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듣건대 삼계가 ‘오직 마음(唯心)’이고 만법은 ‘오직 식(唯識)’이라고 하니 ‘오직 마음’이란 무엇인가? 단하丹霞1)
가 말하기를
“신령해서 과거, 현재, 미래에 걸리지 않으니 삼계가 모두 이 한 점 마음일 뿐이다. 울 밖 복사꽃에 봄 나비 춤추고 문 앞 수양버들에는 새벽 꾀꼬리가 노래하네.”2)
라고 하였다. 이는 눈에 보여야만 색이 아니고 귀에 들려야만 소리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마음 밖에 형색이 없고, 형색 그대로가 형색이므로 울 밖 복사꽃에 봄 나비가 춤춘다고 한 것이며, 마음 밖에 소리가 없고 소리 그대로가 소리이므로 문 앞 수양버들에 새벽 꾀꼬리가 노래한다고 한 것이다. 이는 만 리가 황금나라이고 천 층이 다 백옥루라서 온 천지가 노래하고 춤추며 온 세계가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오직 마음이라는 대광명체大光明體의 모양을 모든 사람들의 면전에 그려 보인 것이다.
‘오직 식’이란 무엇인가?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하거늘 어째서 산하대지를 발생시키는가? 천지만물과 유정, 무정이 모두 오직 마음에 의해서 환영 같은 변화(幻變)로 나타나는 것으로 사람이 꿈에 갖가지 물체의 모양을 보되 꿈에 본 것은 모두 꿈속의 식(夢識)이 변해서 된 것이며 또한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것이 아니다. 꿈에 나타난 것과 같아서 이제 천지만물의 유정과 무정이 오직 마음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활동사진을 두고 말한다면 이는 사진과 전기 등 여러 인연의 힘을 합해서 환영 같은 변화로 나타나는 것으로 인연의 본성이란 사실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보고 듣고 하는 것 등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꿈꾸는 사람이 꿈을 깨면 꿈속의 경계가 없는 것과 같이, 오직 마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에게는 오직 마음이라는 대광명체 이외에 다른 것은 털끝만큼도 없다. 천지와 일월성신 등 갖가지 만물이 오직 마음의 힘이 아니면 운행될 수 없고 사람과 동물 등도 오직 마음이 아니면 날거나 뛰거나 하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물리학으로써 갖가지 설명을 하지만 나는 갖가지의 설이 다 오직 마음이 스스로 지어낸 것으로 안다. 세상 사람들이 다만 본 것과 들은 것에 집착하여, 인간의 태어남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오직 마음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1권에 식識을 법수에 따라 간략히 설명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심心·의意·식識의 허물을 알도록 했다. 그 다음으로는 부처님의 대비방편으로 중생의 식심관識心關을 타파하여 먼지 더미에 파묻힌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을 얻어서 불생불멸하는 무궁한 묘락妙樂을 얻게 하고자 한다. 또 미래 겁이 다하도록 일체중생이 모두 최상의 바른 진리의 도를 얻어 함께 불도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원력을 세워서 이 논을 엮어 짓는다.
1) 인간은 심식心識과 신근身根의 두 가지 구조로 됨 2) 중생이 아홉 가지 모습(九相)으로 성립됨을 분별함 3) 세계에 중생이 본래 화생으로 나타남을 분별함 4) 인간의 태어남의 원인이 다섯 가지 혼탁(五濁)으로 성립됨을 분별함
(1) 안의 사대四大로 인간의 다섯 가지 혼탁(五重濁)의 원인을 총괄해서 밝힘 (2) 겁탁劫濁 (3) 견탁見濁 (4) 번뇌탁煩惱濁 (5) 중생탁衆生濁 (6) 명탁命濁
5) 인간의 신령한 식(神識)이 오고 가고 옮기고 멸함
(1) 인간의 신령한 식이 무형이되 형체를 나타냄 (2) 인간의 신령한 식이 몸을 받고 형체를 버림을 분별함 (3) 인간의 식체識體의 모양을 분별함 (4) 인간의 선악의 인과를 분별함 (5) 인간의 욕망(欲)의 원인을 분별함 (6) 스승이 계를 제정한 것을 보고 계를 지니게 된 인연을 분별함 (7) 식이 천과 지옥 등을 취함 (8) 쌓임(積), 모임(聚), 오온(陰)과 몸이 옮겨 가지 않음을 밝게 분별함
Ⅳ. 십이유생十二類生
1. 원인을 총괄해서 밝힘
1) 인간이 항상 인연 따라 생김을 밝힘 2) 중생의 중음신식中陰神識을 총괄해서 밝힘 3) 중생의 중음신식이 태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함을 분별함 4) 인간의 수태가 인연화합력으로 성취됨을 밝힘 5) 중음신식이 입태 후에 점점 자라남을 밝게 분별함 6) 인간의 육체가 전부 세균 덩어리로 된 것을 밝게 분별함 7) 인간이 출생한 후에 하는 행위와 그 형상을 관찰하여 숙세의 인연을 밝힘 8) 불법(達摩)으로써 인간이 다섯 가지로 오게 된(五來) 원인을 분별함
2. 난생의 원인을 분별함 3. 습생의 원인을 분별함 4. 화생의 원인을 분별함 5. 유색중생의 원인을 분별함 6. 무색중생의 원인을 분별함 7. 무상無想 중생의 원인을 분별함 8. 유상有想 중생의 원인을 분별함 9. 유색이 아닌 중생(非有色)의 원인을 분별함 10. 무색이 아닌 중생(非無色)의 원인을 분별함 11. 유상이 아닌 중생(非有想)의 원인을 분별함 12. 무상이 아닌 중생(非無想)의 원인을 분별함 13. 십이중생의 원인을 총결함
원래 참된 한마음의 대광명체의 본래 성품(本源性)은 어떤 모습도 공하여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법法도 아니고 승僧도 아니며 신神도 아니고 물物도 아니며 허공 또한 아니다. 그러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미묘하며 지극히 비고 지극히 영묘하며 지극히 견고하고 지극히 강하며 지극히 부드러워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이 본래의 참된 마음(本源眞心)은 이름과 모양이 없으나 고금을 관통하고 천지사방(六合)4)
을 에워싸며 하늘과 땅, 사람에 머물며 온갖 법에 있어 왕이 되기 때문에 넓고 넓어서 그에 비교할 것이 없고 높고 높아서 그에 짝할 것이 없다. 천지보다 먼저 있으나 시작함이 없고 천지보다 나중에 있으나 끝남이 없다. 이 참된 마음은 천지가 나와 더불어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같은 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상정으로 간파하면 우리의 신장이 5척에 불과하고 마음은 몸 안에 국한되어 있으니 어찌 끝없는 허공과 광대한 천지와 형형색색의 만물이 우리의 대광명장大光明藏의 참된 성품 전체에서 연기緣起로 나타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우리 불교는 마음을 가르치는 종교이지 하늘이나 신이나 해와 달과 별 등을 받드는 종교가 아니다. 오직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으니 부처는 바로 참된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 불교는 유신교가 아니라 무신교로서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진실한 성품을 깨닫게 하며 만법을 거느려서 일심을 밝히게 하였다. 나의 본래의 참된 성품이 천지만유를 창조한 것이지 따로 하늘과 신이 있어서 대지만유와 나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삼계와 만유가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니 어찌 마음 외에 다른 것을 섬겨서 교를 삼겠는가? 마음이 없으면 천국의 천주와 수호천사와 천국의 백성이 없고 마음이 없으면 세계 국토에 군주국, 공화국 등의 국민의 상하와 남녀, 노소, 어리석고 지혜로움 등의 차별이 없을 것이며 마음이 없으면 만물을 만들어 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이와 같으므로 삼세와 국토와 일체의 갖가지의 만유가 다 오직 마음뿐이라 오직 마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 명백하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지가 나와 더불어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같은 몸이다.”라고 했으나 어찌 같은 뿌리, 같은 몸만 되겠는가? 전체가 나의 참된 한마음의 대광명체로서 오직 마음으로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각각 자기 안의 광대한 진심을 깨닫지 못하므로 자기 안의 유일무이한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한(唯我獨尊) 진심의 대법왕大法王을 모르고 마음 외에 따로 교를 성립한다. 하늘이 명령한 것이 성性이 되고 그 명령을 받은 성을 거느리는 것이 도道가 된다고 하는가 하면, 하늘이 만민을 내는 것이라고 하며, 하늘이 만민에게 직업을 주는 것이라고 하며, 하늘이 만유를 만들어 만유를 주재하는 것이라고 하여, 고금의 천하 인민이 다 마음 외에 하늘을 믿어서 그 하늘을 섬기면서도 미신을 주장한다. 기타 여러 종교가 자기의 문호를 각자 세워서 일월성수와 귀신 등을 섬김으로써 교의 강령을 삼아 미신에 푹 빠져 미혹되며 또한 불교신자도 부처님의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미신으로 달려든 자들이 흘러넘치니 진실로 애석하다.
내가 옛날부터 전해 오는 옛사람들이 지은 저술과 경·율·논을 널리 찾아보니 불佛이라는 하나의 글자를 두 개의 형상자로 사용했다. 첫째, 불佛 자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바로 각覺이니불佛 자는 번역하면 각覺이다. 이 최상의 청정한맑은 하늘과 같으니 부처님의 법신을 비유한 것이다. 정변正遍정正은 근본지根本智니 근본지로 이치를 통달함을 말한 것이고 변遍은 사물에 통달한 지혜이니 후득지後得智로 차별적 현상에 통달함을 말한다. 정각正覺맑은 하늘의 해와 달과 같으니 쌍으로 밝은 정각이다.을 성취하여 천상과 인간 가운데 홀로 존귀하신 대성인을 나타내는 것이니 무슨 인격과 신격을 논할 것인가? 오직 부처님만 그러하겠는가? 우리도 그 진심의 체와 그 진심의 성과 그 진심의 용을 크게 깨달으면(大覺) 홀로 존귀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진심의 성, 진심의 용이라고 하는가?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설사 우리가 자기 마음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마음 외에 어떤 다른 것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불佛 자를 다음의 형상자로 사용하니 이 바로 그것이다. 그 뜻을 번역하면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하신 말씀이니 이 사람은 우리들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본래 청정한 무위진인無位眞人을 나타내는 것이니 은 곧 각천覺天이며 심천心天이다. 이외에 더 큰 하늘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또 부처님을 세존이라 하니 세世라는 것은 삼세가 옮겨 가서 머무르지 않음을 이른 것이고 존尊이라는 것은 삼세에 옮겨 가지 않고 불생불멸하는 참된 나(眞我)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또 복덕과 지혜가 구족하여 인간, 천상 및 삼계에서 능히 이에 미칠 자가 없기 때문에 세존이라 한 것이다.
또 부처님의 명호(佛號)를 천중천天中天이라 하니 부처님은 출세간의 각천覺天이며 성천性天이며 심천心天이라서 삼계와 세간, 범천 가운데 누가 능히 미칠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호를 천중천이라 한 것이니 마음 밖에 더 큰 하늘이 없음을 알지 못하고 마음 밖에 미신으로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 가소롭다. 다만 삼계와 만유가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임을 알며 화禍와 복이 오직 마음이 스스로 자초한 것임을 알면 자연히 미신은 타파되고 독립적 자유의 정신이 불생불멸하여 생사가 없는 활발발한 면목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비유문답으로 진심의 두루 미치는 광명체光明體를 명시하겠다.
결연히 주인공에게 묻기를, “그대가 능히 허공의 본래 모습을 그같이 나에게 말하겠는가?” 주인공이 답하기를, “허공은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고 크고 작은 일체의 이름과 형상이 없어서 불로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로 능히 적시지 못하며 바람이 능히 흔들지 못하니 이것이 허공이 아니겠는가?”
내가 껄껄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허공이 필경 그대를 향해 ‘내가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고, 크고 작은, 일체의 이름과 형상이 있다’ 또는 ‘없다’고 하던가? 허공은 그대를 향하여 이와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니 필시 그대가 망정(識情)으로 사유해서 허공의 모양을 지어낸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망정을 따라 모양도 없고 체도 없다고 한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공의 본체가 그대의 식으로 변하게 됨에 이에 활발발한 진면목이 문득 사구死句로 뒤바뀐 것이다. 이와 같이 비유하는 것은 인간 개개인의 본래의 참된 성품이 허공과 같아 지혜와 망정으로 요연히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여실히 궁구해 보기 바란다.”
원래 진심의 성품바다(眞心性海)는 한없이 광대하고 끝없이 깊어서 허공으로도 그 모습을 비유하지 못하는데 어찌 능히 천지로써 그것을 덮고 실어 나를 수 있겠는가? 항상 고요한 큰 빛(常寂大光)이 원만청정하여 거기에 다른 것이 들어설 수 없다. 이 무상청정하며 항상 고요한 참된 체(常寂眞體)는 지극히 비고 다함이 없어 상주하여 옮겨 가지 않으며 항상 빛나는 묘한 작용(常光妙用)은 지극히 신령하고 다함이 없어 상주 불변한다.
이 묘하게 밝은 진심(竗明眞心)이 매우 밝아 경거망동해서 망령된 밝음(妄明)을 더함에 홀연히 이것이 동기가 되어서 깨닫지 못한 무명의 마음不覺無明心으로 바뀐다. 비유하자면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다가 홀연히 미풍 때문에 잔잔한 파도가 일어나며 미세하게 깊숙이 흐르는 해류가 은은하게 머물지 않는 것과 같다. 진심의 성품바다(眞心性海)는 원래 청정무위淸淨無爲하건만 홀연히 무명풍이 일어남으로써 최초의 불각不覺인 아뢰야식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식은 한편으로는 능히 참된 각의 체를 감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능히 만유의 상을 발하니 이는 허공과 세계와 만유가 없고 오직 진심의 성품바다가 아뢰야식으로 변하는 시초로서 그 시작과 끝을 말할 수 없다. 이 식은 바닷물에 파도가 있는 것과 같아서 잔잔하게 흘러든 물에 파동이 무량함이 예컨대 아침 햇살이 비출 때 창문 틈으로 한 줄기 광선이 들어오면 그 전에 드러나지 않던 미세한 먼지들이 하나하나 밝게 드러나는 것과 같다.
이 식의 본체가 담연해서 허공과 같기 때문에 제8담식第八湛識이라 하고 만유를 발생하게 하는 원소가 되기 때문에 심왕식心王識이라 하며 허공의 공기에 모든 원소와 유정과 무정의 모든 만유의 종자를 품고 있기 때문에 함장식含藏識이라 하고 과보에 따라 달리 이루어지는 성질이 많기 때문에 이숙식異熟識이라 하니 이는 아래 인생관문(人生關)관關이란 투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을 분별해서 밝힐 때에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이 식의 파동이 무량해서 각종의 분자를 만들어 내니 비유하자면 해가 공중에 있음에 허공과 세계가 하나의 광명으로 되었다가본래의 진심에 비유한 것이다. 홀연히 해가 서쪽으로 지니 허공과 세계를 암흑으로 되게 한 이 암흑이 있으나 질애質碍는 없는 것과 같다. 이는 아뢰야식의 변환력變幻力으로 무변한 허공이 성립됨을 비유한 것이다. 완강하게 비어 있는(頑虛) 가운데 완강하게 어두운(頑然冥昧) 기운의 분자가 여러 종류 발생하니 허다한 공기가 이로부터 시작된다. 이 공기에 파동이 깊숙이 흘러서 머무르지 않고 변환함이 무쌍하므로 세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 진심의 성품바다에는 본래 공과 유가 없으나 본래 밝은 성질을 미혹하여 무명이 일어나고 무명식無明識으로 말미암아 경계가 생기고 경계로 말미암아 본래의 묘하게 밝은 성품(竗明性)이 가려지며 본래의 묘하게 밝은 성품이 가려지는 것으로 말미암아 완강한 공(頑空)과 지각知覺의 식이 분리되어 건립된다. 공과 지각이 분립된 것으로 말미암아 안으로는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이 생기고 바깥으로는 지대, 수대, 화대, 풍대로 이루어진 세계와 국토를 건립하는 것이니 미혹되고 완강한(迷頑) 망상으로 해서 차별적인 건립(安立)이 있게 된 것이다. 미혹되고 완강한 망상이 응결됨으로써 완강하게 어두운 무기無記의 공기에 모든 분자가 발생하여 무정국토가 성립되고, 망식의 지각이 항상 흘러들어 머무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유정의 중생이 성립되는 것이다.
묘하게 밝은 진심의 성품바다에 본래 구족된 묘한 밝음이 무명풍풍風은 동기에 있어서 으뜸이 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또는 목木을 낳는 원소라고 한다.의 일어남으로 인해 망령된 밝음(妄明)망령된 밝음은 업식이니 이 식의 파도가 일어나므로 모든 종류의 식의 파도가 좇아서 일어난다.(팔식의 체)의 파도가 출렁이며 공한 거품(空漚)이 발생한다. 이 완강한 공(頑空)의 체가 다 어둡기 때문에 어두운 성질과 망령된 밝음의 체가 서로 어긋나서 항상 충돌하여 바람이 발동한다. 이는 밝음과 어두움이 서로 어울려 불각심不覺心이 일어난 것에 기인한 것이니 마땅히 알라. 세계의 모든 바람(風)은 다 망령된 마음의 동요에 감응해서 생긴 것으로 세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풍륜에 의지하여 머문다. 망령된 밝음은 수水의 원소이고 어두움은 토土의 원소이며 밝음과 어두움의 상충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곧 풍륜이다. 이는 다 마음의 동요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다. 모두 유형적 세계가 성립되기 이전의 무형적 시대에 그 세계에서 성립된 원소를 말한 것이다. 이 원소로 말미암아 유형적 세계에 수륜水輪과 풍륜風輪이 성취되었다. 인간이 풍륜으로써 이 몸을 거두어 지키지 않으면 굽히고 펴는 동작을 할 수가 없어서 차갑게 뭉친 흙덩이같이 죽은 물건이 될 것이며 세계를 풍륜이 거두어 지켜 주지 않으면 움직이고 굴러가서 의지하여 머물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무명(팔식)은 곧 불각의 업식이다. 업식의 환변력幻變力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무량한 갖가지 원소를 발생한다. 완강하고(頑然) 아득한(冥漠) 기운의 분자를 발생시킴에 오직 탁하고 오직 어두울 뿐인 대기에 마음이 움직임으로 해서 공의 어두움과 망령된 밝음이 혼돈하여 있게 된 것이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잠에 취하게 됨에 혼미한 마음을 내다가 식이 견고한 집착을 공고히 하기 때문에 장애가 성립하는 것과 같다. 망령된 각과 물질(有物)이 서로 눌러서 이로 인해 곧 일체의 견고한 질애의 형상을 감득하는 것이다. 이는 토와 금이 발생하도록 하는 원소이다. 토와 금이 모두 이 견고한 성품에 속한다. 금은 이 지대의 정제된 참다운 체가 된다. 이는 실로 신령한 마음의 불가사의한 작용력이며 업에 감응한 필연적인 이치이다. 이는 천지 이전의 무형無形의 때에 지대의 원소로 말미암아 유형有形의 지대가 성립된 것이다. 이것이 망령된 마음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로 하늘이나 신이 있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화대는 앞의 풍과 금의 2대가 변전하여 생긴다. 굳게 집착堅執하는 망령된 각과 요동하는 망령된 밝음이 질애를 건립해서 이미 생긴 금과 이미 이루어진 풍풍은 목木의 원소이다.이 서로 마찰하기 때문에 화火를 일으킨다. 견고함과 움직임,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마찰하고 흔들림으로써 전기가 그 가운데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화가 발하는 원인이다. 대체로 화는 세계와 국토를 보존하고 세계국토를 포용하고 굴리는 작용은 없고 다만 변화를 이루는 공능만 있다. 이상의 풍, 금, 화 3대가 비록 서로 상대하여 변전해서 생기지만 통틀어서 망령된 각과 망령된 밝음의 마음을 가지고 치우쳐서 일어나는 것이 명백하다.
수대는 금과 화의 2대로 말미암아 발생하니 이를 보명금寶明金이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밝은 보석이 습윤의 바탕을 갖고 있어서 구슬의 빛이 능히 물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모든 구슬의 밝은 습윤의 성질로써 달빛을 대하면 물이 생긴다.화는 무덥고 숨 막히는 기운이 있어서 능히 수를 내니 한창 뜨거울 때에 만물이 증기를 많이 쏘이면 물을 내는 것과 같다. 보배로운 밝은 금이 습기를 내고 화의 빛은 위로 증기를 뿜어 물을 만든다. 그러므로 수륜이 시방세계를 둘러싼다.
총괄해서 논하자면 만법이 오행五行으로부터 변화하고 오행은 망령된 각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까닭에 세계의 일어남은 밝은 알음알이(明覺)에서 시작하여 풍, 금, 수, 화로부터 만물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의 밝음이 식근본무명이니 곧 제8식이다.을 발해서 1수一水와 6수六水를 낳으며 망령된 밝음이 식으로 말미암아 완강하고 아득한 공의 어두움을 이룬다. 공의 어두움이 이미 맺어짐에 5토五土와 10토十土를 낳으며 밝음의 6수六水와 어두움의 5토五土가 상대하여 망령된 지각(妄知)이 동요하기 때문에 3양목三陽木과 8음목八陰木을 낳아서 풍도 되고 목도 된다.8)
그러므로 세계의 제일 밑에 풍륜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또 공의 어두움의 10음토十陰土와 요동치는 풍의 3양목三陽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고 밝은 4·9금四九金을 낳으며 요동치는 풍의 8음목八陰木과 견고한 밝음의 9양금九陽金으로 해서 변화하는 2·7화二七火를 낳으며 보배로운 밝음의 4음금四陰金과 불빛의 양7화陽七火로 해서 1·6수一六水를 낳는다. 위로 오르는 화의 음2화陰二火와 아래로 내려가는 물의 1양수一陽水로 해서 공의 어두움의 5·10토五十土를 낳으니 이 오행이 상생하여 만물을 서로 이루고 서로 극복해서 만물을 휩쓴다. 마음에는 생·주·이·멸이 있어서 항상 옮겨 가서 머물지 않으니 이로 인해 우리의 몸에 생·노·병·사가 윤회한다. 진심의 성품바다에 망식의 파도가 옮겨 흘러서 머물지 않으며 이로 인해 세계는 성成·주住·괴壞·공空의 윤회가 있으니 천지만유에 윤회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또 밝음과 어두움이 상대하여 불각심이 일어나기 때문에 풍륜을 이루고, 공의 어둠의 움직이는 마음과 각의 밝음의 굳게 집착함으로 인하여 금륜을 이루며, 견고한 각과 망령된 요동침의 번거로운 수고로 인하여 화를 감득하고, 견고한 각으로 말미암아 식을 낳으며, 번거로이 수고하여 덥히고 정情을 쌓아서 애愛를 발생함으로 수를 감득한다. 토륜 아래는 금륜을 지으니 금륜이 그와 한가지인 지대가 된다. 금륜 아래 수륜은 풍륜에 의지하고 풍륜은 허공을 의지하며 허공은 무명을 의지하고 무명은 본각을 의지하니 만법이 다 진망화합심眞妄和合心을 의지하여 발생한다.진망화합심은 아뢰야식이 최초에 참된 성품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진망화합심이라고 한다.
