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원정종

(歸源正宗)
귀원정종歸源正宗
[표지]
귀원정종歸源正宗*

* 본 번역은 도문 큰스님이 주관하고, 각성 스님이 번역하여 펴낸 『歸源正宗』(죽림정사, 2013)을 참고하여 번역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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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白龍城 선술選述

신규탁**

** 동경대학교 문학박사,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옮김



귀원정종歸源正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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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귀원정종 상권

1. 불교는 인간의 도리를 섬기지 않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2. 유교의 삼강오상을 불교에 견준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3. 불교는 선하기만 하여 혼란을 초래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4. 불교의 경전은 유교만 못하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5. 승려는 부처를 팔아 법의 밑천을 삼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6. 인과는 믿기 어렵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7. 선조의 업이 자손에게 미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8. 귀천이 대물림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9. 하늘의 내린 명령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10. 태극설을 끌어들인 힐난에 대한 반론
11. 태극의 이치는 의심할 수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2. 유·불 동이의 힐난에 대한 반론
13. 불교는 허무적멸의 도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14. 불교는 정신과 혼백을 본성으로 여긴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5. 불교는 일상 떠난 것에 집착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6. 본성과 천명을 수긍해야 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17. 인종이 소멸할 것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18. 어떤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
19. 윤회가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
20. 수태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21. 후생의 몸을 받는 것에 대한 힐난에 대한 반론
22. 태에 들어가는 순간을 설명해 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
23. 유정이 몇 종이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
24.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25. 세계가 일어난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26. 세계가 일어난 시초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
27. 중생의 기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28. 업의 과보가 어떻게 시작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29. 교화행의 우열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30. 몇 가지 질문을 뽑아 거기에 변론하는 장

귀원정종 하권

31. 부처님의 출생에 즈음한 다섯 가지 상서
32. 부처님 탄생 시의 신이함
33. 귀한 지위를 버리고 도를 닦음 : 유아독존에 대한 변론
34. 부처님 상호와 광명
35. 부처님의 34종의 상서
36. 부처님께서 마군을 굴복시킴
37. 기독교의 십계와 불교의 가르침 대비
38.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성불의 원인
39. 부처님이 살생을 금한 것은 평등한 자애임
40. 부처님의 십계로 삼업을 모두 포섭
41. 부처님의 신통묘용은 마음을 벗어나지 않음
42. 모든 하늘의 수행 차례
43. 지옥도 마음이 짓는 것
44. 문답을 통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변론
45. 천지창조설 비판
46.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설 비판
47.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지었다는 설 비판
48. 요한복음에 대한 변론
49. 문답을 통한 증명
50. 다섯 가지 쇠퇴 현상
51. 본원으로 돌아감을 밝힘
52. 불교 경전의 심천을 밝힘
53. 성문에 대해 밝힘
54. 연각에 대해 밝힘
55. 불보살의 수행차제를 밝힘
56. 중생심 밖에 부처가 없음을 밝힘
57. 사종 법계를 밝힘
58. 모든 것을 마음으로 회통
59. 지관과 정혜를 밝힘
60. 선종의 핵심을 밝힘
61. 간화법의 핵심을 밝힘
62. 간화의 절요를 인용
63. 궁극의 과보를 변론하여 밝힘
64. 치우침과 원만함에 대한 변론
65. 선종 오가 종풍을 변론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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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緖言)
或이問曰歸源正宗은何爲以作也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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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묻는다.
귀원정종歸源正宗을 지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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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宋神宗年間에江左道學이倡於伊川昆季야和之者十有餘家라做出二百十七種見解야痛排佛敎며西敎之流가以排佛로爲己能야毁言이載路야罔有紀極이라. 然이나佛之道本絶人我며不碍是非故로成就忍力야未嘗與之辨明니以故로世俗이全昧야未識佛道之爲何如고但將冊子上語야毁之謗之故로佛日이日暗고法輪이不轉이라. 余不忍坐視其然야依排辨論也ㅣ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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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중국 송나라 신종 연간(1067~1085년), 강좌江左(중국의 강동지역)에서 정명도와 정이천의 두 형제에 의해 도학道學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한 자들이 10여 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217종의 견해를 만들어 불교를 통렬하게 배척하였다.
(또 근자에 들어서는) 서교西敎(기독교를 지칭)의 무리들은 불교를 배척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삼았으니, 헐뜯는 말들이 거리마다 넘쳐 끝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도는 본래 나다 남이다 하는 분별이 없으며 시비에도 구애되지 않아 인내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과 더불어 변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두워서 불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책자에 있는 말만 가지고 헐뜯고 비방했다. 그리하여 불일佛日이 날로 어두워지고 법륜法輪이 구르지 않게 되었다. 내가 차마 그런 것을 좌시할 수 없어, 저들의 배척에 대꾸하여 변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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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曰古云可言不言은大人心이요難忍能忍은君子志라니不如忍之爲德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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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옛말에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대인의 마음이요, 참기 힘들지만 능히 참아 내는 것이 군자의 뜻이다라고 했으니, (대꾸하느니 차라리) 참아서 덕스러워지는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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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善타然이나衆生苦海가無量이니若非佛力이면誰能濟之리오慈眼視衆生이면福德海無量이니라. 吾所以爲此者는爲度生而然也요非人我而爲然也이니라. 汝能除去儒敎西敎之經史典籍에所載毁佛之言句乎아若然者컨余亦休却호리라. 自古及今에吾佛之家에셔一無先排外敎고但隨辨而已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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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다.
(그대의 말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중생의 고해가 한량없으니 부처님의 힘이 아니면 누가 그들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바라보면 바다 같은 복덕이 한량없다.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지, 나와 남을 나누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유교나 서교의 경전이나 역사책에 실린 불교를 비방하는 말들을 없앨 수 있겠는가? 만약 없앤다면 나 역시 그만두겠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불교 집안에서 먼저 남의 종교를 배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그들의 비방을) 따라 변론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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盖他敎는但度人而未能免永劫輪回언이와佛慈는深廣사度人天三有胎卵濕化十二類生니其不曰絶對的眞慈乎아? 此歸源正宗之所以作也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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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여타의 종교는 그저 사람만을 제도할 뿐이고, 또 영겁의 윤회를 면하게는 못하지만, 부처님의 자비는 깊고도 넓어서 인간계와 천상계의 삼유三有와 태·난·습·화의 열두 부류의 중생을 제도한다. 그러니 이것을 어찌 절대적인 참된 자비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귀원정종을 짓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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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部寺洞二十八統六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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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중부 사동 28통 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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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원정종歸源正宗 상권
1. 불교는 인간의 도리를 섬기지 않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不事人道難)
或이問曰沙門釋子不知三綱五常之如何고但宴寂深山야以取自娛而不事人道니於世에何益也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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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묻는다.
사문인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삼강과 오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깊은 산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자신의 편안함만 취하고 인간의 도리를 섬기지 않으니,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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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你誠不知聖人設敎之大體ㅣ로다. 吾佛世尊이能空一切相相像也사成萬法智야隨緣度生시니譬如一月이在天에影含衆水ㅣ라豈有取捨於山野哉ㅣ리오? 聖人之心이若有取捨ㅣ면則是乃天降雨에必擇地而下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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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그대는 성인께서 가르침을 만든 근본(大體)을 정말 모르는구나. 우리 부처님 세존께서는 능히 모든 모양모양이란 형상을 말한다.을 비우고 만법의 지혜를 완성하여 인연에 따라 중생을 제도하셨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달이 하늘에 있지만 영상이 온갖 물에 어리는 것과 같다. 어찌 산과 들 가운데 어느 것은 취하고 어느 것은 버리겠는가? 성인의 마음에 만약 버리고 취함이 있다면, 이는 마치 하늘이 비를 내리면서 땅을 가려 내린다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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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說三歸五戒 시니三歸者曰歸依佛이오曰歸依法이오曰歸依僧也ㅣ라. 佛也者覺也ㅣ니以覺自心故로名爲佛이오以可軌持故로名爲法이오以心性이和合不二故로名爲僧이오以心性이圓淨故로名爲戒也ㅣ니普天下之人民이各其歸依乎自家之三寶自佛自法自僧也最淸淨本命元辰則箇箇爲正眞無邪之大人也ㅣ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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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삼귀의와 오계를 설하셨다. 삼귀의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고, 법에 귀의하는 것이고,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다. 부처님이란 깨달음(覺)이니, 제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고, 법칙으로 삼아 지킬 만하기 때문에 법이라 하고, 심성이 화합하여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승가라 한다. 심성이 원만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계戒라고도 한다. 온 천하의 인민들이 각각 자신 속에 간직된 삼보인자신의 부처, 자신의 법, 자신의 승가 가장 청정하고 근본 생명이며 새해 첫날과 같은 것에 귀의한다면, 저마다 바르고 참되며 삿됨이 없는 대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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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五戎者一曰不殺生이니此仁之本也ㅣ오二曰不偸盜ㅣ니此義之本也ㅣ오三曰不邪淫이니此禮之本也ㅣ오四曰不妄語ㅣ니此信之本也ㅣ오五曰不飮酒ㅣ니此智之本也ㅣ니五者ㅣ備而五常之道ㅣ恒然不眛야在於心目之間과行用之中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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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계는 첫째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인仁의 근본이요, 둘째는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의義의 근본이요, 셋째는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예禮의 근본이요, 넷째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신信의 근본이요,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지智의 근본이다. 오계가 갖춰지면 오상五常의 도가 항상하여 어둡지 않아 마음속과 행동하는 가운데 언제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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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此로可以修身이며以此로可以齊家며以此로可以治國이며以此로可以平天下ㅣ니然則豈可謂沙門야爲不知三綱五常之道乎ㅣ리오? 但沙門이宴寂深山야超然自得者惟以道爲懷者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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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오계)으로 제 자신을 닦을 수 있고, 이것으로 집안을 바로잡을 수 있고, 이것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이것으로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사문이 삼강과 오상의 도를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사문이 깊은 산에 고요히 지내면서 초연히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오로지 도를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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噫라! 道在一箇則一箇重고道在天下則天下重니不可謂無益於世也ㅣ니라. 古來神僧道士ㅣ有補於家國者ㅣ多矣ㅣ니子其思之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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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가 한 사람에게 있으면 한 사람이 귀중해지고, 도가 천하 사람에게 있으면 천하 사람이 귀중해지니, (불교가) 세상에 이익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예로부터 (불교의) 신통한 승려와 (도교의) 도사들 중에는 나라를 도운 분들이 많았으니, 그대는 그것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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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교의 삼강오상을 불교에 견준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綱常配佛難)
問曰三綱五常은儒家聖哲之所立也ㅣ어子何以配於佛之說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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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삼강과 오상은 유교의 성인과 철인께서 세운 것인데, 그대는 왜 부처의 말에 그것을 짝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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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休道休道라. 人人脚下에淸風拂이오箇箇面前에明月白이로다. 夫綱常者貫古來今에凡爲人者ㅣ皆固有之常分也ㅣ니彼堯舜孔子ㅣ豈有所作爲於其間哉ㅣ리오? 試觀今之海內海外東西列强之諸國니皆有綱常之道야敎導之며守行之니孔子ㅣ何嘗往化於其國耶아? 藥不必扁鵲之方이라愈病則一이오書不必孔丘之文이라爲敎則一이니라. 吾佛無上之大道直指人人固有之本心야使之見性成佛케니三綱五常은卽固有之常分也ㅣ오見性成佛은卽本有之竗用也ㅣ니若將箇人之所無야而別授於人이면則此邪也ㅣ오非正也ㅣ니라. 那自性本有之竗用이圓理ㅣ照然야箇箇是固有天然的事也ㅣ어而一切衆生이多有迷昧故로十方國土에聖人이間生샤廣爲說法시니實發明此事而已也ㅣ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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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모든 사람의 발 아래 맑은 바람이 나부끼고, 모든 사람의 면전에 밝은 달이 훤하다. 대저 삼강오상이란 예나 이제나 무릇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본래 갖추어진 변함없는 몫(常分)이다. 저 요임금이나 순임금이나 공자가 어찌 그 사이에서 만들어 낸 것이겠는가? 시험 삼아 바다 안과 바다 밖 동서 열강의 여러 나라를 살펴보니, 모두 삼강오상의 도가 있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인도하며 그것을 지켜 행하고 있다. 공자가 어찌 일찍이 그 나라로 가서 교화하였겠는가? 약藥이 꼭 편작의 처방일 필요는 없으니 병을 치료함에는 똑같으며, 문장이 꼭 공자의 문장일 필요는 없으니 가르침이 됨에는 똑같다. 우리 부처님의 위없는 대도는 사람마다 참으로 간직한 본심을 곧장 가리켜서 그들로 하여금 성품을 깨쳐 부처가 되게 한다. 삼강오상은 곧 본래 간직된 변함없는 몫(常分)이고, 본성을 깨쳐 부처가 되는 것은 곧 본래 간직된 오묘한 작용(妙用)이다. 만약 저마다에게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준다면, 이는 삿된 것이지 바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성 속에 본래 간직된 오묘한 작용이 원만한 이치가 비치어 저마다가 본래 간직한 본래의 현상이지만, 일체중생이 대부분 이를 미혹했기 때문에 시방국토에 성인께서 간간이 출생하시어 널리 법을 설하셨으니, (이 모두는 다) 실로 이 일을 밝게 드러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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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교는 선하기만 하여 혼란을 초래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徒善返亂難)
問曰子ㅣ以佛之五戒로配對於五常이나然이나以其徒善而返亂故로不可治於世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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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그대는 불교의 오계를 (유교의) 오상에 배대하였다. 하지만 불교는 그저 선하기만 하여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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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你何以少見으로妄起狐疑也오? 你能學通經律論三藏否아? 佛之所說이略八億四千萬卷經也ㅣ라言言이斬釘截鐵이며句句ㅣ利刃當陽이라能殺能活며能縱能奪며或撫背而誘之며或嚬申而吼之야乃至三千威儀와八萬細行이淨如氷玉며又於沙門主持常法의小小威儀와些些軌則에도一有不順叢林規範者ㅣ면隨過之輕重야或有滅擯出界者며或有隨其覆藏日數而治之者며有罪而覆藏其狀綻露則計其日數之多少如法治之也或有衆中懺謝而免罪者니豈曰徒善而返亂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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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그대는 왜 좁은 소견으로 여우 같은 의심을 함부로 일으키는가? 그대는 경·율·논 삼장을 능히 배워서 통달했는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약 8억 4천만 권에 달한다. 하시는 말씀마다 (중생들의 몸에 박힌) 못을 자르고 쇠를 절단하며, 구절구절 햇살 아래 번쩍이는 예리한 칼날과 같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풀어 주기도 하고 잡아들이기도 하며, 혹은 등을 쓰다듬어 달래기도 하며, 혹은 으르렁거려 포효하기도 하여, 나아가 3천 가지 위의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이 마치 얼음이나 옥처럼 깨끗하다. 또 사문이 (사원에) 머물며 지켜야 하는 일상 법도의 소소한 위의와 자잘한 궤칙 속에는 총림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과오의 경중에 따라 승적을 박탈해 절에서 내쫓는 경우도 있고, 범죄 사실을 감춘 날짜에 따라 죄를 다스리는 경우도 있고,죄가 있는데 감추고 있다가 그 사실이 탄로 나면 그 날짜가 어느 정도인지 계산해 법대로 다스린다. 혹은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뉘우치고 용서를 빌어 죄를 면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그저 선하기만 하여 도리어 혼란을 초래한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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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교의 경전은 유교만 못하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多煩不如小實難)
問曰聖人이制七經之本시衆事備焉이어今云釋氏之八億四千萬卷經은寔非一箇人의所能堪任也ㅣ니余以爲多煩이不如少實也ㅣ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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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성인께서 칠경(사서와 삼경)의 근본을 제정하시니 여기에 온갖 일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약 8억 4천만 권에 달한다고 하니, 참으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불교의 경전은 너무 많아서 적더라도 실속 있는 (유교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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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夫佛者爲天人之導師오四生之慈父也ㅣ라. 普觀衆生이同稟而迷시고嘆曰奇哉라. 一切衆生이具有如來智慧德相이언마는但以妄想執著으로而不證得이라시고向生死海中사駕無底鐵船시고登獅子座사先說華巖사統萬法明一心시고又觀衆生의根性이萬差사遂入三眼國中三句也사東說西說사隨機演唱시니三世因果와無量遠劫之事와幷大小乘性相體用本末이群經에具載니雖恒沙ㅣ라도猶不足以喩其多也ㅣ니如析旃檀에片片旃檀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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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부처님은 하늘과 인간의 도사導師이시고, 사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이시다. 중생이 똑같이 (불성을) 부여받고도 미혹한 것을 널리 관찰하시고, 기이하구나! 모든 중생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완전히 갖추었건만 다만 망상과 집착 때문에 증득하질 못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고, 생사의 바다 가운데로 향하시어 바닥 없는 철선을 타시고 사자좌에 오르시어 먼저 화엄경을 설해 만법을 통괄하고 일심을 밝히는 대의를 말씀하셨다.
또 중생의 근성이 천차만별인 것을 관찰해 마침내 삼안국삼구 속으로 들어가셔서 이렇게도 설명하시고 저렇게도 설명하시어 근기 따라 널리 말씀하셨다. 삼세의 인과와 한량없이 아득한 겁 이전의 본사本事 및 대승·소승의 성과 상, 체와 용, 본과 말이 수많은 경에 빠짐없이 실렸다. 비록 항하강의 모래알 수로도 그 많음을 비유하기에 오히려 부족하니, 마치 전단향나무를 쪼개면 조각마다 전단향인 것과 같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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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에聾騃盡醒고枯槁悉潤야大地含生과諸天龍神과地獄諸趣가各得其所ㅣ로吾佛願力이猶在시고悲心이尙熏사碎金剛之勝體사爲舍利之遺骨야與法寶로常住於世야普令衆生으로深心歸依야各得景福케시니豈與他論으로同爲較例乎아? 螢燄이何齊於日馭之光이며蚊觜로寧盡乎滄溟之底ㅣ리오? 儒家所論天下者不出於現今約約所發見者六部中에亞細亞洲內幾箇國而論道者도亦不過五倫三綱而已라漏管窺天이오掩耳偸鈴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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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귀머거리와 벙어리들도 모두 깨닫고 메마른 나무들도 모두 물이 올라 대지의 모든 생명체와 모든 하늘의 용과 신들, 지옥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중생들도 그 마땅함을 얻게 되었다. 그러고도 우리 부처님의 원력은 여전히 남으셨고 또 자비심은 더욱 자욱하셔서, 금강석 같은 진리의 몸(勝體)을 부셔 사리로 유골을 남겨, 법보와 함께 세상에 항상 머무시어 모든 중생에게 깊은 마음으로 귀의하여 저마다 큰 복을 얻게 하셨다. 어찌 다른 이론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반딧불이 어찌 태양의 광명과 같을 수 있겠으며, 모기 부리로 어찌 깊은 바닷물을 밑바닥 낼 수 있겠는가?
유교에서 말하는 천하는 오늘날 몇 개 발견된 6부部 중의 아세아주 안에 있는 몇 개 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며, (유교에서) 설명하는 도道도 역시 오륜과 삼강에 불과할 뿐이다.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는 격이요,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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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殊大士云사覺海性이證圓고圓證覺이元竗ㅣ로다. 元明이照야生所고所가立照性이亡나니迷妄야有虛空고依空야立世界로다. 想證야成國土고知覺은乃衆生이니라. 空이生大覺中니如海一漚發이니라. 有漏微塵國이皆依空所生이로다. 漚滅면空本無어니況復諸三有아시니推此觀之컨儒家所論天下者不足可論이로다. 華嚴淸凉國師ㅣ云호往復이無際나動靜은一源이라含衆竗而有餘고超言思而逈出者其惟法界歟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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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 권6에서) 문수보살께서 말씀하셨다. 바다 같은 깨달음의 성품이 맑고 원만하며, 원만하고 청정한 깨달음이 본래부터 오묘하도다. 본래부터의 밝음이 비추어 경계(所)를 낳으니, 경계가 생기면 비추는 성품은 사라진다. 미혹한 망상 때문에 허공이 존재하고, 허공에 의지하여 세계가 성립된다. 맑은 생각은 국토가 되고, 지각하는 작용은 곧 중생이 된다. 허공이 완전한 깨달음(大覺)에서 생겨나는 것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어난 것과 같다. 먼지처럼 많은 유루有漏의 국토가 모두 허공에 의지해 생겨난다. 물거품이 사라지면 허공도 본래 없으니, 하물며 다시 저 삼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로 미루어 살펴보건대 유교에서 말하는 천하는 가히 논의하기에 부족하다.
화엄종주 청량 국사께서 (화엄경청량소의 서문에서) 말씀하셨다.
가고 옴이 끝이 없지만, 움직임과 고요함은 근원이 같으니, 온갖 오묘함을 머금고도 여유가 있고, 언어와 사유를 초월해 아득히 벗어났으니, 이것은 오직 법계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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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云我世尊이十身初滿에正覺始成사乘願行以彌綸시고渾虛空而爲體性시니富有萬德이오蕩無纖塵이로다. 湛智海之澄波ㅣ虛含萬像이오皎性空之滿月이頓落百川이로다. 不起樹王사七處於法界시고無違後際사暢九會於初成이로다. 盡宏廊之幽宗이오被難思之海會로다. 圓音이落落에該十刹而頓周ㅣ오. 主伴이重重에極十方而齊唱이라니以此觀之컨儒家所謂道行而化被者ㅣ烏得與比論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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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말씀하셨다.
우리 세존께서 십신十身을 처음 다 갖추시어, 마침내 정각을 이루시자, 원행願行에 의지하여 널리 다스리고, 허공을 뒤섞어 체성體性을 삼으셨으니, 풍부하게 만 가지 덕을 갖추시고, 깨끗이 쓸어버려 작은 번뇌 하나 없으셨다. 고요한 바다 같은 지혜의 맑은 물결이 만 가지 형상을 티 없이 머금고, 밝은 허공 같은 본성의 둥근 달이 백 개의 시냇물에 단박에 비치었다. 보리수 밑에서 일어나지도 않으신 채 법계에 칠처七處를 펼치셨으며, 뒷이야기와 어긋남이 없이 처음 성도한 자리에서 구회九會를 펼치셨도다. 크고도 넓은 깊은 종지를 모조리 드러내시어, 무수하게 많은 법회의 온 중생을 지도하시니, 원음圓音이 널리 퍼져 시방의 국토에 두루하며, 부처님과 대중이 거듭되어 모든 시방세계가 일제히 노래하였다.
이것으로 살펴보건대, 유교에서 말하는 도道의 실천과 교화의 범위가 어찌 불교와 비교해 논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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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승려는 부처를 팔아 법의 밑천을 삼는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賣佛資法難)
問曰沙門釋子者ㅣ遁處伽藍야賣佛資法고釣費許多信施며多不修道고虛度一生光陰니兩家有損이라何成化門이리오? 不如廢之已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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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사문 석자라는 자들은 가람에 은둔하여 부처를 팔아 법의 밑천을 삼고, 수많은 신자들의 보시를 낚아채어 쓰면서, 도를 전혀 닦지 않고 일생을 헛되게 보낸다. 친가와 외가 양쪽에 모두 손해가 있으니 어떻게 교화의 문이 되겠는가? 없애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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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如子之言인誠未達理也ㅣ라自孔氏卒後로迄今二千四百六十餘年에道大德盛이如孔子者ㅣ爲幾人矣ㅣ며扶網陳常야爲人師者ㅣ抑幾人乎아普天下之民衆이箇箇爲賢人君子則必不有智愚之差와聖凡之異名也ㅣ리라. 蒭草之中에有蔘芝之靈藥고土石之中에有金玉之珍寶고禽獸之中에有麟鳳之瑞祥니圓覺經에云譬如大海가不讓小流어든乃至蚊蝱과及阿修羅飮其水者ㅣ皆得充滿이라시니吾之佛道圓融無礙야無有彼此며無有親疏며無有貴賤며無有賢愚야四姓이入道에同一平等니豈可以金玉之故로棄諸土石乎아? 利者易達고鈍者多滯而已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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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그대와 같이 말한다면 참으로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공자가 죽은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2천460여 년이 되는데, 도가 크고 덕이 성대하기가 공자만 했던 사람이 몇이나 되며, 삼강을 돕고 오상을 펼쳐 인간의 스승이 된 자가 또 몇 사람이나 되는가? 온 천하의 민중들 하나하나가 현인군자가 되었다면,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도 절대로 없고, 성인이니 범부니 하는 다른 명칭도 없어야 할 것이다. 잡초 속에 산삼이나 영지 같은 영약이 있고, 흙더미 돌무더기 속에 금이나 옥 같은 진귀한 보배가 있으며, 날짐승 들짐승 속에 기린이나 봉황 같은 상서로운 동물이 있는 법이다.
원각경에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큰 바다는 작은 개울을 마다하지 않으며, 모기나 깔다귀 나아가 아수라에 이르기까지 그 물을 마시는 자는 모두 배불러지는 것과 같다.
우리 부처님의 도는 원융무애하여 이것과 저것이 없으며, 친근함과 소원함도 없으며, 귀하고 천함도 없으며, 현명하고 어리석음도 없다. 사성四姓의 어느 계급에 속한 사람도 도에 들어오면 동일하고 평등하다. 그러니 어찌 금이나 옥 때문에 모든 흙이나 돌을 버릴 수 있겠는가? 영리한 자는 쉽게 통달하고 아둔한 자는 많이 막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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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ㅣ曰朝聞道면夕死라도可矣라야날張無盡이論此云孔子ㅣ以仁義忠信으로爲道耶아? 則孔子固有仁義忠信矣ㅣ오以生久視로爲道耶아? 則夕死ㅣ可矣라시니是ㅣ果求聞何道哉오. 豈非大覺慈尊의識心見性無上菩提之道也ㅣ리오? 孔子도尙尊其道어而今之學孔子者ㅣ未讀百十卷之書고先以排佛로爲急務니哀哉라. 今에略擧爲沙門者ㅣ必有不壞成佛之因緣야爲子言之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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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는데, 장무진(장상영 거사)이 이를 논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자께서는 인·의·충·신으로 도를 삼으셨을까? 아니다. 공자께서는 인·의·충·신을 참으로 이미 가지고 계셨다. (공자께서는) 오래오래 사는 것으로써 도를 삼았던 것일까? 아니다.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는 과연 어떤 도를 들으시려 하셨던 것일까? (그것이) 어찌 대각자존께서 말씀하신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는 위없는 보리의 도가 아니겠는가? 공자께서도 오히려 그 도를 존중했는데 요즘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들은 백 권은커녕 열 권의 책도 읽지 않고 우선 불교를 배척하는 일로 자신의 급선무를 삼으니, 슬프구나.
이제 사문에게는 반드시 파괴되지 않는 성불의 인연이 있음을 간략히 제시하여, 그대를 위해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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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爲佛子者ㅣ各有結緣之道니或有聞道而發心者며或有聞道而修之者며或有聞道而悟之者며或有聞道而謗之者며或有聞道而背之者니其所譽讚毁謗者가皆得無量之利益나니라. 何以故오如人이手過糞器면則其臭穢ㅣ卒難除ㅣ오衣涵香籠면則其餘薰이尙自振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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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불자에게는 저마다 인연을 맺는 도가 있다. 도를 듣고서 발심하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닦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깨닫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비방하는 자도 있으며, 도를 듣고서 그것을 등지는 자도 있다. 그렇지만 칭찬하거나 찬양하거나 헐뜯거나 비방하거나 한 자들이 모두 한량없는 이익을 얻는다. 무엇 때문인가? 마치 사람이 손으로 분뇨 그릇을 만지면 그 악취를 단박에 없애기 어렵지만, 옷에 향주머니를 넣어 두면 그 남은 향기가 오히려 저절로 진동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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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云사因緣所作業은百千劫不無야因緣會遇時에果報를還自受라시니爲佛子者正當以時禮敬於諸佛며或誦琅函之玉軸며若値宗師上堂說法면時聞諸佛玄竗之法門야有漸次修進者며有暫時思惟者며有如風過耳者니此等般若種子를深植于心王心田이라가因緣會遇時에皆發生般若之道芽야成就無上之正覺야廣度無數之人天리니豈可曰不成化門而兩家有損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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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연으로 지어진 업은 10만 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을 만날 때에 과보를 도리어 제 스스로 받는다고 하셨다. 이미 불자가 되었으면 마땅히 때에 맞추어 모든 부처님께 예경해야 하며, 혹은 낭함의 옥축(불경)을 염송해야 할 것이다. 만약 종사께서 상당하여 설법하는 경우를 만나면, 수시로 모든 부처님의 현묘한 법문을 들어 점차로 닦아 나아가는 자도 있고, 잠시 생각해 보는 자도 있고, 바람이 귀에 스치는 것처럼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등등으로 반야의 종자를 심왕의 마음 밭에 깊이 심어 두었다가, 인연을 만났을 때 모두 반야의 싹을 틔워 위없는 정각을 성취하여 무수한 인간 세계와 하늘 세계의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 그러니 어찌 교화의 문이 되지 못하고, (친가와 외가) 양쪽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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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과는 믿기 어렵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因果難信難)
問曰釋氏之所說因果眞虛遠而難信이로다. 何者오? 現今目前之事도猶未可知어而況於過現未三世之事乎아? 孔子ㅣ曰積善之家에必有餘慶이오積惡之家에必有餘殃이라시니誠哉라此言이여不如佛之妄誕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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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석가모니가 설한 인과법은 참으로 허황되고 아득해 믿기 어렵다. 왜 그런가? 지금 눈앞의 일도 오히려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과거·현재·미래라는 삼세의 일이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악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씀이야말로 진실하다. 불교의 허망한 거짓말과는 전혀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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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你之所引善惡이皆是因果也ㅣ라. 然이나不可以執著也ㅣ니聽吾一言라瞽叟頑父로有何積善이관感得如舜之聖子乎아? 又堯舜은天下之聖人也ㅣ어有何積惡야堯有丹朱不肖之子며舜有尙均不賢之兒耶아? 自古及今으로天下에有如是者甚衆이라不可一一枚擧ㅣ나然이나今以世之所共聞者로言之리라. 孔子有何不善관困於陳蔡之間者ㅣ爲七日矣ㅣ며顔淵은以何報故로致早喪乎ㅣ며閔子蹇은以何怨故로得嚚母乎아? 以此論之컨積善之家에有餘慶고積惡之家에有餘殃者ㅣ意在何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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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그대가 인용한 선악이 모두 인과법이다. 하지만 그것을 집착해서는 안 된다. 내 말을 한번 들어 봐라. 고수는 완악한 아버지였는데, 무슨 선을 쌓았기에 순임금과 같은 성인 아들을 두게 되었고, 또 요임금과 순임금은 천하의 성인이신데 어떤 악을 쌓았기에 요임금에게는 단주라는 못난 자식이 있고, 순임금에게는 상균이라는 현명하지 못한 아들이 있었던 것인가?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하에 이와 같은 사례가 너무도 많아 일일이 거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 세상 사람들이 다들 아는 사실로써 이를 말해 보겠다. 공자께서는 어떤 선하지 못함이 있었기에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욕을 치른 것이 7일이나 되었으며, 안연은 어떤 과보로 요절했으며, 민자건은 어떤 원한을 맺었기에 패악한 어머니를 만났을까? 이로써 논해 보자면 선을 쌓은 집안에는 남은 경사가 있고, 악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고 말한 뜻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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就乎吾佛設敎之意야觀之컨人人箇箇ㅣ皆是自作自受ㅣ오非天人之所能與奪也ㅣ니라. 古云호欲識前生因인今生受者ㅣ是ㅣ오欲識未來果今生作者ㅣ是라니故로或有今生에造業야而今生受報者며或有二三生后에受報者며或有卽因卽果者니如是造業受報ㅣ各有不同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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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처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의 뜻에 입각해서 이를 살펴보면, 사람마다 저마다 모두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것이지, 하늘이나 다른 사람이 능히 주거나 빼앗는 것이 아니다. 옛말에 전생의 원인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다. 미래의 과보를 알고 싶은가? 금생에 짓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금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고, 혹은 2생이나 3생 뒤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원인을 짓자마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것이 각각 같지 않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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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專以所修業緣으로言之컨或有初分修善而中分作惡者며或有中分修善而末分作惡者며或有初中作惡而末分修善者며或有純修善業者며或有純修惡業者며或有善勝惡劣者며或有惡勝善劣者며或有善惡均修者며或有善惡雜修者나니因以如是樹緣으로善惡諸趣와隨業陞沈을亦不可一定也ㅣ니如堯子之不肖와舜子之不賢과孔丘之遭困과顔淵之中夭와子蹇之惡母가皆由宿世業緣之所致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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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오로지 닦은 업연業緣만 가지고 말해 본다면, 혹은 초년에는 선을 닦다가 중년에 악을 짓는 경우도 있고, 혹은 중년에 선을 닦다가 말년에 악을 짓는 경우도 있고, 혹은 초년과 중년에 악을 짓다가 말년에 선을 닦는 경우도 있고, 혹은 순전히 선업만 닦는 경우도 있고, 순전히 악업만 닦는 경우도 있다. 혹은 선이 수승하고 악이 하열한 경우도 있고, 혹은 악이 수승하고 선이 하열한 경우도 있고, 혹은 선과 악을 고르게 닦은 경우도 있고, 혹은 선과 악을 뒤섞어 닦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심은 업연으로 인하여 다양한 선한 갈래와 악한 갈래, 업을 따라서 (다양한 갈래에) 떴다 가라앉는 것 또한 일정하지 않다. 요임금의 아들이 못나고, 순임금의 아들이 현명하지 못하고, 공자가 곤욕을 당하고, 안연이 중간에 요절하고, 민자건이 악한 어머니를 만났던 것은 모두 숙세의 업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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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勝이云諸法이從緣生며亦從因緣滅나니我佛大沙門이常作如是說이라시니所謂因果者如影隨形며如響應聲야善惡이隨緣야莫逃難越이니此是獅子王의決定之說也ㅣ니라. 父母之善惡業緣도其所報應을子孫이猶不能代受어든何況於祖先之積善積惡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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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승이 말하기를 모든 법은 인연 따라 생기며 또 인연 따라 소멸한다. 우리 부처님 대사문께서는 항상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고 하였다. 이른바 인과란 그림자가 본체를 따르듯,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듯 하여, 선과 악이 인연을 따르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고 뛰어넘을 수도 없다. 이것이 사자 임금(부처님)께서 하신 분명하신 말씀이다. 부모가 지은 선악의 업연도 그 대갚음을 자손이 오히려 대신 받을 수 없는데, 하물며 선조가 쌓은 선과 악에 대해서는 말해서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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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조의 업이 자손에게 미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積善引證難)
問曰子之言이謬矣로다. 今에有人이或行犯逆者면一門이遭戮에禍連於子孫니此豈非積惡之餘殃이며有人이或作勳勞者면天下戴名에榮及於後裔나니此豈非積善之餘慶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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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그대가 한 말은 잘못되었다. 지금 어떤 사람이 혹 범죄나 역적질을 행하면 한 가문이 죽임을 당하여 그 화가 자손에게까지 이어지니, 이것이 어찌 악을 쌓아 후손에게 남겨지는 재앙이 아니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혹 공로를 세우면 천하 사람들이 이름을 받들어 영화가 후손에게까지 미치니, 이것이 어찌 선을 쌓아 경사가 후손에게 미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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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敎有同業與別業니同業者國王이與人民으로爲同業故로同生于一國고父母ㅣ與子女로爲同業故로同居于一家며乃至禽獸魚鼈과蟻蜂蠅蚊이라도亦各有部屬야區分이各異나니故로國家有難면人民이塗炭고國家有治면人民이以寗며父母有慶면子女ㅣ歡喜고父母有患면子女ㅣ憂愁나니此卽以宿世業緣과同業所生故로然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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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불교의) 가르침에 동업과 별업이 있다. 동업이란 국왕이 인민과 같은 업을 지었기 때문에 한 나라에 함께 태어나고, 부모가 자녀와 같은 업을 지었기 때문에 한집에 함께 살고, 나아가 날짐승·들짐승·물고기·자라와 개미·벌·파리·모기 등도 역시 각각 집단이 있어 구분이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국가에 재난이 있으면 온 인민이 도탄에 빠지고, 국가가 잘 다스려지면 온 인민이 편안하며, 부모에게 경사가 있으면 자녀가 환희하고, 부모에게 재난이 있으면 자녀가 근심한다. 이것은 곧 숙세의 업연과 동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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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所謂別業者는如一國이騷擾에或一方이安妥며或一縣이見災에他郡은無事며或十人이投入死地에兩三이得免니此卽是同業中別業也ㅣ니라. 如是衆生受報之差別을不可以筆盡也ㅣ니汝但思之라. 還有明白耶아無아? 你所言禍門榮孫者ㅣ亦是同業之所感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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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위 별업이란 온 나라가 소란스러워도 간혹 한 지방은 안전하며, 혹은 같은 현이 재앙을 만났어도 다른 군은 무사하며, 혹은 열 사람이 똑같이 사지에 던져졌어도 두세 사람은 그 재앙을 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곧 동업 속에 들어 있는 별업이다.
