이다.
경經이란 지름길(徑)이라는 말이다.4) 위에서처럼 묘지妙旨를 설명하여 후진의 경로徑路를 열어 준다는 뜻이다.



2. 불교(我敎)의 가르침


역자(용성)는 말한다 : 우리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베푼 뜻은 마음을 가르쳐 주는 종교이지 천天이나 신神과 같은 것을 신봉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배우는 사람은 우리네 마음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없는 줄로 믿어야 한다.



3. 불법의 가르침에는 차례가 있다


역자는 말한다 : 우리 부처님께서 왕궁에 막 내려오자마자 본연의 뜻을 보여 주시고, 다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는 거듭 본연의 뜻을 베풀어 주셨다. 이에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킴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우레와 같은 소리를 홀로 삼천대천세계에 떨치셨다. 그런데도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서는 부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 미혹한 중생을 인도해 주기 위하여 방편으로 출가하고 성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이것은 천하의 만대에 걸쳐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궁구하여 자기의 본래면목을 간파한 연후에 비로소 자기의 마음이 광대하여 허공을 다 끌어안고 법계에 빠짐없이 두루하여 그 진성眞性에 아我가 독존獨尊하고 독귀獨貴한 줄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진사겁塵沙劫(까마득한 세월) 이전에 이미 정각했던 것을 감추시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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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야 비로소 정각의 성취를 시현하여 화엄경을 먼저 설하셨다. 그러나 적행보살積行菩薩(과거부터 오랜 세월 동안 보살행을 쌓아 온 사람) 및 상덕성문上德聲聞(덕이 높은 성문보살)의 경우도 마치 귀먹은 것과 같고 벙어리와 같았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부득이 20년에 걸쳐서 모든 제자들에게 소승교를 설하셨는데 그것은 방편으로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을 향하여 점점 대도大道로 인도한 것이었다.
금강경은 소승의 집착을 타파하고 대승으로 인도하는 초문初門이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능엄경대승기신론원각경유마경 등 차례의 계급을 거치고 화엄경에 이르러서 바야흐로 교리가 원만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화엄경이 원극圓極하다고 할지라도 선종의 문하에서는 그것이 또 입도入道의 초문일 뿐이다. 위에서 말한 교의를 통합하여 전·후가 원만해진 연후에 비로소 우리 부처님께서 가르친 의도가 원융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간의 사람들은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혹 방편의 가르침(權敎) 가운데서 한 권의 뜻을 취하여 불교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은 하나의 망견에 불과하다. 오늘날 사회에서 혹 갖가지로 불교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4. 금강경의 핵심(綸貫)을 말하다


역자는 말한다 : 금강지심金剛智心으로 소승이 집착하는 미혹한 구름을 타개해 주시니 수보리가 터득한 20년 동안 쌓아 온 내공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수보리가 자기의 의문점을 일일이 부처님께 질문하자 부처님께서는 그 질문에 따라서 낱낱이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수보리는 방편으로서 소승을 나타낸다.) 수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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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의 신身·심心과 육진六塵의 상에 집착하여 보시하여 부처님의 복덕을 추구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무주無住(무집착을 말한다.)로써 타파해 주신다. 또 수보리가 보리상에 집착하자 부처님께서는 무소득無所得(무집착을 말한다.)으로써 타파해 주신다. 또 수보리가 보시에 집착하여 불국토를 장엄하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불국토는 장엄할 것이 없다는 것으로써 타파해 주신다. 또 수보리가 복덕에 집착하여 여래의 과보로써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얻고자 하자 부처님께서는 구족색신이 아니라는 것으로써 타파해 주신다. 또 수보리가 여래에게는 삼신상이 있는 것으로 집착하자 부처님께서는 응화신應化身은 진신이 아니고 보신報身은 형상을 벗어나 있다(離相)고 함으로써 타파해 주신다. 또 법신상이 있는 것으로 집착하자 부처님께서는 법신은 진신상이 아니라(非相)는 것으로써 타파해 주신다. 또 법신에 실아實我가 있는 것으로 집착하자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로써 타파해 주신다. 또 수보리가 여래에게 삼신상이 있는 것으로 집착하자 부처님께서는 삼신상은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다(非一二)는 것으로써 타파해 주신다. 이처럼 갖가지로 의심을 타파하여 일체를 모두 그렇지 않다(非)고 하시니 제상諸相이 소멸하고 일심一心도 의지할 곳이 없어 이치가 다하여 집착심이 사라졌다. 경계에 대한 분별과 집착의 허망한 소견이 이미 공하면 그와 같이 간주하는 능견의 허망도 또한 공하다. 이것은 진실한 반야의 구경극칙究竟極則(궁극의 경지)이고 향상법신向上法身(법신의 경지를 깨치는 것)의 일로一路이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경계하여 말씀하셨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은 일체법에 대하여 반드시 이와 같이 알고(如是知) 이와 같이 보며(如是見) 이와 같이 신해하여(如是信解) 법상을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해야 비로소 그것이 진정한 이해이고(眞知) 진정한 견해이며(眞見) 진정한 신해(眞信解)이다. 그런즉 주관과 객관(人·法)을 모두 잊고 부처님과 범부(聖·凡)라는 차별을 모두 잊어서 언어로 말할 수가 없고(言語道斷) 분별심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경지(心行處滅)가 된다. 때문에 마음으로 어쩌려고 하면 곧 어긋나 버리고(擧心卽錯) 생각으로 어쩌려고 하면 곧 어그러지고 만다(動念卽乖).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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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의 오묘한 이치가 무릇 여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님은 능엄경원각경화엄경 등 제경론이 있다는 것으로도 명백한데, 또한 하물며 격외별전格外別傳의 종지인 선등禪燈이겠는가.

불기 2948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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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사문海東沙門 함허당涵虛堂이 서문을 붙이다


여기에 있는 일물一物〔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진여, 열반, 깨침 등을 가리키는 말로서 此事, 거시기(渠), 一着子, 一圓相 등과 같은 뜻이다.〕은 명칭과 모습(名·相)은 없지만 옛날과 지금(古·今)에 통하고, 하나의 미진에 처해 있지만 육합六合(천·지·동·서·남·북의 육방을 가리킨다.)을 둘러싸고 있으며, 안으로는 온갖 묘용을 포함하고 밖으로는 온갖 부류의 사람에 대응하며, 삼재三才(天·地·人의 세 가지를 말한다.)의 주인이고 만법의 왕이며, 광대하기로는 그것에 비교할 것이 없고, 우뚝하기로는 그것에 짝할 것이 없다. 행동거지(俯仰)에는 분명히 나타나고 보고 듣는 때에는 은은하니 어찌 신묘하지 않은가. 천·지보다 앞서 있지만 그 시작이 없고 천·지보다 나중까지 있지만 그 끝이 없으니 어찌 현묘하지 않은가. 때문에 그것이 텅 빈(空) 것인지 실유(有)인지 나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그 일착자一着子를 터득하고는 중생이 그것을 동일하게 지니고 있으면서 미혹한 것을 널리 관찰하시고 탄식하여 기특하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중생의 생·사의 바다를 향하여 밑바닥이 없는 배(無底船 : 중생의 상식을 초월한 깨침의 세계를 가리킨다.)를 띄우고 구멍이 없는 피리(無空笛 : 중생의 상식을 초월한 깨침의 세계를 가리킨다.)를 불어 대니 신묘한 소리가 땅을 울리고 깨침의 바다(法海)가 하늘에 가득하였다. 이에 귀먹고 어리석은 사람이 모두 깨어나고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모두 물을 머금고 대지의 모든 중생이 각각 그 살길을 얻었다. 지금 이 반야경은 그와 같은 신묘한 소리(妙音)에서 흘러나온 것이고 깨침의 바다(法海)에서 나온 것이다.5)
금강의 견고하고 예리함으로써 아상과 인상의 번뇌를 잘라 내고 지혜의 햇빛으로써 짙은 어둠을 비추어 미혹한 안개 속에서 삼공三空(我空·法空·俱空을 가리킨다.)을 열어 주었다. 이에 중생으로 하여금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구덩이에서 탈출하여 진실의 세계에 올라가고 육도만행六度萬行(일체의 보살행을 가리킨다.)의 꽃을 피워서 일승의 열매(깨침의 경지로서 佛果를 가리킨다.)를 성취하도록 하였다. 그 단어들은 예리한 칼날에 햇살이 비췬 것과 같고 구절들은 물로 씻어 먼지가 없는 것과 같아서 끝없는 법문들을 흘려보내 한량없는 인간과 천상의 스승들을 길러 냈다. 곧 대감 혜능大鑑慧能(638~713)과 규봉 종밀圭峯宗密(780~841)과 야보 도천冶父道川과 부 대사傅大士(497~569)와 예장 종경豫章宗鏡 등 다섯 명의 보살들은 모두 인간과 천상에서 존경을 받고 법문(法海)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통방정안通方正眼(眞·俗·中道에 통달한 안목을 구비한 사람을 가리킨다.)을 갖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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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의 밀인密印(중생들이 알아야 할 도리로서 부처님이 전해 준 가르침이다.)을 고스란히 전승하여 각각 광장설상廣長舌相(부처님의 자유자재한 설법의 능력)을 보여서 최상종승最上宗乘(최상승의 종지로서 대승법을 가리킨다.)을 열어 주었다. 이에 그 낱낱의 위엄은 항하와 수미산까지 떨치고 그 낱낱의 광채는 과거와 현재까지 드날려 눈먼 사람에게는 색을 보게 하고 귀먹은 사람에게는 소리를 듣게 하며 벙어리에게는 말을 틔워 주고 절름발이에게는 길을 걷게 하였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러했는데 또한 널리 미래에까지 깨우쳐 주려고 다섯 보살이 각자 경전에 의거하여 주석을 지어서 천하에 걸쳐 후세까지 전해 주었다.
그러니 그 어찌 긁어 부스럼 만들기(彫文喪德)이겠는가. 오히려 가히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것이다. 또한 어찌 부처님의 광명을 거듭 드날리는 것에만 그치겠는가. 오히려 또한 조사의 깨침까지도 밝게 드날리는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천 년 이후에 태어났지만(함허 스님 당시 곧 15세기를 기준으로 한 말이다.) 만나기 어려운 보배를 만나서 그것6) 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그 행운이 이보다 클 수가 없다. 이로써 가히 부처님과 조사의 끝없는 광명을 드날리고 이로써 가히 국가의 큰 복을 이어 갈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오가해의 편집이 누구의 손에 의하여 출현하였길래 지금까지 그 명칭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나 함허는 이제 그 한 부처님과 다섯 조사의 심인을 한번 굴려서 다 살펴볼 수 있게 됨7) 을 기뻐한다. 그렇지만 비록 거문고를 타는 신묘한 손가락은 갖추어져 있지만 아직까지 그 소리를 감상하는 아름다운 귀를 만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까닭에 높은 산을 연주하는 소리(峨峨)를 넓은 바다를 연주하는 소리(洋洋)로 잘못 듣는 사람이 많다.
또한 해석(經疏)을 보면 거짓이 진실을 뒤덮어서 성 밖의 우유8) 가 아닌 것이 파다하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지 오래된 까닭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전해지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무릇 부처님의 말씀을 후세에 전승하는 데에는 오직 글을 시설하는 것만으로도 안 되고 글자가 없이 뜻만을 가지고 홀로 전승되는 것도 아니다. 글과 뜻이 서로 도와주어야 바야흐로 미묘한 노래가 성취되고 천하 고·금의 귀감이 되어 세간과 출세간의 안목을 열어 줄 수가 있다. 만약 뜻이 뒤섞여 버리고 글에 착오가 있으면 곧 사람들의 안목을 열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올바른 지견을 갖는 데 장애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무릇 문자에 미혹되지 않고 부처님의 의도를 체득하는 것은 진실로 어렵다.
그러나 만약 청정한 마음으로 선정에 들어가서 글을 가지고 그 뜻을 궁구하고 뜻에 의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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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찾아내면 곧 글과 뜻의 어긋남은 털끝만큼도 숨어 있지 못하여 분명하고 밝게 드러난다. 그것은 마치 세간의 질병이 훌륭한 의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나 함허는 비록 훌륭한 의사와 짝은 되지 못할지라도 다행스럽게 글과 뜻을 어설프게라도 알아서 그 진·위를 조금은 분별할 수가 있다. 때문에 이 금강경의 주석 가운데서 누락되었거나 군더더기만 되었거나 전도되었거나 오독되었던 것을 가려내고 다른 판본을 참고하여 여러 주석가들의 견해를 따져서 그것을 교정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판본에 의거한 것 말고는 일찍이 한 글자 내지 한 구절도 그 사이에 망령스럽게 개인적으로 첨가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았다. 무릇 의심이 가는 대목이지만 다른 판본을 통해서도 의거할 수 없었던 곳은 뜻에 의거하여 경정해서 권말에 따로 붙여 두었을 따름이다.
만약 뿌리가 휘감기고 줄기가 얽힌 것(盤根錯節)9) 을 보고도 팔짱만 끼고서 그 사이에 칼날을 들이대지 못한다면 어찌 이치에 통하고 현상에 도달한 사람(通人達士)의 소행이겠는가. 이로써 나 함허는 재주가 없는 것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맺힌 곳을 풀어 주고 그 막힌 곳을 통하게 하며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하고 조화롭지 못한 것을 조화롭게 하여 길이 미래의 납자에 이르도록 전승한다.

왕사성의 크고 둥근 달이 만고에 걸쳐서
광명이 소멸되지 않은 줄 누가 알겠는가
하하하 훗날에 밝은 안목을 갖춘 사람이
이 글을 살펴본다면 크게 비웃고 말리라
영락 13년 을미년(1415) 6월에 함허당의 납자 수이가 손을 씻고 향을 사르고 삼가 서문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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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대장新譯大藏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삼장역회三藏譯會 용성당龍城堂 백상규白相奎가 번역하고 아울러 의심을 풀어줌


금강이란 금강과 같은 무위불심無爲佛心(변함이 없는 본래의 불심)을 직지直指하는 것이고, 마하란 절대絶對의 대大를 가리키고, 반야란 지혜智慧를 가리키고, 바라밀이란 피안에 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제1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1) 증신서證信序


是와 如함을 我가 聞하사오니 一時에 佛이 舍衛國祇樹給孤獨園에 在하사 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으로 더부러 俱하더시니

이와 같음을 내10) 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11) 에서 대비구 천이백오십 명12) 과 함께 계셨다.13)


여시아문如是我聞이란 다음과 같은 설법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이고,(결집을 할 때에 대중들이 세 가지 의심을 일으켰는데 그때 아난이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일시一時란 제천諸天과 세간世間에는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본원성本源性에서 관찰하면 곧 여여하여 변함이 없는 일시이고 스승과 제자의 깨침이 합치되는 일시이고 멀고 가까움에 걸림이 없는 일시를 가리킨다.