또 지의 성품이 견고한 질애이기 때문에 견고함을 세운다(立堅)고 하니 높은 것은 산이 되고 깊은 것은 바다가 된다. 높은 것과 깊은 것이 다 토에서 비롯된 것이라 물속 언덕(水阜)은 섬(州)이고 모래톱(沙汀)은 못(潭)이다. 각의 밝음에서 비롯하여 오행을 감득한 까닭에 망령되게 교섭하여 발생하나 서로서로 종자가 된다. 토는 수와 화를 말미암아 생긴 것이니 자식이 부모의 기운을 나누어 받는 것과 같기 때문에 바다에서 불이 일어나고 못으로 물이 흘러든다.
대체로 오행은 남편이 능히 이김으로써 처를 삼으니 남편이 아내보다 뒤처진 다음에야 음양이 화합하여 자식이 생긴다. 물이 불보다 약해야 산이 되고 흙이 물보다 약해야 나무가 된다. 산에 있는 돌은 수와 화의 기운을 나누어 받은 까닭에 돌끼리 서로 부딪치면 불이 생기고 또 산에 있는 돌을 녹이면 물을 이룬다. 목은 토와 수의 기운을 나누어 받은 까닭에 나무를 태우면 흙이 되고 또 나무를 꼭 짜면 물이 생긴다. 세계가 상속하는 원인이 이로부터 비롯된다.
답해서 말하기를, “그대는 항상 갖가지 마음을 일으키니 그대의 마음이 생길 때에 스스로 ‘내가 생긴다’고 말했던가? 그대의 마음이 멸할 때에 ‘내가 멸한다’고 말했던가? 이와 같이 일체법이 생길 때에 자기의 생겨남을 말하지 않으며 일체법이 멸할 때에 자기의 멸함을 말하지 않으니 일어나는 것은 오직 법이 일어나는 것이고 멸하는 것도 오직 법이 멸하는 것이다.”
첫째, 진심성품의 체(眞心性體). 인간의 본래의 각성을 표시한다. 둘째, 불각不覺. 제8아뢰야식의 체이니 이 불각으로부터 세 가지의 미세한 상(三細相)이 생긴다. 셋째, 생각이 일어남(念起). 업의 미세한 상이니 참된 성품의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저절로 생각이 일어난다. 넷째, 견해가 일어남(見起). 능견의 미세한 상이니 곧 전상轉相이다.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능견상이 있다. 다섯째, 경계가 나타남(境現). 경계의 미세한 상이니 견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근根과 몸과 세계가 망령되게 나타난다. 이상의 업상과 전상과 현상의 세 가지 미세한 상(위의 셋째, 넷째, 다섯째)에 의하여 다음의 여섯 종류의 거친 상(麤相)이 일어난다. 여섯째, 집법執法. 두 종류의 상으로 나누어 풀면 1) 지상智相법집法執이 함께 생긴다.과 2) 상속상相續相법에 집착하여 분별한다.이니 경계가 자기 마음으로부터 일어남을 알지 못하고 실제로 있다고 집착한다. 일곱째, 집아執我. 두 종류의 상으로 풀이하니 1) 집취상執取相아집我執이 함께 생긴다. 2) 계명자상計名子相아집에 따른 분별이다.이다. 법에 대한 집착에 확고하게 머물기 때문에 나와 남이 다른 것을 보고 스스로를 분별하여 나로 삼는다. 여덟째, 탐·진·치. 기업상起業相이니 아집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마음에 맞거나 거스르거나 하게 되어 탐심과 치심을 내서 미욱한 어리석음으로 견주어 헤아린다. 아홉째, 조업造業. 탐·진·치의 삼독으로 말미암아 선, 악 등의 업을 짓는다. 열째, 수보受報. 이미 지은 업은 달리 도모하기 어려운 까닭에 업에 얽혀 선, 악 등에 따라 받는 여러 가지 과보의 차별이 불가사의하다.
위대하도다. 우리 부처님의 도는 고금에 지극히 바르고 거짓이 없는 도이고 중생(生靈)의 큰 근본이다. 비유하면 어룡이 물이 없으면 그 수명이 다함과 같아서 세간 사람들은 부처님이 없으면 생명은 물론이고 자기마저 없을 것이다. 불佛은 곧 각覺이다. 개개의 인간이 다 최상의 청정한 본지풍광本地風光의 대원각성大圓覺性이니 이 본성을 떠나서는 인간이니 신이니 만물이니 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진심의 성품을 잃은 것으로 해서 진眞·망妄의 두 뜻을 세우니 진여문과 생멸문이다. 진은 불변의 뜻이고 망은 연을 따른다(隨緣)는 뜻이다. 진이 불변함에서 비롯했기 때문에 망의 체가 본래 비어서 진여문이 되고 진이 연을 따르므로 그 때문에 망식이 성립하여 생멸문이 된다. 이 불생멸심不生滅心과 생멸식生滅識이 화합해서 불각을 성립하니 아뢰야식이라 이름한다. 이 식은 인간의 태어남을 일으키는 원소이며 또 중생을 만드는 근본이다.
3) 식에 관한 총론(識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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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識이라함은據末하야源을尋할진대位가第八에當한故로八識이라하나니下와如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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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식이라고 하는 것은 끝을 기준으로 해서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그 위치가 여덟 번째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8식이라 하니 아래와 같다.
이 팔식 외에 다른 것은 없다. 비유하자면 한 그루의 나무에서 뿌리는 제8식과 같고 몸은 제6식 및 제7식과 같으며 가지는 신식, 설식, 비식, 이식, 안식 등과 같다. 식은 저마다 의지하는 근이 있으니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이다. 이 여섯 종의 식은 이 육체로써 의지하는 근을 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집 안에 거주하고 있는 것과 같아서 이 집은 주인 편에서 앉아서 본다면 집이 주인의 의지처(所依)가 되고 주인은 집에 의지하는 주체(能依)가 된다.
제7식은 자체가 따로 없어서 위로는 제8식에 합하여 제8식이 제7식의 연이 되고(所緣) 아래로는 제6식에 합하여 제6식이 제7식의 연이 된다. 비유하면 벌레가 나무에서 생겨 나무를 먹는 것과 같아서 제7식이 제8식으로부터 나와서 도리어 제8식을 반연하는 것이다. 제8식이 의지하는 것은 제9아타나식阿陀那識이다.번역하면 순정식純淨識이다. 이 제9식은 비유하자면 바닷물이 깨끗하고 맑은 것과 같다.
또 식에 연이 되어 주는 경계(所緣境)가 있으니 안으로는 육안의 근과 밖으로는 청, 황, 적, 백, 대, 소, 장, 단 등 갖가지 상을 대하면 식이 그 가운데 생겨서 갖가지 상相과 무상無相을 역력히 살피고 알아서(鑑覺) 요별了別하는 것을 안식이라고 한다. 눈앞에 대하는 갖가지의 모든 상을 색진色塵이라 한다. 이근에 대한 성진聲塵과 비근에 대한 향진香塵갖가지 냄새를 다 진塵이라고 한다.과 설근에 대한 미진味塵과 (신근에 대한 촉진觸塵과) 의근에 대한 법진法塵이 있으니 이를 가리켜 육진이라 한다.
제8식에 세 가지 이름이 있으니 첫째는 야뢰야식번역하면 장藏이다.으로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의 뜻이 있다. 능장이라는 것은 ‘지종持種’의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법의 종자를 보존해서 자체 내에 품어서 간직하는 까닭에 함장종자식含藏種子識이라 한다. ‘수훈受熏’의 측면에서 보면 제6식과 제7식의 두 가지 식의 갖가지 선악 등의 잡염雜染을 훈습하여 받기 때문에 이름을 소장이라 한다. 제7식은 생각마다 아뢰야식을 나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집장이라 하니 삼장을 갖춤으로써 자상을 삼는다.
일명 심왕식心王識이라 하니 모든 심소心所의 왕이 되기 때문이다. 일명 이숙식異熟識이라 하니 금생에 업을 지어서 내생에 업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이숙이라 한다. 인간계에서 업을 지어서 이류異類축생, 천상, 지옥 등의 인간 외의 나머지 세계를 말한다.에서 과보를 받음으로 이숙식이라 한다.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인의 종자가 변해서 과가 무르익는다는 것이고, 둘째, 금생에 업을 지어서 내생에 과를 받는다는 것이며, 셋째, 인은 선악에 통하지만 과는 오직 무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팔식은 말나야식에 의지하여 종자를 연으로 해서 근을 지닌 몸(根身)과 기세계(器界)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무엇을 가리켜 종자라고 하는가? 종자는 근본이 되는 팔식 가운데 스스로의 과보를 일으키는 공능의 차별(自果功能差別)을 말한다. 이는 근본 팔식과 거기서 생긴 과보로 말하자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님을 가리킨 것으로 그 둘은 체와 용, 인과 과이니 그 이치가 당연히 그러하다. 비록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지만 실제로 있다. 가법假法은 무와 같아서 인연이 아닌 까닭이다.
유루와 무루의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본유本有로서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온 것으로 이숙식 가운데 색·수·상·행·식의 오온 및 색·성·향·미·촉·법의 육진과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을 합한 십이처와 여기에 여섯 종류의 식을 합한 십팔계를 생기게 하는 공능의 차별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시기始起이니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와서 자주 현행하여 습관이 된 것을 말한다. 모든 유정이 무시이래로 무루종자가 있으나 이는 습관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므로 법이 본래 그러함에 따라 유루를 성취한다.
무루식은 무루종자가 연이 되고 유루식은 유루종자가 연이 된다. 근을 지닌 몸이 있다는 것은 다섯 가지의 색근(五色根)과 그 근들의 의지처를 말하니 오근은 앞에 나온 것과 같고 근의 의지처라는 것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부진근浮塵根이다. 기세계라는 것은 곧 색 등의 오경五境으로 안의 종자(內種子)를 인연으로 삼고, 마음 안에서 변하여 현행한 사대四大를 증상연으로 삼아 근에 상응하는 경계(根境色)를 만든다. 이는 마음 밖에서 지어진 것이 아니며 법을 연으로 삼음에 있어서 형形과 영影과 가법假法을 연으로 삼지 않고 오직 실제의 경계만을 연으로 삼는다.
팔식이 능장과 소장과 집장의 뜻을 갖추어 잡염과 더불어 서로 연이 되므로 유정이 나라고 집착하여 잡염의 종자를 능히 지키니 종자를 소장이라 하고 이 식은 능장이다. 이 염법이 훈습되고 의지처가 됨(所熏所依)에 염법의 이름이 능장이고 팔식은 소장이 된다. 제7식이 더러움에 오염되어서 집장이 되어 아뢰야식을 안에 있는 나로 삼기 때문에 이름이 집장이 된다. 제7식과 제8식의 행상이 미세해서 안으로 연이 상속하여 무시이래로 끊어진 일이 없으나 제7식은 현량現量이 아니고 제8식은 현량이다. 법수를 밝혀 분별하자면 한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보는 사람이 혼란스런 마음을 낼까 봐 염려하여 간략히 설명하였다.
제7식의 말나야는 자성을 더러움으로 물들인다는 뜻이며 항심사량恒審思量한다는 뜻이니 항은 중단이 없다는 것이고 심은 나(我)에 대한 집착이며 사량은 생각(意)이니 찰나마다 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전송식傳送識이라고 하니 칠식이 따로 자체가 없어서 위로 팔식의 내정內情을 지녀서 아래로 육식에 전하고, 아래로는 육식의 외정外情을 지녀서 위의 팔식에 전한다. 또는 칠식을 간략히 말하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안으로 현식을 헤아려 나(我)를 삼으니 팔식에 속하고, 밖으로는 분별사식으로 헤아려 이를 나로 삼으니 육식에 속한다. 나는 일신一身의 주재主宰를 말하는 것으로 ‘주’는 스스로 존재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고 ‘재’는 결단력이 있다는 것으로 다 나를 이룬다. 제7말나야식에 의하여 견분을 반연하는 것을 말한다.
말나는 의意이니 사량의 뜻이 된다. 사량으로 성품(性)을 삼으며 또 행상(相)을 삼아 아상我相에 집착해서 항상 살피고 헤아린다(恒審思量). 항恒은 육식에는 없으니 육식은 오직 살피고 생각하는 심사審思만 있어, 항상하지 않고 중단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심사란 뜻은 다시 팔식에는 없으니 팔식은 항이고 심사는 아니다. 또 항과 심사량이 모두 오식에는 없으니 이는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살피고 헤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제7식은 항심사량하는 업을 기준으로 해석한 까닭에 지업석持業釋이라 하고 제6식은 요별을 위주로 해석한 까닭에 의주석依主釋이라 한다.
제6식은 요별의 뜻이니 이 식은 수많은 경계에 대해 요별을 위주로 살펴서 안다(鑑覺). 집執과 수受의 두 뜻이 있으니 각각 모든 종자와 근을 지닌 몸을 말한다. 모든 명상名相의 분별습기를 종자라 하고 모든 색근과 근의 의지처를 신근身根이라고 한다. 이 둘이 모두 식에 집수되어 자체를 이루어서 안위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제7말나야식에 의하여 모든 법(諸法)을 요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이름하니 말나는 번역하면 의意이며 제7식을 가리킨다. 제법은 색법, 심법, 유위법, 무위법 등의 삼세의 모든 법을 말한다. 분별하면 넷이 있으니 명료明了의식, 정중定中의식, 독산獨散의식, 몽중夢中의식이다. 처음의 명료의식을 또한 오구五俱의식이라 하고 정중의식과 몽중의식은 모두 독두獨頭의식이라 한다. 또 오구의식이라는 것은 오식을 도와서 일어나게 하며 오식으로 하여금 명료하게 경계를 취하게 한다. 정위定位의식은 오직 현량이 되고 산위독두의식11)
은 비량比量과 비량非量에 통하고 오구의식은 오직 현량現量이거나 또는 비량比量과 비량非量이다.
신식은 몸(身根)이 식의 의지처가 되고 촉경觸境이 식의 연이 되어(所緣) 요별식이 생기기 때문에 신식이라 이름한다. 의지처가 되는 깨끗한 근(淨色)을 신근身根이라 하니 신은 적취積聚와 의지依止의 뜻이다. 모든 근이 사대로 만들어지고(大造) 적취로 이루어지나 이제 이 신근이 많은 법에 의지하여 적집된 것이기 때문에 홀로 신근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촉觸은 능히 조작하는(能造) 사대종자(大種)와 임시로 조작된(所造) 감촉을 말하는 것이다. 지·수·화·풍을 능조라고 하니 굳은 것이 지이고 습기가 수이며 가벼운 움직임이 풍이다. 소조의 촉은 매끄러운 성질, 거친 성질, 가벼운 성질, 무거운 성질, 연한 성질, 느림, 급함, 차가움, 배부름, 힘, 열등함, 연민, 가려움, 끈끈함, 병, 노, 사, 피로, 호흡, 용감함이다. 조작된 것은 거짓된 것이고 사대는 참된 것이다.
설식은 혀(舌根)가 식의 의지처(所依)가 되고 맛(味境)이 식의 연이 되어서 요별의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설식이라 이름한다. 의지하는 정색淨色을 설근이라 하며 맛보는 것에 그 뜻이 있으니 기갈을 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맛에는 쓴맛, 신맛, 단맛, 짠맛, 담백한 맛과, 입맛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 하나같이 서로 거스르는 것과 하나같이 함께 일어나는 것, 화합한 것과 변화된 것을 말한다.
이식은 귀(耳根)가 식의 의지처이고 소리는 식의 연이 되니 근과 경계가 상대해서 요별이 생기는 것을 이식이라고 한다. 이근은 지·수·화·풍의 사대로 이루어진다. 이식의 의지처는 청정색이다. 귀가 능히 듣는 근이 되기 때문에 이근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소리가 되는가? 내성, 외성, 내외성, 뜻에 맞는 소리와 뜻에 맞지 않는 소리, 하나같이 서로 거스르는 소리를 말한다. 메아리(響聲)는 거짓된 것이고 나머지 소리는 참된 것이다.
안식眼識은 눈(眼根)이 식의 의지처가 되고(所造) 색경色境이 식의 연이 되어 요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안근의 식이라 한다. 안근은 지·수·화·풍의 네 가지로 이루어지고 안식의 의지처는 청정색이다. 눈은 비추어서 아는 것이니 색경을 비춘다. 근은 증상增上과 출생의 뜻이 있으니 증상연이 되어야 안식을 일으키기 때문에 근이라고 하며 안근뿐만 아니라 이근 내지 신근 등도 역시 이에 준한다. 그러나 안근 등은 현량이 되지 못하고여래는 제외 식을 발함으로써 대상을 비교해서(比量) 아는 것이니 이는 과果로 인因을 아는 것이며 작용으로 말미암아 체體를 가늠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이 색이 되는가? 이는 곧 현색, 형색, 표색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풀이하자면 아래의 31가지참된 것과 임시적인 것을 합해서 31가지다.가 된다. 현색에 열세 가지가 있으니 청, 황, 적, 백, 그림자, 빛, 밝음, 어두움, 연기, 티끌, 구름, 안개, 공이다. 형색에 열 가지가 있으니 길고 짧고, 네모나고 둥글고, 거칠고 곱고, 높고 낮고, 바르고 바르지 않은 것이다. 표색에 여덟 가지가 있으니 취하고 버리고, 굽히고 펴고,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이다. 네 가지 현색청, 황, 적, 백은 참된 것이고 나머지 색은 다 거짓된 것이다.
전오식이라는 것은 제8심왕식이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의 오근의 문 앞을 비추어 오식이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밝은 거울에 온갖 상이 비쳐서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오식도 그 문 앞에 경계를 대하면 다만 비출 뿐이고 요별하고 살펴서 아는 것이 없다. 요별하고 살펴서 아는 것은 제6의식이니 의식이 오식과 합하면 육식이 되어 능히 요별하고 살펴서 안다.
원래 식의 바다가 광대무변하고 식의 파도의 크고 작은 물결이 변화무쌍하여 천지를 광대하게 창조하고 허공을 건립하며 육도육도는 천, 인,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을 말한다.를 환영 같은 변화로 나타낸다. 인간의 태어남을 구성하는 것이 둘이 있으니 심식心識과 신근身根이다.
첫째, 마음(心)에 사온四溫을 갖추었으니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다. ‘수’는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경계가 마음에 거슬리거나 마음에 맞아서, 그것을 잃으면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그것을 얻으면 기뻐한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다 받아들일 수 있으니 이를 수온受蘊이라고 한다. ‘온’은 쌓아서 모아 놓는다(積聚)는 뜻이다. ‘상’은 생각(思想)이니 시큼한 매실 이야기를 들으면 입에 침이 나오고, 깎아지른 절벽을 밟는 생각을 하면 오금이 저리는 것처럼 이 상온想蘊은 마음속 생각에 무량한 식견을 쌓아 간직한 까닭에 상온이라 한다. ‘행’은 강물이 간단없이 흐르는 것과 같아서 마음에 생·주·이·멸이 옮겨 가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식의 파도가 옮겨 가서 머물지 않기 때문에 행온行蘊이라고 한다.행은 생·주·이·멸을 쌓는 것이다. 식識은 광대한 식의 바다가 불가사의하게 수많은 종자를 머금어서 매번 새롭게 발생시키고 새롭게 소탕시켜서 무더기의 쌓임이 무량하기 때문에 식온識薀이라고 한다. 또 묘한 밝음을 덮어서 가리기 때문에 또한 오음五陰이라고 한다.
대체로 참된 성품이 비록 몸의 근본이 되지만 몸이 생기는 것에는 원인이 있어서 아무런 근거 없이 몸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성품(性)이 일어나서 모습(相)을 이룸에 반드시 여러 연을 갖추어야 하니 팔식과 혹과 업 등이 다 인연이 된다. 고요한 물이 바람이라는 연을 빌려서 바야흐로 파도를 이루듯이 불각인 무명에 의해서 최초에 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업상業相이라고 한다. 이 생각이 본래 없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능견能見의 식을 이루고 소견所見의 경계상境界相이 나타난다. 이 경계가 내 마음으로부터 망령되게 나타난다는 것(妄現)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고정되게 있는 것(定有)이라고 집착하여 법에 매달리니 육추六麤가운데 지상智相과 상속상相續相이다.
이러한 것 등을 집착하기 때문에 나와 남의 다름을 보아 문득 아집을 이룬다. 아상我相을 집착하기 때문에 여러 경계가 탐애貪愛의 성정에 맞으면 욕심으로써 채우고, 여러 경계가 성정에 거스르면 성내고 싫어하여 서로 해를 끼치고 괴롭힐까 봐 두려워하여 어리석음의 성정이 거듭거듭 증장하니 이것이 아집의 구생과 분별이다. 그러므로 불선不善을 행한 자는 심신이 이 악업을 좇아서 악도에 태어나고 선업을 행하면 선처에 태어나니 이는 지은 업에 따라 받는 과보(造業受報)이다.
세계가 일어남에 밝음과 어두움이 상대하여 풍륜의 종자(風輪種)가 되며 바람의 요동에 장애가 나타난 것으로 인하여 금륜의 종자(金輪種)가 되며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여 불의 종자(火大種)가 되며 금과 불이 물의 종자(水大種)가 되며 불과 물이 토륜의 종자(土輪種)가 되며 물과 흙이 초목의 종자(草木種)가 된다는 것은 이미 밝혔다. 이제 세계중생의 일어남을 총괄해서 밝히겠다. 세계는 각의 밝음(覺明)의 견고한 집착으로 세계가 발생하고, 중생은 각명의 경계에 대한 망령됨(所妄)소所는 경계이다.으로 중생이 발생하는 것이니 세계와 중생은 일념이 미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허공에는 실은 꽃이 없으나 눈병으로 인하여 헛꽃(空華)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아서 청정본성에는 중생이 본래 공하지만 미혹한 마음이 망령되게 움직임으로 해서 경계에 대한 명망明妄명망은 밝은 망령됨이다.이 생기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깨끗하고 밝은 바른 눈에 청색유리를 갖다 대면 눈에 가리는 물건이 있어 장애하므로 망명妄明망명은 망령되게 밝은 식이다.을 발해서 청색세계를 이루며 황, 적, 백, 흑색의 유리를 눈에 갖다 대도 역시 그와 같이 망령된 밝음을 발해서 황, 적, 백, 흑색의 세계를 이루는 것과 같다. 본유本有의 깨끗하고 밝은 성품의 체(淨明性體)가 미망으로 말미암아 망령된 밝음의 경계를 발함에 경계의 망령됨이 이미 성립되어 식의 환변력 때문에 밖으로는 지·수·화·풍의 사대종자로 세계국토와 바다를 건립하고, 안으로는 지·수·화·풍의 사대종자로 인간의 신근身根을 이루니 세계가 일어나는 처음에 인간은 원래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누에가 실을 토하여 자기 집을 스스로 만드는 것과 같아서 본식의 업연력業緣力으로써 안의 사대의 변화를 통해 신근을 성립(化成)하는 것이다. 비단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 미물의 함식含識13)
도 세계가 일어난 처음에는 다 화생化生인 것이다. 비유하자면 하늘이 오랫동안 비를 내리니 큰 항아리에 빗물이 가득 찬 지가 오래되어 물고기와 벌레가 그 가운데 화생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하늘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비라는 의보依報가 생김에 물고기라는 정보正報가 자업으로 가탁할 빗물의 인연을 얻어서 스스로 화한 것이니 세계가 일어난 처음에 인간이 화생으로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만일 다른 주장을 한다면 이는 전부 미신이라 할 것이다.