이와 같이 중생이 과보를 받는 차별은 붓으로 이루 다 쓸 수 없다. 그대는 부디 생각해 보라. 명백한지 아닌지. 그대가 말한 한 가문이 화를 당하고 자손이 영화로운 일도 역시 동업으로 감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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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귀천이 대물림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多分貴賤難)
問曰余以所聞컨富貴之家에多産富之兒고貧賤之家에恒出貧賤之子나니其理ㅣ何哉오? 莫非是善惡之所招也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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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내가 듣기로는 부귀한 집안에는 부귀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빈천한 집안에는 항상 빈천한 자식이 나온다 하니, 그 이치가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부모가 쌓은) 선악에서 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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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布施濟衆은福之所從이오慳貪自利禍之所伏이라. 己之所種을他不能奪며人之所受를吾不能與也ㅣ니故로隨其善惡業之所修야隨緣隨生나니是以로福厚者應生於富之家고福淺者當出乎貧賤之家理之常然이라不足疑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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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보시하여 중생을 구제하면 복이 따라오고, 인색하고 탐하여 제 이익만 챙기면 재앙이 잠복하게 된다. 자기가 심은 것을 남이 빼앗을 수 없고, 남이 받을 것을 내가 함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악의 업을 어떻게 닦았는가에 따라, 연에 따라 생명을 받게 된다. 이런 까닭에 복이 두터운 자는 응당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고, 복이 얕은 자는 당연히 빈천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이치가 항상 그런 것이다. 의심할 것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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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云사貧窮에布施難이라시니貧窮而能作善者ㅣ幾多乎아. 富之人은散財施穀야以救恤窮乏며或修補伽藍며或供養三寶나니如是因緣이皆修福之事也ㅣ라作如是行者는當生此家나니라. 前所謂福家所生同業之人은本因前業而作聚者ㅣ나然이나中有窮賤者니如奴婢雇傭이是也ㅣ라. 此等之人은惟植前緣이오不修前福故로今雖幸生一家나乃得是果니玆亦同業中別業也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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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빈궁하면 보시하기 어렵다고 하셨으니, 빈궁한데도 선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귀한 사람은 재물을 나누어 주고 곡식을 베풀어 궁핍한 자들을 구휼하며, 혹은 가람을 보수하기도 하며, 혹은 삼보께 공양하기도 한다. 이런 인연이 모두 복을 닦는 일이다. 이렇게 선행을 지은 자는 당연히 이런 집안에 태어나게 된다. 앞에서 소위 복된 집안에 태어날 동업을 지은 사람들은, 본래 전생의 업으로 인하여 같은 무리를 이루었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도 빈천한 자가 있다. 예컨대 노비나 일꾼이 그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전생의 인연만 심고 전생의 복은 닦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비록 다행히 같은 집안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에 이런 과보를 얻은 것이다. 이것 역시 동업 가운데 별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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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이나夫人이若不善修福緣야以資來生고忘却前緣而反恣惡業則必當輪墜也ㅣ니라. 福長不久라終歸貧寒나니福盡墮落은理之常然이라富貧賤과同業別業을何足疑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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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저 사람이 만약 복된 인연을 잘 닦아 내생의 밑천으로 삼지 않고, 전생의 인연을 망각하고서 도리어 방자하게 악업을 지으면, 반드시 응당 악도로 떨어진다. 복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 결국은 가난하고 외롭게 되고 만다. 복이 다 되면 떨어지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다. 부귀와 빈천, 동업과 별업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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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늘의 내린 명령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天之所命難)
問曰古云天生萬民의必授其職이라니由此觀之컨人之富貧賤과生活作業이都係於天之所命也故로天下에有四民焉니士農工商이是也라善於商者不善於農고善於工者不善於士야四者ㅣ各守其職而不相踐越나니其爲天之所命而然也ㅣ不亦明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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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옛말에 하늘은 온 백성을 낳을 때에 반드시 그에게 직분을 수여한다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사람의 부귀빈천과 생활 직업이 모두 하늘의 명령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천하에 네 종의 백성이 있으니, 사·농·공·상이 그것이다. 상업을 잘하는 자는 농업을 잘하지 못하고, 공업을 잘하는 자는 벼슬아치 노릇을 잘하지 못하니, 네 백성이 각각 그 직분을 지키면서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것은 하늘의 명령이라서 그런 것임이 또한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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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你云天生萬民이라니與天主耶蘇之道로是同是別가? 若言同인則孔氏之道ㅣ與天主耶蘇之敎로不必別立也ㅣ오? 若言不同인則其義가安在오? 你事天者乎아違天者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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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그대가 말하기를, 하늘이 온 백성을 낳는다고 한 말은 천주교의 예수 가르침과 같은가, 다른가? 만약 같다면 공자의 도와 천주 예수의 가르침을 따로 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다르다면 그렇게 말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하늘을 섬기는 자인가, 하늘을 어기는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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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孔氏之道禮義廉恥와孝悌忠信이上行下化야以極人倫나니此天地之常經이며古今不易之大典也ㅣ라. 子ㅣ何以比於天主耶蘇之敎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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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공자의 도는 예의염치와 효제충신이니, 위로는 몸소 실천하고 아래로는 남을 교화하여 인륜을 완성하는 것이니, 이는 천지의 변함없는 날줄이며 고금에 변함없는 위대한 법도이다. 그대가 무엇 때문에 (공자의 가르침을) 천주교의 예수 가르침에 비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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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耶蘇謂天造萬物이라고孔氏云天生萬民이라니以理言之컨豈曰不同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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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예수는 하늘이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하고, 공자는 하늘이 온 백성을 낳았다고 하였으니, 이치로 말한다면 어찌 같지 않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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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夫子說正說理사敎民以禮며導民以善야不令蒼生으로惑於忘誕야陷於異端커시彼耶蘇之立敎也與儒道로異야不知道在自己心性고卽使人人으로信天父며呼救主며守戒傳道면則死後에當生天堂야得永生不之福樂이오若不爾者卽死䧟地獄야受無量苦라야以此禍福之妄說로誣民而惑世니其爲不同이懸隔天壤이라. 何與論哉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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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말한다.
공부자께서는 바른 것을 설하고 이치를 설하시어, 예로 백성을 가르치고 선으로 백성을 이끌어, 뭇 백성들이 거짓말에 속아 이단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셨다. 그러나 저 예수가 세운 가르침은 유교나 도교와 다르다. (저들은) 도가 자기 심성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곧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天父)를 믿고 (그를) 구세주라 부르게 하고 있다. 율법을 지키고 기독교를 전파하면 죽은 뒤에 마땅히 천당에 태어나 영생불멸의 복락을 얻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죽어 지옥에 빠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하여, 이런 화복의 허망한 이야기로 혹세무민하고 있다. 그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니 어찌 더불어 비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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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然다聞之言니其理不同을槪可見矣ㅣ로다. 然이나曰天生萬民에地以載之면是天地ㅣ則象民之父母也ㅣ라. 子歸父所理亦當然也ㅣ어你云耶蘇ㅣ妄立生天陷地之說야誘惑民生이라니莫非是欲敎耶蘇야令不事天者乎아! 若爾則據孔氏之道以言之라도是誘人之令子야使陷於不道也ㅣ니道倫常이而今安在오?註曰欲敎耶蘇令不事天則天命之性率性之道安在己逆天者綱常之道亦必無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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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렇다. 그대 말을 들으니 그 이치가 다르다는 것을 대개는 알겠다. 그러나 이미 하늘이 온 백성을 낳고 땅이 그들을 싣고 있다고 말했으니, 이는 하늘과 땅이 곧 수많은 백성의 부모라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 계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치 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그대는 말하기를, 예수가 (사람을) 하늘에 태어나게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게도 한다는 설을 허망하게 만들어 백성을 유혹한다고 하니, 이는 그대가 예수를 가르쳐 하늘을 섬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공씨孔氏의 도에 의거하여 언급하더라도, 이는 사람들을 유혹해 아들이 되게 하여, 도가 아닌 것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말한 인륜의 강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예수를 가르쳐 하늘을 섬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면, ‘하늘이 명령한 것이 성이고, 성에 따르는 것이 도이다’라는 (『중용』의 가르침은) 어디에 있는가? 이미 하늘을 거스른 자이니, 강상의 도 역시 반드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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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復問汝노라. 天在那裏야生彼萬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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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는다.
하늘이 어디에 있으면서 저 만백성을 낳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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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指頭上曰蒼蒼空復空이여無聲亦無臭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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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머리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푸르고 푸르며, 텅 비고 텅 비었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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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然則空是天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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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허공이 하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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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更問汝노니空是頑空이라. 空本無知ㅣ如土木瓦石之類어니如何生民이리오? 若空彼蒼天이是能生民인必也人人從天下生矣ㅣ리라. 何不聞人이生于天야脚踏虛空而降者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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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시 너에게 묻겠다.
허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허공에는 본래 지각 작용(知)이 없으니 이는 마치 흙이나 나무나 기왓장이나 돌덩이 등과 같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백성을 낳겠는가? 만약 허공의 저 푸른 하늘이 백성을 낳았다면, 반드시 모든 사람이 하늘에서 하생下生했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 사람이 하늘에서 하생할 때에 허공을 밟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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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曰天者理也ㅣ니理應群機야發生萬物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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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하늘이란 이치(理)이다. 이치가 수많은 기틀(機)에 응하여 만물을 발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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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云理非一二也ㅣ라諸理之中에何者爲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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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이치는 하나둘이 아니다. 여러 이치 가운데 무엇이 하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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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云理惟一耳라. 何言多也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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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이치는 오직 하나뿐이다. 왜 많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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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水有濕之理고火有熱之理며風有動之理고地有載之理니如是諸般萬理를具不能擧也ㅣ라指甚麽야爲天乎아? 若以火理로爲天인火中에應生萬民이오若以土理로爲天인地中에常生萬民리니以理言之컨一切가皆生萬物야사始得다. 若指空爲天이면何不於空中에生民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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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물에는 축축함이라는 이치가 있고, 불에는 따뜻함이라는 이치가 있고, 바람에는 움직임이라는 이치가 있고, 땅에는 (만물을) 싣는 이치가 있다. 이처럼 여러 갈래의 수많은 이치를 다 거론할 수 없다. 어느 것을 지목해 하늘이라 하는가? 만약 불의 이치로써 하늘을 삼는다면 불 속에서 응당 만백성이 태어나야 할 것이요, 만약 흙의 이치로써 하늘을 삼는다면 흙 속에서 응당 만백성이 태어나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일체가 모두 만물을 낳아야만 될 것이다. 만약 허공을 가리켜 하늘이라 한다면 왜 공중에서는 만백성이 태어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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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曰太極之理가是天也ㅣ니라.註曰或恐有人稱太極爲天預備防難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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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태극이라는 이(太極之理)가 바로 하늘이다.혹 어떤 이들 중에 태극을 하늘로 칭할 것 같아, ‘방난防難(상대의 비판을 차단)’을 미리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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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吾常聞太極之說니太極이生陰陽兩儀어던其淸而上浮者를謂之天이오其濁而下凝者를謂之地也ㅣ라. 於是에兩儀ㅣ生后에天地開焉고天地開而四象이生焉고四象이生八卦고八卦ㅣ生六十四卦云云니由此觀之컨太極은乃能生之主ㅣ오自兩儀로及於六十四卦皆爲所生之物也ㅣ로다. 然則所謂太極之理를謂之天者已於理에相違언이와且以萬物一太極之說로推之컨則亦有可通之理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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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내 평소 태극太極의 학설을 들으니, 태극이 음과 양 둘을 낳았는데, (그중) 맑아서 위로 뜬 것을 하늘이라 하고, 탁하여 아래로 응결된 것을 땅이라 한다. 이렇게 (음과 양) 둘이 생긴 뒤에 하늘과 땅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열리자 (少陽·老陽·少陰·老陰의) 사상四象이 생기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고 팔괘가 육십사괘를 낳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건대, 태극이 (만물을) 낳는 주체이고, 음과 양에서 육십사괘까지는 모두 (태극에서) 생겨난 물건이다. 그렇다면 그대가 말하기를 태극이라는 이치가 바로 하늘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이치에 위배된다. 그런데 만물은 저마다 동일한 태극을 갖추고 있다는 학설로 추론해 본다면 통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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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이나我更問汝노라. 所謂太極云者는一也아多耶아? 是知耶아是無知耶아? 是遍耶아是不遍耶아? 你將一太極之理야謂爲天니若言太極이惟一이면如何能生萬民이리오? 夫陰陽이和合然後에萬物이發生니你云一理가生民者於理에不當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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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내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이른바 태극이라 하는 것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그것은 지각 작용(知)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대가 동일한 태극이라는 이치를 가지고, 이것을 하늘이라 하였다. 만약 태극은 오직 하나이다라고 말한다면, (하나인 태극이) 어떻게 만백성을 낳을 수 있겠는가? 대저 음과 양이 화합한 뒤에 만물이 발생하니, 그대가 말한 하나의 이理가 만백성을 낳는다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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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言多則太極之體가無有定處로다. 然則頭頭物物花花草草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有知至於飛禽走獸와昆蟲魚鼈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無知一切無情草木土石之類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遍인風氣虛空도亦皆生民이可也ㅣ오. 若言不遍인必有定處리니世界無數人民이何所從生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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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태극은 여럿이다라고 말한다면, 태극의 본체는 일정한 처소가 없는 꼴이다. 그렇다면 두두 물물과 온갖 꽃, 온갖 풀 역시 모두 만백성을 낳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태극에) 지각 작용(知)이 있다고 말한다면, 심지어는 날아가는 새와 달리는 짐승과 곤충과 물고기, 자라까지도 역시 만백성을 낳아야 한다. 만약 (태극에) 지각 작용이 없다고 말한다면, 일체의 무정물인 풀·나무·흙·돌 등의 종류까지도 역시 만백성을 낳아야 한다. 만약 (태극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바람 기운이나 허공까지도 역시 모두 백성을 낳아야 한다. 만약 (태극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반드시 일정한 처소가 있어야 하는데, 세상의 무수한 인민이 어디로부터 태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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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言天理公然에以待陰陽交而後에生民者現自世界人種으로至於蟲魚히一切有識含靈이一日一夜에陰陽相交者ㅣ數如塵沙리니應當一合一生며百合百生며萬合萬生이可也어而今不爾者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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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하늘의 이치(天理)는 공편하여 음과 양이 서로 어우러지길 기다린 뒤에 만백성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현재 세상의 인간에서부터 곤충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식을 가지고 있고 생명체들이 하루 밤낮 암수가 서로 짝짓기 한 횟수는 (항하강의) 고운 모래알 숫자만큼 많을 것이다. 응당 한 번 짝짓기 하면 한 생명이 태어나고, 백 번 짝짓기 하면 백 생명이 태어나고, 만 번 짝짓기 하면 만 생명이 태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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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言太極之理가如潮水之出入야其氣가流溢則人民이生인天地間生靈이每於日夜에不分時刻고無有隔斷야生者ㅣ無數야亦如塵沙리니你所謂天生萬民之說을分明指示看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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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태극의 이치는 조수가 들고 나는 것과 같아서 그 기운이 넘쳐흐르면 만백성이 태어난다고 말한다면, 하늘과 땅 사이의 생명체들은 매일 밤낮으로 시간에 관계없이 잠시도 끊어짐이 없어, 태어나는 자가 무수하여 또한 (항하강의) 고운 모래알 수처럼 많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말한 하늘이 만백성을 낳는다는 주장을 분명히 지시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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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태극설을 끌어들인 힐난에 대한 반론(引太極難)
客이良久에復起曰易에云太極이生兩儀고兩儀ㅣ生四象고四象이生八卦고八卦ㅣ定吉凶고吉凶이生大業이라니此理之至道也ㅣ라. 子雖答話簡辨을演如河沙라도皆是異端之道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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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한참 잠자코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말한다.
주역 (계사전)에서 말하기를, 태극이 (음과 양)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가 길흉을 결정하고,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고 하였다. 이는 이치의 지극한 도이다. 그대가 비록 대답과 변론으로 연설하기를 항하강의 모래알 수처럼 한다 해도, 이것은 모두 이단의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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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吾聞說니太極이生兩儀며兩儀ㅣ生而於是乎三才ㅣ成焉고萬物이發生니天行四時之道며人有五常之義를於斯에足見深意로다. 然則所謂太極은從何而出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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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내가 그대의 말을 들어 보니,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생기자 여기에서 (하늘·땅·사람의) 삼재三才가 성립되고 만물이 발생하니, 하늘에는 네 계절의 도가 운행되고 사람에게는 오상의 의리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 깊은 뜻은 충분히 알겠다마는 이른바 태극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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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從無極而出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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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대답한다.
무극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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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無極은曾從何出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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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무극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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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無極은空寂야無有出處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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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대답한다.
무극은 공적하여 출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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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無出處是以虛無自然으로爲宗이라卽無因者也ㅣ니如無其因이면如樹無根야枝幹花果ㅣ終不自立리니太極兩儀四象은從何能立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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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이미 출처가 없다면 이는 허무자연으로 근원을 삼는 것이니, 이것은 무인無因인 것이다. 만일 그 원인이 없다면, 마치 나무에 뿌리가 없어서 가지·줄기·꽃·열매가 끝내 스스로 성립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태극과 양의와 사상이 무엇에 근거하여 성립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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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無極而太極이오太極而無極이니其體不二야充塞乎天地之間이어니何可論喋於其間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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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대답한다.
무극이면서 태극이고, 태극이면서 무극이다. (무극과 태극은) 그 본체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데, 어찌 그 사이에 있는 것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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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余亦學焉而未至者也ㅣ라博問先知야欲釋吾心之滯碍耳니라. 復問노니太極之名을其誰先立也오太極이能生三才라니盖太極이自立其名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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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나 역시 (도를) 배우는 사람일 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다. 먼저 안 사람들에게 널리 물어, 내 마음에 막히고 걸린 것들을 풀어 버리고자 한다. 다시 묻노니, 태극이라는 이름은 누가 가장 먼저 세웠는가? 또 태극이 삼재를 낳았다고 했다. 대저 태극 스스로가 그 이름을 세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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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伏羲氏ㅣ始先天八卦시고周文王이變作後天八卦시니孔子以作周易사發揮此道也ㅣ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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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말한다.
복희씨가 처음으로 선천 팔괘를 그리시고, 주나라 문왕이 이를 변용해 후천 팔괘를 만드시자, 공자께서 이를 사용하여 주역을 지으시어, 이 도를 널리 발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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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然則是人이生太極也ㅣ오非太極이能生三才與萬物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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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이는 사람이 태극을 낳은 것이지, 태극이 삼재와 만물을 낳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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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聖人이將本有之太極사但發明而已也ㅣ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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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말한다.
성인께서 본래 존재했던 태극을 가져다가, 다만 (그 설명을) 까발려 밝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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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然則吾ㅣ知之矣ㅣ라. 子道聖人이發明太極이라니故悉케라. 聖人은爲能發明之主ㅣ오太極은爲所發明之物이라. 是能所가已分矣ㅣ오. 若道三才與萬物이卽太極이오太極이卽三才與萬物이라면則是能所가絶對者也ㅣ어旣有能所인儒之所說萬物一太極之理安在오? 若道萬物이各具一太極이라면如何人與禽獸와一切蠢動含靈이豈有智愚之差別乎ㅣ며若道其所受稟氣也ㅣ有淸濁而然歟則太極與天地其有邪乎ㅣ며若道太極與無極이體本不二야而能生萬物이라면則太極은爲能生因者니當其生緣之時야是有知而生緣耶아? 抑無知而生緣耶아? 若言有知而生緣인如人이一念心生야起種種分別緣起之時에當了了分明야一一自照ㅣ可也ㅣ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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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알겠다. (그대는) 성인께서 태극을 까발려 밝혔다고 말하니, 알겠도다. 성인은 까발려 밝힌 주체가 되고, 태극은 까발려 밝혀진 물건이 된다. 이는 가 이미 나뉜 것이다. 만약 (그대가) 삼재와 만물이 태극과 상즉해 있고, 태극이 삼재와 만물과 상즉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의 상대가 끊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미 가 있다면, 유교에서 말하는 만물 속에 동일하게 태극이 갖추어져 있다는 이치가 어찌 성립될 수 있겠는가? 만약 만물이 각각 동일하게 태극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찌 사람과 날짐승과 들짐승 등 일체의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생명체들에게 지혜롭고 어리석은 차별은 왜 존재하는가? 만약 (하늘로부터) 받아 타고난 기운에 맑고 탁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태극과 천지는 그야말로 사사로움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태극과 무극은 본체가 서로 다르지 않아 능히 만물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태극은 능히 낳은 원인자가 된다. 그렇다면 그 연을 낳는 때에, 지각 작용이 있으면서 연을 낳는 것인가? 아니면 지각 작용이 없으면서 연을 낳는 것인가? 만약 지각이 있으면서 연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예컨대 사람이 한 생각이 마음에서 생겨 갖가지 분별을 일으켜 연기할 때에, 응당 또렷또렷하고 분명하여 낱낱이 스스로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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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三才與萬物이爲太極之所生緣起則普土生靈과以及無情히亦皆自能發明太極之理矣어何假伏羲文王孔子之口也ㅣ며若言無知而生綠인是與無情으로等이니那山河草木은何不生三才與萬物耶아? 不知太極이從何而出고妄立名相야爲三才之始와萬物之祖云니足見鄙矣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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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삼재와 만물이 태극에서 생겨나 연기한 것이라면, 온 대지의 생명체와 나아가 무정물까지도 역시 모두 저절로 태극의 이치를 까발려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복희씨와 문왕과 공자의 입을 빌렸는가? 만약 지각 작용이 없으면서 연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무정물과 같다. 그렇다면 저 산과 강과 풀과 나무들은 왜 삼재와 만물을 낳지 못하는가? 그대는 태극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알지 못하고, 이름과 모양을 망령스럽게 수립하여 삼재의 시초와 만물의 원조를 운운하니, 그 비루함을 충분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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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天地與我同根이며萬物이與我一體어妄說天生萬民이라며一切衆生이隨業隨生이어妄說天授民職이라며又爲人之折挫야不知自語之相違고妄云天則理也라며又問到何理爲天之說야妄謂太極之理야爲天이라니尤甚可恥也ㅣ로다. 謂太極이生兩儀輕淸而上浮者ㅣ爲天고重濁而下凝者ㅣ爲地라니輕淸且浮者ㅣ爲天이어니又以太極之理로爲天者意在甚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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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거늘, (그대들은) 하늘이 만백성을 낳는다고 망령스럽게 말한다. 또 일체중생이 업에 따라 태어나거늘, (그대들은) 하늘이 만백성에게 직분을 수여한다고 망령스럽게 말한다. 그러다가 또 남에게 좌절당하고도 자신의 말이 서로 모순된 줄도 모르고, 하늘(天)이 곧 이치(理)이다라고 망령스럽게 말한다. 또 어떤 이치(理)가 하늘(天)이냐는 질문에 부딪히자, 태극의 이치가 하늘이다라고 망령스럽게 말하니, 더욱 심히 부끄러워할 만하다. 그대는 말하기를, 태극이 양의를 낳고, 가볍고 맑아 위로 뜨는 것은 하늘이 되며, 무겁고 탁하여 아래로 엉긴 것은 땅이 된다고 하였다. 이미 가볍고 맑아 뜨는 것이 하늘이 된다고 하였는데, 다시 태극의 이치가 하늘(天)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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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生大覺中이如海一發이로다. 有漏微塵國이皆依空所生이어何心外에妄立名相며又覺性外에別立太極야爲萬法之因니是非覺性之正因이라卽邪因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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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이 대각大覺 가운데서 생기는 것이 마치 바다에 물거품 하나 일어나는 것과 같다. 유루의 중생이 사는 미세한 먼지처럼 많은 국토가 모두 허공에 의지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어찌 마음 밖에 이름과 모양을 망령스럽게 세우는가? 또 깨달음의 성품(覺性) 밖에 별도로 태극을 세워 만법의 원인으로 삼으니, 이는 깨달음의 성품바른 원인(正因)으로 삼는 것이 아니니, 곧 사인邪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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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不知諸法이本空無着며境似浮雲聚散고但執事相야以三綱五常으로爲道니是常見也ㅣ오死後에以魂飛魄散야永歸寂로爲理니是斷見也ㅣ라. 斷常이非道라豈知無上大涅槃이圓明常寂照也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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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법이 본래 공하여 집착할 것이 없으며 경계가 뜬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과 같음을 알지 못하고서, 현상의 모양(事相)만을 그저 집착해서 삼강과 오상을 도道라고 하니, 이는 상견常見이고, 사후에는 혼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져 적멸의 상태로 아주 돌아가는 것을 이理라고 하니, 이는 단견斷見이다. 단견상견은 도가 아니니, 위없는 완전한 열반(大涅槃)이 원만하고 밝고 항상하고 고요하고 비추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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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태극의 이치는 의심할 수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太極無疑難)
客이曰子ㅣ毁斥聖人之道를若甚니其於太極之理에徹底無疑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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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말한다.
그대가 성인의 도를 헐뜯고 배척하는 것이 심한 듯하다. 그대는 태극의 이치에 철저하여 의심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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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平等性中에無彼此고大圓鏡上에絶親疎라니你無以取捨憎愛之心으로論道也ㅣ어다. 自唐宋以來로斥佛之徒ㅣ正不知佛敎之大體고簸兩片皮야口裡膠生토록東說西說며胡言漢語니甚可愚痴者也ㅣ로다. 而今에孤陋儒生과及至童稚男女히未嘗聞一法談며亦未嘗閱一卷經이라不能曉得佛法之大意고但將冊子上諸儒之矯言飾辭야遞相傳受야先以斥佛로爲大務야以要世間之名利니愚哉라. 榮辱毁譽ㅣ自有報隨니豈必在於排佛乎아? 不覺令人口吐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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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속에는 이것과 저것이 없고, 대원경지大圓鏡智 위에는 가깝고 소원함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대는 취하고 버리거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고, 도를 논하라. 당·송 이후로 불교를 배척하는 무리가 참으로 불교의 분명한 본체를 알지 못하고 두 조각의 입술을 나불거리며 입안에 아교가 생기도록 이리저리 이 말 저 말 하니 참으로 가히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도 고루한 유생들과 나아가 어린애들에 이르기까지 한마디의 (불교) 법담도 들어 보지 못하고 또 한 권의 경전도 읽어 보지 못하여 불법의 분명한 뜻을 능히 밝히지도 못했으면서도, 그저 (당·송에서 만들어진) 책자에 실린 여러 유생들의 교묘한 말과 번드레한 문장만 가지고, 서로서로 전수하며 앞을 다투어 불교를 배척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큰 임무를 삼아,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바란다. 어리석구나! 영광과 치욕, 비방과 칭찬은 (저마다의) 과보에 따라 스스로 있는 것이지, 어찌 불교를 배척한다고 반드시 있겠는가?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로 하여금 구역질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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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以事上涇渭로論之라도人人對酬之際에尋彼此之直曲야分是非之如何ㅣ어嗟夫라! 兄弟야! 何不嘗醍醐之上味고但聞人而據呼曰苦哉苦哉오? 自古及今으로國王大臣과碩儒老師ㅣ頗有知覺者면竟歸於三寶야懺悔求道니是ㅣ求名而然耶아求利而然耶아? 若非通達人士ㅣ欲了平生之一大事者면則不爾也ㅣ리라. 兄弟아! 莫學糊塗라如聞言而謗佛인是ㅣ何異於一犬이吠影에百犬이吠聲者也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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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의 경위로 논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대꾸하고 응수할 때는 피차의 곡직을 살펴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아! 형제여. 어찌 제호의 최상의 맛을 맛보지도 않고, 그저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 말에 의거하여 쓰다, 쓰다라고 소리치는가?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왕과 대신과 학문이 높은 유학자와 원로 스승들 중에 자못 지각이 있는 자라면, 마침내는 삼보에 귀의하여 참회하고 도를 구하였다. 이렇게 한 것이 명예를 구하느라 그런 것인가? 이익을 얻으려고 그런 것인가? 만약 통달한 선비가 평생의 일대사인연을 마치고 싶었던 것이 아닐 것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형제여! 호도하는 남의 말을 배우지 마소서. 만약 남의 말만 듣고 불교를 비방한다면, 이것은 개 한 마리가 그림자를 보고 짖자 백 마리 개가 그 소리를 따라 짖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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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抵儒與道之玄竗不越三玄니周易에爲眞玄이오老子爲虛玄이오莊子爲談玄이라니라. 淸凉華巖玄譚에云易有太極이生兩儀고兩儀ㅣ生四象고四象이生八卦고八卦ㅣ定吉凶고吉凶이生大業者ㅣ라며, 注에云夫有必始於無故로太極이生兩儀也ㅣ니太極者無稱之稱이라. 不可得而名일取其有之所極야況之太極者也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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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유교와 도교의 현묘함은 삼현三玄을 넘지 않는다. 주역은 진현眞玄이고, 노자는 허현虛玄이고, 장자는 담현談玄이라 한다. 청량 국사의 화엄경수소현담에 이르기를, 주역에서 이르기를,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가 길흉을 결정하고,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고 했고, (그 소초에서) 주를 달아 이르기를, 대저 유有는 반드시 무無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태극이 양의를 낳으니, 태극이란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어 부득이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무어라 이름을 불일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을 취하여, 그것을 태극이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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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氏云太極은謂天地未分之前에混而爲一이니卽是太初太易也ㅣ라고老子云道生一이라니卽此太極이라. 謂混元分에卽有天地故로云太極이生兩儀라니卽老子一生二也ㅣ오不言天地者指其物體야與四象으로相對故로云兩儀ㅣ니謂兩體容儀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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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이르기를, 태극이란 하늘과 땅이 나뉘기 전에 혼융하여 하나가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니, 이것이 태초太初 또는 태역太易이다라고 하였다. 노자는 이르기를, 도가 하나를 낳는다고 하였으니, 즉 하나가 태극이다. 이를테면 혼융한 원기元氣가 쪼개져서 하늘과 땅이 있게 되기 때문에 태극이 양의를 낳는다고 한 것이다. 즉 노자가 하나가 둘을 낳는다고만 말하고, 하늘과 땅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 물체를 지목하여 사상과 서로 대비했기 때문에 양의라고만 말한 것이니, 이를테면 각각의 체(주역태극노자)가 양의를 머금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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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准列子有太易太初太始太素니太易者未見氣也ㅣ오太初者氣之始也ㅣ오太始者는形之始也ㅣ오太素者는質之始也ㅣ라며彼注云質은性也ㅣ라고又釋에太易은指周易太極이니此太初ㅣ오非太易이便成太極야在初라며若准易鉤命訣說컨有五運니前四同列子고第五에名太極則太極이非初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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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열자에 의할 것 같으면, 태역·태초·태시·태소가 있으니, 태역은 기운이 나타나기 이전이고, 태초는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태시는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태소는 질료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하는데, (장담의 열자) 주석에서 질료는 성질을 뜻한다고 하였다. 또 (청량 국사께서) 해석하기를, 태역은 주역의 태극을 가리키니, 이는 태초이지 태역이 곧바로 태극을 이루어서 처음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만약 역구명결에 준해서 설명하면, 오운五運이 있으니, 앞의 네 가지는 열자와 같고, 다섯 번째를 태극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즉 태극은 첫머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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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與列子로大同니라. 運은卽運數오易은謂改易이니元氣始散을謂之太初ㅣ오氣形之端을謂之太始ㅣ오形變有質을謂之太素오質形이已具를謂之太極이니雖小異同이나皆是元氣가生天地耳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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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 국사의) 해석과 열자의 설명은 완전히 같다. 운運은 곧 운수를 뜻하고, 역易바뀐다는 뜻이니, 원기元氣가 흩어지기 시작한 것을 태초라 하고, 원기의 실마리를 태시라 하고, 모양으로 변하여 질료가 생긴 것을 태소라 하고, 질료와 모양이 모두 갖춰진 것을 태극이라 한다. 비록 (각 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모두 원기가 천지를 낳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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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兩儀가生四象等者孔氏云謂木金水火가稟天地而有故로云兩儀가生四象이오土則分王四時며又地之別故로唯云四象이라며四象이生八卦者謂震木离火兌金坎水各主一時라고又巽同震木고乾同兌金고加之以坤艮之土야爲八卦也라며八卦定吉凶者八卦ㅣ旣立에爻衆이相推야有吉凶故ㅣ며吉凶이生大業者萬事各有吉凶야廣大悉備故로能生天下大事業也ㅣ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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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가 사상을 낳는다고 말한 것 등에 대해서, 공안국이 말하기를, 말하자면 ···가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생기기 때문에 양의가 사상을 낳는다고 하였다. 토는 곧 사계절을 나누어 주관하되 와는 다르기 때문에 오직 사상만 거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상이 팔괘를 낳는다는 것은, 진목震木·이화离火·태금兌金·감수坎水가 각각 한 계절을 주관하고, 또 손巽은 진목震木과 같고, 건乾은 태금兌金과 같고, 여기에다 곤坤과 간艮의 토土를 더하여 팔괘가 된다고 한다.
팔괘가 길흉을 결정한다고 한 것은, 팔괘가 성립되고 나면 효상爻象이 서로 미루어서 길흉이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는 것은, 만사에 각기 길흉이 있어 넓고 크게 다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능히 천하의 위대한 사업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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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易에云一陰一陽之謂ㅣ道ㅣ오陰陽不測之謂ㅣ神이라니一陰一陽之謂道者注에云道者何오無之稱也ㅣ니라. 無不通也ㅣ며無不由也況之曰道ㅣ오寂然無體야不可爲象이라. 必有之用이極而無之功이顯故로至乎神無方而易無體야而道를可見故로窮變以盡神며因神以明道나니陰陽이雖殊나無一待之라在陰에爲無陰이라陰이以之生며在陽에爲無陽이라陽이以之成故로曰一陰一陽ㅣ謂道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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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이르기를,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음과 양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는 구절에 대해, (왕필의) 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道란 무엇인가? 무無를 두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통하지 못하는 게 없고, 그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게 없기 때문에, 이를 비유해서 도라고 했지만, 고요하고 본체가 없어서 상象을 그릴 수 없다. 반드시 유有의 작용이 극도에 이르러야, 무의 공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神이 일정한 방위가 없어지고 역易이 본체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러야만 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끝까지 궁구해야만 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으로 인해서 를 밝힐 수 있다. 음과 양이 비록 다르긴 하지만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음의 상태에서는 무음無陰이어서 음이 이로써 생하며, 양의 상태에서는 무양無陽이어서 양이 이로써 성립한다. 그래서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일러 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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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氏疏에云一은謂無也ㅣ니無陰無陽이라사乃謂之道ㅣ니라. 一이得無名者無是虛無니虛無不可分別야唯一而已故로以一로爲無也ㅣ니若有境則有彼此相形야有二有三야不得爲一故로在陰之時에而不見爲陽之力야自然而有陰陽며自然而無所營爲니此則道之謂也ㅣ라. 故로云之謂道ㅣ라니以數로言之면謂之一이오以體로言之면謂之無ㅣ오以物得開通을謂之道ㅣ오以微妙不測을謂之神이오以應機變化를謂之易이라니總而言之컨皆虛無之謂也ㅣ로다. 聖人이以事名之에隨其義理야以立名號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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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국의 소에 말하였다.
하나를 말하는데, 음도 없고 양도 없어야 비로소 이를 일러 라 한다. 하나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이때의 허무이니, 허무는 쪼개어 나눌 수 없어 오직 하나일 뿐이어서, 그러므로 하나라고 한 것이다. 만약 경계가 있으면 이것과 저것이라는 형상이 있게 되어, 둘이 있고, 셋이 있어,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음의 상태로 있을 때에 양이 될 만한 힘은 보이지 않지만, 자연 음과 양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자연 경영하거나 작위할 것이 없으니, 이것은 곧 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이것을 일러 도라 한다고 했다. 수數로서 말하면 이것을 일러 하나라고 하고, 체體로서 말하면 이것을 일러 라고 하고, 만물이 개벽되어 유통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일러 라고 하고, 미묘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을 일러 이라고 하고, 기틀에 응하여 변화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일러 이라 한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이 모두는 허무를 일컫는 것이다. 성인께서 현상을 사용하여 그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그 의미와 이치에 따라 이름이나 호칭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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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凉國師ㅣ摠破以上諸異論야云以太極으로爲因인卽是邪因이오若謂一陰一陽之謂道란것은卽計陰陽變易야能生萬物이라이니亦是邪因이오若計一爲虛無自然이면則亦無因이니라. 所以로無因邪因이乃成大過라謂自然虛空等生이應常生이라故ㅣ니若自然生이應常生云할진則人이自然而生야應常生人이오不待父母等이니衆生菩提도亦自然生면則一切果報를不由修得이니라. 此正顯無因之過오若以虛空으로爲因인亦邪因過見上張ㅣ니皆以不知三界가由乎我心고但從痴有愛야流轉無極야迷正因緣故로異計紛然니安知因緣性空과眞如妙有ㅣ리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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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 국사께서 이상의 여러 다양한 이론들을 통틀어 논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태극으로 원인을 삼는다면 곧 이는 사인邪因이다. 이를테면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는 것을 도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것은, 곧 음과 양이 변화하여 능히 만물을 낳는다고 여긴 것이니, 이것 역시 사인邪因이다. 만약 하나는 허무 자연이다라고 여긴다면, 역시 무인無因이다. 그러므로 무인사인이 모두 큰 오류가 된다. 이를테면 (저들은) 자연이나 허공 등이 생기는 것이, 응당 항상 생기는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저절로 생겨 응당 언제나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즉 인간이 저절로 생겨 응당 언제나 사람을 낳으니, 부모 등의 인연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중생과 깨달음 역시 저절로 생긴다면, 즉 일체의 과보는 닦아서 얻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무인의 오류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만약 허공으로 원인을 삼는다면, 역시 사인의 오류를 범한다.이 점은 윗부분을 보라.
모두들 삼계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그저 어리석음으로부터 애착을 일으켜 끝없이 유전하면서 바른 인연을 미혹했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이 분분하니, 인연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과 진여의 묘유를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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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불 동이의 힐난에 대한 반론(佛儒同異難)
問曰釋氏之道ㅣ與儒道諸道로有同異有深淺也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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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불교의 도가 유교 등 여러 가르침과 비교하여 같고 다른 점도 있고, 또 깊고 얕음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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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古云盡世界風流오渾天地歌舞라며又涵虛ㅣ云호通天下一道也ㅣ며工變化一氣也ㅣ며均萬物一理也ㅣ라니라. 然이나佛於孔老與西天九十六種外道之說과天下異唱과一切世出世法에悉皆通達無碍故로號曰天人師大丈夫ㅣ라니라. 他諸方異唱과幷遍世界多種外道不得無碍야各有所欠야而不知聲聞緣覺之階級과菩薩所行之次第ㅣ온況於大覺無上之道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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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옛말에 온 세상에 흘러넘치는 게 풍류요, 온 천지를 휘젓는 것이 가무이다라고 하였다. 또 함허 선사가 말하기를, 천하를 관통하는 것은 하나의 도이고, 변화시켜 만드는 것은 하나의 기운이고, 만물을 가지런하게 하는 것은 하나의 이치이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공자나 노자 및 인도의 96종 외도의 학설과 천하 이단들의 주장과 일체 세간 출세간법을 모두 다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호를 천인사 대장부라고 한다. 저 여러 지역의 이단들의 주장과 온 세계에 가득한 여러 종류의 외도들은 무애를 얻지 못하여, 저마다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성문과 연각의 계급과 보살이 실천해야 할 차제도 모르는데, 하물며 대각인 위없는 도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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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子書에云吳太子嚭學孔子者ㅣ也라. 問於孔子曰夫子聖人歟아? 對曰丘博識强記라非聖人也ㅣ니라. 又問曰三王이聖人歟아? 對曰三王은善用智勇이라聖은非丘의所知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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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라는 책에서 말하였다.