야보설【함허설의】 유와 무를 취하지 않는 것이 여如가 되고, 여如는 유와 무가 아니므로 시是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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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말했다. 여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벌써 본질로부터 변한 것이다.【함허설의】 열반의 적멸에는 본래 名과 相이 없다. 그것을 여여라고나 할까. 자, 말해 보라. 변한다는 것은 어떤 곳으로 향하는 것인가. 돌咄!14) 함부로 나대지 말라.【함허설의】 변한다 또는 불변한다는 것으로 헤아리면 그것은 다시 어그러지고 만다. 필경에 어찌해야 하는가(作麽生).15) 불(火)을 말해도 일찍이 입이 불에 탄 적은 없었다.
여如라고 하는 여如는 고요한 밤 아득히 높은 하늘에 달 하나 외롭도다.【함허설의】 물과 파도가 둘이 아니고 파도와 물이 다르지 않다. 맑고 고요한 때가 원래 적적的的하고 본래 적적的的한 곳이 또한 고요하다(寥寥).
시是라고 하는 시是는 물이 파도를 떠나 있지 않으니 파도가 곧 물이다.【함허설의】 물이 온전히 곧 파도이고 파도가 온전히 곧 물이다. 거울과 물에 먼지와 바람이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함허설의】 거울이 깨끗하고 물이 맑아서 먼지와 바람이 묻지 않는 때이다. 대응하여 드러나도 티끌 없이 하늘과 땅을 비추니【함허설의】 맑고 맑은 경지이고 밝고 밝은 모습이여, 하늘을 빛내고 땅을 비추며 옛날을 비추어 오늘에 떠오르네. 똑똑히 살펴보라.【함허설의】 가는 앞길을 살피려면 눈을 높이 두어야 한다.
아我16) 여!【함허설의】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는 홀로서기를 하는 사람이다. 정라라淨裸裸하고 적쇄쇄赤洒洒하여 파악해 볼 수도 없다.17) 【함허설의】 하하하, 이것이 무엇인가. 동·서·남·북에 오직 나 혼자뿐이다. 이런 까닭에 ‘현상으로는 크게 작용하지만 안과 밖과 중간을 찾아보아도 아무것도 없다’는 옛말이 있다.
아我라고 하는 아我는 알고 나면 둘이 되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으면 본연에 합치된다.【함허설의】 아我가 있다고 말하면 눈 속에 티끌이 들어간 것이고 아我가 없다고 말하면 몸을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다. 한 몸에 유·무의 두 가지 견해가 있는 것은 허공을 쪼개서 두 쪽으로 만드는 격이다. 유·무의 두 가지 견해가 없어야 여여에 계합하리라. 하하하, 불러 대는 무생의 노래에 뉘라서 화답하리오. 소슬한 솔바람 소리가 맑기도 하구나.
문聞이여!【함허설의】 본래 이것은 하나의 정명精明(본래의 마음)이 육화합六和合(육근과 육경으로 육식이 형성되는 것)으로 나뉜 것이다. 【용성주해】 산의 광채와 강물의 소리 가운데 적적하게 저절로 드러나 있다. 그러한 뜻을 알고자 하는가. 여덟 냥은 고기 반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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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언설의 설법을 믿지 말라.【함허설의】 귀에 가득히 들려와도 그것은 진정한 소리가 아니므로 무엇을 들을 것이며, 분명히 아我가 없는데 도대체 어떤 것이 듣는단 말인가. 고갯마루에서는 원숭이가 울고 숲속에서는 학이 눈물짓네【함허설의】 학이 눈물짓고 원숭이 우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지만 크게 열려 있는 원통문을 믿는 자는 누구인가. 뭉게구름은 바람에 사라졌는데 강물 소리는 길이 여울지도다.【용성주해】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무엇을 방해하는가. 서리 치는 늦가을 한밤인 줄 잊었는데 어린 기러기 울음이 추운 날씨를 알려 주네.【함허설의】 듣는 자성을 돌이켜 듣는 곳에 분별심이 단절되네. 고요한 밤에 가을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여, 그 울음소리가 차가운 날씨를 알려 준다네.
일一이여!【함허설의】 하늘과 땅의 뿌리이고 온갖 변화의 원천이다. 알겠도다(相隨來也).【함허설의】 삼계의 만법이 모두 여기에서 일어나니, 병사들은 깃발을 따라 움직이고 그림자는 형체를 따라 발생한다.
일一이라고 하는 일一은 둘을 타파하는 것과 셋을 성취하는 것18) 도 이 일一에서 유출되었다.【함허설의】 둘을 타파하는 것도 일一이고 셋을 성취하는 것도 일一이다. 하늘과 땅이 혼돈의 상태로서 나뉘기 이전에 벌써 평생에 해야 할 공부를 마쳐 버렸다.【함허설의】 하늘과 땅보다 먼저 일어났고, 형상이 없이 본래 고요하지만 삼라만상의 주인공이며, 또한 삼세제불의 어머니이다. 어떤 사람이 이 도리를 터득하면 일체사一切事에 원만하게 통달하지 못함이 없다.
시時여!【함허설의】 영겁과 찰나가 서로 걸림이 없고 옛날과 지금과 처음과 끝에 널리 통한다. 이 도리를 알고자 하는가. 움직임과 고요함이 늘상 청산에 깃들어 있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마심으로써 차가운지 따뜻한지 아는 것과 같다.【함허설의】 달 밝은 집 앞은 늘상 뜨거운 여름이고 햇살 비췬 문 앞에는 늘상 차가운 가을이로다. 이와 같은 맛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친히 맛을 보아야 비로소 알 수가 있다네.
시時라고 하는 시時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따르네. 복사꽃은 붉고 오얏꽃은 희며 장미꽃은 자주색인 까닭을 봄바람(東君)에게 물어도 당최 알지 못한다네.【함허설의】 맑은 바람이 불 때는 밝은 달이 비추어 주고 밝은 달이 비출 때는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네. 복사꽃과 오얏꽃과 장미꽃은 봄바람(東君)이 조화를 부려 만들어 낸 것인데도 봄바람은 알지 못하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은 모든 사람이 평소에 함께하면서도 아무도 그 도리를 알지 못하네.
불佛이여!【함허설의】 천진스러운 본원本源이 곧 부처인가. 몸을 장엄한 상호가 곧 부처인가. 얼굴도 없고 눈도 없지만 옳고 그름을 설하는 자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실달이고 자라나서 불린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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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로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제도하셨고 간사한 무리를 굴복시키셨네. 만약 그 사람을 부처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는 마구니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무릇 하나의 구멍 없는 피리를 가지고 그런 사람을 위하여 태평가를 불러 주리라.【함허설의】 묘상妙相은 형체가 없고 진명眞名은 글자가 없는데 형상과 명자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강물을 인하여 달빛을 불러오지 않으면 온갖 것에 대응하는 달빛을 어찌 알겠는가.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만약 보신과 화신을 부처라고 말한다면 자기의 천진불은 궁극에 어떤 것인가. 그대는 부처님의 49년 설법을 살펴보라. 그것은 모두 낙엽19) 으로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해 준 것이었다. 구멍이 없는 하나의 피리를 가지고 태평가를 불러 주는 것이다. 그 도리를 알겠는가. 모든 사람의 발밑에서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모든 사람의 면전에 밝은 달빛이 환하도다.
재在여!【함허설의】 주인공 가운데 주인공이여, 영겁토록 문밖 출입도 하지 않았다. 손님이 찾아오거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냥 허투로 지나치지 말고 뒤따라가서 한 방 때려 주어야 한다.【함허설의】 본분자리(家裏 : 깨침의 본래경지를 가리킨다.)에 앉아서도 수행과정(途中 : 온갖 보살행을 가리킨다.)을 실천하여 본분자리에 어둡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 손님에게 도둑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곧 때려죽여야 한다. 향로를 하나 놓고 홀로 앉아서【용성주해】 깨어 있어야 한다. 경전 몇 줄을 외우도다.【함허설의】 본분자리와 수행과정을 한꺼번에 해치운다. 가련하다, 마차 타고 온 손님이여.【함허설의】 공적과 영지(寂·照)가 다르지 않고 본체와 작용(體·用)이 여여하다. 가련하다, 깨닫지 못한 사람이여 외부 경계에 얽매이는구나. 문밖의 손님은 괜히 바쁘다네.【함허설의】 가히 알겠구나.
대비구중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계심은【함허설의】 부처님과 대중(主·伴)이 서로 섞여 있고 설법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모였다. 한 손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함허설의】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이니 바야흐로 노래하고 그 화답이 이루어지네. 외외巍巍하고 당당堂堂함은 만법 가운데 왕이고, 서른두 가지 신체적 특징(三十二相)과 갖가지 종류의 마음의 광채(百千種光)에 성현과 범부는 우러러 따르고 외도는 굴복을 한다. 자비로운 용모를 만나 보기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언제나 기원祇園의 대도량20) 을 벗어나 있지 않다.【용성주해】 중생을 제도하고자 세간에 출현하여 진실을 말씀하셨다. 오셨지만 온 적이 없다는 말은 마치 달빛이 천 개의 강물에 나타난 것과 같고 가셨지만 간 적이 없다는 말은 허공이 온갖 세계에 나뉜 것과 같다. 제불법신諸佛法身이 상주불생常住不生이고 상주불멸常住不滅이니 어디인들 부처님의 도량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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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먼저 계상을 보여서 중생을 위하여 모범적인 규칙을 정하다(先現戒相爲物作則)


爾時에 世尊이 食時에 着衣持鉢하사 舍衛大城에 入하사 於其城中에 次第로 乞已하시고 本處에 還至하사

그때 세존께서 식시食時21) 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대성에 들어가서 그 성중에서 차례로 걸식을 마치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서



(3) 금강대정에 들어감을 표시하다(金剛大定에 入함을 標示)


飯食하시기를 訖하시고 衣鉢을 收하시고 足을 洗하시고 座를 敷하시고 坐하시니

공양을 마치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고 나서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22)


야보설 깨어 있어야 한다.【함허설의】 선정과 지혜가 원만하여 밝고 공적과 영지가 다르지 않다. 공양을 마치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시는 것은 누구와 함께 하는 모습인가.【함허설의】 성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고 가사를 정제하고 발을 씻고 자리를 펴신 모습이다. 이것은 곧 사람들을 위한 시절이다. 그러나 자리를 펴고 좌선을 하는 시절은 뭐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용성주해】 하늘에 의거한 긴 칼이 차가운 빛을 발생한다.23) 이하의 긴 경문을 아는가 모르는가.【함허설의】 경문에 설해진 허다한 언설은 중·하근기를 위하여 설한 것을 가리킨다. 새를 잡는 데는 그물 한 코면 되지만 한 코만으로는 그물이라 할 수가 없고,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공功이 국왕 한 사람에게 있지만 한 개인으로만 국가가 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에 중·하근기를 위하여 언설의 바다에 파도를 크게 일으킨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라. 평지에서 파도가 일어난다.【함허설의】 모든 사람의 본성은 푸른 하늘의 밝은 태양과 같다. 이에 본래 무위無爲이고 무사無事하여 온 천지가 불국토(淸平世界)이거늘 부처님께서 중·하근기를 위하여 불국토에 괜시리 파도를 일으킨 것이다.



제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時에 長老須菩提 大衆中에 在하더니 곳 座로 從하야 起하사 右肩을 偏袒하고 右膝을 地에 着하사 合掌恭敬하야 佛의게 白言하사대 希有하도다 世尊이시여 如來께서 諸菩薩을 善護念하시며 諸菩薩을 善付囑하시는도다

그때 장로 수보리24) 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25)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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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호념하시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십니다.


야보설 여래께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수보리가 문득 찬탄을 하였다. 그러므로 안목을 갖춘 뛰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시험 삼아 잘 착안해 살펴보라.【함허설의】 서로 만나서 말을 붙이지 않아도 뜻을 알아차리니 희유한 일이다. 가히 똑같은 깨침이어야 바야흐로 아는 법이다. 담장 너머로 뿔을 보면 곧 소인 줄 알고, 건너편 산의 연기를 보면 곧 불인 줄 안다.【함허설의】 지음이 서로 만나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 돌咄! 높고 높은 곳에 홀로 앉아 있으니 천상과 천하로다.【함허설의】 모든 허공으로 자신을 삼고 모든 대지로 좌구를 삼아서 온갖 차별을 곧장 단절하고 범부와 성인을 가리지 않으니 천상과 천하에 가득하고 늠름하다. 그러니 곧 어떤 것도 짝할 것이 없다.



(1) 마음을 안주하고 다스리는 방법을 묻다(住降方法을 問)


世尊이시여 善男子善女人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發한 이는 맛당히 이름 엇더케 住하며 이름 엇더케 其心을 降伏하리익고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안주하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야보설 이 일련의 질문은 어디에서 나왔는가.【함허설의】 여기에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모든 법이 텅 비어 안주할 것이 없고 모든 마음이 적멸하여 다스려야 할 것이 없는데 안주하고 다스리는 두 가지 질문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둘째, 수보리는 해공제일解空第一인데 어찌 허망한 마음이 본래 공하고 바깥 경계가 본래 적멸인 줄을 몰랐겠는가. 만약 그 도리를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경박스럽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하였는가. 셋째, 법을 묻는다 해도 물을 법이 없고 도를 닦는다 해도 닦을 도가 없다. 무릇 질문하기 이전의 경지에 대하여 착안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 안주와 다스리는 것을 질문하는 것인가. 이것은 만약 목전의 지금에 대해서만 밝히려 한다면 본래신本來身을 놓쳐버리고 만다. 그대는 기뻐하지만 나는 기쁘지 않고 그대는 슬퍼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다.【함허설의】 그대와 나 및 나와 그대라는 것은 본분인本分人의 입장에서 금시인今時人26) 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안주하고 다스리면 기뻐하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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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고 안주하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슬픈 마음이 일어난다. 나의 세계(본분인)는 본래 청정하고 평등하여 순행의 도리(理)와 부조화의 어지러움(亂)이 모두 없는데 어찌 슬퍼하고 어찌 기뻐하겠는가. 기러기는 북쪽 하늘로 날아갈 것을 생각하고 제비는 남쪽 둥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한다. 가을철의 달과 봄바람에 담겨 있는 무한한 뜻은 그 속에 깃들어 보아야만 비로소 스스로 알 수가 있다.【함허설의】 기러기가 북쪽 하늘로 날아갈 것을 생각하고 제비가 남쪽 둥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는 것이 어찌 기뻐하고 슬퍼하는 마음의 대상이겠는가. 무릇 허공이라는 공간을 스스로 오고 갈 뿐이다. 봄에는 만물이 발생하고 여름에는 만물이 생장하며 가을에는 만물을 거두어들이고 겨울에는 만물을 저장하며, 달이 차고 달이 기울며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각각 무릇 줄어들고 늘어나며 가득 차고 텅 비는 모습이 없지 않아서 무궁하고 무진한 뜻이 담겨 있다. 이 도리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스승이 제자에게 줄 수 없는 것이므로 각자 자신이 직접 수긍하고 자신이 직접 깨쳐야 터득할 수가 있다.



(2) 여래께서 수보리를 칭찬하다(如來讚許)


佛言하사되 善哉善哉라 須菩提여 汝의 說한 바와 如하야 如來 諸菩薩을 잘 護念하시며 諸菩薩을 잘 付囑하나니 汝가 今에 諦聽하라 맛당히 汝를 爲하야 說하리라 善男子善女人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發하니는 應當 是와 如히 住하며 是와 如히 其心을 降伏할지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했다. 참으로 잘했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호념하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해 준다. 그대는 이제 잘 듣거라. 마땅히 그대한테 말해 주겠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안주하고 다음과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3) 수보리가 기꺼이 듣겠다고 말씀드리다(善現伸聞善現은 須菩提)


唯然호이다 世尊이시여 願樂欲聞하노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기꺼이 듣고자 합니다.27)


야보설 낱낱의 문답 상황은 간절한 부촉을 인하여 발생한다.28) 【용성주해】 본래무사本來無事이지만 갖가지 문답 상황은 간절한 부촉을 인하여 드러난 것이다. 손이 일곱이고 다리가 여덟이니 참으로 기괴한 몰골(神頭鬼面)이다. 몽둥이로 때려서도 물리치지 못하고 칼로 베어서도 잘라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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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설의】 금강반야바라밀이여, 신통과 묘용이 자유로워 오묘한 체성을 보기가 어렵도다. 염부제에서 멈칫거린(踔躑) 적이 수천 번이었지만 번번이 부처님 손바닥(空王殿)을 벗어나지 못하였다.【함허설의】 생·사 윤회의 길을 수차례 왕복하였지만 발자취는 원래 허공과 같도다.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먼저 발심하여 안주하다(一發心住)
(1) 총체적으로 답변하고 개별적으로 답변을 드러냄으로써 위의 질문을 이어받다(摠을 擧하고 別을 標하야 써 前問을 牒함)


佛이 須菩提의게 告하시되 諸菩薩摩訶薩이 응당 是와 如히 其心을 항복바들지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은 반드시 다음과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2) 광대심廣大心29)


잇는바 一切衆生의 類에 만일 卵生이든지 만일 胎生이든지 (만일 濕生이든지) 만일 化生이든지 만일 有色이든지 만일 無色이든지 만일 有想이든지 (만일 無想이든지) 만일 非有想이든지 만일 非無想임을

‘존재하는 일체중생의 부류로서 알로 낳은 것이든지 태로 낳은 것이든지 습기로 낳은 것이든지 변화해서 낳은 것이든지, 색계에서 낳은 것이든지 무색계에서 낳은 것이든지, 식무변처에서 낳은 것이든지 무소유처에서 낳은 것이든지 비유상비무상처에서 낳은 것이든지 간에



(3) 제일심第一心


我가 다 하야금 無餘涅槃에 入케 하야 滅度하나니라

내가 모두 무여열반에 들어가게 하여 멸도시켰지만,



(4) 상심常心


是와 如히 無量無數無邊衆生을 滅度호대 實노 衆生이 滅度 어든 者 無하니라

이와 같이 무량하고 무수하며 무변한 중생을 멸도시켜도 실로 중생은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



(5) 부전도심不顚倒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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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를 以한 故오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我相과 人相과 衆生相과 壽者相이 有하면 곳 菩薩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보살에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30) 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보설 머리로는 하늘을 이고 발로는 땅을 밟으며 코는 세로로 되어 있고 눈은 가로로 되어 있다.【함허설의】 일진법계一眞法界로부터 중생의 형체가 구류중생으로 나뉘었지만 모든 형체는 다 일진법계를 갖추고 있다. 때문에 모든 머리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모든 발은 땅을 밟고 있으며 모든 코는 곧장 드리워져 아래를 향해 있고 모든 눈은 옆으로 뻗쳐 있으면서 위에 붙어 있다. 당당한 대도大道는 밝게 빛나서 분명하고 모든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으며 낱낱이 원만하게 성취되어 있다. 그렇지만 무릇 일념만 어그러져도 만반의 번뇌의 형체가 드러난다.



제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1) 총체적으로 드러내다(摠標)


다시 다음에 須菩提야 菩薩이 져 法에 맛당히 住한 바 無하야 져 布施를 行함이니

또한 수보리여, 보살이 저 법에 마땅히 머묾이 없이 보시를 실천해야 한다.



(2) 개별적으로 해석하다(別釋)


謂한 바 色에 住하야 布施하지 아니하며 聲香味觸法에 住하야 布施하지 아니하나니

이른바 색에 집착이 없이 보시하고, 소리와 향기와 맛과 부딛쳐 느끼는 것과 법에 머묾이 없이 보시해야 한다.