4) 인간의 태어남의 원인이 다섯 가지 혼탁(五濁)으로 성립됨을 분별함(人生의原因이五濁으로成立됨을辨함)
(1) 안의 사대로 인간의 다섯 가지 혼탁(五重濁)의 원인을 총괄해서 밝힘(內四大을가저人生五重濁의因을總明)
대체로 참된 성품이 본래 스스로 신령하고 밝아서(靈明) 이름과 모양(名相)으로 알 수가 없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 없다. 널리 둘러싸서 밖이 없고 깊게 파고들어 안이 없으며 그 밝기를 가늠하고자 해도 수백 수천의 일월로 비유할 수 없고 그 체를 가늠하고자 해도 지智와 식識으로 미칠 수 없다.
비유하자면 맑은 대해에 대풍이 불어와 출렁이며 흔들려서 잠시도 머물지 않아 바닷물 위에 물거품이 생기는 것과 같다. 식의 바다에 풍파가 요란하여 어두움(晦昧)이 생기면 어두움이 단단하게 뭉쳐서 물질(色)이 되어 거듭거듭 안으로 사대의 원인을 이루니 이것이 첫 번째 혼돈이 일어날 때의 모습이다. 물이 비록 텅 비어 밝게 스스로 비추는 힘(虛明自照)은 잃어버렸으나 그 습한 성질은 잃어버리지 않는 것과 같아서 인간도 이와 같이 청정한 본성이 텅 비어 밝게 스스로 비추는 힘은 잃어버릴지라도 식의 바다와 식의 파도의 허령한 지각(虛靈知覺)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보고 듣고 아는 것의 본성은 맑은 물과 같고 안의 사대와 밖의 오대는 티끌이나 흙과 같다.오대五大는 지·수·화·풍·공이다. 어떤 사람이 이 흙을 맑은 물에 넣고 휘저으면 흙은 본래의 엉기는 성질을 잃고 물은 청결한 본래의 모습을 숨기며 혼탁의 경중이 달라서 다섯 가지로 혼탁의 차이가 나게 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허공을 봄에 허공이 시방에 두루할 때 허공이 안식에 의해 나타나므로 허공을 보는 봄(見)도 그와 함께 허공에 두루한다. 그러나 그 각각이 자체가 없으므로 허공을 보는 봄이 허공에 두루하나 차가움, 뜨거움 등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이 참된 성품을 발해서 근원으로 돌아가면 시방 허공이 다 소멸하니 어찌 공空과 견見이 있겠는가? 이제 공을 대하여 봄에 공이 텅 비고 어두운 물질이라 공과 견을 나누기 어렵다. 공이 있으나 체가 없고 견이 있으나 지각이 없어서 공과 견이 서로 짜여 있는 것이 날줄과 씨줄이 긴밀하게 짜여 있는 것과 같다. 서로 짜여서 망집을 이룸에 이를 겁탁이라 한다. 산하대지에 성, 주, 괴, 공의 겁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래 어두운 허공의 때(空時)가 겁탁으로 인한 것이다.이 겁탁은 곧 공겁탁 또는 색음色陰이니 어두운 공색이 바로 이 색음이다.
담담하고 원만한 성질에 안으로 사대의 몸(身相)이 본래 없으나 사대를 받아서 몸의 형상을 얻는다.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見聞覺知)이 사대의 장애로 말미암아 형상에 걸리게 된다. 네 가지 성질네 가지 성질(四性)은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이다.이 걸림이 없으나 사대에 막혀서 걸림이 있게 되었으며 사대가 지각이 본래 없으나 네 가지 성질에 휘둘려 본래 정情이 없는 사대로 조직된 몸이 침으로 찔리면 통증을 지각하니 이는 사대오행에 구속당하게 된 것을 말한다.
수, 목, 화로 말미암아 다만 견見만 성립하니 수신경水腎經은 목간경木肝經을 생한다. 안근에 응하여17)
화력으로 말미암아 안근이 빛을 발하여 능히 볼 수 있음에 갖가지 색상을 발한다. 금, 수, 목으로 말미암아 소리를 들으니 금폐경金肺經은 수신경水腎經을 생산하고 수신경은 목木을 생산하니 수신경이 귀에 응해서18)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소리를 듣는다. 이로 인하여 중생이 ‘나’라는 생각(我見)을 굳게 일으키고 모든 견해의 주인으로 삼음에 육십이견이 점차 발생하니 이를 견탁見濁이라 한다. 나머지는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혼탁(濁)은 상온(想陰)에 의지하니 과거의 경계를 기억하고 현재의 경계를 의식하며 미래의 경계를 반연하여 성품이 지견知見을 내어서 육상六想을 취하고 육진六塵을 연으로 삼으니 육상은 곧 육식이 망령되게 지각하는 것이다. 육진은 현재 존재하는 색, 성, 향, 미, 촉의 오진五塵과 법진法塵을 합하여 말한 것인데, 법진은 독두의식獨頭意識19)
이 과거와 미래를 연으로 삼는 것이다. 망령된 지각이 육진의 경계를 떠나면 지각에 자상이 없고 육진이 망령된 지각을 떠나면 육진이 자체가 없기 때문에 육진과 망령된 지각이 서로서로 의존하여 있는 것이다. 경계와 지각이 서로 짜여 망령되게 이루어지므로 번뇌탁이라고 한다.
이 혼탁은 행온(行陰)에 의한 것이니 생·주·이·멸이 찰나마다 천류해서 생멸이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은 것을 행온이라고 한다. 지견이 늘 세간에 머물고자 하는 것은 삶이 순습順習을 따르므로 범부가 삶을 탐내지 않음이 없어서이다. 업의 운행이 항상 국토에 옮겨 가는 것은 죽음이 변류變流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범부가 자유로 할 수 있는 몫이 없다.
이 혼탁은 식온(識陰)에 의한 것으로 앞의 견탁은 안의 사대를 가지고 몸으로 총상摠相을 삼아 아견을 나타내 견탁을 표시한 것이고 이것은 육근에 별상別相을 가져 어그러지고 등지게 되어 명탁을 삼으니 총과 별이 부동하기 때문에 견탁과 명탁이 중복되지 않는다. 또 이 명탁은 치우쳐서 제8식을 가리키니 근 가운데 분별이 없는 견체見體가 바로 제8식의 견분이다. 보고 듣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없지만 여러 가지 경계(塵)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함부로 다른 것들이 생기는 것은 사대를 맺어서 육근을 삼아,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서로 떨어져 각기 상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성품의 본체가 서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는 같은 것에 가까워 다른 것이 아니고, 움직임과 작용이 서로 어긋나고 달라서 같은 것도 아니다.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를 결정할 수가 없으므로 이는 기준을 잃은 것으로 한 번은 같고 한 번은 다르기 때문에 날줄과 씨줄이 서로 긴밀하게 짜인 것과 같아서 나눌 수가 없다. 한데 뭉쳐서 막혀 버린 육근 가운데 명에 의탁해서 체용이 함께 자재하지 못함에 문득 명탁이 된 것이다.
총괄해서 논하자면 세계 기원의 처음에 어두운 회매의 공색으로부터 밖으로는 오대五大의 기세계의 혼탁함을 입어서 겁탁이 되고, 안으로는 사대로 이루어진 몸의 혼탁함을 입어서 견탁이 되며, 육진의 연의 작용으로 흐려지게 되어서 번뇌탁이 되고, 신심이 항상 이 국토에서 저 국토로 옮겨 가서 생사에 혼탁함을 입어 중생탁이 되고, 여러 경계에 결박되어서 육근이 다시 융통하지 못함에 명탁이 되는 것이다. 이상의 오탁은 인因에서 분별한 것이고 법화 오탁은 과상果上에서 분별한 것이다.
5) 인간의 신령한 식(神識)이 오고 가고 옮기고 멸함(人生神識去來移滅)십류중생을 다 포함(義含十類衆生)
원래 인간의 식심識心21)
이 망망해서 선업과 악업의 원인이 불가사의함에 선악의 과보도 불가사의하다. 식심의 환영 같은 바다의 풍파로 말미암아 몸을 버리고 육도에서 형상을 받을 때 그 식의 가고 옴도 또한 불가사의하다. 그 신령한 식(神識)이 형태가 없는 것은 비유하자면 풍대風大가 형상이 없으므로 전혀 볼 수 없으나 인연으로 말미암아 형색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모든 수목에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나 바람은 산과 물의 절벽에서 일어나 사물에 접촉하고 나서 소리를 낸다. 그 근본 원인은 희박한 공기의 냉각된 수소가 태양열로 말미암아 서로 맞부딪치고 회합한 인연을 만나 생긴 것으로 이를 풍륜이라 하며이것은 세계가 최초 일어날 때의 풍륜이 아니라 세계가 성립된 후의 현재 바람의 인연이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접촉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저 바람의 체를 볼 수 없으며 또 바람의 손, 발, 눈 등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없으나 저 모든 색 중에서 증익이 뛰어난 곳의 기를 따라서 검은색 또는 하얀색이 된다. 이 신령한 식의 세계도 이와 같이 물질로 볼 수 없으며 또한 식의 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밖에서 들어온 것으로써 체를 삼아서 형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2) 인간의 신령한 식이 몸을 받고 형체를 버림을 분별함(人生神識의受身捨形함을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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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云何로彼處에受身할此神識界가觸을受한法界를得하며何故로此神識界가此身을捨己에觸等을後受하나뇨?
MBC0001_0006_0001V0001P0028b01L
묻기를, “어찌 저 처소에서 몸을 받을 이 신식계가 이미 접촉한 법계를 간직하며 무엇 때문에 이 신식계가 이 몸을 버리고 나서 후에 다시 촉을 받습니까?”
답하기를, “비유하자면 풍계가 능히 향기를 옮기는 것과 같으니 그러므로 알아라. 꽃향기가 바람이 부는 것에 따라 이리로 오되 그 바람계가 실로 꽃향기를 갖고 오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바람이 없이 꽃향기가 오는 것도 아니다. 이 향기가 색이 없고 바람도 또한 색이 없으며 그 향기를 맡는 근도 색이 없다. 이와 같이 죽은 사람의 신령한 식이 옮겨 가고자 함에 촉촉觸 등은 식의 촉, 식의 받아들임, 식의 갖가지 모든 경계과 수受 등과 모든 경계를 지니고 나서몸을 버린 이것의 신령한 식이 업인종業因種을 품는다. 저 세상에서 부모가 화합한 것으로 인해 그 후에 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입태 전에 신령한 식이 밝게 홀로 존재하나 세상 사람들이 입태하여 출생 후에 비로소 지식이 있다. 그 식이 있기 때문에 수受가 있고 촉觸이 있어서 화합하여 이루어짐을 바로 알아야 한다.
사람이 식이 강하기 때문에 향근香根이 있고 향근이 뛰어나기 때문에 뛰어난 향(勝香)이 있다. 식의 뛰어남과 근의 뛰어남이 있기 때문에 두 일의 뛰어남을 볼 수 있으니 이른바 색과 촉이다. 비유하자면 향기로운 숲이 무성하면 그 바람이 많기 때문에 향기로운 꽃이 향기를 지님이 역시 많으니 이와 같이 식이 크면 그로 해서 느낌 역시 크며 느낌이 큰 까닭에 식 역시 크다. 그러므로 이 선과 이 악을 알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화가가 그릴 종이와 비단과 화판 등을 잘 갖추고 난 후에 뜻에 따라서 그리려고 한 것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물감이 없으면 가히 색을 나타내지 못하니 이 신령한 식이 여섯 가지 색(六色)의 몸을 성취하는 것도 이와 같다. 이른바 신령한 식이 눈으로 색을 보지만 실로 색이 없고, 귀로 소리를 들으나 실제로 소리가 없으며, 코로 냄새를 맡으나 실제로 냄새가 없고, 혀로 맛을 아나실제로 맛볼 것이 없으며, 몸이 접촉하여 지각하나 접촉할 것이 없고, 뜻으로 말미암아 사대 등이 있으나 저 역시 색이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경계 안에 색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알라. 신령한 식 또한 색이 없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대체로 사람의 목숨이 다함에 식이 업을 지니기 때문에 업과 명이 다할 때는 비유하자면 적멸삼매에 들려고 하는 사람이 식의 근본이 있음으로 이 식신의 근본을 없애야만 바야흐로 원명적멸한 근본에 들어 안으로 머무르는(內住) 것과 같다. 신령한 식이 몸과 모든 사대를 버림에 오직 염력念力만 있어서 나는 나이고 남은 남이라는 것을 안다. 몸을 버릴 때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념正念이고 다른 하나는 촉觸이다. 몸의 촉에 두 가지 수受가 있으니 하나는 몸의 수(身受)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의 수(念受)이니 죽고 나서는 생각의 수에 따른 촉만 있다.
인간의 식은 비유하자면 종자가 있어서 능히 싹을 내는 것과 같으며 지智를 좇아서 식이 생기는 것을 염念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와 종자를 이름하여 식이라 하며, 촉을 다시 거두어들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아는 까닭에 식이라 한다. 또한 선과 악을 거듭 받아들여 또한 능히 선악의 경계를 아는 까닭에 식이라 하며, 종자를 좇아 싹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 몸을 성취한 까닭에 이름하여 식이라 하는 것이다.
이 식이 몸을 버리기를 마침에 다른 것으로 옮겨 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거울 안에 형체를 비추어 나타내는 것과 같으며 또 진흙 틀 안에 형상을 주조해 내는 것과 같으며 또 해가 나올 때 모든 어둠이 사라졌다가 그 해가 질 때 어둠이 다시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둠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며 또한 항상 고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어둠이 형색이 없으며 느낌이 없어서 가히 볼 수가 없다. 식이 몸을 이루기를 마침에, 어둠이 밝음을 떠나는 것과 같아서, 몸의 태어남도 역시 그러하나 그 사람이 식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신령한 식이 몸을 받는 것은 비유하자면 부인이 태를 받되 자기가 밴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까만지 하얀지, 모든 근이 구족한지 구족하지 못한지, 손발이 반듯한지 반듯하지 못한지 등을 모두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태에 있는 아이는 뜨거운 음식이 닿은 까닭에 뜨거움을 느끼고 나서는 곧 움직이니 이와 같이 식이 가고 오고, 펴고 오므리고, 눈을 뜨고 감는 것이 일찍이 모든 업을 지은 까닭이며, 그런 까닭에 모든 경계의 언어와 기쁜 웃음 등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몸 안에 식이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중생이 자기 몸 안에 머무르는 신령한 식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신령한 식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체 모든 존재로 흘러드나 어느 곳에도 물들어 집착함이 없다. 모든 존재와 식, 육근, 육경, 그리고 이 육계처, 사대처, 오음처의 이와 같은 식 등을 마땅히 알라. 비유하자면 마술사가 나무 인형을 부리되 하나의 기계장치로써 일체의 모든 동작을 행하게 하여 달리고 뛰는 등 갖가지 재주를 보여 주는 것과 같다. 나무 인형이 무슨 인연으로 이와 같은 일을 하는가? 저 능히 부리는 사람이 정교한 지혜의 힘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일을 해내니 저 정교한 행위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력을 사용해서 생긴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몸도 식의 정교한 작용으로 생기는 것이다. 갖가지 몸이 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니 식이 몸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신령한 식이 비록 깨끗하고 더러운 곳에 처하나 항상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으니 비유하면 햇빛이 더럽고 탁하며 추악한 여러 주검을 비추되 그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으며 또 그 추한 더러움이 햇빛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닌 것과 같다. 신령한 식이 처음 생길 때 똥과 같이 더러운 곳에 있거나 또는 그 먹은 것이 깨끗하지 못하거나 또는 돼지와 개 등의 배 속에서 수태가 됐어도 신령한 식은 추한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는다.
식이 몸을 버리고 죄와 복을 받는 것을 비유하자면 바람이 산머리를 좇아서 가장 좋은 향기가 나는 숲 사이로 들어가 향기로운 숲이 바람에 닿게 되면 먼 곳으로 향기가 파급되나 바람의 모습과 향기의 질료가 없는 것과 같다. 바람이 향기를 품고 온 것과 같이 신령한 식이 형태가 없고 선업도 또한 질료가 없으나 식이 업을 품고 오는 것이다. 바람이 추하고 더러운 곳이나 향기로운 곳 등 갖가지 모든 잡다한 곳을 지나오면서 더러움과 향기로움이 갖가지여서 하나가 아니니 식이 업을 지니고 옴도 이와 같다.
또 잠자는 사람이 꿈속에 무량한 수만 가지의 형상과 많은 인간, 축생의 음성을 뚜렷하게 보고 듣지만 깨어나서는 이것들을 하나같이 보지 못하고, 몸도 누운 침상에서 다른 데로 옮겨 간 것이 아니다. 식이 옮겨 가고자 할 때도 꿈속에 많은 것을 본 것과 같아서 신령한 식이 인후와 모든 구멍 및 모공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또한 모든 모공을 찾아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또 달걀 등이 눈앞에 정식情識의 통증이 없으나 당당히 살아 있는 생물이니 알 안에 아뢰야 신식이 거두어 지키고 있음을 어찌 알리오? 비유하자면 소나무 열매가 비록 작고 미미하나 그 안에 낙락장송이 있고 새의 알이 비록 작으나 창공을 오르는 날개를 만들어 내니 어찌 무정의 사물로 간주하겠는가? 다만 혈기가 유약하여 견실한 체가 완전하지 못하고 뼈, 힘줄, 맥 등과 모든 바탕에 있어 갖가지로 완성되지 못한 것일 뿐 근본적인 아뢰야식이 알을 거두어 지켜 주고 있기 때문에 부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허공이 아니라 허공의 본래 성품이니 앞에 설한 것과 같다. 아뢰야식은 본래 성품에 환영 같은 거품으로 생긴다. 이 신령한 식이 허공과 같아서 불가사의한 환변력으로 불가사의한 종류를 환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간은 곧 아뢰야식의 환영 같은 변화로 나타난 하나의 부분적 존재이다. 이 불가사의한 힘으로 다 허공인 무형의 기와 천지의 유정무정의 모든 물상을 품고 지켜서 그 환영 같은 변화가 각기 다르므로 갖가지 생물을 거두어 지킴도 역시 각기 다르다.
나는 세계의 금, 돌, 흙, 나무 등의 만물을 다 살아 있는 것으로 본다. 왜인가? 초목 등의 만물이 아뢰야식의 기운을 갖지 않는다면 초목이 무엇으로써 성장하겠는가? 이미 죽은 고목도 능히 봄에 살아서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기를 거두어서 겨울이 되면 기를 뿌리와 줄기에 저장하지 않는가? 만물이 상호간에 상극하니 지황地黃22)
이 순무(菁)를 기피하는 것 등에 있어서 누가 있어 상극하는 것이며, 또 오행의 만물 등이 상호간에 상생하니 누가 있어서 상생하는 것이겠는가? 물고기와 새의 알이 비록 정情이 없으나 아뢰야식이 거두어 지켜 주는 힘으로 말미암아 부패하지 않으며, 흙, 돌, 금 등이 필시 죽은 물건이 아니니 아뢰야식이 품고 지켜 주기 때문에 생장한다. 각각의 모든 종자에 식이 품어져 있으므로 뿌리에서 싹이 발생하는 것으로 식이 종자를 떠나서 품고 지켜 주지 않는다면 부패할 것이다. 그 때문에 세계가 오직 마음이고 만법이 오직 식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유식의 도리에 치우쳐서 말한 것이나 사실은 모두 참된 한마음의 본래 성품으로서의 전체의 큰 쓰임을 말한 것이다.
새의 알을 깨트리지 않는데 그 식이 어떻게 옮겨 가는가? 비유하자면 첨바향초의 이름 등의 여러 꽃으로써 향을 피워 검은 마에 잘 스며들게 한 후에 압착해서 기름을 취하면 그 기름이 매우 향기로우니 저 향이 검은 마를 파괴하고 투입된 것이 아니라 향기가 옮겨 간 것이다. 향기가 마의 가장자리에 구멍을 찾아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둘이 화합을 했기 때문에 향이 옮겨 간 것이니 식의 옮겨 감도 또한 이와 같다.
또 종자를 도착한 지방의 땅에 던져 놓으면 싹과 가지, 잎, 꽃이 생기되 흰색, 검은색 또는 붉은색 등이 나오니 스스로 가진 특색에 따라 성숙하는 것이지만 땅이라는 지계로 보면 하나이다. 식도 이와 같이 하나의 법계가 있어서 일체 모든 유정 가운데 몸을 성취하고 난 후에 생기되 검은색, 흰색, 또는 붉은색 등의 색으로 되며, 또는 본성이 강직하고 굳세며 또는 본성이 조화롭고 부드럽다.
대체로 사람이 목숨이 다할 때에 신령한 식이 몸을 버리기를 마치면 후신後身의 종자인種子因을 이루어 손발 등의 몸을 만들고자 함에 그때 아직 몸의 성분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먼저 몸의 성분을 버리고 나면 법계분법계분法界分은 식의 근본 성품(元性)이다.을 취해서 여러 계여러 계(諸界)는 사대四大, 오온五蘊, 십팔계十八界 등이다. 및 생각(念)과 화합한다. 생각이 자신의 힘으로 법계념法界念과 화합해서 취함에 식을 떠나지 않고 가히 법계를 보며 또한 법계를 떠나지 않고 식의 인자가 있다.
식의 바람(識風)이 도와서 나머지 법계가 다 미묘하게 되니 이른바 염계念界와 수계受界, 법계, 색계이다. 식의 연이 되는 것에 두 종류의 색이 있으니 하나는 안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밖에 있다. 안의 색이라고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안식眼識을 말한 것이다. 밖의 색이라고 한 것은 경계를 말한 것이다. 경계를 대하지 않고 안식에 나타난 것을 안의 색이라고 하니 마찬가지로 안의 귀와 밖의 소리, 안의 코와 밖의 향, 안의 혀와 밖의 맛, 안의 몸과 밖의 촉, 안의 뜻(意)과 밖의 법이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눈에 백태가 낀 맹인이 밤에 꿈속의 갖가지 천상의 묘한 색이 가장 뛰어난 최상의 것임을 보고 가장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내다가 깨어나고 나니 아무것도 없으므로, 하늘이 밝아지자 다른 사람을 향하여 ‘내가 밤에 꿈속에서 가장 뛰어난 최상의 단정한 장부와 부녀, 정원 숲과 욕천浴川 등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이는 백태 낀 맹인이 본래 어떤 색도 보지 못하므로 반드시 안의 눈의 지력을 써서 꿈속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일 뿐 실제로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다.이를 안의 색이라고 한다.
꿈꿀 때의 식이 꿈속에 자기 몸을 자각하여 보고 듣고 지각하고 아는 것과 냄새, 맛, 감촉, 법이 완연하여 우러러 본즉 별과 달이 무수히 깔려 있고 구부려 살펴본즉 만상이 어지러이 널려 있으니 천지만물이 내 꿈으로 들어온 것인가, 내가 천지만물이 있는 데로 가서 본 것인가? 이는 진실로 나의 식이 변한 것일 뿐이다. 내가 주야로 나의 식을 자세히 관찰하니 식 자체가 형체가 없으나 그 변환은 가히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고 입으로 의론할 수 없다. 이 식의 변환력으로 육도六道와 사생四生24)
에 왕복함이 끝이 없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우리 부처님이 일찍이 간파하셨다. 인간이 죽으면 그 신神이, 종자를 옮기는 것과 같이, 지·수·화·풍과 인연을 수취하여 회합한 후에 몸이 생기는 것이다.