오나라의 태자인 비嚭는 공자에게 배운 사람인데, 그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저는 박식하고 기억을 잘하지만 성인은 아닙니다.
태자가 또 물었다.
삼왕三王은 성인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삼왕은 지혜와 용기를 잘 사용하였지만, 성인이신지는 저의 아는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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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問曰五帝聖人歟아? 對曰五帝善用仁信이라聖은非丘의所知로라. 又問曰三皇은聖人歟아? 對曰三皇은善用時政이라聖은非丘의所知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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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가 또 물었다.
오제五帝는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오제께서 인과 신을 잘 사용하였지만, 성인이신지는 저의 아는 바가 아닙니다.
태자가 또 물었다.
삼황三皇은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삼황은 농사 때에 맞추어 정치를 잘 하셨지만, 성인이신지는 저의 아는 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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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宰嚭ㅣ駭曰然則孰爲聖者歟아? 孔子ㅣ有間에動容而對曰西方에有大聖人者焉니不治而不亂며不言而自信며不化而自行야蕩蕩乎民無能名焉이라며出史記吳太宰嚭傳又列子與破邪論等處具載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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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인 비가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성인이십니까?
공자가 조금 있다가 자세를 고치고 대답했다.
서방에 큰 성인이 계시는데, 다스리지 않아도 혼란스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실천해서, 크고 드넓어 백성들이 뭐라 이름을 붙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사기』 「오태재비전」에 나온다. 또 『열자』와 『홍명집』, 『파사론』 등의 곳곳에 모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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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主孫權이問于闞澤曰孔子老子를得與佛로比對以否아? 闞澤曰遠則遠矣니이다. 所以然者孔老設敎에法天制用이라不敢違天이오諸佛은設敎에天法奉行이라不敢違佛이라니就此數論에足可以觀孔老之未堪與佛로比對也ㅣ明矣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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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나라의 군주 손권이 상서 감택闞澤에게 물었다.
공자와 노자를 부처님과 비교할 수 있는가?
감택이 말하였다.
멀어도 너무 멉니다. 그 이유는 공자와 노자가 가르침을 만들 때에, 하늘을 본받아 용도를 제정했기 때문에, 감히 하늘을 위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은 가르침을 만들 때에, 하늘이 (부처님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봉행하여 감히 부처님을 어기지 못합니다.
이런 여러 논들에 따르면, 공자와 노자는 감히 부처님과 비교할 것이 못됨이 명백함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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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淸凉國師ㅣ曰佛法之淺淺이已勝外道之深深이로다. 然이나西方外道明說三世며多信因果야知厭生死고欣求涅槃이로但眞源이小差야致去道懸遠이어況孔老二道以修身俟死로爲正命고不知輪回三途之爲苦야惟齊生死며一枯榮야但以生死自天이오枯榮任分이라天乃自然之理ㅣ오分乃稟之虛無ㅣ라며聚散氣로爲死生고歸無物로爲至道나니方之佛聖컨不合同年이로다. 略辨釋道儒之殊야以擧十條之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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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청량 국사가 말하였다.
불법 중에서 얕은 것 중에서도 가장 얕은 것이 외도들이 말하는 심오한 것 중에서 가장 심오한 것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서방의 외도들은 삼세를 분명하게 설명하며, 대부분 인과를 믿어서, 생사의 윤회를 싫어할 줄 알고 흔쾌히 열반을 구하였다. 다만 참된 근원을 설정함에 약간 차이가 벌어져, 가는 길이 아득히 멀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공자와 노자의 두 도는 자신을 수양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바른 생활(正命)을 삼고, 삼악도에 윤회하는 것이 고통임을 알지 못하고서, 오로지 삶과 죽음에 초연하고 쇠락과 번영에 한결같이 했을 뿐이다. 그저 삶과 죽음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고, 쇠락과 번영은 저마다의 분수에 맡겨진 것이니, 하늘이란 스스로 그러한 이치이고, 분수는 바로 허무 대도에서 받은 것이라 여겼으며, 기운의 모이고 흩어짐으로 생사를 삼고, 한 물건도 없는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지극한 도로 여긴다. 이들을 성인이신 부처님과 비교한다면 같은 나이라고도 할 수 없다. 불교와 도교나 유교의 차이를 간략히 논변하여, 열 가지의 차이점을 거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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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은始와無始가別니謂釋은立生因緣야無定無初ㅣ라고儒與道有太初元始야爲物之先나니太初爲萬物之先이라物自造化라고因緣은爲萬法之本이라興이由人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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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시작이 있느냐 없느냐가 다르다.
이를테면 불교에서는 생멸의 인연을 세워 정해진 것이 없고 시초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태초와 시원이 있어 만물의 시작이 된다고 주장한다. 태초가 만물의 시초이니 만물은 조화로부터 나온다고 하며,저들 유교와 도교 인연은 만법의 근본이니 흥성과 쇠멸이 사람으로 말미암는다.우리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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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氣와非氣가異니謂釋은以心으로爲法本야憑對憑緣이라고儒與道以氣變으로爲神야無爲自化라니自化則無修無習야棄智絶聰고憑緣則必假修成야萬行이會本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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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기氣냐 기가 아니냐가 다르다.
이를테면 불교에서는 마음을 법의 근본으로 삼아 상대에 의거하고 인연에 의거한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기의 변화를 신神으로 삼아 인위적인 조작도 없고 자생자화自生自化한다고 한다. 자생자화한다면 닦을 필요도 없고 익힐 필요도 없어서 지혜를 버리고 총명함을 끊고,저들 유교와 도교 인연에 의거한다면 반드시 수행에 의지해서 완성되니 만 가지 수행이 근본과 부합한다.우리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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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은三世와無三世가異니釋은以稟質色心이靈爽相續야隨緣起滅야三世에遷流라고儒與道以聚氣로爲生고散氣로爲死며死則歸夫天地야不續不存이라니旣止一身이라寧知三世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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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삼세를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몸과 마음을 받는 것이 신령하고 분명하게 상속해서,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삼세를 옮겨 가며 흐른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기가 모이면 태어나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고 하며, 죽으면 저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 이어지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미 한 몸에만 그치니, 어찌 삼세를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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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習과非習이別니釋은以善惡이由業며愚智가習生니故로積劫熏修면靈識이玄妙ㅣ라고儒與道以善惡이由分이오愚智自天이라稟純和則至聖至神고稟渾濁則爲愚爲暗이라며縱言愼習이나止在一身니豈說積功이能資他世 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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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훈습을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선과 악이 업으로 말미암으며,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훈습으로 생긴다고 한다. 따라서 오랜 겁에 훈습하여 닦으면 신령한 식이 현묘해진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선과 악이 분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은 하늘에서 나온다고 한다. 순수함과 온화함을 타고나면 성스러워지기도 하고 신령스러워지기도 하지만, 혼탁함을 타고나면 우매해지기도 하고 맹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비록 습관을 조심하라고 말은 하지만 그저 한 몸에 그칠 뿐이니, 공덕을 쌓으면 능히 다음 세상에 좋은 데에 태어나는 밑천이 되는 사실을 어찌 말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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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稟緣과稟氣가異니釋은以森萬衆이幷由緣生이라고儒與道以富吉凶이皆由氣命이라니稟氣者不可改易이오稟緣者則可增修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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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인연을 받느냐 기를 받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부귀와 길흉이 모두 기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명령 받은 것이라고 한다. 받은 기는 고칠 수가 없고,저들 유교와 도교 받은 인연은 점점 닦을 수 있다.우리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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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은內와非內가別니釋은以天地萬物이內識으로變生이라고儒與道以人物蠕飛ㅣ皆由天地라니所變이在我면可變染令淨이어니와所變이在天이면則彼任高低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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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안에서 생기느냐 아니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천지만물이 내부의 식이 변화하여 생겼다고 한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사람이건 벌레건 모두 천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변화되어 만들어진 것이 나에게 있으면 오염된 것을 변화시켜 깨끗하게 할 수 있지만,우리 불교 변화되어 만들어진 것이 하늘에 있으면 그것의 높고 낮음에 맡겨야 한다.저들 유교와 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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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은緣과非緣이別니釋은以四相遷流와浮虛變이皆由緣力이오非曰自然이라고儒與道以日化月移와趣新更故ㅣ力負自爾ㅣ오非由我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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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인연법을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생·주·이·멸의) 사상이 변질되어 가고 허망하게 변화하여 소멸하는 것이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지, 저절로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해가 변하고 달이 옮겨 가면서 새로워졌다가 다시 헌것으로 되는 것이 타고난 힘으로 저절로 그런 것이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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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은天과非天이別니儒與道以禍福吉凶으로派流爲二니, 一者天이오, 二者地ㅣ라. 地而所爲를可得閑絶故로謀未兆나而散脆이微고天之所爲를不可遁避故로受而喜之며忘而復之니是以로安乎天者棄於人고絶於聖者從乎道라니斯老氏之旨오, 釋은以果報因緣이宗源이斯二니, 一者苦集이오, 二者滅道라. 滅道者不住不染며離斷離常야高出空有之巓며逈超生死之外고苦集者는因心廻轉며逐業高低야往來六趣之中며留連三有之內니是以로厭乎苦者斷乎集고忻乎者修於道니此釋氏之旨也ㅣ니라. 二家之理ㅣ皎若掌中니戶則千門이라殊歸異貫이어니較言於一이면其可得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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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천명을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다르다.
유교와 도교에서는 화복과 길흉이 흘러나온 원천을 두 곳이라 하였으니, 하나는 하늘이요 둘은 땅이다. 땅이 하는 것은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짐이 생기기 전에 계획을 세워 재앙을 없애 버린다. 하지만 하늘이 하는 것은 피하거나 숨을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되 이를 기꺼이 하여 잊어버려 이를 회복한다. 이런 까닭에 천명에 안주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성스러움마저 끊어 버린 자는 도를 따른다고 했으니, 이것은 노자의 종지이다.
불교에서는 과보와 인연을 으뜸이 되는 근원 두 가지라 하였으니, 하나는 고·집이요 둘은 멸·도이다. 멸·도는 머물지도 않고 오염되지도 않으며, 단견을 떠나고 상견을 떠나, 공과 유의 산마루를 훌쩍 벗어나, 생사의 윤회 밖을 멀리 초월하는 것이다. 고·집이란 마음으로 인해 윤회하며 업의 높고 낮음에 따라, 육도 속에 왕래하면서 삼유 속에 계속 머무는 것이다. 그러므로 를 싫어하는 자는 을 끊고, 을 좋아하는 자는 를 닦으니, 이것은 석가의 종지이다. 두 집안의 이치가 명백하기가 손바닥을 보는 듯하다. 거기에 들어가는 문호는 수천 가지여서 귀착점이 다르고 한결같지 않아서, 한 가지를 비교해서 말해 본들 가당키나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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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染과非染이別니老以仁毁於道니絶仁이면而道ㅣ自停이라不在於爲也ㅣ며欲은害於性니去欲이면而性이自得이라不在於修也ㅣ며利累於生니屛利면而生이自成이라不在於益也ㅣ며禮出於亂니棄禮면而亂이自除라不在於作也ㅣ며理由於道니有道ㅣ면而理ㅣ自至라不在於聖也ㅣ며得은在於時니時來면而位ㅣ自成이라不在於事也ㅣ니라. 是以로不求而自得며不爲而自成나니爲之者必敗고求之者必失이라니此老君之敎也ㅣ오. 釋은以善으로爲福道之本이라修善而受福人天고不善으로爲惡道之根이라. 積不善而沈倫三惡며慈爲無害之徑이오欲爲生死之源이라. 絶欲而生死ㅣ必除고修慈而壽命이遠이니是以로爲善者必得고不爲善者는必失며離欲者必超고不離欲者는必陷이라니此釋迦之敎也ㅣ니라. 敎方旣辨에異乃皎然이라譬彼寒溫에理難倂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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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오염되느냐 아니냐가 다르다.
도교에서는 은 도를 망가트리니 을 끊어 버리면 가 저절로 머무니 인위적으로 조작할 필요가 없으며, 욕망은 본성을 해치니 욕망을 제거하면 본성은 저절로 얻어지니 닦을 필요가 없으며, 잇속은 삶에 누가 되니 잇속을 막으면 삶이 저절로 이루어지니 보탤 필요가 없으며, 예절은 혼란을 낳으니 예절을 버리면 혼란이 저절로 제거되니 조작할 필요가 없으며, 이치는 도에서 비롯되니 도가 있으면 이치는 저절로 따라오니 성인을 귀하게 여길 필요가 없으며, (지위를) 얻는 것은 시운에 달렸으니 때가 오면 지위는 저절로 이루어지니, 일삼을 필요가 없다. 이런 까닭에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인위적으로 하는 자는 반드시 패하고, 구하려는 자는 반드시 잃는다고 하니, 이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불교에서는 선을 복된 길의 근본으로 여기니 선을 닦으면 인간 세상이나 하늘 세상에 태어나는 복을 받고, 불선을 악한 길의 근본으로 여기니 불선을 쌓으면 삼악도에 빠진다. 자비는 손해가 사라지는 지름길이고 욕망은 생사윤회의 근원이니, 욕망을 끊으면 생사가 반드시 제거되고 자비를 닦으면 수명이 길어진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얻고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잃으며, 욕망을 떨쳐 버린 자는 반드시 (생사윤회를) 벗어나고 욕망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생사윤회에) 떨어진다고 하니, 이것이 석가의 가르침이다. 교화의 방편은 이미 논변하였으니, 그 차이가 너무나 명백하다. 비유하자면 저 시원함과 따뜻함과 같아서 참으로 서로 합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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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은歸와異歸가別니釋은以生死苦也ㅣ라從妄想而形며貪愛垢也ㅣ라因無明而起니因無明而起可剪可除ㅣ오從妄想而生은可搴可拔이로다. 搴拔은由乎性假고除剪은由乎體妄니知體妄者息妄而證涅槃고達性假者棄假而歸寂滅니라. 於是에控御一乘고浮航六度야越生死苦海며出火宅樊籠야逈登般若之臺며妙入涅槃之苑이로다. 湛然常樂야與虛空而幷存고嶷爾圓明야混境智而雙寂나니此釋敎之所歸也ㅣ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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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째, 귀결처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생사는 괴로움이니 망상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며, 탐애는 번뇌이니 무명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무명으로 인해 일어난 것은 잘라 낼 수 있고 제거할 수 있으며, 망상으로부터 생겨난 것은 솎아 낼 수 있고 뽑아 버릴 수 있다. 뽑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본성이 거짓된 것이기 때문이고,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은 본체가 허망하기 때문이다. 본체가 허망한 줄 아는 자는 망상을 쉬어 열반을 증득하고, 성품이 거짓된 줄 통달하는 자는 거짓을 버리고 적멸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일승의 고삐를 잡고 육도에 배를 띄워 생사의 고해를 건너가며, 화택의 울타리를 벗어나 반야의 대에 높이 올라 열반의 동산으로 오묘하게 들어간다. 맑고 맑아 영원하고 즐거워 허공처럼 어디에나 존재하고, 높고 우뚝하여 꽉 차고 밝아 경계와 지혜를 모두 포용하면서도 이 둘의 자취를 없애니, 이것은 불교의 귀결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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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以生與死命也ㅣ라悉是道之所爲ㅣ오聖與不肖性也ㅣ라但是天之所與ㅣ로다. 天與不可逃ㅣ오道爲不可捍이니知天道를不可逃捍者則能安處生死야而守全性情니情性이全而天不壞며生死處而道不虧ㅣ라道不虧則悅惡之慮가消고天不壞則喜怒之心이滅이로다. 於是에出囂塵之域야遊道德之鄕이로다. 理孤劭於寰中며神獨凝於方外로다. 澹然玄寂而累害ㅣ不能干며泊爾無爲而邪氣ㅣ不能襲야可以生며可以盡年이라니此老敎之所歸也ㅣ니라. 所歸ㅣ旣異고發復殊니相去ㅣ渺然에千里非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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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서는 살고 죽는 것은 운명이니 이는 모두 도가 하는 것이고, 성스럽냐 못났냐는 타고난 본성이니 그저 이는 하늘이 부여한 것이다. 하늘이 부여한 것은 피할 수 없고 도가 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늘과 도는 피하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는 능히 생사에 편안히 처하면서 성정을 지켜 온전하게 할 수 있으니, 성정이 온전하여 하늘이 파괴되지 않으며 생사에 처하여 도가 훼손되지 않는다. 도가 훼손되지 않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사라지고, 하늘이 파괴되지 않으면 기뻐하고 분노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시끄럽고 흙먼지 자욱한 세상을 벗어나 도덕의 마을에 노닐게 된다. 도리는 세상의 가운데 있으면서도 홀로 아름답고, 정신은 세상 밖에서 홀로 엉긴다. 맑고 맑아 아득하고 고요하여 겹치는 재앙도 그를 간섭하지 못하며, 담박하여 하는 일이 없어 삿된 기운이 엄습하지 못하니, 가히 장생할 수 있고, 명대로 살 수 있다 하니, 이것은 도교의 귀결처이다. 귀결처가 이미 서로 다르고 출발점 또한 다르니, (불교와의) 서로 떨어짐이 아득하여 천 리보다도 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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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上十異를卽兾審思야愼之深衷라多以大乘因緣으로以破外宗玄妙어든況乎眞空妙有와事理圓融과染淨該와一多無礙와重重交暎과念念圓融者哉아. 無得求一時之小名야混三敎之一致며習邪見之毒種야爲地獄之深因고開無明之源며遏種習之路호誡之誡之야傳授之人을善湏揀擇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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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열 가지의 차이를 깊이 헤아려 마음 깊이 삼가기 바란다. 대부분은 대승의 인연법으로 다른 종교의 현묘함을 논파하였지만, 하물며 진공묘유이사원융(事理圓融)염정해라일다무애중중교영염념원융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한때의 작은 명성을 구하여 삼교가 일치한다고 혼동하여, 사견의 독한 종자를 익혀 지옥에 떨어질 깊은 원인을 만들거나, 무명의 근원을 열어 수행의 씨 뿌리는 길을 막는 일이 없도록 하라. 삼가하고 삼가하여, 전수할 사람을 반드시 잘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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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불교는 허무적멸의 도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虛無寂難)
問曰朱子云虛無寂之道ㅣ其高過於大學儒書이나而無實이라니所以然者釋氏云寂滅이라고老氏云虛無라니若虛無寂則是徒尙其體故로云其高ㅣ過於大學云이오孔子ㅣ云寂然不動이나感而遂通이라시니自此로三綱五常之道와治國平天下之術이燦然興於世야化及萬方이어佛與老虛無寂滅로爲宗니則有其體나而無其用故로云無實也ㅣ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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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주자가 말하기를, (도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허무와 적멸의 도는 높기가 대학유교의 책보다 더하나 실다움이 없다고 하였다. 왜 그런가? 석가는 적멸이라 했고, 노자는 허무라 했으니, 만약 허무하고 적멸하다면 이는 본체만 헛되이 숭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높음이 대학보다 더하다고 했다. 공자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하면 마침내 통한다고 했으니, 이로부터 삼강오상의 도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술법이 세상에 찬란하게 일어나 교화가 만방에 미쳤다. 그런데 부처와 노자는 허무적멸으뜸으로 삼으니, 곧 그 본체는 있지만 그 작용이 없기 때문에, 실다움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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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吾佛之道古今에至正無僞之道ㅣ오生靈之大本이로而人이多有當面蹉過니是可歎也ㅣ로다. 佛之寂云者는是寂滅其妄心之謂也ㅣ오非無有其眞心妙用之謂也ㅣ니라. 佛云사되眞性甚深極微妙야隨緣成就一切事法이라시고又維摩詰이云不起寂證고而現諸威儀라시니豈有體而無用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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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우리 부처님의 도는 고금에 지극히 바르고 거짓이 없는 도여서,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큰 근본이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얼굴을 마주하고도 그냥 지나쳐 버리니, 이는 탄식할 일이다. 부처님께서 적멸을 말씀하신 것은 그 허망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소멸시키라는 말씀이지, 그 진심의 오묘한 작용이 없다는 말씀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참된 성품은 깊고 깊어 매우 미묘하여, 인연 따라 일체의 현상적 존재(事法)를 성취시킨다고 하셨고, 또 유마힐이 말하기를, 적멸의 체험에서 떠나지 않고 온갖 위의를 드러낸다고 하니, 어찌 본체만 있고 작용이 없는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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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之所解卽吾家之所謂外道斷之見解也ㅣ라安知吾家에有不傳之妙也ㅣ며又如何顯得自心之明妙受用과究竟安樂과如實淸淨와解脫變化之妙旨리오? 旣不知他道之大意深淺과取捨如何고將人之所不取야論斥之며誹謗之니是欲欺人而自欺耳ㅣ라. 儒家所論者知太極이生兩儀與萬物이오不知自心이能生太極與萬物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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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 이해한 바는 곧 우리 불가에서 말하는 외도들의 단멸견해이다. (주자가) 어찌 우리 집안에 전하지 않은 오묘함이 있음을 알았겠으며, 또 어떻게 자기 마음속의 밝고 오묘한 수용과 구경의 안락과 여실한 청정함과 해탈하여 변화하는 오묘한 뜻을 들춰내어 얻었겠는가? 이미 다른 종교의 대의가 깊은지 얕은지, 무엇을 취하고 버렸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취하지 않는 바를 가지고 이를 논란하여 배척하고 이를 헐뜯고 비방하니, 이는 남을 속이려다가 스스로 속는 짓이다. 유가에서 논한 바는 그저 태극이 양의와 만물을 낳는다는 것만을 알 뿐, 자기 마음이 태극과 만물을 낳는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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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에云三界ㅣ唯心이오萬法이唯識이라며又云若人이發眞歸源면十方虛空이悉皆消殞이라니但世人이不知者如以其煩惱黑雲之所覆故로淨慧白日이不能現也ㅣ로다. 然이나人性은本淨이라如摩尼寶珠ㅣ置在泥之中야經百千歲라도終不能染汚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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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 이르기를, 삼계는 오직 마음이오, 만법이 오직 식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만약 사람이 진심을 일으켜 근원으로 돌아가면 시방 허공이 모두 소멸한다고 하였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번뇌라는 먹구름에 뒤덮여 있기 때문에 청정한 지혜의 밝은 태양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은 본래 청정하다. 마치 마니보주가 흙탕물에 놓인 것 같아, 백천 세를 지난다 해도 끝내 오염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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圭山禪師ㅣ云淸潭水底에影像이昭昭고虛隙日光에纖埃ㅣ了了라며又古云弘鍾이待扣에小扣小鳴며大扣大鳴이라며又如明鏡이當臺에胡來胡現고漢來漢現이라니豈綱常道治ㅣ獨在於汝而缺於他乎아? 佛이說法四十九年之中에或說人敎儒家所行盡載人敎시며或說仙敎如楞巖十種仙等也시며或說天敎시며或說聲聞敎시며或說緣覺敎시며或說菩薩乘시며或說一佛乘시며或說三世因果와六道輪回시니如是者有萬種差別야皆純金打就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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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종밀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맑고 고요한 물 밑에 영상이 소소하고, 빈틈으로 햇살이 비치면 가는 먼지들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또 옛말에 커다란 종이 쳐 주기를 기다렸다가, 작게 치면 작게 울리고 크게 치면 크게 울린다고 하였으며, 또 밝은 거울이 거울 대에 걸린 것 같아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를 비추고, 한나라 사람이 오면 한나라 사람을 비춘다고 하였으니, 어찌 강상의 도와 다스림이 유독 그대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없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설법하신 49년 동안에 인교유가에서 행하는 바는 모조리 인교에 실려 있다.를 설하시기도 하고, 선교『능엄경』에 수록된 열 가지 신선 등이다.를 설하시기도 하고, 천교를 설하시기도 하고, 성문교를 설하시기도 하고, 연각교를 설하시기도 하고, 보살승을 설하시기도 하고, 일불승을 설하시기도 하며, 삼세인과와 육도윤회를 설하시기도 하셨다. 이렇게 하신 것이 만 가지 차별이 있지만 모두 순금을 두드려 그렇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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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ㅣ以佛은知寂之體ㅣ오不知倫常之道用이라며又孔氏之道普天蒙益이오而釋氏之道於世無益이라니朱子其自誤者乎져欲觀其天而漏乎管이로다. 豈未見人而言色며不由鏡而說容乎아? 論道於二乘之所棄며譏毁於沙彌之所恥야自將誤解야以謗三界人天之大聖니今雖趍於一時愚昧之所戴나何不畏於萬代聰明之所誅아? 可勝嘆哉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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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는 말하기를, 부처는 적멸이라는 본체만 알고 오륜 오상의 도의 작용은 몰랐다고 하며, 또 공자의 도는 온 천하에게 이익을 주지만 석가의 도는 세상에 이로움이 없다고 하였다. 주자야말로 그 스스로 오류를 범한 자이다. (넓은) 하늘을 보려면서 대롱 구멍으로 보는구나. 어찌 남을 만나 보지도 못했으면서 그 사람의 모습을 말하고,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용모를 설하는가? (우리 불교의 하열한) 성문승이나 연각승도 폐기하는 것을 가지고 도라 논하고, (출가 초년생인) 사미조차도 부끄러워하는 것을 꾸짖고 헐뜯었구나. 제 스스로 오해한 것을 가지고 삼계의 모든 인간과 하늘의 큰 성인을 비방하니, 지금 비록 일시적으로 우매한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많기는 하지만, 어찌 만대의 총명한 이들에게 꾸지람 받는 것이 두렵지 아니한가? 너무도 탄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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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龍은以水로爲命되而不知水爲命根이며世人은以佛法大海로爲命호而不知佛法이爲世人之本命이로다. 佛者覺也ㅣ라謂箇箇人人의無上淸淨本地風光大圓覺也ㅣ니從本以來로昭昭靈靈야不曾生不曾滅며名不得狀不得者也ㅣ라. 故로涵虛云此性이貫古今야圍六合며主於三才야王於萬法이라니라. 佛說六乘之法시니所謂一佛乘과菩薩乘과緣覺乘과聲聞乘과天乘과人乘이是也ㅣ라. 於是에六道衆生이獲得甘露之大法야隨機宿習야大千世界에蒙益이無量이어儒家所謂道化于天下如海之一와地之微塵也라而反非之니是猶坐井而觀天曰天小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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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용은 물로 생명을 유지하면서도 물이 생명의 근본이 됨을 알지 못하며, 세상 사람들은 불법이라는 큰 바다로 생명을 유지하면서도 불법이 이 세상 사람들의 근본적인 생명임을 알지 못한다. 부처란 깨달음을 뜻하니, 이를테면 낱낱의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위없이 청정한 본지풍광이며 대원각이다. 본래부터 소소영영하여 일찍이 생긴 적도 없고 일찍이 소멸한 적도 없으며, 이름도 붙일 수도 없고 형상도 그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함허 선사가 말하기를, 이 본성이 고금을 관통하여 육합을 에워싸며, 삼재의 주인이 되어 만법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육승六乘의 법을 설하였으니, 이른바 일불승·보살승·연각승·성문승·천승·인승이 그것이다. 이에 육도의 중생들이 감로의 위대한 법을 획득하였고, 모든 근기들이 과거에 익힌 습관을 따라 삼천대천세계에 입힌 이익이 한량없었다. 유가에서 소위 천하에 도의 교화를 펼쳤다는 것은 마치 바다의 물거품 하나와 땅의 미세 먼지와 같은데, 도리어 불교를 힐난하니, 이는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하늘이 작다고 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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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有四部弟子니曰比丘比丘尼ㅣ오淸信士淸信女也ㅣ라. 比丘比丘尼者剃除鬚髮고棄斷愛欲而受佛戒訓야惟道爲務나니小根之人은煩惱之稠林를不可一時據拔故로向寂靜處야隨緣純習이나此是暫時行履之處며又如應病與藥야隨勢從機를不可一定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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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에게는 네 부류의 제자가 있으니,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이다. 비구와 비구니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고 애욕을 버리고 부처님의 계율과 가르침을 받아 오로지 도에만 힘쓴다. 근기가 얕은 사람은 번뇌의 숲을 일시에 뽑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고요하고 편안한 곳으로 가서 인연 따라 (전에) 익혔던 습성을 순화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잠시 밟고 지나가는 것이며, 마치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과 같아서, 상황에 따르고 근기를 쫓는 것으로 일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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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丘布敎之宗主也ㅣ라. 普天地人民이因比丘야而知佛法之大小本末과深淺終始야去惡而從善며離輪廻出生死야轉凡作聖니此布敎之饒利也ㅣ오. 至有比丘成立道德之日야上以報四重恩며下以濟三途苦니此於世出世間에洪度無碍之公益也ㅣ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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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는 포교의 으뜸이다. 온 천지의 인민이 비구로 인하여 불법의 크고 작음, 근본과 지말, 깊고 얕음, 시작과 끝을 알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며 윤회를 떠나고 생사를 벗어나 범부를 뒤집어 성인을 만든다. 이는 포교의 풍부한 이익이다. 마침내 비구가 도덕을 완성하는 날이 되면, 위로는 네 가지 중한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 삼도三途의 고통을 제도한다. 이는 세간과 출세간을 널리 제도하면서 장애가 없는 공공의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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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信士淸信女者謂在家二衆이니世間에不出男女二衆故로周天匝地에人民生靈이苟有會得言語者면俱受菩薩大戒야守而行之倫常人事威儀道德俱在此戒內者也야處乎人事며謹修人敎야先修其身而齊其家며後治邦國而平天下니淸信之義ㅣ意在斯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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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사와 청신녀는 이를테면 재가의 두 대중이니, 세간을 벗어나지 않는 남자와 여자의 두 대중 때문이다. 온 세상의 인민과 생명체 중에 말을 이해하는 자가 진실로 있기만 하면 보살대계를 함께 받아, 이를 지키고 실천하여,윤상·인사·위의·도덕이 모두 이 계 안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을 열심히 닦아,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제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그런 뒤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편안하게 하니, 청신사와 청신녀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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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子修身之法이有三니曰殺盜淫이是也ㅣ오修口之法이有四니曰綺語妄語兩舌惡口가是也ㅣ오修意之法이有三니曰曰貪嗔痴ㅣ是也ㅣ라. 身不殺生者是知天地萬物과負識含靈之本源이니箇彼飛禽走獸魚鼈昆蟲一切蠢動이因一念之差야受報萬般이나其本源覺性은則與我와無別이어以殺而食者盖不達其本故也ㅣ니라. 古云天地도與我同根이오萬物도與我一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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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가 신업을 닦는 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살생·도둑질·음행이 그것이다. 구업을 닦는 법에 네 가지가 있으니, 꾸미는 말·거짓말·이간질·욕설이 그것이다. 의업을 닦는 법에 세 가지가 있으니,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이것이다.
몸으로 살생하지 않는 것은, 천지 만물과 식을 갖춘 생명체의 본원을 아는 것이다. 낱낱의 저 날아다니는 새들과 달리는 짐승과 물고기와 자라와 곤충 등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단지 한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만 가지로 다른 과보를 받았지만, 그 본원인 깨달음의 성품은 나와 차이가 없으며, 그것들을 살생하여 먹는 것은 분명 그 본원을 몰랐기 때문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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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에涵虛禪師ㅣ未曾出家之時에有釋曰海月者ㅣ來讀論語於涵虛라가至博施濟衆은堯舜도其猶病諸라야註云仁者以天地萬物로爲一己之言야置卷而問涵虛曰孟子仁者乎잇가? 曰然다. 鷄豚狗彘도萬物乎잇가? 曰然다. 曰仁者以天地萬物로爲一己라니此眞稱理之談也ㅣ라. 孟子ㅣ苟爲仁者오? 而鷄豚狗彘ㅣ又爲萬物이면則何以云鷄豚狗彘之畜을無失其時면七十者ㅣ可以食肉矣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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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함허 선사가 아직 출가하기 전에 해월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함허에게 논어를 배웠다. 널리 베풀고 중생을 구제하는 일은 요·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아파했다는 구절과, 그 주석에 이르기를, 어진 자는 천지 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고 한 구절에 이르러 책을 내려놓고, 함허에게 물었다.
맹자는 어진 자입니까?
함허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
해월이 여쭈었다.
닭·돼지·개·멧돼지도 만물입니까?
함허 선사가 말했다.
그렇다.
해월이 여쭈었다.
어진 자는 천지만물을 한 몸으로 여긴다 하였는데, 이는 진실로 이치에 걸맞은 말씀입니다. 맹자가 참으로 어진 자이고 닭·돼지·개·멧돼지가 또한 만물인데, 즉 어찌하여 이르기를, 닭·돼지·개·멧돼지를 기를 경우 그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 일흔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고 말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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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ㅣ於是에辭窮而未能答야考諸經傳호而無有殺生稱理之論이오博問先知호而無有釋然決疑者ㅣ라. 常蘊此疑야久未能決이러니一日에遊於三角山이라가到僧伽寺야與一老禪으로夜話할禪이云佛有十重大戒니第一不殺生이라야涵虛ㅣ於是에釋然心服야而自謂此眞仁人之行也ㅣ오而深體乎仁道之語也ㅣ로다. 從此로不疑於儒釋之間이라고而遂有詩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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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선사가 여기에서 말이 궁해져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러 경과 전적을 연구하였지만, 살생이 이치에 맞는다는 주장은 없었다. 선배들에게 널리 물었지만 시원하게 의심을 풀어 주는 자가 없었다. 항상 이 의심을 품고서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다가, 하루는 삼각산을 노닐다가 승가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 나이 많은 선사와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사가 이르기를, 불교에 십중대계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불살생입니다라고 하자, 함허 선사가 이에 (의심이) 풀려 진심으로 굴복하였다. 그리고서는 스스로 이르기를,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어진 사람의 행동이요, 어진 도를 깊이 체득한 말씀이다. 지금부터는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의심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마침내 시를 한 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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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聞經史程朱毁고未識浮屠是與非야返復潛思年已遠이러니始知眞實却歸依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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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경전과 역사책에서 정자·주자의 비방만 듣고
불교가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했네.
반복해서 깊이 생각한 지 세월이 오래되었는데
비로소 진실임을 알고 당장 불법에 귀의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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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云巢知風고穴知雨며蜘蛛有布網之巧고蜣蜋은有轉圜之能이라. 物皆如是야同稟靈明니至於好生惡死之情야亦何獨異於人哉리오. 故로此不殺은修仁之本이라而衆仁이從之也ㅣ라고華嚴經崗字卷十地品에云호性不偸盜者는菩薩이於自資財에常知止足이오於他에慈恕야不欲侵損며若物屬他어든起他物想야終不於此에而生盜心며乃至草葉이라도不與어든不取니何況其餘資生之具ㅣ리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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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르기를, 새들은 태풍이 불 것을 미리 알고, 굴속에 사는 동물들은 비가 올 것을 미리 알며, 거미는 그물을 치는 솜씨가 있고, 쇠똥구리는 굴리는 능력이 있다. 만물이 이와 같아, 신령하고 밝은 능력을 똑같이 타고나는데,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에 이르러 또한 어찌 유독 사람과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이 불살생은 인을 닦는 근본이니, 온갖 어짊이 이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화엄경수소연의초(강자권) 십지품에서 이르기를, 성품에는 도둑질함이 없다는 것은, 보살은 자신의 재물에 항상 만족할 줄 알아, 남을 가엾이 여기고 용서하여 빼앗거나 해를 주려 하지 않는다. 만약 물건이 남의 손에 들어가면 남의 물건이라 생각하여, 끝내 훔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나아가 풀잎조차도 주지 않으면 갖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그 나머지 삶에 필요한 물품들이겠는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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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云호性不邪媱은菩薩이於自妻에知足이오不求他妻며於他妻妾과他所護女에尙不生貪染之心이온何況從事며況於非道ㅣ리오니故로不殺不盜不淫은修身之本也ㅣ오不妄語綺語兩舌惡口修口之本也ㅣ오不貪嗔痴者修意之本也ㅣ니此是萬善由起之源也ㅣ라. 以此로可以自修ㅣ오推己之餘야以普及乎天下萬代而無窮者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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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르기를, 성품에는 삿된 음행이 없다는 것은, 보살은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여 남의 아내를 구하지 않는다. 남의 아내나 첩과 남이 보호하는 여인에게도 오히려 탐욕에 물든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일을 벌이며, 그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므로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신업을 닦는 근본이며, 꾸미는 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이간질하지 않고 욕하지 않는 것은 구업을 닦는 근본이며,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은 것은 의업을 닦는 근본이다. 이것이 바로 만 가지 선이 말미암아 일어나는 근원이다. 이렇게 해서 자신을 닦을 수 있고,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도 행하여, 널리 천하 만대에 미쳐 다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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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불교는 정신과 혼백을 본성으로 여긴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精魂爲性難)
問曰孟子ㅣ論至楊朱墨翟之道也에朱子ㅣ註其文而引異見王이與一佛子論性之事야以明之니其意甚詳이라. 吾爲說之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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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맹자가 (맹자 등문공에서) 양주와 묵적을 논평한 대목이 있는데, 주자가 그 대목을 주석함에, 이견왕異見王이 어떤 불자와 더불어 인간의 본성을 논했던 사례를 인용하여 이것을 설명했다. 그 의미가 너무도 상세하기에 내가 (그대를) 위하여 말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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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에印度南天笁國異見王이問婆提尊者曰何者是佛이니잇고? 尊者對曰性是佛이니다. 王曰師ㅣ見性否아? 曰我見佛性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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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록에 의하면) 옛날에 인도 남천축국의 이견왕이 바라제 존자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존자가 대답했다.
본성이 부처입니다.
왕이 말했다.
스님은 본성을 보았습니까?
존자가 말했다.
저는 불성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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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曰性在何處오? 曰性在作用이니라. 王曰是何用作이완我今不見고? 曰今現作用호王自不見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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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본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존자가 말했다.
본성은 작용에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것은 어떤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존자가 말했다.
지금 작용이 드러나는데도 왕께서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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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曰於我에有否아? 曰王若作用이면無有不是ㅣ오王若不用인體亦難見이니라. 王曰若當用時야幾處出現고? 尊者曰若出現時에當有其八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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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말했다.
나에게도 있습니까?
존자가 말했다.
왕께서 만약 작용하실 경우 이것 아닌 것이 없지만, 왕께서 만약 작용하시지 않으시면 (본성의) 체體 또한 보기 어렵습니다.
왕이 말했다.
만약 작용할 경우에는 몇 곳에 출현합니까?
존자가 말했다.