(3) 총체적으로 결론 맺다(摠結)


須菩提야 菩薩이 應當 是와 如히 布施하되 져 相에 住하지 아니하나니라

수보리여, 보살이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되 상에 머묾이 없어야 한다.


용성해설 이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수보리가 다음과 같이 의심하였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보시로써 근본을 삼는다. 그런데 지금 중생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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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하다면 보시를 받는 자는 누구인가.
이에 대하여 답한다 : 보살의 보시는 중생의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묻는다 : 이 경문에는 수보리가 질문한 대목이 없는데 무슨 까닭에 수보리의 의심을 취하여 해석하는 것입니까.
답한다 : 부처님께서는 타심통의 지혜가 광대한 까닭에 일체중생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낱낱이 예지하신다. 때문에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에 대하여 낱낱이 답변해 주신다. 이하부터는 이와 같은 상황에 의거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4) 이익을 드러내다(現益)


何以故오 만일 菩薩이 相에 住치 아니하야 布施하면 其福德이 可히 思量치 못하리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묾이 없이 보시하면 그 복덕이 불가사량하기 때문이다.


야보설 만약 천하에 유행하려면 한 가지 특기가 있어야 제일이다. 중국(西川)의 특급 비단(十樣錦)에 꽃을 수놓으니 물색이 더욱 선명하다.【함허설의】 반야의 지혜는 비단이 되고 온갖 수행의 꽃은 문양이 되어 문양과 비단이 아름답게 빛나니 지혜와 수행이 아울러 조화로우면 비단에 수놓은 꽃처럼 더욱더 신선하다. 단적인 뜻을 알고자 하면 남쪽을 향해 북두성을 살펴야 한다. 허공은 털끝만큼의 분별념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大覺仙)의 이름이 빛난다.【함허설의】 북두성과 남태성의 위치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남쪽이다 북쪽이다 말하는 것은 분별념을 말미암은 것이다. 이런즉 유와 무의 경계를 멀리 벗어나고 격외格外의 상태에도 앉지 않아야 분명히 의지함이 없어서 심량心量이 태허와 같기 때문에 이에 대각이라는 명칭이 빛나고 이에 무량한 복덕이 성취된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否31) 아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須菩提야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을 可思量否32) 아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須菩提야 菩薩이 無住相布施福德도 또한 다시 是와 如하야 可히 思量치 못하나니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방의 허공을 사량할 수 있겠느냐. 사량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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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남방·서방·북방·사유·상하의 허공을 사량할 수 있겠느냐. 사량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머묾이 없이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그와 같이 불가사량하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다음과 같이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만약 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어떻게 복덕이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답한다 : 상을 여읜 복덕이 가장 큰 줄을 그대는 모르는구나.



(5) 결론적으로 집착하지 말 것을 권장하다(結勵不住)


須菩提야 菩薩이 다못 應當 敎한 바와 如히 住할지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무릇 가르쳐 준 대로 머물러야 한다.


야보설 예의를 아는구나.【함허설의】 무주는 만행의 대본大本이고, 만행은 무주의 대용大用이다. 무주로써 주住를 삼으니 대본은 이미 밝혀졌지만 만행은 늘상 분명하여 진·퇴에 절도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히 예를 아는 것이다. 허공의 경계를 어찌 헤아리겠는가. 대도大道는 수려하고 그윽하여(淸幽) 그 이치가 영원하다. 무릇 오호五湖33) 에 풍·월이 깃들면 봄이 와도 여전히 온갖 꽃이 향기롭다.【함허설의】 상구는 대체大體이고, 하구는 대용大用이다.34)



제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1) 의심의 원인을 들어서 질문하다(疑因을 擧하야 問함)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可히 身相으로써 如來를 見하겟는야 못하겟는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히 신상身相을 통하여 여래를 볼 수가 있겠느냐.



(2) 의심을 차단하여 답변하다(疑를 遮防하야 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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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也니다 世尊이시여 可히 身相으로써 如來를 어더 보지 못하리니다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신상을 통해서는 여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3) 여래의 본체가 유위와 다름을 해석하다(體가 有爲와 異함을 釋함)


何以故오 如來說하신바 身相이 곳 身相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상은 곧 신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보설 자, 말해 보라. 지금 거닐고 머물며 앉고 눕는(行·住·坐·臥) 이것은 어떤 형상인가. 졸지 말아라.【함허설의】 색신을 벗어나서 별도로 법신을 추구하지 말라. 몸이 바다에 있으면 물을 찾지 말고 매일 산을 올라 걸으면 산을 찾지 말라. 꾀꼬리 소리와 제비 소리가 모두 비슷하므로 무엇은 어떻고 무엇은 어떤가를 묻지 말라.【함허설의】 맑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스스로 미혹하고 밝은 대낮인데도 눈먼 자가 보지 못할 뿐이다. 꾀꼬리들은 끼리끼리 지저귀는 소리가 비슷하고 제비들은 끼리끼리 지저귀는 소리가 동일하므로 천차·만별을 묻지 말라.



(4) 부처님 몸은 무상임을 이해시키다(佛身無相을 印함)


佛이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모든 相이 有한바 皆是虛妄이니 만일 諸相이 相 아님을 見하면 如來를 卽見하리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은 진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다음과 같이 의심하였다. 이전에는 보시하여 쌓은 복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불과를 추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뜻밖에도 중생상이 공하고 보시를 하는 사람과 보시를 받는 사람과 보시물의 체성이 공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면 인因이란 공연히 헛된 말이다. 그 무상無相한 인因으로 어찌 유상有相한 과보를 추구하겠는가. 또 하물며 여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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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身相이 완연한데 무상無相한 인因으로 어찌 불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에 세존께서 질문으로 말씀하셨다. 신상을 통하여 여래를 볼 수가 있겠느냐. 그리고는 사구게를 통하여 무상無相한 인을 통하여 무상한 과에 계합됨을 설명하셨다.


야보설 산은 곧 산이고 물은 곧 물이다. 그러니 부처가 어디에 있겠는가.【용성주해】 이것은 하늘이 곧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이어서 하늘과 땅의 모든 형상이 곧 공한 줄만 알고, 하늘이 곧 하늘이고 땅이 곧 땅이며 모든 산과 모든 물이 각각 완연한 줄 모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세존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세존의 본래 뜻을 드러낸 것이다. 세존의 설법은 병에 따라서 약을 주는 것인데 실로 중생에게 일러 주는 설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형상이 있다든가 추구함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고, 형상이 없다든가 견해가 없다는 것은 모두 편견에 빠진 것이다. 당당하고 용의주도한데 일찍이 무슨 빈틈이 있겠는가. 한줄기 섬뜩한 빛(寒光)이 태허를 빛내도다.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1) 무無에 의거하여 의심을 드러내다(約無以呈疑)


須菩提가 佛의게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자못 衆生이 잇써 是와 如한 言說章句를 得聞하고 實信을 生하리니익가 마리익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대부분의 중생들이 이와 같은 언설과 장구를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겠습니까.



(2) 의심을 꾸짖고 믿음을 드러내다(訶疑以顯信)


佛이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是說을 莫作하라 如來滅하신 後 後五百歲에 戒를 持하고 福을 修하는 者 有하면 於此章句에 能히 信心을 生하야 此로써 實을 삼으리라佛後二千五百年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 하지 말라. 여래가 입멸한 이후 후오백세35) 에도 계를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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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을 닦는 자는 그 장구에 믿음을 내고 진실한 말씀으로 삼을 것이다.



(3) 전생겁에 선으로써 쌓은 믿음의 인을 설명하다(明歷事善友積集信因)


맛당히 알나 是人이 져 一佛二佛三四五佛의게 善根만 種할 뿐 아니라 임의 져 無量千萬佛所에 諸善根을 種하엿실새 章句를 聞하고 乃至 一念이라도 淨信을 生하리라

이 사람은 일불이나 이불이나 삼·사·오불께 선근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장구를 듣고 잠깐이라도 청정한 믿음을 내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야보설 금으로 만든 불상은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불상은 불을 건너지 못하며 진흙으로 만든 불상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 가지 불상의 형상과 위의는 모두 진정한 여래가 아니다. 눈 속의 눈동자야말로 바로 면전의 그 사람이다. 만약 집 안에 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지저귀는 새와 산에 핀 꽃이 모두 봄날이다.



(4) 복덕의 섭수를 설명하다(明攝受福德門)


須菩提야 如來實知實見36) 하나니 是諸衆生이 是와 如히 無量福德을 得하나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다 알고 다 본다. 이 모든 중생은 이와 같은 무량한 복덕을 얻는다.


야보설 오이채소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과일나무를 심으면 과일을 얻는다.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천만 부처님들이여, 각각 눈은 가로로 놓여 있고 코는 세로로 놓여 있다. 친히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오늘날 옛날의 인연을 의지하여 각각 능력을 얻었다. 수보리여, 가사를 걸치고 공양을 하는 것이 일상사인데 어째서 일부러 의심을 발생하는가.【함허설의】 지금의 일상생활이 그대로 복덕의 섭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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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미 단제한 사상四相(麤執)37) 을 그대로 설명하다(正明已斷麤執)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다시 我相과 人相과 衆生相과 壽者相이 無하며 法相이 無하며 또한 非法相이 無하니라

왜냐하면 이러한 중생들에게 다시는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이 없고, 법상이 없고 비법상도 없기 때문이다.


야보설 태허와 같이 원만하여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법상과 비법상이여, 주먹을 펼치니 다시 손바닥이 되네.【용성주해】 주먹과 손바닥이 원래 하나의 손이듯이 법상과 비법상이 모두 잘못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뜬 구름이 푸른 허공에 흩어지니 만 리의 하늘이 다 푸르도다.【함허설의】 단견과 상견을 모두 잊으니 바야흐로 일미一味(깨침을 가리킨다.)가 드러난다.



(6) 아직 사견四見(細執)을 단제하지 못하다(未除細執)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만일 心이 相을 取하면 곳 我人衆生壽者에 着함이오 만일 法相을 取하야도 곳 我人衆生壽者에 着함이오 (何以故오) 만일 非法相을 取하여도 (곳) 我人衆生壽者에 着함이니라

왜냐하면 이러한 중생들이 만약 마음으로 상에 집착하면 곧 아와 인과 중생과 수자에 집착하는 것이고, 만약 법상에 집착해도 아와 인과 중생과 수자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약 비법상에 집착해도 곧 아와 인과 중생과 수자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 중도의 진리문을 보여 주다(中道玄門示)


是故로 응당 法을 取하지 말 것이며 응당 非法을 取하지 말 것이니라

그러므로 법을 취해서도 안 되고 비법을 취해서도 안된다


야보설 금으로는 금을 살 수가 없고 물로는 물을 씻을 수가 없다.【함허설의】 금으로는 자체를 취할 수가 없고 물로는 자체를 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능견과 소견을 모두 잊어야 바야흐로 한 가지 길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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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얻어 가지를 잡는 것이 기이한 것이 아니다. 벼랑에서 매달린 손을 놓아야 대장부라 할 것이다.【함허설의】 하나를 얻었다는 집착심이 남아 있으면 기이한 것이 아니다. 그 하나마저도 잊어야 대장부이다. 물도 차갑고 밤도 추워서 물고기를 찾기가 어려우니 빈 배에 깃든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함허설의】 이런 경지에 도달하여 범부라는 생각을 벗어나고 부처님이라는 견해도 또한 없어야 한다. 무릇 사심이 없이 비추어 본다 할지라도 도리어 시·비의 마당에 도달한다.


是義를 以하는 故로 如來常說하사되 汝等比丘가 我의 說法을 筏에 喩한 者와 如히 알지니 法尙應捨어든 何況非法이따녀

이에 여래는 늘 말했다. 그대 비구들이여, 내 설법은 뗏목과 같은 줄 알아야 한다.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이겠는가.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만약 무상한 인으로 무상한 과보에 계합한다면 그 뜻은 대단히 심오하여 믿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부처님께서는 이전에 수보리가 유상의 인에 집착하자 무주상보시로써 타파해 주셨고, 또 무상한 인이 어찌 유상有相한 과보를 발생하는가를 의심하자 법신은 비상非相이라는 것으로써 타파하여 무상無相한 인으로 무상한 과보를 얻는 것을 설명해 주셨다.
이제 인因·과果가 모두 공하고 인人·법法을 모두 잊는다는 것은 그 뜻이 대단히 심오하여 믿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의심하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어찌 믿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 없겠는가. 무릇 이 법을 믿는 자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이에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사람이 바야흐로 믿고 이해할 수가 있다.

야보설 물이 모여들면 개울이 된다.【함허설의】 만약 문자에 집착하면 물줄기만 보고 근원에 미혹하고, 만약 문자를 버리면 근원만 보고 물줄기에 미혹한다. 그러므로 근원과 물줄기에 모두 미혹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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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하는 길에 걸림이 없어 이르는 곳마다 모두 통한다. 하루 종일 바쁘디바쁘지만 어느 것에도 장애가 없다. 해탈도 추구하지 않고 천당도 누리지 않는다. 무릇 일념의 무념으로 돌아가면 높이 비로자나불의 머리를 밟고 걸어갈 것이다.【함허설의】 무념의 지혜가 드러나면 이것과 저것이 분별없이 하나가 되어 속박과 해탈이 따로 없고 솟구침과 가라앉음이 동시가 된다. 이미 깨침의 정인正因을 얻었으므로 무릇 집착만 없으면 비로자나불의 머리를 밟고 걸어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쾌활한 경지가 아니겠는가.



제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1) 의심의 원인을 들어서 질문하다(擧疑因以問)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함니냐 如來說한바 (法)이 有하는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했느냐. 여래가 설법을 했느냐.



(2) 실제의 도리를 따라서 답변하다(順實理以酬)


須菩提言하되 我가 佛의 所說義를 解함은 定한 法이 잇슴이 업슴을 名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며또 定한 法이 잇서 일홈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가 無하니라 또 定法名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가 無하니라 또한 定한 法이 잇슴업슴이 如來可說이니라또한 定한 法이 잇서 如來可說이 無하니라 또 하나는 定한 法如來可이 說하심이 無함이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만한 정해진 법이 없고,【용성주해】 또 정해진 법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또 정해진 깨침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또한 여래께서 설한 정해진 설법도 없습니다.【용성주해】 또한 정해진 깨침으로서 설법이라 할 만한 것이 없고, 정해진 법으로서 설법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야보설 추우면 춥다고 말하고 더우면 덥다고 말한다.【함허설의】 이승이 있으므로 이승법을 설하고 대승이 있으므로 대승법을 설한다. 이처럼 중생을 따라서 방편을 베푸니 정해진 법이 없고 인연을 따라서 도리를 내세우니 굴레를 벗어나 있다. 남산에서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린다. 나귀와 말이라는 명칭이 얼마나 다양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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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설의】 그럴듯하게 사성제법과 십이인연법을 설하였는데 다시 육바라밀법을 설하니 그것은 근기가 다르고 또한 정해진 법도 없는 까닭이다. 이로부터 온갖 종류의 명칭이 나뉘었다. 청컨대 넓고 아득한 분별이 없는 물(無情水)을 보라. 곳에 따라서 모나기도 하고 곳에 따라서 둥글기도 하다.【함허설의】 무념의 지혜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도다.



(3) 정해진 법이 없음(無有定法)을 해석해 주다(釋無定法)


何以故오 如來法이 說하신 바가 다 可히 取치 못하며 可히 說치 못하나니 法이 아니며 非法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설법은 모두 취할 수가 없고 설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보설 이것이 무엇인가.【함허설의】 물 위에 떠 있는 표주박과 같아서 건드리면 곧 움직인다. 그러니 어찌 정해진 법이 있어서 취하고 어찌 정해진 법이 있어서 설할 것인가. 필경에 이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할 수도 없고 저렇게 할 수도 없다. 텅 빈 허공에 새가 날아가도 그림자가 남아 있지 않다. 돌咄! 기륜機輪의 방향을 바꾸어 돌려도 동·서·남·북에 마음대로 왕래한다.【함허설의】 부처님께서는 유·무 등의 사구38) 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가지만 그림자를 남겨 두지 않는 것과 같다. 돌咄! 그러나 다시 새가 날아간 길을 향해서 몸을 굴릴 줄 알아야만 비로소 가능하다.39)



(4) 취함이 없는 까닭을 해석해 주다(釋無取之所以)


所以者何오 一切賢聖이 다 無爲法으로써 差別이 有하니라

왜냐하면 모든 성현들은 다 무위법無爲法40) 에서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부처님은 색상이 아니고 법은 취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의심한다. 부처님과 법에 그 상이 없다면 그것은 부처님과 법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지금 상을 드러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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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을 하시는데 부처님의 말씀에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의 그와 같은 의심을 역으로 타파해 주신 것이다.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의 구절이 의심을 역으로 타파해 주신 내용이다.