이 신이 선善과 불선不善을 받은 후에 옮겨 가니 비유하자면 청정한 둥글고 밝은 구슬이 색의 그림자를 따라서 색이 변하는 것과 같다. 청색이 투명한 구슬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전체가 청색 구슬이 되며 황, 적, 백, 흑색의 그림자가 구슬에 드리울 때도 역시 그와 같다. 식이 선과 불선의 업을 지니고 삼계육취에 왕복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 신령한 식은 형체가 없어서 모이는 곳이 없고 쌓아서 모아 놓을 곳도 필경에 얻지 못하며 이 식신에 생멸이 있고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비유하자면 종자를 좇아 싹이 생기는 것과 같아서 종자가 썩어 문드러지면 싹을 내지 못하고 종자가 망가져도 싹을 내지 못한다. 좋은 종자를 얻은 후에 싹이 생겨나니 종자와 싹이 어디에 머무르는가? 줄기에 있는가, 잎에 있는가, 나무껍질에 있는가? 신령한 식도 이와 같아서 식이 신체에 의지해 머무는 곳이 없다. 눈에도 없고 귀에도 없고 혀에도 없고 마음에도 없다. 비유하자면 종자를 좇아 싹을 생함에 종자와 싹이 취하고 받는 것으로 근본을 삼는 것과 같아서 자리를 잡은 까닭에 문득 태를 받는 것이니 수태하기를 마침에 곧 촉이 있다. 종자가 싹 내기를 마치면 가지와 잎, 꽃이 생기고 동시에 열매를 맺으니 이와 같이 신령한 식이 먼저 신체를 성취하나 그 몸의 식이 가히 머무는 곳이 없으며 또한 신령한 식을 떠나서 신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종자가 나무를 좇아 성숙하기를 마친 후에 종자가 있으니 열매가 종자의 원래 있음(元有)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몸이 목숨이 다할 때에 신체를 좇아서 식이 나타나되 느낌으로써 화합하고, 갈애로써 서로 속박하며, 염念으로써 서로 집착하고, 선善으로써 반연화합하며, 비선非善으로써 반연화합하며, 풍계風界로 서로 지키며, 지智의 훈습으로써 업연을 따르니 아버지와 어머니, 나의 식識의 세 가지 연이 화합한 후에 이 신령한 식이 현현한다.
비유하자면 면경으로 얼굴 모습을 볼 때 그 얼굴이 없으면 얼굴 모습을 볼 수 없으며 또한 면경이 없으면 얼굴 모습이 나타날 수 없으니 밝은 거울과 얼굴의 두 가지 인연이 합해서 얼굴 모습이 있으나 그 거울 가운데 얼굴 모습이 실제로 물질로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받아들이는 것도 없으며 또한 식도 거기 없다. 그러나 몸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에 따라서 그 거울 안의 몸의 모습이 또한 달라지는 것이 본래 몸과 같고, 그 모습의 형색과 그 근의 갖춰지고 갖춰지지 않음이 털끝만큼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나타나니 이 사람의 신체가 있음을 말미암은 것이다.
거울에 나타난 형체와 같이 이 몸이 식으로 인하여 수受가 있고 취取가 있으며, 모든 행行이 있어서, 사념思念과 신체를 성취하니, 밝은 거울은 식이 부모와 화합한 것에 비유한 것이다. 몸이 멸함에 식이 모습을 가졌다가 없게 되는 것이, 거울이 얼굴 모습을 나타낸 후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떠나가 맑은 물에 다시 얼굴 모습을 나타내는 것과 같아서, 신령한 식이 이 몸의 형체를 버리고 다시 그 밖의 여러 음을 받는다.
비유하자면 소나무의 열매가 비록 작으나 능히 큰 나뭇가지를 생산하고 그러고 나서 형체를 버리니 종자계가 나무 형체를 버림에 물기가 말라서 다시 본래의 맛이 없다. 식도 이와 같이 미세하여 정해진 형색이 없으나 온갖 몸을 생산한 후에 버리며, 버린 후에 다른 몸을 성취한다. 또 대맥, 소맥 등의 종자가 지방을 따라 흩어진 곳에 문득 뿌리를 내리는 것과 같이 식이 중생의 몸 안에서 저곳으로 옮겨 가면 곧 취하고 받아들임이 있어서 거기 머문다. 또한 복도 받고 죄도 받되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옮겨 가니 마침 꿀벌이 맛을 보고자 꽃 안의 맛과 향을 취하되 그 꽃을 버리고 다시 다른 꽃으로 옮겨 가며 또는 나쁜 꽃을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겨 가 꽃 위에 앉아서 향과 맛을 즐기며 머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신령한 식이 선근이 많음으로써 천상의 몸을 받으며, 받기를 마치고 나서는 악과를 쓰는 까닭에 지옥과 축생, 아귀 등의 몸을 받으며 그러고 나서 다시 다른 몸을 받으니 이 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비유하자면 울금향 종자라든지 또는 홍람화 종자라든지 그 몸의 분색分色이 정해지지 않아서 그 안에서 싹을 보지 못하고 또한 정해진 색이 없으나 종자가 땅에 들어가 물에 젖게 되면 싹이 생기며 싹이 생긴 후에 꽃이 핀다. 꽃의 색은 종자로써 가히 볼 수 없으나 또한 종자를 떠나서 싹과 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이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저 몸을 이루고자 함에 저 살덩어리 안에 육근이 없는데 어찌 육입이 있겠는가? 육근과 육입이 없는데 어찌 천안天眼과 천이天耳와 향, 미, 촉 등이 있을 것이며 앎의 이치가 있음을 어찌 가히 알겠는가? 내가 저 때에 이와 같은 업을 지었으므로 나의 과거의 이와 같은 신체를 다만 식으로 말미암아 받았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누에가 자신의 입으로써 실을 토하여 고치를 짓고 그 몸을 얽어매어 그 가운데서 죽는 것과 같아서 식이 몸을 생산하기를 마침에 스스로 도리어 업을 짓는 것이 누에와 같다. 비유하자면 연꽃이 수중에서 생기고 나면 곧 묘한 색과 아름다운 향기가 있으나 그 안에 물의 본디 모습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지방에 종자를 갖다 놓으면 색과 향이 있는 것과 같아서 이 식이 옮겨 갈 때 그곳으로 육근과 경계가 함께 옮겨 간 것이 없으며 받아들였던 느낌(受)도 또한 옮겨 간 것이 없으니 옮겨 간 것은 오직 법계뿐이다.
비유하자면 여의주가 이르는 곳마다 염원하는 바에 따라 마땅히 구하는 물건을 얻는 것과 같으며, 태양신의 광명이 스스로 해를 따라감에 해가 미치는 곳이면 빛도 또한 거기 미치니 이와 같이 이 신령한 식이 옮겨 가 이른 곳에 수受와 상想과 법계 등이 서로 따라가 떠나지 않는다. 이 식이 몸을 버림에 일체만유를 취하니, 취집聚集을 취하나 그 살과 뼈가 있어서 색상이 있는 몸과 여러 촉 등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식의 깨끗하고 묘한 천안으로 선악을 관찰해서 수취한다. 비유하자면 약초(小棗)와 천년초(千年棗), 암마라와 가비타 등의 열매가 맺을 때 각기 일미가 있어서 쓰거나 시거나 또는 달거나 짜거나 등 모두 여섯 가지 맛이다. 열매가 익음에 심어진 지방에 따라 그 맛이 안에 있으며 종자를 다른 곳으로 옮겨도 각각의 맛이 있다. 이와 같이 식의 종자가 옮겨 간 곳에서 종자에 촉이 스스로 있어서 복과 복이 없음에 따라서, 또 염念이 있어서 스스로 따라서 옮겨 간다.
또한 이 식이 몸을 버릴 때에 그 같은 생각을 내서 ‘내가 이제 몸을 버린다’고 하면 이를 염식念識이라 할 것이다. 식이 선업과 악업을 알며, 이 업이 나를 따라감을 알며, 내가 이 업을 따라감을 알면, 이와 같은 것 등을 아는 것을 식이라 이름한다. 다시 이 몸이 일체의 업을 스스로 지음을 아는 것을 식이라 하니, 마침 풍계가 어떤 때는 차가우며 또 어떤 때는 뜨거우며, 또 어떤 때는 나쁜 것(醜)을 따라서 나쁜 기운이 있으며 또 어떤 때는 향으로 해서 향기가 있기 때문에 바람임을 안다. 이와 같이 식이 형색이 없되 색으로 인해서 취하며 또는 욕欲으로 인해서 취하며 또는 견見으로 인해서 취하며 또는 계戒를 지녀 과보(報)를 구함으로 인해서 취하며, 내지 받는 것(能受)과 받아진 것(所受)이 있음으로 해서 신체를 받아 형색을 성취하기 때문에 식이라 이름한다.
사람의 그림자가 물속에 비침에 그 형상을 가히 잡을 수 없으나 혹 갈애의 마음을 내는 자가 있으니 사람은 자기 뜻에 합하는 것이 있으면 애착심을 낸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밝은 거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 모습을 비춰 보다가 만일 거울을 버리면 얼굴 모습도 보지 못하니 식의 옮겨 감도 이와 같아서 식의 선악업의 모습과 식의 형상을 모두 다 보지 못한다.
또한 백태 낀 맹인이 해가 뜨고 해가 짐에 주야로 명암이 변천함을 알지 못하니, 식을 능히 보지 못함도 이와 같아서 몸 안의 갈애하는 애상愛想도 식이고 몸의 사대와 육입과 오온이 다 이 식이고, 눈과 귀, 코, 혀, 몸과 여러 유색계의 몸(有色體)과 색, 성, 향, 미, 촉 등과, 아울러서 무색계의 몸(無色體)과 괴로움과 즐거움의 느낌이 또한 다 이 식이다. 혀가 음식물을 얻음에 단맛, 쓴맛, 매운맛, 신맛, 짠맛, 떫은맛 등의 여섯 가지 맛을 다 분별하니 혀와 음식물은 형색이 있되 맛은 형색이 없다. 또 몸의 살과 골수로 해서 여러 느낌을 지각하니 뼈 등은 형색이 있되 느낌을 받은 자는 형색이 없으니 복과 복이 아닌 것의 과보를 식이 아는 것도 이와 같다.
대체로 사람의 식이 능히 보나 식을 가히 사람에게 보일 수 없으니 안근은 비유하자면 포도 열매와 같은 하나의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식은 눈에 부재하니 만일 식이 안근에 있다고 한다면 안근을 쪼개면 식의 형체를 응당 볼 수 있을 것이다. 식은 색이 없어서 어리석은 자들이 능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가 아니면 분별해서 말하기가 심히 어렵다고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모든 천신이나 또는 건달바 등의 신이 몸에 달라붙었으나 그 신의 형색이 없어서 그 달라붙음을 당한 사람의 몸의 안팎을 해부하여 찾아보아도 그 형색의 자취가 전혀 없다. 그러나 그 천신에게 붙들림을 당한 사람은 다른 신과 달라서 그 신이 좋아하는 꽃을 구하여, 여러 이름의 향을 태우고, 맛이 좋은 음식을 청정하게 안치하며, 모든 것을 향기롭고 청결하게 하여 그로부터 풀려나는 제사(祭解)를 지내야 한다. 이와 같이 그 지은 선업을 사람의 육체 안팎에서 찾아보아도 형체가 없으나 식이 복업으로 말미암아 몸에 즐거운 과보를 얻는다. 뛰어난 복을 지닌 천신에게 붙들리게 되면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으로 유희하고 쾌락하여 병자는 안온하다. 이와 같이 지금 존귀하고 부유하며 자재함을 얻은 자는 과거세의 복업이 식을 받쳐 주기 때문에 몸이 즐거움의 과보를 얻는다.
또 비유하자면 부단나 등의 열등한 악귀에게 붙들린 자는 문득 더럽고 부패한 깨끗하지 못한 것을 애착하니 이런 것들로 제사를 올리면 그 신이 환희하여 병이 낫는다. 그 사람이 귀신이 바라는 대로 깨끗하지 않으며 냄새나고 더러운 것 등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과 같아서, 악업이 무형하나 능히 훈습으로 식을 받쳐 주는 것이 이와 같다. 빈궁한 곳에 태어남을 받으며 또는 아귀에 태어남을 받으며 또는 축생에 태어남을 받는 것이다. 죄가 식에게 뒷받침이 되어 주고 훈습하여 몸에 괴로움의 과보를 얻는다. 천신이 자리 잡은 곳이 무형무체하나 갖가지 향과 깨끗한 공양을 받으니, 식과 복이 무형하나 뛰어난 과보를 받음이 이와 같고 열등한 악귀 부단나 등이 자리 잡은 곳은 무형무질하나 문득 깨끗하지 못하며 더럽고 나쁜 음식을 받으니, 식이 죄업의 뒷받침과 훈습함으로 인하여 괴로움의 과보를 얻는 것도 이와 같다.
서로를 말미암아 욕망이 생기니 비유하자면 두 나무가 서로를 말미암아 사람이 공을 들임으로써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식으로 말미암아, 또 남녀의 색, 성, 향, 미, 촉 등으로 말미암아 욕망이 생긴다. 비유하자면 꽃으로 말미암아 열매가 생기되 꽃에 열매가 없으며, 열매가 생김에 꽃이 멸한다. 이와 같이 몸으로 말미암아 식이 나타나지만 그 몸에 나아가서 식을 구하여도 식을 보지 못하며, 업식이 과보를 생산함에 몸이 문득 사라져 소멸하니 몸의 골수 등 깨끗하지 못한 것들이 다 사라져 흩어진다. 또 비유하자면 종자가 장래에 열매의 맛, 색, 향내, 촉을 지녀서 옮겨 심은 곳에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식이 이 몸을 버림에 선악업과 수, 상, 작의를 지녀서 내생에 과보를 받는다.
또 비유하자면 남녀가 욕애로 환희하다가 분리되면 떠나가는 것과 같이 몸과 식이 화합하여 사모하고 맺어져서 애착하고 희롱하며 아껴 주다가 과보가 다하면 분리하여 업을 따라 과보를 받는다. 부모와 나의 중음이 상대함에 업력으로써 식을 생산하여 몸의 과보를 획득하니 애정과 업이 똑같이 형질이 없으나 욕망과 색이 서로를 말미암아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니 이것이 욕망의 원인이 된다.
(6) 스승이 계를 제정한 것을 보고 계를 지니게 된 인연을 분별함(師의制戒함을見하고取한因을辨함)
원래 대체로 식심의 망망함이 물이 큰 흐름으로 나가는 것과 같다. 성인이 이를 꿰뚫어 보시고 계를 제정하시니 이른바 불살,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 등의 계이다. 중생이 이 계를 집착하고 지녀서 이와 같은 견해를 내어 ‘이 계를 지킴으로 해서 마땅히 수다원과와 아나함과를 얻겠다’고 할 때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뛰어난 존재(有)를 얻어서 인간과 천상(人天)의 과보를 받으니 이것은 다 유루有漏의 과이고 무루無漏의 과가 아니다. 무루선無漏善은 오온의 이숙으로 인한 과보(陰熟果)가 없다. 계는 이 유루의 종자를 취해서 심왕식에 심어 선악업의 과보를 감득한다. 식이 순정하지 못한 번뇌인煩惱因이기 때문에 극심한 번뇌의 괴로움(熱惱苦)을 받으니 이것이 계금취견의 인이 된다.
원래 대체로 중생의 식심의 환력幻力과 선악업의 훈습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다할 때에 업력으로써 유골과 식과 모든 근과 계가 각각 분산되니 식의 소의所依식이 의지하는 것으로서 법계심法界心이다.로서 법계와 법계념法界念을 취하고 아울러서 선악업을 옮겨서 다른 과보를 받는다. 비유하자면 아주 좋은 버터(蘇)우유(乳)이다.에 여러 좋은 약맛의 힘을 화합하여 공덕이 숙성한 연후에 환으로 만들면 버터의 성질이 좋은 약의 힘을 지녀서 매운맛, 쓴맛, 신맛, 짠맛, 떫은 맛, 단맛의 여섯 가지 맛으로써 능히 사람의 몸을 더욱 윤택하게 하니 식이 이 몸을 버리되 선악업과 법계 등을 지니고 옮겨서 남은 과보를 받는 것도 이와 같다. 버터의 성질은 몸에 비유하고, 여러 약의 화합은 여러 법과 여러 근이 화합한 업에 비유하고, 많은 약의 맛과 접촉으로 버터를 도와 잘 이루어지는 것은 업이 식을 돕는 것에 비유하고, 크게 좋은 버터의 환을 복용하여 기쁘고 윤택하며 살찌고 풍성해서 안색이 빛나고 아름답고 좋으며 안온하여 걱정이 없는 것은 선善이 식을 돕는 것에 비유하고, 버터를 복용하는 방법을 어기면 얼굴이 참혹하게 변하여 혈색이 없어 그 색이 흑색이나 잿빛과 같은 것은 악이 식을 도와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크게 좋은 버터는 손발과 눈이 없으나 능히 좋은 약의 색과 향기와 맛의 힘을 지닌다. 식도 이와 같아서 법계애法界愛와 여러 선업을 취해 이 몸을 버리고 중음中陰을 받되 천상의 묘한 생각(天妙念)을 얻어 여섯 욕천과 열여섯 지옥을 보며 그 선업의 작용으로 그 몸의 손발이 단정하고 여러 근이 미려하며 자기의 죽은 몸을 보고 그것이 나의 전생의 몸이라고 한다. 다시 높고 뛰어난 묘한 모습의 천궁을 보니 갖가지 장엄과 꽃, 과일, 풀, 나무 들이며 등나무 덩굴이 덮어서 밝게 빛나고 화려한 것이 새로 제련한 금을 많은 보석으로 장식한 것과 같음을 보고, 식이 그에 의탁한다. 이 선업을 지은 사람이 몸을 버리고 다시 몸을 받음에 있어서 그 안락함이 말 탄 사람이 하나의 말을 버리고 다른 말에 오르는 것과 같다.
또 식이 법계를 의지처로 삼아 미묘한 시각을 지니게 됨으로써 보는 것의 근본을 육안에 의지하지 않게 된다. 이 미묘한 시각이 복된 경계와 만나게 되면, 천궁에서 바라는 것을 즐기고 유희하는 것을 보고 환희하여 식이 문득 애착해서 ‘내가 마땅히 저곳에 가리라’라고 하여 심히 물들어 좋아한다. 자기 몸이 시상屍床에 누워 있음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여 ‘저 주검이 나의 대선지식이라 나로 하여금 모든 선업을 쌓도록 했기 때문에 내가 이제 천상의 과보를 획득한 것이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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敢問하노니此識이저屍에愛重함이有하면어다시依託치아니하나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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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묻겠는데 “이 식이 저 주검을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면 어찌 다시 의탁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이에 말하기를 “식도 이와 같이 형질이 없되 작은 몸, 큰 몸을 모두 남김없이 능히 지니니 모기의 몸도 받으며 또는 코끼리의 몸도 받는다. 비유하자면 밝은 등과 같아서 그 불빛이 미묘하며 실내에 가득하여 실내의 대소를 따라서 모든 어두움을 다 제거하니 식도 이와 같아 모든 업인業因에 따라 대소를 다 감당하여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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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則諸業의性相은저가어한것이며何因緣으로써顯現함을得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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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각각의 업의 성품과 모양은 어떤 것이며 어떤 인연으로써 현현함을 얻는가?”
답하기를 “모든 천궁에서 천상의 묘한 음식을 먹으면 안녕하고 쾌락하니 그것이 다 업의 과보에 응한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광야에 돌아다니다 청정한 좋은 물을 얻으면 목마른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 시원한 물을 얻은 자는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고 또 갈증에 시달리는 자도 누가 막아서 급수를 허락받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각기 업인에 따라 고락의 업보를 받는다.”
선과 악의 두 길이 밤하늘과 달이 흑백의 둘로 나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생과일이 열에 의해 더욱 무르익어 문득 색이 변하는 것과 같아서 그 몸이 복업을 말미암은 까닭에 뛰어난 가문에 태어나 자산이 풍족하고 금은보화가 가득 넘치며 뛰어난 상호가 풍성하게 드러난다. 또는 천궁에 태어나 쾌락이 자재하니 그것은 다 선업의 복이 현현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종자를 저 땅에 심음에 열매가 나무 우듬지에 나타나되 그 종자가 가지로부터 나와 가지로 들어가서 우듬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며, 나무의 몸통을 갈라 쪼개 보아도 또한 그 종자를 볼 수 없으며, 사람이 종자를 가지 위에 갖다 놓은 것도 아니다.
또 나무가 뿌리를 이룸이 견고하나 거기서 종자를 구하여도 가히 얻지 못한다. 이와 같이 모든 선악업이 다 몸에 의한 것이나 몸에서 업을 구하여도 또한 업을 보지 못한다. 또 종자로 해서 꽃이 있으나 종자에 꽃이 없고 꽃으로 말미암아 열매가 있으나 꽃에 열매가 없다. 꽃과 열매가 점점 커 가되 그 커 가는 것을 보지 못하니 몸으로 인하여 업이 있으며 업으로 인하여 몸이 있되 몸에 업이 없으며 업에 몸이 없는 것도 이와 같다. 꽃이 시들어 떨어짐에 이에 열매가 나타남과 같아서 몸이 다해서 사라짐에 바야흐로 업과가 나타난다. 종자가 꽃과 열매의 인을 갖추고 있는 것과 같아서 몸에 선악업이 모두 있으나, 갖춰져 있는 업이 형태가 없으며 또한 무르익어 가는 모습이 없다.
또 사람의 그림자가 질애質碍가 없어서 잡아 지니지 못하고 붙들어 매어 놓을 수 없으나, 나아가고 멈추고 가고 옴에 사람을 따라 운동한다. 그러나 또한 그림자가 몸을 좇아 나오는 것을 볼 수 없으니 업의 형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몸이 있고 업이 있어도 업을 볼 수 없으며, 붙들어 매어 놓을 수 없으나 또한 몸을 떠나지 않는다.
또한 매운맛, 쓴맛, 떫은맛 등의 여러 가지 약맛이 능히 일체 병을 없애서 몸으로 하여금 만족하고 기쁘게 하며 안색이 빛나고 윤나게 함에 보는 사람이 좋은 약의 효력인 것을 알지만 그 약이 가진 힘의 정교함은 무형하여 보려고 해도 가히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자양력이 능히 사람의 피부와 얼굴을 윤나게 하니, 업이 형질이 없으나 능히 그 사람의 몸을 받쳐 줌이 이와 같다. 선업을 바탕으로 하여 음식과 의복, 내외의 모든 자산이 풍요롭고 미려하며 손발이 단정하고 생김새가 유별나게 수려하며, 집이 화사하고 마니와 금은과 많은 보석이 가득 쌓이고, 안녕하고 쾌락하며 기쁘고 즐거워 뜻에 맞으니 이것이 선업에 감응한 모양이다.
하층의 천하고 빈궁한 집에 태어난 자는 재물과 돈이 없어 다른 사람이 쾌락을 누리는 것을 부러워하며 먹을 것이 여의치 못하여 형색이 남루하며 처지가 지천하니 이것이 악업에 감응한 모습이다. 비유하자면 밝은 거울이 얼굴의 잘나고 못남을 비추나 거울 속의 모습이 형질이 없어서 취하려 해도 가히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식이 선과 불선의 훈습을 받아서 인간과 천상에 나거나 또는 축생에 태어나니, 업과 식이 화합함도 이와 같다.