만약 출현할 때에 항상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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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曰其八出現을當爲我說라. 尊者云在胎曰身이오處世曰人이오在眼曰見이오在耳曰聞이오在鼻辨香이오在舌談論이오在手執捉이오在足運奔이니徧現면俱該沙界고收攝면在一微塵이니識者知是佛性하고不識者喚作精魂이라야朱子評曰釋氏之病은錯認精神魂魄야爲性者也ㅣ로다니如是則釋氏其於心性道理에恐是未瑩也ㅣ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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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말했다.
그 여덟 가지의 출현을 나에게 설명해 보시오.
존자가 말했다.
태에 있으면 몸이라 하고,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라 하며,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코에 있으면 향기를 구별하고, 혀에 있으면 말을 하며, 손에 있으면 붙잡고, 발에 있으면 움직여 달립니다. 펼쳐 드러내면 항하사 세계를 모두 갖추고, 거둬들이면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도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자는 이것이 불성임을 알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는 이것을 정신 또는 혼백이라 합니다.
주자가 이를 평하여 말하기를, 석가의 오류는 정신과 혼백을 오인하여 본성으로 여겼다고 하였다. 그러니 아마도 석가는 심성의 도리에 밝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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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朱子以未見其理故로言失於道也ㅣ로다. 然이나問你노라. 孔氏之道以何로爲性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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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주자가 이치(理)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도를 잃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묻겠다. 공자의 도에서는 무엇을 본성이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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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曰孔氏之道以喜怒哀樂未發之前을謂之理ㅣ오謂之性이며喜怒哀樂已發之後를謂之氣ㅣ오謂之用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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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공자의 도는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발현되기 이전을 이치(理)라 하며, 그것을 본성(性)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발현된 이후를 기氣라 하며, 그것을 작용(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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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笑曰儒家之論性理ㅣ返不及釋氏二乘之見解也ㅣ로다. 二乘之道ㅣ有苦集滅道四者焉니卽淸凉所謂滅道者不住不染며離斷離常야高出空有之巓며逈超生死之外者性也ㅣ며理也ㅣ오. 苦集者因心廻轉야逐業高低야往來六趣之中며留連三有之內나니是以로壓乎苦者는斷於集고乎滅者修於道云者進修之謂也ㅣ며靈苗將發야六通이無碍者道之用也ㅣ오. 體攝二百五十戒야圓成三千威儀와八萬細行者道之行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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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말한다.
유교에서 본성의 이치(性理)를 논하는 것이 도리어 불교의 이승二乘에 속한 자들의 견해에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이승의 가르침에 고·집·멸·도의 사성제四聖諦가 있으니, 곧 청량 국사가, 멸·도란 머물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고, 단견을 떠나고 상견을 떠나고, 공과 유의 꼭대기를 완전히 벗어나고, 생사의 밖으로 멀리 초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이것이 본성(性)이며 이치(理)이다. 고·집이란 마음의 윤회로 인하여 업의 높고 낮음에 따라 육도 속을 왕래하며, 삼유三有 속에 계속 머문다. 그러므로 고를 싫어하는 자는 집을 끊고, 멸을 좋아하는 자는 도를 닦는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닦아 나아감을 말한다. 장차 신령한 싹을 틔워서 여섯 가지 신통이 걸림이 없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도의 작용이고, 몸으로 이백오십계를 받고 3천 가지 위의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을 원만히 완성한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도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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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家所云喜怒哀樂未發之前을謂之性인當知라. 卽此四念心未發之前은是曰無思也ㅣ며曰空也ㅣ로다. 以空且無思로爲極則之性理則至於草木瓦石이라도皆爲無思空慮니亦能通達性理者也ㅣ로다. 又喜怒哀樂은是妄識所現者也ㅣ어卽以此로爲氣用니是認賊爲自家眷屬也로다. 你所謂喜怒哀樂은卽吾家所謂六七之麤識也ㅣ며當其未發之前을謂之性也理也者卽吾家所謂第八湛識所現之處也ㅣ어而不知第八湛識이是根本無明이며亦是無記空識也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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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에서는 이르기를,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발현되기 이전을 이치(理)라 한다고 했는데, 마땅히 알라. 곧 이런 네 가지 감정이 발생하기 전은 바로 아무 생각 없는 상태(無思)이며, 공空하다. 아무 생각 없는 상태(無思)를 궁극적 준칙이 되는 본성의 이치(性理)라고 생각한다면, 저 풀과 나무와 기왓장과 돌들까지도 모두 아무 생각도 없고 헤아림도 없으니, 그것들도 역시 능히 본성의 이치(性理)를 통달했겠구려!
또,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은 허망한 식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그대들이) 이것을 가지고 기운의 작용(氣用)이라고 하니, 이는 도둑을 오인해 자기 집안의 권속으로 여기는 꼴이다. 그대가 말한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은 곧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육식과 칠식에 해당하는 거친 식이다. 그리고 (그대들이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 등이) 발현되기 이전을 본성(性)이라 하고 이치(理)라 한 것은, 곧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제8의 맑은 식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제8의 맑은 식이 바로 근본무명이며, 또한 이것이 무기공식인 줄을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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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曰夫易은無思也ㅣ며無爲也ㅣ라니是知케라. 儒家所論性理者ㅣ卽不出乎第八卽無記空識也一切善惡此識含藏故亦名含藏種子識이로다. 而不知其理義之繇從與所歸고但執此爲極則無上이라니旣於自家所論性理之學에도猶如暗夜中行야黑白을不辨커何況是非於他道乎아? 釋氏之一小乘學人이라도能高出空有之巓야不著於斯者ㅣ已遠矣ㅣ라. 況大乘菩薩乎며尤況一佛乘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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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이르기를, 대저 역易은 생각함이 없고 작위가 없다고 하였다. 이로서 알 수 있겠다. 유가에서 말하는 본성의 이치(性理)는 곧 제8함장종자식즉 ‘무기공식’이다. 일체 선악을 이 식이 함장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그렇게도 이름한다.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 이치의 의미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집착하여 이것이 궁극의 법칙이고 최고다라고 한다. 이미 자기 집안에서 말하는 본성의 이치(性理)에 대한 학문조차도 마치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처럼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찌 남의 도에 대해서 시시비비하는가?
불교 중 한 학파인 소승의 학인도 능히 의 꼭대기를 완전히 벗어나, 그런 것들에 집착하지 않은 지가 이미 한참 되었다. 그런데 하물며 대승의 보살승이겠으며, 더욱 하물며 일불승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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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明暗有無是代謝者也ㅣ라. 然而汝以空無思로爲性理며以喜怒哀樂으로爲氣用니是以頑空頑有로爲道者也ㅣ로다. 旣認如彼로以爲性며如彼로以爲用인則是邪性이오亦邪用也ㅣ며又不偏不倚無過無不及之謂中庸云者도以汝論之컨亦是妄立也ㅣ니라. 何故오一事正則萬事正고一事不正則萬事不正也ㅣ니라.註自成譬喩明兩家論性深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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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밝음과 어둠, 있음과 없음은 서로서로 교대된다. 그런데도 그대는 하고 아무 생각 없는 상태(無思)본성의 이치(性理)로 삼고,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을 기운의 작용(氣用)으로 삼으니, 이는 완공완유로 도를 삼는 것이다. 이렇게 오인하여 그와 같은 것을 본성(性)이라 하고, 그와 같은 것을 작용(用)이라고 한다면, 이는 삿된 본성이고 삿된 작용이다.
또, (중용에서) 치우치지 않고 쏠리지도 않으며, 지나침이 없고 모자람도 없는 것을 중용이라 한다고 한 것도 그대가 말한 대로라면, 역시 망령되게 수립한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한 가지 일이 바르면 만 가지 일이 바르게 되고, 한 가지 일이 바르지 못하면 만 가지 일이 바르지 못하게 된다.자신이 세운 비유를 가지고 불교와 유교에서 논하는 본성의 깊고 얕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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縱汝將性理之說야譬之於水曰恰如大海야千波竸起者用也ㅣ며氣也ㅣ오. 風息波靜야水體澄湛者理也ㅣ며性也컨吾復問汝노라. 千波竸起者喩喜怒哀樂已發之時也ㅣ오水體澄湛者喩喜怒哀樂未發之時也ㅣ로다. 然則以何로爲水性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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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그대가 성리性理의 설을 가지고, 이를 물에 비유하여 이르기를, 흡사 큰 바다와 같아서 온갖 물결이 다퉈 일어나는 것은 작용(用)이고 기운(氣)이며, 바람이 멈춰 물결이 고요해져서 물의 바탕이 맑고 담담한 것은 이치(理)이고 본성(性)이다라고 한다면,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온갖 물결이 다퉈 일어나는 것은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이미 발생한 때를 비유한 것이고, 물의 바탕이 맑고 담담한 것은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때를 비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의 본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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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以儒家論性理로推察컨水體澄湛者卽水性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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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유가에서 논하는 성리性理의 학설로 미루어 예측하면, 물의 바탕이 맑고 담담한 것이 곧 물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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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嗟乎라仁者야. 水性도尙且不知어든況於人性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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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딱하구나! 그대여. 물의 본성도 아직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본성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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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水之性相體用을可得聞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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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물의 본성과 모양, 그리고 본체와 작용을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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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然다. 水渟不觸之時에難見其性이니吾當就次第야而辨明之리라. 風息浪靜야處乎澄湛者水之體也ㅣ오水色이蒼蒼然黑㓒㓒者水之相也ㅣ오因風而起波며活動而流下者水之用也ㅣ오水外無波며波外無水者水之體用이無二者也ㅣ니라. 水性은是濕也ㅣ니凡有觸處면便以潤濕으로爲義나니靜也濕며動也濕며流也濕며波也濕며淸也濕며濁也濕야惟以此濕性으로通貫體用과動靜淸濁故로云然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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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렇다. 물이 정지해 있거나 그것을 만지지 않았을 때에는 그 본성을 알기 어려우니, 내가 마땅히 차례차례로 그것을 가려 밝히겠다. 바람이 자고 물결이 고요해 맑고 담담해지는 것은 물의 바탕이고, 물빛이 푸르거나 시커먼 것이 물의 모양이며, 바람으로 인해 물결을 일으키고 활발히 움직이며 아래로 흐르는 것은 물의 작용이다. 물을 떠나 따로 물결이 없으며, 물결을 떠나 따로 물이 없는 것은 물의 바탕과 작용이 둘이 아닌 것이다. 물의 본성은 즉 축축함이다.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곧바로 축축하게 적신다는 것이 (물의) 속성(義)이니, 고요해도 축축하고, 움직여도 축축하며, 흘러도 축축하고, 물결쳐도 축축하며, 맑아도 축축하고, 탁해도 축축하다. 오직 이 축축한 성질이 바탕과 작용, 움직임과 고요함, 맑음과 탁함을 관통한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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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譬如一燈컨火之全身曰體ㅣ오火之圓尖曰形이오火之光色曰相이오火之照燭曰用이오火之ㅣ熱也曰性이니於其觸着에便以燒로爲義者也ㅣ니라. 然이나如人이將手出水면則水乾之時에其濕性은輒向甚處去ㅣ며又人이以口吹火면則火之時에其熱性은復向甚處去오? 儒家所論性理者是性相相對之性이로猶未能臻이온況性相絶對之性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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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등불에 비유하자면, 불이라는 전체 몸이 바탕이고, 불꽃의 둥글고 뾰족함이 형태이며, 불꽃의 광채와 빛깔이 모양이고, 불의 비춤이 작용이며, 불의 뜨거움이 본성이다. 그것에 닿기만 하면 태우는 것이 (불의) 속성(義)이다.
그러나 사람이 손으로 물을 제거하면, 즉 물이 말랐을 때에는 그 축축한 성질은 갑자기 어느 곳으로 가는가? 또 사람이 입으로 불을 불면, 즉 불이 꺼졌을 때에는 그 뜨거운 성질은 또 어느 곳으로 가는가? 유가에서 논하는 성리性理는, 즉 성품과 모양이라는 상대적인 성품에도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성품과 모양의 상대성조차 끊어진 성품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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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에異見王이生大邪見야偏滯於一隅故로婆提尊者ㅣ以性相體用本末不二之鉗鎚로頓放異見王面前야一印印破也ㅣ니라. 大手宗師ㅣ隨機接人之時에殺活縱奪을臨時應變니豈以一時權用之方便으로而論道也ㅣ리오? 朱子世辨이라安知吾家의神鋒之藏笑裡와鬼箭之落風前也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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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이견왕이 큰 사견을 일으켜 한 귀퉁이에 치우쳐 머물렀던 까닭에 바라제 존자께서 성품과 모양, 바탕과 작용, 근본과 지말이 둘이 아니라는 집게와 쇠망치를 사용하여, 이견왕의 면전을 대뜸 내질러 하나의 도장을 찍어 버렸다. 훌륭한 솜씨를 갖춘 종사는 상대의 근기를 따라 남을 지도할 때에 죽였다 살렸다 풀어 주었다 잡아들였다 때맞춰 적절히 변용한다. 어찌 한때에 임시적으로 사용한 방편을 가지고 도를 논하리오. 주자는 세지변총이니, 어찌 우리 불교의 소위 신비한 칼끝이 웃음 속에 숨어 있고, 귀신의 화살이 바람 앞에 떨어지는 도리를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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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摩詰이曰法은離見聞覺如라며玄沙云學道之人은不識眞야爲從前錯認神이라니如是等話ㅣ數如塵沙라豈以精魂으로爲佛性耶아? 古云圓同太虛야無欠無餘언마는良由取捨야所以不如라며又云六塵을不惡면還同正覺이라니豈可偏滯於一隅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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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힐은 이르기를, 법은 보고 듣고 촉각하고 알음알이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했으며, 현사 사비 선사는 이르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진여를 알지 못하여, 여전히 잘못 알고 정신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런 등등의 이야기는 그 수가 고운 모래알처럼 많다. 어찌 정신혼백을 가지고 불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옛사람이 (신심명에) 이르기를, 원만함이 태허와 같아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참으로 취하고 버림으로 인해 그런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육진六塵을 싫어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같아진다고 하였다. 어찌 한 귀퉁이에 치우쳐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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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ㅣ以聰明意識과計較思量으로杜撰是非니不知量也ㅣ로다. 余嘗閱明道集할朱子有云釋氏之病은錯認精神魂魄야爲性니果能見性인不可謂之妄見이오旣曰妄見인不可言性空也라此等立言이未瑩이라恐亦是見得이未分明也ㅣ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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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는 총명한 의식과 이리저리 따지는 생각으로 제멋대로 시시비비를 일삼았으니, 진리(量)를 모른다. 내 일찍이 명도집을 열람한 적이 있는데, 주자가 이르기를, 석가의 병은 정신과 혼백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으로 오인한 것이다. 과연 본성을 보았다면 망견妄見이라 해서는 안 된다. 이미 망견이라고 했다면 본성이 공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런 등등의 주장이 아직 석연치가 않으니, 아마도 역시 알아차림이 아직 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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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曰圓覺經에云以思惟心으로測度如來圓覺境界如取螢火야燒須彌山이라며, 法華經에云如恒沙之菩薩과滿世間之鶖子ㅣ盡思共度量야도不能測佛智라며六祖釋云不能測佛智者病在度量也又云諸法眞實相은不可以言宣이라니豈以精神魂魄으로爲性爲心耶아? 佛云見見之時에見非是見이라시니豈不分明乎아? 不知他道則已也可矣어期欲說之야以露自昧니可謂舜犬妾婦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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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를 평하여 말하노니, 원각경에서 이르기를, 사유하는 마음으로 여래가 원만히 깨달은 경계를 헤아리는 것은 마치 반딧불을 가지고 수미산을 태우는 것과 같다고 했으며, 법화경에서 이르기를, 항하 모래알처럼 많은 보살과 세간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사리불이 끝까지 생각하고 함께 헤아린다 해도 부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다.육조가 해석하여 이르기를, ‘부처님의 지혜를 측량하지 못하는 것은 그 병이 잘못 헤아리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모든 법의 진실한 모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어찌 정신혼백으로 본성을 삼고 마음을 삼았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보는 작용을 볼 때에는 보는 성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어찌 분명하지 않다는 것인가? 다른 도를 모른다면 그만두는 것이 옳겠지만, 기필코 설명하려다 자신의 우매함만 드러냈으니, 가히 (아는 사람에게는 짖지 않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짖는) 순임금 집의 개와 같은 년(舜犬妾婦)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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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불교는 일상 떠난 것에 집착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日用別執難)
問曰朱子曰切病近世學者호니不知聖門實學之根本次第고而溺於佛老之說야妄意天地萬物人倫日用之外에別有一物야空虛之妙를不可測度이라야其心이懸懸僥倖一見此物로以爲極致야未嘗不墜於此者라니豈不達佛理而妄斥之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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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주자가 이르기를, 요즈음 학자들의 병통을 제거하노니, (요즈음 학자들은) 성스런 유가 문중의 실학實學의 근본 순서를 알지 못하고, 부처와 노자의 학설에 빠져, 천지 만물과 인륜의 일상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어 공하고 텅 빈 오묘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망령스레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마음이 아득하여 요행히 이 물건을 한번 보는 것으로 극치를 삼으니, 여기에 떨어지지 않은 자가 없다고 하였다. (주자의 이 말씀이) 어찌 불교의 이치를 알지도 못하고서 멋대로 배척한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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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朱子ㅣ自語相違而不知脚下堆塵三尺이로다. 有時에云釋氏ㅣ錯認精神魂魄야爲性이라며有時에云釋氏ㅣ立天地萬物外에別有一物야空虛之妙를不可測度이라니不知커라是誠何心耶아? 旣曰釋氏ㅣ錯認精魂야爲性인何又曰天地萬物之外에別有一物云乎ㅣ며旣曰天地萬物外에別有一物云인何復曰錯認精魂야爲性乎아? 恕己旣昏이라何暇論及乎他哉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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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주자는 자신의 말이 서로 모순되는데도 제 발 밑에 쌓인 먼지가 석 자나 되는 줄도 몰랐다. 어떤 때는 이르기를, 불교도는 잘못 오인하여 정신혼백을 가지고 본성이라고 한다고 하고, 어떤 때는 이르기를, 불교도는 천지 만물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어 공하고 텅 빈 오묘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모르겠구나! 이게 도대체 무슨 마음인가? 이미 이르기를, 불교도는 정신과 혼백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이라 했다고 말하고서는, 왜 또 이르기를, 천지 만물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다고 운운했을까? 또 이미 천지 만물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다고 한다고 말해 놓고는, 왜 다시 정신과 혼백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이라 한다고 말했을까? 자신 살피는 것도 이미 어두우니, 어느 겨를에 남까지 논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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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云사以根本智로達理고以後得智로達事라시니, 何錯認精魂爲性이며, 天地萬物人倫日用之外에別有一物이라니, 法華經에云是法이住法位야世間相이常住라며, 六祖云離世菩提면恰似求免角이라며, 殊云譬如高原陸地에不生蓮花고卑濕汚泥에乃生此花라며, 佛云色則是空이오空則是色이라며, 冶父云若人이識得家中寶면啼鳥山花一樣春이라며, 誌公云坐臥不知元是道고恁忙忙受苦辛이라며, 佛云孝順父母며師承三寶며孝順至道之法이니孝名이爲戒ㅣ며亦名制止라시며, 六祖云心平면何勞持戒ㅣ며行直면何用修禪이리오. 恩則親養父母ㅣ오義則上下相憐이오讓則尊卑和睦이오忍則衆惡無喧이니라. 若能鑽木出火면游泥에定生紅蓮리라. 苦口的是良藥이오逆耳必是忠言이오改過면必生智慧ㅣ오護短이면內心非賢이니라. 日用에常行饒益이니成道非由施錢이라시니吾佛之道ㅣ豈天地萬物人倫日用行事之外에別有一物耶아? 窺管之見이其謬甚矣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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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근본지로 이장理障을 통달하고 후득지로 사장事障을 통달한다고 하셨으니, 어찌 정신과 영혼을 잘못 오인하여 본성으로 삼은 것이겠는가?
천지 만물과 인륜의 일용 밖에 달리 한 물건이 있다고 했으니,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이 법이 법의 지위에 머물기 때문에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고 하였고, 육조 대사가 이르기를, 세간을 떠나 보리를 찾는 것은 흡사 토끼의 뿔을 찾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며, 문수보살이 이르기를, 비유하자면 높은 언덕 마른 땅에는 연꽃이 피어나지 않고, 낮고 습하며 더러운 진흙에 이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고 하셨으며, 야보가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제집 안의 보물을 알아차리면, 지저귀는 새와 산에 핀 꽃이 다 같은 봄소식이다라고 송하였고, 지공 화상은 이르기를, 앉고 눕는 이것이 원래 도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허둥지둥 고통을 받는구나라고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범망경에서) 이르시기를, 부모에게 효순하며 삼보를 스승으로 받들어라. 효순은 도에 이르는 길이니, 효를 이름하여 계戒라고도 하고 또한 제지制止이다라고 하였고, 육조 대사가 이르기를, 마음이 평등하면 어찌 수고롭게 계를 지키며, 행실이 곧으면 무슨 참선을 닦을 필요가 있으랴. 은혜로우면 양친 부모를 봉양할 것이요, 의로우면 상하가 서로 사랑할 것이요, 사양하면 위아래가 화목할 것이요, 참으면 온갖 악이 시끄럽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나무토막을 비벼 불을 피울 수 있으면, 진흙 속에서 반드시 붉은 연꽃이 필 것이다. 입에 쓴 것이 바로 좋은 약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반드시 충성스런 말이다. 잘못을 고치면 반드시 지혜가 생기고, 단점을 가리면 속마음이 어질어지지 못한다. 일상 속에서 항상 두루 이롭게 행하라. 도를 이루는 것은 돈 베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우리 부처님 도가 어찌 천지 만물과 인륜의 일용 행사 밖에 따로 한 물건을 두는 것이겠는가? (가는) 대롱으로 (드넓은 하늘을) 보는 견해야말로 그 오류가 심각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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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본성과 천명을 수긍해야 한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自肯性命難)
問子思曰天命之謂性이오率性之謂道ㅣ라니佛老以何로爲道爲性也ㅣ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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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자사子思는 (중용에서) 이르기를, 천명을 일러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한다고 하였다. 부처와 노자는 무엇으로 도를 삼고, (무엇으로) 본성을 삼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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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敎有方內之道며敎有方外之道니方內之道는不出天地之範圍內故로天之所爲를不可遁避니卽如孔氏之道ㅣ是也ㅣ니라. 涵虛曰儒家所謂天命之謂性과萬殊之一本者語其性也ㅣ오. 其曰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야以具衆理而應萬事者語其心也ㅣ오. 其曰人心은惟危고道心은惟微라惟精惟一야允執厥中者語其道也ㅣ오. 居二氣之間者惟氣耳ㅣ니可以暴其氣乎아爲萬物之靈者는惟心耳니可以汨於其心乎아? 專一氣而群邪莫能殄고修一心而衆欲이莫能攻也ㅣ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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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가르침에는 세간의 도도 있고, 가르침에는 출세간의 도도 있다. 세간의 도는 천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이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니, 곧 공자의 도가 그것이다.
함허 선사가 (유석질의론에서) 이르기를, 유가에서 말한 천명을 일러 본성이라 한다는 것과 온갖 다양한 것들의 근본이라는 것은 그 본성(性)을 말한 것이다. 그들이 말한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허령불매하여, 온갖 이치를 빠짐없이 갖추고 만사에 응한다는 것은 그 마음(心)을 말한 것이다. 그들이 말한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의 마음은 미미하기만 하다. 오로지 정밀하게 하고 오로지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심을 잡아라라는 것은 그 도道를 말한 것이다. (음양의) 두 기운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오직 기氣일 뿐인데, 그 기를 난폭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만물 중에 가장 신령한 것은 오직 마음(心)일 뿐인데, 그 마음을 침몰시켜서야 되겠는가? 한 기운(一氣)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모든 삿됨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한 마음(一心)을 온전하게 보전하여 온갖 욕심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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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云老曰谷神不死라以玄牝로爲天地之根者謂其性也ㅣ오. 其曰道之爲物이惟恍惟惚며窈兮冥兮호其中有精者는謂其心也ㅣ오. 其曰抱一專氣며知止不殆며不爲而成야絶聖棄智者謂其道也ㅣ라니此二敎急於心身而爲天下萬世之道也ㅣ로다. 然이나其所謂性은天命之性耳라非若佛之謂圓滿大覺之性也ㅣ오. 其所謂心은肉團生之心耳라非若佛之謂眞如淸淨之心也ㅣ오. 其所謂道率性之道耳라非若佛之謂脫生死免輪回之妙道也ㅣ니此是釋氏方外之道也ㅣ니라. 然이나方外之道必攝於方內ㅣ어니와方內之道必不攝於方外나니何者오? 大海能攝百川이어니와百川은不能攝大海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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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선사가) 또 이르기를, 노자에 말한 곡신은 죽지 않는다. 현빈으로 천지의 근본을 삼는다는 것은 그 본성(性)을 말한 것이다. 그가 말한 도는 황홀하고 황홀하며 그윽하고 아득하되 그 가운데 정기精氣가 있다는 것은 그 마음(心)을 말한 것이다. 그가 말한 하나를 품어 기운을 오로지하며, 그칠 줄 알아 위태롭지 않으며,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완성되며, 성스러움도 끊고 지혜를 버린다는 것은 그 도道를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유교와 도교의 두 가르침은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것에 다급하여 그것을 천하 만세의 도로 삼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말한 본성(性)은 하늘이 내려 준 본성(性)이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원만한 대각의 본성과는 다르다. 저들이 말하는 마음(心)은 육단심으로 생주이멸하는 마음일 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여의 청정한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말한 도는 본성을 따르는 것을 두고 도라고 한 것일 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생사를 벗어나 윤회를 면하는 오묘한 도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이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출세간의 도이다.
그런데 출세간의 도는 반드시 세간을 끌어안지만, 세간의 도는 절대로 출세간을 끌어안지 못한다. 왜 그런가? 큰 바다는 온갖 시냇물을 끌어안을 수 있지만, 온갖 시내는 큰 바다를 끌어안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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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觀諸道컨但有世法이오未有出世之法이로吾佛之道處乎方外야摠攝世出世法而圓備矣ㅣ니라. 所謂大覺性者經에云覺海性이澄圓며圓澄覺이元妙라니虛空도猶不能比其形이어니天地ㅣ豈能覆載之리오? 故로曰空生大覺中이如海一發이라시니其所謂至虛無極而體性이常住며至靈無竭而妙用이恒沙라體性이常住故로亘塵劫而不變며妙用이恒沙故로運造化而無窮이니라. 其曰大者는離覺所覺야絶諸對待之謂也ㅣ오. 其曰覺者自覺覺他야圓滿無碍之謂也ㅣ며, 所謂眞如淸淨心者大覺性上에妙用眞知ㅣ周亙法界야與覺性으로等야湛然常寂야大用이無方이니其曰眞如者는不妄不變之謂也ㅣ오. 其曰淸淨者不染六塵之謂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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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러 (학파의) 도를 관찰해 보니, 거기에는 다만 세간법만 있고 출세간법은 없지만, 우리 부처님의 도는 세상 밖에 처하면서도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모두 포섭하여 원만히 구비하였다. 이를테면 대각성大覺性이라는 것은 (능엄경이라는) 경에 이르기를, 바다 같은 깨달음의 성품이 맑고 원만하여, 원만하고 맑은 깨달음이 원래 오묘하도다라고 하였으니, 허공으로도 오히려 그 모습을 비유할 수 없는데, 하늘과 땅이 어찌 그것을 덮고 실을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허공이 대각大覺 가운데서 생겨나는 것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말하자면, 지극하게 비어 있고 다함이 없되 바탕이 되는 본성(體性)은 항상 머물러 있으며, 지극하게 신령하고 마르지 않되 오묘한 작용(妙用)은 항하의 모래알 수처럼 많다. 체성體性이 항상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영원토록 불변하며, 묘용妙用이 항하의 모래알 수처럼 많기 때문에 조화가 무궁하다. 여기서 대大라고 말한 것은 깨닫는 주체와 깨달은 내용을 떠나 모든 상대를 끊었다는 말이고, 여기서 각覺이라고 말한 것은 저도 깨닫고 남도 깨우쳐 원만하고 걸림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한 진여의 청정한 마음이란, 대각의 성품 위에서 오묘하게 작용하는 진여가 법계에 두루하여, 깨달음의 성품과 더불어 평등하고 맑으면서 항상 고요하여, 큰 작용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여기에서 말한 진여란, 허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여기에서 말한 청정란 육진에 물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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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嘉所謂心鏡이明鑑無碍야廓然瑩徹周沙界ㅣ로다. 萬像森影現中이오一圓光이非內外者ㅣ是也ㅣ니佛之所以竪窮三際며橫遍十方이로다. 明透日月며德勝乾坤이라功超造化며量越太虛야而爲三界大師와四生慈父시니以盡得諸有而無遺故也ㅣ니라. 其所謂世間聖賢者ㅣ誰得與比肩哉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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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 선사가 말한 마음 거울이 밝게 비춤에 걸림이 없으니, 텅 비고 밝게 사무쳐 항하사의 세계에 두루한다. 삼라만상이 그 가운데 나타난 그림자요, 한 알의 둥근 광명은 안도 밖도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부처님께서 이것으로써 시간적으로 삼제三際를 다하고, 공간적으로 시방에 미치셨다. 밝기는 해와 달을 뛰어넘고, 덕스럽기는 하늘과 땅보다 더하다. 그 공능은 조화를 초월하고, 그 분량은 태허를 초월했다. 그리하여 삼계의 큰 스승이 되시고 사생四生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셨다. 왜냐하면 모든 유有를 획득하여 남김없이 없앴기 때문이다. 소위 세간의 성현이란 자가 누구인들 (우리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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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之所謂出世者非蛻其形骸고入於混茫之謂也ㅣ라. 如有過量之人이不歷階梯고便登佛地者如睡夢覺며如蓮花開며如披雲見日月며非新非舊라獨露堂堂야無有形氣身心之足累며亦無有生死輪廻之可討ㅣ니玆其所以出世之道也ㅣ니라. 鳴呼라. 生靈之同出一源也에具有如是智慧德相이로而區爲形質야背馳不返야陷於見見識識之中이如木之犧樽에靑黃이變其狀며若土之陶鈞에大小ㅣ易其形며又如挹海貯於衆器야泥之混之며攪之動之면其渾濁也ㅣ極矣며其失性也ㅣ甚矣ㅣ로다.此是淸性이오非濕之本性也ㅣ니라 由其失性야而溺於混濁故로業海波騰에三途沸야輪回不息而生死ㅣ無窮니得不爲其傷心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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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말하는 출세간이란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혼돈의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고정관념을 벗어난 어떤 사람이 계단이나 사다리를 밟지 않고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오른 자는, 잠자던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고, 연꽃이 피어난 것과 같으며, 구름을 헤치고 해와 달이 나타나는 것과 같고, 새로운 것도 아니고 옛것도 아니다. 홀로 드러나 당당하여 족히 얽매일 형체도 기운도 몸도 마음도 없고, 가히 제거해야 할 생사와 윤회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는 길이 되는 이유이다.
오호라! 생령들이 하나의 근원에서 함께 나와 이와 같은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으나, 형질에 가로막혀 (근원을) 등지고 내달려 돌아오질 않고 온갖 견해와 온갖 알음알이 속에 빠지는 것이, 마치 나무로 희준犧樽이라는 술동이를 만듦에 청색, 황색으로 그 형상이 변하는 것과 같고, 찰흙을 물레 위에 돌리면 제각기 크거나 작게 그 형태를 바꾸는 것과 같으며, 또 바닷물을 퍼다 여러 그릇에 담아 거기에 진흙을 넣고, 그것을 뒤섞으며 그것을 휘젓고 그것을 흔들면 그 혼탁함이 극치에 이르러 그 본성을 심하게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이 비유는 밝은 본성을 말한 것이지, 축축한 본성을 말한 것이 아니다. 본성을 잃어 혼탁에 빠지기 때문에, 바다 같은 업이 바다처럼 솟구치고, 삼악도가 오래도록 들끓어 윤회가 쉬지 않아 생사가 끝이 없으니, 상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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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凡情之所使也에背眞流蕩而紛擾不停며吸塵爲相而渾濁不淨나니紛擾不停故로生滅이相續며渾濁不淨故로物欲이交蔽야物欲之感에苦惱ㅣ繼之고生滅之感에生死ㅣ應之故로以情爲敎者其輪回之道也ㅣ오以性爲敎者는其出生死之道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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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무릇 허망한 생각(情)에 휘둘리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참을 등지고 방탕에 빠져 어지럽게 요동치며 멈추지 않고, 들이마신 먼지로 모양을 삼아서 혼탁하고 더럽다. 어지럽게 요동치며 멈추지 않기 때문에 생멸이 상속하며, 혼탁하여 맑아지지 않기 때문에 물욕이 자꾸 뒤덮는다. 물욕이 움직이면 고통이 따르고, 생멸이 움직이면 생사가 생긴다. 그러므로 허망한 생각(情)으로 가르침을 삼는 것은 윤회에 빠지는 길이고, 본성(性)으로 가르침을 삼는 것은 생사를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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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로覺皇이不忍坐視其然사以大慈悲誓願力故로脫舍郍珍御之服시고着釋迦獘垢之衣야作不請友샤入諸世間야普以先覺으로開導迷倫사되以種種神通과種種智慧와種種威光과種種方便과種種言辭와種種法門으로說因說果며說罪說福시며說善惡說報應시며說天堂說地獄시며說佛刹說世界시며說權說實시며說漸說頓사直示之巧示之시며單示之複示之사皆欲含靈으로返妄歸眞야直至菩提妙莊嚴域케시니, 故로爲其敎也에通幽通冥며透天透地야廣及于大千而人之向化ㅣ若偃風之草니有衆魔怨이나而不壅蔽者以其誠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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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깨달음의 황제이신 부처님께서 그런 것을 차마 좌시할 수 없으셨다. 대자비와 서원의 힘 때문에, 사나의 보배로 장식된 곤룡포를 벗으시고, 석가의 낡고 더러운 옷을 입고서, 초대받지 않은 벗이 되어 모든 세간에 들어가시어, 널리 먼저 깨달음(覺)으로 혼미한 무리를 깨우치고 인도하셨다.
갖가지 신통과 갖가지 지혜와 갖가지 위엄스런 광명과 갖가지 방편과 갖가지 말씀과 갖가지 법문으로, 인을 설하시고 과를 설하시며 죄를 설하시고 복을 설하시며 선악을 설하시고 보응을 설하시며 천당을 설하시고 지옥을 설하시며 부처님 나라를 설하시고 세계를 설하시며 권교를 설하시고 실교를 설하시며 점교를 설하시고 돈교를 설하시어, 곧장 보여 주기도 하시고 교묘하게 보여 주기도 하시며 한번만 지시하기도 하시고 반복해 지시하기도 하셨다. 그것이 모두 생명체들이 망정을 돌이켜 진여로 돌아가, 곧장 보리의 오묘하고 장엄한 땅에 도달하게 하려고 그러신 것이다.
따라서 그 가르침은 아득한 곳까지 통하기도 하고 어두운 곳까지 통하기도 하며, 하늘을 투과하기도 하고 땅을 투과하기도 한다.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미쳐서 사람들이 (그 가르침으로) 향하고 따름이 바람에 자빠지는 풀과 같았다. 무리 중에는 마구니들의 원망이 있었지만 막지 못했던 것은 그 진실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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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老法天制用故로其所修者云天心也며其所率者云天性也ㅣ어니와諸佛設敎諸天이奉行故로所明者는眞如淸淨心이오所率者는圓滿大覺性이오. 所達者는出生死妙道ㅣ니此是諸天人衆이奉之明之며率之達之護之者也ㅣ어而其事天者ㅣ返背之니豈可以謂合得天心乎ㅣ며又毁謗之니其可以謂率得天性乎아? 旣不合且率於天心天性則將何以爲道者哉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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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노자는 하늘을 본받아 작용을 제작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닦는 것은 말하자면 천심天心이고, 그들이 따르는 것은 말하자면 천성天性이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가르침은 모든 하늘까지도 받들어 행하기 때문에, 밝힌 것은 진여의 청정한 마음이고, 따르는 것은 원만한 대각의 성품이며, 통달한 것은 생사를 벗어나는 오묘한 도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하늘과 인간의 무리가 받들어 밝히는 것이며, 따르고 통달하며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 하늘을 섬긴다는 자들이 오히려 이를 등지니, 어찌 천심天心에 합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이를 헐뜯고 비방하니, 그것을 천성天性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천심과 천성에 합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면 장차 무엇으로 도를 삼으려는 자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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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인종이 소멸할 것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人種絶難)
問曰若世人이悉遵佛敎爲僧이면則男女生之道ㅣ滅絶야不幾多年에人種이將無有孑遺矣ㅣ오且惟修一身而已니誰爲君主者ㅣ며誰爲臣民者哉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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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조리 불교를 받들어 승려가 된다면, 남녀가 자식을 낳는 이치가 완전히 끊어져, 몇 해 안 가 인종이 얼마 안 남게 될 것이다. 또한 오직 제 한 몸만 수양할 뿐이니, 누가 군주가 되고 누가 신민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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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於前에不云乎아? 佛有四部弟子니曰比丘比丘尼와與淸信士淸信女也ㅣ라. 所謂比丘比丘尼者乃法海中一區分示派也ㅣ라. 掌諸佛法야以傳天下後世야燈燈相續者也며又了知無常世間이種種虛幻야無一可樂일專心欲究此一段大事因緣故로靜居安禪야但以悟로爲則니卽所謂到彼岸之經路也ㅣ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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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불교에는 사부四部의 제자가 있으니, 말하자면 비구·비구니와 청신사·청신녀이다. 소위 비구와 비구니는 바다 같은 법 가운데 한 구역을 종파로 나누어 가진다. 모든 불법을 관장하여 천하 후세에 전하여, 등불에서 등불로 서로 이어 주는 자들이다. 또 무상한 세간이란 갖가지로 헛되고 환상과 같아서 좋아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분명히 알아, 온 마음을 다해 이 한 덩어리의 일대사인연을 마치려는 자들이다. 따라서 조용한 곳에 살면서 참선하여 오직 깨달음으로서 법칙을 삼으니, 즉 이것은 저 언덕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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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信士淸信女者는是在家二衆이라. 皆相與嫁娶야生養男女며承事父母며奉祀祖先며置治業며處身公私에事君以忠며事親以孝며惟義是從며惟理是踐며惟禮是行며惟信是守며惟仁斯存야心輪於平等公正之上야能以慈而與樂며能以悲而拔苦며能以喜而慶彼德며能以捨而棄難捨호而當事佛以勤며奉持大士의菩薩大戒淸淨律儀며修習禪定야淨治心垢며常以智慧로觀照야於癡暗면自然心鏡이朗徹야如蓮花不着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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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사·청신녀는 재가의 두 대중이다. 그들은 모두 서로 시집가고 장가들어 아들딸을 낳아 기르고 부모를 받들어 섬기며, 받들어 제사하고 먼저 가신 분을 사당에 모시며, 생산 도구를 갖추고 생업을 경영한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할 경우,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하고 부모를 섬기되 효성으로 하며, 오로지 의를 따르고 오로지 이理를 실천하며 오로지 예를 실천하고 오로지 믿음을 지키며 오로지 인을 보존한다.