야보설 털끝만 한 차이만 있어도 하늘과 땅만큼 간격이 벌어진다.41) 【함허설의】 비록 법은 일미이지만 사람의 견해에 온갖 차별이 있다. 하늘과 땅이 그러하듯이 금으로 천 개의 그릇을 만들어도 모든 그릇은 다 금이고 전단향을 만 조각으로 나누어도 모든 조각은 다 전단향이다. 정인正人이 사법邪法을 설하면 그 사법이 모두 정正으로 돌아가고 사인邪人이 정법을 설하면 그 정법이 모두 사邪로 돌아간다. 강북지방에서는 탱자가 되고 강남지방에서는 귤이 되지만 봄이 도래하면 모두 똑같이 꽃이 핀다.【함허설의】 일미의 무위법이 사법邪法이 되기도 하고 정법正法이 되기도 하며, 같은 종자가 남쪽과 북쪽의 두 형태로 나뉘지만 꽃은 똑같이 핀다.



제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1) 하열한 복덕을 들어서 질문하다(擧劣福以問)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若人이 三千大千世界에 가득한 七寶로써 布施를 用하면 是人의 得한바 福德이 어떠하뇨 만함이되는야 마냐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서 보시한다면 그 사람의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2) 복덕이 많음을 해석하여 답변하다(釋福多以酬)


須菩提言하되 甚多니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是福德性42) 이 곳 福德性이 아일새 是故로 如來福德이 多하다 說하나니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그 복덕은 복덕성이 아닌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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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 경전의 복덕이 뛰어남을 판별하다(判經福勝)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於此經中에 乃至 四句偈等을 受持하야 他人을 爲하야 說하면 其福이 彼보담 勝하니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사구게四句偈43) 만이라도 받고 지니며 다른 사람에게 설해 준다고 하자. 그러면 이 복덕이 저 복덕보다 뛰어나다.


야보설 깨침은 무심을 통해서 성취된다.【용성주해】 마음이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자연히 그 마음은 청정하다. 이 『금강경』은 무상無相으로 종지를 삼고 무주無住로 본체를 삼으며, 묘용妙用으로 작용을 삼는다. 그래서 허망한 마음이 공하면 무주진체無住眞體가 영지불매靈知不昧하여44) 무궁하게 응용한다. 때문에 모든 신통광명의 현상이 이로부터 발생한다. 보배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워서 보시해도 그 복덕의 인연은 인간과 천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복덕의 자성이 원래 없는 줄 이해하면 본지풍광을 사는 데 돈을 쓸 필요가 없다.



(4) 복덕이 인간과 천상을 초월한 이유를 해석해 주다(釋超過所以)
① 정석正釋(곧이곧대로 풀이하는 해석)


何以故오 須菩提야 一切諸佛과 及諸佛에 阿耨多羅三藐三菩提45) 가 다 此經을 從하야 出하나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가르침은 다 이 경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야보설 자, 말해 보라. 이 경전은 어디에서 나왔는가.【함허설의】 사람들은 무릇 자식이 있는 것만 알고 아버지가 있는 것은 모르고, 그 아버지가 있는 것만 알고 할아버지가 있는 것은 모른다. 수미산의 정상과 대해의 물속이 어찌 저 할아버지의 면목이 아니겠는가. 부처님과 조사가 자비를 드리워서 진실에다 방편을 두었다. 때문에 모든 말씀은 이 경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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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남이 없이 설해졌다. 이 경전의 출처를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가. 그러려면 곧 허공 속으로 철선鐵船을 타고 가야 한다. 절대 착각하지 말라.【함허설의】 일대사一大事를 터득한 후에 교화에 나서서 중생의 뜨거운 번뇌에다 청량한 감로수를 뿌려 주니 그 모든 물방울이 다 이 경전에서 나온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구름이 걷히면 산봉우리가 드러나고 달이 뜨면 물속까지 비췬다.



② 전석轉釋(관점을 돌려서 풀이하는 해석)


須菩提야 所謂佛法者는 곳 佛法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소위 불법은 곧 불법이 아니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는 이미 부처님도 없고 법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위에 계합한 사람은 뛰어난 복덕을 어떻게 얻는 것인가를 의심하였다. 이에 여래께서 형상을 떠나 있다는 가르침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달달한 과자를 가지고【함허설의】 불법을 비유한다. 쓰디쓴 호로胡蘆【함허설의】 비불법을 비유한다.와 교환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은 마음대로 풀어 주고 얽어매며 마음대로 놓아주고 거두어들이며 마음대로 살려 주고 죽여 주는 모습이다. 두 눈썹 사이에서 항상 백호광명白毫光明(眉間白毫相이라고도 하는 부처의 삼십이상 가운데 하나로 양쪽 눈썹 사이에 난 흰 터럭에서 비추는 광명을 말한다.)을 비춘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오히려 보살에게 묻기를 기다린다. 【용성주해】 毫光을 비추는 것은 본래부터 현성한 것인데 어찌 밖을 향해서 헛되게 찾는단 말인가.



제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1) 입류과入流果(성인의 부류에 들어가는 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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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야 뜻에 어떠타 하는고 須陀洹이 能히 是念을 作하되 我가 須陀洹果를 得하얏다고 하는야 마는야 須菩提言하사되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須陀洹이 名이 流에 入한다 하되(聖流也) 入한 바 無할새 色과 聲과 香과 味와 觸과 法에 入하지 아니함이 是名이 須陀洹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은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자’라고 불리지만 들어간 것이 없는데,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간 것이 없는 것을 수다원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2) 일래과一來果(욕계에 한번 왕래하는 과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斯陀含이 能히 是念을 作하되 我가 斯陀含果를 得암이라 하는야 마는야 須菩提言하되 업슴이다 세존이시여 何以故오 斯陀含이 일홈을 一往來라 하되 實노 往來함이 無할새 是名이 斯陀含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이 ‘나는 사다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은 ‘한번 왕래할 자’라고 불리지만 실로 한번 왕래함이 없는 것을 사다함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3) 불래과不來果(욕계에는 다시 오지 않는 과위)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阿那含이 能히 是念을 作하되 我가 阿那含果를 得하엿다 하는야 마는야 須菩提가 言하되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阿那含이 名이 不來가 되나 實노 不來가 無하니 是故로 名이 阿那含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오지 않는 자’라 불리지만 실로 오지 않음이 없는 것을 아나함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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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설 모든 유위행은 일체가 다 공이다.46) 수다원·사다함·아나함 등 소승의 세 계위는 이미 번뇌에서 벗어났지만 왕래하면서 적정寂靜을 추구하므로 아직은 친親·소疎의 분별이 남아 있다. 그러나 분명하고 뚜렷한 사과四果에는 원래 과果조차 없으므로 허망한 육신이 그대로 법신이다.【함허설의】 육진의 경계에서는 모두가 벗어났지만 열반성涅槃城에 들어가서 보자면 아직도 친·소의 분별이 남아 있다.



(4) 무학과無學果(모든 수행을 완성한 과위)
① 터득한 경지를 가지고 질문하다(擧所得以問)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阿羅漢이 能히 是念을 作하되 我가 阿羅漢道를 得하얏다 하는야 마는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② 취함이 없음을 설명함으로써 답변하다(明無取以答)


須菩提言하사되 업슴니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實노 法이 잇심이 無함이 名이 阿羅漢이라 하나니다 世尊이시여 만일 阿羅漢이 是念을 作하되 我가 阿羅漢道를 得하엿다 하면 곳 我人衆生壽者를 낫툼이니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제로 아라한이라 할 만한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아·인·중생·수자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③ 이미 깨친 것을 인용하여 믿게끔 하다(印已證令信)
ㄱ. 부처님께서 이전에 인가했음을 설명하다(明佛先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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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이시여 佛께셔 我를 無諍三昧를 得한 人中에 最히 第一이 됨이라 하시니 是第一欲을 離한 阿羅漢이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를 다툼이 없는 삼매(無諍三昧)47) 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고 욕망을 벗어난 사람 가운데 제일가는 아라한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야보설 파정把定하면 곧 구름이 골 입구에 걸쳐 있지만 방하放下48) 하면 곧 달이 찬 연못을 꿰뚫는다. 말(馬)이라고 불러 준다고 한들 어찌 말이 될 것이며, 소라고 불러 준다고 해서 반드시 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를 모두 내려놓고 중도中道마저 일시에 그만두어야 한다. 여섯 감각기관(六門)에서는 먼 허공으로 매를 날려 보내고 하늘과 땅을 홀로 걸어가니 그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ㄴ. 수보리는 이미 자신에게 무쟁삼매에 집착이 없음을 드러내다(彰已不取)


世尊이시여.49) 我가 是念을 作하되 我가 이 欲을 離한 阿羅漢이라 아니하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제가 욕망을 벗어난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5) 부처님의 뜻을 되새겨 해석하다(却釋佛意)


世尊이시여 我가 萬一是念을 作하되 我가 阿羅漢道를 得하엿다 하면 世尊이 곳 須菩提가 이 阿蘭那行을 樂한 者라고 說하지 아니하시련마는 須菩提가 實노 行한 바 無할새 須菩提를 名하되 이 阿蘭那行을 樂하다 하시나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는 적정행(아란나행)을 누리는 사람이다. 수보리는 실로 적정행을 한 것이 없으므로 수보리야말로 적정행을 누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은 가히 설할 것이 없고 부처는 가히 깨칠 것이 없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옛적에 우리를 위하여 사성제법을 설하셨는데 그것은 법이 아니었던가. 우리들이 사성제법을 닦아서 오늘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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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를 얻었는데 이것은 과果가 아닌가. 우리들이 그것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은 그 머묾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세존께서 오늘날 일체가 모두 그렇지 않다(一切皆非)고 말씀하신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에 세존께서 소과小果를 역逆으로 들어 역逆으로 질문함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알았다고 말한다면 수행하기 이전처럼 도로 옳지 못하다. 【함허설의】 무쟁이라는 실제(實)가 있고 무쟁이라는 명칭(名)이 있으면 이전처럼 도로 옳지 못하다.50) 조개 속에는 명주明珠가 숨어 있고 돌멩이 속에는 벽옥碧玉이 감추어져 있다. 사향이 있으면 자연히 향기가 풍기는데 어찌 바람을 쐬어야 하겠는가. 살림살이를 보면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응용하면 온갖 곳에 다 갖추어져 있다.【함허설의】 명주와 벽옥이 숨어 있어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대지혜가 어리석은 것처럼 아둔해 보이지만 깨침이 자기에게 있으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어찌 구차하게 남에게 애써서 알릴 필요가 있겠는가.



제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1) 석가모니께서 연등불로부터 깨침을 얻고 설했다는 의심을 단제해 주다(斷釋燃燈取說疑)


佛이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於意에 云何오 如來昔에 燃燈佛所에 在하사 於法에 得한 바 有한냐 만냐 不也니다51)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燃燈佛所에 在하사 於法에 實노 得한 바 無하나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옛적에 연등불 처소에서 법을 얻은 것이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불 처소에서 실제로 법을 얻은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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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내가 질문한 것처럼 불과佛果가 없다면 여래께서는 어찌 연등불의 수기를 받아 오늘날 성불하셨는가. 이에 부처님께서 깨침을 얻은 것이 없다는 것으로써 답변하셨다.

야보설 옛날은 그저 옛날일 뿐이고 지금은 그저 지금일 뿐이다.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켰다. 동·서·남·북에서 이와 같은 모습은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심장과 담이 하늘처럼 크니 무한한 마구니들의 붉은 깃발을 쓰러뜨렸다.52)



(2) 상에 집착하여 장엄함을 들어서 묻다(擧取相莊嚴問)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菩薩이 佛土를 莊嚴否53) 아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佛土를 莊嚴하는 者는 곳 莊嚴이 아니라 是名이 莊嚴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입니다.


야보설 어머니의 속옷이고 청주에서 만든 장삼이다.54) 번뇌의 때를 떨어 버리니(抖擻) 서리보다 하얗다. 이에 갈대꽃과 눈에 비친 달빛이 하얀 광채를 다툰다. 다행히도 깊은 연못에 날갯짓하는 학이 있으니 다시 홍방울새(朱頂) 찾아와도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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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정한 마음에 의한 장엄을 권장하다(依淨心莊嚴勸)


是故로 須菩提야 諸菩薩摩訶薩이 是와 如히 淸淨心을 生할지니 맛당히 色에 住하야 心을 生치 말며 聲香味觸法에 住하야 心을 生치 말지니라

이런 까닭에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반드시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결코 색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하고, 성·향·미·촉·법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집착이 없고 불과를 얻은 것이 없다면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처님께서는 어떤 뜻에서 저희들에게 보살행을 하여 불국토를 장엄하라고 가르치셨는가. 이에 세존께서는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는 말씀으로써 답변하셨다.

야보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색을 보아도 색에 구애받지 않고 소리를 들어도 소리가 없다. 색과 소리에 구애받지 않는 경지이어야 친히 불국토(法王城)에 도달한다.


應無住한 바 無히 其心을 生할지어다

마땅히 머묾이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4) 문답을 통해서 의심을 단절하다(問答斷疑)


須菩提야 譬컨대 有人이 身이 須彌山王만 하면 於意에 云何오 是身이 大함이 되는야 마는야 須菩提言하되 甚히 大함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佛께셔 身을 說하심이 아니라 是名이 大身이니다

수보리여, 비유해서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왕55) 만큼 크다고 하자.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몸이 크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몸이 아닌 것을 말씀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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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이 큰 몸이기 때문입니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불국토를 장엄하지 않는다면 천장대화신불千丈大化身佛(화신으로 크게 나타낸 몸)은 어느 곳에 머무는 것인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것은 몸이 아니라는 말씀으로써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이것은 상적광토常寂光土를 보여 주신 것이다.

야보설 설령 불국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수미산을 가지고 허깨비 몸을 삼으려고 하면 그것은 가령 그대의 심장과 담이 커서 목전에서 천 가지로 언급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바로 이와 같은 입장으로부터 들어가야 한다.56)



제11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1) 수많은 항하를 가지고 모래 수효를 변별하다(約多河以辨沙)


須菩提야 恒河中에 所有沙數와 如하여 是와 如한 等이 恒河를 於意에 云何오 是諸恒河57) 가 寧爲多不아 須菩提가 言하되 甚多하니다 世尊이시여 但諸恒河도 尙多無數온 何況其沙리가

수보리여, 항하의 모래 수만큼 항하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모든 항하의 모래 수는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무릇 항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하물며 그들의 모래 수이겠습니까.


야보설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58) 이다.【함허설의】 삼라·만상·성·상·공·유·명·암·살·활·범·성·인·과를 모두 한마디에 타파해 버렸다. 하나·둘·셋·넷으로 항하의 모래 수효를 헤아리니 모래 수효만큼의 항하의 수효도 또한 무수히 많다. 그것을 일법도 남김없이 목전에서 다 헤아려야만 바야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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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열반이 성취된다.



(2) 무량한 모래 수효에 의거하여 복덕을 드러내다(約多沙以彰福)


須菩提야 我今에 實言으로 告汝하노니 萬一善男子善女人이 七寶로써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하야)59) 布施를 用하면 福을 得함이 多否60) 아 須菩提가 言하되 甚多하니다 世尊이시여

수보리여, 나는 지금 진실한 말로 그대에게 말한다.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그들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서 보시한다면 그 복덕이 많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3) 많은 복덕에 의거하여 뛰어남을 드러내다(約多福以顯勝處)


佛께셔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萬一善男子善女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四句偈等을 受持하야 他人을 爲하야 說하면 而此福德이 前福德보담 勝하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전의 사구게만이라도 받고 지니며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준다면 이 복덕이 저 복덕보다 더 뛰어나다.


야보설 진짜 놋쇠일지라도 금으로 바꿀 수는 없다. 바다에 들어가서 모래를 세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것으로 보잘것없이 번뇌 속에 치달리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어찌 가보를 꺼내는 것과 같고, 고목에 꽃이 피는 특별한 봄과 같겠는가.61)



제12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1) 공경하는 장소를 설명하다(明處可敬)


復次須菩提야 是經을 說함을 隨하야 乃至四句偈等히 當知此處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皆應供養하되 佛塔廟와 如히 하니라

또한 수보리여, 이 경전의 사구게만이라도 설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모든 세상의 천신·인간·아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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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공양하는 여래(佛)의 탑묘임을 알아야 한다.



(2) 사람이 얻는 이익을 드러내다(顯人獲益)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이따녀 須菩提야 當知하라 是人은 最上第一希有한 法을 成就하리라 萬一經典이 在한바 處는 곳 佛과 尊重한 弟子가 有함 가트니라(弟子는 菩薩聖人等이라)

하물며 이 경전 전체를 받고 지니며 읽고 외우는 사람이겠는가. 수보리여, 이 사람은 최상이고 제일가며 희유한 법을 성취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곧 여래(佛)와 존경받는 제자들이 계시는 곳이다.(제자는 보살 및 성인 등을 가리킨다.)


야보설 마땅히 그와 똑같다. 바다처럼 깊고 산처럼 높으며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굴속에서 나온 금털사자 새끼가 크게 포효하니 온갖 여우들이 의심을 한다.62) 잘 생각해 보면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고서 천마외도들을 곧바로 굴복시켰다.