미세한 식이 능히 여러 근을 거두어 지녀서 사대의 몸을 취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사냥꾼이 산림에 들어가서 활과 독화살로 잘생긴 코끼리를 쏘는 것과 같다. 화살의 독이 피에 젖어 독이 코끼리의 몸에 퍼져 지체를 이미 못쓰게 되고 근과 경계가 함께 상한다. 독이 흘러들어 몸을 해침에 몸의 색이 퍼렇고 붉은 것이 어혈이 든 것과 같아서 독이 코끼리를 죽이고 나면 완전히 바뀌어서 달라지니(遷化) 독과 코끼리의 몸이 그 크고 작음이 현격하게 달라서 가히 비교할 수 없다. 미세한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여러 근을 취하며 여러 계를 버리고 업을 따라서 천화하는 것이 이와 같다.
또 비유하자면 수미산의 높이가 팔만사천 유순인데 난타와 오파난타의 두 큰 용왕이 있으니 각기 신장이 세 개의 도시를 에워쌀 만하여 두 용이 크게 숨을 쉬면 수미산이 진동하며 바닷물이 다 변하여 독이 된다. 이 두 용왕이 장대하고 힘이 세나 그 식이 모기나 독충의 식과 추호도 차이가 없다. 아주 작은 하루살이 같은 독충이 이 두 용왕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두 용이 즉사하니 몇 방울 안 되는 벌레의 독을 용의 입안의 독과 대비하면 그 독을 크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용의 독이 비록 크고, 벌레의 몇 방울 안 되는 독이 극히 작으나 능히 이 큰 용을 죽이니, 식이 형색이 없어서 분별로 사량할 수 없으나 업에 따라 맡아 지님도 이와 같다. 비유하자면 니구타 종자가 극히 미세하나 나무를 생산함에 그 나무가 울울창창 광대하여 그 잎이 수백수천이 되니 종자와 나무의 크고 작음이 하늘과 땅처럼 아득하게 차이 난다. 나무를 종자에서 찾아도 얻을 수 없으나 종자로 말미암지 않으면 나무가 나오지 못하니 이와 같이 미세한 식이 능히 큰 몸을 생산하나 그 몸을 식에서 구하여도 얻을 수 없고 식을 없애면 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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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曰金剛과如히堅固하야可히壞치못할識이저速朽한身內에어止住하나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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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기를 “금강과 같이 견고하여 가히 파괴하지 못할 식이 저 빨리 썩을 몸 안에 어찌 멈추어 머무르는가?”
답하기를 “비유하자면 가난한 사람이 여의주를 얻음에 보물의 힘을 쓰기 때문에 묘하고 화려한 궁실에 원림이 울창하고 꽃과 열매가 만발하며 많은 말과 젊은 시종과 재물과 돈이 자연히 수중에 이르다가 그 사람이 여의주를 잃으면 많은 재물과 즐거움을 주던 것들이 모두 남김없이 흩어져 없어진다. 여의주가 견고해서 비록 천 개의 금강이라도 훼손하지 못하나 거기서 생긴 재물과 돈은 무상하여 속히 흩어지고 속히 없어지니 식도 이와 같아서 견고하고 무너지지 않되 생겨난 몸은 속히 썩고 속히 없어진다.”
답하기를 “물의 체성이 지극히 유약하나 격렬하게 흘러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능히 산의 돌을 뚫으니 물과 돌의 성질이 단단함과 유약함이 어떠한가? 물의 견실함에 비하면 돌은 금강과 같고 수질은 유연하여 비할 바가 못 된다. 식도 이와 같아서 지극히 어리고 지극히 유약하나 능히 굳세고 단단한 큰 몸에 흘러들어 과보를 받는다.”
또 중생이 임종할 때에 복업을 지은 자는 본래의 보는 능력을 버리고 천상의 묘한 보는 능력을 얻으니 이 시력을 써서 육욕천과 육취를 보며 천상의 궁전과 환희 동산과 잡꽃 동산 등을 본다. 천상의 연화 궁전에 고운 기녀들이 시중들면서 에워싸고 웃고 희롱하며 즐겁게 놀되 많은 꽃으로 장식하고 교사야僑奢耶 옷을 입고 귀한 반지와 팔찌로써 갖가지로 장엄하며, 꽃은 항상 활짝 피어 온갖 시설이 갖추어져 있음을 본다. 마음이 문득 물들어 집착하여 환희하고 뜻에 맞아 모습과 얼굴은 기쁘게 활짝 펴지며 낯빛은 연꽃과 같으며, 보는 것이 착란하지 않으며, 코는 휘거나 굽지 않고 입에서 나쁜 냄새가 나지 않으며, 눈빛이 선명하여 푸른 연잎과 같고, 몸의 모든 관절 사이에 고통이 없고, 눈과 귀, 코, 입에서 깨끗지 못한 것이 흐르는 일이 없고 손바닥이 누렇게 죽은 색이 아니며, 손톱과 발톱이 검푸르지 않으며 손발이 장애가 있거나 또한 늘어지거나 오그라들지 않으며 좋은 모습이 현현한다. 공중에는 높고 큰 궁전이 있어 쳐다보니 채색된 기둥 수백수천 개가 조각되어서 아름답게 늘어서 있으며 많은 방울과 끈이 드리워져 부드럽게 부는 바람에 흔들리니 맑은 음이 마음에 기쁘고 아름답다. 갖가지 향과 꽃, 보석의 궁전이 무수하게 있는데 모든 천상의 동자들이 수많은 보석으로 몸을 장식하고 궁전 안을 거닐며 노닐고 있다. 이것을 보고 나서 환희하여 미소 지으니 드러나는 치아가 군도화君圖花와 같으며 눈을 길게 뜨고서 감지 않으며 말하는 음성이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몸이 아주 차지도 아주 뜨겁지도 않으며 가족과 친척에 둘러싸여 근심과 괴로움이 없다. 이제 그 목숨을 마땅히 버림에 보이는 것이 명백하여 모든 어두운 암흑이 없으며 기이한 향이 부드럽게 퍼져서 사방에 이른다. 부처님의 존귀하고 위엄스런 모습을 보고 환희하고 존경하여 높은 어른들과 친지에게 흔연히 위로하며 말하기를 “걱정하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나고 죽는 것은 이치가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라고 하고는 홀연히 목숨을 마침에 천모天母의 손안에 자연히 꽃이 나타난다. 천모가 천부天父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아들의 경사가 머지않아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다.
천모가 양손으로 그 꽃을 흔들며 희롱할 때 목숨이 문득 다하여천신은 모두 화생化生한다. 형체가 없는 식이 모든 근을 버리고 모든 업의 경계를 가지고, 모든 계를 버리고 모든 경계의 일을 가지고, 옮겨 가서 다른 과보를 받는다. 비유하자면 말에 탄 사람이 한 말을 버리고 다른 말에 오르는 것과 같고 나무가 불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으며 달이 그림자를 맑은 물에 나타냄과 같아서 식이 선업을 바탕으로 천상의 과보를 옮겨 받는다. 맥풍脈風이 빨리 옮겨 가서 꽃 안에 의탁하면 천부와 천모가 함께 앉아서 이를 보니 감로의 욕풍欲風이 꽃에 7일 동안 불어와 보석구슬이 몸을 장엄하고 흔들려 반짝거리니 천상의 동자가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천모의 손에 나타난다.
답하기를 “비유하자면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를 인연으로 해서 불이 생기나 이 불을 나무 안에서 구해도 가히 얻지 못하나 나무를 없애면 불이 없다. 인연이 화합하여 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인연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불이 생기지 않는다. 또한 나무 안에서 불의 형상을 찾아보아도 마침내 가히 볼 수 없으나 불이 나무로부터 나오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이 식이 부모의 인연이 화합함을 빌려서 형상이 있는 몸을 만들어 내나 그 몸에서 식을 찾아도 없으며 또한 몸의 형상을 떠나서도 식이 없다. 또 불이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는 불의 모양이 나타나지 않으며 또한 따뜻한 감촉과 색상이 모두 없으니 이와 같이 몸이 아직 있지 않을 때는 식, 수, 상, 행이 다 나타나지 않는다. 또 비유하자면 범부는 햇빛이 빛나는 것만 볼 뿐 해의 본체가 청색인지 황색인지 또는 적, 백, 흑색인지 알지 못하며 다만 빛나고 뜨거운 광명이 출몰하고 순환하는 것과 모든 작용이 있는 것을 보고 해가 있음을 안다. 식도 또한 이와 같아서 느끼고, 알고, 감별하고, 행하고, 생각하고 걱정하고 고뇌하는 모든 작용이 있음으로 해서 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장부가 갑옷과 투구를 견고하게 갖추고 말이 바람같이 질주함에 적진 가운데로 돌입해서 창과 방패를 주고받다가 홀연히 말에서 떨어지나 무예가 출중함으로 나는 듯이 재빨리 다시 말에 오르니 식이 몸을 버리고 다시 몸을 받는 것도 이와 같다. 식이 선업을 바탕으로 천상의 부모가 한 자리에 있음을 보고 속히 의탁하여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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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然則識이故身을捨하고新身을未受할時에識이何相을作하얏나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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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기를 “그렇다면 식이 옛 몸을 버리고 새 몸을 아직 받지 못할 때 식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
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사람의 형상이 물에 비침에 형상이 물에 없으므로 가히 취할 수 없으며, 손발과 얼굴 생김새와 모든 형상이 사람과 더불어 다르지 않으나, 체질과 벌이는 일이 물에 비친 영상 안에 없으며 차고 뜨거운 모든 감촉이 없으며 또한 살덩어리 등의 사대가 없으며 언어와 괴롭고 즐거워하는 소리가 없으니, 식이 옛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아직 받지 않을 때에 그 모습이 이와 같다.”
“악업을 행한 자는 지옥에 들어간다. 이 중에 중생이 불선근을 쌓음으로 목숨이 다할 때에 생각하기를 ‘이제 이 몸이 죽는구나. 부모와 친지와 사랑하는 친구를 버리니 매우 근심되고 괴롭다’고 한다. 모든 지옥과 자기 몸을 보고 나서 당연히 지옥에 들어갈 자는 발이 위쪽에 있고 머리가 아래쪽으로 향하여 거꾸로 된다. 또 한 곳을 보니 완전히 피로 덮여 있는데 업력으로 그 피를 보고 맛을 들여 마음을 거기에 둘 때 문득 지옥에 태어난다. 추하고 더러운 업인력으로 식이 부패한 나쁜 물에 의탁한다. 비유하자면 더러운 냄새가 나는 장소와, 우유 냄새와 술 냄새 등과, 모든 냄새의 인력因力으로 벌레가 그 안에 생기니 지옥에 들어간 자가 냄새나는 것에 의탁하여 생기는 것도 이와 같다.
답하기를 “피를 애착하여 지옥에 태어난 자는 몸이 핏빛과 같으며 탕황湯隍에 태어난 자는 몸이 검은 구름과 같으며 유탕물(乳湯河)에 태어난 자는 몸이 점으로 얼룩져서 갖가지 잡색을 낸다. 몸이 극도로 연하고 물러서 귀한 갓난아기의 몸과 같으며, 덩치는 여덟 살 된 동자보다 더 크고, 수염과 머리카락 및 몸의 털은 길게 늘어져서 땅에 끌리며, 손발과 얼굴 생김새는 비틀어지고 휘어서 불완전하다.”
답하기를 “지옥 중생은 먹는 것에 조금의 즐거움도 없어서 두려워하며 질주하니 먼 곳에 있는 구리를 녹인 붉은 즙을 보고 자기 뜻대로 피라고 생각한다. 무리가 달려가고 또 부르는 소리가 있어서 ‘모든 굶주린 자는 속히 와서 먹도록 하라’라고 하여 모든 죄인이 급히 달려가서 거기에 도달하니 옥졸이 뜨거운 구리즙을 손에 쥐고 먹으라고 핍박하여 마시게 한다. 구리즙이 배에 들어감에 뼈마디가 터지고 찢어져서 온몸에 불이 일어나니 지옥 중생의 고통이 이와 같다.”
식을 버리지 못하며 또한 파괴하지도 못하며 몸은 뼈 무더기와 같으나 식이 거기 의지해서 머물러 떠나지 못하니 업보가 다하지 않으면 괴로운 몸을 버리지 못한다. 굶주리고 목마른 고통으로 핍박받음이 극심함에 문득 원림에 꽃과 과일이 무성함을 보고, 보고 나서는 기쁘게 미소 지으며 서로 말하기를 ‘이 원림이 푸르게 무성하여 소박하고 아름다우니 무리는 급히 들어가도록 하자’고 한다. 도착하고 나니 나뭇잎과 꽃과 과일이 다 도검이 되어 죄인을 베고 자르며 몸 가운데를 베어서 두 쪽을 낸다.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사방으로 내달리면 옥졸이 떼로 일어나서 금강몽둥이를 쥐거나 또는 쇠몽둥이와 쇠도끼, 쇠지팡이를 들고, 이로 입술을 악물고 진노하여 화염이 몸으로부터 나오며 죄인을 막고 나가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다 자기 업으로 이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옥졸이 죄인의 뒤를 따라와서 죄인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네가 머물 곳은 여기이니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 어디로 도망가 숨겠다는 것이냐? 이 동산은 너의 업으로 장엄한 것이라 가히 떠날 수 없다.”라고 하니 이 중생이 받는 갖가지 괴로움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어렵다.
죄업을 지닌 중생은 마땅히 지옥에 들어가니 처음 죽을 때에 사자가 와서 그 정수리를 매달아 몰아치며 핍박하니 몸과 마음이 크게 괴로워 이렇게 말한다. “이런 재앙을 당하게 되다니 괴롭구나. 내가 이제 염부제의 갖가지 사랑하고 좋아하는 친속과 아는 친구들을 버리고 지옥에 들어가는구나. 내가 이제 천상으로 가는 길을 못 보고 다만 괴로운 일만 보니 누에가 실을 토해서 스스로를 얽어매 죽음을 취하는 것과 같이 내가 스스로 지은 업에 결박되었구나.”라고 한다. 죄업 중생의 갖가지 괴로움은 다 오직 식심이 업을 따라 변환해서 자초한 것으로 하나라도 다른 사람이 준 것이 아니다.
우리 불교는 개개의 사람마다 사방 한 치의 자기 마음 안에 천당과 지옥을 스스로 조작함을 밝게 보여 주고 인간의 마음을 바로 지적해서 본래의 참된 성품을 깨닫게 한다. 천당과 지옥의 이 두 종류의 중생이 오직 마음으로써 변환된다는 것을 밝게 보임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식심의 관문(識心關)을 타파하도록 한 것이니 식심관을 타파하여 삶에 집착하는 인생관人生觀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불교의 진리는 깊고 깊어서 일시에 바로 드러내기가 어렵다.
(8) 쌓임(積), 모임(聚), 오온(陰)과 몸이 옮겨 가지 않음을 밝게 분별함(積과聚와陰과身의遷하지아니함을明辨)
중생이 지계智界와 견계見界, 명계明界, 의계意界의 사계四界가 화합하여 몸을 이루며 사계의 경계와 식을 합하여 쌓임(積)이라고 한다. 모임(聚)은 이른바 육계六界와 육입六入, 육입의 경계(六入境), 삼계의 인(三界因), 이입의 인(二入因)이니, 곧 수염, 머리카락, 털, 손톱과 피부, 살, 고름, 피와 눈물, 침, 누런 가래(黃痰)와 지방(脂), 골수, 진액과 손발, 얼굴, 크고 작은 뼈마디가 화합하여 모인 것들을 모임이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곡식, 콩, 베, 보리 등을 쌓아 모아서 높고 크게 된 것을 모임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지·수·화·풍·공·식을 육계라 하고, 안·이·비·설·신·의를 육입또는 육근이라 하며, 색·성·향·미·촉·법을 육입의 경계라 하고 탐·진·치를 삼계의 인이라 하며 또 풍風·황黃·담痰을 또한 삼인이라고 한다. 이입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곧 계戒와 신信, 보시(施)와 희사(捨), 정진과 선정, 선善과 불선不善 등이다.
수, 상, 행, 식의 네 가지를 무색음無色陰이라 한다. 수受라 함은 괴로움과 즐거움의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고, 상想은 괴롭고 즐거운 느낌을 아는 것을 말하며, 행行은 현재 생각의 작의와 접촉(觸)을 말하고, 식識은 이 몸의 주인이니 몸 전체에 두루 작용하여 몸으로 하는 것은 식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옮겨 가지 않는다(不遷)는 것은 이 사람이 죽음에 식이 몸(色陰)을 버리고 다시 몸을 받지 않으며 어떤 육취에도 들어가지 않고 참된 즐거움을 얻어서 다시 옮겨 가는 일이 없으므로 옮겨 가지 않는다(不遷)고 한 것이다.
대체로 깨달음의 바다가 원래 원만하게 비치고 청정해서, 횡으로는 끝이 없고 종으로는 바닥이 없으며, 본래 이지러지고 모자란 것이 없고 원만하며, 어긋나고 그릇됨이 없어서 텅 비어 환하게 비친다. 그러나 성각性覺이 반드시 망령된 밝음(妄明)이 되어 밝은 알음알이(明覺)를 일으키니 참된 각성覺性은 경계에 밝은 알음알이가 아니지만 밝은 알음알이가 생겼기 때문에 경계를 세운다. 비유하자면 구름이 일어남으로 해서 햇빛의 본래 밝음을 장애하는 것과 같다. 이 한 겹의 미혹이 일어남에 두 가지 공능이 생기니 하나는 참된 성품을 숨기고 가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 가지 연을 일으키는 것(生起)이다. 이 생기에 세 가지 공능이 있으니 허공과 세계국토, 중생이다. 한 겹의 미혹한 무명으로 인해서 어둡고 어리석은 성질이 완강하고 아득하여 허공이 되니 허공이 먼저 나타나고, 어두운 암흑이 맺어져서 색色이 되며, 망상이 엉겨서 무정無情의 국토가 되고, 망식이 지각을 발하여 유정有情의 중생이 성립된다. 삼계에 의보依報가 건립되니 곧 욕계 육천과 색계 십팔천과 무색계 사천이 그것이다. 묘한 이치가 부질없이 삼계를 망령되게 이루니 물이 얼음으로 결정됨에 물성이 바뀌지 않으므로 유有라 칭한다. 또 식이 지각知覺의 정보正報를 성립하니 아래에 따로 밝히는 것과 같다.
원래 대체로 중생의 정情과 상想의 두 가지가 후하고 박하게 나뉨에 따라 삼계의 과보를 받는 차별이 있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그릇에 물을 채워 평지에 놓고 진흙을 물과 혼합해서 뒤섞으면 물은 청정하고 텅 비고 밝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다만 혼탁해질 뿐이다. 그릇을 움직이지 않으면 탁한 성분은 서서히 가라앉고 맑은 물은 위로 서서히 떠오른다. 맑은 물은 상想에 비유하고 탁한 성분은 정情에 비유한다. 맑은 물이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것은 사람의 신혼神魂이 가볍고 맑아 상승하여 대욕천까지 상생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탁한 성분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은 신혼이 하늘로부터 지옥에 하생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정과 상의 후하고 박함에 따라 열 가지로 등분한다면 인도人道에 삶을 받은 자는 정과 상이 균등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가볍고 맑은 상은 상승하고자 하나 무겁고 탁한 정기가 아래로 흡인하고, 탁한 성질의 기가 아래로 끌고 가라앉으려고 하나 가볍고 맑은 상의 힘이 위로 흡인하여, 양쪽 방향의 흡인력이 균등하기 때문에 인도에 태어난다. 이는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 지은 업력을 말미암은 것으로 천신이 행한 것이 아니다.
인도에 삶을 받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인류에 있어서 정의를 닦고 오욕에 빠져 미혹되지 말아야 하며 부모와 스승에게 효도하고 복종하며 생명을 살리는 덕을 좋아하여 살생하지 말아야 한다. 불살생은 인仁의 강령이라 다른 많은 인이 뒤따른다.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털끝만한 물건도 훔치지 말아야 하니 불투도不偸盜는 정의에 있어서 강령이라 다른 많은 의義가 뒤따른다. 자기와 동거하는 남편과 아내가 아니면 음행하지 말아야 하니 불사음不邪淫을 행하면 예의 근본이 되므로 많은 예가 뒤따른다. 부모와 스승, 형제, 친척, 친구 사이에 광명정대하여 그릇된 말을 하지 않으면 인류에 있어서 지극 정대할 뿐 아니라 큰 신용의 행복을 얻으니 이 불망어不妄語는 믿음(信)의 근본이 되므로 많은 믿음이 뒤따른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본래의 정신을 항상 지켜서 청량한 보배로운 달이 깨끗한 하늘에 비추듯 하니 불음주不飮酒는 지혜의 근본이 되므로 많은 지혜가 뒤따른다.
부처님께 귀의해야 할 것이니 부처님은 곧 각천覺天이시며 성천性天이시며 심천心天이시다. 인간 하나하나가 대광명체로서의 대각본성大覺本性이니 자기의 심성을 깨달음으로써 부처라 한다. 법에 귀의해야 하니 법은 곧 자기의 청정한 지혜이며 지혜의 빛이 원명하면 모든 그릇되고 굽은 것이 소멸한다. 스님께 귀의해야 하니 스님은 무리이며 화합이니 마음(心)과 성품(性)이 화합하며, 이理와 사事가 화합하여 다툼이 없으며, 뜻이 화합하여 어긋남이 없으며, 보는 견해가 화합하여 정법을 한가지로 알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훈계를 화합하여 한가지로 준수하며, 이익을 균등히 화합하여 한가지로 균등하게 하며, 국가에 충직하며 자타에 평등하게 자애를 행하며, 인심에 그릇되고 굽은 것을 변화시켜 공정한 법륜을 항상 굴리니 이것이 인륜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현세에는 광명정대한 올바른 정사正士가 되고 사후에는 인도에 태어난다.
우리 부처님이 인도에서 인륜을 밝게 보이심이 무량하시나 어찌 다 취하여 기록하겠는가? 내가 아래에 대강 요지를 취하여 인도를 밝힐 것이다. 인도에서 인륜을 닦은 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에 태어나되 상想이 조금 가볍고 맑은 사람은 총명하고, 정情이 조금 탁한 사람은 둔하며, 정과 상이 균등하면오정오상五情五想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정과 상이 균등한 것은 인민의 다수를 점령하니 총보가 될 것이다. 특별히 그윽하게 깊고 밝은 것은 별업의 과보가 될 것이다. 상이 강하고 정이 약한 경우가 있어서 그 때문에 세간에 총명한 자가 있게 되고, 정이 강하고 상이 약한 경우에는 그 때문에 세간에 암둔한 자가 있는 것이니, 이는 동일한 인류에 정과 상의 차별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또 인간은 저 아래의 세계보다 뛰어나니 오상五想을 갖추어 상의 체가 밝게 통해서 아래의 세계보다 뛰어나고, 오정五情을 갖추어서 정의 체가 가두고(幽閉) 있기 때문에 저 위의 세계보다 열등하다. 세간의 사람을 천인에 비하면 어둡고 둔하니 천인은 오신통을 갖추어 능히 날아다니고 뜻대로 변화한다. 중생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경계를 발하고 경계로 말미암아 정을 발하며 정으로 말미암아 태를 낳고 애愛로 말미암아 정을 낳으며 순상順想으로 인하여 애가 생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끼고 사랑하는 정과 나의 식신의 아끼고 사랑하는 정의 삼애가 서로 주고받고, 부모와 자기의 삼상이 서로 투합해서 나의 육신을 성취한다. 애가 윤회의 근본이 됨에 일체중생이 음욕으로 인하여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여 그 때문에 애가 흘러들어 종자가 되고, 상을 받아들여 태를 이루니, 상은 생명을 전하는 매개가 된다.