언제나 평등하고 공정한 상태에서 마음을 움직여, 아끼는 마음으로 남과 함께 즐거워하고, 가여운 마음으로 남의 고통을 덜어 주며, 덩달아 기뻐하는 마음으로 남의 공덕을 축하해 주고, 평등한 마음으로 버리기 어려운 것들을 버린다. 부처님을 섬길 때에는 부지런히 하고, 보살의 청정한 율의보살 대계를 받들어 지키며, 선정을 닦아 익혀 마음의 때를 깨끗이 다스리고, 항상 지혜로 관조하여 어리석음의 어둠을 소멸시키면 자연히 마음의 거울이 밑까지 밝아져, 연꽃에 물이 묻지 않는 것처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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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로宋朝參政李漢老ㅣ致大慧禪師書云自到城中으로着衣喫飯며抱子弄孫야色色仍舊호旣無拘滯之情며亦不作奇持之想이라며華巖會上에無量阿僧祇菩薩衆海ㅣ皆不剃髮고處俗利生者也ㅣ니라. 文殊ㅣ引蓮花之不染야以譬處世시니如大富者와波門居士ㅣ來趣道場者와三界諸天과八部聖神이雲集道場者ㅣ皆是在家而有妻有子者也ㅣ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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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송나라 때 참정 이한로는 대혜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르기를, 성으로 돌아와 옷 입고 밥 먹으며 아이를 안고 손자와 장난치니, 일마다 예전 그대로지만, 이미 구애되거나 막히는 어리석음이 없으며, 또한 기이하거나 특별하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화엄회상의 바다처럼 수많은 한량없는 아승기 보살 대중이 모두 삭발하지 않고 세속에서 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자들이었다. 문수보살이 연꽃이 오염되지 않는 것을 인용하여, 세속에 살아가는 것을 비유하였다. 도량에 모여든, 큰 부자인 장자長者와 바라문 출신의 거사들과, 삼계의 모든 하늘과 팔부의 성스런 신중들은 모두 재가하면서 처자식이 있는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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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이自東傳以後로迄于至今히或王或臣과或士或庶와無數人衆이歸敬三寶야親受佛戒야以作信男信女니於是에有見性達道야入生出死에得大自在者니如寵道原·傅大士·李通玄·蛇腹聖者尹弼·浮雪·白蘋·李眞樂等人이며有深入法門야善於智度者니如楊衒之·裴休·李翺·王常侍·張拙·范粹·黃庭堅·張商英·盧航·楊公·趙王隨·呂洞賓歸依于黃龍心禪師也等人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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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 동쪽으로 전해진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왕이나 신하나 선비나 서민 등 무수한 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하여 부처님의 계를 몸소 받고 신남·신녀가 되었다.
그들 중에는 견성하여 도를 통달하여, 생사의 출입에 대자유를 얻은 자도 있었으니, 예를 들면 방도원·부 대사·이통현·사복성자 윤필·부설·백빈·이진락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또 법문에 깊이 들어가 지혜바라밀에 뛰어난 자들이 있었으니, 예를 들면 양현지·배휴·이고·왕상시·장졸·범문수·황정견·장상영·노항·양문공·조왕수·여동빈황룡 조심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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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通達大義야歸宿法庭者니如孫思邈·崔孤雲·陶潛·蘇軾·白居易·邵康節有詩云求名少日投宣聖死當年親釋迦先能了盈世間事然後方言世出世柳子厚·王勃·社甫·張九成·楊傑·金正喜·李建昌·金月窓·等人과又王臣夫人과男女童幼와使役雇傭等無數人이며·又持戒生天며上昇內院者와與發願淨土야精修十善며稱號彌陁야往生極樂者無數人等을不可以筆勝記也니於傳燈錄辨正錄普林淨土寶鑑佛袒源流通載諸處俱載然而或騰或漏不可一盡其數如林也 莫不處於世間야或事君而治民며或居林而修道야有富而受欲樂者也ㅣ니라. 卽不論如何人物고皆可以入於此箇門中야而作佛子也ㅣ니何愁永絶生產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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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의에 통달하여 절에 들어와 머문 자도 있었으니, 예를 들면 손사막·최고운·도잠·소식·백거이·소강절이런 시가 있다. ‘명예를 구하던 젊은 날에는 공자에게 투신하다가, 죽음이 두려운 올해에는 석가를 가까이하네. 먼저 세속의 일을 제대로 완수하고, 그런 뒤에 비로소 출세간을 말할 수 있네.’·유자후·왕발·두보·장구성·양걸·김정희·이건창·김월창 등과 같은 사람들이다.
또 왕이나 대신의 부인과, 남녀의 어린아이들, 노역자와 일꾼 등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있으며, 또 계율을 지켜 하늘에 태어나기도 하며, 위로 도솔천 내원궁에 오른 자와, 더불어 정토에 태어나길 발원하여 십선十善을 정밀히 닦으며 아미타불의 명호를 불러 극락에 왕생한 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붓으로 다 적을 수 없을 정도이다.『전등록』·『변정록』·『보림정토보감』·『불조원류』·『불조통재』 등 여러 곳에 모두 실려 있다. 그러나 늘리기도 하고 누락시키기도 하여, 그 숫자를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숲과 같다. 이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세속에 살면서 혹은 임금을 섬기며 백성을 다스리며, 혹은 산속에 거처하면서 도를 닦으면서도 부귀를 소유하고 욕락을 누리지 않았던 자가 없었다. 즉 어떤 사람이건 논할 것 없이, 모두 불법 문중으로 들어와 불자가 될 수 있으니, 애 낳는 것이 영원히 끊어질까를 근심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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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어떤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何法度生難)
問曰釋氏ㅣ示現世間사饒益衆生이라니用何法度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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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석가가 세간에 나타나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 법을 사용해 중생을 제도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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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佛이觀三界衆生의苦海無量시고以大悲願力으로誕降王宮사示現八相成道사隨機演說시니十類衆生이隨根獲益홈이譬如大海야其深廣이難思어든大小魚族之諸類ㅣ馳遂浮遊야飮噉無時호海水無有增減者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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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부처님께서는 삼계 중생들의 고해가 한량없음을 관찰하시고, 대비의 원력으로 왕궁에 탄생하시어 팔상으로 도 이룸을 보이시어 근기 따라 연설하시니, 열 부류 중생이 근기 따라 이익을 얻음이 비유하자면 마치 큰 바다와 같다. 그 깊고 넓음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크고 작은 물고기 종족의 모든 부류가 달리고 쫓고 뜨고 노닐면서 시도 때도 없이 마시고 먹지만, 바닷물은 늘고 줆이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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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이隨機說法사類各不同니如華巖之統萬法明一心과圓覺之直指大光明藏과楞巖之大定과金剛之三空과阿含之四諦와幷天敎之生天과仙敎之十種과人敎之綱常等世出世間의萬種差別之法이無法不具也ㅣ니라. 今에但將一篇因緣야爲汝說之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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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근기를 따라 법을 설하시되 부류가 각각 달랐으니, 예컨대 화엄경에서는 만법을 통합하여 일심임을 설하셨고, 원각경에서는 대광명장을 곧바로 지목하셨고, 능엄경에서는 큰 선정을 설하셨고, 금강경에서는 세 가지의 공함을 설하셨고, 아함경에서는 사성제를 설하셨다. 그리고 천교天敎에서는 하늘 나라에 태어나는 도를 설하셨고, 선교仙敎에서는 10종 수행을 설하셨고, 인교人敎에서는 강상의 윤리 등을 설하셨다. 그리하여 세간 출세간의 만 가지로 차별되는 법들이 거기에 갖춰지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그 가운데 한 종류의 인연만 가지고 그대에게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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維摩詰이言호此土衆生이剛强難化故로佛이爲說剛强之語야以調伏之사言사是地獄이며是畜生이며是諸難處ㅣ며是愚人生處ㅣ며是身邪行이며是身邪行報ㅣ며是口邪行이며是口邪行報ㅣ며是意邪行이오是意邪行報ㅣ며是殺生이며是殺生報ㅣ며是不與取ㅣ며是不與取報ㅣ며是邪淫이며是邪淫報ㅣ며是妄語ㅣ며是妄語報ㅣ며是兩舌이며是兩舌報ㅣ며是無義語며是無義語報ㅣ며是貪嫉이며是貪嫉報ㅣ며是嗔惱며是嗔惱報ㅣ며是邪見이며是邪見報ㅣ며是慳吝이며是慳吝報ㅣ며是毁戒ㅣ며是毁戒報ㅣ며是嗔恚ㅣ며是嗔報ㅣ며是懈怠ㅣ며是懈怠報ㅣ며是亂意며是亂意報ㅣ며是愚痴ㅣ며是愚痴報ㅣ며是結戒ㅣ며是結戒報ㅣ며是持戒ㅣ며是犯戒ㅣ며是應作이며是不應作이며是障碍ㅣ며是不障碍ㅣ며是得罪ㅣ며是離罪ㅣ며是淨이며是垢ㅣ며是有漏ㅣ며是無漏ㅣ며是邪道ㅣ며是正道ㅣ며是有爲ㅣ며是無爲ㅣ며是世間이며是涅槃이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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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힐이 말했다.
이 국토의 중생들이 굳세고 강하여 교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굳세고 강한 말씀을 설하여 그들을 조복하시려고, 이것이 지옥이고 이것이 축생이며 이것이 여러 험난한 세계이고 이것이 어리석은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며, 이것이 몸으로 짓는 삿된 행이고 이것이 몸으로 짓는 삿된 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입으로 짓는 삿된 행이고 이것이 입으로 짓는 삿된 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뜻으로 짓는 삿된 행이고 이것이 뜻으로 짓는 삿된 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살생이고 이것이 살생의 과보이며, 이것이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고 이것이 주지 않는 것을 가진 과보이며, 이것이 삿된 음행이고 이것이 삿된 음행의 과보이며, 이것이 거짓말이고 이것이 거짓말을 한 과보이며, 이것이 이간질이고 이것이 이간질을 한 과보이며, 이것이 의롭지 못한 말이고 이것이 의롭지 못한 말의 과보이며, 이것이 탐욕과 질투이고 이것이 탐욕과 질투의 과보이며, 이것이 성냄과 고뇌이고 이것이 성냄과 고뇌의 과보이며, 이것이 삿된 견해이고 이것이 삿된 견해의 과보이며, 이것이 인색함이고 이것이 인색함의 과보이며, 이것이 파계이고 이것이 파계의 과보이며, 이것이 성냄이고 이것이 성냄의 과보이며, 이것이 나태함이고 이것이 나태함의 과보이며, 이것이 산만함이고 이것이 산만함의 과보이며, 이것이 어리석음이고 이것이 어리석음의 과보이며, 이것이 계를 받는 것이고 이것이 계를 받은 과보이며, 이것이 계를 지키는 것이고 이것이 계를 범하는 것이며, 이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이것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며, 이것이 장애이고 이것이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죄를 얻는 것이고 이것이 죄를 벗어나는 것이며, 이것이 깨끗한 것이고 이것이 더러운 것이며, 이것이 번뇌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번뇌가 없는 것이며, 이것이 삿된 도이고 이것이 바른 도이며, 이것이 유위이고 이것이 무위이며, 이것이 세간이고 이것이 열반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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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難化之人이心如猿故로以若干種法으로制御其心야사乃可調伏이니譬如衆馬悷不調어든加諸楚毒야乃至徹骨然後에調伏니如是剛强難化衆生故로以一切苦切之言으로사乃可入律이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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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은 원숭이와 같기 때문에, 이렇게 수천 종류의 법으로 그 마음을 제어해야만 비로소 조복시킬 수 있다. 비유하자면 여러 말들이 거칠고 사나워 통제가 안 되면 온갖 혹독한 매질을 가하여 마침내 아픔이 뼈에 스민 뒤에야 조복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굳세고 강하여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이 있기 때문에, 온갖 쓰디쓴 말씀을 하셔야만 질서에 들어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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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一期接引下根之方便이라. 若接中上之根인卽不如是也ㅣ니라. 君아當深信佛之正道야莫謗世尊라佛是汝心이라謗佛者謗汝自心이니라. 佛言사我如醫王야知病設藥이어든服與不服은非醫咎也ㅣ라시고又云사如來者如語者며實語者며不語者며不異語者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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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것은 한 시기에 하근기를 만나 인도하던 방편이다. 만약 중근기 또는 상근기를 만나셨다면 이렇게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대여! 부처님의 바른 도를 마땅히 깊이 믿어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부처님은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은 너 자신의 마음을 비방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의사 임금처럼 병을 알고 약을 베풀지만, 복용하고 복용하지 않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또 이르시기를, 여래는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이며 진실하게 말하는 자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이며 다르게 말하지 않는 자이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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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윤회가 없다는 힐난에 대한 반론(永無受生難)
問曰夫人死也如木之成灰야不重爲木이라永無受生之道어佛有輪回六趣之說니末審커라. 魂魄이已散에何物이受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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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대저 사람이 죽는 것이, 마치 나무가 타서 재가 되면 다시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 영원히 다시 태어날 길이 없는 법인데,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의 설이 있다. 모르겠구나, 혼백이 이미 흩어졌는데 어떤 물건이 생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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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汝ㅣ生時에有何物야而受胎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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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그대는 태어날 때 어떤 물건이 있어 태를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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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生則自然生이오死則自然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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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태어남이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고, 죽음이란 저절로 소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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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你云生則自然生이라니則汝不因父母而生耶ㅣ며死則自然死라니則汝不因老病而死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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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대가 말하기를, 태어남이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너는 부모를 빌리지 않고 태어났는가? 또 말하기를, 죽음이란 저절로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대는 늙거나 병들지 않고도 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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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天所命者를人必受之故로吾ㅣ以爲稟天地之氣而生也ㅣ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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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하늘이 명한 것을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천지의 기운을 품받아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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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已稟天地之氣而生也則汝不因父母交接而生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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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천지의 기운을 품받아 태어났다면, 그대는 부모의 교접 없이도 태어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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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因父母交接而生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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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부모의 교접으로 인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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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旣因父母而生인則道稟父母之氣分은可也ㅣ어이와你所謂稟天地之氣理義不當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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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부모 때문에 태어났다면, 부모의 기운을 쪼개 받았다고 해야 옳은데, 그대가 말한 천지의 기운을 품받았다는 것은 이치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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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父母則同天地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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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부모는 천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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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如子之言컨則當乾坤이始開而萬物未起之時야人種이從甚處出生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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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대 말대로라면,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만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인간이란 종자는 어디에서 출생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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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吾聞之니上古之人은自然化生云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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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내가 듣기로는, 상고 시대의 사람은 자연에서 화생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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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旣云自然化生인則從那裡而化生耶아? 從土而化生耶아? 從石而化生耶아? 從水而化生耶아? 從火而化生耶아? 從木而化生耶아? 從金而化生耶아? 從空而化生耶아? 從上而化降耶아? 從下而化昇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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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자연에서 화생했다고 말했는데, 어떤 것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흙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돌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물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불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나무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쇠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허공에서 변화해서 생겨났는가? 위에서 변화해서 내려왔는가? 아래에서 변화해서 올라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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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吾嘗聞之니高扶梁三姓人은於濟州島漢山頭無岳石窟中에從地湧出고檀君은於太白山檀木下에降生고慶州金氏之祖金閼智於慶州林間에有一金函而有人自化라니如是等異迹이於天下에想必多數矣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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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내가 일찍이 듣기로는, 고·부·양 씨 세 성을 가진 사람들은 제주도 한라산 꼭대기에 있는 무악석굴 속에서 땅에서 솟았다고 하고, 단군은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강생하였다고 하고,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경주 숲속에 황금상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속의 어떤 사람이 스스로 변화했다고 한다. 이런 등등의 기이한 자취가 천하에 생각건대 분명 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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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土石卵等類가云能自化於人인而今不爾者何也오? 若曰人이因稟土石木卵之氣而生이라며若稟空而氣生이라면是非關於父母天地之氣也로다. 言至於斯에足見語論之相左와事理之相違니可謂邪法은久難扶持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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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흙·돌·알 등의 종류가 스스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들은 무엇 때문인가? 만약 사람이 흙·돌·나무·알의 기운을 품받아서 태어났다고 하고, 만약 허공을 품받아서 기운으로 태어났다고 한다면, 이는 부모나 천지의 기운과 관련 없다는 것이다. 말이 여기에 이르면, 말과 논리가 서로 반대되고 사事와 이理가 서로 위배됨을 족히 알 수 있다. 참으로 삿된 법은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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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復問汝노라. 凡人이始受胎之時에何物이以能成人也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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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보통 사람이 처음 수태할 때에 어떤 물건이 사람을 이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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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父精母血이合聚而漸成此身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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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혈액이 합쳐져서 차츰 이 몸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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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若汝之父精母血이合成人身인必當人人에隨其陰陽之交運而隨生이어今却不然者何也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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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만약 그대의 아버지 정기와 어머니 혈액이 합하여 사람의 몸을 이룬다면, 반드시 사람사람에 음양이 교접할 때마다 태어나야 마땅하다. 지금 도리어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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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於是時也에若母之月水가失度ㅣ어나或男之精白이値寒커나以如是因緣으로不能受胎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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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그때에 어머니가 월수가 때를 놓쳤거나 남자의 정자가 차거나, 이와 같은 인연으로 수태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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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然則男精이溫和고女水가調經者胡不受胎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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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남자의 정자가 온화하고 여자의 월수가 조리에 맞는데도 어찌하여 수태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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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到這裡야是聖人之當知ㅣ오非我輩之所能測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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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한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성인이라야 알 수 있는 것이지, 우리 같은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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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曰未知入胎受生之道ㅣ어니況論死後化去之理乎아? 上古神聖降化事蹟이於諸釋典과許多經에詳明紀載나煩難提ㅣ로다. 然이나但取一二簡意야爲說之호리라. 夫世界肇判而后에當人壽八萬四千歲時야福力殊勝이如色界天으로同一無異라. 有光音天人이飛遊四方이라가仍住於此야因食地味而身重야不能復上야爲人種之始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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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다.
태에 들어가 목숨을 받는 도리도 아직 모르는데, 하물며 죽은 후에 변화하여 떠나는 이치를 논하겠는가? 상고시대에 신령스런 성인이 내려와 교화했다는 사적이 여러 불교 전적과 허다한 경문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지만, 문장이 번다하여 일일이 들추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두 가지 간단한 뜻만 취하여 그대에게 설명하겠다.
대저 세계가 처음 갈라진 후, 그때의 사람 수명은 8만 4천 세여서, 수승한 복덕의 힘이 색계천과 동일하여 차이가 없었다. 광음천의 어떤 사람이 사방을 날아 노닐다가 이곳에 머물러, 지미地味를 먹자 몸이 무거워져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수 없어 인간 종족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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轉轉而降으로人壽減而福力이損며間有桑田碧海之變辻故로人種이終而復生야至於穴居而野處며人性이貪毒야殺害ㅣ繼生니於是에或佛或菩薩과或天或漢이垂大悲願力사降迹人間실或有不因父母而自化者며有因父母而生之者니如寒山拾得誌公檀君高扶梁首露王如是人等은不因父母而自化者也ㅣ며, 如靈山當時佛菩薩諸位聖者는或因或化而生之者ㅣ며, 如頂上王은頂化而道詵圓鑑惠可如是人等은不干其父고假母胎而生之者也ㅣ니, 皆以聖賢而愍衆生之故로爲降世間사開發民智也ㅣ시니라. 又如伏羲神農少昊顓頊如是人等도亦皆借母腹而生者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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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세월이 내려오면서 사람의 수명이 감소하고 복덕의 힘이 줄어들었으며, 그 사이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 종족이 끊어졌다가는 다시 태어나, 굴에 살기도 하고 들판에서 살기도 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의 성품이 탐욕스럽고 독해져 살해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이에 혹은 부처님이나 혹은 보살님이나, 혹은 천신이나 혹은 나한이 대비의 원력을 드리워 인간의 몸으로 자취를 나타내셨다. 부모를 말미암지 않고 스스로 화생한 자도 있고, 혹은 부모를 말미암아 태어난 자도 있었다. 예컨대 한산·습득·지공·단군·고부양·수로왕 같은 사람들은, 부모를 말미암지 않고 화생한 자들이다. 영산회상 당시의 불보살과 여러 지위의 성자들은 혹은 부모를 말미암기도 하고 혹은 화생한 자들이다.
예컨대 정상왕은 정수리에서 화현했고, 도선·원감·혜가 이런 사람들은 그 아버지와 상관없이 그저 모태만 빌려 태어난 자들이다. 모두 성현으로서 중생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세간에 내려와 백성들의 지혜를 개발해 주신 것이었다.
또 예컨대, 복희·신농·소호·전욱 이런 사람들도 역시 모두 어머니의 배만 빌려서 태어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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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수태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受胎理由問)
問曰人之受胎理由를其可得聞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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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사람이 잉태되는 이유를 들려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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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可다. 汝若知受胎生來之因緣이면必不疑於命終死去之事矣ㅣ리라. 夫人之受胎也에誰有父母精血之凝合이나然이나卽其受胎者之神識이與父母之神識으로三緣이和合然後에사方可成胎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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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있다. 그대가 만약 수태되어 태어나게 되는 인연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목숨이 끝나 죽어서 가는 일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대저 사람이 수태되려면 누구나 부모의 정기와 혈액이 엉겨 합쳐져야만 한다. 그러나 수태되는 자의 신식神識이 부모의 신식과 이 세 가지 연이 화합한 뒤에야 비로소 태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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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事經에云佛告比丘사當知라三因三緣이能感後有後有者後身也受胎也니라. 云何爲三因고所謂無明을未斷故며貪愛를未棄故며造業을未息故로能感後有니라. 所以然者何오? 業爲良由이오識爲種子오愛爲漑灌也三緣者父母己也라시고, 瑜珈論云호爾時에父母貪愛俱極야最後各出一滴濃厚精血야和合住母胎中니猶如熟乳凝結야依阿賴耶神識야便成受胎云云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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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길, 마땅히 알라. 세 가지 인과 세 가지 연이 후유後有후유란 후신이고, 잉태되는 것이다.를 초래한다. 무엇이 세 가지 인인가? 이른바 무명을 끊지 못했기 때문에, 탐애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업을 짓기를 쉬지 못했기 때문에 후유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업은 좋은 밭이 되고, 식은 종자가 되며, 애욕은 물 대어 줌이 된다세 가지 연은 아버지·어머니·자기이다.고 했다.
유가론에 이르기를, 그때 아버지·어머니의 탐애가 함께 극치에 다달아 최후에 각자 한 방울의 진한 정기와 혈액을 배출하여 화합되어 어머니의 태에 착상하니, 마치 숙성된 우유가 응결한 것과 같다. 아뢰야식 신식이 거기에 의탁하여 곧바로 수태된다고 운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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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抵父母之精血은猶水土之氣分也ㅣ니雖有父母精血이相合이나非火大의所持면不能生成이오非風大의所持면不能成熟며亦不能回轉며亦不能通覈也ㅣ니라. 然이나通而言之컨成熟增은風火之造化也ㅣ오潤濕凝結은水土之所持也ㅣ오骨格之堅强은金氣之助因也ㅣ니라. 神識所應에四大護從이如雲從龍風從虎야自然交會ㅣ오非是强爲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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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부모의 정기와 혈액은 마치 물과 흙의 기운으로 나뉘어진 것 같다. 비록 부모의 정기와 혈액이 서로 합하더라도 화대가 지탱시켜 주지 않으면 생성될 수 없으며, 풍대가 지탱시켜 주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고, 몸을 돌릴 수도 없고 배 속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통틀어서 말해 보면, 성숙시키고 증장시키는 것은 풍과 화의 조화이고, 축축하게 적시고 응결시키는 것은 수와 토가 지탱시켜 주는 것이고, 골격이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것은 금의 기운이 보조 원인이 된다. 신식에 응한 것을 사대가 보호하여 따름이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호랑이를 따르는 것과 같아 자연히 사귀어 모이는 것이지, 강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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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積經에云是諸衆生이托胎在母腹中야三十八箇七日에有二十九種業風의所吹야次第成就니第一七日은狀如酪漿고第二七日은狀如凝酪고第三七日은狀如藥杵고第四七日은狀如鞋援고第五七日은分頭臂䏶고第六七日은肘脨相現고第七七日은手足掌現고第八七日은二十指現고第九七日은九孔方現고第十七日은聲音具足고第十一七日은九孔開通고第十二七日은生腸節孔고第十三七日은生飢渴想고第十四七日은生萬觔고第十五七日은生八萬脈고第十六七日은通出入息고第十七七日은食道漸寬고第十八第十九七日은六根具足고第二十七日은偏生骨節고第二十一七日二十二七日二十三七日은生血肉皮고第二十四七日二十五七日은血肉皮고第二十六七日은生毛髮爪고第二十七七日은分善惡相고第二十八七日은妄生八想고第二十九第三十七日은黑白隨業고第三十一로至第三十六七日은身相具足고第三十七七日은念欲出生고第三十八七日로滿十箇月야넌向母門야倒卓而坐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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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적경에 이르기를, 이 모든 중생들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탁태하여 38주를 지내는 동안 29종의 업풍이 불어와 차례로 성취되어 간다. 제1주에는 간장 같은 상태이고, 제2주에는 엉긴 우유와 같은 상태이며, 제3주에는 약을 찧을 때 쓰는 절구공이 같은 상태이고, 제4주에는 가죽신을 만들 때 틀 같은 상태이며, 제5주에는 머리와 두 팔 두 다리가 나뉘고, 제6주에는 팔꿈치와 무릎의 모습이 나타나며, 제7주에는 손바닥과 발바닥이 나타나고, 제8주에는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이 나타나며, 제9주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비로소 나타나고, 제10주에는 소리를 내고 듣는 것이 갖추어지며, 제11주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개통되고, 제12주에는 창자의 마디와 구멍이 생기며, 제13주에는 배고프다거나 목마르다는 생각을 하고, 제14주에는 만 개의 힘줄이 생기며, 제15주에는 팔만 개의 맥이 생기고, 제16주에는 들숨과 날숨이 통하며, 제17주에는 식도가 점점 넓어지고, 제18주와 19주에는 육근이 완전히 갖춰지고, 제20주에는 온몸에 뼈마디가 생기며, 제21주와 제22주와 제23주에는 피·살·피부가 생기고, 제24주와 제25주에는 피·살·피부가 자라며, 제26주에는 털·머리카락·손발톱이 생기고, 제27주에는 좋고 나쁜 모양을 분별하며, 제28주에는 허망하게 여덟 가지 생각을 일으키고, 제29주와 제30주에는 흑업과 백업을 따르며, 제31주에서 제36주까지는 신체의 상호가 완전히 갖춰지고, 제37주에는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제38주에서 만 10개월이 되면 어머니의 산문을 향해 거꾸로 앉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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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凡形體之端正과皮膚之鮮潔과骨骼之淸秀都在於善業之所感이니於三十八箇七日間에有二十九種善業風之所成者也ㅣ오. 骨骼이偏邪고形貌不正等者於三十八箇七日間에有二十九種惡業風之所就者也ㅣ니라.二十九種風名狀詳于胞胎經也 法苑珠林에云三十八箇七日에在母腹中야隨其本行야自然風起나니宿行善者便有香風이可其身意야骨節端正야莫不敬愛고本行惡者則起臭風야不可心意야吹其骨節야偏邪瘻曲야使不端正야人所不喜云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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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형체의 단정함과 피부의 고움과 골격의 수려함은 모두 선업이 초래한 것이며, 38주 사이에 29종의 선업의 바람이 불어 이룬 것이다. 골격이 비틀어지고 형체나 모양이 바르지 못한 것 등은 38주 사이에 29종의 악업의 바람이 불어 이루어진 것이다.29종의 바람 이름과 형상은 『포태경』에 상세히 나온다.
법원주림에서는 38주 동안 어머니 배 속에서 지내는 동안, 전생에 한 행에 따라 저절로 바람이 일어난다. 전생에 선을 행한 자에게는 곧 향기 바람이 일어 그 몸과 뜻을 적합하게 하여 골격과 마디가 단정해서 공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생에 악을 행한 자에게는 곧 악취의 바람이 불어 그 마음과 뜻에 적합하지 않게 하여 그 골격과 마디를 흔들어 비틀고 구부려 단정하지 못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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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之身本은卽汝父母之精血一滴而已也ㅣ니此一滴精血은則非從天地而來며亦非從虛空木石等處而來者ㅣ라. 卽汝父母愛極之所感也ㅣ며亦汝神識之愛極而感蒙其精血者也ㅣ니라. 是父母己三愛之身은卽同心之所發者ㅣ나然이나汝之靈識은非天人之所能與奮也ㅣ라. 汝但隨汝之所作業而輪回六趣라가而報緣遷謝之日에其所捨者惟一滴精血所成就之身也ㅣ니라. 此身에有地水火風四大焉니風火二大先去上升고地水二大仍滯在身이나而其氣未散얀惟冷醜團團的一箇塊兒耳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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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몸뚱이의 근본은 곧 그대 부모 정기와 혈액 한 방울일 뿐이다. 이 한 방울의 정기와 혈액은 천지에서 온 것도 아니고, 또한 허공이나 나무나 돌 등에서 온 것도 아니다. 곧 그대의 부모의 애욕이 극에 달해 초래한 것이며, 또한 너의 신식의 애욕이 극에 달해 그 정기와 혈액을 받아들인 것이다. 부와 모와 자식, 이 세 가지 애욕은 다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너의 신령한 식은 하늘이나 사람이 능히 주거나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다만 지은 업을 따라 육도를 윤회하다가, 과보의 연이 다하는 날에 그대가 버리는 것은, 오직 한 방울의 정기와 혈액으로 이루었던 몸뚱이일 뿐이다. 이 몸뚱이에 지·수·화·풍 사대四大가 있으니, 풍·화 2대가 먼저 떠나 위로 올라가고, 지·수 2대는 몸뚱이에 남아 있게 된다. 그렇지만 기운이 아직 흩어지지는 않았지만, 오직 차갑고 추하여 단단한 하나의 흙덩어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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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후생의 몸을 받는 것에 대한 힐난에 대한 반론(報謝受身難)
問曰凡人이報緣遷謝之時에中陰神識은如何受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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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무릇, 사람이 과보의 인연이 다해 옮겨 갈 때 중음의 신식은 어떻게 몸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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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寶積經에云此神識이從衆生身內야移於彼時에有取有受而住니猶如密蜂이取諸花味야而捨其花고更移別花호或捨惡花고移至好花야坐花上已에樂着彼花야取彼香味라시니惡花者喩惡道也ㅣ오好花者喩善道也ㅣ니라. 又寶積經에云彼識欲移ㅣ猶如睡人이夢見諸事나然이나此識이不咽喉及諸孔而出니其識도亦復如是야不求諸孔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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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보적경에서 이르기를, 이 신식이 중생의 몸 안에서 저쪽으로 옮겨 갈 때에, 취함이 있고 받음이 있어서 머문다. 마치 꿀벌이 꽃에서 맛을 취하고는 그 꽃을 버리고 다시 다른 꽃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 혹 나쁜 꽃을 버리고 좋은 꽃으로 옮겨 가, 꽃 위에 앉아 그 꽃을 좋아해 집착하면서 그 꽃의 향기로운 맛을 취한다고 하였다. 나쁜 꽃은 나쁜 세계를 비유하고, 좋은 꽃은 좋은 세계를 비유한다.
보적경에서 이르기를, 저 식이 옮겨 가려 하는 것이, 마치 잠자는 사람이 꿈에 온갖 일들을 보지만 이 식이 목구멍이나 다른 어떤 구멍으로 나가지는 않는 것과 같다. 이 식 또한 그와 같아 어떤 구멍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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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問諸卵은不破면其識은云何移徙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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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묻는다.
모든 알들은 깨지지 않으면 그 식이 어떻게 옮겨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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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사譬如以瞻婆花로薰麻善熟然後에壓油而言되此是瞻婆花油나然이나彼花香은不從麻邊에求孔而入이라. 因彼花麻ㅣ二和合故로其香이從徙나니此識移卵도亦復如是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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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자면 첨바화를 마麻에 김을 쐬여 그것을 잘 숙성시킨 뒤에 기름을 짜고는 말하기를 이것이 첨바화 기름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 꽃향기는 마에서 구멍을 찾아 거기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저 꽃과 마 두 가지가 화합했기 때문에 그 향기가 옮겨지는 것이다. 이 식이 알로 옮겨 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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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問此識이移徙에善不善業이其事ㅣ云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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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묻는다.