제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1) 뜻에 의거하여 제명이 뛰어남을 변별하다(約義辨名勝)


爾時에 須菩提가 佛의게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當何名이 此經이며 我等이 云何奉持리니익고 佛께셔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是經名이 金剛般若波羅蜜이니 (以是名字로)63) 汝當奉持하라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고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의 제명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다. 이 제명으로 너희들은 받들어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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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설 오늘은 작은 것을 내놓고 큰 것을 얻었다. 불에 태울 수도 없고 물에 빠뜨릴 수도 없고 바람에 날려 보낼 수도 없고 칼로 잘라 버릴 수도 없다. 부드럽기는 도라비단과 같고 딱딱하기로는 철벽과 같다.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에서는 옛날에도 알 수가 없었고 오늘날에도 알 수가 없다. 이咦!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佛게셔 般若波羅蜜을 說하심이 곳 般若波羅蜜이 아니라 是名이 般若波羅蜜이니라64)

수보리여, 왜냐하면 여래(佛)65) 가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신 것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이다.



(2) 부처님께서 달리 설법하지 않음이 뛰어나다(佛無異說勝)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게셔 說法한 바가 有한야 有치 아니한야 須菩提가 佛의게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說하신바 法이 無하나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설법한 것이 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법하신 것이 없습니다.


야보설 조용히 하라. 조용히 하라. 풀 속에 들어가서 중생을 제도하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예리한 칼날로 풀을 베고 난 다음에 손으로 어루만져 준다. 비록 출입에 자취가 없지만 그 문채가 온전히 드러난 것을 보았는가. 【함허설의】 풀은 언설의 교화를 가리킨다. 부처님께서는 언설을 좋아하지도 않고 언설을 싫어하지도 않으니 어디에서 부처님을 친견해야 하겠는가.



(3) 보시한 복덕은 하열하고 미진은 뛰어나다(施福劣塵勝)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三千大千世界에 有한바 微塵이 是가 多함이 되는야 마는야 須菩提言하되 甚히 多함이니다 世尊이시여 須菩提야 諸微塵을 如來께셔 微塵을 說하심이 아니라 是名이 微塵이며 如來世界를 說하심이 世界가 아니라 是名이 世界이니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세계를 이루고 있는 미진이 많다고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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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모든 미진에 대하여 여래는 미진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미진이며 세계에 대하여 여래는 세계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신이 상이 아니라면 단멸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이에 세존께서는 진진찰찰이 모두 법신임을 보여서 답변하셨다. 만약 미진세계를 가지고 관찰해 보면 눈에 가득히 진경塵境이 되지만, 만약 미진세계가 아닌 것을 가지고 관찰해 보면 모든 깨침이 허적하여 영지불매하다. 그러므로 산·하·대지가 그대로 부처님 몸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어찌 단멸이라 하겠는가.

야보설 남쪽으로는 섬부주 세계가 있고 북쪽으로는 울단월 세계가 있다.【함허설의】 직접 미진세계를 취하여 평상의 부동경지를 설명하였다. 머리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리는 땅을 밟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잔다. 여기가 그대로 극락이고 극락이 그대로 여기이다. 설날이 도래하면 나이를 먹으니 동·서·남·북도 그저 마찬가지이다.



(4) 깨침을 얻고 상을 여의면 뛰어나다(感果離相勝)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可히 三十二相으로써 如來를 見否66) 아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可히 三十二相으로써 如來를 得見치 못하나니다 何以故오 如來께셔 三十二相을 說하심이 卽是非相이라 是名이 三十二相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십이상을 통해서 여래를 볼 수가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을 통해서는 여래를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삼십이상을 말씀하신 것은 곧 그 상이 아니라 이름이 삼십이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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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신은 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만약 비상非相이 부처가 될 것인데 지금 삼십이상으로 나타나신 부처님께서도 어찌 상이 아니겠는가. 이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유상有相을 여래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의 삼십이상이 본래 법신상은 아니다. 그러나 법신상은 삼십이상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대는 법신과 화신이 곧 일체一體임을 모르는구나.

야보설 노파의 속곳을 빌려서 노파의 나이에 절을 한다. 그대한테 있으면 나한테도 있고 그대한테도 없으면 나한테도 없다. 있고 없고를 다 벗어나면 서로 마주해서도 조용히 웃을 뿐이다(觜盧都).67)



(5) 비교를 통해서 뛰어남을 보여 주다(較量勝)


須菩提야 萬一善男子善女人이 恒河沙等身命으로써 布施하야도 만일 어떠한 사람이 於此經中에 乃至四句偈等을 受持하야 他人을 爲하야 說하면 其福이 甚多하니라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은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신명으로써 보시한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은 이 경전의 사구게만이라도 받고 지니며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 그러면 이 복덕이 저 복덕보다 대단히 많다.


야보설 하나의 주사위에 두 가지 문채가 있다.【함허설의】 겸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겸하여 있다. 손에 쥔 망치를 칼과 바꾸지는 않는다.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모두에게 이익이다. 그러나 굳이 안배하지 않아도 본래 현성되어 있으므로 개중에는 반드시 영리한 놈이 포함되어 있다. 늴리리 늴리리야, 즐겁구나. 산에는 꽃이 피고 들판에는 새가 지저귄다. 이런 시절에 깨치면 어디에서든지 소원을 성취한다.



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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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직껏 들어 보지 못했던 심오한 대승법문의 뛰어남을 찬탄하다(歎未聞深法勝)


爾時에 須菩提가 是經說함을 聞하시고 義趣를 深解하시와 涕淚悲泣하야 佛의게 白言하사되 希有하니다 世尊이시여 佛게셔 是와 如한 甚深經典을 說하시니 我가 昔으로조차 옴으로 得한바 慧眼으로도 曾히 是와 如한 經은 得聞치 못하나니다(此經이 大乘에 入하는 初門이라 須菩提가 二十年間 聲聞中에 在함으로 不聞이니라)

그때 수보리가 이 경전 설하심을 듣고서 깊이 뜻을 이해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적부터 지금까지 얻은 혜안68) 으로는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대단히 깊은 경전 설하심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이 경전이 대승에 들어가는 초문初門이다. 수보리는 20년 동안 성문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였다.)



(2) 온갖 덕을 갖춘 뛰어남을 바로 설명하다(正明具德勝)


世尊이시여 若復有人이 是經을 得聞하고 信心이 淸淨하면 곳 實相을 生하리니 當知是人은 第一希有功德을 成就하리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음이 청정해지면 실상이 발생할 것인데 그 사람은 반드시 가장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줄 알겠습니다.



(3) 부처님의 자취를 말하다(佛跡)


世尊이시여 是實相者는 卽是非相이니 是故로 如來께서 名을 實相이라 說하시나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이란 곧 실상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이름을 실상이라 말씀하십니다.


야보설 산·하·대지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멀리 바라보니 산에는 색이 있고 가까이서 들으니 물에는 소리가 없다. 봄날은 지나갔지만 꽃은 피어 있고 사람이 다가왔지만 새가 놀라지 않는다. 일체가 모두 깨침을 드러내니 일체의 본체가 원래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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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릇 이처럼 명명백백한 것을 어찌 모른다고 말하겠는가.



(4) 총체적으로 믿음과 이해(信解)를 드러내다(摠標信解)


世尊이시여 我今에 是와 如한 經典을 得聞하고 信解受持하기는 足히 難치 아니하거니와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경전을 믿고 이해하며 받고 지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야보설 만약 답변의 뒷말이 없었더라면 질문의 앞말도 원만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려운 것을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본래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평지에서 푸른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 쉬운 것을 쉽다고 말하는 것은 본래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옷을 입은 채로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것과 같다. 배가 나아가는 것은 모두 삿대를 잡은 사람에 달려 있듯이 파도가 땅에서 일어난다고 그 누가 말하겠는가.


若當來世後五百歲에 其衆生이 有하야 是經을 得聞하고 信解受持하면 是人은 곳 第一希有함이 됨이니다

그러나 만약 미래세 후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믿고 이해하며 받고 지닌다면 그 사람은 곧 제일 희유할 것입니다.


야보설 걷고 머물고 앉고 누우며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 이외에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얼음은 뜨겁지 않고 불은 차갑지 않으며, 흙은 축축하지 않고 물은 메마르지 않으며, 금강은 발로 땅을 밟고 깃대는 머리로 하늘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이 이 도리를 믿고 이해한다면 북두성을 남쪽에서 찾을 수 있다.



(5) 개별적으로 삼공(아공·법공·구공)을 드러내다(別顯三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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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오 此人은 我相이 無하며 人相이 無하며 衆生相이 無하며 壽者相이 無함이니 所以者何오 我相이 곳 이 相이 아니며 人相과 衆生相과 壽者相이 卽相이 아니니 何以故오 이 一切相69) 을 離하야야 卽名諸佛이니라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상은 곧 아상이 아니고 인상·중생상·수자상들도 곧 그들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상을 벗어난 사람을 제불이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야보설 마음으로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창피한 빛이 없다. 묵은 대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새로 핀 꽃은 묵은 가지에서 자란다. 비는 나그네의 길을 재촉하고 바람은 돛단배를 밀어서 돌려보낸다. 대나무가 아무리 촘촘히 나 있어도 흘러가는 물을 방해하지 못하고 산봉우리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떠가는 흰 구름을 막지 못한다.



(6) 여래께서 긍정하다(如來印定)


佛이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如是如是하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래, 바로 그렇다.



(7) 경을 듣고도 부동하는 자는 대단히 희유하다(聞時不動希有勝)


若復有人이 此經70) 을 得聞하고 不驚不怖不畏하면 當知하라 是人은 甚히 希有함이 됨이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인 줄을 알아야 한다.


야보설 이것은 무릇 자기 집안일이기 때문이다.71) 한 터럭이 큰 바닷물을 모두 들이마시고 한 겨자씨 속에 수미산을 집어넣고, 푸른 하늘에 보름 달빛이 가득하니 맑은 광명이 온 우주에 빛나며, 고향땅에 도달하니 참으로 안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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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동·서·남·북이 따로 없다.



(8) 인욕바라밀의 완성이 제일 뛰어나다(大忍淸淨第一勝)


何以故오 須菩提야 如來께셔 第一波羅蜜을 說하심이 第一波羅蜜이 아니라 是名이 第一波羅蜜이니다

수보리여, 왜냐하면 여래가 말한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이름이 제일바라밀이기 때문이다.


야보설 팔자 모양으로 열어 두고72) 두 손으로 분부하였다. 명칭이 제일바라밀이여, 천 가지 차이와 만 가지 차별이 이로부터 나타난다. 도깨비 얼굴과 귀신의 머리를 마주쳐도 그때 모른다고 말하지 말라.



(9) 인욕바라밀의 본체를 설명하다(明忍體)


須菩提야 忍辱波羅蜜은 如來께셔 忍辱波羅蜜을 說하심이 아니라

수보리여, 인욕바라밀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10) 고통과 인욕을 바로 설명하다(正明苦忍)


何以故오 須菩提야 我가 昔에 歌利王의 身體를 割截함이 되엿스나 我가 爾時에 我相이 無하며 人相이 無하며 衆生相이 無하며 壽者相이 無하니라 何以故오 我가 於往昔節節支解時에 만일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 有하얏쓸넌들 마땅히 瞋恨을 生하엿스리라 須菩提야 또 過去 져 五百世에 忍辱仙人作함을 念하니 於爾所世에 我相이 無하며 人相이 無하며 衆生相이 無하며 壽者相이 無하니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신체가 베이고 단절되었을 때 나에게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옛적에 신체가 베이고 단절되었을 때 나에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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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수보리여, 또한 생각하면 과거 오백세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는데 그때 아상과 인상이 없었고 중생상과 수자상이 없었다.


야보설 눈앞에 제법이 없으니 버들이 푸르고 꽃이 붉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고 귓가에 들리는 것이 없으니 앵무새 노래와 제비의 지저귐을 그대로 놔둔다. 원래 사대에는 아我가 없고 오온은 모두 공하다. 확연히 텅 비어 집착이 없는 도리는 하늘과 땅과 더불어 영겁토록 똑같다. 수미산은 우뚝하여 영겁토록 여여하므로 땅을 휩쓸어 가는 회오리바람 뒤집을 자 누구인가.


是故로 須菩提야 菩薩이 마땅히 一切相을 離하야 阿耨多三藐三菩提心을 發하니라

수보리여, 이런 까닭에 보살은 모든 상을 벗어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야보설 이것은 그 묘용에 계합된 것인가 그 묘용을 벗어난 것인가. 【함허설의】 상에 계합된 묘용인가 상을 벗어난 묘용인가. 묘용은 마음으로 얻고 묘용은 손으로 활용한다. 눈과 달과 바람과 꽃이여.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끝이 없다. 아침마다 닭은 오경을 향해 우는데 봄이 도래하니 곳곳마다 산꽃이 아름답다.



(11) 무주로써 대치해 주다(無住對治)


마땅히 色에 住하야 心을 生하지 말며 聲香味觸法에 住하여 心을 生하지 말지니 마땅히 無所住心을 生할지어다(譯者曰 沖虛妙稡하며 廣大靈明하야 離諸幻妄을 名之爲心이니 應生此心이어다) (咄) 若心이 住함이 有하면 곳 住가 아니니라 (無住心體가 靈知不昧하야 住와 不住에 相이 無하니 是는 無住之正住이라) (咄) 是故로 佛게서 菩薩心이 마땅히 色에 住하야 布施하지 아니함을 說하시나니라 須菩提야 菩薩이 一切衆生을 利益케 하기를 爲하야 마땅히 如是히 布施하니라

반드시 형색에 집착이 없이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고, 소리·향기·맛·촉·법에 머묾이 없이 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 반드시 머묾이 없이 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함허설의】 텅 비어 있고 매우 아름다우며 광대하고 영명靈明하며 모든 미혹과 허망(幻妄)을 여읜 것을 마음(心)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돌咄!
만약 마음에 머묾이 있으면 곧 올바른 머묾이 아니다.【용성주해】 무주심체無住心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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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불매靈知不昧하여 주住와 부주不住에 상相이 없는데 이것이 곧 무주無住의 정주正住이다. 돌咄!
그러므로 여래가 보살은 형색에 머묾이 없는 마음으로 보시해야 한다고 설하였다. 수보리여,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한다.


야보설 부처가 있는 곳에는 머물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은 급히 지나가라. 30년이 지난 이후에 가서 말할 수 없었다고는 말하지 말라. 아침에 남악산에서 놀다가 저녁에는 천태산으로 간다. 뒤따를 때는 붙잡지 못했는데 홀연히 저절로 다가온다. 홀로 걷고 홀로 앉으니 전혀 걸림이 없다. 마음이 편안한(寬懷) 경지에서 다시 마음을 편안히 가져야 한다.


如來께셔 一切諸相이 卽是非相을 說하시며 또 一切衆生이 卽非衆生을 說하심이니라

여래는 일체의 제상을 곧 상이 아니라고 설하였고, 또 일체의 중생을 곧 중생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는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밖으로 상에 집착하는 보시는 잊을 수가 있지만 몸과 목숨은 버리기 어려운 법인데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이에 부처님께서 인욕바라밀 수행을 가지고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특별히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일러 주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중생은 곧 중생이 아니고 제상은 곧 제상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봄이 완연하니 노란 꾀꼬리가 버드나무에서 지저귀고 산과 구름과 바다와 달의 마음을 모두 말해 주었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공연히 걱정만 한다. 걱정하지 말라. 만 리에 구름 한 점 없으니 온통 푸른 하늘이로다.【용성주해】 상相과 비상非相을 모두 갖추고 있는 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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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드러나 있다.



(12) 의심을 단제하다(斷疑)


須菩提야 如來는 是眞語者며 實語者며 如語者며 不誑語者며 不異語者시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자이고 실다운 말을 하는 자이며 여여한 말을 하는 자이고 미친 소리를 하지 않는 자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다.


야보설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저버린 자는 많다. 오백이 둘이 있어야 일관一貫이다.73) 아버지는 원래 대장부이다. 분명히 그 사람을 대면하여 말해 주었는데 그것은 좋은 의도였을 뿐 좋은 답변이 없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참된 말을 하는 자이고 실다운 말을 하는 자여. 하하하! 예예예! 【용성주해】 참지 못할 때는 하하하 웃고 긍정할 때는 예예예 웃는다.



(13) 집착을 벗어나다(離執)


須菩提야 如來게셔 得한바 法은 此法이 無實無虛하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법에는 실다운 것도 없고 헛된 것도 없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일체의 제상이 다 공하면 증득한 지혜도 또한 공하여 본체가 없다. 그러면 있지도 않은 법이 어찌 인因을 지어서 과果를 얻겠는가. 이에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릇 여래의 말을 잘 믿어야 한다. 여래가 얻은 법은 실實도 아니고 허虛도 아니다. 그러므로 집착하는 마음으로 추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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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야 若菩薩이 心이 法에 住하야 布施를 行하면 人이 暗에 入하는 것과 如하야 곳 見한 바 無하려니와 若菩薩이 心을 法에 住하야 布施하지 아니하면 人이 目이 有함과 如하야 日光이 明照함애 種種色을 見하나니라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법에 머무는 마음으로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것과 같고, 보살이 법에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하면 마치 눈 있는 사람이 햇빛이 빛나면 갖가지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과 같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는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상에 집착하여 보시하지 말라고 하시니 그것이 어찌 저 반야에 합치되겠는가. 이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집착하는 마음은 무명에 속한 마음이므로 심心과 경境에 장애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둠속에 들어간 것과 같다. 그러나 집착이 없는 마음은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인人과 아我를 모두 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태양이 하늘에 떠올라 삼라만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과 같다.