정에 치우침(偏)과 바름(正)이 있으므로 그 이름을 횡수난상橫豎亂想이라 하니 인간과 신선은 수상豎想으로 감응하므로 수직으로 가고 축생은 횡상橫想으로 감응하므로 수평으로 간다. 또 정과 상이 균등하여 인간에 태어난 자는 바르고, 반면에 정이 많고 상이 적어서 축생(旁生)에 유입된 자는 치우침이 있게 되니, 팔만사천 번뇌에 감응해서 변하므로 인간, 축생, 천룡, 선인이 세계에 충만한 것이다.
원래 대체로 참된 성품이 청정하고 더러움에 오염됨이 없어서 중음中陰이 없지만 업의 미혹業惑이 습기로 엉기기 때문에 중음신이 이루어진다. 비유하자면 강물이 본래 얼음이 아니지만 심한 추위로 해서 얼음으로 동결되는 것과 같다. 중음신이라고 한 것은 사람이 현재의 몸을 버리고 후신을 아직 받지 못한 그 중간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중음신은 현재 육신의 생활 습관에 의하여 중음의 신령한 식이 자기 몸을 살아 있을 때의 몸과 같은 것으로 본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꿈에 자기 몸을 보되 한쪽 다리가 병든 자는 꿈속에서도 병든 다리로 가는 것과 같다.
답하기를 “극선극악에는 중음신이 없다. 선업의 사람은 인간과 천상의 세계에 즉시 삶을 받기 때문에 중음신이 없고 악도에 태어나는 자도 역시 그와 같으며,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사람은 중음신의 과보를 받는다. 이 과보가 다하면 인간의 생사와 같이 중음신을 버리고 업을 따라서 육도에 삶을 받는다. 그러나 태어남은 이 죽은 사람의 꿈이고 죽음은 이 산 사람의 꿈이니 삼계, 사생, 육도가 모두 이 꿈이 만들고 꿈이 받는 것이다.”
답하기를 “중음신은 식이 미혹된 업의 습기로 응결된 것이라 우리들의 안목으로 발견하기 어렵다. 사람은 양계陽界이고 중음신은 음계陰界라서 음양이 서로 맞지 않으므로 양계의 사람이 육안으로 중음신을 볼 수 없다. 비유하자면 태양이 비추는 곳에서는 응달의 어두움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 부처님의 성스런 존귀함의 대적광해인大寂光海印의 큰 선정이 아니면 누가 능히 삼계와 만유의 갖가지 차별을 밝게 꿰뚫어 보겠는가?”
이 중음신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형색이 단정하고 다른 하나는 용모가 추하고 남루하다. 지옥중음은 궤목을 태운 것과 같고 축생중음은 그 색이 그을음과 같으며 아귀중음은 그 색이 물과 같고 인간과 육욕천의 중음은 모습이 금색과 같으며 색계천의 중음은 형색이 선명하고 희며 무색계천의 중음은 원래 중음이 없으니 색이 없기 때문이다.
육취의 중음신 등은 손이 둘, 발이 둘인 자도 있고 또는 발이 넷, 다리가 여럿인 자도 있으며 또는 다리가 없는 자도 있다. 과거세에 지은 업에 따라 마땅히 태어날 곳에 의탁하니 만약 천국으로 상승하여 태어날 중음신이라면 머리가 문득 위로 향하고, 축생에 태어날 중음귀신은 옆으로 가면서 떠나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중음신은 머리가 아래로 향하니, 모든 중유가 신통을 다 갖추어 하늘로 올라 사라진다.
3) 중생의 중음신식이 태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함을 분별함(衆生의中陰神識이胎에納하고不納함을辨)
중음신식이 태에 들어가고자 할 때에 인연이 구족하면 수태하고 구족하지 못하면 수태하지 못하니 어떤 것이 연이 구족하지 못한 것인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중음신이 신통을 다 갖추어 허공으로 올라가서 자유롭게 떠나가되 천안天眼과 같이 태어날 곳을 멀리 보니 많은 여인이 월경이 3일 또는 5일에 그친 자도 있으며 또는 보름 또는 한 달이나 또는 주기를 건너뛰고 월경이 그치는 자도 있다. 어떤 여인은 몸에 위세가 없어서 괴로움을 많이 받아 생긴 모습이 추하고 남루하며 또 많이 굶은 것으로 해서 비록 월경주기가 와도 속히 그치며, 어떤 여인은 위세가 있어서 안락을 받으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여의하여 기혈이 풍족하므로 월기가 오더라도 속히 그치지 않으니 이와 같은 두 종류의 인연이 있는 것이다.
중음신식이 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의 정精이 부정不淨하거나 어머니의 혈이 부정하거나 또는 부모의 정과 혈이 다 부정하거나 등의 경우에는 태를 받지 못한다. 또는 태실이 전복되어도 태를 받지 못하며 또는 음문 안에 풍병이 있다든지, 황병이나 가래, 멍이 있다든지 또는 혈기가 태에 맺힌다든지 또는 살이 쪄서 지질이 과다하든지 또는 약을 복용했다든지 또는 살이 부었다든지 또는 기가 막혀 있다든지 또는 함병鹹病이 있다든지 또는 태월수胎月水가 차갑다든지 또는 맥복병麥腹病이 있다든지 또는 의요병蟻腰病이 있다든지 또는 산문產門이 낙타의 입과 같거나 또는 음중陰中이 뿌리 많은 나무와 같다든지, 또는 쟁기머리와 같다든지, 또는 수레 끌채의 굽은 목재와 같다든지, 또는 수레의 굴대와 같다든지 또는 수레 바퀴통의 입과 같다든지 또는 나뭇잎과 같다든지 또는 굽어 휘돌아 도는 모습이 등나무(藤笋)와 같다든지 또는 깨끗한 정혈精血이 많이 새나가서 그치지 않는다든지 또는 막혀서 물이 흐른다든지 또는 태장의 길이 껄끄럽다든지 또는 보리의 까끄라기와 같다든지 또는 배 아래가 너무 깊다든지 또는 태장의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뾰족하다든지 또는 굽어 있고 또는 얕다든지 또는 뚫려서 샌다든지 또는 태기胎器가 아니라든지 또는 까마귀 입과 같아서 항상 열려 있어 합쳐지지 않는다든지 또는 위아래와 네 변이 어긋나고 좁아서 불균형하다든지 또는 음부가 높고 또는 낮으며 또는 오목하고 또는 볼록하다든지 또는 안에 기생충이 먹어서 문드러지고 무너지고 깨끗하지 못하다든지 등의 이러한 허물이 있다면 태를 받지 못한다.
또는 부모가 존귀한데 중음신이 비천하다든지 또는 중음신이 존귀하고 부모가 비천하다든지 등의 이러한 경우에는 태를 이루지 못한다. 만약 부모와 중음신이 다 존귀할지라도 업이 화합하지 못하면 태를 이루지 못하며, 만약 남녀가 연애로써 합궁을 할지라도 중음신이 물들어 애착하여 삼상三想에 삼애三愛가 서로 교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태를 이루지 못한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여러 가지 과실이 없다고 할지라도 부모가 자식이 될 중음신과 인연이 없으면 태를 이루지 못한다.
이와 같이 중음신이 태를 받고자 할 때에 먼저 두 가지의 전도심이 일어나니 하나는 부모가 합궁할 때 만일 남자의 중음신이면 어머니가 될 자에게 사랑이 생기고 아버지가 될 자에게 미움이 생겨서 아버지의 정액이 흐르는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안다. 다른 하나는 만일 여자의 중음신이면 그 아버지가 될 자에게 사랑이 생기고 그 어머니가 될 자에게 미움이 생기며 어머니의 혈류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한다. 만일 애증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태를 받지 못한다. 모태에 들어가는 자는 부모가 사랑에 물든 마음(愛染心)을 일으키고 또 월경주기가 순조로우며 중음신이 그 자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인연이 구족하여야 문득 태에 들어간다.
중음신이 태에 들어가고자 할 때에 두 가지가 경우가 있으니 하나는 복덕이 없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복덕이 있는 자이다. 복덕이 없는 자는 전생에 지은 업력을 따라서 식의 환영 같은 변화로 망령된 경계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그릇된 생각을 지어 ‘차가운 바람과 습한 비가 이렇게 춥고 차가우며 대중이 이와 같이 심란하게 시끄럽고 많은 악한 경계가 이와 같이 닥쳐와 핍박하니 내가 이제 응급하게 회피하리라’ 하여 풀로 만든 집이나 또는 잎으로 만든 집이나 또는 담장 밑 또는 산이나 못이나 또는 우거진 숲이나 또는 바위동굴이나 또는 울타리 등의 갖가지 경계와 갖가지 생각을 낸다. 이를 글로 다 쓰기 어려우니 그러한 소견을 따라서 문득 모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복덕이 있는 자도 또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되 ‘내가 이제 차가운 바람과 습한 비를 만났고 대중이 어지럽게 시끄러우며 많은 위엄이 닥쳐와서 나를 핍박하는구나’ 하여 부질없이 공포심을 일으켜 높은 망루에 오르고 큰 누각에 오르며 또는 전당에 들어가며 또는 평상에 올라간다. 이와 같은 것 등을 다 기록하기 어려우니 그 보는 바의 업에 따라 태로 들어간다. 수태가 되면 이를 응활凝滑이라 하니 부모의 정혈이 부정不淨한 것과 과거의 업이 화합함으로써 몸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인간이 수태되는 것은 인연화합력으로 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그릇에 유즙(酪)을 채우고 줄로 묶어서 매달아 놓은 다음에 버터(蘇)가 나오되 그 여러 연 가운데 버터가 없으나 화합력으로 인하여 버터가 생긴 것이니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혈에서 응활凝滑한 몸을 얻는 것도 이와 같다.
이에 네 가지 비유가 있다. 첫 번째는 푸른 풀을 의지하여 벌레가 생기나 벌레는 이 푸른 풀이 아니고 또 푸른 풀을 떠나서 벌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풀과의 인연화합에 의하여 벌레가 생기므로 벌레가 청색을 띤다.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혈이 응결해서 생긴 갈라람 몸(羯羅藍身)여기 말로는 응활凝滑이다.도 이와 같아서 갈라람으로부터 사대종자(四大種)의 육근이 생긴다.
두 번째 비유는 소똥에 의해서 벌레가 생기는 것이다. 소똥은 벌레가 아니고 또 벌레는 소똥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소똥과의 화합력에 의해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벌레의 몸이 황색을 띠는 것이니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혈의 갈라람 몸도 이와 같이 인연화합으로 사대종의 육근을 낳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추나무에 의해서 벌레가 생기는 것이다. 대추나무는 벌레가 아니고 또 벌레는 대추나무를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추나무와 인연화합해서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벌레의 몸이 적색을 띠니 아버지의 정과 어머니의 혈의 갈라람 몸도 이와 같이 인연이 화합해서 사대종의 육근이 생긴다.
이 몸이 살아 있을 때 부모의 사대종자와 더불어 차별이 없어서 지地는 견고한 성질이 되고 수水는 습한 성질이 되며 화는 더운 성질이 되고 풍은 움직이는 성질이 된다. 이 몸이 오직 지계만 있고 수계가 없으면 어떤 사람이 보릿가루 재를 뭉치려고 해도 화합하지 못하는 것과 같고, 만일 수계만 있고 지계가 없으면 비유하자면 기름이 그 성질이 미끄럽고 습하여 견실함이 없어서 문득 흘러내려 흩어지는 것과 같다. 만일 지와 수만 있고 화계가 없으면 비유하자면 여름에 축축한 곳에 있는 고깃덩어리가 햇볕에 쪼이지 못하면 문드러져 상하는 것과 같다. 오직 지와 수만 있고 풍계가 없으면 증장하지 못하니 비유하자면 유리병을 제조할 때에 풍기를 흡입하지 않으면 그 안을 텅 비게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대가 상호 의지하여 건립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갈라람 몸이 부모의 사대와 업풍으로 해서 생기는 것도 이와 같아서 여러 연 가운데 몸의 모습을 얻을 수 없으나 화합력으로 말미암아 태를 받는 것이다.
대체로 태에 들어간 신령한 식이 정충으로 화해서 포문胞門 안의 자궁으로 사입射入되어 모혈에 싸여 윤전輪轉함으로써 응활신을 이루어 점점 증장한다. 숫자로 말하면 7일이 서른여덟 번 지나는 동안 이 몸이 점차 성립된다. 첫 번째 7일 동안 모태에 있을 때를 갈라람이라 한다. 몸의 모습이 처음 나타날 때는 진한 유즙장(酪醬)과 같으며 이 7일 동안에 내열로 졸이고 삶아져(煎煑) 점차 사대를 형성한다.
두 번째 7일이 지나면 태가 어머니의 배에 머무는 것이 더러운 똥에 누워 있는 것과 같고 냄비에 있는 것과 같다. 신근과 식이 한 곳에 동거함에 뜨거운 열에 졸이고 볶아져 심한 괴로움을 받으며 이에 감응한 업풍을 변만遍滿이라고 한다. 이 바람이 미세하여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로 불어와서 오른쪽 옆구리에 이르는데 이를 액도타額都陀라고 한다. 이 바람이 갈라람 몸으로 하여금 점차 모습을 드러내게 하니 뻑뻑한 진한 유즙과 같고 또는 엉긴 버터(蘇)와 같으며 내열로 졸이고 삶아져 점차 사대를 이룬다.
네 번째 7일 만에 어머니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을 섭취攝取라고 한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폐수閉手폐수는 손발이 없는 모양가 옮겨 가서 가나伽那가나는 점점 생겨나는 모양가 된다. 그 모양이 짚신과 같으며 또는 온돌과 같아 내열로 졸이고 삶아져 사대가 점점 자라난다.
다섯 번째 7일 만에 어머니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섭지攝持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모든 기포가 터지고 갈라져서 양쪽 어깨와 팔, 양쪽 넓적다리, 머리의 다섯 형상이 나타난다. 비유하자면 볕이 쬐는 봄날에 하늘이 단비를 내림에 나무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가지를 증장시키는 것과 같다.
열한 번째의 7일 만에 모태 안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소통疎通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가 통하고 뚫리게 되어 아홉 개의 구멍이 나타난다. 만일 가고 서고 앉고 누울 때라든지 일을 할 때라면 이 바람이 돌고 회전하고 텅 비고 통하여 구멍이 점점 크게 된다. 만일 바람이 위를 향해 불면 윗구멍이 문득 열리고 아래를 향해 불면 아랫구멍이 통한다. 비유하자면 대장장이와 제자가 풀무로 아래위를 통기할 때 바람이 쇠를 단련하고 나면 슬며시 없어지는 것과 같다. 또 바람의 힘은 회임한 자를 슬프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하며 그 변하지 않는 성질을 고쳐서 손발을 운동시켜 태아의 몸에 난 구멍이 증장케 하며 그 입안에서 검은 피가 나오게 하며 다시 코안에서 더럽고 추한 물이 나오게 한다. 이 바람이 모든 근에 회전하기를 마치면 문득 소멸한다.
열두 번째 7일 만에 어머니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곡구曲口이다. 이 바람이 태에 불어서 좌우 옆구리 사이로 대장과 소장이 생기니 연뿌리가 줄기와 단단하게 얽은 실뿌리를 땅에 박는 것과 같아서 열여덟 번을 돌면서 몸에 의지해서 머문다. 다시 하나의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천발穿髮이다. 이 바람으로 말미암아 330개의 뼈마디와 101개의 혈穴이 몸속에 생긴다.
열세 번째의 7일 만에 어머니 배 속에 업풍을 느끼니 이름이 기갈飢渴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아의 몸이 허하고 여윈 것을 지각하며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생각이 나서 그 어머니 몸에 있는 자양분 있는 좋은 음식이 몸의 혈과 배꼽을 통해 흡입되어 몸을 이롭게 하여 점점 증장한다.
열다섯 번째의 7일 만에 모태에 다시 업풍을 느끼니 이름이 연화蓮華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스무 개의 맥이 생긴다. 자양분 있는 좋은 음식이 이 맥에 흘러들어 태아의 몸을 이롭게 하니 몸의 앞, 뒤, 왼편, 오른편에 각각 다섯 개의 맥이 있다. 이 맥에 갖가지 이름과 갖가지 색이 있으니 그 이름은 반伴 또는 역力 또는 세勢라 하고 색에는 청, 황, 적, 백, 콩, 버터(蘇), 기름, 유즙(酪) 등의 색이 있으며 또는 여러 색이 서로 합해서 뒤섞인 것도 있다. 그 스무 개의 맥에 각기 마흔 개의 지맥이 있어서 권속을 삼으니 합해서 8백 개의 맥이 있고 이와 같은 맥에 다시 각각 백 개의 맥이 있다. 몸 앞에 2만 개가 있으니 이름이 상거商佉여기 말로는 소라(蠃)이다.이고 몸 뒤에 2만 개가 있으니 이름이 구세具勢이다. 이와 같은 8만 개의 크고 작은 맥들이 이 몸에 생긴다. 이 8만 개의 맥에 다시 많은 구멍이 있으니 각각 두 개 내지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 하나하나의 구멍이 각기 모공과 서로 이어지니 연뿌리에 많은 구멍이 있는 것과 같다.
열여섯 번째의 7일 만에 태 안에 업풍이 있으니 이름이 감로행甘露行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눈, 귀, 코 입과 가슴, 심장과 사방의 아홉 구멍이 개발되도록 하며 들숨과 날숨이 아래위로 통하여 뚫리게 한다. 만일 여분의 음식이 이 몸을 이롭게 하게 되면 머물러 쌓이는 곳이 있도록 하여 다시 능히 소화해서 아래를 따라 흘러나가도록 한다. 비유하자면 옹기장이가 진흙을 잘 이겨서 물레 위에 안정되게 놓고 돌리면 만들려고 했던 그릇이 완성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바람의 힘과 선악의 업으로 말미암아 눈 등이 점점 갖추어지는 것이다.
열일곱 번째 7일에는 어머니의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모불구毛拂口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두 눈이 빛나고 깨끗하게 되며 귀, 코 등의 모든 근이 점점 갖추어지며 인후, 가슴, 음식 들어가는 곳이 매끄럽고 윤이 나게 되며 들숨과 날숨이 통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거울이 더러운 먼지에 덮여 있는 것을 벽돌가루나 기름, 재로 갈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라. 이 업풍이 눈 등에 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열여덟 번째의 7일 만에 어머니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무구無垢이다. 능히 태아로 하여금 모든 근이 점점 갖추어지도록 하며 또 밝고 깨끗하게 한다. 비유하자면 해와 달이 운무雲霧에 덮이고 갇혀 있는 것을 사나운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 불어와서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해와 달이 홀연히 밝고 환해지니 이 업풍이 그 모든 근에 불면 거듭거듭 밝고 깨끗하게 되는 것도 이와 같다.
열아홉 번째의 7일 만에 모태에서 앞에 말한 무구의 풍력으로 말미암아 눈, 귀, 코, 혀의 네 개의 근이 이루어지며 처음 태에 들어갈 때 이미 세 개의 근이 갖춰졌으니 첫째는 신근身根이고 둘째는 명근命根이며 셋째는 의근意根이다. 이제 이와 같은 모든 근이 갖춰진 것이다.
스무 번째의 7일 만에 어머니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견고堅固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뼈가 생긴다. 왼발에 발가락 뼈마디 스무 개가 생기고 오른발에 또한 스무 개가 생긴다. 발꿈치에 일곱 개의 뼈와 종지뼈에 두 개, 무릎에 두 개, 넓적다리에 두 개가 있으며 허리와 사타구니에 세 개, 척추에 열여덟 개, 옆구리에 스물두 개, 늑골 네 개, 가슴 양쪽과 중앙을 합해서 열세 개가 있다. 좌우 두 손에 각기 스무 개 손가락 뼈마디가 생기고 손목에 두 개, 어깨에 네 개, 팔에 네 개, 두개골에 네 개, 턱에 두 개의 뼈가 있고 치아치아는 보통의 경우로 계산한다.에는 서른두 개의 뼈가 있다. 비유하자면 조각가가 먼저 잘게 쪼갠 나무를 사용해서 그 형상을 만들고 그 다음에 줄로 엮고 나서 나중에 진흙을 발라 형상을 이루는 것과 같다. 이 업력의 바람이 모든 뼈를 안정되게 배포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이 가운데 큰 뼈의 숫자가 2백여 개가 있으며 나머지 작은 뼈는 일일이 세어서 계산하지 않았다.
스물일곱 번째의 7일 만에 어머니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곡약曲藥이다. 이 바람이 능히 태아에게 모발과 손톱, 발톱이 모두 갖춰지도록 한다. 또는 그 태아가 과거세에 여러 악업을 지어서 모든 살림살이에 아끼고 탐내고 인색해서 은혜롭게 베푸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았거나 또는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이나 타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 업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여의치 못한 몸을 얻는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키가 커야 좋아하는 곳이라면 저 사람은 키가 작고, 작아야 좋아하는 곳에서는 저 사람은 키가 크고, 거칠어야 좋아하는 곳에서는 저 사람은 섬세하고, 섬세해야 좋아하는 곳에서는 저 사람은 거칠고, 팔다리의 뼈마디가 서로 가까이 있어야 좋아하는 곳에서는 저 사람의 뼈마디는 서로 멀리 벌어져 있고, 만약 많아야 좋아할 곳에서는 저 사람의 것은 적으며, 만약 적어야 좋아할 곳에서는 저 사람의 것은 많으며, 살찌는 것이 사랑받는 곳에서는 문득 여윈 몸을 가지며, 마른 것이 사랑받는 곳에서는 뚱뚱하며, 겁을 내야 하는 곳에서는 문득 용감하고, 용감해야 할 곳에서는 문득 겁이 많으며, 하얀 것이 좋을 곳에서는 검고, 검어야 될 곳에서는 하얗다. 또 악업으로 악한 과보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에 어리석고 둔하게 태어난다. 그 사람이 내는 소리를 사람들이 즐겨 듣지 않고 손발이 굽어서 펴지지 않으며 모습이 아귀와 같아 친족이라도 마주 보려고 하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저 사람이 과거세에 악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과보를 받는 것이다.
또는 태아가 과거세에 복업을 닦으며 은혜롭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가난에 연민을 느끼며 모든 재물에 아끼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서 선업이 밤낮으로 증장하였다면 당연히 뛰어난 과보를 받는다. 만약 인간에 태어난다면 받는 과보가 다 뜻에 맞으니, 만약 모든 세상 사람들이 키가 커야 좋아하는 곳이라면 곧 키가 크고, 키가 작아야 좋아하는 곳에서는 곧 키가 작으며, 거칠음과 섬세함이 척도에 맞으며, 손가락 마디가 서로 마땅히 어울리며, 많고 적음과 살찌고 마른 것과 용감하고 겁약함에 있어서 적절하며, 그 안색에 있어서 사랑받지 않음이 없으며, 육근이 구족하여 단정한 것이 누구보다 뛰어나며, 언변이 분명하고 음성이 조화롭고 우아하며, 얼굴 생김새가 다 구족하여 보는 사람이 환희한다. 신, 구, 의 삼업으로 사람에게 향할 때에 사람들이 다 믿고 존경하니, 저 사람이 과거세에 선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과보를 얻는 것이다.