이 식이 옮겨 갈 때 선업과 불선업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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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사猶如種子를擲眞地內야生芽莖葉과乃至花果히或赤或白며或性剛柔니皆業力成熟故ㅣ니라. 又護童眞이問佛호識이捨此身고隨善惡業야遷受餘報이其事如何니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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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종자를 땅속에 심어, 싹이 트고 줄기와 잎이 생기며 나아가 꽃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혹은 붉기도 하고 혹은 희기도 하며, 혹은 본성이 강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것과 같다. 이는 모두 업력이 성숙시켰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또 현호 동진이 부처님께 묻기를, 식이 이 몸뚱이를 버리고 선업 또는 악업을 따라 변화하여 다른 과보를 받는 일은 어떻게 일어납니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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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譬如風大ㅣ出深山谷야入占蔔林면其風이便香고經於糞穢면其風이便臭고若風香臭가俱至면則風香臭ㅣ幷兼이되盛者ㅣ先顯니風大ㅣ無形고香臭도無質이나然이나風持香臭하야遷之於遠니此身이捨識에持善惡業야遷受餘報도亦復如是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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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바람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치자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그 바람이 곧 향기로워지고, 더러운 똥을 스치면 그 바람에서 곧 냄새가 난다. 만약 바람이 향기롭거나 냄새 고약한 것을 함께 쏘이면, 바람에 향기와 악취가 둘 다 있지만 더 성한 것이 먼저 드러난다. 바람은 형체가 없고 향기와 악취도 형질이 없지만, 바람은 향기와 악취를 품고 멀리까지 옮긴다. 이 몸이 식을 버림에, 선하고 악한 업을 지니고 옮겨 가 다른 과보를 받는 것도 이와 같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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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태에 들어가는 순간을 설명해 보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入胎形容難)
問曰此陰을已捨고彼陰을未受之時에中陰亦名中有의入胎形容이如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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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이 오음五陰을 이미 버리고 저 오음을 아직 받지 않았을 때, 중음中陰중유中有라고도 한다.이 태에 들어가는 모양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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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余觀毘婆論니云中陰이入胎之時에母最後血餘一滴과父最後精餘一滴이和合戊就호由其中有ㅣ於父於母에愛二心이展轉現起야若男中有면於母에起愛고於父에起恚야作如是念되若彼丈夫ㅣ離此處者면我當與女人으로交會리라야作是念已에顚倒想이生야見彼丈夫遠此處고尋自見與女人으로和合야父母交會精血出時에便謂父精을是自所有고見已에生喜야而便迷悶니以迷悶故로中有麄重고麄重已에便入母胎니自見己身이在母右脇야向背坐고若女中有면於父에起愛고於母에起恚도亦復如是야在母左脇야向腹坐니諸有情類ㅣ多起如是顚倒想已에而入母胎云爾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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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내가 비바사론을 보니 이르기를, 중음이 태에 들어갈 때에, 어머니의 최후의 남은 혈액 한 방울과 아버지의 최후 정기 한 방울이 만나 어우러지면, 이때에 중유가 아버지에게 또는 어머니에게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두 마음을 점점 더 일으켜 나아간다. 만약 남자의 중유면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리고는 저 남자가 이곳을 떠나면 내가 저 여인과 사랑을 나누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전도된 생각이 일어나, 그 남자가 이곳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아 자신이 여인과 화합한다고 여겨, 부모가 교회하여 정기와 혈액이 흐르면 대뜸 아버지 정기를 자기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여기고 나서는 흥분하여 곧바로 미혹해진다. 미혹해졌기 때문에 중유가 거칠고 무거워진다. 거칠고 무거워진 다음에는 곧바로 어머니 태에 들어가게 된다. 자기 몸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에 자리한 것을 몸소 보고, 등 쪽을 향해 웅크리고 앉는다. 만약 여자 중음이면, 아버지에게 애욕을 일으키고 어머니에게 미움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에 자리하고 배 쪽을 향해 웅크리고 앉는다. 모든 유정의 부류들이 대부분 이처럼 전도된 생각을 일으켜 어머니의 태로 들어간다고 운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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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유정이 몇 종이냐는 힐난에 대한 반론(有情幾種問)
問曰世界有情之類ㅣ有幾種差別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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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세계의 유정은 몇 종류로 차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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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生因이差別無量이나然이나佛이摠束十二類야明之시니一曰卵生이오. 二曰胎生이오. 三曰濕生이오. 四曰化生이오. 五曰有色이오. 六曰無色이오. 七曰有想이오. 八曰無想이오. 九曰非有色이오. 十曰非無色이오. 十一曰非有想이오. 十二曰非無想이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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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이 한량없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모두 열두 종류로 묶어서 설명하셨다. 첫째는 난생이고, 둘째는 태생이며, 셋째는 습생이고, 넷째는 화생이며, 다섯째는 유색이고, 여섯째는 무색이며, 일곱째는 유상이고, 여덟째는 무상이며, 아홉째는 비유색이고, 열째는 비무색이며, 열한째는 비유상이고, 열두째는 비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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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生因差別問)
問曰其生因之差別을可得聞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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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그 태어나는 원인의 차별을 들어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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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楞嚴經에云迷本圓明迷眞야是生虛妄>나니起妄妄性無體>야非有所依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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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능엄경에서 이르기를, 본래의 원만한 밝음을 미혹하여,진여를 미혹함 이것이 허망을 낳으니,망상을 일으킴 허망한 성품은 실체가 없어 의지할 데가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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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생卵生
佛告阿難사由因世界에虛妄指體想也輪廻動顚倒故로想體輕擧故名動轉倒也和合氣成卵以氣交合也八萬四千八萬四千煩惱感變也飛沈亂想想多飛沈니如是故로有卵卵惟想生也羯邏蘿이梵語此云凝滑也胎卵未分之相也流轉國土야魚鳥龜蛇ㅣ其類充塞想多飛沈故感魚鳥飛沈之類也想變爲情故胎生在下也이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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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세계에 허망하게체상을 가리킨다. 윤회하는 움직이는 전도 때문에,망상의 실체가 가볍게 움직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전도’라 한다. 기운과 화합하여알은 기운이 교합한다. 8만 4천 가지8만 4천 번뇌가 감응하여 변한다. 날며 잠기는 어지러운 생각을생각은 뜨고 가라앉음이 많다. 이룬다. 그리하여 알로 낳는알은 생각만으로 생긴다. 갈라람범어다. 중국말로는 응활凝滑이라 한다. 태와 난으로 나뉘기 전 모습이다.이 국토에 흘러 다녀 물고기·새·거북이·뱀과 같은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생각은 뜨거나 가라앉음이 많기 때문에 물고기·새 등의 날거나 가라앉는 종류를 초래한다. 생각이 변해 유정이 되기 때문이다. 아래는 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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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생胎生
由因世界에雜染輪廻欲顚倒故로胎因情有雜染卽情也情生於愛故名欲顚倒和合滋成胎以情交故名和合滋成八萬四千橫竪亂想情有偏正故名橫竪나니如是故로有胎遏蒲曇此云皰卽胎卵漸分之相流轉國土야人畜龍仙이其類充塞情有橫竪亂想故感人畜橫竪之類이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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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추잡함으로 윤회하는 욕애의 전도 때문에,태는 정으로 인해 존재한다. 뒤섞이고 물듦이 곧 정이다. 정은 애에서 생기기 때문에 ‘욕애의 전도’라 한다. 물기와 화합하여태는 정을 주고받음으로써 생긴다. 따라서 물기와 화합하여 이룬다고 하였다. 8만 4천 가지 서서 다니고 기어 다니는 어지러운 생각을생각에 치우치고 바름이 있기 때문에 기어 다니고 서서 다닌다고 하였다. 이룬다. 그리하여 태로 낳는 알포담중국말로는 포皰라 한다. 태와 난이 점차 분리되는 모양이다.이 국토에 유전하여, 사람·짐승·용·신선과 같은 종류가 가득 차 나타난다.정에 가로로 눕고 세로로 서는 어지러운 생각들이 있기 때문에 바로 서는 인간과 기어 다니는 축생의 부류를 초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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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습생濕生
由因世界에執著輪廻趣顚倒故濕以合感執著卽合也合由愛滯觸境超附名趣顚倒로和合煖成濕以陽氣生名和合煖八萬四千飜覆亂想所趣無定名飜覆亂想故感蠢蝡飜覆之類也나니如是故로有濕相蔽尸ㅣ蔽尸云軟肉濕生初相也流轉國土야含蠢蝡動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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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집착하여 윤회하는 가서 붙는 전도 때문에,습은 합함으로 인해 초래된다. 집착이 곧 합함이다. 애정이 접촉한 경계에 머물면 달려가 붙기 때문에 합한다. 따라서 ‘가서 붙는 전도’라 한다. 따뜻함과 화합하여,습은 양기로 인해 생긴다. 따라서 따뜻함과 화합한다고 하였다. 8만 4천 가지 엎어지며 자빠지는 어지러운 생각을 이룬다.취향하는 바가 일정하지 않은 것을 ‘번복하는 어지러운 생각’이라 한다. 따라서 꿈틀거리고 번복하는 부류를 초래하게 된다. 그리하여 습기로 나는 폐시폐시는 부드러운 살이란 뜻이다. 습기에서 생겨난 처음 모습이다.가 국토에 유전하여 우물거리며 쭈물거리며 꿈틀거리는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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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생化生
由因世界에變易輪廻假轉倒故로化以離應變易卽離也離此托彼故名假轉倒和合觸成八萬四千新故亂想觸類而變名和合觸成轉故趣新名新故亂想故感報亦爾也니如是故로有化生羯南云硬肉이流轉國土야轉蛻飛行如蟲爲蝶則轉行爲飛如雀爲蛤則蛻飛爲潛凡以不同形相禪皆轉蛻也이其類充塞自下皆稱羯南者諸類通稱也이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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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변해 바뀌어서 윤회하는 가전도 때문에,화는 벗어남으로 인해 상응한다. 변역이 곧 벗어남이다. 이것을 벗어나 저것에 의탁하기 때문에 ‘가전도’라 한다. 건드림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새롭고 묵은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접촉한 부류로 변하기 때문에 접촉과 화합하여 이룬다고 하였다. 옛것을 바꿔 새것으로 향하는 것을 ‘새롭고 묵은 어지러운 생각’이라 한다. 따라서 감득하는 과보 역시 그렇다. 그리하여 변화하여 생겨난 갈남단단한 살이란 뜻이다.이 국토에 유전하여 허물을 벗고 날아다니는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경우는 기어 다니던 것을 바꿔 날아다니는 것이다. 참새가 대합이 되는 경우는 날아다니던 것을 버리고 잠수하는 것이다. 무릇 다른 형상으로 바뀌는 것은 다 허물을 벗는 것이다. 종류가 꽉 차게 된다.여기에서부터 모두 ‘갈남’이라 칭한 것은 모든 부류의 통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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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색有色
由因世界에留碍輪廻障顚倒故眞性融湛本非留碍亦非光耀由迷滯故成留也和合著成八萬四千精耀亂想昧却其性妄合明著粘湛發光以成精耀休爲三光咎爲慧孛一切精明神物皆精耀也其想已結戈精耀故但有色而已涅槃經云八十神皆因留想元成其精耀此雖至精至神亦未離乎乘彼輪轉顚倒相也나니如是故로有有色羯南이流轉國土야休咎精明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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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걸려 윤회하는 장전도 때문에,참된 성품은 원융하고 맑아서 본래 걸리는 것이 아니고 정밀하게 빛나는 것도 아니다. 미혹하여 머물기 때문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나타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정미롭고 빛나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그 성품을 망각해 버리고는 제멋대로 밝고 분명함과 합한다. 그리하여 맑은 것에 들러붙어 빛을 발함으로써 정밀한 빛을 이룬다. 그 가운데 길한 것은 해·달·별의 세 가지 빛이 되고, 흉한 것은 살별과 혜성이 되니, 일체의 정밀하게 빛나는 신비한 물체들이 모두 정밀하게 빛나는 것들이다. 그 생각이 이미 맺혀 정밀한 빛을 이루었기 때문에 단지 빛깔만 있을 뿐이다. 『열반경』에서 ‘80종류의 신이 모두 걸림이 있는 생각의 근원을 원인으로 하여 그 정밀한 빛을 이룬다’고 하였다. 그것이 비록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신비한 것이긴 하지만 아직은 저 바퀴가 구르는 전도된 형상의 수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빛깔 있는 갈남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길하고 흉한 정미롭고 밝은 종류가 꽉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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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무색無色
由因世界에消散輪廻厭有著空身歸無名消散輪廻也惑顚倒故迷漏無聞名惑顚倒로和合暗成八萬四千陰隱亂想則依晦昧空故和合暗成而名陰隱亂想卽無色外道類也나니如是故로有無色南이此有想無色而不無業體故亦稱南也流轉國土야空散消沈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又有惑業昏重形色消磨體合空昧識附陰隱亦空散消沈之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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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흩어지고 스러져 윤회하는유를 싫어하고 공을 집착해 몸을 소멸시켜 무로 돌아가기에 ‘없애고 흩어 버리며 윤회한다’고 하였다. 혹전도 때문에,미혹의 번뇌가 있는데도 알지 못하기에 ‘혹전도’라 한다. 어두움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가만히 숨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즉 캄캄하고 어두운 허공에 의지하기 때문에 ‘어두움과 화합하여 이룬다’고 하고, ‘그늘지고 은폐된 어지러운 생각들’이라 한 것이다. 곧 무색계의 외도들 종류다. 그리하여 빛깔이 없는 갈남이것은 생각도 없고 빛깔도 없지만 업의 실체가 없지 않기 때문에 또한 ‘갈남’이라 칭한다.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허공에 흩어지며 스러져 숨는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또 미혹의 업이 어둡고 무거운데 형태와 빛깔을 소멸시켜 몸을 허공과 합하고 혼매한 식을 은폐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 역시 허공에 흩어지고 소멸시켜 가라앉는 부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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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유상有想
由因世界에岡象輪廻影顚倒故로和合憶成八萬四千潛結亂想니如是故로有有想南이流轉國土야神鬼精靈이其類充塞이라시니라.虛妄失眞邪着影像無所托陰從憶想生於罔象中潛結貌形其神不明而幽爲鬼精不全而散爲靈無有實色但有想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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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헛꼴로 윤회하는 영전도 때문에 생각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가만히 엉기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이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녀 귀신과 허깨비와 정령의 종류가 꽉 차게 된다.허망이 진실을 잃고는 멋대로 그림자에 붙는다. 그리고는 의탁할 음이 없자 기억으로부터 생각을 일으켜 형상이 없는데도 마음속으로 모양과 형상을 그려 낸다. 그 신이 밝지 못해 어두우면 귀신이 되고, 정이 온전하지 못해 흩어지면 영이 된다. 진실한 빛깔이 없고 생각하는 상태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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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무상無想
由因世界에愚鈍輪廻痴顚倒故로和合頑成八萬四千枯槁亂想니如是故로有無想羯南이流轉國土야精神이化爲木土金石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不了諦理固守愚惑愚鈍之極則痴頑無知精神化爲土木金石無復情想卽枯槁也如劫毘之石燕昭墓之木鄭人緩之栢皆精神之化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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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우둔하게 윤회하는 치전도 때문에 미혹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메마르고 빳빳한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이 없는 갈남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정신이 변화하여 흙이 되며, 나무가 되며 쇠가 되며 돌이 되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진리와 이치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고 미혹함을 굳게 지켜서 그 우둔함이 극에 달하면, 어리석고 미련하고 지혜가 없어서 그 정신이 흙이나 나무나 쇠나 돌로 변해 다시는 느낌과 생각이 없게 된다. 그것이 곧 ‘메마르고 딱딱하다’는 것이다. 겁비라의 돌과 연나라의 소왕 묘의 나무와 정나라 사람 완이 잣나무가 된 것이 모두 정신이 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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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유색非有色
由因世界에相待輪廻僞顚倒故로和合染成八萬四千因依亂想니如是故로有非有色想나有色南이流轉國土야諸水母等이以蝦爲目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水母之類以水沫爲體以蝦爲目本非有色待物成色不能自用待物有用迷失天眞邪著浮僞彼此異質染緣相合故曰因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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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기대어 윤회하는 위전도 때문에 물듦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의지하고 기대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색이나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색이 있는 갈남이 있어 국토에 흘러 다녀, 해파리 같은 것이 새우의 눈을 빌려 보는 종류가 가득 차게 된다.해파리 종류는 물거품으로 몸을 삼고 새우로 눈을 삼는다. 본래 색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물을 상대하면 색을 이루고, 스스로 작용할 수 없지만 사물을 상대하면 작용이 있다. 천연의 진실을 미혹해 잃어버리고 들뜨고 거짓된 것에 멋대로 집착하여 이것과 저것으로 형질이 달라지고 인연에 물들어 서로 합하기 때문에 ‘기대고 의지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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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비무색非無色
由因世界에相引輪廻性顚倒故로和合呪成八萬四千呼召亂想니如是故로有非無色想이나無色南이流轉國土야呪誼厭生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邪業相引使性情顚倒而乘呪托識不由生理妄隨呼召卽世間邪術呪誼精魁厭物物因而有生者不由生理則本目無色感成質非其無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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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끌어내어 윤회하는 성전도 때문에, 주문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불러내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색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색이 없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녀 주문과 저주로 생겨나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삿된 업으로 서로를 이끌어 성정을 전도시키면 주문에 의지하고 식에 의탁해 생리를 따르지 않고 망령되게 부르는 소리에 따르게 된다. 곧 세간에서 사특한 술수로 주문과 저주를 걸거나 도깨비가 사물에 의탁하면 그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생리를 따르지 않는다. 본래 스스로 색이 없는 것이지만 감응하고 나면 형질을 이루니, 색이 없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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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비유상非有想
由因世界에合妄輪廻岡顚倒故로和合異成八萬四千廻互亂想니如是故로有非有想이有想南이流轉國土야彼蒲盧等이異質相成야其類充塞이라시니라.二妄이相合性情罔昧異質相成生理廻互如彼蒲盧本爲桑蟲非有蜂想而成蜂想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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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허망과 합하여 윤회하는 망전도 때문에, 다른 종류와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돌고 도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녀, 저 나나니 같은 것들이 딴 것으로 변화시키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두 가지 허망함이 서로 합해서 성정이 어두우면 서로 다른 형질이 되고 생리가 서로 바뀌게 된다. 마치 저 나나니벌이 본래는 뽕나무 벌레였고, 자신이 벌이라는 생각이 없다가 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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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무상非無想
由因世界에寃害輪廻殺顚倒故로和合怪成八萬四千食父母想니如是故로有非無想이나無想南이流轉國土야如土梟等이附塊爲兒며及破鏡鳥ㅣ以毒樹果로抱爲其子니子成면父母皆遭其食이니其類充塞이라시라.怨害相酬傷殺相反生理怪誕棄倫義故感土鳬之類因土塊毒果成形非無鳥想而本無想 是名衆生의十二種類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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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원한으로 해치며 윤회하는 살전도 때문에, 괴이함과 화합하여 8만 4천 가지 부모를 잡아먹는 어지러운 생각들을 이룬다. 그리하여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 없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다닌다. 올빼미가 흙덩이를 끌어안아 새끼를 만들며, 파경이가 독한 나무 열매를 품어 제 새끼를 까는 것같이, 새끼가 자라서는 부모 모두 잡아먹는 종류가 꽉 차게 된다.원한으로 서로 보복하고 서로 배반해 죽이면서 생리가 괴상하고 윤리와 의리를 끊기 때문에 그 과보로 올빼미 종류가 된다. 흙덩이와 독이 있는 열매로 인해 형체가 이루어지고, 자신이 새라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이를 중생의 열두 종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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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阿難사如是衆生이一一類中에亦各各具十二顚倒니猶如揑目에亂華發生야顚倒妙圓眞淨明心야具足如斯虛妄亂想이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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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또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처럼 중생들이 각 종류마다 열두 가지 전도를 갖추고 있다. 마치 눈을 비비면 어지러운 꽃이 발생하는 것 같아, 오묘하고 원만하고 참되고 청정한 밝은 마음을 전도하여 이처럼 허망한 어지러운 생각들을 갖추게 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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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세계가 일어난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世界原因問)
問曰世界起始原因을可得聞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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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세계가 시작된 원인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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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余嘗讀楞嚴經할有富樓那ㅣ問天中天사世尊아若復世間一切根眼耳鼻舌身意六根等也色聲香味觸法六塵色受想行識五陰十二處十八界等이皆如來藏如來藏者出纒法身藏如來者在纒法身淸淨本然컨云何로忽生山河大地며諸有爲相이儒家所謂三才萬物也次第遷流야終而復始니잇고言淸淨則宜無諸相言本然則宜無遷流又如來說云地水火風이本性圓融야周遍法界야湛然常住라시니世尊아若地性이遍인云何容水며水性이周인火則不生리니復云何明水火二性이俱虛空야不相陵滅이니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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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내가 일찍이 능엄경을 읽은 적이 있는데, 부루나가 천중천께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또 세간의 일체 근根안·이·비·설·신·의 등의 육근과 진塵색·성·향·미·촉·법의 육진과 음陰색·수·상·행·식의 오음과 처處십이처와 계界십팔계 등이 모두 여래장如來藏여래장이란 번뇌를 벗어난 법신이고, 장여래藏如來란 번뇌 속에 있는 법신의 청정한 본래 그러함이라면 어찌 갑자기 산과 강과 대지가 생겼으며, 어찌 모든 유위의 모양이유가에서 말하는 천·지·인 삼재 만물 차례로 흘러나와 끝났다가는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까?청정하다고 말하려면 여러 모양이 없어야 하고, 본래 그러함이라고 말하려면 변함이 없어야 한다.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수·화·풍은 본성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하고 담담하게 상주한다고 하셨으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하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겠습니까? 물의 성품이 두루하다면 불은 생기지 못할 것입니다. 또다시 물과 불이라는 두 성품이 허공에 모두 두루하여 서로가 서로를 능멸하지 않음을 어찌 밝힐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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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아, 地性은障고空性은虛通커니云何二俱周遍法界니엇고? 而我不知是義攸往노니唯願如來宣流大慈사開我迷雲소셔. 及諸大衆과作是語已고五體投地야欽渴如來의無上慈誨옵더니,彼意以性相相違理事相實常情疑滯故爲致問庶護決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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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흙의 성품은 장애하는 것이고, 허공의 성품은 텅 비어 통하는 것인데, 어떻게 두 가지가 함께 법계에 두루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뜻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여래께서 대자비를 널리 베풀어 저와 나아가 여러 대중들의 미혹 구름을 걷어 주소서라고 하였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오체를 땅에 던지며 여래의 위없는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갈구하였다.그의 생각에 (부처님 말씀은) 성품과 모양이 서로 어긋나고, 이치와 현상이 서로 장애되며, 실로 상식적 마음으로는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드려 널리 보호하여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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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富樓那사如汝所說야淸淨本然인云何忽生山河大地오니汝常不聞가? 如來宣說호되性覺이妙明며本覺이明妙라니라.能性一切曰性覺性覺之妙顯乎明卽自體而出現於萬法者也性之所本曰本覺本覺之明藏乎妙卽自用而反冥於一眞者也了斯二義則體用一覺物我一妙無諸相之異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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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말대로 본래 청정인데, 왜 갑자기 산하대지가 생겼냐고 했는데, 그대는 항상 듣지 않았더냐? 여래가 널리 설하기를, 성각性覺은 오묘하면서 밝고, 본각本覺은 밝으면서 오묘하다 하였다고 하셨다.모든 것의 성품이 되어 주기 때문에 ‘성각’이라 한다. ‘성각’의 오묘함은 밝음에서 드러나니, 즉 자신의 체體에 즉하여 만법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성품의 근본을 ‘본각’이라 한다. ‘본각’의 밝음은 오묘함에 감춰져 있으니, 즉 자신의 용用에 즉하여 하나인 진여로 돌아가 완전하게 계합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치를 깨달으면 체와 용이 같은 깨침이고, 만물과 내가 같은 오묘함이라서, 어떤 형상의 차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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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樓那言호唯然이다, 世尊아, 我常聞佛宣說斯義로이다. 佛言汝稱覺明은爲復性覺性也本自明也을稱名爲覺가爲覺不明을稱爲明覺가?爲此性本自明靈然不昧故稱之爲覺耶爲復性自不明用心覺之故稱爲明覺本自明者眞覺也用心覺之者妄覺也 富樓那言호若此不明을名爲覺者인則無所明이니다.以性明爲覺不以不明爲覺故曰若此不明則無所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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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그런 이치를 널리 설하시는 것을 항상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깨달음은 밝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성품깨달음의 성품의 밝음본래 스스로의 밝음을 지칭하여 깨달음이라고 한 것인가, 아니면 밝지 못함을 깨닫는 것을 지칭하여 밝은 깨달음이라 한 것인가?라고 하셨다.이 성품은 본래 스스로 밝고 신령스러워 어둡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깨달음이라 칭한 것인가, 아니면 성품이 스스로 밝지 못한데 마음을 써서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밝은 깨달음이라 칭한 것인가? 본래 스스로 밝다는 것은 참된 깨달음이고, 마음을 써서 그것을 깨닫는 것은 망령된 깨달음이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밝지 못한 것을 깨달음이라 한다면 밝힐 대상이 없게 됩니다라고 했다.성품의 밝음을 깨달음이라 칭하는 것이지 밝지 않음을 깨달음이라 칭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이 밝지 않다면 밝혀야 할 대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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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言若無所明면則無明覺리라.明覺者能妄也明覺之妄由所明起所者境也有所면境也非覺非性覺妙明本覺明妙也이오無所면非明이니照了諸相故無所非明終非妙明明妙之眞也無明이면又非覺湛性이니라.若果非明不得謂之覺湛明性當知有所無所是明非明皆爲妄度終非妙明明妙之眞也 性覺이必明야前云性覺妙明此云性覺必明者湛然寂照曰妙明强生了知曰必明妙明則眞必明則妄也謂業相也妄爲明覺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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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대상이 없다면 밝은 깨달음도 없을 것이다.밝은 깨달음이란 주체의 허망함이다. 밝은 깨달음이라는 허망함은 밝히는 대상으로 인해 일어난다. 대상이란 경계이다. 대상경계를 말한다.이 있다면 깨달음이 아니고,(여기서 말하는 깨달음은) 성각의 미묘한 밝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본각의 밝은 오묘함을 말한다. 대상 경계가 없다면 밝음이 아니니,모든 형상을 비추어 알아차리기 때문에 대상 경계가 없으면 밝음이 아니어서, 결코 오묘하면서 밝고 밝으면서 오묘한 진여는 아니다. 밝음이 없다면 또 깨달음의 담연한 성품이 아니다.만약 과연 밝음이 아니라면 깨달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라 할 수 없다. 마땅히 알라. 대상이 있다느니 대상이 없다느니, 밝음이니 밝지 않음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망령된 헤아림이다. 끝내 오묘하면서 밝고 밝으면서 오묘한 진여는 아니다. 성각性覺을 기필코 밝히면앞에서는 ‘성각은 오묘하면서 밝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성각은 반드시 밝다’고 하였다. 담연하면서 고요히 비추는 것을 ‘오묘하면서 밝다’고 하고, 억지로 확실한 앎을 일으키는 것을 ‘기필코 밝힘’이라고 한다. 오묘하면서 밝다고 하는 것은 진실이고, 기필코 밝히려 들면 허망하다. 이것은 업상業相이라 한다. 망령되게 밝은 깨달음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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覺非所明이어眞覺本無能所因明立所니因必明故妄見有所所妄이旣立면生汝能妄야無同異中에熾然成異니라.能所旣立心境互分故無同異中熾然成異卽轉相也 異彼所異야以彼熾然之異爲異轉相也因異立同며同異發明야復因異相立同因此復立無同無異야又因其有同有異故復立無同無異也如是擾亂야相待生勞야勞久發塵야自相渾濁니一眞體中本無是事皆由能所對待妄立以擾發情塵遂使妙明斯渾妙湛斯濁晦昧空色自此兆卽現相也上三屬根本煩惱下起六卽枝葉也由是야引起塵勞煩惱니라.由三細而引起也染汚爲塵擾動爲勞憂煎爲煩迷亂爲惱卽智及相屬執取計名四之摠相自下世界相續衆生相續卽業相也業果相續卽業繫苦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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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밝힐 대상이 아닌데참된 깨달음에는 본래 주체와 대상이 없다. 밝음을 인하여 (밝힐) 대상을 세우니,기필코 밝히려고 하기 때문에 밝힐 대상이 있다고 허망한 견해를 일으킨다. 망령된 대상이 성립되고 나면 너라는 망령된 주체가 생겨,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치열하게 다름을 이루게 된다.주체와 대상이 성립되고 나면 마음과 경계가 서로 나뉘기 때문에,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왕성하게 ‘다름’을 이루게 되니, 즉 전상轉相이다.다름과 다르면저 왕성한 다름으로 다름을 삼는다. 전상이다.다름을 바탕으로 같음을 세워 같음과 다름이 분명하게 드러나,다시 ‘다름’이라는 형상으로 인하여 ‘같음’을 세운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을 세운다.또 다시 같음이 있고 다름이 있어서,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혼란스러워져서 서로 대대待對해 가면서 수고로움이 생기고, 수고로움이 오래되다 보면 번뇌를 일으켜 (진여의) 본모습이 혼탁해지고,하나의 참된 본체 가운데는 본래 이런 일이 없다. 이는 모두 주체와 대상이 서로 대대待對하여 망령되게 수립됨으로 말미암아 정과 진이 어지럽게 일어나 결국 오묘한 밝음을 이렇게 어둡게 하고 오묘한 맑음을 이렇게 흐리게 한 것이다. 캄캄한 어둠과 허공과 색이 이로부터 시작된다.즉 현상現相이다. 위의 세 가지는 근본 번뇌에 속하고, 이하에서 일어나는 육추六麤는 곧 지말 번뇌이다. 이로 말미암아 무수한 번뇌를 이끌어 일으킨다.삼세三細로 말미암아 (이하의 육추가) 발생된다. 오염은 티끌이 되고, 요란한 움직임은 애씀이 되고, 근심으로 애태우는 것은 번민이 되고, 헷갈리고 혼란스러운 것은 고뇌가 된다. 이것은 곧 지상·상속상·집취상·계명자상의 네 가지 거친 번뇌의 총상總相이다. 이하는 세계가 상속하고 중생이 상속하는 것으로 즉 기업상起業相이다. 업의 과보가 상속되는 것은 즉 업계고상業繫苦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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起爲世界고妄覺動則勞擾發塵故起爲世界業相也靜成虛空니妄覺伏則頑然冥漠故靜成虛空卽轉相也虛空爲同이오法界一空日同世界爲異니情器萬殊日異彼無同異ㅣ眞有爲法이니라.此乃於同異中熾然成異故曰彼無同異眞有爲法此摠明此下別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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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면 세계가 되고망령된 깨달음이 움직이면 소란스럽게 티끌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일어나면 세계가 된다’고 하였다. 곧 업상業相이다. 고요하면 허공을 이루며,망령된 깨달음이 잠복하면 멍청하며 어둡고 막막하다. 따라서 ‘고요하면 허공을 이룬다’고 하였다. 곧 전상轉相이다. 허공은 같음이 되고법계가 한결같이 공한 것을 ‘같음’이라고 한다. 세계는 다름이 되니,중생세간과 기세간이 만 가지로 다른 것을 두고 ‘다름’이라 한다.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된 유위법이다.이것이 바로 ‘같음’과 ‘다름’ 가운데서 치열하게 다름을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 같음, 다름이 없는 것이 참된 유위법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상은 (세계의 시초와 중생의 시초를) 총체적으로 밝힌 것이고, 이하는 구별해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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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세계가 일어난 시초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世界起始)
覺의明과空의昧가相待成搖故로有風輪이執持世界니라. 因空生搖야堅明立碍니彼金寶者明覺이立堅故로有金輪이保持國土니라. 堅覺寶成며搖明風出야風金이相摩故로有火光이爲變化性나니라. 寶明이生潤며火光이上蒸故로有水輪이含十方界니라. 火騰水降야交發立堅야濕爲巨海고乾爲洲潬니以是義故로彼大海中에火光이常起고彼洲潬中에江河常注니라. 水勢劣火야結爲高山니山石이擊則成燄고融則成水며土勢劣水야抽爲草木니是故로林藪이遇燒면成土고因絞야成水나니라. 交妄發生야遞相爲種나니以是因緣으로世界相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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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움이 서로 대대待對하여 요동하기 때문에 풍륜風輪이 있게 되어 세계를 지탱한다. 허공이 요동함으로 인해 밝음이 굳어져 장애를 이룬다. 저 보배 금속들은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금륜金輪이 있게 되어 국토를 보호하고 지탱한다. 깨달음이 굳어져 보배가 형성되고 밝음을 뒤흔들어 바람이 일어나 바람과 금속이 서로 마찰하기 때문에 불빛이 있어 변화시키는 성품이 된다. 보배의 밝음이 축축함을 낳으면 불빛이 증기를 위로 올려 보내기 때문에 수륜이 있게 되어 시방세계를 머금게 된다.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오며 서로서로를 굳어지게 하는 작용을 일으켜, 축축한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메마른 곳은 대륙이 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저 큰 바다 한가운데서 불빛이 항상 일어나고 저 대륙 한가운데서 강과 시내가 항상 흐른다. 물의 세력이 불보다 약하면 맺혀서 높은 산이 된다. 산의 돌들이 부딪치면 불꽃이 일어나고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다. 흙의 세력이 물보다 약하면 뻗어 나와 풀과 나무가 된다. 이런 까닭에 숲과 늪이 타 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되는 것이다. 상호 관계하면서 망령됨이 발생해 서로에게 종자가 되니, 이런 인연으로 세계가 상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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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抵最淸淨大圓覺性은本無無極太極之名며亦無三才與萬物之相야通是一眞法界大光明藏而已也ㅣ라. 無明無暗며無大無小며無凡無聖야無色受想行識며亦無無色受想行識者며無眼耳鼻舌身意며亦無無眼耳鼻舌身意者며無色聲香味觸法며亦無無色聲香味觸法者야不生不滅며不增不減며無任麽說者며亦無無任麽說者니正所謂恁麽也不得며不恁麽也不得며恁麽不恁麽摠不得者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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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가장 청정하고 크고 완전한 각성覺性에는 본래 무극과 태극이라는 명칭도 없고, 또한 (천·지·인) 삼재三才와 만물의 형상이 없으니, 전체가 바로 하나의 참된 법계이고 대광명장일 뿐이다. 밝음도 없고 어둠도 없으며, 큼도 없고 작음도 없으며, 범부도 없고 성인도 없다. 색·수·상·행·식도 없고 색·수·상·행·식이 없음도 없으며,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안·이·비·설·신·의가 없음도 없으며,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색·성·향·미·촉·법이 없음도 없다. 그래서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이렇다고 설명할 것이 없고 이렇다고 설명할 것이 없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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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이나於奈何他不得處에飜身一擲면一生能事了畢리니可謂孤輪獨照江山靜니自笑一聲天地驚이로다. 然이나世界衆生之原因을略陳管見야葛藤少許리라. 自三才로以至於萬物虛空히共是一源也ㅣ라. 原因於最淸淨大覺性海야强生了知야忽起妄明故로由此야迷本源覺性妙明明妙元眞者也ㅣ니라. 强生了知之妄而必明故로於是乎空覺이遂分니空是頑空이오覺是妄覺也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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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을 두고 소위 이래도 안 되고, 이러지 않아도 안 되고, 이러건 이러지 않건 모두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자리에서 몸을 한번 크게 뒤집어야 일생에 해야 할 일을 끝마칠 것이니, 이래야만 가히 오롯한 달이 홀로 비추어 강산이 고요하니, 절로 터지는 한바탕 웃음소리에 천지가 놀란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와 중생이 생기게 된 원인을 간략한 관견이나마 진술해야, 언어로 설명하는 행위를 약간이나마 허용할 수 있다.
삼재三才로부터 만물과 허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바로 하나의 근원이다. 가장 청정하고 크고 완전한 각성의 바다를 원인으로 하여, 억지로 확실한 앎을 일으켜 홀연히 허망한 밝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본원인 각성의 오묘하면서 밝고 밝으면서 오묘한 근본 진여를 미혹하게 된다. 확실한 앎이라는 허망함을 억지로 일으켜, 기필코 밝히려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허공과 깨달음이 나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허공은 완공頑空이고 깨달음은 망령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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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器二界ㅣ遂因迷頑妄想安立故로妄想이凝結則成無情國土고妄識이知覺則成有情衆生이니라. 又妄覺이動則勞擾發塵故로起爲世界고妄覺이伏則頑然冥漠故로靜成虛空니此正是世界衆生의迷本源覺性之原因也ㅣ니라. 大覺性海中에本絶空有언마由迷風飄鼓야妄發空漚故로云有漏微塵國이皆依空所生이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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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육근六根과 (육근이 대상으로 삼는) 경계(器)의 두 세계는 마침내 미혹하고 무지한 망상으로 인하여 수립된 것이기 때문에, 망상이 응결하면 무정의 국토를 이루고, 망식이 지각 작용을 일으켜 유정의 중생을 이룬다. 또 망령된 깨달음이 요동하면 요란하게 티끌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망령된 깨달음이 잠복하면 흐리멍텅하게 캄캄하고 막막하기 때문에 그것이 고요하면 허공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와 중생이 본래 근원인 깨달음의 성품을 미혹하는 원인이다. 커다란 성품 바다에는 본래 공과 유가 끊어졌지만, 미혹의 바람이 휘몰아침으로 인해 공한 거품을 망령되게 발생시킨다. 그래서 먼지처럼 수많은 유루의 국토가 모두가 공을 의지해 생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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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環이云萬法이自五行으로變化고五行은由妄覺야發生故로世界起始ㅣ肇於覺明야而依乎風金水火야以生成萬物也ㅣ라니라. 覺明이發識야爲一六水며由妄明야遂有昧空故로空味結已야爲五十土며明六水와昧五土ㅣ相待야妄知搖動故로生三八木男女而爲木爲風야成風輪니厚二十六萬由旬由旬梵語也以東方里數計之則大由旬爲八十里中由旬爲六十里小由旬爲四十里也이오廣則無邊니라. 何者오? 覺性이無邊故로虛空도亦無邊며虛空이無邊故로風輪도亦無邊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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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의 이 부분을 주석한 송나라) 계환 스님이 말하기를, 만법이 오행五行으로부터 변화하고, 오행은 망령된 깨달음을 말미암아 발생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기원은 깨달음이라는 밝음에서 시작하여 풍·금·수·화를 의지하여 만물을 생성한다고 하였다. 깨달음이라는 밝음이 식을 일으켜 1·6 수水가 되며, 망령된 밝음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어두운 공이 생기기 때문에 어두운 공이 응결되고 나서는 5·10 토土가 되며, 밝은 6 수水와 어두운 5 토土가 서로 대대待對하여 망령된 앎이 요동하기 때문에 3·8 목木의 남녀를 낳아 나무가 되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여 풍륜을 이루는데, 그 두께가 26만 유순이고유순은 범어다. 동방의 단위인 리里로 계산하면 대유순은 80리고, 중유순은 60리고, 소유순은 40리이다. 넓이는 끝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깨달음의 성품이 끝이 없기 때문에 허공 또한 끝이 없으며, 허공이 끝이 없기 때문에 풍륜 역시 끝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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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노니何故로世界ㅣ爲最下風輪의所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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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무슨 까닭으로 풍륜風輪이 세계를 가장 아래쪽에서 지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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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前에不云乎아? 覺明이發識이어던妄識이搖動故로云動轉이是風也ㅣ니라. 然則非但世界만爲風輪之所持라以至於蠢動含識히皆由風力之所持也ㅣ니라. 而若曰人이非風力의所持라면則當無有屈身運手動作之理리니餘例可知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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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깨달음이라는 밝음이 식識을 일으키면 허망한 식이 요동하기 때문에 동전動轉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풍이다. 그렇다면 단지 세계만 풍륜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굼틀거리며 움직이는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람의 힘으로 지탱된다. 만약 사람은 풍력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마땅히 몸을 굽히고 손을 움직이며 동작할 이치도 없어야 한다. 나머지는 이 예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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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因空昧十土와搖風三木야生堅明四九金니其金輪厚三洛沙二萬由旬이오廣則無邊니라. 又因搖風八木과堅明九金야生變化二七火며又因寶明四金과火光七火야生一六水니其水輪厚六十萬由旬이오廣則無邊야含十方니라. 又因火騰二火와水降七火야生空昧五十土니其土輪厚四十八萬由旬이오廣則無邊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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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허공의 어둠인 10 토土와 요동치는 바람과 3 목木으로 인하여 단단한 밝음인 4·9 금金이 생기는데, 그 금륜의 두께는 3낙사洛沙 2만 유순이고 너비는 끝이 없다. 또 요동치는 바람인 8 목木과 견고한 밝음인 9 금金으로 인하여 2·7 화火로 변화가 일어난다. 또 보배로운 밝음인 4 금金과 불빛인 7 화火로 인하여 1·6 수水가 생기는데, 그 수륜의 두께는 60만 유순이고 너비는 끝이 없어 시방세계를 머금는다. 또 불과 함께 올라가는 2 화火와 물과 함께 내려오는 7 화火로 인하여 허공의 어둠인 5·10 토土가 생기는데, 그 토륜의 두께는 48만 유순이고 너비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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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戒環意로觀之컨明昧相傾야不覺心動故로成風고因空昧의動念며覺明의堅執야而立礙感金니大地ㅣ最下에依金輪而起也ㅣ니라. 因堅覺과妄搖ㅣ觸起煩惱야而感火니內外二界ㅣ革生爲熟며化有爲無ㅣ皆火大의所變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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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주석한) 계환 스님의 뜻으로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밝음과 어둠이 서로에게 기대어, 깨닫지 못한 마음이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을 이루며, 허공의 어둠이 생각을 움직이고 깨달음의 밝음이 집착을 견고하게 하여, 장애를 만들어 금을 만든다. 금륜에 의지해서 대지가 맨 밑에 생긴다. 견고한 깨달음망령된 요동이 서로 부딪쳐 번뇌를 일으킴으로 인해 화를 만든다. 안팎의 두 세계가 엎치락뒤치락 성숙하면서 유로 변화하고 무가 되는 것이 모두 화대火大가 변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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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堅覺야生識고而蒸以煩惱야積情發愛야而感水也ㅣ니世界ㅣ居大海內故로曰含十方界ㅣ라니라. 妄覺이煩起며妄識이橫流야交結立礙야而感土也ㅣ니地性이堅礙故로曰立堅이라시니其高爲山이오其深爲海ㅣ皆土也ㅣ니라. 水阜曰洲ㅣ오沙汀曰潬이니諸皆肇於妄覺야感於五行故曰交妄發生야遞相爲種也ㅣ니라. 土水ㅣ生木고木土ㅣ生金고金木이生火고火金이生水고水火生土云云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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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깨달음이 식을 낳고 번뇌로 이를 뜨겁게 하여 망정妄情을 쌓고 애愛를 일으키기 때문에 수가 만들어진다. 세계가 큰 바다 안에 있기 때문에 시방세계를 머금는다고 하였다. 망령된 깨달음이 번다하게 일어나고 망령된 식이 이리저리 흐르면서 교대로 맺혀 장애를 만들면 토가 만들어지니, 땅의 성품이 견고하고 장애가 되기 때문에 견고함이 성립된다고 하였다. 그 가운데 높은 것은 산이 되고, 그 가운데 깊은 것은 바다가 되는데, 그것이 모두 토이다. 물가의 언덕을 주洲라 하고, 모래섬을 단潬이라 한다. 모든 것이 망령된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오행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교대로 망령됨이 발생해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된다고 한 것이다. 토와 수가 목을 낳고, 목과 토가 금을 낳고, 금과 목이 화를 낳고, 화와 금이 수를 낳고, 수와 화가 토를 낳고,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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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云호土由水火之所生이若子受父母氣分故로海中에火起고潬中에水注也ㅣ니라. 五行은以我剋으로爲妻니夫劣然後에陰陽和而生子故로水劣火야爲山고土劣水야爲木니焰融은明水火氣分고燒絞明土水氣分也ㅣ니此世界相續之由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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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말하였다.