須菩提야 當來之世에 만일 善男子善女人이 有하야 此經을 受持讀誦하면 곳 如來께서 佛智慧로써 是人을 悉知하며 是人을 悉見하나니 無量無邊功德을 成就하리라

수보리여, 만약 당래세에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고 지니며 읽고 외운다면 곧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 그 사람이 모두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할 것을 다 알고 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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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하
제15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1) 목숨을 바친 보시의 복덕을 말하다(捨命福)


須菩提야 萬一에 善男子善女人이 잇셔 初日分에 恒河沙等身命으로써 布施하고 中日分에 다시 恒河沙等身命으로써 布施하고 後日分에 또한 恒河沙等身命으로써 布施하야 是와 如히 無量百千萬億劫을 身으로써 布施하야도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아침나절에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몸으로 보시하고 점심나절에 다시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몸으로 보시하며 저녁나절에 또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무량 백천만억 겁에 몸으로 보시한다고 하자.



(2) 경전을 믿는 보시의 복덕을 말하다(信經福)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이 經典을 聞하고 信心으로 逆하지 아니하면 其福이 彼보다 勝하리니 어찌 하물며 書寫하며 受持하며 讀誦하야 人을 爲하야 解說함이따녀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신심으로 거스르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복덕이 저 복덕보다 뛰어나다. 하물며 이 경전을 기록하고 베껴 쓰고 받고 지니며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해 주는 것이겠는가.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비록 머묾이 없는 마음이 반야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어째서 불심에 계합된다는 것인가.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야에는 문자가 없으므로 없다는 그 문자가 곧 반야이다. 그렇지만 여래가 이 경전을 설하는 것은 전체가 반야이다. 무릇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믿고 받는다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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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에 계합한다. 그 사람의 공덕은 몸과 목숨을 바쳐서 보시하는 공덕보다 뛰어나다.

야보설 인간과 천상에서 받는 복덕의 과보는 곧 없지는 않지만 그것으로는 불법을 꿈에도 보지 못한다. 초일분·중일분·후일분에 바치는 마음이 똑같아서 공덕이 끝이 없어 헤아릴 수가 없다. 신심信心에 대하여 마음을 내지 않고서야 어찌 한 주먹으로 태허공을 때려 치는 것과 같겠는가.



(3) 대승 이외의 다른 가르침으로는 헤아리지 못한다(餘乘不測)


須菩提야 要로써 言하건대 是經이 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이 有하니라

수보리여, 요약해서 말하면 이 경전에는 사량할 수가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끝없는 공덕이 있다.



(4) 대승심을 일으킨 사람에 의거하여 설하다(依大心說)


如來께셔 大乘心發한 者를 爲하야 說하시며 最上乘心發한 者를 爲하야 說하시니라

여래는 대승심을 발생한 자를 위하여 설하고 최상승심을 발생한 자를 위하여 설한다.



(5) 공덕을 갖춘 사람이 전승한다(具德能傳)


만일 어떠한 사람이 能히 受持讀誦하며 人을 爲하야 廣說하면 如來是人을 悉知하며 是人을 悉見하나니 皆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을 成就하리니 如是人等은 곳 如來의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荷擔하리라

만약 어떤 사람이 받고 지니며 읽고 외워서 널리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해 주면 여래는 그 사람이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없는 공덕을 성취할 줄을 다 알고 다 본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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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설 태산과 화산을 둘로 나눈 손은 모름지기 거령신巨靈神74) 이다.【함허설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감당하는 것은 모름지기 이와 같은 사람이다. 산을 쌓고 봉우리를 겹쳐도 그 낱낱은 다 미진에 불과하다.【함허설의】 설사 시방의 제불이 동시에 나타나서 갖가지 신통 변화를 드러내 보여도 이 사람 앞에서는 낱낱이 티끌뿐이로다. 눈 속에는 푸른 동자가 있고 가슴 속에는 우레와 같은 기운이 있다. 변방에 나가면 변방의 사막이 평정되고 나라에 들어오면 영재가 모여든다. 한 조각 작은 마음이 대해와 같으니, 파도가 몇 차례나 밀려오고 물러감을 보았는가.【함허설의】 눈빛으로 삼천대천세계를 타파하니 눈속의 눈동자는 푸르고 차갑다. 가슴속이 시원하여 세간을 다 잊으니, 그 속에 우레가 있어 기개가 새롭다. 밖으로는 온갖 반연을 마주해도 가는 곳마다 고요하고, 안으로는 마음이 고요하여 무엇을 마주해도 모자람이 없다. 마음(肚裏)은 바다처럼 넓어서 유有·무無의 온갖 차별에도 흔들림이 없다.



(6) 소승법을 누리는 자는 감당하지 못한다(樂小不堪)


何以故오 須菩提야 만일 小法을 樂한 者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에 着하야 곳 저 이 經에 能히 聽受讀誦하며 人을 爲하야 解說하지 못하리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만약 소승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므로 이 경전을 듣고 받으며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보설 어진 사람은 경전을 보고 자비(仁)다 말하고 지혜로운 자는 경전을 보고 지혜(智)다 말한다. 부처님(英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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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을 배우지 않고 독서도 안 하면서 이리저리 수고롭게 먼 길을 달리기만 했다. 날 때부터 갖고 나온 반야(寶藏)를 마음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무지無知만 키워 자신이 굶어 죽게 되었는데, 어찌 남의 일만 가지고 해괴하다 하겠는가.【함허설의】 자비(仁)와 지혜(智)를 익히지 못한 까닭에 미혹한 길에서 오랫동안 기어 다닌다.



(7) 경전이 있는 곳이 그대로 불탑이다(所在如塔)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만일 此經이 有하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의 供養한 바가 되리니 當知하라 此處는 곳 이 塔이 된지라 皆應恭敬하며 禮를 作하야 圍繞하고 諸香花75) 로써 其處에 散하나니라

또 수보리여,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일체 세간의 천상·인간·아수라들에게 반드시 공양을 받을 것이다. 그곳은 곧 탑묘가 되어 마땅히 모두가 공경하고 예배를 드리며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을 뿌리는 줄을 반드시 알아라.


야보설 진주의 무이고 운문의 호떡이다.76) 【함허설의】 이 경전을 공양하고자 하면 운문의 호떡이고 진주의 무이다. 그대와 더불어 같이 걷고 또 같이 가며 일어서고 앉으며 오랫동안 함께해 왔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며 항상 대면하였으므로 굳이 머리를 돌려 생각할 필요가 없다.77)



제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1) 죄를 돌려서 부처가 되다(轉罪爲佛)


復次須菩提야 善男子善女人이 此經을 受持하며 讀誦하되 만일 人의게 輕賤함이 되면 是人이 先世罪業으로 마땅히 惡道에 墮할 것이로되 今에 世人이 輕賤니 여김을 입는 故로 先世罪業이 곳 消滅되고 마땅히 阿耨多羅藐三菩提를 得하리라

수보리여,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고 지니며 읽고 외웠는데도 남한테 천대와 멸시를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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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전생에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져야 했지만 금생에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는 것으로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고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야보설 한 가지 수행을 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함허설의】 일대사를 터득하지 못하면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하지 못한다. 찬탄할 수도 없고 나무랄 수도 없다. 만약 한 가지를 터득하면 모든 것을 마친다. 태허와 같이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그대한테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제명을 말해 준다.



(2) 제불께 공양하면서 모든 복덕을 쌓다(多佛供中全具福)


須菩提야 我가 過去無量阿僧祗劫을 念하니 於燃燈佛前에 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을 値하야 悉皆供養承事하야 空過者가 無하니라

수보리여, 기억해 보면 연등불을 만나기 전 과거 무량한 아승지겁 동안에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제불을 만나서 모두 공양하고 섬기며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3) 경전을 받고 지녀야 복덕이 많다(持經福多)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於後末世에 能히 此經을 受持讀誦하면 得한바 功德이 져 我의 供養한바 諸佛功德이 百分의 一도 及하지 못하며 千萬億分과 乃至算數로 譬喩하야도 能히 及하지 못할 바이니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후말세에 이 경전을 받고 지니며 읽고 외워서 얻은 공덕과 비교하면 내가 제불께 공양한 공덕은 그 백분의 일도 안 되고, 천·만·억분의 일도 안 되며, 나아가서 산수로 비유해도 능히 미치지 못한다.


야보설 공덕은 결코 헛되지 않다. 천·만·억의 제불께 공양한 복덕은 끝이 없다. 그렇지만 어찌 늘상 경전을 읽는 것과 같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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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까만 글자 써 놓았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눈을 뜨고 눈앞에서 살펴보라. 바람은 고요하고 물이 잔잔하니 집 나간 사람이 고깃배를 탄다.【용성주해】 집 나간 사람이 고깃배를 탄다는 것은 빈 배를 물결에 띄워 놓은 것처럼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면서 마음대로 오고가는 모습이다. 물고기를 잡을 배를 마련해 두면 언젠가 물고기 잡을 날이 오는 법이다.



(4) 소승인이 대승법을 들으면 의심한다(見聞則疑)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於後末世에 此經을 受持讀誦함이 有하면 得한바 功德을 我가 만일 具說하랴면 或有人이 聞하면 心則狂亂하야 狐疑하야 信치 아니하리라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후말세에 이 경전을 받고 지니며 읽고 외워서 얻는 공덕을 내가 자세하게 말한다면 혹 그것을 듣는 사람은 곧 마음이 미쳐 버리고 여우처럼 의심하여 믿지 못할 것이다.



(5) 총결이 참으로 심오하다(總結幽邃)


須菩提야 當知하라 是經78) 이 不可思議이며 果報도 亦不可思議이니라

수보리여, 이 경전의 뜻이 불가사의하고 그 과보도 또한 불가사의한 줄을 알아야 한다.



제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1) 질문하다(問)


爾時에 須菩提가 佛의게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善男子善女人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發하니는 일운 어떠케 뻑뻑이 住하며 일운 어떠케 其心을 降伏하리니익고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선남자·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안주하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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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정한 보살은 무아가 되어야 한다(若名菩薩必無我)


佛이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만일 善男子善女人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79) 을 發한 者는 마땅히 是와 如한 心을 生하되 我가 마땅히 一切衆生을 滅度하리라 할지니 一切衆生을 滅度하기를 已하야서는 一切80) 衆生도 滅度함이 無하나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선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반드시 일체중생을 멸도하리라. 일체중생을 멸도시켰지만 실제로는 어떤 중생도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


야보설 어떤 때는 달에 빠져서 창주를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만약 어떻게 안주하느냐고 물으면 중中에도 없고 유有에도 없으며 무無에도 없다고 말한다. 머리에는 잔풀도 나지 않고 발은 염부제도 밟지 않는다. 인허진隣虛塵81) 을 쪼갠 것처럼 섬세하고, 나비춤의 날개처럼 가볍다. 중생을 다 멸도하고 그 멸도조차 없는 줄 알면 그것이야말로 깨친 대장부이다.【함허설의】 진정한 안주처를 알고자 하는가. 중中에도 없고 유有에도 없으며 무無에도 없다. 초탈하여 의탁하는 곳이 없으므로 번뇌가 다하여 흔적도 없다. 청산에도 머물지 않는데 하물며 어찌 도시에 머물까 보냐. 중생을 교화하되 교화의 상이 없는 것을 깨친 대장부라 말한다.



(3) 아상이 있으면 진정한 보살이 아니다(若有我相非菩薩)


何以故오 (須菩提야)82) 만일 菩薩이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 有하면 곳 菩薩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만약 보살에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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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체와 객체가 없다(能所)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實노 法이 有하야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83) 을 發한 者 無하니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킬 만한 법은 없기 때문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곧 수보리가 의심을 일으켰는데 부처님께서 갖가지로 그것을 타파해 주시자 일체의 색상을 모두 여의고 진여·반야·실지에 계합하였다. 이상 금강경에서 앞의 반권半卷의 경문이 이 뜻에 들어 있다.
야보설 저 깨침(一)마저 없는데 어찌 설법이 있겠는가.【함허설의】 분별을 초월한 공功은 지극하여 없지 않지만 실제로 관찰해 보면 또 어찌 그 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홀로 앉아 있으니 홀가분하여(翛然) 방이 텅 비어서 동·서·남·북의 분별이 없다. 따뜻한 봄기운을 빌리지 않아도 복사꽃이 지천으로 붉은 것을 어이하랴. 【함허설의】 물외物外에 초탈하니 다시는 묶을 곳이 없는데 이 경지를 구경이라 말하지 말라. 본지풍광이 찬란하구나.



(5) 의심나는 것을 언급하다(擧疑處)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於燃燈佛所에 法이 有하야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함이냐만냐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터득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었느냐.



(6) 의심을 없애 주다(斷疑)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我가 佛의 說하신바 義를 解한 바는 佛이 於燃燈佛所에 法이 有하야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함이 업나니다 佛言하사되 如是如是하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터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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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그렇다.


야보설 만약 같은 침상에서 잠자지 않았다면 어찌 잠옷(紙被)이 터진 줄을 알았겠는가. 북을 치고 비파를 타는 두 사람이 만나 한집에 모였다네. 그대는 버들 언덕을 거닐고 나는 나루터 모래에서 잔다. 강에는 때늦게 성근 비가 내리는데 짙푸른 봉우리들은 노을을 머금었다.


須菩提야 實노 法이 有하야 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함이 無하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한 법은 없다.



(7) 거듭 해석하다(反覆釋)


須菩提야 만일 法이 有하야 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하엿쓸진대 燃燈佛이 곳 我의게 授記를 주사되 汝가 來世에 마땅이 佛을 作하면 號를 釋迦牟尼라 아니하시련마는 實노 法이 有하야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함이 無할새 是故로 燃燈佛이 我의게 授記를 주사 是言을 作하사되 汝가 져 來世에 마땅이 佛을 作하면 號를 釋迦牟尼이라 하리라

수보리여,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한 법이 있었다면 연등불은 나한테 그대는 내세에 석가모니라는 이름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한 법이 실제로 없었으므로 연등불은 나한테 그대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는 이름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수기하였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가히 얻을 법이 없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깨달은 반야도 법이 아니란 말인가. 세존께서도 연등불 처소에서 이 법을 얻음으로써 성불하셨으므로 보살이 아니란 말인가. 이에 부처님께서 소득이 없다는 것으로써 대답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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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설 범단范丹(후한 시대 청빈한 선비이다.)과 같이 가난하지만 항우와 같이 기개가 넘친다. 【함허설의】 가난하여 가진 것이 없지만 그 의기는 하늘을 찌른다. 위로는 기와 한 장 얹을 집도 없고 아래로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다. 해가 넘어가고 달이 떠올라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희噫!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이 如한 義이니라

왜냐하면 여래란 제법의 진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야보설 꼼짝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움직이면 삼십 대를 때려 주겠다. 위에는 하늘이고 아래는 땅이다.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이다. 목동이 소 치는 아이를 만나자 대중이 일제히 노래를 부른다. 이게 무슨 곡조인가. 영원한 기쁨의 노래이다.
(8) 부처님은 깨침을 얻은 까닭에 터득한 것이 없음을 설명하다(明佛卽菩提故無得)


若有人이 言하되 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하엿다 하는야 須菩提야 實노 法이 有하야 佛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함이 無하니라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하였다고 말한다 해도 여래에게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한 법이 실제로 없다.



(9) 집착을 버리고 의심을 없애다(遣執遮疑)


須菩提야 如來得한바 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實도 無하고 虛도 無하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터득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는 실다움도 없고 허망함도 없다.


야보설 부유하면 천 개의 입도 적다고 싫어하고 가난하면 한 몸도 많다고 한탄한다.【함허설의】 실實이지만 실다움이라 할 것이 없고 허虛이지만 비었다 할 것이 없다. 인생은 꿈과 같고 뜬구름과 같으며, 살림살이도 하나 없고 친척도 하나 없다. 오직 한 쌍의 깨달음(淸白眼)을 얻어 수없이 오가는 사람을 웃으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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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뜻을 해석하여 의심을 없애다(釋義斷疑)


是故로 如來說하사되 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을 모두 불법이라고 설한다.


야보설 밝게 드러난 온갖 풀잎마다 온갖 조사의 뜻이 어려 있다. 준순주를 빚을 줄 알고, 경각화를 피울 수 있으며,84) 거문고로 벽옥의 곡조를 타고, 화로에서 백주사白硃砂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다양한 기량을 어디서 배웠는가. 모름지기 그와 같은 풍류는 자기 집(本性)에서 흘러나온 줄을 믿어야 한다.


須菩提야 一切法을 言한바 者는 곳 一切法이 아닐새 是故로 名이 一切法이니라

수보리여, 일체법이라 말한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니므로 이름이 일체법이다.


야보설 상대인上大人은 공자를 말한다.【함허설의】 이 깨침의 본체는 가장 높고 지극하고 위가 없고 광대하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부처님이 이에 계합되는 까닭에 부처님에 비유한 것이다. 시법是法과 비법非法은 곧 법이 아님이여. 썩은 물에 잠긴 용이 활발발하다. 시심是心과 비심非心은 곧 심이 아님이여.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허공에 가득 차 있다. 단지 이것뿐이므로 더 찾을 것이 없다. 끝없는 들판의 구름은 바람이 몰아가고 밝게 뜬 보름달은 하늘에서 비춘다.