태 안의 몸이 남자라면 어머니 오른쪽 옆구리에 웅크리고 있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머니의 등뼈를 향하여 머문다. 만약 여자라면 어머니 왼쪽 옆구리에 웅크리고 있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머니의 배를 향하여 머문다. 생장生藏의 아래가 숙장熟藏28)
의 위에 있기 때문에 생물生物이 아래로 누르고 숙물熟物이 위로 찔러 다섯 곳을 결박해서 뾰족한 나뭇가지에 꽂혀 있는 것과 같다. 만약 어머니가 많이 먹는다든지 또는 때로 조금 먹는다든지 모두 고통을 받으며, 만약 음식이 극히 기름지다든지, 또는 음식이 건조하다든지, 극히 차다든지 극히 뜨겁다든지, 짜고 싱겁고 쓰고 시다든지 또는 너무 달고 맵다든지 등 이런 음식들을 먹을 때에 다 고통을 받는다.
만약 어머니가 음욕을 행할 때라든가 또는 급하게 갈 때라든가 또는 위험하게 앉아 있을 때라든가, 오래 앉아 있고 오래 누워 있다든가, 뛰어다니거나 높이 뛰어오른다든가 할 때는 다 괴로움을 받는다. 태 안의 이와 같은 갖가지 괴로움이 그 몸을 핍박하는 것을 다 갖추어 말하지 못한다. 인도에도 이와 같은 괴로움이 있는데 지옥 등 악도의 괴로움이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스물여덟 번째의 7일 동안에는 어머니 배 속의 태 안에 있는 자식이 여덟 가지 전도된 생각을 내니 첫째는 말 타는 생각이고, 둘째는 누각에 대한 생각이며, 셋째는 평상(狀榻)에 대한 생각이고, 넷째는 흐르는 샘물에 대한 생각이며, 다섯째는 못과 늪에 대한 생각이고, 여섯째는 강물에 대한 생각이며, 일곱째는 동산에 대한 생각이고, 여덟 번째는 나무숲에 대한 생각이니 이들 경계가 사실은 없건마는 망령되게 분별을 내는 것이다.
스물아홉 번째의 7일 동안에는 어머니 배 속에 바람이 있으니 이름이 화조花條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모습이 선명하게 희고 정결하다. 또는 그 업력으로 말미암아 색이 검게 되기도 하며 또는 푸른색이라든지 그 업을 따라서 갖가지 색을 낸다. 또는 태아의 몸에 광채가 윤택하며 모든 모습이 분명한 것은 다 선업에 감득한 때문이고 또는 모든 모습이 단정치 못하며 또는 건조하여 윤택함이 없는 것은 다 악업에 감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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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七日間에는저母腹中에業風을感하니名曰鐵口라此風力을由하야毛髮爪甲으로하야금增長케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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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째의 7일 동안에는 어머니 태 안에 업풍을 느끼니 이름이 철구鐵口이다. 이 바람의 힘으로 말미암아 모발과 손톱, 발톱 등이 증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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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一七日로乃至五七日間에는胎子로하야금身相이長大하야漸漸增廣하야人相이具足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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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 번째의 7일 내지 서른다섯 번째의 7일 동안에는 태아의 신체가 장대하여 점점 자라나고 커져서 사람의 모습이 구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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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六七日間에는其子가母腹에住하기를樂하지아니하야厭離心을生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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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번째의 7일 동안에는 그 자식이 어머니 배 속에 머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아서 싫어하며 떠나려는 마음을 낸다.
만약 이 태아가 혹시 과거세의 몸 가운데 많은 악업을 지었다든지 또는 사람의 태를 낙태하게 했다면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손과 다리가 옆으로 어지러우며 능히 거꾸로 나오지 못하고 어머니의 배 속에서 목숨을 마친다. 지혜가 있는 여인이 버터기름(蘇油)이라든지 또는 느릅나무껍질 즙이라든지 내지는 그 이외의 윤활작용을 하는 것으로 손 전체를 발라서 산문에 들여보내 죽은 애를 꺼내거나, 또는 훌륭한 의사가 있다면 해부하여 태아를 꺼내야 한다.
태장에 잉태함에 대해 미루어 살펴본다면 측간의 어둠과 같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더러운 구덩이 안에 무량한 숫자의 세균이 항상 자리하고 있으며 냄새나는 즙이 항상 흐르고 정혈이 썩어 문드러지니 지혜가 있는 자는 비록 자손을 생산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청정하게 하여 음란하지 말아야 한다.
6) 인간의 육체가 전부 세균 덩어리로 된 것을 밝게 분별함(人生의肉體가全혀蟲聚로됨을明함)
대체로 인간의 육체가 전부 세균 덩어리로 된 것을 어찌 알 수 있는가? 한 방울의 피에 세균이 아주 많은 것에는 팔만사천이라는 많은 균들이 있고, 하나의 모공에 90만 개라는 많은 균이 있다. 사람 몸의 전후좌우에 스무 개의 맥이 있으니 앞에 다섯, 뒤에 다섯, 왼쪽에 다섯, 오른쪽에 다섯 등 모두 합해서 스무 개의 맥이 있다. 음식의 자양분이 이 맥 안으로 흘러들어서 그 몸을 점점 더 자라나게 한다.
이 스무 개의 맥에 각기 마흔 개의 갈라져 나온 소맥이 있으니 합해서 8백 개의 숨 쉬는 맥이 있다. 사람 몸의 전후좌우에 각기 2백 개씩이 있어서 8백이 된다고 한다. 이 8백 개의 맥에 각기 백 가지 길로 갈라진 맥이 있어서 서로 연결되니 합해서 8만 개의 맥이 있다. 이 8만 개의 맥에 많은 구멍이 있으니 한 개의 구멍 또는 두 개의 구멍 내지는 일곱 개의 구멍이다. 구멍 하나하나가 각기 모공과 서로 연결되어서 안으로는 음식의 자양분을 흡수하여 그 몸의 피를 윤택하게 하고 밖으로는 공기를 흡수해서 피를 신선하게 한다. 콧구멍으로 공기를 흡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각각의 모공으로도 하나하나가 작은 분량의 공기를 받아들인다.
8만 개의 맥이 모든 모공에 서로 연결된 것에 한하여 8만 모공이라 한 것이고 이 8만 개의 맥이 잡다한 구멍에 서로 연결된 것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이 8만 모공에 있는 균은 내 몸과 함께 살고 내 몸과 함께 죽는다. 원래 각각의 모공에 90만 마리의 많은 균이 있다. 이 일은 우리 부처님이 삼매에 들어 깨끗한 눈으로 명철하게 관찰하신 것으로 그 이외의 범부는 모두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태에서 나와서 칠일을 경과하면 8만 개의 세균이 몸을 좇아 생활하되 종횡으로 먹어치운다. 유력한 것들을 들어 그 대략을 설명하겠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지발䑛髮이다. 머리카락의 모근에 의지해서 살면서 항상 그 머리카락을 먹는다. 네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안승鞍乘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유악有腭이고, 세 번째는 이름이 발병發病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원만圓滿이며 머리에 의지해서 살면서 머리를 먹는다. 네 가지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구축駈逐이고 두 번째의 이름은 분주奔走이고 세 번째 이름은 옥택屋宅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원만圓滿이다. 뇌에 의지해서 살면서 뇌를 항상 먹는다.
두 가지 세균이 있으니 같은 이름을 가져서 둘 다 요안繞眼이고 눈에 의지해서 살면서 눈을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흑도엽黑稻葉이고 귀에 의지해서 살면서 귀를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장구藏口이며 코에 의지해서 살면서 코를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요척遙擲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변척遍擲이며 입술에 의지하여 입술을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밀엽密葉이고 치아에 의지해서 살면서 치아를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목구木口이고 치근에 의지해서 살면서 치근을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침구針口이고 혀에 의지해서 살면서 혀를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수원手圓이고 잇몸에 의지해서 살면서 잇몸을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수망手網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반굴半屈이며 손바닥에 의지해서 머물면서 손바닥을 먹는다. 두 가지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단현短懸이고 다른 하나는 장현長懸이며 팔뚝에 의지해서 살면서 팔뚝을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원비遠臂이고 다른 하나는 근비近臂이며 팔에 의지해서 살면서 팔을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철鐵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근철近鐵이며 목구멍에 의지해서 머물면서 목구멍을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유원有怨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대원大怨이며 가슴에 의지해서 살면서 가슴을 먹는다. 두 가지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금강金剛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대금강大金剛이며 심장에 의지해서 살면서 심장을 먹는다.
두 가지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나패螺貝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나구螺口이며 살에 의지해서 살면서 살을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구색具色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구칭具稱이며 피에 의지해서 살면서 피를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용건勇健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향구香口이며 힘줄에 의지해서 살면서 힘줄을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본고本高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하구下口이며 등뼈에 의지해서 살면서 등뼈를 먹는다. 두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둘 다 이름이 지색脂色이며 지방에 의지해서 살면서 지방을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황색黃色이고 쓸개에 의지해서 머물면서 쓸개를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진주眞珠이며 콩팥에 의지해서 살면서 콩팥을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폐에 의지하여 살면서 폐를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대진주大眞珠이며 허리에 의지하여 살면서 허리를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적荻이며 지라에 의지하여 살면서 지라를 먹는다. 네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수명水命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대수명大水命이고 세 번째는 이름이 침구針口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도구刀口이며 창자에 의지해서 살면서 창자를 먹는다. 다섯 가지의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월만月滿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월면月面이고 세 번째는 이름이 휘요暉曜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휘면暉面이고 다섯 번째는 이름이 별주別住이며 오른쪽 옆구리에 의지하여 살면서 오른쪽 옆구리를 먹는다.
다시 네 가지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천전穿箭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천후穿後이고 세 번째는 이름이 천견穿堅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천주穿住이며 뼈에 의지하여 살면서 뼈를 먹는다. 네 가지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대백大白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소백小白이고 세 번째는 이름이 중운重雲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취기臭氣이며 맥에 의지하여 살면서 맥을 먹는다. 네 가지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사자師子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비력備力이고 세 번째는 이름이 비급전備急箭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연화蓮華이며 생장生藏에 의지하며 살면서 생장을 먹는다.
두 가지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안지安志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근지近志이며 숙장熟藏에 의지하여 살면서 숙장을 먹는다. 네 가지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염구鹽口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온구蘊口이고 세 번째는 이름이 망구網口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작구雀口이며 요도에 의지하여 살면서 오줌을 먹는다. 네 가지 세균이 있으니 첫 번째는 이름이 응작應作이고 두 번째는 이름이 대작大作이며 세 번째는 이름이 소형小形이고 네 번째는 이름이 소속小束이며 항문에 의지해서 똥을 먹는다.
두 가지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흑구黑口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대구大口이며 넓적다리(䏶)에 의지하여 살면서 넓적다리를 먹는다. 두 가지 세균이 있으니 하나는 이름이 뢰癩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소뢰小癩이며 무릎에 의지하여 살면서 무릎을 먹는다. 한 가지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우근愚根이며 정강이(脛)에 의지해서 살며 정강이를 먹는다. 하나의 세균이 있으니 이름이 흑경黑頃이며 다리(脚)에 의지하여 살면서 다리를 먹는다. 5백의 세균이 있으니 1백의 이름은 월月이고 또 1백의 이름은 월구月口이고 또 1백의 이름은 휘요輝耀이고30)
또 1백의 이름은 휘면輝面이고 또 1백의 이름은 광대廣大이며 왼쪽 끝에 의지해서 머물면서 왼쪽 끝을 먹는다. 또 5백의 세균이 있으니 또한 이들과 이름이 같다. 오른쪽 끝에 의지해서 머물면서 오른쪽 끝을 먹는다. 이를 근거로 관찰해 보면 인간 몸의 전체가 세균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설명은 『보적경寶積經』에 의해서 밝게 분별한 것이다.
7) 인간이 출생한 후에 하는 행위와 그 형상을 관찰하여 숙세의 인연을 밝힘(人生이出胎後에所行과그形相을觀察하야宿因을明함)
인간이 태에서 나온 후에 점점 장대해지면서 과거세에 익힌 습관을 따라 깨어 있거나 잠자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음에 전에 익힌 습관의 본래 모습이 항상 그대로 드러나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알지 못한다. 자기와 남의 경계에 대해 세심하게 항상 관찰하면 인간과 천상과 여러 악도로부터 온 자를 가히 알 수 있다.
만일 지옥의 업을 마치고 인간에 태어난 자라면 유아 때부터 늙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정을 살펴 그 습성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지혜로운 자는 가히 알 수 있다. 그러한 자의 음성은 말이나 노새의 소리를 내고 바쁘고 급한 소리이며 두려워하는 소리이고 고성이며 가는 소리이다. 혹은 소심하여 항상 무서워하여 자주 전율하며, 그 털이 촘촘하고 곧으며, 꿈속에 큰 불이 세차게 일어남을 자주 보며 또는 산이 달려가는 것을 보며 또는 항상 불지옥을 보며 또는 가마솥에서 끓는 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며 또는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잡고 달려가는 것을 보며 또는 자기 몸이 창에 찔리는 것을 보며 또는 나찰녀羅刹女31)
를 보며 또는 개 떼를 보며 또는 코끼리 떼가 자기 몸을 쫓아오는 것을 보며 또는 자기 몸이 사방으로 달려감에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을 보며, 그 마음에 믿음이 적어서 친구가 없다. 이와 같은 갖가지 모습이 무량하니 이것을 지옥으로부터 인간에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만일 축생의 과보를 마치고 인간에 태어난 자라면 어둡고 어리석어 지혜가 적고, 게으르며 많이 먹고 진흙을 즐겨 먹으며, 그 성품이 겁약하여 언어를 분별하지 못하며, 어리석은 사람과 더불어 참다운 벗을 삼고, 깜깜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며, 흐린 물을 좋아하여 즐기고, 초목을 좋아하여 깨물며, 발가락으로 땅 파기를 좋아하고, 머리 흔들기를 좋아하고 즐기며, 파리와 등에를 몰아서 쫓아내며, 항상 머리를 높이 드는 것을 좋아하여 하품하면서 공연히 씹고, 항상 다리를 오므리며 어두움을 따라 땅에 드러누워 더러운 것을 피하지 않으며, 항상 공연히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하고, 벗은 모습을 하기를 좋아하며, 항상 속이고 위선적이며, 반대하는 말과 반대하는 동작을 좋아하고, 항상 꾸미는 말을 즐기며, 다분히 꿈속에 진흙을 몸에 칠하고, 또는 꿈에 자기 몸이 들에 있는 풀을 먹는 것을 보며 또는 꿈에 자기 몸이 많은 파리 떼에 뒤덮여 있는 것을 보며 또는 꿈에 항상 자기 몸이 산골짜기의 잡목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이와 같은 모습을 가히 다 갖추어 열거할 수가 없으니 이것을 축생의 과보를 마치고 인간에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으나 어리석은 범부가 능히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아귀의 과보를 마치고 인간으로 와서 태어난 자라면 그 두발이 누렇고, 화난 눈으로 직시하며, 항상 기갈에 허덕이고항상 껄떡껄떡, 항상 아껴서 탐내고 질투하며 음식이 풍요로움을 기뻐하고, 사람을 배반하는 것을 즐겨 말하며, 신체를 털이 덮고 있으며, 눈의 안광이 붉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생각하며, 쌓아 모으기를 탐내고 즐겨서 나눠 주고자 하지 않으며, 착한 사람을 즐기지 않고, 재물이 보임에 그 마음이 훔치고자 하며 내지는 약간의 재물을 얻어도 그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서 항상 재물의 이득을 구하며, 깨끗하지 않은 음식을 즐기고, 남의 자산을 보면 질투심을 내고 다시 남의 재물에 대해 자기가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며, 남이 받아서 쓰는 것을 보고 문득 아깝다는 마음을 내고, 좋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불쾌한 마음을 내며, 내지는 길에 버려진 떨어진 과일과 오곡을 보면 문득 탐심을 내서 주워서 가진다. 이와 같은 많은 모습을 가히 갖추어 열거하지 못하니 이를 아귀의 과보를 마치고 인간에 태어난 자라고 한다.
만약 아수라의 과보를 마치고 인간에 태어난 자라면 뽐내는 마음으로 교만하여 항상 분노하기를 좋아하고, 투쟁을 매우 즐기고 원한을 품고 잊지 않으며, 그 몸이 건장하고 눈의 흰자위가 개와 같으며, 이가 길고 많이 노출되어 있고, 날쌔고 굳건하며 힘이 세서 항상 전쟁터를 즐기며, 이간질하는 것 또한 좋아하여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치아 사이가 벌어져 있으며, 잘났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지은 책과 논의 언어가 교묘하고 난해하여 비밀스러우며, 지력과 번뇌력이 있으며, 스스로 몸을 돌보는 것을 즐긴다. 이와 같은 많은 모습을 가히 다 갖추어 기술하기 어려우니 그 이름이 아수라이다.
만약 인간에서 목숨을 다하고 다시 인간에 환생한 자라면 그 인간됨이 어질고 정직해서 착한사람을 친근히 하고, 나쁜 사람을 비방하고 헐뜯으며, 가문의 신망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며, 독실하고 온후하여 신의를 지키고, 명성이 나는 것과 칭송 듣기를 즐기며, 공예를 좋아하고 즐기며, 지혜를 존중하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있으며, 심성이 유연하여 은혜를 알고 봉양할 줄 알며, 좋은 친구에 마음이 끌리고, 베풀고 보시하기를 기뻐하며, 사람의 높고 낮음을 알고, 앞에 있는 사람의 이익과 무익함을 잘 관찰하며, 대답을 능히 잘하여 그 말의 뜻을 파악하고, 화합을 능히 잘하고 어긋나 멀어지는 것에도 역시 능하며, 언어를 잘 구사하여 바르게 전달하고, 갖가지 말에 능통하여 잘 기억하고 지녀서 망각하지 않으며, 또한 도리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안다.
8) 불법(達摩)으로써 인간이 다섯 가지로 오게 된(五來) 원인을 분별함(達摩가人生의五來한原因을辨함)
범부 가운데, 수행하다가 인간으로 오게 된 자는 과거세에 쌓은 덕의 뿌리가 깊은 것으로 인하여 체격이 범상한 무리와 같지 않으니, 안광이 진실하여 자애롭고 아름다우며, 용모가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즐기고, 기질이 너그럽고 성품이 착하며, 목소리가 맑고 여운이 멀리 퍼져 사람들이 즐겨 듣고, 손발이 유연하여 지문이 심오하고 미묘하며,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며 선명하여 번뇌의 때를 벗어났으며, 뜻이 지혜롭고 마음이 신령해서 거동이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말하는 근본이 지극히 조리가 있고, 불사佛事를 즐기며, 관직에 있어도 청렴하고 반듯해서 나라를 위함에 국민을 사랑하고, 사람을 위함에 효성과 공경으로써 대한다.
범부 가운데 정령으로부터 온 자는 과거세에 날짐승과 길짐승이 깊은 산과 빈 골짜기에 오래 있으면서 항상 신선의 식품을 먹고 천년 백년 지나는 동안 또한 천지일월의 깨끗한 정수를 얻어 인간에 태어난 자로서 용모가 고풍스럽고 괴이하다. 사자와 원숭이, 코끼리의 무리와 또는 호랑이, 학, 무소, 용의 무리로 있다가 인간에 태어난 자는 기상이 굳세고 체형이 단단하며, 눈이 길고 바라봄에 위엄이 있으며, 정신이 웅장하고 특출하며, 손바닥과 발바닥, 손가락, 발가락에 기이한 무늬가 있고, 일어나고 멈춤에 음흉하고 독하며, 말이 사악하고 시끄러움에 이르러 항상 살벌한 마음이 있으며 사람됨이 용맹하다.
범부 가운데 신선으로부터 온 자는 과거세에 도덕을 널리 닦고 현묘한 정신을 수양했으나 번뇌의 속세를 아직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인간에 태어난다. 골격이 비범하고 몸과 얼굴이 맑고 예스러워 우아하며 거동에 풍채가 있고, 정신과 자태가 고상하고 고결하여 안광이 담담하고 푸르며, 성품이 유순하고 기운이 편안하여 귀한 데에 머무르나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산림을 즐겨서 항상 수련의 뜻이 있으며, 신령한 기틀이 텅 비어 이 티끌세상으로부터 벗어나 그 사람됨이 맑고 깨끗하다.
범부로서 별에서 온 자는 곧 하늘의 천체였던 자가 과보가 다함에 인간에 강생한 것이다. 불길한 징조가 있는 별(凶星)이었다가 강생한 자는 형상이 엄하게 생겼고, 안광에 광채가 있고 용맹하고 충성스러우며, 뛰어난 총명함이 세상을 뒤덮을 만하고, 거동이 단정하며 성품이 밝고 마음이 신령하여 항상 무지개같이 높은 뜻이 있다. 만약 상서로운 별(吉星)이었다가 강생한 자라면 얼굴에 상서로운 기운이 많고, 안광의 깨끗한 빛이 북두칠성과 견우성의 빛을 발하며, 척추뼈(神骨)가 뛰어나고, 모든 구멍이 맑고 아름다우며, 가슴뼈가 길상하고, 널리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상존하며, 능히 조화를 이루어 사람됨이 활달하다.
범부로서 천신과 지기로부터 온 자는 과거세에 충신과 효자가 죽어서 천지의 신령이 된 것으로 인연을 다 마치지 못함으로써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용모가 기이하고 신비한 빛이 얼굴에 가득하며, 눈이 크고 청정하여 통철하고 분명하며, 총명정직해서 간사함과 아첨하는 것을 능히 몰아내고, 영묘한 성품으로 앞서서 알아차리며, 말에 위엄과 복을 갖추고, 제사 지낼 마음이 항상 있으니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절의가 있다.
범부로서 과거세에 모든 악업을 짓고 온 자는 육근이 모두 어둡고 둔하며, 얼굴형이 짧고 추하며, 눈이 허공을 보듯 떠 있으며 정신이 없고 기가 부족하며, 낯빛이 뜨고 매의 뺨과 쥐의 귀를 하고 있으며, 파리 얼굴에 공 모양의 머리통을 하고, 장님, 귀머거리, 문둥이, 벙어리, 곱사등이, 절뚝발이 등으로 태어나며, 입안에서 나쁜 냄새가 나고 마음에 탐하는 생각이 많으며, 어리석고 미혹함에 미친 듯 날뛰고, 항상 형세의 어려움을 만나며, 나쁜 병과 소갈증이 있음에 보는 사람이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음이 없으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결핍되어 외롭고 영락하며 의지할 데가 없어서 결과가 끝내 아무것도 없다.
대체로 윤회전도가 어지러운 생각과 화합해서 일어나는 것은 모든 종류의 중생에 있어서 모두 다 그러하나, 각기 한쪽으로 치우쳐 왕성해지므로 차별이 있다. 첫 번째는 난·태·습·화의 사생이니 위에서 태생을 먼저 둔 것은 인간관을 우선 살피고자 한 것으로 실은 난생이 먼저 온다. 총괄해서 논하자면 알을 깨고(㲉) 나온 것이 난생이고, 태에 함장되어서 나온 것은 태생이며, 빌려서 일어난 것은 습생이고, 없다가 홀연히 있게 된 것은 화생사실 화생은 없다가 홀연히 있는 것이 아니니 아래의 화생 항목에서 상세히 밝힐 것이다.이다.
난생은 상想으로써 나고, 태생은 정情으로 해서 있으며, 습생은 합合으로써 감응하고, 화생은 이離로 응하니 이와 같은 사생이 안으로는 의지작용(思業)32)
으로 말미암아 인因이 되고 밖으로는 알과 태장과 축축한 습기가 연이 되니 연이 많고 적음으로 해서 차례가 생긴 것이다. 난생은 네 개의 연을 갖추므로 제일 먼저 오고, 태는 셋을 가지며, 습생은 둘을 갖추고 화생은 오직 연이 하나일 뿐이다.