토가 수와 화로 인해 생기는 것이 자식이 부모의 기운을 받는 것과 같다. 따라서 바다 한가운데서 불이 일어나고 대륙 한가운데 물이 흐른다고 한 것이다. 오행에서는 내가 능한 것으로 아내를 삼고, 남편의 세력이 약해진 뒤에야 음양이 화합하여 자식을 낳는다. 따라서 물의 세력이 불보다 약하면 산이 되고, 흙의 세력이 물보다 약하면 나무가 되는 것이다. (산의 돌들이) 불꽃이 튀고 녹는 것은 물과 불의 기운을 밝힌 것이고, (숲과 늪이) 타고 쥐어 짜이는 것은 물과 흙의 기운을 밝힌 것이다. 이것이 세계가 상속하는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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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庵이云此下五輪은卽起世界之最初深隱者ㅣ라. 不可以現在橫列四方之五行으로爲例也ㅣ라며又云若華嚴之能持風輪과所持香海云云則越此金火二輪而言이니以香海卽此水輪이오花上輪圍山은卽此土輪云爾니라. 橫列五行者는大同周易先後天八卦故로不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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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의 묵암 최눌 스님이 이르기를, 이 아래에 나오는 오륜은 세계를 발생시킨 최초의 깊고도 은밀한 내용이어서, 현재 가로 늘어놓는 오행의 설로 예를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화엄경소에서 말한 능히 지탱하는 풍륜과 그것에 의해 지탱되는 향수해 운운하는 것은 이곳에서 말하는 금과 화 2륜을 뛰어넘어서 한 말이다. 향수해는 즉 이곳에서 말하는 수륜이고, 꽃 위에 펼쳐진 윤산輪山들은 즉 이곳에서 말하는 토륜土輪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로로 늘어놓는 오행설에 대해서는 주역에서 말한 선천팔괘와 후천팔괘와 거의 같기 때문에 더 이상 기록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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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중생의 기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衆生起始問)
問曰世界相續之理已聞命이어니와願聞衆生起始之緣起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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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세계가 상속하는 이치는 이미 들어 간직했는데, 중생이 시작된 연기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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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旣會得世界原因이면則便明衆生相續리라. 然이나有問에不可無答일說葛藤一上리라. 佛告富樓那사明妄은指堅明明覺搖明之妄無他特覺明妄爲咎耳非他라覺明이爲咎니所妄이旣立면明理不踰할眞明妙理本無能所元一圓融淸淨寶覺由所妄旣立遂成隔礙故明理不踰也以是因緣으로聽不出聲며見不超色야色香味觸六妄이成就나니由是로分開見聞覺知야同業은相纒고合離成化니라.以明理不踰故聽見六根於是妄局色香六塵於是妄染覺知六識於是妄分根識塵三爲業性故發起妄業於是同業相纒合離成化此六道四生之始也同業卽胎卵類因父母己三者業同故相纒而有生合離卽濕化類不因父母但由已業或合濕而成形卽蠢動也或離異而托化如天獄鬼等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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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세계의 원인을 이미 이해했다면 곧 중생이 상속하는 이치도 알 것이다. 하지만 질문이 있는데 답이 없을 수 없으니,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겠다.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밝음의 망령됨은견고한 밝음을 가리킨다. ‘밝은 깨달음’과 ‘요동치는 깨달음’ 모두 망령됨에 있어서는 다를 게 없다. 특별한 것은 ‘깨달음은 밝다’고 여긴 망상이 저지른 잘못일 뿐이다. 다른 것이 아니니, 깨달음의 밝음이 저지른 잘못이다. 망령된 대상 경계가 성립되고 나면 밝은 이치가 이를 뛰어넘지 못한다.참된 밝음의 오묘한 이치는 본래 능소가 없어, 근원적이며 하나이며 원융하며 청정하며 보배로운 깨달음이다. 망령된 대상 경계가 이미 성립되었기 때문에 간격과 장애가 생긴다. 그래서 ‘밝은 이치’가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런 인연으로 들음은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봄은 빛깔을 뛰어넘지 못하며, (나아가) 빛깔·향기·맛·감촉 등의 여섯 가지 망령됨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보고·듣고·느끼고·앎이 나뉘어져 같은 업끼리 서로 얽히거나 합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변화하게 된다.‘밝은 이치’가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보고 듣는 여섯 가지 감관이 이에 망령되게 자리를 잡고, 빛깔과 향기 등의 여섯 가지 티끌이 이에 망령되게 오염시키고, 느끼고 아는 여섯 가지 식이 이에 망령되게 분별한다. 이 여섯 감관과 여섯 대상과 여섯 식이라는 세 가지가 업의 성품이 되기 때문에 망령된 업을 일으킨다. 여기에서 같은 업끼리 서로 얽히거나 합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변화를 이루니, 이것이 육도사생六道四生의 시초이다. ‘같은 업’이란 곧 태생과 난생을 말한다. 그들은 아버지·어머니·나라는 세 사람의 업이 같기 때문에 서로 얽혀서 태어나게 된다. ‘합하거나 떨어진다’는 것은 곧 습생과 화생 종류를 말한다. 그들은 부모를 원인으로 삼지 않고 다만 자신의 업으로 인해 태어난다. 어떤 것들은 습기와 합해 형상을 이루니 즉 꿈틀거리는 벌레 종류이고, 어떤 것들은 기존의 몸을 떠나 다른 것에 의탁해 나타나니 즉 하늘·지옥·귀신 등의 종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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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明야色發고明見想成나니異見은成憎고同想은成愛야流愛爲種며納想爲胎야交遘發生며吸引同業故로有因緣이生羯羅藍과遏蒲曇等니胎卵濕化ㅣ隨其所應야卵惟想生고胎因情有고濕以合感고化以離應니情想合離ㅣ更相變易야所有受業이逐其飛沈니以是因緣으로衆生이相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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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見)가 밝으면 빛깔이 발생하고, 견해(見)를 밝히려 하면 생각이 성립된다. 견해(見)가 다르면 증오를 낳고, 생각이 같으면 사랑을 낳는다. 흘러넘치는 사랑이 종자가 되며, 받아들인 생각이 태가 되어 서로 어우러져 발생하며, 같은 업끼리 끌어들인다. 따라서 이런 인연으로 갈라람알포담 등이 생기게 된다. 태생·난생·습생·화생은 그들이 응하는 바를 따르니, 난생은 오직 생각만으로 생겨나고, 태생은 욕정으로 인해 존재하며, 습생은 합하여 생겨나고, 화생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 감응한다. 그렇게 욕정과 생각과 합함과 떨어져 감응함으로 서로 변화하고 바뀌면서 받아야 할 업 또한 그것을 좇아 떴다 가라앉았다 하니, 이런 인연으로 중생이 상속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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妄見所明야而顯發妄色할曰見明야色發이니此由心야生境也ㅣ오. 因明起見고而因見生想할曰明見想成니此由境야生情也ㅣ며, 見異면則境違할故로成憎고想同則心順故로成愛니라. 三愛交注曰流ㅣ오三想相投曰納이라愛爲輪回根本일故로流愛爲種고想爲傳命之媒故로納想成體胎니藉交遘而發生며由同業而吸引니此受生托質之始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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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야 할 대상(所明)이 있다는 망령된 견해를 발동시켜 망령된 색色을 발현시키기 때문에, 견해(見)를 밝히려 하면 색色이 발생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마음으로부터 경계가 생기는 것이다. 한편, 밝음으로 인하여 견해(見)를 일으키고, 견해로 인하여 생각을 내기 때문에, 견해를 밝히려 하면 생각이 성립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경계로부터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견해가 다르면 경계가 어긋나기 때문에 증오를 이루고, 생각이 같으면 마음이 순종하기 때문에 사랑을 이룬다. 셋의 사랑이 얽히고설켜 쏟아지기에 흘러넘친다고 하였고, 셋의 생각이 서로 투합하기에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사랑은 윤회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흘러넘치는 사랑이 종자가 되고, 생각은 생명을 전하는 매개가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생각이 태가 되는 것이다. 서로 어우러짐을 바탕으로 발생하며 같은 업으로 말미암아 끌어들이니, 이것이 생명을 받아 형질에 의탁하는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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胎中五位ㅣ七日一變나니羯羅藍은此云凝滑이니初七日之相也ㅣ오. 遏蒲曇은云皰니二七日之相也ㅣ오. 敞尸云軟肉이니三七日之相也ㅣ오. 羯南은云硬肉이니四七日之相也ㅣ오. 鉢羅奢佉云形位니五七日之相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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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에서는 다섯 층위가 있어, 7일마다 한 번씩 변화한다. 갈라람은 한자로 응활凝滑이니 제1주의 상태다. 알포담은 한자로 포皰라 하니 제2주의 상태다. 폐시는 한자로 연육軟肉이라 하니 제3주의 상태이다. 갈남은 한자로 경육硬肉이니 제4주의 상태이다. 발라사가는 한자로 형위形位라 하니 제5주의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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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生之類卵은應於想고胎應於情고濕은應於合고化應於離故로曰隨其所應也ㅣ니라. 亂思曰想이오. 結愛曰情이오. 氣附曰合이니合濕而生也ㅣ오. 形遁曰離니離此生彼也ㅣ라. 情想合離有生이皆具니此以多分으로言耳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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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의 종류 가운데 난생은 생각으로 짝짓기 하고, 태생은 욕정으로 짝짓기 하고, 습생은 합함으로 짝짓기 하고, 화생은 떨어져서도 짝짓기 하기 때문에, 그들이 응하는 바를 따른다고 하였다. 어지러운 생각(亂思)을 생각(想)이라 하고, 사랑에 얽히는 것을 욕정이라 한다. 기운이 붙는 것을 합함이라 하니 습기와 합하여 생기는 것이다. 형체를 숨기는 것을 떨어짐이라 하니, 여기서 떠나 저기에 생기는 것이다. 욕정·생각·합함·떨어짐은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모두가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는 두드러진 부분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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卵生이居首者想念初動커던情愛後起며又兼胎濕化故也ㅣ니라. 此文論想은乃內分染想이오非外分淨想이며論化乃轉蛻業化ㅣ오非意生妙化也ㅣ니라.佛有隨意生妙化身故云也情想合離更相變易者或情變爲想며合變爲離야無定業也ㅣ오. 卵易爲胎며濕易爲化야無定質也ㅣ니라. 故로所隨業報ㅣ或升或沈야無定趣也ㅣ니此衆生相續之由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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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을 첫머리에 둔 것은 상념이 최초로 움직이고 애정이 뒤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며, 또 태생·습생·화생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단에서 논한 생각은 바로 내부의 오염된 생각(染想)을 말한 것이지, 외부의 깨끗한 생각(淨想)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 문단에서 논한 화생은 바로 허물을 벗어 업으로 화생하는 것을 말한 것이지, 의지대로 태어나는 오묘한 화생을 말한 것은 아니다.부처님께서는 의지대로 오묘하게 화현하는 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욕정과 생각과 합함과 떨어짐이 서로 변화하고 바뀐다는 것은 욕정이 변하여 생각이 되기도 하고, 합함이 변하여 떨어짐이 되기도 하여, 정해진 업이 없다는 것이다. 난생이 바뀌어 태생이 되기도 하고, 습생이 바뀌어 화생이 되기도 하여, 정해진 형질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따라야 할 업의 과보가 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여 정해진 방향이 없으니, 이것이 중생이 상속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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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업의 과보가 어떻게 시작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業果起始問)
問曰業果起始와及相續之事를可得聞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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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업과의 시작과 상속하는 일을 들어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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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楞嚴經에云佛告富樓那사想愛同結야愛不能離면則諸世間에父母子孫이相生不斷나니是等은則以欲貪으로爲本이니라. 貪愛同滋야貪不能止면則諸世間에卵化濕胎ㅣ隨力强弱야遞相呑食나니是等은則以殺貪으로爲本이니라. 以人食羊면羊死爲人고人死爲羊야如是乃至十生之類ㅣ死死生生에互來相噉야惡業俱生호窮未來際니是等은則以盜貪으로爲本이니라.不與而取曰盜又陰取曰盜以人食羊不與取也羊死爲人互來相噉陰取曰盜以相噉皆盜貪也淫殺盜三爲業果根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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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고하시기를, 생각과 애욕이 함께 맺히어 애욕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모든 세간에 부모와 자손이 이어 생겨나 끊어지지 않는다. 이런 등등은 곧 욕정의 탐욕으로 근본을 삼는다.
탐욕과 애욕이 함께 번식하니, 탐욕을 멈추지 못하면 여러 세간에 난생·화생·습생·태생이 힘의 강약을 따라 서로를 잡아먹게 된다. 이런 등등은 곧 살해하는 탐욕으로 근본을 삼는다. 사람이 양을 먹으면 양이 죽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죽어 양이 된다. 이와 같이 나아가 열 가지 생명체 종류가 죽고 또 죽고 태어나고 또 태어나면서 서로서로를 잡아먹어 악업과 함께 태어나기를 미래가 다하도록 하니, 이런 등등은 곧 도둑질하는 탐욕으로 근본을 삼는다.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걸 도둑질이라 한다. 또 몰래 가지는 것을 도둑질이라 하니, 사람이 양을 잡아먹는 것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이고, 양이 죽어 사람이 되어 서로를 찾아가 서로 잡아먹는 것은 몰래 가지는 것이다. 세간에서 서로 잡아먹는 짓은 모두 도둑질이다. 음행·살생·도둑질 이 세 가지가 업과의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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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負我命며我還汝債야以是因緣으로經百千劫야常在生死며汝愛我心고我憐汝色할以是因緣으로經百千劫야常在纒縛니라. 唯殺盜媱三이爲根本以是因緣으로業果相續나니라. 佛이又告富樓那사如是三種顚倒相續은皆是覺明의明了知性이因了發相야從妄見야生니山河大地諸有爲相이次第遷流호因此虛妄야終而復始니라. 上所擧因緣이一一明白니皆唯心所生이라不同儒家天命之謂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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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나에게 목숨을 빚지고 내가 상대에게 빚을 갚기에 이런 인연으로 10만 겁이 지나도록 항상 생사에 머물게 되며, 상대가 내 마음을 사랑하고 내가 상대의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인연으로 10만 겁이 지나도록 항상 결박에 머물게 된다. 오직 살생·도둑질·음행 이 세 가지가 근본이 되니, 이런 인연으로 업의 과보가 상속한다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또 부루나에게 고하시기를, 이와 같은 세 가지 전도가 상속하는 것은 모두 각인 밝음(覺明)의 명료하게 아는 성품이, 더 명료하게 하려는 것이 원인이 되어 생각을 일으키고, 망령스런 견해를 따르기 때문에 생긴다. 산과 강과 대지를 비롯한 모든 유위의 물상들이 차례로 변화를 계속하는데, 이 모두는 허망함 때문에 끝났다가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위에서 거론한 인연들이 하나하나 명백하니, 모든 것이 오직 마음에서 생긴 것으로, 유가儒家에서 천명天命에서 모든 것이 생겼다는 말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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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교화행의 우열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行化優劣問)
問曰佛儒之化行에優劣이如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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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교화의 실천은 불교와 유교 가운데 어느 것이 나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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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夫孔氏之化被海內也에有名分上下며有强弱彼此니因此而世上이崢嶸컨던竸爭人我야是非ㅣ紛然나니故로涵虛云儒之謂聖人者ㅣ遵仁義而不能盡仁義며行道德而不能盡道德者也ㅣ로다. 堯舜은病博施며湯武有德며周公은雖聖이나征伐을未除며孔子ㅣ雖仁이나餼羊을未去니比佛之道德컨猶霄壤之不侔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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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공자의 교화는 사해四海 안에 한정하여 명분과 상하를 두었으며, 강자와 약자, 나와 남이 있다. 이로 인해 온 세상이 자기가 잘났다며 나와 너를 경쟁하여 시비가 분분해진다. 따라서 함허 선사께서 이르기를,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들은 인의를 좇았지만 인의를 다하지 못했고, 도덕을 행했지만 도덕을 다하지 못한 자들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널리 베풂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었고, 탕왕과 무왕도 덕에 부끄러움이 있었으며, 주공이 비록 성인이었다지만 정벌을 제거하지는 못하였고, 공자가 비록 어질었다지만 양고기를 제물로 쓰는 제도를 없애지 못했으니, 부처님의 도덕과 비교하면 오히려 하늘과 땅이 나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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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者施則普洽大千이오德則遍覆四生이라魔軍이雖暴이나伏之不以兵고歌王이雖怨이나報之不以直며央崛이欲殺이나而返爲救度며調達이欲害나而授記作佛니佛儒之分이乃若是也ㅣ며佛이於平等大圓覺海에行平等慈사以平等法으로接化衆生시니如春이行於萬國에體備群芳者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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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베풂은 대천세계를 널리 적셨고, 부처님의 덕은 사생을 두루 덮으셨다. 마의 군대가 비록 포악했지만 복종시키되 힘으로 하지 않았고, 가리왕이 비록 원한을 맺었지만 그에게 그대로 보복하지 않았으며, 앙굴마라가 부처님을 죽이려 하였지만 도리어 그를 제도하였고, 조달이 해치려 하였으나 부처가 되리라 수기를 주셨으니, 불교와 유교의 차이가 바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평등하고 크고 완전한 깨달음의 바다에서 평등한 자비를 행하여 평등한 법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셨으니, 온 나라에 봄이 오니 갖가지 꽃향기를 몸에 두르는 것과 같은 분이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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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云사是法이平等야無有高下라며又云사若有菩薩이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卽非菩薩이라시니法本如是라非强爲也ㅣ니라. 佛이觀法界衆生을如自己어시니豈有人我之我哉리오? 若以名分上下彼此親踈高低强弱으로欲修身而齊家며治國而平天下則不得也ㅣ리라. 何者오? 其修身也에增人我야仁義道德이不振고其齊家也에馳逐是非라適庶上下가仇怨고其治國也에分色賤胄이라. 賢愚文野가渾亡니豈可論及於天下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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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가진다면 곧 보살이 아니다라고 하시니, 법이 본래 이와 같은 것이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온 법계 중생을 당신처럼 보셨으니, 어찌 나다 남이다 하는 아상이 있었겠는가? 만약 명분과 상하, 피차와 친소, 고저와 강약으로 자신을 닦고 가정을 바로잡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고자 한다면 그럴 수 없다. 왜 그런가? 그렇게 자신을 닦으면 아상, 인상만 증장시켜 인의와 도덕을 떨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가정을 바로잡으면 시비만 추구하게 되어 적자와 서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원수가 된다. 그렇게 나라를 다스리면 복식의 색깔 따라 귀천이 나누어지기에 현자와 우자, 문인과 야인이 모두 망하니, 어디 천하까지 논할 것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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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之所以能轉能行者以其圓而不方며周而無缺故也ㅣ니라. 佛이以本分不二平等無私之大道로敎育生靈시니普天人民이孰不蒙益이리오? 箇箇ㅣ有丈夫之氣며物物이有活動之樂이라. 故로云平等性中에無彼此ㅣ오大圓鏡上에絶親疏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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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가 구를 수 있고 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모나지 않고 둥글기 때문이며, 골고루 갖춰져 빠짐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본분本分 도리인 둘이 아니고, 평등하며, 사사로움이 없는 대도로써 중생들을 가르치고 기르시는데, 온 천하의 인민이 누가 그 이익을 입지 않겠는가? 저마다 장부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활동의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평등성지 속에는 이것과 저것이 없고, 대원경지 위에서는 가깝고 소원함을 끊어 버렸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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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有十善法과四無量法과四攝法과四正勤法야以如是諸法으로方便導化衆生사되於明法律儀內에又用開遮사使一切로得自由케사勸而懲之시니於是에君臣이道合고人民이共和야自成淸平無爲世界也ㅣ니, 所以孔子ㅣ云西方에有大聖人니不治而不亂며不言而自信며不化而自行야蕩蕩乎民無能名焉이라시니, 有宋丞相張商英이論此云以孔子之聖으로도尙尊其道어던而今學孔子者未讀百十卷之書고先以排佛로爲急務者何也오니是言也ㅣ可以爲後人作點眼藥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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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십선법과 사무량법과 사섭법과 사정근법이 있어,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법으로 중생을 방편으로 이끌고 교화하시면서도, 밝은 법과 율의 안에서 또 개차법을 사용하여 일체 중생이 자유를 얻도록 권면하시기도 하고 징벌하시기도 하셨다. 이에 임금과 신하가 도에 합하고 인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저절로 맑고 평등한 무위의 세계를 이루었다. 이런 까닭에 공자도 이르기를, 서방에 큰 성인이 계시는데 다스리지 않아도 혼란스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음직스레 행하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여, 크고 드넓어 백성들이 뭐라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고 하였다.
송나라의 승상 장상영이 이를 논하여 이르기를, 공자 같은 성인도 오히려 그 도를 존중했는데, 요즘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들은 백 권 아니 열 권의 책도 미처 읽지 않은 채, 무엇보다 불교 배척하는 일을 급선무로 삼는 것은 왜일까?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가히 후학들의 눈을 열어 주는 약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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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老子西昇經에云老子謂尹喜曰聞道乾竺에有古皇先生者니吾之師也ㅣ라. 不生不滅며善入無爲야綿綿若存며善入泥洹야返乎無名이니吾今昇就야亦返一源이라시니老子ㅣ知有釋伽ㅣ로다. 所以捨官西赴며返乎無名者涅槃之理ㅣ오返一源者不二之稱이라. 是眞如之體也故로遥尊釋伽야爲吾師也ㅣ니故로云道同則宵壤이一處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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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서승경에 이르기를, 노자가 윤희에게 인도에 고황古皇 선생이란 분이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바로 나의 스승이시다. 그분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무위에 잘 들어가 면면하게 존재하는 듯하며, 열반에 잘 들어가 도리어 이름이 없다 하니, 내가 지금 위로 올라가는 것 역시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라고 했다. 노자는 석가가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관직을 버리고 서쪽으로 달려갔으며, 이름 없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열반의 이치이고,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둘이 아님을 지칭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진여의 바탕이다. 그러므로 멀리서나마 석가를 존경하여 자신의 스승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도가 같으면 하늘과 땅도 같은 자리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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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몇 가지 질문을 뽑아 거기에 변론하는 장(摘取對辨章)
或이問曰迂叟司馬光也云호釋은但取其空이라取其無利慾心이라니是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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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묻는다.
우수迂叟사마광가 이르기를, 불교는 다만 그 공을 취하는 것일 뿐이니, 그 날카로운 욕심을 없애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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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死水裡에不藏龍이니라.破取其空之意也 莫學閒言語야昧沒佛祖意어다會麽아取捨ㅣ元來로非道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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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썩은 물속에는 용이 살지 못한다.공에 집착하는 뜻을 논파한 것이다. 한가로운 말이나 배워 부처님과 조사의 뜻을 매몰시키지 말라. 알겠는가? 취하거나 버리는 것은 원래 도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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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이問曰橫渠張子厚也云호浮屠必謂死生轉流를非得道면不免이라니是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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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묻는다.
횡거장자후가 이르기를, 불교에서는 꼭 생사윤회의 도를 얻지 못하면 면치 못한다고 했는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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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眼若不睡면諸夢이自除고心若不異면萬法이無咎니라. 會麽아? 夢時에明明有六道러니覺後에空空無大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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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눈이 잠들지 않으면 온갖 꿈이 저절로 없어지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알겠는가? 꿈속에서는 너무도 분명하게 육도윤회가 있었지만 깨치고 나면 공하고 공해 대천세계마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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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曰橫渠云호自其說이熾傅中國으로雖英才間氣라도生則溺耳目恬習之事고則師世儒崇尙之言야遂冥然被驅야謂聖人은可不修而至며大道可不學而知故로未識聖人心야已謂不必求其跡이라며未見君子志야已謂不必事其이라니是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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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횡거가 이르기를, 그 말씀이 중국 땅으로 마구 전해지면서부터 영재英材나 간기間機들조차도 태어나면서부터 귀와 눈에 편안히 익힌 일에 빠지고, 자라서는 세속의 유생들이 숭상하는 말을 스승으로 삼아, 결국은 멀뚱히 거기에 내몰림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성인은 닦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이고, 대도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그 자취 따위는 구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군자의 뜻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그 문장을 섬길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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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我王庫內에無如是刀子니所謂聖人은不修而至며大道不學而知其橫渠之自道也歟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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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우리 임금님 창고에 그와 같은 칼은 없다. 이른바 성인은 닦지 않아도 이르고, 대도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장횡거 자신이 하는 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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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問曰明道ㅣ云호佛學은只以生死로恐動人이라니是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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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묻는다.
정명도가 이르기를, 불학佛學은 그저 생사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동요시킬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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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程子之不論生死ㅣ正如小兒夜間에不敢說鬼니你還甘長劫輪回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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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정명도가 생사를 논하지 못한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한밤중에 감히 귀신 이야기를 못하는 것과 똑같다. 그대는 장구한 세월의 윤회를 달갑게 여기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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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問曰朱子云호聖賢안以生死로爲本分事야無可懼故로不論死生이어佛은爲怕死生故로只管說不休라니是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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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묻는다.
주자가 이르기를, 성현께서는 생사를 본분사로 여겨 두려워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생사를 논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처는 생사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오로지 그 이야기를 쉬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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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聖人은謂孔子也原始及終야知死生之說이라니豈不論生死乎아? 以生死로爲本分事者可爲以蠻夷로攻蠻夷者也ㅣ로다. 程子ㅣ曾不閱釋典이면焉知以生死로爲本分事也ㅣ리오? 然이나但知本分이오不知新熏이면驢年이라사必出頭去ㅣ리니會麽아? 識氷池而專水ㅣ나借陽氣而鎔消고悟凡夫而卽佛이나資法力而熏修니氷消則水ㅣ流潤야方呈漑滌之功고妄盡則心이靈通야應現通光之用이어程子ㅣ但知以生死로爲本分事오而不知沈淪長劫니其自欺自蔽者歟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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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성인이공자를 말한다. 근원을 깨어 종극을 돌이켜서 생사의 이론을 안다고 하였으니, 어찌 생사를 논하지 않았겠는가? 생사를 본분사로 여겼다고 한 것은 오랑캐로 오랑캐를 공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이천이 불교 전적을 열람하지 않았다면 생사를 본분사로 여긴다는 말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본분만 알고 신훈을 알지 못한다면 당나귀 해라야 머리를 내밀 것이니, 알겠는가? 얼음 연못이 전부 물임은 알지만, 따뜻한 기운을 빌려서 녹여야 하고, 범부가 곧 부처인 걸 깨달았더라도 법력을 힘입어 훈습하여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야 축축이 흘러 마침내 봇물을 대고 세탁하는 효과가 드러나고, 망상이 다해야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 시방삼세를 관통하는 진여 광명의 작용이 응현한다. 정이천은 생사를 본분사로 여길 줄만 알 뿐 장구한 겁의 윤회에 빠지는 것은 몰랐으니,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를 망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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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問曰伊川이云禪家之言性이猶太陽之下에置器耳라. 其間에方圓大小不同이어特欲傾此于彼耳로다. 然이나在太陽얀幾時動고又其學者ㅣ善遁이라若人이語以此理면必曰我無修無證이라니是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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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묻는다.
정이천이 이르기를,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성품은 마치 태양 아래에 그릇을 두는 것과 같아서, 그 사이에 모나고 둥글며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은데, 괜히 이것을 저기에다 부으려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태양 입장에서 언제 움직인 적이 있던가? 또 그것을 배우는 자들은 은둔하기를 잘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이치로 말하면 분명 나는 닦은 것도 없고 증득한 것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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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欲識不招無間業인莫謗如來正法輪이어다. 屛山曰伊川의此語가出於徐鉉의誤讀首楞嚴經이니佛言사五陰之識이如頻伽甁盛空야以餉他方이나空無出入이라신거로遂爲禪學니豈知佛이以此로喩識情이虛妄야本無去來리오? 其如來藏妙眞如性은正如太陽이元無動靜야無修而修며無證而證이라. 但盡識情이면卽如來藏妙眞如性이니是非遁辭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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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업을 짓지 않으려거든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하지 말라. 이병산이 이르기를, 정이천의 이 말은 서현이 수능엄경을 잘못 읽은 데서 나왔다고 했다. 수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오음의 식이 빈가병에 허공을 담는 것과 같아서, 그것을 다른 곳으로 보낸다 해도 허공은 나오거나 들어감이 없다고 하신 말씀으로 마침내 선학禪學을 삼았으니, 부처님께서 이것으로 알음알이(識情)가 허망하여 본래 오고 감이 없음을 비유했다는 걸 어찌 알았겠는가? 저 여래장의 오묘한 진여의 성품은 마치 태양이 움직임도 고요함도 없는 것과 똑같아, 닦음 없이 닦으며 증득함 없이 증득하는 것이다. 그저 알음알이를 다하기만 하면 곧 여래장의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니, 이는 말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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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問曰程朱云釋氏以虛靈知覺之氣로爲心이라니是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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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묻는다.
정이천과 주자가 이르기를, 불교는 텅 비고도 지각 작용하는 기운을 가지고 마음이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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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曰行道에莫向山下路라果聞猿叫斷腸聲이로다. 會麽아? 神光이不昧야萬古徽猷니入此門來에莫存知解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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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한다.
길을 가더라도 산 아랫길로는 향하지 말라. 결국 애끊는 원숭이 소리를 들으리라. 알겠는가? 신비로운 광명이 어둡지 않아 만고에 찬란하니, 이 문에 들어왔거든 알음알이를 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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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원정종歸源正宗 하권
31. 부처님의 출생에 즈음한 다섯 가지 상서(佛之降神先現五種瑞)
釋迦譜에云되善慧菩薩이亦名護明菩薩功行이滿足사位登十地에生兜率天야一生補處시니爲迦葉佛左補處尊名聖善白이라. 爲諸天師야隨應說法이러니期運이將至에當下作佛할現五種瑞시니, 一者放大光明야普照三千大千世界ㅣ오. 二者大地가十八相으로動이오. 三者魔宮이隱蔽ㅣ오. 四者日月이無光이오. 五者八部ㅣ天龍等八部阿含經云東方天王名多羅咤此云治國主智度論云提須賴吒領乾闥婆及毗舍闍神將護弗婆提人不令侵害南方天王名毗瑠此云增長主智度論名毗樓勤叉領鳩槃茶及薛荔神將護閻浮提人西方天王名毗留博叉此云雜語主智度云毗樓博叉領一切諸龍及富單那將護瞿耶尼人北方天王名毗沙門此云多聞主領夜叉及刹將護㭗單越人 悉皆震動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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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보에서 이르기를, 선혜보살호명보살이라고도 한다.이 공덕과 수행이 만족하여 지위가 십지十地에 오르자 도솔천에 태어나 일생보처로 지내시니가섭불의 왼쪽에 앉아 보좌하는 존자 이름은 성선백聖善白으로, 모든 하늘의 스승이 되어 (그들의 부탁에) 응하여 법을 설하고 계셨다. (가섭부처님으로부터) 수기 받은 대로 운이 이르자 하생하여 부처가 되니, 다섯 종의 상서를 나타내셨다. 첫째는 큰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고, 둘째는 대지가 18종으로 흔들렸으며, 셋째는 마귀의 궁전이 은폐되었고, 넷째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으며, 다섯째는 팔부가하늘과 용 등의 팔부를 말한다. 『아함경』에서는 ‘동방 천왕의 이름은 다라타이다’라고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치국주라고 한다. 『지도론』에서는 ‘제두뢰타라 하고, 건달바와 비사도를 거느린 신장이며 불바제 사람들이 침탈 당하지 않도록 보호한다’고 하였다. 남방 천왕의 이름은 비류이고 중국에서는 증장주라고 한다. 『지도론』에서는, ‘비루륵차라 하고, 구반다와 벽려를 거느린 신장이며 염부제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하였다. 서방 천왕의 이름은 비류박차이고 중국에서는 잡어주라고 한다. 『지도론』에서는, ‘비루박차라 하고, 일체 모든 용과 부단나를 거느린 신장이며 구야니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하였다. 북방 천왕의 이름은 비사문이고 중국에서는 다문주라고 한다. 야차와 나찰을 거느린 신장이며 울단월 사람들을 보호한다. 모두 진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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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諸天子사當知라. 我於無量劫來에惟此一生이正是度脫衆生之時라. 我當應下生閻浮提리라. 其諸天子ㅣ咸共議言호當使菩薩로現生何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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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모든 천자들에게 고하시기를, 마땅히 알라. 나는 한량없는 겁에서 오직 이 한번 일생 동안이 바로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킬 때이다. 나는 염부제에 하생하리라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곳의 여러 천자들이 함께 모여 의논하기를, 보살님을 어떤 종족으로 태어나시게 할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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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有說言호維提種摩竭國은其母ㅣ雖正이나其父不眞며拘薩大國은父母宗族이皆不眞正고和沙國土受他節度고維耶離國은喜諍不和고鏺樹國風은擧動이虛妄고餘國은邊地라佛之至尊이皆不應生이오. 唯有維羅衛國니乃三千大千世界之中이며人民이滋茂야植德本며其淨飯王과種族은第一性行이仁賢며夫人이貞良야猶天玉女ㅣ오護身口意야前五百歲에爲菩薩母니應可降神야受彼胞胎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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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유제종 마갈국은 그 어머니가 바르지만 그 아버지는 참되지 못하고, 구살대국은 부모의 종족이 모두 참되지도 바르지도 못하며, 화사국토는 다른 풍속을 가지고 있고, 유야리국은 논쟁하길 좋아해 화합하지 못하며, 발수국의 풍습은 거동이 허망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변두리이다. 모두 부처님 같은 지존께서 태어날 곳은 못된다. 오직 유라위국이 있으니, 바로 삼천대천세계의 중심이며 인민이 많고 덕의 근본을 심었다. 그 정반왕과 종족은 가장 성품과 행실이 어질고 현명하며, 그 부인은 정숙하고 어질어서 마치 하늘 나라 옥려와 같고, 신·구·의를 잘 호념하여 이전 5백세 시절에도 보살의 어머니가 되었던 분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강신하여 태에 들어야 좋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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菩薩이於是에化乘白象며冠日之精고乘雲而下야降神大術胎中할從右脇入니夫人이夢感因悟야自知身重이라. 天獻飮食이自然而至야不復樂於人間之味며大聖이在胎나母無妨礙러라晨朝에爲色界天야說法시며日中에爲欲界天야說法시며晡時에爲鬼神說法사成熟利益無量衆生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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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보살이 하얀 코끼리로 변화하여 태양의 정기를 머리에 두르고 구름을 타고 내려와 큰 기술로 태 속으로 강신하여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갔다. 부인께서 꿈속에서 점지 받으시고 그런 줄을 깨치시니 몸이 무겁다는 걸 절로 아셨다. 하늘이 바친 음식이 저절로 내려와서 다시는 인간의 음식을 즐기지 않았으며, 대성께서 태에 계셨으나 어머니에게는 조금도 방애가 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는 색계천을 위해 설법하시고, 한낮에는 욕계천을 위해 설법하시며, 저녁에는 귀신을 위해 설법하시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성숙시키고 이롭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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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是에兜率天衆이念言호大聖이已淨飯王宮中시니我等이亦當下生人間야菩薩이成佛커든我得聞法호리라고卽更於諸國王大臣과或婆羅門者居士等家니凡九十九億天子ㅣ라. 卽周昭王二十五年癸丑四月八日夜半也ㅣ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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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도솔천의 대중들이 대성께서 이미 정반왕의 궁중에 몸을 의지하셨으니, 우리 역시 인간 세계에 반드시 하생해서, 보살께서 성불하시면 우리가 법을 들어야겠다고 생각으로 말하고는, 곧 여러 나라의 왕과 대신과 바라문과 장자와 거사 등의 집안에 의탁하였으니, 그 수가 무려 99억 천자였다. 곧 주나라 소왕 25년(B.C. 1027) 계축 4월 8일 한밤중이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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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부처님 탄생시의 신이함(佛之出胎大光普照六種震動)
大聖이在胎에十月滿足야夫人이將諸綵女사遊藍毗園할攀無憂樹ㅣ러니忽出蓮華야大如車輪이라. 菩薩이化從夫人의右脇而生사墮彼華上야自行七步사周四方而各七步也擧其右手사指天指地시고作大獅子吼云사, 天上天下에惟我獨尊이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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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께서 태 속에서 만 10개월을 계셨는데, 부인이 여러 시녀들을 거느리고 람비 동산을 거니시다가 무우수를 잡으시자 홀연히 수레바퀴만큼 큰 연꽃이 솟아올랐다. 보살이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화생하시어 그 연꽃 위에 떨어졌다. 스스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걸음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시고는 사자후 하시기를,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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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乾坤六種이振動이러라. 時에四天王이卽以天繒으로接太子身야置寶机上니帝釋天主執盖고大梵天主持拂야左右侍立고九龍이空中에吐淸水니一溫一涼이라. 灌太子身니三十二相에八十種好라. 放大光明사普照三千大千世界며天龍八部가滿虛空中야作天伎樂며雨妙香花와瓔珞과天衣니不可稱數며所感瑞應에有三十四煩不錄群生이普利며地獄이停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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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곧 하늘과 땅이 여섯 종류로 진동하였다. 이때 사천왕이 곧 하늘 비단으로 태자의 몸을 감싸 보배 평상에 모셨고, 제석천왕은 일산을 펴 들었으며, 대범천왕은 불자拂子를 들고 좌우에 모시고 섰고, 아홉 마리 용이 공중에서 맑은 물을 토하였는데 하나는 따뜻한 물이고 하나는 차가운 물이었다. 그 물로 태자의 몸을 씻기자 삼십이상 팔십종호가 큰 광명을 놓아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었다. 하늘과 용 등의 팔부가 허공 가득 나타나 하늘 나라 음악을 연주하면서 오묘한 향기의 꽃과 영락과 하늘 나라 옷들을 비처럼 흩뿌렸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어 상서로운 감응에서른네 가지가 있으나 문장이 번다하여 생략한다. 수많은 중생들이 널리 이익을 얻었으며, 지옥의 고통도 잠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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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日에八大國王이皆生太子며諸釋種女ㅣ生五百男며國中居士者ㅣ亦悉生男니及八萬四千이러라.大聖居兜率天作諸天師敎化天衆時所集諸天主爲助佛揚化故降神受胎也 廐馬가生駒며宮中에五百伏藏이發現며又諸大商이採寶俱還니卽名太子야爲悉達이라니라.此云頓吉盖悉達因事得名也 于時에乾坤이六種으로振動며日有重輪며靈瑞非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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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에 여덟 큰 나라의 왕들이 모두 태자를 낳았으며, 여러 석가 종족 여인이 5백의 사내아이를 낳았으며, 그 나라의 거사와 장자들 역시 모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모두 8만 4천 명이었다.대성께서 도솔천에서 모든 하늘 나라 사람들의 스승이 되어 하늘 나라 대중들을 교화할 때 모였던 여러 천왕들이 부처님의 교화를 돕고자 강신하여 잉태되었다.