(11) 진불과 진법의 본체를 드러내다(顯眞佛眞法體)


須菩提야 譬컨대 人身이 長大함과 가트니라 須菩提言하되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人身長大함을 說하심이 곳 大身이 아니라 是名이 大身이니니다(大身은 眞如體에 比하고 非身은 一切相이 空함에 比함이니라)

수보리여, 비유하면 사람의 몸이 장대한 경우와 같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곧 장대한 몸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대한 몸입니다.【용성주해】 대신大身은 진여의 체성을 비유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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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非身은 일체의 상이 공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반야법은 성불로 가는 진정한 인因인데 지금은 반야법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반야법이 없으면 인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터득할 것인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법신은 인과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일물이라는 말도 맞지 않다. 하늘이 영령英靈한 6척의 몸을 낳으니 문文에도 능숙하고 무武에도 능숙하며 경서經書에도 능숙하다.



(12) 잘못된 생각을 설명하다(明失念)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만일 是言을 作하되 我가 마땅히 無量衆生을 滅度함이라 하면 곳 일홈이 菩薩이 아니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노 法이 有하야 菩薩이라 名하지 아니하나니라

수보리여, 보살도 또한 그와 같다. 만약 보살 자신이 반드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보살이 아니다. 수보리여, 왜냐하면 실로 보살이라 할 만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13) 위의 설명을 인용하다(引前說)


是故로 佛께셔 說하사되 一切法이 我가 無하며 人이 無하며 衆生이 無하며 壽者가 無하다고 하시나니라

이런 까닭에 여래는 일체법에 아가 없고 인이 없으며 중생이 없고 수자가 없다고 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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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설 소라고 부르면 곧 소가 되고 말이라 부르면 곧 말이 된다.85) 노파의 적삼을 빌려 입고 노파의 문앞에서 예배를 하니 이미 충분히 예법에 들어맞도다. 대나무의 그림자가 뜨락을 쓸어도 먼지가 일어나지 않고 달빛이 연못 바닥까지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조차 없다.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是言을 作하되 我가 마땅히 佛土를 莊嚴한다고 하면 是는 名이 菩薩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만약 보살 자신이 반드시 불국토를 장엄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름이 보살이 아니다.



(14) 그 까닭을 해석해 주다(釋所以)


何以故오 如來께셔 佛土를 莊嚴하기를 說하는 者는 곳 莊嚴이 아니라 是名이 莊嚴이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말하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이다.



(15) 보살의 성취를 해석해 주다(釋成菩薩)


須菩提야 萬一菩薩이 我가 無한 法을 通達한 者는 如來께셔 名이 眞是菩薩이라 說하나니라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내가 없는 법을 통달한 자를 여래는 그 이름을 참된 보살이라고 설한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이 없다면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보살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법도 없고 아我도 없다는 것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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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보설 추운 날씨에는 온 세상이 춥고 더운 날씨에는 온 세상이 덥다.【함허설의】 미묘한 문수의 지혜경계를 터득하니 삭풍이 너무 추워서 서리와 눈이 하늘에 가득하고, 지고한 보현의 실천경계를 따라가니 훈풍이 따뜻하여 푸르고 노란 꽃이 천지에 가득하다. 유아有我라고 해도 원래 무아無我이고, 추울 때는 약한 불을 피운다. 무심無心이라 해도 유심有心과 같고 한밤중에 바늘을 찾는다. 무심과 무아를 분명하게 말해 주었는데도 그것을 말할 줄 모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하하!



제18 일체통관분一體通觀分
(1) 육안을 말하다(肉眼)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께셔 肉眼이 有하는야 만야 如是니다 世尊이시여 如來肉眼이 有하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 육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는 육안이 있습니다.



(2) 천안을 말하다(天眼)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께셔 天眼이 有하냐 만야 如是니다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天眼이 有하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 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는 천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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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혜안을 말하다(慧眼)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께셔 慧眼이 有하냐 마냐 如是니다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慧眼이 有하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 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는 혜안이 있습니다.



(4) 법안을 말하다(法眼)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께셔 法眼이 有하냐 마냐 如是니다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法眼이 有하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 법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는 법안이 있습니다.



(5) 불안을 말하다(佛眼)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께셔 佛眼이 有하냐 마냐 如是니다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佛眼이 有하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 불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는 불안이 있습니다.86)


야보설 오안은 모두 눈썹 밑에 있다. 여래에게는 오안이 있고 보통 사람에게는 무릇 한 쌍의 눈이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검은자위(皁)와 흰자위(白)로 나누지만 보다 분명하게는 청색(靑)과 황색(黃)으로 구별한다.87) 그 사이의 사소한 차이로 인하여 유월 더운 날에도 눈과 서리가 내리기도 한다.【함허설의】 봄이 되면 똑같이 방초가 푸른 것을 보고 가을이 되면 똑같이 낙엽이 지는 것을 본다. 부처님께서 보통 사람과 다른 까닭은 치연熾然하게 작용하지만 그 자취가 없고 유월 더운 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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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서리가 내리기 때문이다.



(6) 하나의 항하에 의거하여 모래 수효를 세다(約一箇恒河以沙數)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恒河中에 有한바 沙와 如하야 佛이 是沙를 說하느냐 마느냐 如是니다 世尊이시여 如來가 是沙를 說하심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항하의 모든 모래에 대하여 그 모래를 설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모래에 대하여 설하셨습니다.



(7) 하나의 항하에 있는 모래 수효에 의거하여 항하를 세다(約一河中沙以數河)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一恒河中에 有한바 沙와 如하야 如是沙等恒河가 有하거든 是諸恒河에 有한바 沙數佛世界가 是와 如하면 어찌 多함이냐 말미냐 甚多하니다 世尊이시여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 항하의 모래가 있고 그 모래 수만큼의 항하가 있는데 저 모든 모래 수만큼의 불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많겠느냐.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8) 그 모래 수효만큼의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에 의거하다(約爾所界中所有主)


佛이 須菩提의게 告하사되 爾所國土中에 有한바 衆生의 若干種心을 如來께셔 悉知하나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 국토에 있는 중생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안다.


야보설 일찍이 나그네가 되었기에 나그네를 어여삐 여기고, 줄곧 술잔을 아끼고 좋아하였기에 술 취한 사람을 어여삐 여긴다. 눈으로는 동쪽과 남쪽을 보지만 마음은 서쪽과 북쪽에 가 있다. 후백猴白(진陳의 장수로서 어설픈 사람)이 말하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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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후흑猴黑(수隋의 장수로서 뛰어난 사람)도 있도다. 일체중생의 일체 마음이 모두 끝없이 소리와 색을 추구하도다. 할喝!



(9) 망심을 모아 진심으로 돌려서 실지悉知를 해석해 주다(會妄歸眞以釋悉知)


何以故오 如來께셔 諸心을 說하심이 다 마음이 아니라 是名이 心이라 하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말한 모든 마음은 곧 마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10) 망妄·염染을 미루어 타파하여 비심非心을 해석해 주다(推破妄染以釋非心)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過去心을 可得지 못하며 現在心을 可得지 못하며 未來心을 可得지 못함이니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가히 제도할 중생이 없다면, 가히 장엄할 불국토가 없다면 여래께서는 오안을 가지고 과연 무엇을 하시려는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명철하게 보는 것만이 눈이 아니라 실로 오안에 대한 상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으로써 타파해 주셨다. 무량한 세계에 있는 중생의 마음을 다 알고 다 본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모든 중생의 경우 여래의 대광명체성大光明體性에 미혹하다.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보광명지普光明智 가운데 낱낱이 중생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마치 맑은 연못의 물속까지 영상이 밝게 비치는 것과 같아서 털끝만큼도 감추어진 것이 없다.

야보설 조용히 하라. 조용히 하라. 바로 콧구멍 속에서 기운이 빠져 나간다. 과거·현재·미래의 삼제를 통하여 마음을 찾아보아도 마음은 보이지 않는데 두 눈은 여전히 두 눈으로 상대해 있다. 모름지기 칼을 물에 빠뜨리고서 배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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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하여 찾지 말라. 눈과 달과 바람과 꽃에서 늘상 본래면목을 보아야 한다.



제19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1) 복덕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다(問福答福)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萬一 어떠한 사람이 三千大千世界에 七寶를 가득히 하야 써 布施를 用하면 是人이 이 因緣으로써 福을 得함이 多하냐 多치 아니하냐 如是하니다 世尊이시여 此人이 是因緣으로써 福을 得함이 甚多하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히 채워서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그 인연으로 얻는 복덕이 많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그 인연으로 얻는 복덕은 대단히 많을 것입니다.



(2) 순서에 따라 해석해 주다(順釋)


須菩提야 萬一福德이 實有88) 할진대 如來께셔 福德을 得함이 만하다고 說하지 아니하시련마는 써 福德이 無한 故로 如來께셔 福德을 得함이 만하다고 說하나니라

수보리여, 복덕이 실로 있다면 여래는 얻는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덕이 없기 때문에 여래는 얻는 복덕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중생과 불국토가 공하면 보시를 해도 복덕이 없을 것이고 수행한 것도 과보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에 세존께서는 복덕이 없는 그 복덕이야말로 대단히 큰 복덕이라고 말씀하셨다.

야보설 다른 것에 마음을 쓰는 것보다는 낫다. 나한이 받는 공양은 빈약한데 코끼리는 몸에 칠보를 걸친다.89) 【함허설의】 만약 치우쳐서 수행을 하면 결과가 원만하고 영원할 수가 없다. 비록 그렇지만 많은 탁부濁富가 어찌 적은 청빈淸貧만 하겠는가. 무릇 망상罔象(사람 이름인데 맹목적인 것을 상징한다.)은 무의無意를 인하여 얻은 것이지만, 이루离婁(사람 이름인데 총명한 것을 상징한다.)는 유심有心에 친하여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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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1) 색신이 없는 까닭에 법신을 드러내다(由無身故現身)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佛을 可히 具足色身으로써 見否90) 아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如來를 마땅히 具足色身으로써 見하지 못하리니 何以故오 如來께셔 具足色身을 說하심이 곳 具足色身이 아니라 是名이 具足色身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구족색신을 통해서 볼 수가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색신을 통해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구족색신은 곧 구족색신이 아니라 그 이름이 구족색신이기 때문입니다.



(2) 제상이 없는 까닭에 진상을 드러내다(由無相故現相)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如來를 可히 具足諸相으로써 見否아 不也니다 世尊이시여 如來를 마땅히 具足諸相으로 써 見하지 못하리니 何以故오 如來께셔 諸相具足을 說하심이 곳 具足이 아니라 是名이 諸相具足이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구족제상을 통해서 볼 수가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제상을 통해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구족제상은 곧 구족제상이 아니라 그 이름이 구족제상이기 때문입니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또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성불하는 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덕이 구족됨을 아는 것은 불국토를 장엄한 과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지금 제도할 중생이 없고 장엄할 불국토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두 단절된 것으로서 부처님도 계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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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부처님께서는 색상의 구족을 통해서는 진정한 여래를 볼 수가 없다는 말씀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제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1) 잘못된 이해를 막아 주다(遮錯解)


須菩提야 汝가 如來께셔 是念을 作하되 我가 마땅히 說한 바가 有라고 謂하지 말라 是念을 作하지 말지어다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께서 이렇게 생각하시되 내가 설한 바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



(2) 그 까닭을 해석해 주다(釋所以)


何以故오 若人이 言하되 如來께셔 說한바 法이 有라 하면 곳 謗佛함이 됨이니 能히 我의 說한 바를 解하지 못한바 故이니라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설한 법이 있다고 한다면 곧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 되니 능히 내가 설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보설 옳기는 진실로 옳다. 그렇다면 대승경전과 소승경전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설법이 있다고 하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고 설법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대를 위하여 한 가닥 길을 열어 놓았으니 해가 동산에서 붉게 떠오를 것이다.



(3) 올바른 견해를 보여 주다(示正見)


須菩提야 法을 說하는 者는 法可說이 無함이 是名說法이니라

수보리여, 법을 설하는 자는 법을 가히 설할 법이 없으니 이름이 법을 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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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이미 신상이 없다면 누가 법을 설하는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설할 만한 법이 없다는 말씀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토끼 뿔로 만든 지팡이이고 거북이 털로 만든 불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석마石馬는 백호광명을 뿜어냈고 철우鐵牛는 포효하며 장강으로 들어갔다. 허공에다 할을 해 대니 종적이 없고 엉겁결에 몸을 감춰 북두성에 숨어 버렸다. 자, 말해 보라. 이것은 설법인가 설법이 아닌가.


爾時에 慧命須菩提가 佛의게 白言하되 世尊이시여 자못 衆生이 져 未來世에 是法을 說함을 聞하고 信心을 生否91) 이닉까 佛言하사되 須菩提야 彼가 衆生이 아니며 衆生이 아님도 아니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께셔 衆生을 說하심이 아니라 是名이 衆生이니라

그때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미래세92) 에 이 설법을 듣고 신심을 일으킬 중생이 조금이라도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저들은 중생이 아니고 비중생도 아니다. 수보리여, 왜냐하면 중생중생이란 여래가 중생이라 말한 것이 아니라 곧 그 이름이 중생이기 때문이다.93)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신의 도리는 매우 심오하다. 그러므로 미래의 중생이 그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없다는 말씀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불은 뜨겁고 바람은 움직이며 물은 축축하고 땅은 딱딱하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들 그것이 어찌 말이 되겠는가. 까마귀를 가리켜서 난새(翔鸞)라고 한들 그것이 어찌 난새가 되겠는가. 비록 털끝만 한 차이도 인정하지 않지만 마馬 자가 들어간 나귀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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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얼마나 많던가.



제22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1) 무법으로써 정각을 삼다(以無法爲正覺)


須菩提 佛의게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佛께셔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함이익가 得한 바 無하나닉가 如是如是하다 須菩提야 我가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乃至少法도 可히 得함이 無하니 是名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소득입니까. 그래, 그렇다. 수보리여,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 소소한 어떤 법도 얻은 것이 없었으므로 곧 그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야보설 다른 사람에게서 추구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추구하는 것만 못하다. 물방울이 얼어서 얼음이 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하지만, 푸른 버들과 향기로운 풀 색깔은 울창하기만 하다. 가을철의 달과 봄철의 꽃에 담겨 있는 무한한 뜻은 자고새 지저귀는 소리를 한가롭게 듣기에 방해되지 않는다.



제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1) 평등으로써 정각을 삼다(以平等爲正覺)


復次須菩提야 是法이 平等하야 高下가 有함이 無하니 是名이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니라

수보리여, 또한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곧 그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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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수행과 방편수행으로써 정각을 삼다(以正助修爲正覺)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로 一切善法을 修하면 곳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하니라

아가 없고 인이 없고 중생이 없고 수자가 없이 일체의 선법을 닦음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야보설 산은 높고 바다는 깊으며 해는 뜨고 달은 진다. 출가인은 그대로 출가인이고 속가인은 그대로 속가인이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운다. 만약 이런 도리에서 잘 참구해 보면 육 곱하기 육은 본래 삼십육이다.


須菩提야 善法을 言한바 者는 如來說이 곳 善法이 아니라 是名이 善法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설한 선법이란 선법이 아니므로 곧 그 이름이 선법일 뿐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신은 상이 없으므로 법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선법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단 말인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무득無得과 평등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얼굴은 대나무처럼 매끈하고 복사꽃처럼 화사한데 뱃속은 하늘을 찌를 듯한 가시덤불이로다.【함허설의】 이것이 선인가 악인가. 악은 악이 아니고 선을 따르는 것도 선이 아니다. 장수는 부符(명령을 뜻한다.)를 따라 나아가고 병사는 인印(지휘봉)을 따라 나아간다. 어떤 때는 묘고대妙高臺(수미산의 꼭대기로서 도리천이다.)에 홀로 섰는가 싶더니 돌연히 염라궁전에 내려와 단정하게 앉아 있다. 인간세계를 다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이니 대비관음보살의 손과 눈에는 방편이 많구나.



제24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須菩提야 만일 三千大千世界中에 有한바 諸須彌山王과 如한 等七寶聚를 어떠한 사람이 持하야 布施를 用하야도 萬一 사람이 此般若波羅蜜經에 乃至四句偈等을 受持하며 讀誦하야 他人을 爲하야 說하면 於前福德이 百分의 一도 不及하며 百千(萬)94) 億分과 乃至算數와 譬喩로도 能히 及하지 못할 바이니라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왕만큼의 칠보 무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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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보시한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 내지 사구게 등을 받고 지니며 읽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준다고 하자. 그러면 앞의 복덕은 이 복덕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 만분의 일, 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산수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한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선법이 아니면 어떤 법이 뛰어나다는 것인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반야에 통달하는 것이야말로 뛰어나다는 말씀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천 개의 송곳으로 땅을 파는 것이 무딘 괭이로 한 번 파는 것만 못하다. 기麒·린麟과 난鸞·봉鳳은 무리를 짓지 않듯이 큰 보배(尺璧)와 귀중한 보배(忖珠)가 어찌 시장에 나오겠는가. 해만 쫓는 말은 낙타와 비견될 수 없고 하늘에 닿는 장검은 사람이 비교할 수가 없다. 하늘도 그것을 덮지 못하고 땅도 그것을 싣지 못하며 겁화도 그것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늠름한 위광이 태허에 빛나니 천상과 인간에서는 그만한 것이 없도다. 희噫!