난생은 마음속의 망령된 의지작용으로 인하여 세계에 생사 윤회하니 살아 있을 때 내가 생기했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태어남 역시 알지 못하고, 죽을 때에 내가 멸한다고 말하지 않으므로 죽음도 역시 알지 못하니 업이 과보를 알지 못하고 과보가 업을 알지 못한다. 사업思業의 생각이 경솔하게 일어나므로 움직임에 전도됨이 많다. 난생의 종류가 자웅이 다분히 기氣로 교합하는 까닭에 기를 화합하여 알을 이루는 것이다. 그 교합할 때에 중음신식이 감응함으로써 화해서 태와 난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응결된 몸(응활체)을 이루어 마침내 알의 껍질과 함께 껍질 안에는 암컷 황색과 수컷 백색의 두 기운이 합성된다.
아뢰야식이 알 안에 존재하여 지·수·화·풍의 네 가지 연을 빌려서 업풍業風의 화력으로 해서 점점 커져 최후에 하나의 활동하는 물체를 이룬다. 생각의 몸(想體)이 경솔하게 일어나서 의지력이 왕성한 까닭에 능히 비상하고, 또 생각에 가라앉음이 많은 까닭에 조류는 공중을 비행하다가 항상 수풀에 내려앉아서 거주하고 생활하며, 어류는 수중에 항상 떠다니다 가라앉는다. 이들 날개 달린 무리의 종류가 다 스스로의 업에 따라 감응한 것이고 결코 천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일념一念이 움직임에 생·주·이·멸이 갖춰지고, 탐·진·치가 일어남에 무량한 번뇌가 일어나니 그 업력이 불가사의하므로 난생의 무리에 감응하는 과보도 역시 무량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情과 상想이 균등하여 인간에 태어난 자는 바르다. 정이 많으며 상이 적어 축생으로 흘러든 자는 한쪽으로 치우친다. 습생은 정이 많고 생각이 적어서 내심의 의지력에 치우친 정이 왕성함으로 말미암아 습생의 무리에 태어난다. 신령한 식의 의지력으로 환영 같은 변화로 나타난 식이 추하고 더러우며 깨끗하지 못하고 축축하게 젖은 곳에 대해 향기롭고 청결하다는 생각을 내서 향기를 맡고 문득 달려가 붙는다. 이는 향에 물들은 업훈습의 집착이 견고하여 축축한 습기로 달려가 붙겠다는 생각이 신속하게 일어나므로 취전도趣顚倒라고 한다. 신령한 식은 능히 달려감에 있어서 정보正報의 능의能依능의는 능히 의지하는 주체인 나이고 소의所依는 나에게 의지가 되어 주는 것이다.가 되고 축축한 습기는 의보依報로 의지하는 연이 된다. 신령한 식의 의지력으로써 습기에 나아가 합하여 생기므로 습생은 화합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비록 신령한 식과 축축한 습기가 서로 화합하나 양기가 없으면 발생하지 못하므로 습기는 양陽으로써 생긴다. 그러므로 따뜻함(煖)과 합하여 이루어진다고 하니 의지력이 전도된 어지러운 생각을 갖추고 또 정情이 치우치게 왕성하기 때문에 습생을 감득한다. 전도된 어지러운 생각이 향하는 바가 정해지지 않아서 꿈틀거리면서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굽었다 폈다 하는 무리를 감득한다. 합合은 애愛가 막힘으로 해서 촉의 경계로 달려가 붙어서 생기는 것으로 이는 천신이 조작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가 있는 자에 있어서는 이로 말미암아 미신이 타파될 것이니 삼계와 만유가 오로지 마음(唯心)과 오로지 식(唯識)이 변해서 된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대체로 미신은 국민의 올바른 눈을 막고 장애해서 정신상에 큰 해를 입히기 때문에 누누이 분별해서 밝혔다.
일반적으로 화생은 내심의 신령한 식의 의지력에 정情의 훈습이 치우치게 왕성함으로 말미암아 화생을 감득하는 것이니 생각이 변역變易의 사상에 굳게 집착하는 까닭에 변역의 과보를 성취한다. 화化는 떠남(離)으로써 감응하니 신령한 식이 거짓된 생각에 집착하여 변역하고자 함에 이곳을 떠나 저곳에 의탁하는 것이므로 거짓된 것에 전도된 것이다.
정보正報인 신령한 식이 변역될 것과의 인연에 의하여 촉과 화합해서 팔만사천의 새것과 옛것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니 생각이 옛것에서 옮겨 가서 새것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과보를 감응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향해 나아간다. 벌레가 나비로 화함에 기어가던 것을 전환해서 능히 날아오르고 참새가 대합조개로 됨에 날아오름을 버리고 능히 잠수하니 대체로 같은 형상이 아닌 것으로 모양을 바꾸는 것이 다 옛것을 바꿔서 새것으로 향해 간다.
만일 천상과 지옥을 논한다면 다 화생이니 이는 신령한 식이 아무 모양이 없되 홀연히 천상과 지옥에 화현하여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無에서 홀연히 유有가 된다고 말한다. 지옥과 모든 천상은 하나하나가 다 화생이니 옛 몸을 버리고 업으로써 화한다. 그러나 천상은 처소에 물든 것이고 지옥은 비린내를 맡은 것이니 모두 이 신령한 식의 업력이 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다가 홀연히 있게 된 것이 아니다.
본래 대체로 세계가 이루어지고 유지되다가 무너져서 공으로 되는 겁수劫數를 가히 헤아리기 어려우니 중생의 생사도 또한 헤아리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 삼계의 천지만유가 나의 본래 성품(本源性)의 심식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데 중생이 미혹함으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라든지 물과 불이라든지를 보는 것이다.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서 해, 달, 물, 불을 신으로 섬기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신령한 식이 광명과 화합하여 굳게 집착해 떨쳐버리지 않으면, 마음이 광명의 장애함으로 화하여 막히고 전도되어, 곱게 빛남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의 의지력으로 해서 생을 받아 색계의 형상이 있게 된다.
곱게 빛나는 신령한 식이 별자리로 변형하여 나타나며(化作), 또는 신령한 식이 해와 달, 별자리에 태어나 곱게 빛나는 광채를 발하니 이 또한 뭇 유정의 중생이라 바른 깨달음(正覺)을 성취한 것이 아니다. 별자리, 해, 달 등의 길吉한 것은 복福이고, 흉凶한 것은 화禍이니 횃불과 조개의 진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무리이다. 곱게 빛이 현저함으로 말미암아 팔만사천의 고운 빛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을 성립하여 일체의 곱고 밝은 신령한 물건이 다 고운 빛이기 때문에 사업의 생각하는 힘(思業想力)이 이미 이와 맺어져서 고운 빛을 이룬다. 그 때문에 『열반경』에 이르기를 “팔십의 신神들이 다 이 막힌 생각의 근원(留礙想元)으로 해서 이 고운 빛을 이루는 것”33)
이라 하였다. 이것이 비록 지극히 곱고 지극히 신령하나 또한 삼계에 윤회함을 면치 못하므로 이 역시 전도된 망상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다.
본래 대체로 세계중생이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므로 본래의 마음에 미혹하고 외도의 법을 수행한 결과로 무색의 과보를 받으니 일체가 오직 마음이며 오직 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도를 닦고자 하되 올바른 길을 알지 못하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큰 근심이 있으니 몸이 있는 까닭이다.”라고 하며 존재(有)를 싫어하고 공에 집착하며 몸을 없애고 무에 돌아가고자 하여 이런 마음을 굳게 지켜서 몸을 없애고 무로 돌아가기 위한 그릇된 선정을 닦아 몸의 형체가 없는 과보를 성취한다. 이는 색신色身이 사라져 흩어지고 다만 수·상·행·식의 마음만 있어서 미혹하여 전도된 것이다. 몸을 없애고 무에 집착하므로 어두운 공에 의지하여 어둠과 합한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암흑 속에 있음에 몸의 형상은 볼 수 없으나 은은하게 어지러운 마음이 있는 것과 같아서 몸의 형상은 사라지고 흩어져 없다고 할지라도 은연히 어지러운 생각은 있으니 이는 곧 무색천의 외도의 무리이다.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올바른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고 나머지는 일삼지 않는다. 이 무색의 무리는 생각만 있고 몸이 없으며 또 미혹된 업이 무거워 체는 공의 어둠에 합하고 식은 음침한 기운(陰隱)에 붙으니 역시 공중으로 흩어지고 사라지고 가라앉는 무리이다.
무색천에 두 종류가 있으니 이는 외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부와 성인의 두 길이 있다. 성인은 곧 둔근기의 아나함아나함은 소승과 가운데 세 번째 단계이다.이니 업과의 색은 없고 선정에 따른 과보의 색은 있다. 이 역시 허공에 흩어지는 무리에 속한 자라고 하니 마음이 흩어져서 곧 공하여 색의 형상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한 무리는 곧 주공신主空神이니 순전히 외도라서 업과와 정과의 색이 모두 없다. 따로 녹아서 가라앉는 무리에 속하니 공의 어둠을 성취해서 닳아서 없어져 침몰한다. 이들에게는 업의 체는 없으나 업의 결박(業繫)에 따른 태어남이 있다. 이 무색 중생이 유전하여 국토에 가득 차 있으나 청정한 도를 이룬 부처님의 눈을 제외하고 범부의 눈으로 이를 볼 수 있는 자는 없다.
원래 대체로 세상 사람들이 최상의 올바른 도를 알지 못하고 그릇된 도를 닦고 익힘으로 이 과보를 성취한다. 승속은 말할 것도 없이 올바른 도를 알지 못한 자는 다 우리 불교의 도가 아니다. 외도가 목숨에 정이 없다고 망령되게 헤아려서 모습을 잊고 마음을 죽여서 쇠나 돌과 같이 견고하게 한다. 또는 그릇된 선정을 익혀서 재와 같이 마음을 엉기게 하므로 생각이 온전히 고갈하며 마음이 경계를 따라 변할 때에 사물을 만나 형태를 이룬다. 옛날에 겁비나劫毘那와 황두黃頭35)
의 두 사람이 화해서 돌이 된 것과 정인鄭人 완緩이 나무가 된 것36)
이 다 이러한 무리이다.
유상有想의 존재는 생각(想)만 있고 모습은 없으니 세간에 외도와 범부가 그 마음이 그릇되어 참됨을 잃고 영상影像에 그릇되게 집착하여 신명에게 기도하며, 정신을 허망한 우상에 의탁하여 항상 그릇된 견해로 공경하고 우러러 마지않으므로 허망한 영상에 전도된다. 설사 우상에 그릇되게 집착하지 않을지라도 여러 가지 마음작용의 업으로 천신이나 허공신, 산신, 물의 신 등 아무 신에게든지 항상 그릇된 견해로 눈앞의 복과 수명 및 사후에 영혼의 구원을 얻고자 기도하며 다른 정신에 붙어 지내는 사람은 무형적 우상이 유형적 우상보다 천만 배 이상 두드러진 것이다. 유형의 우상을 비웃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무형의 우상에 미혹되어 믿는 것이 진실로 유형의 우상보다 더 큰 우상임을 알지 못한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만일 “색과 형상으로 부처님을 보고자 하며 음성으로 부처님을 불러서 보기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그릇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 부처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37)
라고 하며 또 이르기를 “부처란 사람 하나하나에서 자기의 본래 성품이 부처이니 그대의 본래의 불성을 깨달으면 그대 스스로가 부처라서 다시 다른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부처님의 몸이 허공을 다하고 법계를 다하여 티끌마다 불국토마다 부처님의 몸이 원만하여 일체중생의 몸의 내외를 통철하였다.”라고 했다. 부처는 곧 허공을 다하고 법계를 다하여 천지만물의 본래의 대원각의 청정성이고 신이나 귀신이 아니다.
만법을 통하여 일심을 밝히며 인간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성품을 깨닫게 하심이 제일의 목적이라 마음 외에 부처가 없음을 천 권의 경전과 만 권의 논에 구구절절이 밝게 보이셨다.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스스로 지은 것이며 화와 복이 오직 마음으로 자초된 것임을 자각하면 설사 우상이 있을지라도 다른 정신에 붙어 다니는 것이 아니며, 설사 우상이 없을지라도 자각한 각성의 불생불멸한 성품이 항상 광명이 분명한지라 천지만유를 주재한 청정각성이 어디엔들 없겠는가?
햇빛이 깨끗한 곳과 더러운 곳을 다 비추되 깨끗하고 더러움에 털끝만큼도 물들어 집착함이 없으니 불성도 이와 같아서 두루 미치되 또한 더러움에 오염되는 일이 없다. 마음의 성품인 부처 외에 따로 신을 모시고 섬기면 설사 유형의 우상은 없을지라도 천지간에 제일 큰 우상을 모시고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마음이 부처인 것을 자각하면 유형의 우상이 있을지라도, 불(火)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말이 불을 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상이 있고 없고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연꽃이 물 안에 있어도 물이 묻지 않는 것과 같음이 우리 부처님의 목적이니 무슨 옳고 그름에 물들어 집착함이 있겠는가? 허공이 그 자체가 공하되 능히 세계 만상이 거기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과 같으니 어찌 있고 없음에 우리 마음이 집착하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마음만 깨치면 시비가 바로 그 자리에서 없어질 것이다. 마음 밖에 다른 것을 받들기 때문에 상이든 무상이든 존재하는 것이 다 우상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그릇된 견해로 영상影像에 그릇되게 집착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면 그 결과 과보로 받는 자기 사업思業의 기억과 화합해서 팔만사천 개의 잠닉하여 맺음(潛結)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을 획득해서 물귀신(罔象)으로 윤회하는 귀신의 무리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색온에 의탁하지 않고 기억에 대한 생각을 따라 생겨서 물귀신 가운데 잠닉하여 그 생김새(狀貌)를 맺으니 정신이 밝지 않아 어두워서 귀신이 되고, 정이 완전하지 않아 흩어져서 영靈이 되어 실제 형상은 없고 다만 상근想根만 있게 된다.
대체로 귀신과 정령은 형상을 볼 수 없다. 다만 신령한 식이 잠닉하여 맺어져서 기억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나면 성황이나 또는 신사의 우상 등에 의탁해서 붙는다. 중생이 신령과 통하는 것을 그릇되게 사모하여 생각하고 기억해 마지않으면 목숨이 다한 후에 이 귀신의 과보를 받으니 어찌 가히 경계하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을 누가 주는 것이겠는가? 오직 마음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니 바른 깨달음의 도를 닦아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바르지 못한 그릇된 업으로써 다른 것들의 인연에 가탁하여 서로 형세를 위해 몸과 목숨을 자양하는 까닭으로 수모수모水母는 해파리의 무리를 감득한다. 수모는 물거품으로 자기의 몸을 삼고, 새우를 얻어 자기 몸 안에 거두어 지녀서 새우의 눈으로써 자기의 눈을 삼는다. 독립생활을 하지 못하고 남의 형세에 의탁하여 교묘히 속여 화합하고 그릇된 아첨을 많이 하면, 자기를 굽히고 남을 좇는 과보가 생긴다. 수모가 본래 눈이 없으니 색이 어찌 있겠는가? 새우를 기다린 연후에 색을 이루며 능히 스스로 작용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기다린 연후에 작용한다.
천연의 참됨을 미혹하여 잃어버리고 다른 것에 붙어서 위장하여 떠다니니 피차 다른 성질로써 더러움에 오염된 인연끼리 서로 화합하므로 인의因依라고 한다. 업과 과보가 서로 좇아 자유로 몸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유색이 아닌 형상 등이라 하니 유정의 몸속에 있는 팔만의 세균이 나란히 이 무리이다. 유색이 아닌 이것은 만일 수모를 두고 말한다면 몸의 형태가 있으나 체가 곡물 가루와 같고 상태가 깔개와 유사하다. 사람이 잡아서 먹으니 무색이 아니요, 특별히 다른 것의 형태를 기다려야 작용하고 능히 색의 세력을 스스로 온전하게 갖추지 못하니 유색이 아니다. 중생 몸속의 세균이 역시 이 무리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릇된 마술의 주문을 지녀서 독송하되 그 원인은 귀신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밤낮으로 신이 감응할 것을 희망하여 일심으로 주문에 집착하여 그릇된 업이 서로 끌어당겨 성정으로 하여금 전도케 하니 주문을 따라 식이 의탁하여 부름(呼召)에 대한 어지러운 생각을 이룬다. 곧 세간에 그릇된 마술로 저주함에 정매精魅39)
가 사물을 싫어하는 일이 이로 인하여 생긴다. 세상 사람들이 버드나무 목각 인형을 만들어서 주술의 방법으로 그 길흉을 갚으려고 하니 이들의 무리가 많으면 국민의 정신상에 큰 불행을 줄 뿐만 아니라 목숨이 다한 후에 무색無色이 아닌 과보를 받을 일이 가히 두려워할 만하다.
오직 마음이 스스로 지은 것임을 깨달아 나의 본래 자성이 지닌 최상의 청정한 독립정신을 깨닫고 체득하여 그릇된 길을 버려야한다. 만일 인과를 헤아린다면 틀림없이 태어날 때마다 저주를 좋아할 것이며 생물을 해치고 삶을 상하게 하여 인과를 서로 주고받을 것이니 어찌 작은 일이라 하겠는가? 세간에 정매가 사물을 싫어해서 이 업으로 인하여 태어나되 생물의 이치를 말미암지 않으니 본래 무색이나 이 업의 감득으로 물질을 이룸에 무색이 아니라고 한다.
세계중생이 인因에 있어서 기만하기를 좋아하여 다른 것을 거둬들여 자기 존재를 삼는 까닭에 과果에서도 또한 다른 것을 취하여 자기의 존재를 삼는다. 이 두 가지의 망령됨이 서로 화합하여 성정이 어둡고 어리석어서 다른 기질로써 서로 성숙되니 생리가 서로 번갈아 섞인다. 나나니벌이 본래 뽕나무벌레로 있을 때는 내가 벌이라는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다가 벌로 되고 나서는 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는 유상有想이라 할 수 없고 다만 두 가지 망령됨이 합해서 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뿐이다. 오로지 마음에 의해서 자기 스스로 만든 것이라 천당과 지옥을 어찌 별도의 처소에서 찾겠는가? 밖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세계국민과 동포들이 미신을 타파하고 바른 도로 들어서기를 원하니 이 책을 보신 도인은 깊이 생각해서 자세히 살피기를 바란다.
무상이 아님을 추론하자면 과거세의 악연으로 말미암아 원래 원통함을 품고 과보를 도모하고자 다시 와서 부모의 연에 임시로 화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無想) 온 것이 아니다. 또한 부모는 낳아 기른 지극한 은혜와 지극한 사랑이 있는데도 도리어 잡아먹히는 괴로움42)
을 받고 자식은 지극한 은혜와 지극한 사랑을 입었는데도 도리어 해를 끼쳐 잡아먹으니43)
이는 진실로 심하게 괴이해서 차마 보고 들을 수 없다. 사람과 가축을 막론하고 이런 일을 눈앞에 보게 되는 일이 심히 많으니 이는 과거세의 원수를 갚고자 하여 돌아온 자이다. 그러나 금생에 새롭게 원한을 맺은 자도 많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설사 백겁을 지나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이 만날 때에 과보를 거두어 스스로 받는다.”라고 하시니 어찌 가히 경계치 않겠는가? 올빼미 등이 흙덩이를 안아서 자식을 삼으며 파경수破鏡獸는 독 있는 나무 열매를 품어서 그 자식을 삼으니 자식이 성장함에 부모가 그 자식에게 먹힘을 당한다. 이는 해를 당한 원한을 갚기 위해 온 것이라 무상無想으로 온 것이 아니다. ≺ 효무본기孝武本記≻에 맹강孟康이 이르기를 “올빼미는 새의 이름이니 어머니를 먹고, 파경은 맹수의 이름이니 아버지를 먹는다고 하여, 황제가 그 무리들을 없애고자 하여 백 개의 사당에 모두 이를 사용하도록 했다.”44)
고 하였다. 파경은 추貙45)
와 같으며 호랑이의 눈을 가리키게 되었다.
원래 대체로 유정의 동물은 지구를 의지하고 지구는 모든 공기에 둘러싸여 허공에 의지하고 허공은 아뢰야 신식의 전체로서 허공과 산하대지의 상분相分을 건립하고 아뢰야식은 참된 성품에서 건립되는 것이니 아뢰야식의 환변력으로 수만 종류의 중생과 대지가 건립되었다. 이는 모든 신령한 식의 의지력(思業力)의 망령된 습관으로 육취가 발생하는 것이니 십이류 중생이 모두 이 내심의 의지력의 정情과 상想의 많고 적음과 바름과 치우침의 왕성한 세력에 따라 차별이 있는 것이다.
난생은 생각으로 생기니 미혹으로 일어난 성품이고 태생은 습관으로 일어난 성품이며 습생은 그릇됨을 좇아 일어난 성품이고 화생은 나아감(趣)을 보고 일어난 성품이다. 말하자면 미혹한 까닭에 많은 업을 짓고, 습관이 된 까닭에 항상 유전하고, 그릇된 마음을 좇아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아감을 보고서 지옥 등으로 추락함이 많은 것이다. 태는 정으로 생기고 습은 합으로 생기며 화는 떠나감으로 생긴다. 유색은 깨끗한 밝음이 현저하므로 생기고 무색은 어둠과 화합하여 생기며 유상은 기억에 대한 생각과 화합하여 생기고 무상은 완고한 어리석음에 화합하여 생긴다. 비유색은 더러움에 오염된 연과 화합하여 생기고 비무색은 주술과 화합하여 생기며 비유상은 다른 성질과 화합하여 생기고 비무상은 괴이함과 화합하여 생기니 이것은 모두 의지작용(思業)이 스스로 조작한 것이라서 그밖에 다른 것이 없다.
바라는 것은 모든 동포가 미혹한 구름을 타파하고 깨달음의 노정에 올라서 자기 마음의 고유한 아미타불의 깨달음(無量壽覺)에 귀의하여 참된 상常, 참된 낙樂, 참된 아我, 참된 정淨이 되는 밝고 묘한 안락을 성취하여 천상과 인간에서 자유의 쾌락을 얻어서 영겁의 윤회를 해탈하고 불도를 함께 이루는 것으로 이를 간절하게 빈다.
위의 전문은 아직 불교의 이치를 설한 것이 아니고 다만 중생관衆生關을 설명한 것이다. 먼저 천지와 중생의 경계를 알고 난 후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이유를 알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중생의 식심관이 비록 투과하기 어려우나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방편을 임시로 빌리면 투과하기가 어렵지 않으니 모든 부처님의 묘한 법은 아래의 2권과 3권46)
에 기술할 것이다.
001단하丹霞 : 단하 자순丹霞子淳(1064~1117). 송대 조동종의 스님. 단하는 주석한 산의 이름. 속성은 가賈씨이고 사천성 검주 출신이다.
032사업思業 : 사업은 의지의 활동이고 사이업思已業은 사업이 끝난 후의 행위로서 신구의身口意의 삼업三業으로 본다면 삼업 이전에 사업이 먼저 있다고 하여 삼업을 사이업으로 보는 견해와(경량부), 삼업 가운데 의업을 사업과 동일하게 보아서 구업과 신업을 사이업이라고 하는 주장(유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