그날 마구간의 말이 망아지를 낳고, 궁궐에서 5백 개의 숨겨진 보물 창고가 발견되고, 또 여러 큰 상인들이 보물을 채집해 함께 돌아왔기에 곧 태자의 이름을 실달이라 하였다.중국말로 모두 함께 길해지다라는 뜻이다. 실달은 그날 있었던 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 하늘과 땅이 여섯 종류로 진동하고 해에 또 다른 테두리가 나타나는 등 신비한 상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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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支那國周昭王甲寅癸丑二十六年也四月八日也ㅣ러라. 昭王이見此고驚異非常야命太史官蘇少游야卜之得乾卦九五爻動이라. 奏曰乾是金人之位라住於西也ㅣ니西天에有大聖人이降生之瑞也ㅣ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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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이 곧 중국 주나라 소왕 갑인년계축 26년 4월 8일이다. 소왕이 이를 보고 평소 같지 않은 기이함에 놀라 태사관 소소유에게 명하여 점을 치자 건괘 9·5효가 나왔다.
태사관이 아뢰기를, 건은 금인의 지위이니, 서쪽에 머무십니다. 서천에 큰 성인께서 강생하신 서상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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昭王이問曰於此土에何如오? 對曰聖躬御世之時엔不來ㅣ오. 此千年之後에合有敎法이流傳此土리이다. 昭王이勑命所司야刻石記之야瘞於洛陽城南郊壇之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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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왕이 묻기를,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라고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기를, 성상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동안에는 오시지 않습니다. 천년 뒤에 반드시 (그분의) 교법이 이 땅에 널리 전해 올 겁니다.라고 하였다.
소왕이 담당자에게 명하여 돌에다 이를 새겨 낙양성 남쪽 사직단 밑에 묻어 두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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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귀한 지위를 버리고 도를 닦음 : 유아독존에 대한 변론(捨修道辨眞我獨尊)
釋迦氏誕生以太子之로棄萬乘之尊榮고以大悲願力으로爲體사住世七十九年에廣設三百餘會사利樂群品시며攝伏群邪사度人無數시니能捨尊榮고而從平等者ㅣ其爲尤難乎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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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 씨는 귀한 태자로 태어났지만 만승을 다스릴 존귀와 영화를 버리시고 대비의 원력으로 몸을 삼아 세상에 머무신 지 79년 동안, 3백여 차례의 법회를 열어 중생들을 아주 즐겁게 하셨으며, 온갖 삿됨을 포섭하고 조복하여 제도한 사람이 셀 수 없으셨으니, 존귀와 영화를 버리고 평등을 따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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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曰釋迦氏誕生之時에旣有唯我獨尊之說이어니有何平等之意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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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말하기를, 석가 씨가 탄생할 때에 이미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고 말했는데, 거기에 무슨 평등의 뜻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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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你眞不識聖意로다何者오? 我者是眞我之我ㅣ오非人我之我也ㅣ니直指乎一心之眞性이니라. 故로云絶名相이나貫古今고處一塵되圍六合며內含衆妙고外應群機며主於三才고王於萬法니蕩蕩乎其無比며巍巍乎其無倫이로다. 不曰神乎아? 昭昭於俯仰之間며隱隱於視聽之際로다. 不曰玄乎아? 先天地而無其始고後天地而無其終이라며, 又云호誰知王舍一輪月이萬古光明不滅고며, 又古人이云호纔降王宮示本然고周行七步又重宣이로다. 指天指地無人會獨振雷音大千이라니其義已顯이라你自不會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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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용성은) 말하기를, 그대는 정말 성인의 뜻을 모르는구나. 왜 그런가? 여기서 란 바로 참 나를 뜻하는 나이지 남이니 나니 하는 그런 나가 아니다. 일심一心의 참된 성품을 곧바로 가리키신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이름과 모습이 끊어졌지만 고금을 관통하고, 작은 티끌에 처하지만 상하와 사방을 에워싼다. 안으로 온갖 오묘함을 머금고 밖으로 수많은 근기에 응하며, 삼재의 주인이 되고 만법의 왕이 된다. 탕탕하구나! 그와 비교할 자 없으며, 우뚝하구나 그와 짝할 자가 없도다. 과연 신비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굽혔다 우러렀다 하는 사이에서 밝고도 밝으며, 보고 듣는 속에서 은밀하고도 은밀하구나! 그윽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지보다 앞에 있어 그 시작이 없고 천지보다 뒤에 있어 그 끝이 없도다!라고 하셨다. 또 이르기를, 누가 왕사성의 오롯한 둥근 달을 알았으리오, 만고에 빛나는 광명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네라고 하셨다. 또 옛사람이 이르기를, 왕궁에 내려오시자마자 본래의 그러함(本然)을 보이시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 거듭 선포하셨네.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켰건만 아는 사람 없기에 홀로 외치신 천둥소리 대천세계에 진동하네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 뜻을 이미 드러냈는데도 그 자신만 모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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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부처님 상호와 광명(聖身相好常光周身)
佛身에有三十二相과八十種好며詳見於佛祖通載與法數身色이紫金光聚라內外瑩徹야淨潔無瑕며頂佩日月며胷題卍字며常光周身야不假燈燭며眉間白毫에常光照耀니舒則一尺一寸이오. 收則如圓明珠며或有時에放白毫相光면則普照法界고或有時에周身放光면則光照法界塵沙國土야非凡情可擬也ㅣ며若擧足而行인隨其踏下야每涌金蓮而承之나然이나足去蓮花四寸而常浮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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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몸에는 삼십이상과 팔십종호가 있었으며,『역대불조통재』와 『삼장법수』에 상세하다. 피부 색깔이 자금 덩어리처럼 빛나 안팎이 환하게 밝고 정결하여 흠이 없었다. 정수리에는 해와 달을 두르고, 가슴에는 만卍 자가 있었으며, 항상 빛이 온몸을 에워싸 등불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미간에는 하얀 털에서 항상 빛이 비추었으니, 펴면 길이가 1척 1촌이고, 거두면 동그란 밝은 구슬 같았다. 어떤 때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으시면 법계를 널리 비추고, 어떤 때 온몸에서 빛을 놓으시면 광명이 법계에 펼쳐진 티끌처럼 많은 국토를 비추어, 범부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을 들어 걸으실 때면 발바닥 아래에서 금빛 연꽃이 솟아올라 떠받쳤으며, 지나가도 연꽃은 4촌 높이에 항상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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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부처님의 34종 상서(佛之應世有三十四種瑞)
覺皇이應世에有三十四種之瑞며伏藏採寶發現俱還야國土ㅣ豊樂며纔誕而大光이普照야地獄이停酸커阿私陀仙人이騰空而來야見太子已고忽然悲泣이어, 王이大憂怖야問仙人言호, 子何不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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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황제(覺皇)께서 세상에 응현하실 때 34종의 상서가 계셨으며, 숨겨진 보물 창고가 발견되고, (많은 사람들이) 보물을 채굴하여 함께 돌아왔기에 국토가 풍요롭고 즐거웠으며, 태어나시자마자 큰 광명이 널리 비치어 지옥의 혹독한 고통도 잠시 멈추었다. 그러자 아사타 선인이 허공을 날아서 찾아와 태자를 보고는 갑자기 슬피 울었다.
이에 왕이 크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선인에게 묻기를, 내 아들에게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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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太子ㅣ具足三十二相과八十種好니在家면必爲轉輪聖王고出家면成等正覺야轉大法輪리니我今年已百二十歲라. 不久命終일不聞說法故로自悲耳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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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이 대답하기를, 태자께서는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구족하셨으니, 궁에 머무시면 반드시 전륜성왕이 되실 것이고, 출가하면 등정각을 성취해 큰 법륜을 굴리실 것입니다. 저는 올해 이미 120세이니, 오래지 않아 생명이 끝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절로 슬플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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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子漸長에因王嚴駕야抱謁於大自在天廟니諸天主聖像이悉能起拜太子之足下어父王이驚嘆曰我子於諸天中에最尊最勝니宜字天中天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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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가 좀 자라시자 부왕이 수레를 장식하고 태자를 안고서 대자재천이 모셔진 사당에 인사를 올리려 하였다. 그러자 여러 천왕의 성스러운 상들이 모두 일어나 태자의 발아래에 절하였다. 부왕이 놀라며 감탄하여 이르기를, 나의 아들이 모든 하늘 가운데서도 가장 존귀하고 가장 수승하니 아들의 자字를 마땅히 하늘 중의 하늘이라 해야겠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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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부처님께서 마군을 굴복시킴(佛之降魔)
世尊이於閻浮樹下에觀樹思惟시니感天動地며演大光明야覆蔽魔宮니天魔波旬이恐怖야令彼四女로往詣太子야萬端妖媚호感之不動이러라. 波旬이復將八十億魔衆야故來惱壞할而作是言호若不起去면擲汝海中리라. 太子答言호汝先動我淨甁然後에사可能擲我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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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염부수 아래에서 나무를 관하며 사유하시니, 하늘과 땅이 감동하여 큰 광명을 펼쳐 마군의 궁전을 덮어 버렸다. 그래서 하늘 마군 파순이 두려워 그의 네 딸에게 태자를 찾아가 만 가지 아리따운 용모로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지만, 유혹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파순이 다시 80억이나 되는 마군 무리를 거느리고 찾아와 괴롭히고 파괴하면서 말하기를, 일어나 떠나지 않으면 너를 바다 한가운데 던져 버리겠다.라고 했다.
태자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먼저 나의 물병을 움직일 수 있어야만, 그런 뒤에야 나를 던져 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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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十億衆이盡力호不能令甁小動이라乃至種種作威할若抱石者면不能勝擧고設能擧者라도復不能下며飛刀舞劒이停於空中며雷電雹雨ㅣ成五色花니群魔力盡야無復能爲也ㅣ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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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억 대중이 온 힘을 다했지만 물병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나아가 갖가지 위엄을 보였지만 돌을 끌어안아도 들어 올릴 수가 없었고, 설령 들었다 해도 다시 내려놓을 수 없었으며, 날아가던 칼과 춤추던 검이 공중에 정지하고, 우레·번개·우박·비가 오색의 꽃이 되자, 모든 마군들도 힘이 떨어져 다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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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唯佛獨爲然也ㅣ라. 自卅三祖師로迄于今者에無數菩薩과無數祖師와無數羅漢과無數長者와無數居土와及至無數信女히苟或魔試ㅣ有逼이면卽待以道變야或鎭或逐며或降或度며乃至於一切畜生야도遇緣이면則以一句法門으로喩使脫殼遷道며有或使一切病者로得以癒痊而載於經傳者ㅣ不可勝記로此以吾家末邊之事故로不爲奇之며不爲道之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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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한 분만 그러셨던 것이 아니다. 서른세 분의 조사 스님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보살과, 무수한 조사와, 무수한 나한과, 무수한 장자와, 무수한 거사, 나아가 무수한 신녀에 이르기까지 마귀의 시험이 닥치면 곧 도道로 변화하여 마주하여 그들을 진압하거나 쫓아 버리거나 굴복시키거나 제도하셨다. 나아가 일체 축생에 이르기까지 인연을 만나면 한 구절 법문(一句法門)으로 가르쳐서 (번뇌의) 껍질을 벗겨 도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셨다.
혹은 모든 병든 이들을 치료하는 이야기는 경전과 전기류들 속에 실렸지만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우리 불교 집안에서는 이런 것들을 중요하지 않은 일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기특한 것으로 치지도 않고 도道라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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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이나是等種種權用이皆出於自力이오. 非若耶蘇被魔鬼之所携야或殿上或山頂야도未能自除고斷食四十日야而誠祝天神야得其加護力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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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갖가지 권교의 작용은 모두 제 힘 속에서 나온 것으로, 저 예수가 마귀에게 사로잡혀 때로는 전각 위에서 때로는 산꼭대기에서 스스로 제압하지 못하자 40일 동안 단식하면서 천신天神에게 정성껏 빌어 그가 가호력을 얻었던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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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기독교의 십계와 불교의 가르침 대비(引外典十戒配內典設敎)
天主曰我耶和華天主之稱卽汝之神也ㅣ라니라.
其所命戒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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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天主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이니,천주天主를 말한다. 곧 너의 신이다.라고 하였다.
그가 명한 계戒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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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我外엔勿置他神라.又讚頌歌云我에셔勿置他神라
第二勿作偶像라.爲汝야勿作偶像며又天上地下水中之物에勿論某形고凡有相者를勿作偶像며勿作禮拜며又勿事之라大槪我耶和華汝之天怒여워天也니憎我者父之罪를傳之子孫而及於三四代고愛我者及守我命者恩施于子孫而及於數千世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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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또 찬송가에서는 ‘나에게 다른 신을 두지 말라’라고도 한다.
제2, 우상을 만들지 말라.너를 위해 우상을 만들지 말며, 또 하늘 위나 땅 아래나 물 가운데 있는 물건 어떤 모양을 막론하고 무릇 형상이 있는 어떤 것으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예배하지 말며, 또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의 죄를 자손에게까지 묻고 3대, 4대까지 이르게 할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자와 나의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 은혜를 자손에게까지 베풀고 수천 대에 이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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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勿妄稱耶和華之名하라. 槪耶和華셔自己名號妄稱者를不爲無罪라시니라.
第四記臆安息日야善聖其日라. 六日之間에力工諸事고及第七日야汝之耶和華安息日也니使汝之子女奴婢六畜留客으로除廢事務라. 㮣六日之內에汝耶和華ㅣ創造萬物고至第七日而息也故로耶和華ㅣ福安息日야聖케셧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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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자기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가 없다고 여기지 않는다.
제4,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선하고 성스럽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여호와가 편안히 쉬는 날이니, 너의 자녀와 노비와 여섯 가축과 잠시 머무는 나그네마저도 하는 일이 없게 하라. 엿새 동안 너의 여호와가 만물을 창조하고 제7일째 쉬었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축복하여 성스럽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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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恭敬父母라然則汝之耶和華ㅣ使汝로久活於給汝之地云시니라.
第六勿殺人라.
第七勿姦淫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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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너의 여호와가 너에게 준 땅에서 너를 오래도록 살게 하리라.
제6, 살인하지 말라.
제7, 간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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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勿偸盜라.
第九欲害汝隣며勿假作證據라.
第十勿貪隣家며又勿貪汝隣人婦ㅣ나奴婢牛馬나及諸所有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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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 도둑질하지 말라.
제9, 너의 이웃을 해치려고 거짓으로 증거하지 말라.
제10,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의 부인과 노비와 소와 말 및 여러 소유물도 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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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聞釋迦氏之設敎也에曰人이因地而倒者因地而起니離地求起無有是處也ㅣ니라. 迷一心而起無邊煩惱者衆生也ㅣ오. 悟一心而起無邊妙用者는諸佛也ㅣ라迷悟雖殊ㅣ나. 而要由一心則離心求佛者도亦無有是處也ㅣ니라. 故로四祖云百千法門이同歸方寸이오河妙妙德이摠在心源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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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히 듣건대,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시설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땅으로 인해 넘어졌으면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하니, 땅을 떠나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일심을 미혹하여 끝없는 번뇌를 일으킨 자는 중생이요, 일심을 깨달아 끝없는 오묘한 작용을 일으키신 분은 모든 부처님이시다. 미혹하느냐 깨닫느냐는 비록 다르지만, 요는 일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즉 일심을 벗어나 부처가 되길 바라는 것 또한 옳지 않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4조 도신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천 법문이 모두 마음으로 귀결되고, 항하의 모래알 수처럼 많은 공덕이 모두 마음 근원에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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普照云人性이本淨야在聖而不增며在凡而不減니, 故云호在聖智而不耀며隱凡心而不昧라니, 旣不增於聖인佛祖奚以異於人고? 而所以異於人者能自護心念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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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국사께서는 이르시기를,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니 성인이라고 그것이 늘어나지도 않고 범부라고 그것이 줄지 않는다. 따라서 옛사람이 이르시기를, 성인의 지혜 속에 들었다고 해서 빛나는 것도 아니며 범부의 마음에 숨어 있어도 어둡지 않다. 이미 성인이라고 해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부처님과 조사는 어째서 보통사람과 다르실까? 그분들이 보통사람과 다른 까닭은 능히 스스로 그 마음과 생각을 보호해 지키시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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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云사是法이平等야無有高下라며, 冶父云水不離波波是水라鏡水塵風不到時에應現無瑕照天地라며, 又達摩云衆生心外에別求佛求祖者皆是天魔外道라며, 圭山云鏡心이本淨며像色이元空이로다. 夢識이無初언만物境이成有라며, 佛云사譬如磨鏡에垢盡明現이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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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라고 하셨으며, 야보 스님은 말하기를, 물이 물결을 떠나 있지 않으니 물결이 바로 물이니, 거울에 먼지가 달라붙지 않았을 때, 물에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을 때는 티 없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천지를 비춘다.라고 하였다.
또 달마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의 마음 밖에서 따로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하는 자는 모두 하늘 마군이고 외도이다.라고 하였다.
규봉 종밀 스님이 말하기를, 거울은 본래 깨끗하고, (거울에 맺힌) 영상은 원래 공하다. 꿈 같은 제8아뢰야식은 초상初相이 없지만 대상 경계가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거울을 닦아 때가 사라지면 밝음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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由此觀之컨衆生心性之外에求別有天而可尊이며別有天以可生者는是妄也ㅣ오非眞也ㅣ니라. 故로悟此心者는卽名天人師大丈夫ㅣ오. 迷此心者卽名衆生根愚凡夫也ㅣ니라. 圓覺에佛云有無上淸淨大多羅尼門야流出無邊法門海야敎授諸菩薩이라시니, 佛이以大慈悲로敎育無限人天衆이언만去佛漸遠야心外求道者ㅣ滔滔漫漫니可謂大明이不能破長夜之昏고慈母도不能保身後之子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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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중생의 심성 밖에 존중해야 할 하나님(天)이 따로 있고, 만물을 낳을 수 있는 하나님이 따로 있다는 것은 허망한 말이지 참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깨친 자를 곧 하늘 세계와 인간 세계의 스승이요 대장부라고 명명하고, 이 마음을 미혹한 자를 곧 중생이라 명명하고 근기 어리석은 범부라고 명명한다.
원각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위없이 청정한 큰 다라니의 대문이 있는데, 거기에서 바다처럼 끝없는 법문을 흘려 내어 모든 보살을 가르친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 한량없는 사람 세계와 하늘 세계의 중생을 교육하셨건만, 부처님 시대와 거리가 점점 멀어져, 마음 밖에서 도를 구하는 자들이 많아지니, 참으로 큰 밝음도 기나긴 밤의 어둠은 부수지 못하고, 자비로운 어미도 자신이 죽고 나서는 제 자식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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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道由心悟也ㅣ니豈在像不像이리오? 但得其本고不愁其末이니라. 佛云사一切有爲法이如夢幻泡影며如露亦如電이니應作如是觀이라며, 又云若以色見我커나以音聲求我면是人안行邪道라不能見如來ㅣ라시니, 大道豈在於偶像也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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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도는 마음 깨침에서 온다. 어찌 형상이 있고 없음과 관계가 있겠는가? 그저 그 근본을 얻을지언정, 그 지말을 근심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인위적인 법은 꿈결 같고, 환 같으며,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다. 반드시 그렇게 관찰하라.라고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물질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 한다면 이런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자로 여래를 볼 수 없다.라고 하셨으니, 대도大道가 어찌 우상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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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云是法이住法位야世間相이常住라며, 冶父云若人이識得家中寶면啼鳥山花一樣春이라니, 大道豈斥在於偶像哉아? 故로潙山이云以思無思之妙로返思靈焰之無窮면思盡還源에性相이常住고事理不二야眞佛이如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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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라고 하셨으며, 야보 스님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제집 안의 보물을 알아차리면 우는 새와 산에 핀 꽃이 똑같이 봄 풍경일세.라고 송하였으니, 대도大道가 어찌 우상 배척하는 것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산 영우 선사가 말하기를, 생각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생각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오묘한 생각으로, 다함없는 신령한 불꽃을 돌이켜 사유하여, 생각이 사라져 근원으로 돌아가면, 그 자리는 성품도 형상도 상주하고, (그 자리는) 현상과 이치가 둘이 아니어서, 참된 부처가 여여하리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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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聞이云旣無思底며復無淨底야直得一絲不挂라和自家本體都盧不見이니恁麽入囂塵이면敎誰染着이며恁麽入順逆이면敎誰嗔喜리오? 然後에打徹明暗兩頭야向不明不暗處야看大悲院有齋話면龍蛇渾雜凡聖交參可謂渾天地歌舞ㅣ오盡世界風流也ㅣ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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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 분 선사는, 이미, 생각할 것도 없고, 다시 깨끗할 것도 없으면, 곧장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아, 제집 안의 본바탕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 뒤에 세속의 번뇌 속으로 들어간다면 누가 물들고 집착하겠으며, 이렇게 한 뒤에 역순의 경계로 들어간다면 누가 분노하고 기뻐하겠는가. 이런 다음에 밝음과 어둠 두 가지를 모두 타파하고서,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곳을 향하여 대비원에 재齋가 들었다는 화두를 들면,용과 뱀이 뒤섞이고, 범부와 성인이 함께 참여한다. 그대는 온 천지 어디에도 노래하고 춤추며 온 세계 어디라도 풍류 놀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리라.라고 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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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로余以悟心則萬機ㅣ俱息고迷心則是非ㅣ紛然也ㅣ라노라. 佛家에聖像塑畵를不可以邪神偶像으로論之니何者오? 吾家之模範聖像也有眞言加持之妙力야惡魔邪鬼가恐怖야莫敢犯近며又有腹藏之法야以眞言梵書와及五甁等으로安佛腹內야以鎭邪氣나니切不得誤認而妄加論斤也ㅣ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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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말하노니, 마음을 깨치면 만 가지 마음 작용이 모두 쉬고, 마음을 미혹하면 시비가 분분하다.라고 하겠다. 불가佛家에서 성인의 형상을 빚고 그리는 것을 두고, 삿된 신神이니 우상이니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런가? 우리 집안에서 법식에 맞추어 만든 성상聖像에는 진언으로 가지加持한 오묘한 힘이 존재하여, 악마나 삿된 귀신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하거나 범하지 못한다. 또 복장腹藏하는 법이 있어서 진언과 범서梵書와 다섯 종류의 병甁 등을 불상의 배 속에 안치하여 삿된 기운을 진압하니, 절대로 잘못 알고 함부로 논란하여 배척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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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佛三昧經에云佛이昇忉利天上사旣久시니優塡王이不勝戀慕야鑄金爲像이러니聞佛當下고載金像야仰候世尊니猶如生佛이러라. 乃遙見佛足니步於虛空하실蹈雙蓮花사放大光明시며佛語像言사汝於來世에大作佛事리라. 吾滅度後에我諸弟子를付囑於汝노니若有衆生이造立形像야種種供養면是人이後世에必得念佛淸淨三昧라니, 造像之法이自此始焉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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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불삼매경에서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도리천으로 올라가신 지 오래되자, 우전왕이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금으로 부처님 형상을 주조하였다. 언젠가는 부처님께서 내려오실 것이라고 듣고는, 금불상을 받들어 세존의 문후를 여쭈어 마치 살아계신 부처님같이 하였다. 이어 멀리 부처님 발을 바라보니 허공을 걸으시는데 두 송이 연꽃을 밟고 큰 광명을 놓으시며, 부처님께서 금불상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오는 세상에 크게 불사를 지을 것이다. 내가 멸도한 뒤, 나의 모든 제자들을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만약 형상을 만들고 세워 갖가지로 공양하는 중생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후세에 반드시 부처님을 생각하는 청정한 삼매를 얻으리라라고 하셨다.라고 했다.
불상을 만드는 법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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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上云心外에無佛可成이라고今云供養佛像야得念佛淸淨三昧라니何語相違耶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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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묻기를, 앞에서는 마음 밖에 이뤄야 할 부처가 없다고 하고는, 지금은 불상을 공양하면 부처님을 생각하는 청정한 삼매를 얻는다고 말을 하니, 왜 말이 서로 어긋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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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諸法이從緣生며從緣滅니人이眼見聖像고心生恭敬야以獻供養며或生歡喜而讚誦이면則植此種於藏識中이라가其所結果之時에發得此三昧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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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이 대답하기를, 모든 법이 인연을 따라 생기며 인연을 따라 멸한다. 사람이 눈으로 성스런 형상을 보고 마음에 공경을 일으켜 공양을 바치거나 혹은 환희심을 내어 찬송하면 이런 종자를 아뢰야식 속에 심어 두었다가, 그것이 열매 맺힐 때 이런 삼매를 발하게 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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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성불의 원인(稱佛名號得成佛正因)
維佛은以大悲爲體시고以度生爲務시나니夫無緣者不能爲也故로不論尊卑上下貴賤고皆可稱呼며及至戱笑라도稱佛名號면畢竟得成佛正因이온況存心正念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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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부처님께서는 대비로 몸을 삼으시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업무를 삼으시지만, 대저 인연이 없는 자이면 (부처님도) 어찌하시지 못한다. 그러므로 존비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그 명호를 부를 수 있으며, 나아가 장난으로라도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마침내는 성불하는 바른 원인을 얻을 수 있는데, 하물며 마음에 새겨 두고 바르게 염하는 것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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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蘊이本空며六塵이非有라不出不入며不定不亂야本絶四相이어니五蘊六塵上卷已見四相者我人衆生壽者相也豈可以高低等次로言論也ㅣ리오? 故로云光明寂照遍河沙라四聖聲身緣覺菩薩佛也六凡地獄餓鬼畜生天道人道修羅이共一家라며, 古云佛則是心이오心則是佛이라며, 又云心佛及衆生이是三無差別이라니, 故로生佛이生衆生也平等며大小ㅣ平等이어니豈分人天上下而論道哉ㅣ리오? 元因一圓融最淸淨無障碍法界야迷一念故로四聖六凡이分路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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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五蘊이 본래 공하고, 육진六塵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며, 안정되지도 않고 혼란하지도 않아, 애초에 네 가지 상相을 끊었으니,오온과 육진은 상권에서 이미 설명했다. 사상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다. 어찌 높고 낮음 등의 차이를 따지겠는가?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광명이 고요히 항하사 세계를 두루 비추니, 사성四聖성문·연각·보살·불과 육범六凡지옥·아귀·축생·천도·인도·수라이 모두 한 집안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라고 하셨다. 따라서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며, 대승과 소승이 평등하니, 어찌 인간과 하늘 상하를 나누어 도를 논하겠는가? 원래 하나이며, 원융하고 가장 청정한 무장애법계를 원인으로 하였지만, 한 생각 미혹한 까닭에 사성과 육범으로 갈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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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十善放生施食梵行實語直語軟語和合語不淨觀慈悲觀因緣觀者神識이上天야爲天主天民며修三歸歸依佛歸依法歸依僧也五戎者不殺盜淫妄酒神識이生人間되福業重者는爲人主며爲人臣며爲大富者고福業輕者爲下民而或貧或賤며或六根이不完며或疾病長苦고又罪業重者墮三惡道야歷劫受苦니其所受修報ㅣ各各有別也ㅣ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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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선十善방생·시식·범행·실어·직어·연어·화합어·부정관·자비관·인연관을 닦는 자는 신식神識이 하늘로 올라가 하늘 임금이나 하늘 백성이 된다. 삼귀의三歸依귀의불·귀의법·귀의승와 오계五戎불살생·불투도·불사음·불망어·불음주를 닦는 자는 신식神識이 인간에 태어나는데, 복 받을 만한 업이 두터운 자는 사람의 왕이 되기도 하고 신하가 되기도 하며, 큰 부자가 되기도 하고, 복덕의 업이 가벼운 자는 낮은 백성이 되어 가난하거나 비천하거나 육근이 완전하지 못하거나 질병으로 오래 고생한다. 또 죄업이 무거운 자는 삼악도에 떨어져 오랜 겁을 거치며 고통을 받으니, 저마다 받는 것이 과보를 짓는 것에 따라 각각 차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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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로佛敎比丘云사觀衆生을如佛如父母라云云也ㅣ시니라. 夫佛之同體大悲也孝順父母며普敬一切야以萬物로爲一已니何偏僻之有리오? 故로云圓同太虛야無欠無餘언만良由取捨야所以不如라니三界輪廻愛欲所纒이라旣無取捨면愛欲何從이며又無愛欲이면輪廻那有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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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중생을 부처님처럼 여기고 부모님처럼 여겨라.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부처님의 동체대비이다. 부모님에게 효순하며, 널리 일체 중생을 존경하여, 만물을 똑같이 자신으로 삼으셨으니, 어찌 편벽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원만함이 태허와 같아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결국은 (중생 스스로) 취하고 버림으로 인해 여여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삼계에 윤회하는 것은 애욕에 얽혔기 때문이니, 이미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애욕이 어찌 따라오겠는가? 또 애욕이 없다면 윤회가 어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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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부처님이 살생을 금한 것은 평등한 자애임(明佛之戒殺平等慈愛)
大哉라. 聖人之道여! 可謂賴及萬方이오化被草木이로다. 鳳凰은雖禽이나飢不啄有主之粟며麒麟은雖獸나行不踏有情之草온況聖人乎아? 法界有識含靈이本是平等性上이元因一念差야受報萬形이나然이나凡有血氣之屬의固有知覺好生惡死之心이아有何異於人哉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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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구나, 성인의 도여. 가히 만방의 의지처가 되고 초목까지 교화를 입히셨다고 하겠다. 봉황은 비록 새이지만 굶주려도 주인이 있는 곡식은 먹지 않고, 기린은 비록 짐승이지만 다니면서 살아 있는 풀은 밟지 않는다. 하물며 성인이시겠는가? 알음알이가 있는 법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본래 이 평등한 성품에서 애초 한 생각의 차이로 인해 만 가지 형상으로 과보를 받은 것이다. 그러니 혈기가 있는 부류에게 본래 있는 지각 작용과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이야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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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推過去컨經歷六道야受胎四生니羽族禽獸含識之類가莫非我之前身父母子孫也ㅣ라. 其殺而食之를奚可忍乎아? 故佛敕弟子사汝等이以慈心故로行放生業이니一切男子是我父오. 一切女人은是我母라我ㅣ於生生에無不從之受生故로六道衆生이皆是我父母어而殺而食者卽殺我父母며亦殺我故身이니라. 一切地水ㅣ是我先身이오一切火風이是我本體니故로常行放生라. 生生受生常住之法이라시니豈有揀擇而垂誡哉시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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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미루어 보건대, 육도를 거치면서 사생의 태를 받았을 것이니, 날아다니는 새와 짐승을 비롯한 알음알이가 있는 모든 종류가 내 전생의 부모와 자손이 아닌 자가 없다. 그러니 그들을 죽여 먹는 짓을 어찌 차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들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방생의 업을 행하라. 모든 남자가 바로 나의 아버지요, 모든 여인이 바로 나의 어머니이니, 내가 수많은 생에 그들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다 할 자가 없다. 그러므로 육도 중생이 모두 나의 아버지요 어머니이니, 그들을 죽이고 먹는 자는 곧 나의 부모를 죽이는 것이며, 또한 나의 전생 몸을 죽이는 것이다. 모든 흙과 물이 바로 나의 전생 몸이요, 모든 불과 바람이 바로 나의 본바탕이다. 그러니 항상 방생하라. 이것이 세세생생 태어나며 항상 머무는 법이다.라고 하셨으니, 어찌 선택해 계명을 내리심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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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에金剛藏菩薩이云殺生之罪ㅣ能令衆生으로墮於地獄餓鬼畜生며若生人中이라도得二種報나니一者短命이오二者多病이라시니, 如是等說을不可一一歷擧야盡數而證之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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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에서 금강장보살이 말하기를, 살생의 죄가 중생을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게 하며,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얻게 하니, 하나는 명이 짧은 것이고, 둘은 병이 많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등등의 말씀을 일일이 거론하여 모조리 다 증명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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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부처님의 십계로 삼업을 모두 포섭(佛之十戒摠收三業)
佛說三歸十戒와幷大士四百戒와與比丘二百五十戒와及比丘尼五百戒와乃至三千威儀와八萬細行이나然이나今但取十戒야說明리라. 大抵衆生之造業修善之本은由乎身口意三業也ㅣ니意是根本이오身口乃枝末也ㅣ라. 佛就身業而誡之曰第一不殺生이오. 第二不偸盜오. 第三不邪淫이라며就口業而誡之曰第四不妄語오. 第五不綺語와飮酒오. 第六不惡口오. 第七不兩舌이라며, 就意業而誡之曰第八不貪欲이오. 第九不嗔恚ㅣ오. 第十不愚痴라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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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삼귀의, 십계, 아울러 보살 사백계, 비구 이백오십계, 비구니 오백계, 내지 3천 가지 위의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규범을 설하셨다. 하지만 이제 십계만 취하여 설명하겠다.
중생이 업을 짓고 선을 닦는 근본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삼업三業에서 비롯된다. 뜻이 바로 근본이고, 몸과 입은 지말이다. 부처님께서 신업에 대해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첫째는 불살생이요, 둘째는 불투도요, 셋째는 불사음이다.라고 하셨으며, 구업에 대해 경계하시기를, 넷째 불망어요, 다섯째는 불기어와 불음주요, 여섯째는 불악구요, 일곱째는 불양설이다.라고 하셨으며, 의업에 대해 경계하시기를, 여덟째는 불탐욕이요, 아홉째는 부진에요, 열째는 불우치이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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窃究造業之根由컨意因眼耳鼻舌身之媒引야造出十不善고又從十種不善이爲根源야而又作成四百戒로乃至八萬細行之枝流也ㅣ니然則此十戒摠持上下無盡戒行焉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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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을 짓는 근원을 깊이 궁구해 보면 뜻이 눈·귀·코·혀·몸이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열 가지 선하지 못한 업을 만들고, 또 열 가지 선하지 못한 업이 근원이 되어 이로부터 또 사백계 내지 8만 가지 세밀한 행동규범이라는 지류를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십계는 상하의 다함없는 계행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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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에金剛藏菩薩이告解脫月菩薩사佛子아. 菩薩摩訶薩이已修初地고欲入第二地當起十種深心이니何等爲十고? 所謂正直心과柔軟心과堪能心과調伏心과寂靜心과純善心과不雜心과無顧戀心과廣心과大心이니菩薩이以此十心으로得入第二離垢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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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에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기를,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초지를 닦고 나서 제2지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열 가지 깊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정직한 마음·부드러운 마음·감내하는 마음·조복하는 마음·고요한 마음·순수하고 착한 마음·잡되지 않은 마음·그리워하지 않는 마음·넓은 마음·큰 마음이다. 보살이 이 열 가지 마음으로 제2이구지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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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子아. 菩薩이住離垢地야性自遠離一切殺生이니不畜刀杖며不懷怨恨야有有愧며仁恕具足야於一切衆生有命之者에常行利益慈念之心이니是菩薩이尙不惡心으로惱諸衆生이온何況於他에起衆生想야故以重意로而行殺害리오?互見上卷卅三張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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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야, 보살이 이구지에 머물면,
성품이 스스로 일체 살생을 멀리하여 칼과 몽둥이를 비축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아 스스로 뉘우치고 남들에게 부끄러워함이 있으며, 어짊과 용서를 구족하여 생명이 있는 일체중생을 항상 이롭게 하고 자비롭게 생각하는 마음을 행한다. 이런 보살은 나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괴롭히지도 않는데, 어찌 하물며 타인에게 중생상을 일으키고 거기다 생각을 더해 살해하는 짓을 저지르겠는가.『귀원정종』 상권의 「13. 불교는 허무적멸의 도라는 힐난에 대한 반론」에 수록된 내용과 비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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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不偸盜니菩薩이於自資財에常知足며於他에慈恕야不欲侵損이니라. 若物屬他어든起他物想야終不於此에而生盜心며乃至草葉이라도不與어든不取니何況其餘資生之具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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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도둑질하지 않나니, 보살은 자신의 재물에 항상 만족할 줄 안다.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기에 침탈하거나 손해를 끼치려 하지 않으며, 만약 물건이 타인의 손에 들어가면 타인의 물건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끝내 타인에게서 훔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아가 풀 한 포기 잎사귀 하나라도 주지 않으면 갖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그 나머지 삶에 필요한 물품들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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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不邪媱이니菩薩이於自妻에知足이오. 不求他妻며於他妻妾과他所護女와親族媒定과及爲法所護에尙不生於貪染之心이온何況從事ㅣ며何況非道ㅣ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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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삿된 음행을 하지 않나니, 보살은 자기 아내로 만족할 줄 알고, 타인의 아내를 구하지 않는다. 타인의 아내와 첩, 타인이 보호하는 여자와 친족, 결혼이 정해진 자와 나아가 법으로 보호하는 자에게 오히려 탐욕에 물든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는데, 어찌 하물며 그런 짓을 저지르겠으며, 어찌 하물며 도리에 맞지 않는 짓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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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不妄語니菩薩이常作實語眞語時語論云知時語不起自身地身衰惱事故謂心事雖實而廻改見時或令自他而有衰惱今菩薩朝見言朝暮見言暮故曰知時乃至夢中이라도亦不忍作覆藏之語야無心欲作이온何況故犯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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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거짓말하지 않으니, 보살은 항상 실다운 말, 참된 말, 시점을 명기한 말을 하고,『십지론』에서 ‘시점을 명기한 말은 자신과 타인에게 손실과 고뇌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기억하는 사건이 비록 사실이라 해도 목격한 시점을 바꾸거나 고쳐서 진술하면 자신과 타인에게 손실과 고뇌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이제 보살은 아침에 목격했으면 ‘아침’이라 말하고, 저녁에 목격했으면 ‘저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점을 명기한 말’이라 한다. 나아가 꿈속에서라도 차마 감추거나 숨기는 말을 하지 않고 짓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데, 어찌 하물며 일부러 범하겠는가.