제25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1) 잘못된 이해를 막아 주다(遮其錯解)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汝等이 如來께셔 是念을 作하되 我가 마땅히 衆生을 度한다고 謂하지 말나 須菩提야 是念을 짓지 말지어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대들은 여래 자신이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여,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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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래 제도할 중생이 없다(本無衆生可度)


何以故오 實노 衆生이 有하야 如來께셔 度한 者 無하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제도한 중생은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3) 그 까닭을 뒤집어 해석해 주다(反釋所以)


만일 衆生이 有하야 如來께셔 度한 者컨대 如來가 곳 我人衆生壽者가 有하리라

만약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있다면 여래에게도 아·인·중생·수자라는 것이 있다.


야보설 봄날의 난초와 가을날의 국화가 각자 향기를 내뿜는다.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도다. 모든 사람은 코는 세로로 있고 두 눈썹은 가로로 있다. 웅얼웅얼하건 옹알옹알하건 슬픔과 기쁨의 표현은 모두 비슷하다. 그러니 어느 때에 누가 다시 존당尊堂에게 묻겠는가.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4) 계속하여 집착을 없애 주다(展轉拂跡)


須菩提야 如來께셔 我가 有함을 說하는 者는 곳 我가 有함이 아니어늘 凡夫之人이 써 하되 我가 有라 하나니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說이 곳 凡夫가 아니라 是名이 凡夫이니라95)

수보리여, 여래는 아에 대한 집착은 곧 아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그런데도 범부는 아에 집착을 한다. 수보리여, 범부라는 것도 여래가 범부라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범부일 뿐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중생과 제불이 평등하다면 곧 중생이 없다는 것인데 어째서 여래께서는 중생을 제도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이에 세존께서는 인상과 아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이 공하다는 말씀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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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1) 상으로써 진불을 드러낼 수 있는지 묻다(問以相表佛)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可히 三十二相으로써 如來를 觀否96)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십이상을 통해서 여래를 볼 수가 있느냐.



(2) 싹을 보고 뿌리를 알 수가 있다고 대답하다(答因苗識根)


須菩提言하사되 如是如是니다 三十二相으로써 如來를 觀할지니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예, 그렇습니다. 삼십이상을 통하여 여래를 볼 수가 있습니다.


야보설 수보리의 말은 틀렸다. 진흙으로 빚고 나무로 조각하며 또한 비단에 그림을 그린다. 청색을 덧칠하고 녹색을 바르고 다시 금으로 장식을 한다. 만약 이런 모습을 가지고 여래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가소롭다. 나무 관세음보살!



(3) 범부와 성인을 분간하기가 어렵다(難凡聖不分)


佛言하사되 須菩提야 만일 三十二相으로써 如來를 觀할진대 轉輪聖王도 卽是如來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삼십이상을 통해서 여래를 볼 수가 있다면 전륜성왕도 여래이겠구나.



(4) 여래는 상을 통해서 볼 수가 없음을 알다(悟佛非相見)


須菩提 佛의게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我가 佛의 說하신바 義를 解함은 마땅히 三十二相으로써 如來를 觀하지 못함이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결코 삼십이상을 통하여 여래를 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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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보고 듣는 것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음을 확인하다(印見聞不及)


爾時에 世尊이 偈言을 說하사되 만일 色으로써 我를 見하려고 하거나 音聲으로써 我를 求하려 하면 是人이 邪道를 行하는 것이라 能히 如來를 見하지 못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색으로 나를 보려 한다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니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97)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신에 아我가 없다면 보신도 또한 상을 통해서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래에게 나타나 있는 삼십이상이 어찌 여래가 아니겠는가. 이에 세존께서는 전륜성왕을 말씀하심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설령 소리와 색을 통해서 여래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또한 여래를 볼 수가 없다. 그러면 자, 말해 보라. 어찌해야 볼 수가 있는가.【함허설의】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98) 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 것은 세간의 본래도리(本常理)인데 쌓인 눈 위에 다시 서리가 내린다. 그대가 지금 부처님(黃面老)을 보려고 한다면 마야부인의 배 속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희噫! 이 말이 삼십 년 후에 땅에 떨어져 쇳소리를 내리라.【용성주해】 삼십 년 이후에는 어떤 뜻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제27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1) 상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막아 주다(遮毁相之念)


須菩提야 汝가 만일 是念을 作하되 如來께셔 具足相을 쓰지 아니한 故로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하엿다 하느냐 須菩提야 是念을 作하되 如來께셔 具足相을 쓰지 아니한 故로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得하엿다 말나 (須菩提야 汝99) 가 만일 是念을 作하되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發한 者는 諸法斷滅100) 을 說한다고 是念을 作하지 말지니라)101) 何以故오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102) 을 發하는 者는 於法에 斷滅相을 說하지 아니하니라

수보리여, 그대가 만약 여래는 구족상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수보리여, 여래가 구족상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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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수보리여, 그대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자가 제법의 단멸을 설한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자는 제법에 대하여 단멸상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보설 잘라 내도 가지런하지 않고 다스려도 도리어 어지러워지고 끝을 당겨 와서 베어도 단절되지 않는다. 그 누가 교묘하게 안배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잡았다가도 예전처럼 또 놓아준다. 여래가 단멸을 확정했다고 말하지 말라. 한 소리103) 가 다시 한 소리를 불러온다.【함허설의】 이미 ‘제상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구족상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제28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1) 인욕을 성취한 까닭에 복덕을 잃지 않다(分得忍故不失)


須菩提야 若菩薩이 써 恒河沙等世界에 七寶를 가득히 하야 布施104) 하여도 若復有人이 一切法이 無我함을 知하야 써 忍을 得成하면 此菩薩이 前菩薩에 得한바 功德보담 勝하니라

수보리여, 어떤 보살은 항하의 모래 수만큼 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서 보시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일체법이 무아임을 알아서 인욕을 성취한다. 그러면 이 사람의 공덕이 저 보살의 공덕보다 뛰어나다.


야보설 귀로 소리를 들어도 귀머거리와 같고 입으로 말을 해도 벙어리와 같다. 말 아래의 사람은 말 위에 있는 왕으로 인하여 높은 것이 있고 낮은 것이 있고 친親과 소疎가 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말이 죽고 왕도 돌아가면 왕과 가까운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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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람과 똑같아진다. 다만 옛 시절의 사람이 다시 옛 시절로 돌아갔을 뿐이다.



(2) 복덕을 잃지 않음을 그대로 설명하다(正明不失)


(何以故오)105) 須菩提야 諸菩薩이 福德을 受하지 아니함을 쓰는 故이니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3) 복덕이 되는 까닭을 따져서 해석해 주다(徵釋福德所以)


須菩提 佛의게 白言하사되 世尊이시여 云何로 菩薩이 福德을 受치 아니하나닉고 須菩提야 菩薩의 作한바 福德은 마땅히 貪着하지 아니하나니 是故로 福德을 不受함을 說하나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습니까. 수보리여, 보살은 자신이 지은 복덕에 탐착이 없으므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는 법신은 무상無相이고 응화신은 비진非眞이라는 말을 듣고 단멸의 지견을 일으켜서 법신의 진아를 통달하지 못하였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부단멸不斷滅로써 그것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치마에는(裙) 허리가 없고 바지(袴)에는 입이 없다. 물과 같고 구름과 같고 꿈과 같은 몸이여. 이 몸보다 친한 것이 어디에도 없다. 여기에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다만 황매의 길 가는 사람에게 분부했을 뿐이다.106)



제29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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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다(庠錯解)


須菩提야 만일 어떠한 사람이 말하되 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라 하면 是人이 我의 說한바 義를 解하지 못함이니라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는 오고 가며 앉고 눕는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내 설법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2) 정견을 보여 주다(示正見)


何以故오 如來者는 從來한 바가 無하며 또한 去한 바가 無한 故로 名이 如來이니라

왜냐하면 여래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으므로 이름이 여래이기 때문이다.107)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이미 아我도 없고 복덕을 받는 자도 없다면 여래께서 종종 앉고 누우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그것이야말로 어찌 여래의 아我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집착하는 망정을 잊고 동·정이 둘이 아니어서 여여한 실제實際의 묘용이 여기에서 궁극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도 수보리는 같고 다르다(一·異)는 견해를 아직 잊지 못하고 삼신三身이 일체一體라는 뜻에 아직 계합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이하 경문에서 미진세계를 들어서 그것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산문 앞에서 합장을 하고 법당에 들어가서 향을 사른다.【함허설의】 비록 가고 옴이 없다고 하지만 합장을 하고 향을 사르며 나아가고 멈추는 모습에서 위의가 분명하다. 납승이 가을 구름을 거두어 가고 또 몰아오니 몇 차례나 남악산과 천태산을 돌아다녔던가. 한산과 습득이 서로 만나서 웃는다. 자, 말해 보라. 그 웃음은 과연 무엇인가. 함께 걸었는데 한 걸음도 떼지 않았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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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1) 미세한 방편으로 거친 색을 타파하다(細末方便破麤色)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三千大千世界로써 碎하야 微塵을 만들면 於意에 云何오 (是微塵衆이)108) 寧爲多否109) 아 甚多하니다 世尊이시여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미진을 만든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미진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2) 생각을 내지 않는 방편으로 미진을 타파하다(不念方便破微塵)


何以故오 若是微塵衆이 實有者인댄 佛께셔 곳 微塵衆을 說하지 아니하시리니 所以者何오 佛께셔 微塵衆을 說하심이 곳 微塵衆이 아니라 是名이 微塵衆이니라

왜냐하면 만약 미진들이 실제로 있다면 여래께서는 곧 미진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미진들은 곧 미진들이 아니라 곧 그 이름이 미진들이기 때문입니다.


야보설 만약 물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어찌 키다리(長人)를 볼 것인가. 티끌 하나 일어나니 마천루(磨空)를 두루 뒤덮고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가루로 만드니 그 수효가 끝이 없다. 나 야보(野老)는 그것을 수습하지 못하니 비 맞고 바람 맞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



(3) 생각을 내지 않는 방편으로 세계를 타파하다(不念方便破世界)


世尊이시여 如來께셔 說하신바 三千大千世界는 곳 世界가 아니라 是名이 世界이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4) 미진과 세계에 함께 의거하여 화합을 타파하다(俱約塵界破和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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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以故오 若世界가 實有者인댄 卽是一合相이니 如來께셔 一合相을 說하심은 곳 一合相이아니라 是名이 一合相이니라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실로 있다면 곧 일합상이겠지만 여래가 말한 일합상은 곧 일합상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일합상이기 때문입니다.



(5) 무無인데도 망집으로 인하여 유有라고 주장하는 것을 여래가 인정하다(佛印無中妄執有)


須菩提야 一合相者는 則是不可說이어늘 다못 凡夫人이 其事를 貪着하니라

수보리여, 일합상이란 말할 수가 없는 것인데 무릇 범부들이 그것에 탐착할 따름이다.


야보설 잡아들이고 놓아줌이여. 병사들은 지휘봉(印)을 따라 움직인다. 한 덩어리가 두 조각이 되고 두 조각이 다시 한 덩어리가 된다. 잘게 씹되 쪼개지는 말아야 바야흐로 그 맛을 제대로 느낀다.



제31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1) 잘못 이해한 것을 바로잡다(庠錯解)


須菩提야 若人이 言하되 佛께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說하엿다 하는 者는 須菩提야 於意에 云何오 是人이 我의 說한바 義를 解하느냐 마냐 (不也니이다)110) 世尊이시여 是人이 如來의 說한바 義를 不解함이니다

수보리여, 어떤 사람은 여래가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설했다고 말한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내가 설한 뜻을 이해했다 할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께서 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2) 언설에 대한 집착을 없애 주다(遣言執)


何以故오 世尊께셔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을 說하신 者는 곳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니다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다)111)

왜냐하면 세존께서 설한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은 곧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라 그 이름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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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법집의 분별을 없애 주다(除法執分別)


須菩提야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發한 者는 於一切法에 應如是知하며 如是見하며 如是信解하야 法相을 生하지 아니하니라

수보리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자는 일체법에 대하여 반드시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하여 법상法相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4) 본래적멸本來寂滅을 드러내다(顯本寂)


須菩提야 法相을 言한바 者는 如來께셔 說하심이 곳 法相이 아니라 是名이 法相이니라

수보리여, 법상에 대하여 여래는 곧 법상이 아니라고 말하였는데 그 이름이 법상이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평등법신으로서 일체가 모두 사상이 아니고 사견이 아니며 법상이 아니라면 곧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사상의 견해(四相見)를 말씀하셨는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은 중생의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라는 대답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위에서 누차에 걸쳐 말했던 아니다(非)라는 글자는 모두 이런 뜻이 아니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아니다(非)라는 글자는 총체적으로 사상과 사견과 법상을 없애 주는(遣絶) 용어로 사용되었다.

야보설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잠이 오면 눈을 감는다. 천 자(千尺)의 긴 낚싯줄을 곧게 드리우고 물결 한 번 일어나니 온갖 물결이 일어난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우니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지 않네. 텅 빈 배에다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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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須菩提야 若有人이 無量阿僧祗世界에 七寶를 가득히 하야 가져 布施를 用하여도 만일 善男子善女人이 有하야 菩提心112) 을 發한 者는 此經을 持하되 乃至四句偈等이라도 受持讀誦하며 爲人演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라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은 무량한 아승지 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서 그것을 가지고 보시한다.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은 보리심을 일으켜서 이 경전을 지니고 내지 사구게 등을 받고 지니며 읽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해 준다. 그러면 이 선남자·선여인의 복덕이 앞 사람의 복덕보다 뛰어나다.


야보설 설하고자 하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지금 다시 청하는데 잘 듣고 자세히 듣거라. 걷고 머물고 앉고 누우며 옳고 그르고 나이고 남이고 문득 기뻐하고 문득 성내는 모든 것이 바로 그것(這箇)을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무릇 그것(這箇)이라 말한다면 당장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이다. 평생 담아 온 생각을 일시에 쏟아 내어 사구로 오묘한 가르침을 모두 설파해 버렸다.


(云何爲人演說고)113) 不取於相하면 如如不動하니라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어떻게 연설해야 하겠는가. 상에 집착하지 말고 여여하고 부동해야 한다.


용성해설 이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법신은 법을 설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법을 설하는 자는 화신이다. 화신이 설한 법으로는 법신의 경계를 터득하지 못한 것인데 어떻게 법신을 가지고 복덕을 얻는단 말인가. 이에 부처님께서는 삼신三身이 일체一體라는 말씀으로써 그 의심을 타파해 주셨다.

야보설 마지막의 일구114) 여. 비로소 최후의 관문(牢關)에 도달하였다. 이것은 삼세제불이 네 개의 눈으로 서로 보고(四目相觀)115) 육대의 조사가 발뺌할 여지를 둔 것이다. 그러므로 가히 강물이 꽁꽁 얼어붙어 물이 흐르지 못하고 눈에 가시가 가득하여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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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털끝만큼만 보태도 눈 속에 가시를 넣은 것과 같고 털끝만큼만 빼도 피부에 부스럼이 난 것과 같다. 이것은 곧장 깨침을 해결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법에 집착하는 자들의 의심을 없애 주기 위한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무릇 불법이 이와 같다면 곧 평지가 꺼지는 모습을 볼 것이다. 그러니 어찌 정법안장의 등불이 이어지겠는가. 나 야보 도천은 오늘 맹호猛虎의 입속에서 먹이를 빼앗고 영룡獰龍의 턱 밑에서 구슬을 빼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선성先聖의 훌륭한 가르침을 활짝 열어서 후학들이 몸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깨침의 방법을 열어 둘 것인데 이것이 어찌 방해가 되겠는가. 말을 꺼내면 설법의 본체가 온전히 드러나고 침묵을 지키면 깨침(眞常)이 우뚝 드러나며, 움직이면 한 마리 학이 조각구름 속으로 날아가고 고요하면 안산이 쫙 펼쳐지며, 한 걸음을 떼면 코끼리왕이 돌아보는 것과 같고 한 걸음 물러서면 사자가 몸을 기지개 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반드시 실천하여 곧 제법에 자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릇 저 최후의 일구를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까. 잘들 알아들었는가.

구름은 고갯마루에서 한가롭게 흩어지지 않는데
계곡물은 개울로 흘러가느라고 너무나 바쁘다네


何以故오 一切有爲法이 夢幻泡影 갓고 露 갓고 또한 電과 가트니 뻑뻑이 如是히 觀할지어다

왜냐하면
일체의 유위법은
마치 꿈과 허깨비와 물거품과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또 번개와 같으니
반드시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116)


佛이 是經을 說하시기를 已하시니 長老須菩提와 及諸比丘比丘尼와 淸信士淸信女와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佛의 說하신 바를 聞하고 皆大歡喜하야 信受奉行하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모두 설하고 나니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청신사)·우바이(청신녀) 및 일체세간의 천·인·아수라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여 믿고 받으며 받들고 실천하였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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